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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9.06 엄마, 내 팔 베고 누워 4



1. 요구르트 아줌마 기다리기


연수와 둘이 동네 골목에 내려가 장을 봤다.
생선가게에도 들리고, 야채가게에도 들리고... 
오늘은 어쩐 일인지 업어달라고 하지 않고 엄마 손을 잡고 잘 걷는 아이가 기특해 내가 말했다. 

엄마: 연수야, 아파트 입구에 가서 요구르트 하나 사먹을까?
연수: 좋아!!!

아파트 앞에는 늘 요구르트 아줌마의 작은 수레가 파라솔을 꽂고 얌전히 서있다. 
아줌마는 가까운 어디로 배달을 가셨는지 안 계셨다. 
연수는 수레 앞에 멈춰 서더니 엄마 손을 놓는다. 기다리겠다는 것이다. 
잠시 서성이다가는 수레 옆 인도 턱에 다소곳이 걸터 앉았다. 
나도 곁에 앉았다. 
지나가던 슈퍼 아저씨가 우리 모습을 보고 웃어서 나도 쪼그리고앉아 쑥스럽게 웃었다.

한참을 기다려도 아줌마는 오시지 않았다. 
자리에서 일어난 연수가 수레를 가리키며 말했다.

연수: 엄마.. 그냥 우리끼리 먹자.   

푸훕~~~!  
마치 우리가 아줌마와 함께 먹기 위해 기다렸던 것 같기도 하고,
오래 기다렸으니 이제는 그만 수레에 있는 통을 열어 꺼내먹어도 될 것 같은 기분이 그 어린 말을 듣는 순간 나도 막 들었다. ^^

그래도 연수는 이만저만해서 그럴 수는 없다는 엄마 말을 듣고, 나중에 아줌마가 아파트 마당에 올라오시면 그때 사먹자는 제안에도 순순히 응해서 집까지 높은 언덕길을 잘도 참고 올라왔다. 세살배기 아들, 이젠 제법 의젓해진 것같다.




2. 옛날이야기 듣는 밤


젖을 끊은 후로 연수가 제일 좋아하는 저녁 잠들기 방법은 엄마 팔을 베고 누워 엄마가 해주는 옛날얘기를 끝도 없이 듣다가 어느 순간 까무룩 하고 잠드는 것이다.

덕분에 밤마다 나는 옛날 이야기를 하느라고 목이 칼칼해지고 한 이야기가 끝나면 다음 이야기 또 생각해내느라고 낑낑거린다.
새삼 내 어린 시절에 밤마다 옛날 얘기를 들려주셨던 우리 할머니는 얼마나 힘드셨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낮에는 농사일, 집안일로 쉴 짬없이 바쁘셨던 할머니, 밤이 되어 자리에 누우면 얼마나 고단하셨을까.
그런데 철모르는 어린 손녀딸은 곁에 누워 옛날 얘기를 해달라고 얼마나 졸라댔던지..
내가 옛날이야기 해주는 처지(?)가 되어보니 이 일도 참 헐한 노동이 아니어서, 어떤 날에는 엄마라는 존재는 끝도 없이, 제 몸이 아프든 제 기분이 어떻든 다 젖혀놓고 어린 녀석을 재우기 위해 옛날이야기를 최대한 재미나게 읊어가지 않으면 안되는 존재인가.. 하는 생각도 들 정도다.       

그런 수고를 늙은 할머니께 끼치며 들었던 옛날 얘기들은 서른이 훌쩍 넘은 지금까지도 토막 토막 기억날만큼 재미있었다.
나는 할머니만큼 그렇게 구성지고, 그렇게 유쾌하게 술술 넘어가는 이야기를 하려면 까마득히 멀었다.
내가 하는 옛날 이야기는 내가 들어봐도 어설프다.
그런 내 옛날 얘기도 재밌는지 매일 듣고 또 듣고, 하루 밤에도 몇개씩 해달라고 조르니 참 내 아들은 내 아들인가보다.

아무튼 우리 할머니의 옛날 이야기 해준 수고와 공은 다 갚을 수도 없을 것이다.
이제는 나이들어 제 살림 한다고 할머니를 한번 뵐 때면 아주 조금씩 용돈을 쥐어드리고 올 수있게 되었지만 
그 작은 돈이 내 어린시절의 잠자리를 늘 따뜻하고 풍요롭게 채워주었던 할머니의 이야기값이 되겠는가..

에고.. 얘기가 잠시 삼천포로 빠졌다. ^^;;

오늘도 연수는 엄마 팔베게를 하고 누워서 뒹굴거리다가 옛날이야기가 시원치 않았는지
세 개나 듣고도 잠이 안들어 발딱 일어나 거실로 나가더니 다시 엄마의 구슬림에 넘어가 방으로 돌아왔다.
그러더니 이부자리에 큰 대자로 누워 말했다.

연수: 엄마, 엄마가 연수 팔 베.
엄마: 응?
연수: 엄마가 연수 팔 베고 누워요.
엄마: 와... 그럴까? ^^

참.. 아이를 키우다보니 이런 날도 다 온다.. 생각하며 작은 팔위에 목을 대고 누웠다. 여린 살이 뭉클했다.

연수: 이렇게 하고.. 옛날에 옛날에.. 해줘요.
엄마: ^^;;... 그래.


아직 네가 옛날 얘기까지 해주기는 어려운가보구나...^^
언젠가는 네가 엄마한테 팔베게해주고, 옛날얘기도 해주는 날이 올까.
그런 날이 오면 나는 얼마나 네 얘기를 마음졸이며 재미있게 듣게 될까. 그 날을 기대할께, 어린 이야기꾼.






Posted by 연신내새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