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희생자들을 애도합니다'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4.05.13 안산 3
이웃.동네.세상2014. 5. 13. 22:24








지난 주말 안산에 다녀왔다.

안산.
우리 모두에게 오래도록 아픈 이름으로 남을 그 도시에.


친구들의 죽음을 잊지 말아달라고 부탁하려고 모인 교복입은 청소년들을 보았다.
화랑유원지 안을 삼삼오오 모여 걸으며 흩어진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 어디로 가야하는지 묻는 그들의 음색은 조금 긴장된 듯 했고 얼굴은 굳어있었다.

엄마아빠의 손을 잡고 걷다가 뛰다가 놀다가 하는 아기들과 함께 먼 길을 걸었다.
가는 대나무살 위에 붙은 하얀 종이나비의 날개가 너무 여려보여 서러웠다.

눈시울이 빨개진 아주머니들과 검은 조끼를 입고 어깨를 떨어뜨리고 있는 아저씨들 사이에 앉아 김밥을 먹었다.
날이 완전히 어두워지기 전에 광장에서는 진혼굿과 합창 공연이 있었다.
마침내 밤이 오고 
촛불이 따뜻하고도 무겁게 광장을 밝혔을 때  
깜짝 놀랄만큼 큰 소리의 절규가 들렸다. 
그런 목소리는 처음 들어보았다.
그렇게 애끓는 슬픔과 깊은 절망이 담긴, 분노가 폭풍처럼 터져나오는 목소리는.
자식을 잃은 어머니들의 이야기. 
허리를 꺽으며 내장을 꺼내놓듯 소리를 내지르던 그 몸짓. 













그래서 나는 잊지 않기로 한다.

그들은 이제 좀 슬슬 잊혀지기를 바라겠지만 
다시 좀 조용해지기를 바라겠지만
나는 그러지 않기로 했다. 

자식을 잃고 울부짖는 부모들과 마음을 함께 하기로.
특검을 요구하고, 
청문회도 요구하고
나쁘고 무능한 정치권력도 규탄하고 바꾸고 
다음 세대를 지키지 않기로 마음먹은 것처럼 막 살고, 대충 살고, 
사람 따위, 목숨 따위 중요하지 않다는 듯이
돈, 돈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 이 사회의 흐름에
등 떠밀리듯 휩쓸려가지 않기로.
편하고, 재미있는 것만 쫓으며 안락하게 방관하지 않기로.

 











단원고등학교 교문 옆에는 돌아오지 못한 친구들과 선생님에게 보내는 
과자, 음료수, 꽃, 성모상, 편지, 인형들이 빼곡히 놓여있었고, 
현수막 거치대에는 큰 글씨로 'It's not your fault(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쓴 현수막 한 장이 걸려있었다. 
'못다 이룬 꿈 천국에서' 란 작은 글씨를 보고 이것이 누구에게 하는 이야기인지 알 수 있었다.

아이들은 잘못이 없다. 
죽은 아이도, 살아남은 아이도.

하지만 어른들에게는 잘못이 있다.
이 사회의 모든 어른에게는.
죽은 아이들이 태어나던 해에 이미 스무살이었던 나에게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생전에 마지막으로 한 연설은 6월에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극적인 죽음이 있고 한 달 남짓 되던 때였다.
거기 그런 말이 있었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입니다."

지금 우리가 맞닥뜨리고 있는 악은 단순히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한 정치권력 하나 정도가 아닌 것 같다.
도덕 불감증, 물신주의, 인간성 상실 같은 어마어마하고 먼 이야기들이 
우리 눈 앞에 너무 적나라하게 맨얼굴을 들이밀어서 
지금 우리들은 이렇게 두렵고 무기력해지는 것 같다.

개인의 이익, 개인의 생존을 위해 경쟁은 불가피하다는 변명 하에 
남을 밟고 올라서고, 이기고, 빼앗고, 승자는 모든 것을 누리고 제 몫을 최대한 챙기고 
패자의 고통에는 눈 감고, 모른척하는 것을 정당화해온 결과가 
타인들의 안전보다는 내 돈을
타인들의 목숨보다는 내 권력을 
타인들의 고통보다는 내 쾌락을 
훨씬, 아니 절대적으로 추구하게 만든 것이 아닌가.
사회 정의 따위는 개나 줘버리라는 식으로 작은 부정부터 큰 부정까지 모두 눈감고 그렇게 축적한 부와 그렇게 거머쥔 권력을 부러워했던 것은 아닌가.



아픈 봄에,
봄같지 않은 봄에
묻고 생각하며 함께 걷는다.
자유롭지 않은, 부끄러운 질문들을 붙잡고 걷는다.
 






Posted by 연신내새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