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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mma! 자란다2010. 8. 27. 21:51




참 무더운 여름이었다.
아직도 한참은 더운 날이 남아있을 테지만 어느새 밤으로는 서늘한 기운이 제법 돌고 귀뚜라미 소리도 청량해져간다.

연수의 두 돌이 있었던 여름. 그러니까 만2세를 꽉 채우고 3세가 되어 맞은 여름의 흔적을 좀 모아놓고 싶어졌다.
뜨겁고 긴 낮동안 우리는 무얼하고 놀았었던가...










물감놀이는 이번 여름 내내 연수가 제일 좋아했던 놀이였다.
손바닥 발바닥을 찍고, 스케치북에 물감을 되는데로 발라보고.. 얼굴에 고양이 수염도 그려본다.
연수가 제일 좋아하는 만화인 '이웃집 토토로'의 등장인물들을 달력에 그려서 오린 것을 연수는 온 여름 내내 잘 가지고 놀았다.
내가 봐도 참 닮았다고 말하기 민망한 그림인형인데 연수는 저 달력종이인형을 아주 좋아해주었다. 
엄마의 그림실력이 초등학교 시절보다 조금이라도 나아진다면 다 연수 덕분이다.










 

가끔은 욕조안에서 물감을 풀면서 한바탕 놀았다. 
'과연 저 물감 염료가 피부에 안전할까..?'하는 불안과 걱정은 잠시 접어두고... 그냥 놀게 놔뒀다. 
우리 인생에서 이렇게 맘껏 물감을 풀며 놀아볼 수 있는 날이 언제 또 있으랴..
어느 날은 노란 물로, 어느 날은 파란 물로 시작하지만 언제나 끝날 때는 깜장색 물에 들어앉아 있는 아이를 건져 비누칠을 하던 날들. 
이렇게 풀면서 놀았는데도 비싸지 않은 수채화물감은 아직도 많이 남아있다. 
가을에는.. 낙엽을 주워다 물감찍기를 해볼까. 
 
 









더운 한낮에 연수는 가끔 발가벗고 낮잠을 잤다.
그래도 맨바닥에 배를 깔고 자면 안될것 같아 조심조심 들어 이불위로 옮겨놓으면 어느새 굴러서 다시 바닥에 내려와 있던 녀석.. 












오후가 되면 햇볕이 바로 드는 집안에는 있을 수가 없었다.
아파트 마당에 나가 단단한 회양목 열매들을 따고, 옥잠화 보라색 꽃잎속에 있는 꽃술로 꽃술싸움을 하고 놀던 오후.
올 여름들어 또래 친구들이 모두 네 발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다.
연수보다 생일이 서너달 빠르다고 해도 다 고만고만한 세 살, 네 살배기들인데 참 잘도 탄다.
연수는... 아직 페달을 못 돌린다. ^^;
다리가 짧은 것인지, 힘이 부족한 것인지...? ㅎㅎ 
재촉할 마음은 없다. 언젠가는 제 힘으로 페달을 돌리며 씽씽 달려가는 날이 오겠지.
그런데 어떻게 타냐고? 엄마는 절대 손을 못대게 하고, 저 혼자 발로 바닥을 열심히 밀며 앞으로 나간다.
여름 내내 오후마다 열심히 저렇게 탔다.












이번 여름들어 연수는 처음으로 퍼즐의 즐거움에 푹 빠졌다.
연수가 아주 조용히, 한참동안 혼자 퍼즐을 맞출 때가 엄마아빠에게도 천금같은 휴식시간이다. 
그러나 점점 맞추는 시간이 짧아지더니 요즘은 약간 소강상태..
더 조각이 많은걸 구해줘야할까나. 











밤에 어린 주인이 잠들고나면 신발도 한숨 돌린다.
오늘 하루도 주인과 함께 여기저기 잘도 쏘다닌 신발은 바퀴가 두 개나 떨어졌다. 
비싼 신발이 아니라해도 되도록이면 깔끔하게 잘 손질해서 오래 쓰게 하고파서 연수가 주워준 바퀴를 주머니에 잘 넣어왔다.
실리콘을 바르고, 밤새 단단히 붙으라고 고무줄로 감아놓는다. 
조용한 밤에 혼자 책상에 불밝히고 앉아 어린 아들의 신발을 손질하고 있으려니 몸은 노곤했지만 기분은 좋았다.
마음이 차분하고 따뜻해지는 기분... 조용히 손을 움직여 손때묻은 물건을 손질할 때 느낄 수 있는 평화로움.
옛날에 아이들 잠든 밤에 조그만 불을 켜놓고 떨어진 아이옷을 기우던 엄마들 마음도 이러셨을까..

큰맘먹고 샀던 비싼 샌달 하나는 여름내 잘 신다가 얼마전에 그만 한 짝을 잃어버렸다. 
엄마랑 둘이 나들이를 다녀오다 연수가 버스에서 잠이 들었다. 정류장에서 바쁘게 업고 내리다가 한짝이 벗겨졌던 모양이다. 
집앞에 다 와서 보니 한쪽 발이 맨발이었다. 세살 여름을 나느라니 그런 일도 있었다.
값보다도 연수가 무척 좋아했던, 온 여름 같이 잘 났던 고마운 신발이어서 곱게 잘 보관하고 싶었는데 한짝을 잃은 것이 못내 안타까웠다. 연수 물건을 잃어버린 것도 처음이라 몹시 마음이 쓰렸지만.. 비싼 교훈을 얻은셈치고 마음을 다스려야했다.
(아이가 잠들면 꼭 신발을 벗기고, 아님 단단히 신겨있는지 확인하고 업거나 안아야겠다ㅠ)

이 샌달도 엊그제 끝내 끈이 떨어졌다. 여름이 다 끝나는데 비싼 샌달 사기가 뭐해 시장에서 흰 고무신을 하나 사신겼다.
연수는 제 고무신이 맘에 들어서 밖에서 신다 들어오면 화장실에서 씻어 집안에서도 신었다. 진작 사줄껄..^^;












뜨거웠던 세살 여름이 지나간다.
이 여름동안 나는 매일매일 아파트 화단을 순례하는 연수를 따라다니며 옥잠화, 맥문동 같은 꽃과 풀 이름도 익히고
세 개의 삐죽한 뿔을 가진 회양목 열매가 초여름에는 푸르고 단단하다가 늦여름에는 갈색으로 익어 세 조각으로 갈라진다는 것도 알게 됐다.
달개비 푸른꽃은 8월 중순이 지나서야 피고, 나팔꽃처럼 아침에는 활짝 벌어졌다가 낮에는 오므라든다는 것도 알게됐다.
자연에는 늘 철이 있어서 그 날이 그 날 같아도 매일 꽃은 조금씩 달라지고 화단에는 작은 변화가 끊이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며 천천히 우리도 우리 몫의 여름날을 견뎌내고 살아내고 자라왔다.

연수는 이 여름동안 엄마젖을 끊었고 혼자 끝까지 부를 수 있는 노래가 몇 곡 생겼고 무엇보다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자라줬다.
엄마는 놀이터 햇볕은 혼자 다 쬔 것처럼 얼굴이 새까맣게 탔고(보는 사람마다 놀란다ㅠㅠ) 
이젠 저도 말 좀 한다고 엄마가 하자는 것마다 따박따박 청개구리 대답을 하는 아이와 옥신각신하느라 속도 시커멓게 탔다.
큰 일 한 것은 없지만.. 애썼다고 다독다독 해주고싶은 밤이다. 
 
가을이 온다.
가을에는 우리 둘 다 더 여물어지고 깊어져야하리.. 너는 너의 길을, 엄마는 엄마의 길을 따로 또 같이 부둥켜안고 지나가야하리. 힘내자, 연수야. 힘내자, 아빠. 힘내자, 엄마!




Posted by 연신내새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