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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11.30 전쟁과 소년 12
이웃.동네.세상2010. 11. 30. 23:47











내가 사는 연신내에도 엊그제 첫눈이 펑펑 내렸다.
한밤중에 온 가족이 현관 밖으로 몰려나가 첫눈을 맞고 사진을 찍으며 한바탕 소동을 벌였는데 아쉽게도 그 사진이 지금 컴퓨터에서 읽히지 않네..
첫눈을 기점으로 이제는 겨울이 시작됐다고 생각했지만 아직 내게 있는 사진들은 가을 사진들뿐이다.
내 블로그는 조금 더 가을에 머물러 있어야할까보다.

가을을 마무리할 즈음의 일상은 단조롭고 평온했다.
그런데 글 쓸 시간은 좀처럼 나지 않았다.
이제 4개월에 접어든 배속의 평화는 그럭저럭 힘든 초기를 잘 견딘 모양이다.
나도 이전처럼 심하게 기운이 없거나 속이 많이 불편하지는 않다. 잘 움직일 수 있고 기분도 좋은데 여전히 낮에는 낮잠자기 바쁘고 밤에는 정신없이 쓰러져 연수보다 먼저 잠들기 일수였다.   

하루종일 제가 만든 상상의 동물들과, 상상의 상황들을 가지고 쫑알쫑알 끊임없이 말을 걸어오는 30개월 연수는 잘 웃고 잘 놀고 행복한 것 같다.
엄마가 그만 놀고 자자고 할때와 이 닦자고 할 때가 이 녀석이 하루중 제일로 괴로운 순간이다.
일찍 자고싶어하는 엄마 대신 야행성이고 유쾌한 아빠가 밤늦게 퇴근해 등장할 때가 이 녀석에게 제일로 극적인 순간인데 
그런 날은 아빠옆에 찰싹 달라붙어 제가 좋아하는 온갖 놀이들을 한번씩 더 하며 밤늦게까지 논 뒤에 다음날 하루종일 비몽사몽 기운없이 지내곤 했다.
   
그 사이 세상에는 참 큰일들이 많아서
연일 신문에는 폭격으로 불에 타는 집들과 전차들, 항공모함과 비행기들의 사진이 실려있었다.
TV를 보지 않는 우리집에서는 신문이 세상에서 제일 자극적인 매체인데
그 신문의 1면에 매일같이 타오르는 불길은 어린 연수에게 굉장히 놀랍고 궁금한 일인듯 했다.

"엄마, 왜 불이 났지?"
"음.... 폭탄이 떨어졌데.. 그래서 집이 부서지고 불탔데."
"왜 폭탄이 떨어졌지요?"
"그게... 우리 나라는 원래 하나였는데 강제로 둘로 나눠졌거든. 그래서 지금 사이가 좋지않아.. 그래서 가끔 싸울 때가 있어..."

여기까지 듣고 연수는 제 방에 가서 장난감 소방차를 가지고 왔다.
"연수가 불을 꺼줄께!"
"그래.. 얼른 불을 꺼야겠지.. 사람들이 사는 집인데.. 불이 났으니 큰 일이지."

그러자 연수는 또 방으로 뛰어가서 모래놀이 양동이와 삽을 가지고 왔다.
"연수가 새 집을 지어줄께! 이 집은 불에 타지 않는 집이야."
" (^^;;) 그래, 그런 집이 있으면 참 좋을꺼야."

이런 대화가 며칠 동안 계속되었다.
연수는 매일같이 어딘가 불타는 곳의 사진을 보고, 불을 끄고, 새집을 짓느라 분주했다.
나도 아이를 보며 불에 타지 않는 튼튼한 집에 대해 생각했다.
폭격이 있었던 날 저녁, 연수와 함께 외출했다 택시를 타고 돌아오면서 라디오에서 들었던 어느 정치학교수의 무시무시한 목소리도 생각했다. 

한 판 붙자는 듯이, 너 죽고 나 죽자는 듯이(아니, 실은 자신은 안 죽을 방법을 마련해둔것처럼 막무가내로 말하고 있었다) 
본때를 보여줘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정치학교수의 말을 들으며 나는 세 살배기 어린 아기와 배속의 3개월된 아이를 데리고 내가 어디로 갈 수 있을까,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를 생각했다. 
무책임하게 쏟아져나오는 라디오 목소리를 향해서라도 '다 죽자는 거냐'고 거칠게 한마디 쏘아붙이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누르며 택시에서 내려서는데 날은 너무 추웠다. 

그 날 이후 나는 감기에 걸려 한 이틀 고생했고, 연수는 다행히 씩씩했다. 
내 아이들은 엄마보다 훨씬 더 야물고 단단하기를, 그래서 이 위험천만한 세상도 잘 헤쳐나가 주기를 빌었다. 
 
연수가 며칠동안 신문 사진을 보며 '불탄 집'과 '검은 연기'에 강렬한 인상을 받는 것을 보고 새삼 유년 시절의 체험이 갖는 강렬함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기도 했다. 
50년 한국전쟁을 체험한 세대들, 직접 체험하지 않았더라도 그 폐허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유년시절에 맞닦드렸던 공포와 황폐함과 긴장감의 강도는 얼마나 강했을까. 그들의 삶에 얼마나 깊은 그늘을 드리웠을까. 
늘상 기억하며 살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어느 순간, 오래된 상처자리가 뜨끔하듯이 쿡하고 쑤셔오는 때가 수시로 있었겠지.

1945년생 해방둥이인 우리 아빠는 다섯, 여섯살의 어린 날들을 기나긴 피난행렬 속에서 보냈다.
엄마 등에 업혀 같이 떠났던 갓난쟁이 동생을 길위에서 병으로 잃고 집으로 돌아올 때는 혼자만 엄마 손을 잡고 돌아왔다.  
아빠는 이번 사건을 보며 그 때의 공포를 다시 떠올리셨을까.
무섭다. 어린 소년에게 각인되었을 그 깊은 공포가 새삼 안타깝고 무서웠다. 아이를 키우는 어머니가 되어보니 세상의 아이들이, 그 어머니들이 받는 상처와 고통이 비로소 무섭게 다가왔다.    

그런 날들을 보내던 어느날 밤에 연수가 잠들고 나자
나는 잠깐 틈을 내어 연수가 태어난 후에 늘 해야지 하면서 미뤄두었던 두가지 일을 했다. 
아름다운 재단과 평화박물관에 후원회원으로 가입하는 것이었다. 
인권에 대해서도 감수성이 필요하듯이, 평화에 대해서도 감수성이 필요한 것 같다. 
오랫동안 인권이나 평화같은 것이 존재하지 않은 사회에서 살다보면 그게 어떤 건지, 얼마나 필요한지, 어째서 좋은 것인지 잘 모르게 되는 것 같다. 그 속에서 살아보고, 키워주고, 느껴봐야 '아 참 좋은 거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는 것. 공기같이 꼭 있어야하는 거구나... 싶어질 것 같다. 
엄마인 나도 아직은 그런 세상에서 별로 살아보지 않아서 잘 모르지만 내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은 좀 더 평화롭고, 좀 더 인권이 존중되어서 그런 가치들을 공기처럼 물처럼 숨쉬고 마시며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그런 가치들이 더 커지고 퍼져서 세상이 훈훈해지면 그안에서 자란 아이들은 저희들이 체험한 소중한 세상을 지키려고 노력하며 살아주었으면 좋겠다.   

평화박물관은 어린이도서관들과 함께 평화책 전시회를 하고, 평화놀이터도 하고 위안부할머니와 같은 전쟁피해자들을 위해 활동하는 단체다.
아름다운 재단에서는 여러가지 기부와 나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데 그중 '이른둥이'(미숙아)들의 성장과 치료를 위한 후원프로그램인 '다솜이 작은숨결살리기 프로젝트'를 후원했다. 연수를 낳은 후로 늘 하고싶던 일이었는데 이렇게나 오래 까먹고 미루던 일을 이제사 한다. '같이 살자'는 마음이 절박해진 덕분이 아닐까.

딸랑 1만원씩, 한달에 2만원 더 후원하게 된걸 가지고 무슨 큰 일이라도 한듯이 어깨 힘주려고 하는 얘기는 아니다. 
(그래도 늘 적자인 살림통장을 보며 '뭐가 문제지...' 고민하는 아줌마로서 2만원은 큰 맘먹은 것이긴 하다. ^^;;)  
집에서 어린 아이를 키우며 지내는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일이기도 하고, 혹시 이런 일에 관심을 가진 이웃들이 계시다면 함께 하자고 얘기하고 싶어 적어보았다.

연수에게, 평화에게 언젠가는 그 아이들 이름으로 진행되는 이 후원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이야기해주는 날이 오겠지...
위험한 가을의 불안이 겨울까지 이어지지 않기를 빌며 하루하루 살고 있다.








Posted by 연신내새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