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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4.18 잉어 12
이웃.동네.세상2011. 4. 18. 23:45


 







잉어를 먹었다. 
예로부터 아이가진 어미가 먹으면 눈이 크고 예쁜 아기를 낳는다해서 정성껏 달여 임신부에게 먹이던 보양식, 그 잉어다.
첫째때도 못 먹어본 잉어를 내가 둘째를 갖고서 먹게된 것은 시대적 상황 때문이다.

멀쩡히 잘 살아있는 강을 '살린'다는 명목하에 강과 강에 깃든 무수한 생명과 영혼들을 죽이고 있는 4대강 사업. 
포클레인이 밤낮없이 헤집고 파헤치는 4대강중에 내 시댁이 있는 상주도 품고 가는 경상도의 젖줄 낙동강이 있다.

상주 경천대에 올라 둥그렇게 굽이치며 흘러가는 푸른 낙동강 줄기를 딱 한 번 본 적이 있었다. 
흰 백사장을 양쪽으로 넉넉하게 거느리고 돌아나가는 연푸른 그 물길은 꼭 뽀얀 엄마 젖가슴에 선명하게 돋아있는 푸른 핏줄기같았다.
그 강물에 지금은 4대강 사업의 일환으로 '낙동강 상주보'가 건설되고 있다. 
부드럽고 아름다운 곡선을 삭막하고 차가운 직선으로 만들며 지금 죽이고있는 생명과 앞으로 죽어갈 생명을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눈이 꼭 감아진다. 지금 내 눈으로 보고, 내 귀로 듣지 않아도 그 죽음의 아우성이 보고 들리는 것 같아 가슴이 후드득 떨린다. 

이 난리 와중에 낙동강 푸른물에서 자유롭게 새끼낳고 헤엄치며 살던 물고기들도 무사할 수가 없어서 
날선 포크레인이 막아놓고 간 어느 한 물구덩이에는 어른 팔뚝만큼 큰 잉어들이 잔뜩 몰려 가쁜 숨을 몰아쉬며 퍼덕이고 있었다고 한다. 
사람들이 다 잡아갈 수도 없을만큼 많은 잉어들.. 그중 몇마리를 누군가 큰 물통에 싣고 시내에 와서 팔고, 더 사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또 잡아다주고 했던 모양이다. 
일하시는 식당에서 그 얘기를 들은 우리 시어머니는 아이가진 며느리가 생각나 얼른 전화를 걸어오셨다. 
"아야, 너 먹을 수 있겠나?"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먹겠다고 했다. 어머니는 기뻐하시며 곧 보낼테니 기다리라고 하셨다. 
시아버지께서는 그 잉어를 사다가 건축자재를 넣어가지고 다니시는 아버님의 큰 차 짐칸에 싣고는 시외할머니가 계시는 청상 시골집으로 가셨다. 
청상 할머니는 아궁이에 걸린 큰 가마솥에 펄펄 뛰는 잉어를 넣고 할머니가 기르시던 토종닭 한마리도 같이 넣어서 오래오래 푹 고으셨다. 손부에게 먹일 잉어 한마리를 다 고는 동안 할머니가 마신 매캐한 연기는 얼마나 많았을까.  
그렇게 고은 잉어를 시아버님이 다시 집으로 받아오시고, 어머니는 비닐팩에 봉지봉지 담아서 얼려두셨다가 아이스박스에 담아 내게 택배로 보내주셨다. 
  
이것이 상주 경천대 아래 푸른 낙동강에 살던 잉어 한마리가 서울 우리집 식탁 위까지 오게된 사연이다.  











+ 4대강 사업으로 죽어가는 강의 모습을 생생하게 기록한 사진집 <사진, 강을 기억하다>(아카이브 발행, 2011년) 에서 '낙동강 상주보' 건설 현장을 찾아보았다. 사진작가 김흥구씨의 작품으로 2010년 7월 19일에 촬영했다고 써있었다.



나는 천천히, 한 달남짓한 기간에 걸쳐 양이 꽤 많던 잉어고은 물을 감사히 잘 먹었다.
따뜻하고 진한 그 국물을 훌훌 마시며 
자주 찾아뵙지도 못하고, 애교도 없고 살갑지도 못한 며느리, 아직은 낯설고 서먹한 마음의 거리를 다 좁히지 못한 못난 며느리에게 좋은 것이 있으면 무엇 하나라도 더 해주시고 싶어하시는 시어른들.. 어려운 형편과 고단한 생활속에서도 자식들에 대한 사랑만큼은 더없이 극진한 그 분들을 생각했다. 
평화에게 그리고 평화를 키우고 있는 내 몸안에 그 분들의 따뜻한 기운이 오롯이 남아있어서 앞으로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날들동안 그 분들을 더 사랑하고, 더 아껴줄 수 있게 되기를 빌었다. 

그리고 평화에게 낙동강 푸른물에서 자유롭게 살았던 마지막 잉어의 평화롭고 강인한 생명력이 전해지기를 빌었다. 
햇볕을 받아 반짝이던 저녁강의 은빛 물결, 하얀 백사장에 남아있는 따뜻한 한낮의 온기, 깊고 푸른 강물의 차고 시원한 기운.. 경천대 잉어가 보고 느꼈던 아름다운 강의 기억이 어린 생명, 너에게 전해질 수 있다면..!
비록 그 잉어의 마지막은 참으로 무섭고 슬픈 것이었지만.. 인간인 우리가 저지르는 이 안타까운 살육의 책임은 또 우리가 고스란히 져야할 것이므로.. 
잉어의 아픔도 너와 나에게 올올이 전해져서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그 아픔을 갚는 심정과 실천을 늘 생각하고 행할 수 있기를!












지난주 목요일에는 외할아버지의 제사가 있어 외할머니와 우리 시어머니께서 서울에 올라오셨다.
외할아버지 제사는 잠실에 있는 외삼촌댁에서 지낸다. 나와 연수도 어른들을 뵈러 잠실로 건너갔다.
제사 음식 장만을 거의 끝내놓고, 아직 해가 남아있는 늦은 오후에 식구들이 모두 석촌호수로 벚꽃구경을 나갔다.  
진한 연분홍 잠바를 입으신 분이 청상 외할머니시다.
내게는 시댁에서 제일 큰 어른이신데, 예전에도 몇번 블로그에 쓴 것처럼 나는 사실 이 분이 시댁 어른들중에 제일로 좋다.
왠지 뵐때마다 제일로 마음이 푸근하고 애틋하다. (청상, 생일, 봄냉이)
전화드리면 "응~, 손부라?"하고 물어주시는 그 음성이 좋고, 내가 이 분께 첫 손부라는 것이 괜히 뿌듯할 정도다.











연수는 증조할머니가 낯설어서 그런지, 저와 잘 놀아주지 못해서 그런지.. 증조할머니께 살갑게 굴지 않는다.
어린 것이 철없이 구는 것을 두고 야단치기는 그렇지만, 손부와 증손주에게까지 늘 따뜻하게 마음써주시는 할머니를 생각하면 내가 괜시리 부끄럽고 죄송해진다. 야단을 친다고 들을 녀석도 아니니 어서 철이 들어서 증조할머니 고마운 것을 알게됐으면 좋겠다.  












할머니 품에 안긴 연수.
아직 환갑이 안되신 우리 시어머님은 씩씩하고 젊으시다. 그래도 워낙 고생스런 일을 많이 하셔서 몸 구석구석 안아프신데가 없는데 아직은 생활비도 본인의 노동으로 버셔야한다.
그래서 어머니를 생각하면 늘 죄송하고 안타까운데 그런 기색을 조금이라도 보이면 '나는 괜찮다. 아직 젊어 일할 수있으니 얼마나 좋으니. 돈벌어 나 쓰고싶은데 쓸수있는게 너무 고맙고 좋다. 아무 걱정마라' 하신다. 그러나 그 돈의 많은 부분이 수입이 불규칙한 아버님을 대신해 두 분의 기본적인 생활비를 충당하고, 어머니의 여러가지 아픈 곳을 치료하는데만도 빠듯하다는 것을 나는 안다. 그런데도 가끔 만나는 자식과 손주들에게 맛있는 것, 옷 한가지 더 사주지 못해 안타까워하시는 모습을 보면 이런 분을 마음으로라도 더 아껴드리지 못하는 내 작은 그릇이 안타까워지곤 한다.  
 












연수는 신이 났다.
몸이 무거운 엄마는 맨 뒤에서 청상할머니와 팔짱을 끼고 천천히 따라가고, 연수는 씩씩한 이모할머니와 달리기 경주를 한다. 
벚꽃 아래로 뛰어가는 아이를 보고 있으니 엄마의 마음도 꽃빛처럼 환해지는 것 같았다.  













석촌호수를 반쯤 돌고나서 내내 잘 뛰던 연수가 힘들다고 주저앉았던 모양이다.
"주스 먹고 싶어~~'하는 연수에게 외숙모할머니가 천원짜리 한장을 주시며 얼른 저기 매점까지 가서 사먹자 하셨던 모양이다. 주스 사먹으라는 말에 기뻐진 연수가 돈을 흔들며 엄마에게 뛰어온다. ^^












열망하던 쥬스병을 손에 꼭 쥔 연수와 할머니.
저리 세워놓고 보니 또 훌쩍 큰  것 같네..^^














빌딩숲에 둘러싸인 도시의 호수 위로 석양이 비친다.
몸은 비록 이 도시의 갇힌 물을 보고 있어도
내 아이들의 마음속에는 자연의 강물, 흐르는 강물, 본래 생긴 모습 그대로 부드럽게 굽이치며 유유히 흘러가는 강물의 모습이, 그 노래가 들렸으면 좋겠다.
그럴 수 있을까... 그런 강물을 알고 그리워하는 아이로 자라게 될까.
4대강이 저렇게 죽어가는 시대에, 그마저도 바로 눈앞에 보이지 않고 귀에 들리지 않는지라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잘 모르고 도시 한복판에서 깜깜하게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과연 어떤 사람들이 되어갈까.
낙동강에서 진행되는 4대강사업 현장의 사진을 찍은 김흥구 작가는 저 책에서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 잘 모른다. 소중한 것, 아름다운 것은 잃고 난 후에야 비로소 그 것의 가치를 깨닫고 후회할 뿐이다'라고 했다. 
우리가 어떤 것을 가지고 있었는지.. 나는 이제 사진첩으로만 아이들에게 말해줄 수 있게 될까.    
더 늦기 전에 아이를 데리고 강으로 가야겠다.. 4대강 사업의 중단을 요구하는 작은 목소리라도 보태야겠다.













Posted by 연신내새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