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오릉'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10.10.27 가을 소풍 6
  2. 2010.06.07 서오릉의 여름 4
  3. 2009.11.09 숲.. 아이들을 부탁해~! 6
  4. 2009.04.08 오래된 봄놀이터.. 서오릉에 다녀왔어요 22
umma! 자란다2010. 10. 27. 14:27









가을은 왠지 소풍의 계절같다.
단풍이 살짝 든, 낙엽이 제법 떨어진 숲으로 김밥 싸들고 한나절이라도 꼭 다녀와야할 것 같은.
이제 겨우 세살이 된 꼬마 녀석 손일지라도 꼭 잡고 '소풍가자~'하며 도시락가방을 들고 나서야할 것 같은.
그 가방에는 찐 계란과 사이다와 사탕, 과자같은 것들이 꼭 들어있어야 한다. ^^

ㅎㅎ 얼마전에 그런 소풍을 다녀왔다.
그랬더니 정말 큰 가을행사를 하나 잘 치른 것 같고, 몸은 고단해도 마음은 한껏 푸근해졌다.

지난 봄쯤부터 내가 당원으로 가입해있는 민주노동당 지역위원회의 애기 엄마들과 모임을 하고 있다.
그중에는 대학 시절부터 알던 선배언니도 있고, 처녀적에 당에서 만나 알게된 선배 언니도 있다. 
20대 초중반부터 알던 사람들이 이제는 다들 애기엄마가 되어서 애들 손목 잡고, 도시락 가방 주렁주렁 매달고 나와 만나는 것이 재밌기도 하고, 아고.. 우리가 이렇게 나이들고 있구나 싶어 살짝 마음이 시큰해지기도 한다.

이 모임에서 처음 만난 분들도 있다. 
그렇다해도 같은 애기엄마라는 처지가 서로에게 더 쉽게 마음을 열게 해주는 것 같다. 
아이키우며 궁금한 것도 묻고, 엄마로 살며 고민되는 것도 얘기하고 서로의 집에 아이들 데리고 놀러가 하루쯤 기대 놀다보면 어느새 마음이 든든해지고 금새 살가운 사이가 된 것만 같은 사람들.  

한 달에 두 번쯤 만나 지역의 어린이 도서관도 같이 다녀보고, 새로운 어린이도서관을 만드는 일에 대해 의논도 한다.
엄마당원들이 관심있을만한 지역 복지, 육아나 교육문제에 대해 간담회 같은 활동도 기획중이다.
그래도 8월말쯤 가을 일정을 잡을때 제일 먼저, 제일 중요하게 날짜를 잡았던 것은 이 '가을소풍'이었다. ㅎㅎ
"가을엔 소풍을 가야지~~!" 이러면서.
"그 날은 큰 애들도 다 데리고 가자~~!" 하고. ^^












우리집에서 가까운 서오릉 숲은 아무 것도 없지만, 그래서 아이들이 놀게 너무 많은 곳이다.
각자 긴 나뭇가지를 하나씩 주워서는 뭘하고 놀까... 궁리중이다.
세 살배기 연수는 형아들이 어떻게 노나 궁금하다.
형들은 첨엔 누구 나뭇가지가 젤 긴가, 굵은가로 기선제압에 나서더니 이내 나뭇가지를 '뱀'이라며, 서로 '나는 독뱀이다!' '나는 왕뱀이다' '나는 코브라~~!'하고 놀았다.
엄마는 뱀이라는 말만 들어도 질색이지만 아직 뱀이 무서운줄 모르는 연수는 형들을 따라다니며 '뱀이다~~'하고 신나게 놀았다.











유치원에 다니는 여섯살, 다섯살 형아 둘은 이 날 유치원을 하루 쉬고 엄마와 동생들과 놀기 위해 소풍을 왔다.
숲에서 하루를 노는 동안 형들과 살짝 투닥거릴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형아들이 있어 동생들은 더 신나는 날이었다.
형아들도 좋았으리라. 
비록 어린 동생을 따라다느라 바빠 한 열번쯤 불러야 겨우 한두번 제 곁에 와줄까 말까한 엄마한테 속상하고, 동생이 저보다 더 좋은 장난감을 가지고 있으면 부러워 뺏어보고 싶지만 그도 뜻대로 잘 안돼 툴툴거리긴 했어도 말이다. 
숲에서 나올때쯤 여섯살 제일 큰 형아가 엄마에게 살짝 말했다. 
"엄마, 유치원 안가고 동생들이랑 노니까 좋다.." 
엄마 마음은 기쁘면서도 조금 걱정이 들기도 한 것 같았다. "그랬어? 그래도 내일은 유치원가야지.. 친구들이 00이 어디갔나..  보고싶어했을텐데..." 
 
둘째를 갖고 나니 새삼 형아들에게 더 눈이 간다.
연수도 형이나 오빠가 될 것이다.
동생과 어떻게 지내게 될까, 잘 놀 수 있을까.. 서로 보듬어주면서 자라야할텐데...
아이들을 믿어봐야겠지.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충분히 부대끼고 투닥거리다보면 서로 보살피고 아껴주는 날이 오겠지..
이 날 큰 형아처럼 '동생들이랑 노니까 좋다'고 말하는 날이 오겠지.
엄마와 동생과 가족들과 이웃들이 함께 모여 노니까 참 좋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마음에 깃드는 모습이 좋아보였다.

이 날 소풍은 오후늦게 서오릉에서 제일 가까운 우리집으로 자리를 옮겨 
통닭으로 엄마와 아이들의 이른 저녁까지 해결하는 것으로 깔끔~하게 끝났다. ㅎㅎ 












숲에 다녀오니 입덧도 한결 덜하고, 마음도 개운했다. 평화도 즐거웠나보다.
날이 너무 추워지기 전에 숲에 더 올 수 있으면 좋을텐데... 생각했지만 소풍 뒤로는 날이 바싹 추워져 집에서 꼼짝을 못하고 있다.
덕분에 나는 몸이 더 괴롭고, 연수도 집에서 답답하다.

그래도 씩씩한 연수는 제가 기운없는 엄마 대신 설겆이를 해보겠다고 고무장갑 끼고, 변기의자위에 까치발을 하고 서서 제 간식그릇들을 열심히 헹구기도 한다. 
비록 싱크대 한쪽위를 물로 온통 흥건하게 적셔놓긴 했지만 그 모습이 너무 예뻐 고슴도치 엄마는 또 사진만 찍고 말았다.
깨질 염려가 없는 그릇들이긴 하지만 그래도 위험한 일이라 '설겆이는 나중에 커서 하라'고 당부했다.
사진을 보니 새삼 흐뭇하다. 요즘 설겆이를 도맡아 하느라 고생많은 신랑에게도 참 고맙다. 아들도 당신 닮아 설겆이를 잘 할 듯하니 나는 참 기쁠 따름이라오..^^;
 










가끔은 이렇게 엄마일을 도우려고 애쓰는 의젓한 순간도 있지만 실은 요즘들어 부쩍 청개구리 노릇에 재미가 들어 뭐든 거꾸로해 엄마 속을 긁어놓는 장난꾸러기 아들이다. 

여전히 안아달라, 업어달라 요구도 많고
점심 먹기 전에는 배고픔과 고단함과 졸음이 한데 몰려오는지 한번은 꼭 울음을 터트리고 떼를 쓴다.
오늘도 결국 엄마의 호통과 한숨도 잔뜩 집어넣고 훌쩍훌쩍 제 눈물 콧물도 듬뿍 섞은 밥을 받아먹고 잠이 들었다.
그래... 생각해보면 엄마 배속에 이제 겨우 두달된 동생이 하나 생겼을 뿐, 연수는 변함없는 응석쟁이 29개월 어린아이일 뿐이다.
어느새 키는 90cm, 몸무게는 14kg를 훌쩍 넘긴 제법 큰 세살배기이지만 여전히 자다 깼을 때는 한참동안 엄마 품에 안겨 엄마심장소리를 들으며 남은 졸음을 달콤하게 즐기고싶은, 그래서 칭얼칭얼 '안아주세요~' 매달리는 세살배기인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바라보면 눈물 자국이 때때한 채로 잠든 연수가 안쓰럽다.
 
그래도 나는 어렵사리 잠든 연수가 우선 고맙고, 다시 울렁울렁 속을 흔들며 제 존재를 확인시켜주는 평화와 같이 앉아서 귤 한개를 그야말로 '평화롭게' 까먹으며 잠시 한숨 돌릴 수 있는게 다행스럽다.

가을이, 힘들고도 예쁜 가을이 그렇게 가고 있다.











Posted by 연신내새댁
여행하는 나무들2010. 6. 7. 21:52








더우니 숲이 생각나는 사람이 우리만이 아니어서..
서오릉은 주차장과 그 주변 길이 온통 차들로 만원이었다.
겨우 도로 한켠에 차를 세우고 내렸는데 연수는 그앞 식당의 너른 자갈밭을 보고는 냅다 그리로 직행했다.








"돌 볼꺼면 집에 있어도 되는데..." 아빠가 웃으며 말했다.
"이렇게 넓은 돌밭은 동네에 없어..." 엄마가 연수를 두둔하며 말했다.
실은 연수보다 엄마가 더 동네를 벗어나고 싶었다는 걸 아빠도 잘 알겠지만..^^;









화단에서 발견한 작은 풀꽃.








서오릉에 들어서자마자 연수는 큰 나뭇가지 하나를 주웠다.
역시 동네와는 스케일이 다르다. ㅎㅎ












신난다! 뜨겁다! 뛰자~~!!









단풍나무 좋아하는 연수.








엄마, 이것봐. 내가 딴 단풍잎 예쁘지?








서오릉의 가을도 좋고, 봄도 좋았지만 이번에 가보니 여름이 제일 좋다.
초록의 깊고 서늘한 그늘 속에 들어가 앉으니 '이게 사는거지'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복잡하고 후끈거리는 도시의 열기속에서 빠져나와
고요하고 시원한 숲을 찾아온 사람들..
그 사람들 마음도 다 나같았겠지. 여기와서야 비로소 큰 숨이 좀 터져나왔겠지...









열심히 걸어다니는 연수를 아빠에게 잠시 맡겨두고
나는 나무벤취에 앉아 양말을 벗고 발에 햇빛을 쬐어 주었다.
그 사이 연수는 익릉 꼭대기까지 꽤 긴 돌계단을 열심히도 걸어올라갔다 왔다.
덕분에 야외활동에 약한 아빠가 큰 운동했다.
 
어른들은 모두 두려워하는 뜨거운 볕을 아이들은 어쩌면 저다지도 용감하게 받아나갈까.
지칠줄 모르고 자라는 아이들이 존경스러워지는 계절, 여름이다.




Posted by 연신내새댁
umma! 자란다2009. 11. 9. 23:52



늘 함께 노는 쌍동이들과 서오릉에 다녀왔어요.
일전에도 쌍동이네랑 같이 한번 갔었는데,
아무 걱정없이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수 있는 잔디밭과 숲길이 너무 좋아서 엄마들이 더 신나했었습니다.
그래서 날추워지기 전에 아이들과 조금이라도 더 나들이하고픈 마음에 다시 아침 일찍 집을 나섰습니다.
얼마전에는 '숲유치원'을 다룬 TV뉴스도 나와 안그래도 서오릉을 좋아하는 엄마들의 정당성(?)과 의욕을 더해준 터였지요.ㅎ

쌍동이 엄마께서 운전을 하시는 덕분에 연수랑 저는 쌍동이네 차를 얻어타고 
아파트 놀이터 다녀오듯 편안하게 서오릉에 다녀오는 즐거움을 누립니다. 
마음 잘맞는 이웃사촌이 곁에 있으니 고마운 일이 정말 많습니다. ^^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쌍동이의 수레와 가방들을 챙기면서 카메라가 잘 되나 시험삼아 한 장 찍어봤습니다.
지난번 나들이때는 기껏 무거운 카메라가방까지 잘 챙겨왔는데 카메라안에 메모리카드를 안 넣어왔지 뭐예요..
나이도 젊은데 자꾸 깜빡깜빡하니 큰일이예요~;;;
울 아가들은 아침잠이 덜깼나... 졸린 표정들입니다. ㅎ









주차장을 벗어나 명릉으로 가는 숲길에 들어서자 신선한 숲공기에 잠이 다 깼는지 금방 신나게 뛰어다닙니다.
차도 오토바이도 걱정할 필요없는, 그저 맑은 공기를 깊이 들이마시며 엄마도 아이 뒤를 편하게 따라 걷기만 하면 되는
숲은 도시에서 혼자 아이를 키우며 육아에 지친 엄마들에게도 더없이 좋은 휴식처가 됩니다.










도토리 나무에서 낙엽이 많이 떨어졌습니다. 
한손에 도토리를 꼭 쥔 연수가 작은 개울옆 풀밭을 열심히 바라보고 있습니다. 도토리주우러 내려온 청설모라도 본 걸까요..? 

앞서 가는 쌍동이엄마와 쌍동이들의 모습이 아련하니 예쁩니다.
저 두녀석이 자라서도 저렇게 다정하게, 저희들을 정성을 다해 키워주신 엄마 손을 잡고 산책에 나섰으면 좋겠습니다.   










서오릉 주차장 오른편에 있는 명릉 전경입니다.
왼편에 큰 매표소와 입구가 있어 그동안은 그쪽으로만 들어갔었는데
지난번에 나가면서보니 이 곳이 잔디밭은 더 넓어보여 오늘은 처음부터 명릉으로 들어갔습니다.
연수 또래의 어린 아기들이 놀기에는 폭신하고 넓은 잔디밭을 키큰 숲이 동그랗게 둘러싸고 있는 명릉이 더 좋은 것 같습니다.










연수가 명릉을 지키는 말 석상을 만져봅니다.
마침 눈을 감았을때 사진을 찍어서.. 꼭 말이랑 텔레파시를 주고받는 것 같지요? ^^;;









이 녀석, 말 석상만 만져보고는 휑하니 발길을 돌려 무덤 앞을 떠납니다.
단호한 표정을 보고있자니 정말 말이랑 무슨 얘기라도 한게 아닐까... 싶어집니다.
아이들에게는 어른들이 모르는 신비한 능력-우주와 교감하는-이 있을지도...^^;;;;










명릉앞 돌길에 쪼그리고 앉아 엄마 둘, 아이 셋이 간식을 먹습니다.
사과 반쪽, 배 반쪽, 엄마들은 커피, 아이들은 우유, 보온병에 싸간 따뜻한 물이 이 아침, 소박한 간식의 전부이지만
마음과 몸, 모두 따뜻하고 배불렀습니다.
좋은 숲과 친구들이 함께 있어 행복한 가을입니다.










'가을 커피가 제 맛이네'하는 표정입니다.. 그냥 물을 마시면서 저런 표정이 짓다니. 연기파입니다. ^^;









이번엔 수진이가 인생의 맛을 아는 표정이네요~ㅎㅎ
연수는 잽싸게 컵에 남은 물을 쏟다가 사진에 딱 걸렸습니다. 아고... 저 장난꾸러기! 요즘 아주 못말려요ㅜ









능을 둘러싸고 있는 키큰 소나무숲에서 연수는 나무가지를 주워들고 한참을 놀았습니다.
자연 속에서는 만나는 모든 것은 참 매력적인 장난감들입니다.
그냥 흔들어봐도 좋고, 솔잎들을 파헤치는 것도 재밌습니다.
가지를 짧게 잘라 양쪽 끝에 솔방울을 끼우기라도 하면 더 재밌지요. 솔방울 전화기가 되거든요. ^^










계속 주저앉아 놀려는 것을 그만 잔디밭으로 돌아가자고 부르니 아쉽게 궁둥이를 털고 일어납니다.









손에 꼭 쥔 나무가지는 놓지않고.. 완만하게 경사가 진 숲길을 내려오는 양이 꼭 춤추는 것 같습니다. 
넘어지지 않으려고 몸을 뒤로 젖히고, 턱은 꼭 끌어당기고..
숲에서 놀면서 배우는 자세, 균형감각 같은 것들은 딱딱한 아스팔트 바닥에서 배우는 것들과는 전혀 다를 것 같습니다.
소나무잎이 두텁게 덮힌 잔디밭, 그 아래 깊고 오래된 흙이 주는 푹신한 울림.. 
발을 밟을 때마다 전해지는 그런 감촉들은 나이든 엄마를 왠지 뭉클해지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엄마 배속의 양수를 발로 찰때 아이도 이렇게 푹신하고 그래서 뭉클하진 않았을까요.











아직 하얀 홀씨들을 동그랗게 품고있는 민들레가 있어 반가웠습니다. 
후후~ 불어 날려보내며 '새봄에 노란 꽃으로 만나자' 하며 손흔들어 인사했습니다.









이런 사진을 보고있으면 아이가 어느새 훌쩍 커서 소년이 다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손엔 솔방울을 들고, 한손엔 나무작대기를 다부지게 쥐고.. 요걸 어떻게 갖고 놀까 궁리하는 것 같은 이런 모습을 보면.


 







서오릉 주차장 마당에 서있는 정말 오래된 은행나무.
키도 크고, 둥치도 어마아마하게 굵어서 어른 둘이 감아도 다 안을 수 없습니다.
암수, 부부나무인지.. 참 오래도록 함께 살아와 이제 뿌리는 하나가 되어있을 것 같은 두 그루가 나란히 서서
서오릉을 찾아오는 사람들을 굽어보고 있습니다. 










가을볕을 받으며 한나절 참 잘 놀고 왔습니다.
점심때쯤 낮잠을 자는 녀석들은 집으로 돌아오는 차 속에서부터 살짝살짝 졸기 시작했습니다.
같은 시간을 놀아도, 더 일찍 졸려하는 걸 보니 풀밭에서 뛰어노는 일은 아파트 아스팔트를 걷는 일보다 훨씬 힘이 드는 모양입니다.
더 많은 것들을 받아들이고, 제 속에 담고, 제 몸으로 느낀 터라 그런지도 모르지요.
아름다운 가을이, 오래된 숲의 맑고 그윽한 기운이 아이들 속에 충만하게 담겼기를 빕니다.

이제 씻고, 단 낮잠을 한숨씩 자고 일어나면 아이들은 더 기운좋게 뛰어놀 것입니다.
낮에는 숲에서 신나게 뛰어놀고, 저녁에는 집에서 엄마아빠와 재미나게 책을 읽고, 밤에는 깊이 푹 자는 것.
제가 아이에게 주고 싶은 생활은 사실 이게 다인지도 모르겠어요.
이렇게만 해줄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는 생각을 하며 서오릉을 빠져나왔습니다.










쌍둥이의 오빠인 준태. 잔디밭을 뛰어다니며 신나게 잘 놀았나봅니다~

오래된 숲과 어린 아기들.. 안 어울릴 것같은 이 조합이 막상 만나고 보면 참 잘 어울립니다.
문득 이 오래된 숲은 할아버지 할머니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이들을 넓은 품속에 포근하게 끌어안고 보듬어주시는..
숲에서 아이들은 엄마아빠가 줄 수 있는 것보다 더 큰 지혜와 위안과 즐거움을 얻을 지도 모릅니다.

미야자끼 하야오 감독의 '이웃집 토로로'에 나오는 도토리나무 숲과 큰 나무속에 누워있던 푹신하고 커다란 그 토토로처럼
아이들만 알고있는 어떤 신비하고 다정한 존재들을 선물해줄 지도 모르고요.
서오릉을 자주 찾으면서, 이 오래된 숲에게 작고 어린 우리 아이들의 건강과 미래를 부탁하고 싶은 마음이 커집니다. 

숲.. 아이들을 부탁해!
이 아이들이 당신의 너른 품속에서 마음껏 뛰놀며 자랄 수 있도록.. 숲, 이 아이들을 보살펴줘요.





Posted by 연신내새댁
여행하는 나무들2009. 4. 8. 22:41



서오릉은 새댁네 집에서 차로 10여분 거리에 있습니다.
나름 집에서 가장 가까운 큰 공원(?)인 셈인데
연신내에 둥지를 틀고 두번째 맞는 봄인 올 봄에야 처음 가보게 되었습니다.

아직은 조금 쌀쌀했던 토요일, 생애 첫 봄을 맞고 있는 똑순이랑 바람쐬러 갈 곳을 찾다
가까운 서오릉에 잠깐 가보기로 했지요.






그전에 엄마 병원에 잠시 들렀는데, 요녀석.. 따뜻한 봄볕을 받으며 차안에서 코 잠이 들었습니다.
라디오를 들으며 아들과 둘이 차에서 기다리던 신랑이 살짝 찍어놓았습니다.






새싹 돋아나는 땅위에서 똑순이랑 사진 한 장 찍었습니다.


서오릉.. 오래된 무덤들과 아름다운 전각들이 띄엄띄엄 들어앉은 이 곳은
아주 한적한 흙길 산책로와 소나무숲, 잔디밭이 공간의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오래된 이 공원의 한적함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새로 만든 매끈하고 예쁜 공원들과는 다른 여유로움.. 우선 인구밀도가 낮아서 좋습니다. ^^
그리고 낡은 옷, 낡은 의자처럼 오래된 것들이 주는 편안함과 향수가 있습니다. 
유모차에 앉은 똑순이도 아스팔트 산책로보다 풀과 꽃이 자연스레 돋아난 흙 산책로가 더 맘에 들것 같습니다.   








소나무숲 사이로 난 산책로를 따라 신랑이 천천히 똑순이 유모차를 밀고 갑니다.
모처럼 숲을 만나 신난 새댁은 마음내키는 데로 사진을 찍으며
혼자 카메라를 들고 폴짝폴짝 뛰어다녔습니다. 






키큰 소나무들 사이로 푸른 하늘이 보입니다.
이렇게 키큰 나무들 아래 서본게 얼마만인지... 공기에서도 솔향기가 납니다.







새댁네 집앞에는 '봉산'이라는 낮고 구릉구릉한 산이 있는데 여기 서오릉까지 이어진다고 해요.
동네 어른들은 운동삼아 많이 다니시는 모양입니다.
언젠가 똑순이가 좀 더 크면.. 손잡고 집에서 출발해서 서오릉까지 걸어와봤으면 좋겠습니다.







소나무.. 알림판이 예쁩니다.
'이 땅의 소나무는 점차 줄어들고 있습니다'란 마지막 구절이 눈에 밟힙니다.




"엄마, 까치!" 똑순이가 저쪽 소나무숲을 향해 팔을 치켜들었습니다. 실제로는 "어!" 하고 말했습니다.^^ 






아빠랑 둘이서-^^

서오릉에서는 유난히 나이드신 부모님을 모시고 산책나온 중년(실은 그도 노인에 가까운)의 어르신들이 눈에 많이 띄었습니다.
똑순이랑 아빠가 사진을 찍는 동안 그들 뒤로 나이든 부자 한쌍이 손을 잡고 천천히 지나가셨습니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똑순이랑 아빠도 오늘처럼, 그들처럼 다정하게 손을 잡고 산책해주길 바래봅니다.  








혼자 뭔가 불잡고 일어서길 좋아하는 요즘의 똑순이, 땅을 딛고 서있는걸 한장 찍었습니다.








초록물 오르는 봄땅, 새댁이 찍었구요, 




아직은 살짝 찬 봄바람 속 진달래꽃, 신랑이 찍었습니다.


+

신영복 선생님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 실렸던 '청구회 추억'(단행본으로 나왔지요)이란 글은
서오릉 답청길에서 어린 소년들과 만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40여년전 그 봄에는 버스에서 내려 꽤 오래 걸어야 도착하던 서오릉에
지금은 바로 앞까지 버스가 다니고, 주차장도 바로 곁에 붙어있습니다.
그래도 어른 입장료 1,000원을 내고 그 문에 들어설 때는
아주 오래된 봄놀이터,
누군가는 평생 안고 살아가는 인연과 추억을 만들었던 오래된 비밀 정원에 발들여놓는 것같은 기분도 들었습니다.

10개월된 똑순이와 함께 찾아갔던 서오릉은
바람에 술렁이던 오래된 소나무숲, 똑순이를 안고 걷던 흙길.. 같은 것으로
제게도 소중하게 기억될 것 같습니다.
한낮에는 덥고 햇살도 강했던 어제 오늘, 서오릉의 시원한 소나무 그늘이 무척 그리웠습니다. 

 



Posted by 연신내새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