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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7.10 작은 곳에 깃든 넉넉한 아름다움 - 개심사와 마애삼존불(둘째날) 4
여행하는 나무들2010. 7. 10. 00:46







새벽 일찍 일어나 휴양림 구석구석을 산책했던 연수는 아침을 먹고 차를 타자마자 이른 낮잠에 빠져들었다. 
개심사 아래 주차장에 도착해서 연수가 깨기를 기다리며 김훈의 <자전거여행>을 읽었다.
김훈씨의 여행에세이는 정말로 뜨거운 언어와 깊은 사유를 보여준다. '모국어로 씌여진 가장 아름다운 에세이'라는 소개글이 허언이 아닌 것 같다.

잠에서 깬 연수를 유모차에 태우고 개심사 일주문을 지나 걸어올라간다. 
완만한 경사의 넓은 포장길 주위로 나무가 울창하다. 여름 숲의 초록색 기운은 눈이 부시다.  
개심사로 올라가는 길은 한적하고 차도 한대 지나가지 않았는데 알고보니 절 바로 밑까지 차가 가는 길이 따로 있었다.
하지만 급할 일이 없고, '마음을 씻는다'는 절의 이름을 생각하며 일주문을 지나 천천히 걸어올라가는 것이 여행자에게는 더 좋은 길이리라.

평탄한 포장도로가 끝나는 곳에 '세심동'이라는 작은 돌 표지판이 서있다.
거기서부터는 산 속으로 난 길을 따라 돌과 나무로 만들어놓은 계단을 올라가야한다.
유모차를 밀고 절까지 올라갈 수 있을줄 알았던 우리는 잠시 난감했으나 절과 산을 오가는 이들이 손대지 않으리라 생각하며
유모차를 접어 세심동 입구 산턱에 놓아두기로 했다.

계단을 너무 좋아하는 연수는 반가워라하며 씩씩하게도 그 험한 계단을 거의 다 혼자 올라갔다.
"엄마 머리 위에도 나무, 아빠 머리 위에도 나무, 연수 머리 위에도 나무, 온통 나무네~"
쉬지않고 종알거리는 연수 덕분에 힘든 길을 힘든 줄 모르고 간다.
이어폰으로 라디오나 노래를 들으며 산을 내려오는 분을 뵀는데 우리에게는 연수가 라디오나 다름없다.  

세심동에서 개심사까지 올라가는 길옆에는 골짜기를 따라 작은 냇물이 흘렀는데 그 소리가 마음을 시원하게 해주었다.
흐르는 물소리에 귀를 씻고, 몸 속에 깃든 정신까지 씻으며 올라오라는 길이었다. 









개심사 첫머리에 서있는 종루.
구부러진 나무들을 그대로 쓴 기둥들이 아름다웠다.
이 종이 울리면 상왕산에 사는 나무들이 듣고 새들이 들을 것이었다.
자연속에 묻혀 그대로 하나의 자연인 이 절에서는 사람과 건물도 모두 자연에 거슬리지 않는 모양을 하고 있는듯했다.







해우소로 가는 길가 나무밑에 내려와 있던 작은 새.
날지 않고 이쪽 저쪽으로 걸어다니기만 해서 아직 날지 못하는 어린 새가 둥지에서 떨어졌나하고 나무가지위를 아무리 살펴봐도 둥지는 보이지 않았다.
연수가 아기새에게 바싹 다가가자 아기새는 호르르 하고 살짝 날아서 담장 밑으로 도망갔다. 









해우소 앞에는 아주 큰 오동나무가 서있었다. 
"딸을 낳으면 마당에 오동나무를 심어 두었다가 딸이 시집갈때 장롱짜서 준다더니 저만한 나무라면 장롱 짤만 하겠다"고 했더니
남편은 "딸을 낳으려면 마당있는 집이 있어야겠네"한다. 
아비들은 어딜 가든 집장만할 걱정, 처자식 먹이고 재울 걱정을 놓지못한다.
한손에는 개심사 주차장 앞에서 산 살구를, 한 손에는 떨어진 오동잎을 들고 뭘 저리 보고 있을까 연수.









천왕문 기둥의 아름다움.
자연에는 직선이 드물고 모두 제가끔의 부드러운 곡선을 만들며 산다.
그 곡선 하나만 살려 써도 이렇게 눈물겹게 아름다울 수 있다.









개심사에서 남편이 제일 좋아한 건물.
오래된 나무의 색과 결이 참으로 곱던 작은 집.
종무원 겸 기념품 판매소로 쓰는 널찍한 방이 있는 이 건물의 나무 기둥들에는 무수히 많은 작은 구멍들이 나있고, 그 구멍마다 벌들이 사는 것 같았다.
방은 사람이, 기둥은 벌이 나눠쓰는 집이다.  









엄마아빠는 절이 예쁘다고 신이 났는데 
여행 첫날의 노독이 풀리지 않았는지 날이 더워서인지 연수는 시무룩했다.
감로수를 발견하고서야 겨우 조금 활기를 찾아서 바가지로 물을 떠먹고 찰랑거리는 대야속의 물에 손을 담그기도 하며 놀았다.

연수가 기운을 차린건 명부전을 구경하던 중에 기도를 마치고 나오시던 스님께 떡 두덩이를 받아서 먹으면서부터였다.
더운날 산길을 걸어올라오느라 기운도 빠졌고, 이전에 절집에 별로 가본적이 없는 연수에게는 이 공간이 영 낯설었던 모양이다. 엄마에게 딱 붙어 떨어지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다 제가 좋아하는 물을 먹고 떡도 받아 먹고 나서야 절이 푸근하게 다가오는 것 같았다.








 
점심때가 다 되어 절에 오면서 나는 내심 절밥을 먹을 생각에 마음이 들떴다.
큰 절에서 가끔 절밥을 먹어본 나는 절밥으로 나오는 여러 나물과 절에서 직접 담근 장을 넣고 슥슥 비벼먹는 그 밥이 참 맛있고 좋았다. 
그래서 은근히 개심사에서도 절밥을 먹어볼 수 있을까... 하고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원래 누구에게 부탁하는 것을 잘 못하고 쑥스러운 것을 못 참는 남편은 그냥 내려가서 음식점에서 사먹었으면.. 하는 눈치였다. 
알찬 '맛집 여행'을 꿈꾸면서 출발한 첫 날부터 휴양림에 틀어박혀 나가고 싶어하지 않는 마누라때문에 저녁은 카레밥, 아침은 볶음밥을 먹고 섭섭해했던 차에 점심은 절밥을 먹자고 하니 애써 모은 서산의 맛집 정보들이 무색하기도 했을 것이다.     

남편의 이런 심정을 모르고 마음씨 고우신 보살님께서 절집 마당을 서성거리는 우리를 보시더니 
"조금만 기다리세요. 불공 끝나고 나면 같이 점심공양 하고 가세요~" 하셨다. 나는 쾌재를 불렀다. 
그 날은 마침 우란분절(백중) 49재 기도를 드리는 첫 날이어서 작은 절 곳곳에 찾아온 사람들이 많았다. 
대웅전 앞마당의 바로 오른편에 붙은 불전 안에 여러개의 식탁을 붙여놓고 점심 공양상이 차려져 있었다. 
우리는 나물밥을 맛있게 먹고 49재를 시작하느라 장만했을 떡과 과일도 아주 푸짐하게 얻어먹었다.
연수는 아주 신이 나서 배불리 밥을 먹고는 불전 바닥에 벌렁 드러누워 천정에 달아놓은 꽃등들을 쳐다보았다.
"빨간 꽃도 있고 노란 꽃도 있고 주황색 꽃도 있고..."   


 






밥을 다 먹고 불전 마루에 옹기종기 모여앉은 사람들.
연수 또래의 아이들도 두어명 있어서 함께 절집 마당을 뛰어다니며 놀았다.
수수하고 아름다운 작은 화단들과 석탑이 있는 작은 마당을 가진 이 아름다운 절은 1500년 전부터 이 자리에 있었다. 
나중에 남편의 트위터로 알려주신 분께 들으니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의 저자인 유홍준 교수가 꼽은 남한 5대 사찰에 개심사가 들어있다 한다.
개심사가 5대 사찰에 드는 절인줄은 몰랐으나 예전에 좋아하는 지인으로부터 '개심사에 꼭 한번 가보라'고 들었던 것이 인연이 되어서 오늘 우리 세식구도 이 절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이 고마웠다.
개심사는 언제고 다시 가보고 싶은 절이다.  
절을 둘러싸고 쌍벚꽃이 핀다는 봄에는 안그래도 산속에 들어앉은 새둥지같은 이 작은 절은 얼마나 더 아름다울까. 









'어부바'하고 엄마 등을 찾는 연수를 업을 때 나는 가끔 내가 지고가야할 인생의 무게에 대해 생각한다.
전생에 내 부모로 나를 키워주었던 이가 이생에는 자식으로 태어난다는 말도 생각한다.
전생에서는 연수가 나를 이렇게 업어던 것일까..
개심사 앞 연못에는 외나무다리가 있었다. 그 다리를 건너보려고 연수는 엄마 등에서 미끄러지듯 뛰어내렸다.









개심사에서 내려오는 길에는 마음이 아주 개운하지는 않았다.
너무 많이 받았는데 나는 아무 값도 치르지 않고 온 것 같았기 때문이다.
떡도 받고 밥도 얻어먹고 마음의 감동까지 깊이 받았는데 기와 불사 한장, 공양미 한 자루 내지 않고 내려온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다음에 다시 오면 오늘 지고가는 마음의 빚을 꼭 갚아드려야지... 
상왕산 개심사. 예서체로 쓴 듯한 현판의 부드러운 글씨도 참 아름다웠다.
세심동 입구에서 유모차는 우리를 놓아둔 모양 그대로 기다리고 있었다.
  







용현자연휴양림으로 올라가는 길에 유명한 '서산마애삼존불'이 있다.
차에서 잠시 내려 보고가기로 했다.
가파른 계단을 10여분쯤 올라가야하는데 연수는 역시나 씩씩하게도 계단을 혼자 올라간다.

바위에 새겨진 부처님의 모습이 뭉클했다.
'백제의 미소'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마애삼존불의 옷자락과 동글동글한 발가락의 부드러운 곡선을 바라보는데 갑자기 뭉클했다.
얼마나 오랜 세월을 견뎌온 조각인가.
백제시절부터 이곳에 서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맞고 그들에게 밝은 미소를 보여주었을까.
'큰바위얼굴'이란 미국소설처럼 사람은 자기가 바라보고 사는 아름다운 것들을 닮아간다.
산을 바라보고 사는 사람은 산을 닮고, 바다를 바라보는 사람은 바다를 닮고 
마애삼존불의 미소를 바라보면서 이 땅에 살아온 사람들은 삼존불의 미소를 닮아갔을 것이다.
삼존불을 보러 오기를 잘했다. 
삼존불을 보았으니 서산에 온 보람이 있다.
서산에 개심사가 있고 삼존불이 있다고 생각하면 서울에서도 나는 마음이 따뜻해지고 서산이 다시 그리울 것 같았다.

내가 감동받았다고 했더니 남편은 삼존불이 생각보다 작다며 별로 아름다운줄 모르겠다고 했다.
여기저기에 워낙 크게 광고되어 있다보니 조각이 아주 클거라고 생각했다가 생각보다 작은 크기에 실망한 눈치였다.
하지만 나는 삼존불이 작은 것이 더 좋았다.
자연이 만든 것은 큰 것도 대체로 조화롭고 아름답지만 인간이 만든 것은 큰 것들은 왠지 위압적이고 아름답기가 어려운 것 같다.
사람 몸보다 조금 큰 크기로 돌에 새겨진 세 부처님 앞에서 사람들은 친구를 찾아온 것 같고, 스승을 찾아온 것같이 거기 기대서 위로받고 감동받지 않았을까.
얼굴을 마주 볼 수 없는 큰 부처님 석상들에서는 느낄 수없는 인간미가 삼존불에는 있는 것 같았다.
작은 절집 마당에서 절을 찾은 어른과 아이들이 모두 둘러앉아 밥을 먹고 얘기하고 뛰어놀면서 잠깐이라도 부처님 품안에서 함께 쉬는 가족들처럼 느껴졌던 것처럼
작은 절, 작은 불상에 더 깊은 넉넉함과 따뜻함이 깃드는 것 같았다.




  





연수와 아빠.
함께 여행하는 것은 24시간을 함께 보내는 일이다.
엄마와 연수야 태어나서 지금까지 하루 24시간, 730일을 늘상 붙어 지내왔지만 아빠도 그 시간을 함께 보낸다는 것은 특별한 일이다.
연수는 자기가 좋아하고 그리워하지만 자주 같이 놀 수 없는 아빠를 조금 미워하는 듯도 하다.
흔히 말하는 애증의 관계가 만 2살을 꽉 채운 이 아동에게도 벌써 생겨난걸까.
아빠한테 뽀뽀도 안 하겠다고 하고, 아빠가 뭔가 해주려하면 '엄마가 해줘~!'하면서 도망치는 연수가 이번 여행을 통해 아빠와 더 많이 친해지기를 나는 기대하고 있다. 아마 남편도 그러고 싶을 것이다.
두 사람 사진을 찍어놓고 보니 어쩜 그렇게 유적지에 나들이온 아빠와 아들 같은지... 
우리 어린 시절에 아빠랑 같이 찍은 사진들을 그대로 보는 것 같았다. 아빠들은 검은 선글라스를 쓴다는 것도 똑같다.


 






나는 또 어쩜 이렇게 아이 데리고 유적지 나들이온 엄마 같은지.
옛날 엄마가 있던 자리에 내가 들어가 앉은 것처럼 아직도 문득문득 이 자리가 낯설다.

마애삼존불을 보고 돌아와 연수는 또 한번 용현계곡에서 신나게 물놀이를 했고, 
해질무렵 아빠가 찾아낸 맛집 '영성각'으로 가는 차안에서 이른 저녁잠이 들고 말았다.
우리는 잠든 연수를 유모차에 태워 옆에 눕혀놓고 짬뽕과 간짜장을 나누어 먹었다. 
연수가 깨있었으면 짜장면 진짜 잘 먹었을텐데.. 하고 아쉬워하며.
해미읍성에서 젤로 유명하다는 짜장면과 짬뽕은 아주 맛있었다.
여행 둘째날이 그렇게 저물었다.





Posted by 연신내새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