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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08.12.25 두 생일 이야기 16
umma! 자란다2009. 12. 7. 13:39









어제는 내 생일이었다.
전날 밤, 똑순이가 잠든 후에 나는 잠깐 고민하다가 청리할머니께서 보내주신 도토리가루 봉지를 열었다.

청리할머니는 남편의 외할머니, 그러니 우리 시어머님의 어머니시다. 
다른 조부모님께서 다 돌아가신터라 시외할머니가 내게는 시댁의 제일 큰 어른이시다. 할머니는 시댁이 있는 상주 시내에서 좀 떨어져있는 청리라는 높은 산골마을에서 혼자 사신다. 친정이 가까운 우리 시어머님이 그래도 자주 뵈러 다니시지만, 시골집에 혼자 계신 할머님을 생각하면 먼 도시의 자손들은 마음 한구석에 걱정이 일곤한다.
 
그래도 할머님은 씩씩하시다.
팔십노구에도 할머니는 가을내 부지런히 뒷산을 다니시며 도토리를 주워다 도토리가루를 만드셨다. 도토리가루 만드는 일은 쉽지 않다. 주워온 도토리들을 멍석위에 펼쳐놓고 햇살과 바람에 말리면서 썩은 놈을 골라내기를 여러날 해야하고, 그 뒤에는 망치나 돌로 두드려 딱딱한 도토리 껍질을 깨고 속살만 모아야한다. 추석에 모인 자식들과 손주들이 모두 달려들어 도와도 끝을 보기 쉽지않은, 그래서 자식들이 도시로 돌아간 후 혼자 남은 할머니가 또 여러날 밤 뒤적이며 고르고 까고 하신 후에야  겨우 전반부가 끝나는 일이다. 후반부에는 방앗간에 가서 빻아온 도토리가루를 물에 섞어 고운 면보로 거르고, 그 뽀얀 국물을 다시 여러번 물을 갈아가며 앙금을 잘 가라앉혀야 한다. 그 앙금을 펴 말리는 수고는 또 얼마인지.. 이 모든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보드랍고 고운 도토리가루 한 자루가 완성되는 것이다.

힘드니 이제 그만 하시라고 해도, 본인도 힘들어 이젠 못하겠다.. 하시면서도 가을이 되고 뒷산에 도토리가 떨어지면 또 그게 그렇게 주워주고 싶으시다는 할머니는 올해도 어김없이 도토리 가루를 만드셨다. 손에 힘이 남아있는 날까지는 아마 평생토록 해오신 이 일들을 멈추지 않으시리라... 할머니는 도토리가루를 잘 갈무리해두셨다가 가족보다 자주 보고 큰일 작은일 의지하며 사는 이웃들을 불러 따뜻한 도토리묵국을 한번 끓여 먹이기도 하고, 도시에 사는 자식들이 집에 오면 또 큰 가마솥을 열어 할머니품같이 푸근한 도토리묵을 쑤어먹이시기도 하고, 이따끔 생각나는 귀한 사람에게 한 봉지 꽁꽁 싸서 선물로 주신다.

이렇게 귀한 도토리가루를 할머니께서 서울 우리집으로 두 봉지 부쳐주셨다.
손부의 친정, 그러니 강릉 우리집에 보내시는 것이다. 도토리묵을 좋아하시는 친정 부모님은 작년에도 할머니가 주신 도토리가루로 맛있게 묵을 쒀드시고, 올해 연수 돌잔치때 만난 할머니께 내복 한벌을 사드리며 감사인사를 하셨었다. 

생일 전날밤, 9시가 넘은 시각에 이 봉지를 연 것은 내일 아침상에 놓을 도토리묵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며칠전 엄마가 전화로 '그리 어렵지 않으니 너도 한번 해보라'며 만드는 법을 알려주셔서 일간 한번 해봐야지 하고 있었지만, 내 생일에 먹을 생각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연수는 잠들고, 남편은 오랫만에 모임에 가서 회포를 풀고 있는 그 시간에 평소대로 내일 아침에는 뭘 먹나 생각하다가 미역국과 함께 '도토리묵'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던 것이다. 
내가 손수 차리긴 하지만 그래도 내 생일상이 아닌가.   

저녁 먹기 전에 엄마께 받은 전화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엄마는 "내일이 네 생일인데 엄마가 찰밥도 못 해줘서 미안하다"며 미리 축하전화를 하셨다. 지난달, '네 생일이 마침 주말이니 집에 와서 생일밥 먹고 가지'하는 엄마 말씀에 그러마고 했다가 일주일전쯤 친정식구들이 신종플루라는 진단을 받는 바람에 그 계획이 취소됐었다. 다행히 식구들은 그리 심하게 앓지않고 주말 전에 모두 잘 나으셨지만 엄마는 어린 연수가 혹시 옮기라도 할까봐 진단을 받자마자 우리에게 오지 말라고 전화를 하셨다. 그런 사정으로 못 먹이게된 막내딸의 '생일밥'이 엄마는 마음에 걸리셨던 것이다.

이제는 다큰 딸을 아직도 더 챙겨주지 못해 안타까워하시는 엄마 마음이 감사해서 코끝이 살짝 찡해왔다. 부러 더 밝은 목소리로 '아유~ 괜찮아. 내가 엄마한테 맛있는거 해드려야하는 날인데 못해드려서 죄송해요. 다음에 가서 맛있는거 꼭 해드릴께! 이 추운날, 나 낳느라고 고생많았지? 고마워, 엄마~~'하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런 전화를 했던 탓일까... 나를 위해, 그리고 멀리 있는 엄마께 마음으로나마 상을 차리는 마음으로 도토리묵을 조용히 만들었다.     









도토리묵은 도토리가루 푼 물을 천천히, 아주 오래 끓여서 만든다.
바닥까지 힘을 줘서 계속 젓지 않으면 금세 눌러붙기 때문에 팔이 좀 아프더라도 천천히 저어줘야한다. 
도토리묵을 저으면서 나는 엄마를 생각했다. 추운 날, 가을 농사 마무리가 미처 끝나지 못했었나... 쌀가마니를 담는 일을 저녁까지 거든 만삭의 엄마는 한밤중에 자다 일어나 진통을 하고는 새벽 동틀 무렵 나를 낳으셨다, 따뜻한 안방에서. 나를 낳고 나니 아침해가 막 뜨고 있었다고 했다. 세살, 두살이던 언니와 오빠가 내 울음소리에 깨서 어린 동생을 보러 왔겠지..   

내가 나를 존대하는 것은 나를 낳아주신 어머니를 존대하는 일이리라.. 지극한 정성으로 나를 키워주신 우리 부모님을 존대하는 일이리라. 그러니 나는 어떤 경우에도, 나를 귀하게 여기고 소중하게 돌봐야지. 묵을 만드는 동안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이것은 내가 엄마가 된 뒤 그전보다 훨씬 깊게 느끼고 바라는 것이다. 연수가 언제, 어떤 경우에서도 스스로를 존중하고, 귀하게 생각해주었으면.. 그래서 스스로를 돌보고 아꼈으면 좋겠다고 나는 바랬다.










아침에는 조개살을 넣고 미역국을 끓이고 지난밤에 만든 도토리묵을 썰어 올려놓았다.
시외할머님의 정성이 가득한 도토리묵 한 접시, 그리고 왠지 엄마 냄새가 나는것 같은 미역국만으로 차린 단촐한 생일상.  
생일에 왜 미역국을 먹는지 그제야 나는 알것 같았다. 그건 나를 낳고 미역국을 드셨을 그 분, 어머니를 생각하라는 뜻일 것이다. 나를 낳고 그 아침에 우리 엄마도 달게 미역국을 드셨겠지.. 밤새 진통하셨으니 입은 얼마나 깔깔하셨을까.. 그래도 아기에게 젖을 물리기위해, 기운을 차리기위해 엄마는 할머니가 끓인 미역국에 밥을 꾹꾹 말아 드셨으리라.
나도 그랬다. 연수를 낳고 얼마나 많이 미역국을 먹었던가. 대접으로 며칠, 아니 몇달을 계속 먹었다.
그러니 미역국은 어머니의 국이다. 뜨거운 '어머니의 국'에 밥을 말아먹으며 나는 마음으로 멀리 있는 엄마께 감사의 인사를 드렸다. 더없이 다정하고 엄한 사랑으로 나를 키워주셨던 아버지께도 감사와 사랑을 보냈다.









요 콩알만한 녀석이 엄마의 생일 밥상을 함께 지켜 주었다.
거나하게 술에 취해 새벽에야 들어온 남편은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아침이었다. (마누라 생일에 미역국도 끓여주지 않고, 심지어 생일케잌도 하나 사들지않고 덜렁덜렁 들어온 우리 신랑은 이 시대 진정으로 '간큰 남자'가 아닐까 싶다..--+)
아침상은 너무도 소박하였으나 점심에는 시이모님께서 만들어주신 잡채를 먹으며 많은 시댁 식구들께 축하인사를 받았고 저녁엔 오리고기도 얻어먹었으니 생일은 거하게 잘 치르긴했다.
멀리서 시어머님은 축하전화도 해주시고, 맛있는 거 사먹으라고 용돈도 부쳐주셨다. 남편은 물론 시동생들께도 형수의 생일을 잘 챙겨주라고 옆구리를 쿡쿡~! 찔러주시는 어머님을 보며 역시..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를 낳고 기른 어머니는 아이의 탄생과 성장을 더없이 귀하게 생각하고 아낌없이 축하해주시고픈 것이다.   

건강하게 잘 살아야겠다. 
그것이 제일 큰 효도일 것이므로.. 그리고 나를 아껴주고 축하해준 모든 분들께 그 고마움을 갚는 길일 것이므로. 
똑순엄마 우가짜짜, 서른셋에도 화이팅이다~~!!!! ^^











  
Posted by 연신내새댁
신혼일기2008. 12. 25. 12:14


조용한 크리스마스 아침입니다.
어제 받은 지인의 문자메세지처럼 '가난한 사람, 병든 사람, 아픈 사람, 죄많은 사람 모두를 위해 오신 예수님'의 생일날,
새댁네도 아침 일찍 작은 촛불 하나 밝혔습니다.
크리스마스는 새댁과 신랑의 결혼기념일이거든요-^^




+음.. 초가 하나~ 똑순이의 탄생비밀(?)이 공개되는 순간이네요~ 아흠... 부끄럽네요..^^;;;;


얼마전엔 새댁과 신랑의 서른한살 생일도 있었습니다.(얼른 딴얘기.. 12월은 기념일이 무지 많습니다~~ㅎ)

올해 생일은 똑순이와 함께 맞는 첫 생일입니다.
서른해를 꽉 채워 살고나니.. 
제짝을 찾아 결혼을 하고 저희를 닮은 아이 하나를 낳았네요. 
무엇 하나 크게 이룬것 없는 새댁의 평범한 서른해 인생에 아이는 제일 뿌듯하고 감사한 성취인 것 같습니다.

생일날 아침, 그녀석을 앞에 앉혀놓고 신랑이 끓여준(무려 2시간이나 걸린.. 완전 정성스러운!^^) 미역국을 먹으니
기억나진 않지만 세상을 첨 만난 30년전 그날 다음으로 가장 뿌듯한 생일 같았습니다. ^^



  
부엌에서 신랑이 미역국 끓인다고 부산한데 전화가 한통 오더니 꽃바구니 하나가 배달돼 왔습니다.
신랑이 보냈냐구요? 아니요~~^.^
새댁의 블로그를 자주 봐주신다는 신랑의 지인께서 
똑순이 키우며 낑낑 앙앙대는 새댁 힘내라고 보내주신 거예요.
아... 어찌나 감사한지..
화사하게 핀 꽃송이들을 바라보니 한겨울이 아니라 어느 화창한 5월의 꽃밭에 서있는듯 황홀했습니다.





꽃들 사이에 손으로 쓴 따뜻한 편지가 들어있었습니다.

"똑순이 낳고.. 똑순이가 주는 기쁨만큼 아마 같은 깊이로
욱이씨 마음 한 구석 내놓을 수 없는 깊이의 무언가(?) 있으리라 짐작해봐요.(내가 그랬으니까..)
... 꽃보고 힘내요. 앞으로 똑순이가 주는 기쁨이 더 커질꺼예요."

편지의 마지막 구절은 "화분으로 보낼까.. 고민하다가 기분 화~~~악 피시라고 꽃바구니 보냅니다"입니다.
꽃을 보내주신 선배님도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신데
역시... 여자 마음은 여자가, 엄마 마음은 엄마가 아시나봐요~^^
덕분에 새댁 기분이 정말 화~~~~악 피어서
그 꽃이 다 시든 뒤에도 마음에는 밝은 꽃물이 오래오래 남았답니다.
뒤늦게 블로그로 감사인사 드립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엄마가 되고 맞은 첫 생일, 아직은 부족하기만한 초보엄마지만..
세상의 모든 엄마들이 그럴 것 같은..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새로운 사랑을 느낍니다.
세상에 이런 감정이 있구나.. 처음 경험해보는 사랑입니다.
고통과 환희, 절망과 기쁨이 교차하는 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다보면
여지껏 보지못했던 참 아름다운 그림 하나 내 인생에 그리게 되겠구나.. 생각해봅니다.

*

삼일 뒤 신랑 생일(새댁은 동갑인 신랑보다 무려 '사흘'이나 먼저 태어났다는 사실~! "누나라고 불러~~~줘.."^^;)에는
새댁이 비밀리에 '약밥 케익'을 준비했습니다.
앗. 그런데 그만 초를 깜빡 했군요..(빵집에 가서 얻어오려했는데ㅠㅠ) 똑순이 백일떡에 올렸던 초가 있어 그걸로 대신했습니다.
세 식구가 같이 불어 촛불끄는 기분이 참 좋습니다.^^
아빠가 되고 맞는 첫 생일.. 신랑은 기분이 어땠을까요?




+ 여러 요리 블로거님들의 레시피를 참고하야.. 첨 도전해본 새댁의 '전기밥솥 약밥'은 무척 달달하고 맛있다는 호평을 받았습니다~~ㅎ(회사분들과 나눠드시라고 신랑 도시락으로도 싸보냈어요~) 조만간 따로 약밥 포스팅을 함 할까봅니다..^^


새댁과 신랑, 고맙게도 여러분께 생일 선물을 받았는데..
역시 똑순이와 함께 맞는 첫 생일이다 보니
우리 두사람 선물 + 똑순이 선물이 많았습니다. 짜식~ 경사났습니다^^ (똑순이 덕분에 저희가 경사난것 같기도...)





선물받은 책들을 보니 마음이 든든하고 읽기도 전부터 배가 부릅니다.^^
이 겨울, 가까이 벗삼으면 되겠습니다.

아, 새댁과 신랑이 서로에게 선물한 이 책들도 있습니다.
함께 읽고픈 책들로 골랐습니다. 좋은 책 같이 읽을 수 있는 친구여서 더 좋은 우리 신랑입니다.

*

두 생일 즈음에 멀리 사는 친구가 생일축하해줄겸 새댁 응원도 해줄겸
모처럼의 휴일을 통째로 내서 신랑과 아이와 함께 새댁네에 놀러왔습니다.
넘 반갑고 고마웠는데 오고가는 길이 멀어 더 오래 앉아 놀다가지 못해 마음 짠합니다.
똑순이 입히라고 자기 아이입던 예쁜 옷도 여러벌 싸들고 온 그 친구가 준 선물은
'언제까지나 너를 사랑해'라는 제목의 그림책입니다.

너를 사랑해 언제까지나
너를 사랑해 어떤 일이 닥쳐도
내가 살아 있는 한
너는 늘 나의 귀여운 아기

친구가 돌아간뒤 이 노래가 반복되는 얇은 그림책 한권을 금세 다 읽고
새댁, 참 많이 울었답니다. 
똑순이는 그런 엄마를 의아하게 바라보며 엄마앞에서 뒹굴뒹굴 놀았지요.

그 날 밤에는 눈이 왔습니다. 
어릴때도 제 생일에는 눈오는 날이 많았습니다.
강원도, 푹푹 빠지는 눈속을 걸어다니며 친구들과 함께 놀던 어린 시절의 생일날도 떠오르고
엄마가 끓여주시던 미역국, 찰밥도 생각납니다.
철들고 난 이후로 엄마 아빠가 제일 보고싶었던 생일이었습니다.





*
 
아.. 결혼기념일인 오늘은 어떻게 보내야할까요?
신랑은 분위기있고 맛있는 집에서 점심을 먹자며 며칠전부터 알아보고 들떠했으나
날이 날인지라(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인파로 인해ㅠ) 예약이 벌써벌써~ 다 찼다네요.
새댁네 알뜰살뜰 살림아끼라고 여러분이 도와주십니다.^^

하여.. 새댁은 이제 나가 소박한 동네식당에서 밥먹고.. 저녁엔 신랑이랑 서로 발이나 씻겨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일년동안 내곁을, 우리곁을 든든히 지켜줘서 정말 고맙다고.. 당신을 만나 참 행복하다고.. 
앞으로도 서로 많이 아껴주고 사랑하며 살자고.





쓰고보니 살짝 민망한 포스팅이 되었네요.^^;
사랑과 용서가 넘쳐야할 성탄절이니.. 여러 이웃분의 양해를 구합니다. ㅎ

날은 춥고.. 세상과 지갑도 춥습니다만.. 마음만은 모두 따뜻한 연말보내시길 빕니다. 
똑순이와 새댁은 잠시 눈많이 오는 새댁의 고향에 다녀온답니다.
새해에 반가운 얼굴로 다시 뵐께요~!^^ 







Posted by 연신내새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