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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11.13 오늘 하루, 연수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2




1. 너무 추워서


늘 아침에 제일 먼저 일어나 베란다에 나가보는 연수가 내게 달려와 소리쳤다.


연수: 엄마 엄마, 베란다에 벌레가 죽어있어!
엄마: 그래...? 벌레가 죽어있어?
연수: 응. 벌레가 죽어있었어... 너무 추워서 죽었나봐.
엄마: (나름 과학적인 추론에 깜짝 놀라서) 그래.. 그렇구나. 밤에는 베란다가 많이 춥지...
연수: 낮에는?
엄마: (과연 이 녀석이 뭘 알고 있는건가 헷갈려하며) 낮에는 햇빛이 비치니까 밤보다는 덜 춥겠지..
연수: 엄마, 벌레 밟아도 될까?
엄마: 읔.. 너무 가엾다.. 그냥 화분에 넣어주자. 그럼 흙이 될꺼야.


말은 그렇게 했지만 실은 나도 쌀을 씻다 쌀벌레가 나오면 여사로 죽이고, 우리집 찬장에 알을 깠는지 요즘 너무 많이 집안에 출현하는 조그만 나방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퇴치할까.. 고민하고 있다. 
아이에게 벌레를 가여워하는 마음을 키워주고 싶어하기 전에 나부터 우리집에 함께 살고있는 작은 생명들과 어떻게 화해할지, 어떻게 자연스럽게 적절히 공존할지 고민해야할 것 같다.




2. 까만 비가 내렸나봐


아침 벌레사건으로 베란다에 나가게 된 내가 창문을 열어 밖을 내다보다 말했다.

엄마: 간밤에 비가 오더니 길이 아직 젖었네...
연수: 어떤 자리?
엄마: 밖에 길 말이야.. 어제밤에 비가 많이 왔잖아.. 
연수: 천둥 번개도 치고!
엄마: (이렇게 맞장구를 쳐주니 대화가 한결 즐겁다. 어제 저녁 천둥번개칠때 둘이서 그 얘길 여러번 했던터라 기억하고 있었나보다.) 맞아~, 천둥번개도 많이 치고 비가 많이 왔지~. 그래서 길이 까맣게 젖어있네...
연수: 까만 비가 내렸나봐....
엄마: ㅎㅎㅎㅎ 그래, 그랬을지도 몰라..^^


제 나름의 추측으로 제 나름의 논리를 부단히 만들어가는 어린 녀석이 귀엽고 대견하다.
비록 그런 논리로 엄마 의견보다는 제 의견을 고집할 떄는 화가 나더라도.. 다시 생각하면 우스워서 잔뜩 힘줘 구기고 있던 마음과 얼굴을 펴고, 웃고 만다.




3. 째째하게 굴지 마라


낮잠자고 일어나 간식을 먹는데 뜬금없이 연수가 이런 말을 중얼거렸다. 노래처럼 흥얼거리며..

연수: 째째하게 굴지마라~~

나는 깜짝 놀랐다. 내가 언제 연수 앞에서 '사노라면'을 부른 적이 있었나..?
어쨌든 어린 아들의 입에서 나오는 저 가사는 신기하고, 뜨끔했다.

엄마: 째째하게 굴지말고 가슴을 쫙 펴라~ 내일은 해가 뜬다~ 내일은 해가 뜬다. ^^ 연수가 이 노래 불렀어?
연수: .... (잠시 생각하다가) '째째하게 굴지마라'란 노래가 '꼴 따먹기' 책에 나오더라~.

아! 그제서야 나는 알았다. 저 대사는 국시꼬랭이 그림책 중 하나인 '꼴 따먹기'에서 친구들이 주인공 병준이를 놀리느라고 부르는 노래 중에 한 귀절이었다는걸.

엄마: 아, 그랬구나. 그래, 거기 그런 말이 나왔지~^^;

연수는 제가 좋아하는 책의 주인공 이름인 '최병준'도 여러차례 불렀다. 나는 나중에 네가 자라서 같은 이름의 친구를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고 말해주었다. '네 이름을 세 살때부터 많이 불렀어~'라고 말해주는 상상을 하며 같이 웃었다.
어쨌든 나는 연수 덕분에 오랫만에 '사노라면'을 불러보고, 새삼 째째하게 살지 말고 가슴을 쭉 펴자고 스스로의 어깨를 툭툭 쳐주게 되었다.
아이의 입을 통해 듣는 우연한 말들에 가슴이 찡할 때가 있다.
다른 좋은 말도 많이 들려줘야겠다.









 






Posted by 연신내새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