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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2.13 참 예쁘다 13
umma! 자란다2012. 2. 13. 22:27









다섯살 연수, 참 예쁘다. 

지금 이 아이가 얼마나 예쁜지, 얼마나 고운 몸과 마음의 시절을 살아내고 있는지 나는 너무 자주 잊어버리는 것 같다.

엄마 손끝을 떠나지않는 8개월 동생에 가려 
상상과 말과 호기심과 의욕이 쉼없이 피어나고있는 다섯살 형아는 엄마 눈에 차분히 담기기 어렵다. 

연호가 잠들고나서야 나는 비로소 조용히 연수를 바라보게 된다.
그러면 거기에 너무 예쁜 내 첫아이가 있다. 
장난이 심하다고, 엄마 말을 잘 안 듣는다고, 이거 해달라 저거 해달라 끝도 없이 조른다고, 이제는 너무도 단단해진 뼈마디로 엄마를 누르고 매달린다고 야단치고 화내기 바빴던 시간을 뒤로 하고
아무 바쁜 일없이, 매달리는 젖먹이 없이 
연수만 바라보고 연수가 하자는 놀이에 장단을 맞춰주고 있으면
그제야 내 큰아이가 얼마나 많이 자랐고 얼마나 예쁜지가 보인다.
고맙고 대견해서 마음이 뭉클해진다.

혼자서 밥을 떠먹고 물컵의 물을 잘 마시고 내려놓는 것을 보면서 
연호가 저렇게 할 수 있을만큼 크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지나야할까.. 새삼 생각하기도 하고,
엄마가 별뜻없이 건넨 말들에 속깊고 야문 대답을 해주어 깜짝 놀라기도 한다.
 










오늘은 저녁에 연호안고 창밖을 보다가 '연수야, 별님 떴다!'했더니 '달님은?' 하고 물었다.
'달님은 안보이는데...'했더니 '그럼 아빠는, 달님도 안 떴는데 (어두워서) 아빠는 어떻게 오시나~'하고 걱정스레 종알거리던 연수.

얼마전부턴 '이건 비밀인데...'하면서 너무도 간지럽게 속살거리는 귀속말도 종종 한다.
그 얘기들은 그때그때 지어내는 것 같은데 무슨 말을 할까.. 궁리하느라 천천히 얘기를 이어가는 모습이 참 우습고 귀엽다.
'이건 비밀인데... 이렇게 이불속에서 뒹굴거리면서 놀면... 그러면 잠을 진짜 많이 자게 돼..' 이런 식이다. ㅎㅎ

일요일 아침, 연호 재우러 들어가면서 아빠에게 아직 제 아침밥을 다 안먹고 노는 연수가 밥 다 먹고나면 간식을 주라고 부탁했다. 방에 누워 연호 젖물리면서 가만히 들어보니 밖에서 아빠와 연수가 간식을 놓고 한참 실갱이를 주고받았다.
'사과 먹을꺼야!' '밥부터 먹어야지~' '사과!' '밥!' '사과!!' '밥!!'
이러다가 연수가 냉큼 사과를 집어 입에 넣은 모양이었다. 아빠가 '야, 너~~!'하니까 연수 얼른 하던 말.
'아빠, 나 사과먹은거 엄마한테 말하면 안돼..' 제법 목소리까지 낮추고 은밀하게 부탁하는 연수 말을 듣고 있자니 누워서 어찌나 웃음이 나던지. ㅋㅋ

이런 일도 있었다.
숫자 따라쓰기를 재미있어하는 연수가 '13'이란 숫자를 아주 그럴싸하게 잘 그렸길래 내가 칭찬을 했다.
'와~ 연수가 13을 정말 잘 썼네'
그랬더니 이녀석이 글씨책에서 고개를 들고 나를 바라보며 '엄마를 좋아해서 그런거지' 했다.
무슨 말인가 잠깐 못알아듣고 '엄마를 좋아해서?'하고 되묻자
'내가 엄마를 좋아하니까, 엄마 기쁘게 해주려고 잘 쓴거라고~'하고 의젓하게 설명까지 해주어서 밥먹던 엄마를 감동먹게 했다.
 
다섯살이 이런 나이인걸까.
그럼 나는 이제 매일매일 이렇게 감동먹을 마음의 준비를 해야하는걸까. ^^











연수가 봄부터 유치원에 가게 되었다.
지난 겨울, 연수가 유치원에 가고싶다고 말한뒤 뒤늦게 알아보고 대기자 명단에 올려놓았던 유치원에서 자리가 생겼다고 연락이 왔다.
연수에게 다시 물으니 '응! 가고싶어!'하는 답이 돌아와서 입학을 결정했다.

내 마음같아서는 학교가기 전에는 어디 매인 일정없이 집에서 엄마와 동생과 온전한 우리들만의 시간을 가졌으면 싶지만
연수에게는 다른 친구들이 다니는 유치원이란 세계가 궁금하고 저도 어울려보고싶은 마음이 드는 모양이다.
새로운 공간과 새로운 놀이감, 또 친구들에 대한 호기심과 바램도 큰 것 같고.
 
가고싶어할 때 보내줄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내 아쉬움은 조금 다독여야겠다. 
큰아이와 작은아이 함께 데리고 이리저리 뒤엉켜 지지고볶는 생활이 힘든건 사실이지만 또 그만큼 행복하고 깨알같은 정이 쌓이는 시절인데 하루중 많은 시간을 뭉텅 잘라 연수를 보내놓고 나는 때떄로 얼마나 서운할까.

오늘 유치원의 첫 오리엔테이션이 있어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 집나설 준비를 하는데 연수가 '어, 비둘기 왔다!'했다.
그 소리듣고 '아 이제는 아침에 연수랑 같이 밥주는 일도 끝이구나..' 하고 속으로 아쉬워하는데 연수가 밝게 말했다.
'내가 '흰 깃털많은 아이'라고 이름붙인 애네. 엄마, 우리 비둘기 밥주고 가자. 그럼 우리가 없는동안 밥먹고 가겠지. 그리고 우리 돌아오면 또 밥달라고 올꺼야'
'그래..' 대답하고 연수 토마스기차 짐칸을 들고가서 쌀을 조금 퍼다 뿌려주었다. 
연수와 함께 '비둘기야, 우리 잘 갔다올께. 밥 잘먹고 잘 있어' 하고 인사하며 마음이 따뜻해졌다.

집안에서 키우는 화분들, 물에 담궈 키우는 고구마, 매일 창가에 찾아오는 비둘기.. 모두 연수 친구다.
딸기먹다가 딸기씨앗을 화분에 떨어뜨리고는 '이제 싹이 나겠지? 그럼 내 친구가 또 생기는거네~'하던 연수.











조그맣고 조그맣던 내 첫아기가 어느새 다섯살이 되었다. 
내 손잡고 처음 한걸음 한걸음 조심조심 뗴며 걸음마하던 아이가 어느새 나를 저만치 앞질러 씩씩하게 뛰어간다.
그래도 아직은 작고작은 아이.. 이 아이를 한껏 품고 안아줄 수있는 날들을 살고있다는 것이 감사하다.

잘 자라주는 것, 긴 겨울 어린 동생과 함께 나는 것이 답답했을텐데도 많이 웃으며 지내준 것,
어린 동생을 때론 질투하지만 늘 제 역할놀이에 끼워주며 보듬어주는 것, '엄마 사랑해'라고 속삭여주는 것..
모두 모두 고마워. 
연수야, 사랑해. 






덧> 지난 겨울, 눈 많이 오고 엄청 추웠던 어느 날. 우리 아파트 산책로에 어느 집 아이들과 아빠가 함께 큰 눈사람을 만들었다. 색종이로 예쁘게 장식도 하고, 깃발도 꽂아놨는데 그 깃발에는 '소원을 이루어주는 눈사람'이라고 써있었다. ^^
자리가 없어 아무래도 올해는 못가나 싶었던 유치원으로부터 며칠전 올 수있겠다는 연락을 받고 참 기뻤다. 연수가 기뻐할 것을 생각하니 나도 참 기뻤다. 소원을 들어주는 눈사람 덕분이었을까..ㅎㅎ (그나저나 엄마는 소원으로 그거 안빌었는데, 연수..니가 빌었냐?)









Posted by 연신내새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