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리불안'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2.04.15 흔들리며 피는 꽃 7
umma! 자란다2012. 4. 15. 23:40






연수가 유치원을 그만 두었다.

한달 남짓.. 2월 중순부터 시작된 적응기간부터하면 거진 두 달 정도 오고갔던 유치원 생활을 고민끝에 잠시(?) 접기로 했다.

연수가 엄마와 떨어지는 것이 싫고, 엄마랑 같이 더 많이 놀고싶다고 해서 내린 결정이었다.

그동안 연수를 키우며 나름대로 이런 저런 고민을 많이 했다고 생각했는데 이번만큼 오래 고민하고, 그래서 아프고(마음이 아프니 몸도 함께 아팠다) 힘들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연수를 보고 있으면 어린 시절의 내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어느 아침, 유치원으로 나서며 그 날도 엄마와 헤어지는게 싫어서 미적거리던 연수는 내가 쓰고있던 모자를 달라더니 부득부득 제가 쓰고가겠다고 했다.

잠시 실랑이하다가 그러라고 했다. 

어린 시절, 논에 내갈 새참 가지고 가시는 엄마를 따라가며 엄마의 커다란 빨간 잠바를 굳이 벗어달라고 우겨서 입고가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입으면 무릎까지 내려오던 엄마의 큰 잠바를 입고 나는 '학'이라며 팔을 너울거리며 춤을 추곤 했다. 큰 잠바 아래로 나온 작고 가는 다리가 꼭 새 같았다. 나는 그 잠바의 빨간 색이 참 맘에 들었고, 입으면 약간 헐렁하면서도 폭신한 느낌, 엄마 냄새.. 이런 것이 참 좋았다. 커도 너무 큰 엄마 옷을 입고 밖에 나가겠다는 내 고집에 엄마는 한숨을 쉬시다가 결국 잠바 소매를 내 팔에 맞게 접어올려 주셨던 것 같다. 

한 손에는 주전자를 들고 엄마 뒤를 따라 부지런히 걸어가던 논둑길. 

나는 큰 고무다라를 손으로 잡지도 않고 머리 위에 얹어만 둔채로 흔들림없이 걸어가시는 엄마의 뒷모습을 경이롭게 쳐다보곤 했다. 나도 크면 꼭 저렇게 해야지... 생각하며 머리 위에 책을 올려놓고 걸어가는 연습도 얼마나 많이 했던가. 덕분에 지금도 다라를 이고 손놓고 걷는 경지에는 아직 못 이르렀지만 어지간한 책은 머리에 올리고 한동안 떨어뜨리지 않고 걸을 수 있다.

 









유치원에 도착해 모자를 벗으니 머리 모양이 저리 예쁘다. ㅎㅎ 


연수도, 나도 유치원이 좋았다. 

형아누나들과 어울려 소꿉놀이, 엄마아빠놀이도 하고, 숲으로 산책가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도 하고, 달리기 경주도 하고 씨앗과 나뭇가지를 줍고, 칼싸움도 하고 도둑잡기 놀이도 하는 시간들을 연수는 즐거워했다.

처음이라 어색하고 친구형아들과 서로 서먹한 것도 있었지만 연수는 맘껏 뛰고 구를 수 있는 새 공간을 좋아하는 것 같았고, 또 형아누나들이 보여주는 새로운 세계의 매력에 금세 사로잡혀서 새로운 말투, 새로운 행동.. 모두 따라하고 재미있어했다. 


연수의 신나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는 나도 좋았다. 

연수의 고양된 에너지가 내게도 전해지는 것 같았고, 좋은 사람들 좋은 공간에서 함께 보내게될 우리의 새로운 날들을 그려보는 것도 즐거웠다.


하지만 즐거운 한켠으로 연수는 아침에 유치원 현관에서 엄마와 안녕!하고 헤어지는 것을 많이 힘들어했다. 

유치원은 재밌지만 엄마가 자기와 함께 있었으면 좋겠다는게 연수 생각이었다. 

입학하기 전에 혼자 생각할때는 엄마와 떨어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해본 적이 없으므로) 잘 상상할 수가 없었던 것 같았다. 그래서 물어보면 '응! 나 혼자 잘 놀다 올 수 있어'라고 자신있게 말하곤 했는데(그 말대로 연수는 엄마가 없어도 친구형아누나들, 선생님과 잘 놀다 왔다) 늘 제 곁에 있던 엄마가 자기만 어딘가에 두고 떠나는 구체적인 장면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 못한 것 같았다. 

그래서 매일 아침, 유치원 현관에서 엄마와 헤어지는 순간이 오면 연수는 슬퍼했고 이런저런 얘기로 엄마를 제 곁에 붙잡아두려고 시간을 끌다가 끝내는 울곤 했다.








'엄마, 나랑 약속 하나 하자, 금방 오겠다고. 나 산책 갔다오면 데리러 와있겠다고 약속해야 해.'

'엄마, 집에 가자마자 다시 와.. 아니 차 타자마자 다시 와. 아니 차 타기도 전에 다시 와야 해.'

'엄마, 엄마가 없으면 엄마가 보고싶어서 잘 놀 수 가 없어..'

'엄마, 내가 노래 하나 부르는 거 듣고 가. 노래 꼭 다 듣고 가야해.. 북극행 특급열차 타고 갑니다 희망을 싣고 달려가는 폴라익스프레스 희망섞인 함성 야! 모두 신나게 하하하 웃으며 가자.. 북극행 특급열차 타고 갑니다..(안 끝난다)' 


이 얘기와 노래를 듣고 있으면 나도 그만 콧날이 시큰해져버리곤 했다. 


그 순간의 슬픔이었다.

한바탕 울고 돌아서서 눈물 닦고 나면 다시 씩씩해져서 형아들과 장난치고 뛰어다니는 다섯살 개구장이로 돌아갈 것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의 슬픔 자체는 진실한 것이다. 


나도 그랬다. 

아이가 슬퍼하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실은 나도 아이와 떨어지는 것이 슬프다는 사실을 절실하게 느끼는 헤어짐의 시간이 내게도 힘들었다. 

그래서 아이가 울 때면 그냥 선생님께 맡기고 떠나올 수가 없었다. 

한번은 우는(다섯살 사내아이는 그냥 훌쩍거리는 것도 아니고 끌어안아 주시는 선생님 품에서 빠져나오려고 몸부림치며 울부짖었다ㅠ) 연수를 뒤로 하고 돌아서서 걸어왔는데 유치원에서 제법 멀어져 실제로는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았지만 내 귀에는 울음소리가 계속 쟁쟁해서 끝내 다시 돌아가고 말았다. 선생님에게 안긴채로 눈물 고인 눈을 하고 축 늘어져있던 연수가 나를 보고는 '엄마 어디 갔었어..'하며 내 손을 잡았다.

눈물도 많고 마음도 무른 나는 우는 아이와 이별할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금새 그쳐질 울음이라 해도, 한 일주일 아니 며칠만 엄마가 '네가 울더라도 엄마는 꼭 가야만 해'하고 떠나면 그 뒤로는 울지 않게될 울음이라해도... 









선생님과 의논해서 연수만 며칠 더 적응기간을 갖기도 했다. 하루 2시간씩만, 엄마와 함께 유치원 생활을 하는.. 

물론 두 살배기 연호도 함께였다. 다른 아이들에게 미안한 일이었지만 연수는 엄마와 함께 유치원에 있을 수 있다며 아주 좋아했다. 나도 좋았다. 연수가 즐겁게 노는 모습을 보는 것도 좋았고 '꽃피는 아이들의 집'이란 공간이 주는 평화로운 느낌, 마당과 숲에서 만나는 포근한 자연의 품을 깊이 느낄 수 있었다. 

할 수만 있다면 연수가 이곳에서 행복한 유년의 기억을 많이 간직하게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집이라는 편안한 공간을 떠나, 많은 또래들과 함께 지내는 시간이라는 것이 어쩔 수없이 아이들에게 주는 긴장감, 갈등 같은 것이 없을 수는 없어 보였다. 어느 것에든 장점과 단점은 늘 같이 있다. 그럼에도 꽃피는 유치원은 그 단점들을 따뜻한 자연과 자유로운 놀이, 평화로운 노래와 부드러운 선생님들이라는 장점들로 정말 많이 완화시키고 있었다.









연수만의 적응기간이 끝난 뒤 정식일과를 시작했지만 연수는 여전히 엄마와 헤어지는 순간에 많이 슬퍼했다. 

'유치원은 더 크면 갈래, 지금은 엄마랑 집에서 놀고 싶어' 하는 아이에게 처음 유치원에 가고싶어 했던 때의 얘기도 하고, 꽃피는 유치원에서 보냈던 즐거운 시간들, 재미있는 형아누나들, 놀이, 다시 집에서 지내게 된다면 그립고 아쉬울 것들에 대해 여러가지로 얘기해보았다. 

연수는 아쉽고 그리울 것들에 대해 고개를 끄덕거리면서도 '엄마랑 떨어지는 건 싫어, 유치원은 나중에 갈거야.. 집에서 재밌게 놀면 되지, 유치원 친구들도 우리집에 놀러오라해서 같이 놀고..'하며 그만 가겠다고 나섰다.


그러자고 했다.

걱정되고 고민스러운 것이 많았지만 지금은 그렇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은 내가 그렇게 하고 싶었다. 아침에 헤어질때의 슬픈 마음을 아이도, 나도 더는 겪고 싶지 않았다. 

울지 않고 엄마와 헤어질 수 있을 때, 재밌게 놀 생각에 가득차서 즐겁게 제 발로 걸어가는 날이 오겠지.. 그 때 보내자... 생각하며.

 








꽃피는 학교 울타리 곁에 서있는 목련나무.

연수가 엄마와 떨어지는 것을 힘들어하던 3월 초, 아직 쌀쌀한 날씨에 꽃망울을 잔뜩 오므리고 있던 이 목련나무를 보며 '저 꽃이 피는걸 볼 수 있을까..' 했는데 정말로 꽃이 피기 전에 유치원을 떠나고 말았다.


연수와 함께 유치원에서 적응기간을 보내며 봄이 오는 숲에 나갈 때마다 마음으로 도종환 시인의 시 '흔들리며 피는 꽃'을 되뇌어보곤 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지난 금요일에 부모님들이 모여 유치원 담장과 마당에 철쭉과 꽃모종을 심었다. 

그날 마지막으로 가서 연수도 친구형아들과 선생님과 인사하고, 나도 그동안 얼굴 익히고 정들었던 아이들과 부모님들, 그리고 마음으로 참 많이 의지했던 유치원 선생님들께 인사하고 왔다. 

섭섭하고 미안한 마음을 담아 떡도 해가지고 가서 나눠 먹었다. 

모두 아쉽다고, 잘 지내다 내년에 꼭 다시 만나자고 손잡고 인사해주었다.    









유치원 마당에는 산수유 꽃이 활짝 피어있었다. 

살구나무도 분홍색 꽃망울을 터트리고 학교 마당가 목련도 다시 가보니 꽃들이 환하게 피어 있었다. 

연수는 이 산수유꽃을 따서 유치원에서 함께 화전 만들어 먹었던 것을 집에 와서도 얘기했었다.

이제 산수유꽃만 보면 꽃피는 유치원에서 보낸 다섯살 봄이 기억나겠구나... 

꽃그늘 아래서 그네 타던 시간도 기억나겠지.


연수야, 이 봄에 우리가 보낸 아프고 힘든 시간 속에도 배우고 자란 것이 분명 있을거야.

돌아보면 아주 행복했던 순간들도 많고 말이야..

그것들을 마음안에 잘 갈무리해두자. 

행복했던 것들은 오래오래 잊지 않도록, 아팠던 것들은 따뜻하게 치유되도록.

쉬이 정리되진 않더라도 천천히 두고두고 다시 생각해보면서 

우리가 보듬고 소중히 쓰다듬어줘야할 우리 마음과 용기내서 넘어서고 자라야할 일들.. 찾아보자.


지금까지 그래왔듯, 힘든 일도 기쁜 일도 늘 같이 겪으면서

연수야, 너도 엄마도 잘 자라자. 

사랑한다. 






Posted by 연신내새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