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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육아도움책2009. 9. 20. 22:44


초보엄마의 짧은 육아서 독서 깜냥으로 감히 말하건데..
육아서에는 두 종류가 있는것 같아요. 충격적인 책과 그렇지 않은 책. ^^;;

<3살까지는 엄마가 키워라>는 충격적인 책이었습니다.
이 책은 먼저 읽었던 <아이의 손을 놓지 마라>란 책의 뒷표지에 나온 광고를 보고
'음... 한번 봐야겠다' 싶어 읽은 책인데 앞서 읽은 책보다 훨씬 쉽게 잘 읽히면서도 내용이 깊고 신선했습니다.
어느 정도는 '안 읽어도 알만한' 내용이겠거니.. 생각했는데 예상을 뛰어넘는 관점과 내용에 놀라면서 이틀만에 뚝딱 다 읽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선배 한분도 아이를 계속 키워야하나, 직장생활을 다시 시작해야하나.. 고민하던 시기에
이 책을 읽고 아이를 계속 키우기로 결심하셨다는 얘기를 책읽기전에 들었었는데,
읽고나니 그럴만하다... 고개가 끄덕여졌어요.
한 아이(아니, 이제는 두아이의 엄마시니 두 아이)와 한 엄마의 인생에, 아니 제가 모르는 더 많은 엄마와 아이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을 이 책, 
쉽게 읽히지만 남겨주는 울림과 고민은 깊고 묵직한 육아서 <3살까지는 엄마가 키워라> 입니다.




3살까지는 엄마가 키워라 - 10점
스티브 비덜프 지음, 이승희 옮김/북섬



이 책이 저에게 충격적이었던 것은 특히 두 가지 점에서인데,
첫번째는 제가 가지고 있었던(다소 진보적이라 생각했던) 익숙한 관념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다'가 허구일 수 있다는 것을 지적했기 때문이고,
두번째는 육아서가 사회경제 변화와 정치적 과제에 대해서도 깊은 통찰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기 때문입니다.

많은 부모들이 부딪히는 육아의 문제는 비슷하지만 그 해법은 부모의 가치관에 따라 달라질 것입니다.
경제적 상황도 큰 영향을 미치겠지만, 객관적인 경제력보다 중요한 것은 그 부모의 가치관인 듯 해요.
형편이 넉넉치않아도 아이를 직접 키우려하는 부모도 있고,
형편이 넉넉해도 아이를 맡기고 일을 계속 하려하는 부모도 있으니까요.
엄마의 육아휴직이 끝난후 아빠가 이어서 육아휴직을 쓸 것이냐를 고민하는 부모도 있고,  
한사람이 아이를 키우기로 한다면 엄마가 일을 계속할 것이냐, 아빠가 계속할 것이냐를 고민하는 부모도 있고요.

하지만 산업화 이후 보육시설(이 책에서는 교육기관인 유치원이 아니라 그 이전 아이들이 다니는 어린이집을 말함)이 급증하고, 아주 어린 아기들부터 보육시설을 이용하는 비율이 급증한 것은
대부분의 부모들이 육아와 일중에서 주로 일을 선택하거나, 그럴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있다는 것입니다. 

두사람 다 맞벌이로 일을 하지 않으면 생계 자체가 곤란한 상황이나
엄마나 아빠가 혼자서 아이를 양육하기 때문에 어쩔수없는 경우를 제외하고나면
주로는 장래의 경제력(특히 우리나라에서는 내집마련이나 노후대책, 아주 어린 아이때부터 지출하는 막대한 사교육비 등)을 마련하기 위해서 
부득이하게 보육시설에 아이를 맡기고 맞벌이를 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보육시설에 맡겨도 아이에게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기도 하고, 때로는 '아이의 사회성 발달이나 인지력 발달에 도움이 될 것'이란 생각에서 적극적으로 보내기도 하고요.

이 책은 '만 3세이하의 아이들의 건강한 성장에 있어 보육시설은 매우 위험하다'고 얘기합니다.
아주 어릴때부터 오랜시간 보육시설에 맡겨진 아이들은 높은 스트레스, 공격성, 반사회적 행동 등의 문제를 보인다는 연구결과들을 소개하면서요. 스트레스를 받는 아이들은 성장과 발달에 쓸 에너지가 없게 되는데, 만 3세이전 아이들에게 보육시설은 무척 큰 스트레스를 준다는 것이지요.
(이 책에는 보육시설에 관한 다양한 연구결과들이 잘 정리되어 있는데, 서평에서 제대로 다 옮기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보육시설에 아이를 보내고 계시거나 준비하는 분들도 한번 읽어보시면, 집에 있는 시간동안 우리 아이에게 어떤 것들을 더 신경써서 보살펴줘야겠다는 참고사항을 얻으실 수 있을 것 같아요.)
 
만 3세 이전에 아이들은 인생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사랑할 수있는 능력'을 키우게 되는데, 이는 양육자와의 따뜻하고 친밀한 상호작용을 통해서라고 합니다.
그러나 한명의 보육교사가 서너명, 혹은 그 이상의 아이들을 한꺼번에 돌보게 되는 보육시설에서 아이가 지속적이고 민감한 상호작용을 보육교사와 나누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보육노동은 굉장히 힘든 노동입니다.
엄마가 아기 한명을 집에서 돌보는 것도 굉장히 힘든 일인데, 한명의 보육교사가 여러명의 아기들을 동시에 돌본다고 하면 
친밀한 상호작용은 커녕 최소한의 욕구(먹고, 자고, 기저귀를 가는)를 해결하는 것만해도 보육교사의 체력과 정신력을 완전히 소진시키는 고강도의 노동이 될 것입니다.   
이들은 대부분 젊은 여성노동자들로 짧은 교육과정을 거친 후에 저임금을 받으면서 이 힘든 노동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이들에 대한 교육과 처우를 제대로 개선하려면 정부가 더 많은 지원을 하거나, 보육비가 더 높아져야하겠지만 
정부와 보육시설 운영자들은 그런 노력은 거의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보육시설을 지원할 수 있는 비용이 있다면 집에서 아이를 돌보기를 원하는 부모들에게 직접 지원할 때 
효과(양질의 보육)는 훨씬 크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인지력이나 사회성 발달과 관련해서 보면
보육시설에서 인지능력이 향상되기도 하지만 학교에 들어간 후에는 집에서 자란 아이들과 차이가 없다고 해요.
만3세 이하의 아이들에게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따뜻하고 인간적인 감정'을 키우는 것인데
보육시설에서는 그대신 '인지력 발달'이란 명목하게 '뭔가를 성취하고 배워야한다는(때로는 경쟁까지 하게하는) 압박감'을 어린 시절부터 겪게 할 수도 있습니다.
어린 시절에 양육자와의 친밀한 교류속에 안정감과 행복을 충분히 느끼며 자란 아이들은 인지력도 수월하게 발달한다고 해요.
만3세 이하의 아이들은 그 이후 아이들과는 달리 친구와 '함께' 놀 수 없기 때문에(주로는 탐색하다 한가지 장난감을 두고 다투고 울게 되지요ㅜ) 
보육시설을 통해 '사회성'이 발달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도 허구라는 얘기도 있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아기들은 '친구'와 놀 수 있는게 아니라, 함께 놀아주는 '어른'과 놀고 생활하면서 배우고 자라게 되는데
그렇게 자신을 보살펴주는 어른과의 밀착된 관계속에서 안심할 수 있을때에 비로소 자랄 수 있는게 사회성인 것 같습니다.  

어찌보면 이런 얘기들은 상식적인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맡기고, 일을 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 문제겠지요.
그 현실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이 책이 제시하는 마음가짐과 요구할 것들은 깊이 생각해볼만 합니다.

우선, 부모 자신이 어떻게 살고 싶은지, 그리고 아이가 어떤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지를 깊이 숙고해보라는 것입니다.
'일이냐, 가정이냐' 라는 칼날같은 양자선택으로 우리를 몰고가는 이 비인간적인 사회(기업과 정부)에 대한 요구는 별도로 강하게 제기하더라도
우선 나는 어떻게 살고싶은가, 내가 추구하는 행복은 어떤 것인지를 곰곰히 생각해보라는 것입니다.
당장 밥을 굶는 생계의 궁핍앞에서야 모든 논의가 사치일 뿐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대의 행복은 '관계'에서 온다는 것을 생각할 때
지금 내 아이와 맺을 수 있는 무한히 깊고 충만한 관계를 포기하고 얻을 수있는 다른 행복이 어떤 것일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집요하게 '당신의 소유물이 바로 당신이다'라는 유해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나는 이와는 다르게 인간의 가치와 본질을 평가하는 방식, 즉 '우리가 사랑하는 누군가가 바로 우리이다'라는 메시지를 주고자 한다.
가족, 공동체, 우정, 사랑은 우리가 소유하거나 소비하는 그 무엇보다도 훨씬 소중하며 우리에게 더 많은 행복을 가져다준다.
관계는 우리를 창조하고, 성장시키고, 발달시킨다. 또한 관계는 우리의 정체성을 규정하기도 한다.
우리가 맺는 여러 관계들 중 가장 중요하고 장기적인 것은 바로 아이들과의 관계이다. (이 책, 32~33쪽)


저도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돈이 줄 수있는 편리함을 모른다면 어른이 아니겠지만, 돈으로는 얻을 수 없는 행복과 그것의 가치를 모르는 사람도 어른은 아닐거라고요.
더 많이 벌고, 더 많이 소비하는 것만이 행복이라고 강요하는 세상에서
적게 벌고, 적게 쓰고, 대신 더 많이 웃고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그렇게 하는게 용감하고 현명한게 아닐까...
말처럼 쉽진 않겠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적어도 아이가 자라서 학교에 가기 전까지의 기간만이라도
그렇게 적게 벌어 적게 쓰면서 행복한 시간들을 아이와 더 많이 보내는 것이
아이와 부모, 그리고 우리의 현재와 미래 모두를 행복하게 해줄것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엄마학교>의 저자인 서형숙 씨는 이 책의 추천글에서
'경제적인 상황 때문에 아이들을 보육시설에 맡겨야만 하는 이들은 심란한 갈등에 빠질 수도 있다. 하지만 딱 3년이다. 그동안만 충분한 사랑과 보살핌을 준다면 그 후론 손갈 일이 없는 아이로 자란다. 나중에 돈이 안든다'
고도 하시데요. 음.. 그럴수도 있겠지요..? 정말 그럼 좋겠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더 짚고 갈 얘기가 있습니다.
'아이를 사랑할 수 있는/키울 수 있는 능력'도 굉장히 오랜 시간, 노력을 들여야 얻을 수 있다는 것이지요.
사실 초보엄마에게 육아는 정말 힘든 노동입니다. 육체적으로도 힘들고, 정신적으로도 그렇지요.
그렇다고 엄마노릇을 쉽게 포기하는 엄마는 거의 없겠지만, 이 새롭고 힘든 상태에서 잠시라도 벗어나
아기를 낳기 전의, 익숙했던 삶의 방식(한사람의 능력있는 성인으로 인정받고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었던)으로 돌아가고 싶은
욕구도 무시할 수 없을만큼 큽니다.

그런데 이런 욕구를 추구하는 것이 잘못은 아니지만, 
적어도 '엄마가 행복하면(혹은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다'라는 말로 아이를 떼어놓는데서 오는 불안감을 덜려하거나 그것을 사실로 믿어서는 안 된다는 얘기는 저에게는 적잖이 충격적이었습니다.
물론 엄마가 불행한데 아이가 행복할 순 없겠지요.
하지만 엄마아빠 또는 조부모라는 '헌신적인 사랑을 주는 존재'와 떨어져 긴시간을 보내는 아이 역시 행복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니 아이의 양육자가 느끼게 되는 부모되기의 어려움, 아이와 전적으로 결합해서 지내면서 받게되는 스트레스와 힘겨움은 
아이가 보내주는 절대적인 사랑과 기쁨에 힘입어 부모 자신이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 
'아이키우는 능력'을 하나둘 익혀갈때만 해소될 수 있다는,
그 과정을 통해 진정한 부모로 함께 성장해갈 수 있다는 얘기는 마음에 무척 와닿는 얘기였습니다.

자신이 아이를 책임지고 보살피되, 고립감과 스트레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보살펴줄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의 도움을 요구해야한다는 얘기에도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예전에 똑순이가 아주 어릴때, 저도 도움을 줄 수 있는 지역사회의 시스템이 없는 것을 안타까워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육아사랑방.. 만들면 어떨까요'라고 포스팅을 했었는데, 
와~! 유명한 육아학자가 이미 제안해서 그런 것이 다른 나라에서는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괜시리 뿌듯하면서(^^;), 우리 나라에도 있으면 좋으련만.. 다시금 부럽고 속상했어요. 우리도 꼭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페넬로페 리치가 제안한 '가족센터', 이 책의 218쪽에 있었어요.) 

더불어 이 책은 아이들이 너무 어릴때부터, 오랜 시간, 그리고 장기간에 걸쳐(유치원가기전까지 길면 3~4년도 다니지요) 
보육시설에 맡겨지는 것, 그로 인해 아이들과 부모들에게 초래되는 여러가지 문제와 힘겨움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기업이 변해야만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 유급 육아휴가(독일과 스웨덴은 3년, 그중 1년은 100% 가까운 임금을 지급한다네요)
- 고용보장(육아휴직 후 재교육과 복직보장, 이게 직장을 다니던 엄마들에게는 정말 중요하겠지요!)
- 탄력적 근무제
- 집에서 아이를 돌보는 부모에 대한 보조금의 확대

휴. 생각만 해도 멋지지요..?
지금 우리 현실에서 생각하면 이런 세상은 꿈같지만 벌써 현실이 된 사회도 있습니다.
에구구... 이민갈 것이 아니라면 우리 사회도 이렇게 바꿔야할텐데요ㅠㅠ

이런 것이 가능하려면 사회적으로 '사람을 키워내는 것'이 얼마나 귀하고 중요한 일인지, 
그 사회의 미래를 위해 사랑을 나눌 줄 아는 따뜻한 아이들을 키워내는 일이 얼마나 가치있는 일인지,
그리고 그를 통해 부모 또한 진정한 어른으로 함께 성장하는 경험을 해보는 것이 얼마나 기쁘고 행복한 일인지
충분히 공감하고, 인정하고 격려해주는 분위기가 있어야할텐데... 그렇지 못한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정부나 기업이 위기감을 갖고 앞장서서 정책을 바꿔간다면 사회 인식도 함께 변화할수도 있을텐데요. 
 
길었던 글을 이제 정리해야겠습니다.

이 책이 권하는 바를 정리하자면,
'아이가 깊이 사랑할 수 있는 사람으로, 정서적으로 건강한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바란다면 아이와 함께 있는 시간을 더 늘리고, 적어도 만2세까지는 직접 키우거나 그도 아니면 아이를 사랑해줄 수있는 친지나 친구에게 아이의 양육을 부탁하라' 가 될 것 같습니다.   
적게 벌고, 적게 쓰는, 그래서 정신적으로는 더 풍요로우면서 공동체와 지구를 살리는데도 보탬이 되는 그런 삶의 방식에 대한 고민은 더 깊게 가져가야할 숙제로 남겨야겠구요.



덧.
이 책을 쓴 저자의 가치관으로 볼 때 이 책 제목은 <3살까지는 아빠가 키워라> 혹은 <피치 못할때는 조부모께 부탁해라>로 바꿔도 무리가 없을듯해요. 나이든 조부모들께 아기돌보기는 무척 힘든 일이긴 하지만요..ㅠ.ㅠ
엄마 배속에서 자라던 시절부터 단단하게 연결되어온 엄마와 아이의 애착을 생각하면 엄마가 키우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인 것 같지만, 그렇다고 아빠가 키워선 절대 안된다거나 
아빠의 역할은 미미하다는 얘기가 결코 아니란건 책을 안 읽으셨더라도 모두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
엄마가 아기를 키울수 있으려면 곁에 늘 꼭! 엄마를 보살펴줄 수 있는 아빠 혹은 다른 누군가가 있어야하는 것 같습니다.








  
Posted by 연신내새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