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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9.16 똑순이의 첫번째 추석 8
umma! 자란다2008. 9. 16. 21:05

똑순이는 오늘 낮잠을 많이 잤습니다.
새벽에 달구경을 하느라 잠을 거의 못 잤거든요. ㅠ
오늘 새벽은 추석연휴 3일중 가장 달이 밝았습니다.
과장을 좀 섞어.. 달빛이 바로 들어온 안방은 대낮같이 밝았답니다. ^^;
해지면 자고 해뜨면 일어나는 똑순이가 달빛을 햇빛으로 착각했나... 좀처럼 잠을 못 이루고 끙끙 거려서 새댁과 신랑도 덩달아 달구경 한번 제대로 했습니다.

새댁은 사실 연휴 사흘 내내 집 안방에서 보름달을 봤답니다.
똑순이가 깨서 젖을 먹는 새벽 3시쯤에 베란다쪽으로 나있는 안방 큰 창문으로 달이 바로 보이더라구요.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앉아서 바라보는 보름달의 고즈넉한 정취라니.. 잊지못할 기억이 하나 더 생겼습니다.

새댁과 똑순이는 이번 추석을 서울 우리집에서 둘이 보냈습니다.
아직 차가 없는 새댁네 형편을 잘 아시는 시부모님께서
짧은 연휴에 고속도로도 많이 막힐텐데 갓난이를 데리고 길을 나섰다가 고생하면 어쩌냐시며
신랑만 고향에 내려와서 차례만 얼른 지내고 올라가도록 시키셨습니다.
대신 추석 직전에 있었던 똑순이 백일에 서울 저희집에 올라오셔서
'아가랑 며느리 얼굴 보았으니 됐다' 하시고 내려가셨거든요.
덕분에 똑순이와 저는 '민족의 대이동'에 동참하지 않고.. 집에서 여느때와 다름없는 날들을 보낸 것이죠.
다른 것이 있다면 하루밤 아빠가 없었다는 것...

많은 며느리들에게 스트레스를 안겨주는 '명절 중노동'에서도 해방되었고
(사실 새댁은 시댁에 갔어도 '너는 아나 봐라'하며 거진 해방되었을 것이긴 합니다-^^;)
긴 시간 고속도로에서 행여 똑순이가 울거나 보챌까봐 맘졸이는 고생도 하지않게 되었으니 얼마나 다행이냐~ 하며
처음에 새댁, 사실 많이 좋아했답니다.

그런데 음.... 막상 추석 전날밤이 되니 그것이 아니더군요.
모두들 그리운 사람들을 찾아 떠나거나, 찾아 돌아와
따뜻한 밥상을 앞에 두고 반가움으로 빛나는 얼굴들을 마주하고 있겠구나.. 생각하니
외로움과 그리움이 슬며시 밀려왔습니다.

물론 엄마곁에는 우리 똑순이가 있어 괜찮았지만,
똑순이에게도 할머니, 할아버지, 증조할머니, 삼촌, 고모.. 많은 친지분들의 예쁨을 받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해주지 못한 것이 못내 미안해졌습니다.  

고향에 가지 못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이런 것이었을까...
한번도 그래본적이 없던 새댁, 처음으로 생각해보게 됩니다.
대학다닐때 수배중이었던 선배, 친구들을 학교에 두고 귀향단버스를 타고 내려가면서 마음은 아팠지만
막상 가족과 떨어져서 보름달을 바라볼 그들의 마음이 되어볼 순 없었던 것입니다.
이산가족들, 이주노동자들.. 이렇게 도드라지는 사람들이 아니어도
많은 사람들이 이 추석, 그리운 고향에 가지 못했을 것입니다.
일이 바빠서, 몸이 아파서 혹은 차마 발이 안떨어져서....
그 사람들도 나같이 보름달을 혼자 보겠구나.. 새댁, 멀리서 가족들과 친지들, 친구들의 안녕을 빌었습니다.

그리고는 신랑없다고 긴장한 새댁, 저녁에 블로그도 못쓰고 일찍 잤답니다.
'아침까지 나혼자 똑순이를 지켜야해!' 이러면서..
덕분에 유난히 덥던 이번 연휴, 아빠없다고 괜히 겁난 엄마가 평소 열어놓던 창문들까지 모두 꽁꽁 닫아건 탓에
똑순이는 더워서 잠을 설쳤습니다.

*

추석날 아침이 밝자, 새댁은 뜬금없는 생각에 사로잡혔습니다.
'차례상에 오신 조상님들이 혹시 우리 똑순이를 보고싶어 하시진 않을까?'
참... 이 개명한 시대에 무슨 뒤떨어진 생각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조상님들께 대접하려고 정성껏 차리는 차례상이니 많은 할아버지할머니들이 삼삼오오 젯밥 잡수러 오셨다가
'참, 이 집에 얼마전에 손주나지 않았어? 갠 왜 안보여? 고녀석 궁금하네~ 나선김에 한번 보러가볼까?' 하실지도 모를 일이지 않습니까?

... 하여 새댁, 행여 멀리 서울까지 손주보러 오실지도 모르는 할무니할아버지들이 먼길 빈속으로 돌아가시게 하면 안되겠다 생각하며
얼려놨던 똑순이 백일떡을 데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차차 판이 커져.. 급기야 애호박 하나를 썰어 호박전을 부치고... 육개장해먹고 남은 고사리나물도 무치고..
'정식 차례상은 아니고.. 간식인 셈이니까.. 신기한 것도 좀 드셔도 되지 않을까?'하며
mepay님네 '도토리속 참나무'표 소세지까지 구웠습니다.
기왕이면 맛있는걸 대접해드리고 싶었거든요. 집에 있는 먹을만한 재료는 총출동한 것입니다. ^^
 
그렇게 탄생한 추석날 아침 똑순이와 엄마의 차례상입니다~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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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란 것이 본디 조상님께 감사를 표한 뒤에는 차린 사람들이 푸짐하게 잘 먹는 상인만큼..
새댁도 추석날 아침 소세지와 호박전으로 포식하였습니다.
똑순이는 물론 '엄마가 왜 이리 야단법석이야?' 궁금해하며 바쁘게 돌아치는 엄마에게 안아달라 찡찡거렸습니다.

애시당초 '홍동백서 조율이시'같은 법도를 찾을 만한 제대로된 상도 아니긴 했습니다만
사진으로 보니 더욱 민망하네요-^^;;;

아무튼 멀리서나마 조상님들께 우리 똑순이 건강하게 무럭무럭 잘 자라도록 보살펴달라고
엄마 혼자 마음으로 부탁드렸습니다.

추석까지 지내고 나니 이제는 정말 가을인가 싶습니다. 날은 여전히 여름같이 무덥지만요..
이 가을, 곡식처럼 자연처럼- 더 뜨겁게 사랑하고 더 많이 깊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새댁블로그를 찾아주시는 분들께 똑순이와 함께 명절 인사 드립니다.
건강하시고, 한 해의 소중한 결실들 잘 맺어가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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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연신내새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