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하는 나무들2010. 7. 11. 13:05







여행 3일차의 아침이 밝았다.
연수가 아빠와 휴양림을 산책하는 동안 나는 풀어놓았던 여행가방을 다시 꾸렸다. 
짐싸는 기술 세계신기록 보유자인 우리 엄마를 따라가려면 아직 멀었지만 나도 이제는 제법 가방을 빨리 싼다.
엄마는 자식 셋이 모두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는 10여년 동안 우리들의 자취집, 하숙집 이사짐을 정말 여러번도 싸고 푸셨다.
그 뒤론 시집장가간 자식들이 집에 다녀갈때마다 반찬과 이런저런 먹을 것 꾸러미를 또 얼마나 싸셨는지 모른다.
엄마의 짐싸는 손놀림은 경쾌하고 민첩해서 그 손길 덕분에 싸넣는 먹거리들이 더 맛있어지는 기분이 든다.
이번 여행 소식을 듣고 '아직 어린 애기를 데리고 힘들게 돌아다니지 말고 강릉집으로 와서 푹 쉬다 가라'고 하셨던 엄마는
아마 우리가 서울집에 무사히 돌아왔다는 전화를 받으실 때까지 마음을 놓지 못할 것이다. 
서른이 훨씬 넘어서도 나는 엄마에게 물가에 내논 아이다.

용현자연휴양림을 떠나기전에 삼각대를 세워놓고 가족 사진을 한장 찍었다.
고마웠어, 노루귀방.. 아주 즐거운 시간이었어. 








여러날에 걸쳐 차를 많이 타고 많이 걷고 물놀이도 자주 하는 이번 여행이 25개월 연수에게 힘들지 않을까.. 걱정도 된다.
연수가 힘들어하면 일찍 돌아가자고 엄마아빠끼리 얘기하기도 했는데 의외로 연수는 씩씩하다. 
열심히 노느라 고단하니 잠도 잘 자고, 밥도 많이 먹는다. 여행에서 살아남는 법을 스스록 터득해가고 있는듯.. 
씩씩하게 함께 여행하고 있는 연수가 정말 고맙다.
이제는 엄마아빠가 나누는 여행에 대한 대화에도 익숙해져서 차에 타면 엄마가 보던 지도를 들고 가서 
"오늘은 여기에 가고, 내일은 저기에 가고... 오늘은 잠을 여기서 자고..." 하며 여행일정도 읊는다.  ^^

 






여행 3일차인 오늘은 서산에서 가까운 예산에 있는 '수덕사'로 향한다. 
이 역시 그저 이름만 알고있던 절인데 마침 가까이 있으니 우리의 두번째 여행지 '부안'으로 내려가기 전에 들렸다 가기로했다. 
가서 보니 수덕사는 엄청나게 큰 절이었다.
주차장부터가 어마어마하다. 어제 본 '개심사'처럼 조용하고 고즈넉한 절일꺼라 생각했던 내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팜플렛을 읽어보니 수덕사는 조계종 안에서 '덕숭총림'으로 묶여있는 충청도 인근 지역 작은 절 50여개의 본산(중심절)이었다.
예전에 천태종 본산인 단양 구인사에 가본적이 있는데 한 종파, 혹은 지역의 본산인 절들이 본래 그런지 
절이 아니라 마치 큰 대학같기도 하고, 기업같기도 해서 사람도 많고 차도 많고 불전들도 모두 너무나 으리으리하고 거창했다. 나는 그런 곳에 가면 그만 마음붙일 곳을 찾지 못하고 그 큰 규모가 불편해서 어찌할바를 모르다가 주눅들린 사람처럼 얼른 내려와버리게 된다.
그래도 구인사에서는 큰 장독대들이 가득 모인 곳 옆에 있는 큰 식당에서 공양 한그릇을 먹으며 주눅든 마음을 녹이고라도 왔는데 수덕사에서는 공양간도 찾지 못했으니 마음붙일 데가 영 없었다.
다행히 감로수 마시는 곳을 찾아 연수와 목을 축이고, 수직으로 높이 뻗어있는 절길을 힘들게 올라 겨우 대웅전 마당에 도착했다.   









아. 수덕사 대웅전은 아름다웠다.
백제시절에 지어진 절의 대웅전은 단아한 목조건물이었다.
남편은 대웅전이 정말 인상적이고 아름답다며 기뻐했다.
내게는 이 절안에서 유일하게 바라보면 마음이 푸근해지는 곳이었다. 
나중에 팜플렛을 보니 수덕사 대웅전은 백제시대 건축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건물로 국보로 지정되어 있었다.
남편과 나는 우리가 국보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다는 것을 무척이나 다행스러워했다. ^^; 









수직으로 높이 올라오는 절의 구조상 대웅전 마당에서 내려다보는 탁 트인 경치는 마음을 시원하게 해주었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는데 대웅전 바로 밑에 새롭게 지은 '황하정루'라는 누각이었다. 
2층으로 세운 누각의 지붕이 대웅전 마당 가운데에서 아래를 내려다볼 수 없도록 답답하게 가로막고 있었다.
누각을 피해 마당의 오른쪽이나 왼쪽으로 가야지 산 아래 경관을 비로소 조금 볼 수 있다.
본래 수덕사 대웅전 마당에서 볼 수 있었을 그 탁 트인 경관을 막으면서까지 높은 누각을 지어야했을까...   
나는 건축에는 문외한이지만 수덕사의 많고, 높은 건물들은 조화롭지 못한 것 같이 느껴졌다. 
절의 중심인 이 마당에 서서 위로는 덕숭산과 아름다운 대웅전을 올려다보고 아래로는 푸른 예산벌을 내려다 볼 수 있었다면 수덕사를 찾은 감동은 더 커졌을 것같다. 









문제의 누각 2층은 절에서 운영하는 찻집이다.
지하에는 미술관이 있다. 건물의 내용으로만 보면 좋은 건물인데 그만 그 위치 때문에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찻집에 들어가니 상냥한 보살님께서 "제가 대추차를 맛있게 만들어서 시원하게 해뒀거든요. 한번 드셔 보세요" 한다.
차림표에는 가격도 써있다. 연수에게는 따로 작은 잔에 오미자차도 주셨다. 
대추차는 달고 시원했다. 누각의 창문으로 대웅전 마당에서 보지 못했던 아름다운 풍광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그러니 이 전망은 누각의 찾집에 들어와 돈을 내고 차를 마시는 사람에게만 허락되는 전망이 된 셈이다.










수덕사 아래에는 동백림 사건으로 고초를 겪은 미술가 이응로 선생이 말년을 보냈던 '수덕여관'이 있다. 
이 여관을 사서 자신의 거처로 삼은 이응로 화백이 직접 마당의 돌에 조각한 암각화도 볼 수 있었다.
'한국 근대불교의 선풍을 진작했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불교에 대해 잘 모르는 나로서는 알기 어려웠지만 수덕사 입구에 서있는 절 소개문은 아주 전투적인 느낌을 주었다. 
절의 큰 규모와 많은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듯한 분주함이 어제 갔던 개심사의 고요하고 소박한 정취와 대비되면서 개심사를 더 그리워지게 했다.  
독재정권에 의해 조작된 간첩사건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르며 몸과 마음에 모두 깊은 상처를 받았을 노화가가
머물면서 마음을 치유하던 시절에는 이 산과 이 절이 그런 느낌은 아니었으려나... 아마도 대웅전만큼은 그 깊은 아름다움으로 노화가를 고요하게 위로해주었을 것이다. 






   


수덕여관으로 들어가는 돌다리위에서 내려다본 작은 개울.











수덕사를 떠나 부안으로 가는 길. 연수는 차에 타고 얼마 안있어 낮잠에 빠져들었다.
어린 얼굴이 고단해보인다. 여행은 참 고단한 것이지... 그러다가 문득 아주 행복하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는 것. 그게 여행인 것 같다. 









차는 변산반도국립공원을 향해가는 30번 국도에 접어들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드라이브 코스로 손꼽히는 30번 국도.
반도 서해의 곡선을 따라가며 아름다운 바다와 갯벌과 모래사장과 마을들이 펼쳐지는 길... 30번 국도에 들어서는 마음이 설레는데 얼마안가 '새만금간척사업'의 공사현장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바다를 막고, 갯벌을 메우고.. 포르레인과 덤프트럭들이 오고가고 검게 변한 갯벌이 꾸덕하게 말라 죽어가는 현장을 지나가며 
죽이지 마라, 아름다운 것들을 제발 죽이지마라... 터져나오지 않는 소리들만 마음안에서 되씹었다.










차를 격포항 주차장에 세우고 잠시 내려보니 이렇게 아름다운 절벽이 있다. 
바다와 자유롭게 오고가야할 것같은 물은 그러나 '격포 다기능항 건설공사'로 그만 거의다 막혀있었다.
지금 뚤려있는 좁은 틈도 곧 공사가 진척되면 메워질 것이다. 









격포항 건너편에는 '낚시꾼들의 천국'이라 불리는 위도라는 섬이 있다.
그 섬으로 오고가는 여객선도 있고, 작은 낚시배도 이렇게나 많다. 
격포항이 다기능항이 되면 격포항에 기대어 사는 어민들과 많은 음식점 상인들은 좀더 살기가 나아지겠지.. 그랬으면 좋겠다. 
그러나 아마도 다기능항이 된 격포항은 예전의 아름다운 풍광은 조금더 잃을 것만 같다. 

남편이 찜해둔 맛집인 '군산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어마어마하게 많은 반찬이 나오는 7천원짜리 백반이었는데 배도 고팠고 맛도 좋아 각자 공기밥 2그릇을 뚝딱 해치웠다. 










부안에서 잡은 숙소는 격포항에서 멀지 않은 '원창 해넘이마을'이란 펜션이었다.
문화관광부가 지정하는 좋은 숙박업소인 '굿스테이' 인증이 있는 집이었는데 아담하고 깨끗했다. 
주인아저씨도 무척 친절하시고 숙박료도 저렴한 편이다. 
'굿스테이 믿을만한데~'하며 하루 전날에야 다음 묵을 숙소를 잡고 있는 대책없는 여행자들은 숙소를 잘 잡았다고 무척 기뻐했다. 
연수는 방에 짐도 풀기전에 펜션 마당에 있는 튜브풀장으로 달려가더니 나올 줄 몰랐다. 
바다에 다녀오는 숙박객들이 물을 떠서 발에 묻은 모래를 씻고 들어가라고 만들어놓으셨다는데 연수는 바로 풍덩~ 입수! 









숙소 바로 앞에 있는 바닷가. 
고이 모셔온 모래놀이 장난감이 진가를 발휘할 시간!









신나게 한 삽 푼다.
모래놀이를 워낙 좋아하는 연수를 보며 아빠는 '삽질은 인간의 본능인가봐'한다.
여기서 이렇게 놀다가 아파트 작은 모래놀이터로 돌아가서 연수 섭섭해하면 어쩌지..^^









이 근방을 '적벽강'이라고 부른다한다.
중국 시인 소동파가 놀던 적벽강과 닮았다고 해서 그렇게 부른단다.  
근처의 채석강은 역시 당나라의 유명한 시인인 이백이 배를 띄우고 놀다가 강물에 비친 달을 잡으려고 뛰어들어가 빠져죽었다는 그 채석강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 하니 이 이름을 붙이던 당시의 중국 문화에 대한 흠모가 어느정도였는지 짐작된다. 작은 우리나라에도 대국만큼 아름다운 곳이 있다고 얘기하고픈 마음이었던걸까.. 하고 달리 생각해보기도 했다.
무튼 경치는 정말로 아름답다. 여기 앉아서 먼 바다와 가까운 절벽과 발밑의 조약돌을 바라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고맙고 또 고맙다는 생각을 할만큼.









발을 덮어주려고 모래를 파니 아주 작은 새우가 나온다. 
우리가 앉은 돌멩이에서는 고동들이 느릿느릿 기어내려갔다. 
연수는 돌에 붙은 고동들을 찾아내 등껍질을 살짝 건드려보기도 하고 고동의 느린 움직임을 오래오래 지켜보기도 했다.









물이 빠지고 있었다. 연수와 모래놀이를 하는 중에도 물은 계속 슬금슬금 먼 바다 쪽으로 걸어나갔다.
연수는 그 물을 따라가고 싶어했다. 
"더 깊은 곳으로, 저기 멀리 있는 바다로 가자" 먼곳으로 가보고싶은 마음이 이 어린 아이에게 참 강하기도 하다.
알랭드보통
겁이 없으니 아이들은 어른보다 더 낭만주의자일 수 밖에 없다.  










꼭꼭 숨어라~ 집게발이 보일라.














변산반도에서도 이틀밤을 잔다. 
하루더 이 바닷가에 있을 수 있다는게 행복했다.
무참한 공사현장들을 지나.. 그래도 남아있는 아름다운 것들 곁으로 기어이 왔다.




 







Posted by 연신내새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