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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3.18 다나 도노 8
umma! 자란다2010. 3. 18. 14:26








이 얘기는 그러니까 지난번에 적은 '따까 또꼬'의 2탄쯤 되겠다.
연수 생애 첫 문장이었던 '또꼬 따까' 이후 또 하나의 문장을 말하기 시작했는데 '다나 도노'였다.
이건 또 무슨 뜻일까..?
며칠을 두고 따라하며 생각한 끝에 드디어 알아냈다.

'다 눴냐? 또 눠라' ^^;;

이것도 연수가 똥쌀때 내가 자주 하는 말이다.
이제는 연수가 똥싸기전에 대충 낌새를 알아채는 내가 바지를 벗기고 욕실에 데려다놓으면
연수는 끙~ 하고 힘을 줘서 굵은 똥을 한 덩이 싼다.

"아이구~ 시원하겠다. 우리 아기 예쁜 똥 자~알 쌌네!"
칭찬을 해주면 자랑스러운 표정의 김연수, 제 똥을 가리키며 "똥! 크은~" 한다.
그러나 아직 똥꼬를 닦아주기는 이르다.
잠시 뒤, 욕실을 빠져나간 연수가 거실 어디쯤이나 방바닥에 또 똥을 싸놓기 때문이다.

"또 똥! 방!"
방에 똥을 또 싸놨다는 말이다.
"그랬구나, 방에 똥을 또 쌌구나~ 잘 했어. 엄마가 치울께." 하고 가서 휴지로 얼른 집어올리고, 바닥도 닦는다.
그러고 돌아서며 묻는 것이다.
"연수야, 이제 다 눈거야? 또 눠~"

연수는 보통 그 뒤로도 몇 번쯤 작은 똥을 더 싸고, 쉬도 살짝 한 뒤에 드디어 개운하게 그 날의 '큰 일'을 마친다.
나는 어린 똥강아지의 뒤를 따라다니며 똥을 치우고, 격려(?)하고, 만지지 말라고 주의를 주느라 덩달아 바쁘다.
욕실 안에서 끝까지 싸면 좋으련만, 왠 일인지 돌아다니며 싸는게 버릇이 된 연수는 
아직 한번에, 한 자리에 앉아서 볼 일을 끝까지 보지는 못한다. 
언젠가는 그런 날이 오겠지.. 아마 곧 올 것이다. 
그동안 나를 속상하게 했던 연수의 다른 행동들도 잊어먹고 한참 지내다보면 어느새 그쳐져 있곤 했다.
그렇게 지나가고 아이는 자라는 것이다. 아이는 제 속도대로 스스로 자란다. 너무 마음쓰고 애달복달하지 말아야지... 
똥밭에서 구르는 시절도 언젠가는 끝날 것이다....ㅋ~








아무튼 두 번째 문장까지 '똥'에 관련된 것이고 보니, 새삼 참 신기했다.
앵무새는 말을 배울때 욕부터 배운다는 얘길 본 적이 있다.
욕을 할때 뿜어져나오는 사람의 에너지가 그만큼 강해서 앵무새가 제일 먼저 그 말부터 따라하게 된다는 것이다.  
똥 얘기를 할 때 내 에너지가 그렇게 강한 것일까? 연수가 제일 먼저 따라할 만큼..? ^^;;

똥과 쉬는 제 몸에서 늘 일어나는 일이지만 볼 때마다 신기한 일이기도 하다.
어른들은 더럽다 여기지만 아이에게는 재미있는 일이다. 
똥이나 쉬를 가지고 아이를 다그치고 혼내는 일은 하고싶지 않았다. 
배설할 때마다 실수할까봐 긴장하고, 혼날까봐 마음졸이게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막상 기저귀하기를 싫어하는 녀석을 좀 벗겨놓고 지내면서 쉬도 변기에 시켜보고, 똥도 화장실에서 누게 하다보니
저 나름대로는 긴장도 되고 엄마가 하는 얘기들도 더 마음에 많이 남았던건 아닐까.
행여 아직 아이가 준비되지 않은 것을 요구해서 부담을 주고 있는건 아닐까.. 하는 걱정도 일었다.

배설에는 쾌감이 있다. 참았던 오줌을 싸고 나면 시원하고, 힘을 끙~ 줘서 큰 똥을 싸고 나면 뿌듯하다.
어른들에게는 그에 더해 사회적으로 점잖지 못하다고 여겨지는 소재들을 말하는 재미가 더 있다. 
그러니 아마 엄마가 '똥!'하고 '쉬!' 얘기를 하며 웃을 때 아이도 그 에너지를 감지하고 덩달아 신이 났겠지. ^^
아이가 배설의 즐거움을 마음껏, 편안히 누릴 수 있게 되길 바란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대하고, 잘 하면 많이 칭찬해주고 실수했을 때는 아주 살짝만 주의를 주려고 노력중인데 잘 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기저귀떼기에 스트레스가 없을 수야 있겠는가. 연수는 긴장되고 힘들 것이다.

무튼 우리 모자는 오늘도 똥 얘기하고, 똥 싸고 치우는 것으로도 모자라 똥 그림을 그려가며 깔깔거린다.
어느날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리다 문득 생각나 
"연수야, 엄마가 똥꼬 그려줄까?" 하고 엉덩이를 그렸더니 이 녀석, 다른 그림 그릴때보다 훨씬 신나하며 꺆꺅 거리는게 아닌가.
호응에 힘입어 똥도 그리고, 스토리를 붙여 연수가 좋아하는 '푹차'(포크레인)도 그렸다. 
푹차의 역할은 연수 똥을 받아 밭에 뿌려주는 것이다. 
그러면 풀도 더 잘 자라고, 꽃도 더 잘 자라서 음메(소)들이 맛있게 냠냠 먹는다는 나름 생태적인 그림동화(?)가 한편 탄생했다. 
이 녀석이 삽과 푹차를 너무 좋아하는 것을 보고 아빠가 "연수야, 안그래도 MB 시대에 삽이 문젠데, 너까지 삽을 들고 나서지 않아도 되는데..." 하며 한탄하기도 했던지라  
푹차의 생태적(?) 사용 사례를 찾아낸 것이 무척 다행스럽고 뿌듯했다. ^.,^

연수는 이 '똥꼬 푹차' 그림을 너무 좋아해서 놀이터 모래밭에서도 그리라하고, 저도 신나게 같이 그리고, 옆집 친구네에 가서도 얼른 그리라고 소리쳤다.
연수 또래인 그 집 아이는 벌써 알파벳을 읽는지라 엄마한테 알파벳을 쓰라고 성화인데 우리 아들은 똥을 그리라고 성화다.
나는 알파벳이 똥보다 우월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알파벳이나 똥이나 2돌무렵 아이들에게는 모두 놀이일 뿐이다.
그러나 분위기는 똥 쪽이 훨씬 화기애애했다. 
알파벳 쓰라던 아이와 그집 엄마까지도 어느새 똥에 동화되어 깔깔거리며 같이 똥을 그렸다. 
스케치북으로 쓰는 달력 한장이 똥으로 가득 찰 때까지...! ㅎㅎㅎㅎ 






 
 
엄마 노트도 예외가 아니어서 요즘 연수가 지나간 곳은 어디나 똥이고, 푹차다. ^^;;;
진한 분홍색 형광펜 선이 연수가 그린 '크은 똥'이다. ㅎㅎ

밥 잘먹고, 잠 잘자고, 똥 잘싸고, 잘 놀면 그야말로 최고인 아기 시절. 
엄마 걱정없게 똥 잘 싸주는 녀석이 정말로 고맙다. 
제가 좋아하는 그림도 생기고, 그걸 신나게 그리며 엄마랑 깔깔 웃을 수 있을만큼 커준 것도 대견하다.


'다나 도노'란 숙제를 풀고 나니 그 다음은 '시여 빠까'다.
이건 또 무슨 말일꼬....?
매일 새로운 숙제를 던져주는 작은 우리 샘덕분에 엄마는 오늘도 고심한다. 






Posted by 연신내새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