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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2010. 8. 14. 23:12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를 보고 왔다.
8월 11일 저녁8시 공연표가 두 장 생겼다고, 함께 보러갈 수 있겠냐는 선배언니의 문자를 받고
나는 핸드폰을 말없이 남편에게 보여주었다.
마침 예비군 훈련중이라 저녁6시면 집에 도착하는 남편은 문자를 보더니 "안 돼~~~~~~~!"하며 도망쳤다.

얼마전까지만해도 연수는 엄마 젖을 먹어야만 잠이 드는 아이여서 남편은 밤에 혼자 연수를 재워본 적이 거의 없었다.
이 말은 내가 연수가 자는 밤에 혼자 외출한 적이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지난 26개월동안.
꼭 가야할 문상이 있었을 때  일단 연수를 재워놓고 혹시 자다가 깨면 남편에게 잘 좀 달래서 재워보라고 당부하고 부리나케 다녀온 적이 딱 한번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 이제는 젖을 끊었고, 연수는 엄마 젖을 먹지 않고도 뒹굴거리다 잠들 수 있게 됐다.
낮잠은 몇번 엄마 없이 아빠와 자본 적이 있지만(주로 차에 태운채로) 그래도 밤잠을 엄마없이 과연 잘 수 있을까.. 
아이를 혼자 재우는 것이 아직 겁나는 남편인지라 저 문자를 보고 그만 질색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성의 힘은 무서운 것이어서....

마누라는 실로 몇년만에 밤외출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며
뮤지컬 공연은 넘 비싼 것이라 평소 쉽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젖을 끊은 뒤의 연수는 대개 완전히 지칠 때까지 놀다가 잠이 오면 어느 순간 푹 쓰러져 잔다는 사실 등등
여러가지 정황을 고려한 뒤에 남편은 그만 한숨을 푹 쉬고
기대에 찬 눈을 반짝거리며 부담스럽게 쳐다보는 나를 향해 "그래.. 재밌게 잘 보고와.."하고 말하고 말았다.



음하하..!!
그리하여 나는 몇년만의 저녁외출을, 역시 몇년만에 보는 뮤지컬 공연을 보러 연신내에서 역삼역까지 먼 길을 나섰다.
연수는 낮부터 엄마가 저녁에 어딜 다녀올지 거듭 얘기한 것을 듣기도 했고, 또 그날따라 낮잠도 안자면서 열심히 논 탓에 
졸린 눈을 하고는 아빠 품에 안겨 잘 다녀오라고 엄마에게 손을 흔들고 웃어주었다.
가벼운 흥분속에 집을 나섰다. 한낮에는 그야말로 집중호우가 연신내를 강타해서 길이 온통 물바다였는데 다행히 저녁에는 빗줄기가 많이 가늘어져있었다.

길을 걷고 지하철을 타고 책을 읽으며 목적지로 가는 그 모든 행동이 너무 단출해서 어색했다.
아이가 곁에 없으니 사방은 너무 조용하고 주위를 살필 일도 없다. 
역삼역 엘지아트센터에 도착해서 선배언니를 기다렸다. 
두 아이의 엄마인 선배언니도 이번 외출이 거의 2년만에 해보는 혼자만의 외출이었단다.
언니의 17개월된 둘째아이는 아직 모유를 먹는다. 두아이, 게다가 젖먹이 엄마의 외출준비는 나보다 훨씬 더 힘들었을 것이다.
지하철도 2년만에 타본 언니는 오랫만에 꺼낸 교통카드가 인식이 안돼 애를 먹었다고 했다. 
충전도 안되고 해서 결국 일회용 전철표를 사려고보니 종이로 되어있던 일회용 전철표는 이제 사라지고 보증금을 내고 구입했다가 도착해서 반납하면 보증금을 돌려받는 플라스틱 전철표로 바뀌어있더라는 얘길 해주었다. 음... 나도 역시 처음 듣고 본 것인지라 무척 신기했다. ^^;
 









두 아줌마가 우여곡절끝에 무사히 만나 관람하게된 뮤지철 '빌리 엘리어트'는 정말 잘 만들어진 극이었다.
원작인 영화도 참 감동적이었었다.
영화에 영상이 있다면 뮤지컬에는 음악이 있는 것 같다.
영화는 영상을 통해 차분하면서도 따뜻하게 빌리가 사는 마을의 골목과 춤추는 빌리를 보여주었다면
뮤지컬은 음악을 통해 아주 힘있고 열정적으로 빌리를 둘러싼 사람들과 사건들을 부각시켰다.

뮤지컬의 주된 배경인 '영국 광산노동자들의 파업'이라는 사건은 배우들의 생생한 표정과 대사, 그리고 무엇보다 장엄한 합창을 통해 표현되면서 보는 사람의 마음을 깊게, 힘차게 두드렸다.
아직도 노동자들이 파업을 하면 연대의 마음보다는 내 생활에 끼칠 불편을 걱정하거나 막연한 거부감을 갖는 것이 아직 우리 사회의 일반적인 정서가 아닐까 싶은데 
영국 역사상 최장 파업으로 기록된 대처 행정부 시절의 광업노동자들의 파업에 대해 이렇게 아름다운 노래로 표현할 수 있는 영국의 뮤지컬이 부럽기도 했고,  
그것을 원작 그대로 번역해서 2010년 한국의 대표적인 뮤지컬로 공연할수 있는 것만 해도 기쁜 일이라고 생각해야하는게 아닐까.. 싶기도 했다.

아무튼 촌스러운 나는 많은 관객을 앞에 둔 이렇게 큰 무대에서 
해고당하지 않고 계속 일하면서 꿈꾸고 마을을 지키고픈 광산노동자들의 투쟁, 노동조합으로 뭉쳐 스스로의 권리와 존엄을 지키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실은 어린 소년의 꿈에 날개를 달아주고픈 따뜻한 마음을 가진 우리의 가난한 이웃들이라는 이야기가 왜곡되지 않고 그려진다는 사실을 놀라워하고 어색해하며 지켜보았다.
물론 '빌리 엘리어트'는 광산촌에서 가난한 광부의 아들로 자라면서 제대로된 발레 교육을 받은 적은 없지만 마음깊이 춤에 대한 열정과 재능을 가지고 있는 소년, 그 소년이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꿈을 잃지 않고 자신의 날개를 펴가는 과정이 가장 뼈대가 되는 이야기고, 사람들도 빌리를 통해 꿈, 희망, 성장과 같은 메세지를 제일 많이 찾고 감동을 느낄 것 같지만 말이다. 
  
   
어린 소년 빌리의 발레에 대한 재능을 발견하는 윌킨슨 부인의 캐릭터는 아무래도 뮤지컬인지라 다소 과장된 면이 없잖아 있었지만 그래서 더 유쾌했고 재미있었다. 
빌리... 빌리를 비롯해 정말 멋진 꼬마 배우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나는 솔직히 어린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입장에 있다보니 아이들이 힘들 것에 마음이 자꾸 쓰였다.
2시간 30분이나 되는 긴 공연을 주연으로 소화하자면 얼마나 힘들까... 더구나 뮤지컬은 계속해서 춤도 추고, 노래도 하고, 대사도 해야한다. 열 두서너살쯤 되었을 것 같은 소년소녀들은 거대한 극의 한 구성원으로 정말 손색없이, 멋지게 공연을 했다.
그런데 그 모습에 그만 마음이 아팠던 것이다. 이렇게 하루 저녁 공연을 하고나면 며칠은 몸이 아프지 않을까... 지켜보기만 하는 나도 큰 일한듯이 몸의 에너지가 다 빠져나간 기분인데 앞에서 뛰는 사람은 얼마나 더 에너지가 쓰이랴.
자신의 소중한 꿈이 있고, 무엇보다 재능과 열정이 있어 이 무대에 기꺼이 지원해서 높은 경쟁률을 뚫고 오디션을 통과한 어엿한 배우들이지만 나는 왠지 이 어린 주연이 안쓰러웠다. 
모르긴 몰라도 서양 아이들은 우리 아이들보다 덩치도 크고하니 같은 나이라해도 덜 안쓰러웠을 것도 같다. 


이런저런 감상과 여운을 남기며 빌리 엘리어트는 끝났고, 나도 화려한 밤외출을 마치고 일상으로 복귀했다.
연수는 엄마가 집을 나선지 얼마 안돼 소파에 앉은채로 잠이 들었다 했다.
남편은 연수를 방에 데려다 눕히고 거실에서 조용히 회사일을 하고 있었다. 
평소보다 더 일찍, 더 평화로운 밤이 집에 찾아와 있었다.
오랫만에 먼 길을, 비속에 걸어다녀온 몸은 피곤했지만 마음만큼은 흐뭇했다.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의 음악은 정말 아름다웠다.
이날 공연은 뮤지철의 공식후원사인 신한카드 고객을 대상으로한 시사회였는데 입장권을 소지한 관객에게는 고맙게도 OST도 한부씩 무료로 나눠주었다. 
덕분에 집에 돌아와서도 때때로 뮤지컬의 감동에 빠져있을 수 있다.
연수는 엄마가 흥얼흥얼 따라부르는 뮤지컬 노래들을 저도 웅얼웅얼 흉내내보곤한다. 





Posted by 연신내새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