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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상2009. 9. 6. 15:17









얼마전 후배가 반찬을 만들어다 주었어요.
직접 키운 고추와 오이, 그리고 직접 딴 매실로 소박이와 장아찌들을 담궈서요.

한동안 참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후배의 할머님과 어머님이 모두 한식당을 하셨던지라 대를 이어 전수된 손맛은 훌륭했습니다.
그러나 어른들은 후배가 한 반찬은 '너무 달달하다'며 안드신다고 하니
전수생의 갈 길은 아직 먼 것일수도 있고, 
시대에 따라 입맛도 변하는 것이니 후배의 요리는 이 시대 대중을 위한 것일수도 있겠습니다. 

우리집에 손님이 오셨을때 저 매실장아찌를 접시에 담아 내놓았더니 
'이렇게 귀한 것을 주다니.. 너무 고맙다'고 거듭 인사를 하셨어요. 
매실을 따서 일일이 껍질을 벗기고 손질하는 것도 힘들고 큰 일이거니와 
매실 한 알에서 나오는 장아찌 조각은 정말 요만큼밖에 안 되기 때문에 
매실장아찌는 귀하게 아껴두고 먹는 비상반찬이라는 그 분의 얘기를 듣고
아까운줄 모르고 끼니때마다 푹푹 꺼내먹고 있던 제 무지함을 후회했습니다.

더불어 저 반찬을 만들어주기위해 후배가 했을 노력, 그 고생을 
제 값도 모르고 쉽게 받아먹고만 있었구나.. 싶어 미안하고 고마웠습니다.

살림실력없는 선배(살림에 '도전'하고있는^^;)가 어린 아기까지 키우며 고전하는 것이 안쓰러웠는지
그 전에도 후배는 놀러올 때마다 손수만든 반찬을 몇가지씩 싸다주곤 했어요.
멸치볶음, 감자조림, 무말랭이무침 등등... 

그렇게해서 우리집 냉장고에 들어오게된 후배의 반찬통을 열 때마다
'나는 지금껏 살면서 내 자신과 가족 아닌 누군가에게 이렇게 지극한 정성을 나눠준 적이 있었나' 반성합니다. 
손수 만든 반찬을 정성껏 담아 선뜻 건네주는 손길의 아름다움.
나도 그렇게 아름답게 살아야겠다... 볼 때마다 생각합니다.
      








반찬은 정말 정성인 것 같아요.
밥과 국을 만드는 데도 정성이 필요하지만 그 둘은 식사를 위해 필요한 최소한이니, 간단하게라도 어떻게든 끓여먹게 됩니다. 
하지만 손도 많이 가고 갖은 양념이 필요한 반찬들은 엄두내기가 어려워요.
그래서 기름에 굽기만하면되는 전이나 생선과는 또 다른.. 볶고, 조리고, 무치는 반찬들은 여간해서는 
우리집 식탁에서 구경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제 새댁도 어느새 결혼 3년차 주부.
누가 '요즘 뭐해요?'하고 물으면 '집에서 애기키우고 살림해요'라고 대답해야할 처지에
제대로된 반찬 하나 못 만들고 지내서야 되겠나.. 싶어
큰 맘먹고 생협에 '마늘' 한 망을 주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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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새학기 시작하며 드높은 포부로 두꺼운 전공책들을 거금주고 사놓고 
책꽂이만 바라봐도 흐뭇해하던 학생시절마냥 
마늘 한 자루를 베란다에 걸어놓고 수시로 쳐다봅니다.
보기만해도 배가 부른듯 든든합니다.

결국 그 전공책들은 몇 번 펴보지도 못한채 그대로 책꽂이에서 먼지만 뒤짚어쓰기 일쑤였지만... 
저 마늘 한자루는 꼭 다 먹으리라.. 
절구질 좋아하는 똑순이를 데리고 앉아 콩콩콩 잔뜩 찧어 병에 담아놓고
국에도 넣고, 각종 나물 무칠때도 넣고.. 내친김에 올해는 김치도 직접 한번 담가보리라.. 딱 한 포기만. ^^ 
  
생각해보면 우리 고유의 음식문화는 '저장의 문화'가 참 많은데, 
도시에서 핵가족으로 살면서 제일 안하게 되는 것이 김치, 장 담그기 같은 저장 음식만들기 같아요. 
김치냉장고는 시골에서 어른들이 보내주신 것들을 그야말로 '보관'하는데만 쓰이고요.
장독대가 사라진 대신, 슈퍼에서 쉽게 사다먹을 수 있는 것들로만 밥상을 차리는것 같아 서글플 때가 있습니다.
마늘 한자루 사다 걸어놓고, 국산천일염 한 포대 사다놓고..
나도 이제 어디가서 살림한다고 얘기할 수 있으려나? 생각하니 우습습니다. 그 둘로 아직 암 것도 안했거든요. ^^;;    








똑순이와 함께 아파트 화단을 따라 산책하는데 어느집 부엌에선가 너무도 고르롭고 상쾌한 칼질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탁탁탁탁 탁탁탁탁 다라락다라락 다라라라락'
아. 저기 또 '살림의 달인'이 한분 살고계시는구나.
새댁은 흉내도 못 낼 이 칼솜씨의 주인공께서는 이 저녁 무엇을 만들고 계실까.. 
저만한 칼소리를 내기까지 저 분이 차린 밥상은 얼마나 많았을까.
생각하니 아득하기도 했지만
높은 창 아래 서서 가만히 듣고있으려니 그 정성과 수고로움의 기운이 제게도 전해지는 듯했습니다.

내일은 이웃에 사는 쌍둥이엄마께서 '배추 겉절이'를 담궜다고
함께 와서 점심을 먹자하시니 상큼한 배추겉절이에 밥을 비벼 한끼 또 배부르게 해결하게 생겼습니다.
정성껏 만든 반찬을 함께 먹으면
만든 이의 정이 입과 목구멍을 지나서 저 깊은 배속까지 뜨뜻하게 들어와 박히는 것 같습니다.

곧 새댁도 어설픈 칼질로나마 뭔갈 좀 만들어 놓고
후배를 불러 맛도 보이고, 이웃 애기엄마들과도 나눠먹어야겠습니다.




Posted by 연신내새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