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벌이부모'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09.09.14 엄마 걱정 10
2009. 9. 14. 23:00








엄마 걱정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추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간 창 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 기형도 시집 '입 속의 검은 잎'(1989) 중에서



얼마전 후배의 블로그에서 이 시를 읽었다.
가슴을 뭔가로 맞은 것처럼 찡하고 아팠다.
기형도 시집의 맨 마지막 시였다.  

어린 시절에, 엄마는 가끔 지하시장 한귀퉁이 만두집 탁자앞에 나를 앉혀놓고
만두 천원어치, 혹은 찐빵 천원어치를 시켜주고는
엄마가 돌아올 때까지 이걸 먹으며 기다리고 있으라 이르고 장을 보러 가셨었다.

생선가게들이 줄지어있는 어두운 지하시장 한켠에서
나는 아주 천천히 만두를 먹었다.
엄마가 돌아오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하는 그 와중에도
달달한 찐빵은, 보드라운 만두는 참 맛있었다.
그릇이 비어가면 먹는 속도는 점점 느려져서
엄마가 돌아올 때까지 한개는 꼭 남아있었다.
저만치 엄마가 보이면, 혹은 내 등뒤에서 엄마가 나타나면
나는 얼른 남은 하나를 꿀떡 삼키고 
엄마 손을 잡고 물이 찰박거리는 지하시장을 떠나 지상으로 올라갔다.

얼마나 안도스러웠던가.. 엄마가 나를 데리러와준 것이, 나에게로 돌아와준 것이.
그러나 돌아보면 이정도 기다림밖에 안 가지고 자랄 수 있었던 내 유년은 얼마나 풍요로운 것이었던지.

누구나 엄마를 기다려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모든 아이들은 엄마를 기다리며 크는 것인지도 모른다.
바쁘게 뛰어노는 시간도, 뭔가를 배우는 시간도, 때론 무료하게 흐르는 시간도 
엄마가 곁에 없으면 모두 온통 엄마를 기다리는 시간일지도 모른다.

아직 어린 우리 아기는 엄마와 하루종일 붙어있으므로 엄마를 기다리는 시간도 거의 없을 것 같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내가 잠시 화장실에 가면 아이는 문앞을 오가며 기다리고, 
집안일을 할 때도 혼자 장난감을 가지고 놀면서 기다린다.
제 밥을 다 먹은 뒤에는 얼른 엄마랑 같이 놀고 싶어서 엄마가 밥을 다 먹을 때까지 기다린다.
자는 동안에도 엄마가 제 곁에 와서 누울때까지, 그래서 팔을 휘젖거나 발을 뻗으면 엄마 살이 닿을때까지 기다릴지도 모른다.

기다림을 배워가는 것이 인생일지도 모른다.
세상일 중에는 꼭 기다려야만 하는 것도 있고, 그런 것들은 잘 기다릴줄 아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다른 것도 아닌 엄마를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지는 말아야지.
아이가 자라는 동안, 나를 기다리느라 훌쩍거리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가끔 늦은 시간까지 아파트 안에 있는 유치원에 불이 켜져 있으면 마음이 짠하다.
어느 아이가 아직까지 엄마를 기다리고 있구나.. 생각하면 
그 아이의 두려운 마음이 내게도 전해지는 것 같다. 
기다리는 아이에게 돌아오려고 그 엄마, 혹은 아빠는 이 저녁 또 얼마나 마음졸이며 서두르고 있을까..
  
아이들을 너무 일찍, 너무 오래 엄마아빠와 혹은 할머니할아버지같은 살가운 어른들과 떼어놓는 것이
요즘 도시의 어쩔 수없는 삶의 방식인지도 모르겠다.
또래 아기엄마들과 모여앉으면 아기를 어딘가 맡기고 일을 해야할까, 어쩔까 하는 고민이 자연스레 화제에 오른다. 
당장의 생계를 위해 어쩔수 없는 경우도 있고, 
당장의 생계는 아니지만 이 살벌한 서울땅위에 내 집한간 마련하고, 아이들 공부시키며 살려면 맞벌이하지 않고는 안된다고도 하고,
엄마도 자기 일을 계속 하고싶고, 혹은 자기 꿈을 위해 공부를 하거나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한 경우도 있는데
그 모든 필요와 미래와 고민을 접고 아이와 온전히 함께 지내기가 쉽지않다.
그래서 모두들 엄마가 키우는게 아이에겐 제일 좋다고 얘기하면서도 '그렇지만..'하며 긴 한숨을 내쉬게 되는 것이다. 

아이양육비나 교육비를 걱정하지 않을 수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내 집마련과 노후대책을 위해 아둥바둥 몇십년을 맞벌이하지 않아도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엄마나 아빠가 일하는 직장안에 탁아시설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간절히 함께 있고픈 엄마와 아이를 떨어뜨려놓는 세상의 모든 처사들은 비인간적이고 어리석다. 



 

덧.
사람은 아는만큼 꿈꿀 수 있다. 그리고 꿈꾸는 것만이 현실이 될 것이다.
어제부터 읽기 시작한 책 <3살까지는 엄마가 키워라>(스티브 비덜프 지음, 북섬 출판사)에 보니 
스웨덴이나 독일같은 나라에서는 육아휴가를 3년으로 규정해(그중 첫해에는 거의 100% 가까운 임금을 지급한다) 부모의 복직을 보장한다고 한다. 
이렇게 가족정책이 잘 발달한 나라의 젊은 부모들은 어린아이들(특히 만3세 이하의)을 보육시설에 맡기지 않고 직접 돌볼 수 있다.
이른바 big3 라고 불리는 '유급 육아휴가/ 탄력적 근무제(하루 근무시간을 줄이는 것, 그러면 아이를 '아침부터 밤까지' 보육시설에 맡기지않을수있다)/ 고용보장'의 3대 정책이 잘 마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부럽다.. 고만 말하고 말려니 화가 난다. 왜 우리 사회는 이런 제도를 마련하지 못할까.. 
저출산의 대책으로 정말 필요한 것은 이런 것들이 아닐까.
아. 저 책은 곧 서평을 올릴 생각인데.. 그 전에라도 관심있는 분들께 일독을 권하고싶은 좋은 책이다.






 
 
Posted by 연신내새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