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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1.04 강릉일기
하루2013. 1. 4. 20:28

 

 

강릉에도 눈이 살짝 왔다.

서울이나 다른 지방처럼 많이 온 것은 아니고, 기온도 다른 지역보다는 조금 높다.

영동지방 날씨는 특이한 구석이 많아서 다른 곳이 추울 때 따뜻하고, 다른 곳이 더울 때 서늘하고, 눈도 남들 안올 때 폭설 오곤한다.

 

그래도 여기도 춥다.

'대한이가 소한이 집에 놀러왔다가 얼어죽었다'는 옛말도 있는(^^) 그 소한 추위가 대단하다.

그래도 애들은 밖에서 노는걸 좋아한다.

눈온 날 아침, 연수는 할아버지 따라 눈치운다고 마당에 나서서 작은 삽으로 제 맘껏 길을 낸다.

 


 

 

 

 

잠옷 밑에 패딩 바지 입고, 잠옷 위에 패딩 점퍼 입은 연호도 하삐 옆에서 빗자루질 영차영차~! ^^

 

 

손학규씨가 쓴 '저녁이 있는 삶'이란 책 제목이 참 인상적이었는데, 잠시 패러디하자면 나는 '마당이 있는 삶'이 좋다.

내 생각에 '마당이 있는 삶'은 '할아버지가 있는 삶'이다. '아버지가 있는 삶'이기도 하다.

할머니와 엄마도 마당에서 이런저런 일을 하시지만 그래도 마당은 할아버지나 아버지의 존재감이 빛나는 공간이다.

이 곳에서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아버지의 일을 배운다.

눈이 오면 마당에 쌓인 눈을 치우고, 집 안팎을 돌아보고, 자동차 세차도 하고, 집에 딸린 텃밭이나 논에서 거둔 곡식들을 손보아 잘 갈무리해두기도 하는 곳.

낙엽이 떨어지면 비질을 하고, 덥수룩하게 자란 집 둘레 나무들의 가지치기를 하는 곳.

아이들과 배드민턴을 칠 수도 있고, 손주들의 발놀림이 그새 얼마나 야무져졌나 가늠하는 재미로 할아버지가 축구공을 던져주시는 곳.

겨울 초입에 아이들과 상주 시댁에 갔을 때는 시골집인 시외가 마당에서 할아버지들이 장작을 패기도 하셨다.

아직 아궁이가 두 군데나 있는 시외가의 겨울 준비를 하기위해 도시에서 온 자식들이 산에 가서 나무를 해오고, 함께 장작을 마련하고, 아궁이에서는 손주들을 위한 고구마가 구워지는 그 풍경이 나는 참 좋았다.

 

아버지들의 노동이 주로 집에서 멀리 떨어진 회사나 공장에서 이루어지고,

집의 형태도 자기 마당이 따로 없는 공동주택이 대다수인 도시의 집에서

고단한 노동을 마치고 돌아온 아버지들은 사실 집에서는 큰 존재감을 갖기가 어렵다.

아이들의 놀이감을 가지고 함께 놀아주는 것도 한두시간이지, 그 이상 노는 것은 힘들기도 하고 또 피곤한 아버지들도 쉬어야하니

집은 그냥 잠을 자고 다시 일을 하러 나가는 공간 이외의 역할을 하기 힘들다.

주말이라도 공원이나 어디 밖으로 나가지 않는 이상 집안에서는 잠시 아이들과 장난감을 가지고 함께 놀다가 지치면

아버지가 TV(스마트폰)를 보거나 아니면 아이들을 TV(스마트폰)앞에 앉혀놓고 어른들이 잠시 한숨돌리거나 하는 이상의 활동이 어렵다.

버트란트 러셀이라는 철학자가 <행복의 정복>이라는 책에서 아파트를 두고 '아이들이 놀 수 있는 장소도 없고 어른들이 아이들의 소란을 피할 곳도 없다'고 했다는데

참 적절한 통찰이 아닐 수 없다.

안과 밖이 모두 존재하는 집이 아니라 '안'만 있는 아파트나 공동주택에서는 아이들은 마음껏 놀 수가 없고(층간소음 때문에도 그렇고 집안에 함께 있는 어른들로부터 '조용히 좀 하라'는 말도 거듭 들어야하므로), 어른들은 조용히 휴식을 취할 수가 없다.

 

마당에서는 어른들은 일을 하고, 아이들은 놀 수 있다.

그러다가 어느결에 아이들은 어른들의 일을 어깨 너머로 배울 것이다.

함께 조금씩 해볼 수 있을테고, 몸이 커지고 손도 야물어 질 때쯤 되면 생각도 깊어질 것이다.

마당에서의 소란은 하늘과 땅이 그 소음을 흡수해주고 햇살과 바람이 그 빛나는 존재들을 더 빛나게 해주어서인지

아이들이 밖에서 내뿜는 에너지는 집안에서와 달리 어른들을 지치게 하기보다는 어른들에게 빙그레 웃음을 짓게 만드는 힘이 되는 것 같다.

 

나는 마당있는 삶을 꿈꾼다.

아마도 우리 가족에게 마당이 생긴다면 그 마당에서 벌이는 일의 대부분은 주로 내가 하는 일일 것이다.

남편은 아마도 전기 배선이나 수도, 크게 힘써야하는 뭔가를 옮겨놓는 일 정도를 제외하면 아마 거의 마당에서 일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자본주의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기 때문에 이미 충분히 회사에서 고된 노동에 시달린 남편이 집에서 또다른 일을 더 하기는 힘들기 때문이기도 하고

본인의 성격이나 취향상 잘 맞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니 아마 우리집에서 '마당이 있는 삶'은 '아버지가 있는 삶'이기는 어려울 것이지만 '엄마가 아주 행복한 삶'이기는 할 것이다.

 

나는 마당에서 꽃과 나무를 가꾸고 싶고, 작은 텃밭에다 푸성귀를 심어서 키우고 싶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개나 고양이를 키울 수도 있겠고

작은 수도가를 두고 여름에는 물놀이도 하고

평등한 가사노동에 대한 훌륭한 메세지를 담고있는 그림책 <돼지책>에 나오는 엄마처럼 자동차를 즐겁게 정비할 수도 있을 것이다.  

겨울에 눈이 오면 아들 셋과 함께 마당에 쌓인 눈을 치우고 여력이 되면(아들 셋이 이렇게 든든하게 느껴진 적이 없었다 ㅎㅎ) 동네골목에 쌓인 눈까지 같이 치우는 상상을 하며

나는 한참동안 참으로 흐뭇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마당있는 삶이 빠른 시일내에 우리들의 삶속으로 꼭 들어와주었으면 좋겠다. ^^

 

 

 
 

 

 

 

연수는 작년에 외갓집에 왔을 때

그야말로 '폭설'이 내렸던 외갓집 마당에서 눈천사를 만들며 놀았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살짝 내려 아쉬운 눈위에서도 눈천사를 만든다.

이제는 여섯살이 된 나의 큰 아기.

 


 

 

 

 

엊그제는 외할머니가 맛있는 메밀전을 부쳐주셨다.

친정에서 차로 10분거리에 사는 언니가 조카를 데리고 놀러왔다.

고향집에 오면 부모님과 함께 언니를 만날 수 있다는 것도 큰 기쁨이다.

어느새 마흔이 된 언니. 어린시절의 언니를 꼭 닮은 조카딸.  

나이들어가시는 부모님 가까이에 우리 남매들중 한 사람이라도 가까이 살고 있는 것이 참 다행스럽게 느껴진다.

고마운 언니, 나이 들수록 애틋해지는 우리 언니.

 


 

 

 

"안녕하세요, 저.. 연호예요."

짜잔~~ 이 분이 누구신가~!

2:8 가르마를 예쁘게 타시고 머릿기름 자르르 발라 앞머리를 곱게 넘기신 이 분.

귀염둥이 우리 둘째 아들되시겠다. ㅎㅎ

 

 

 

 

 

 

이 날의 헤어스타일리스트는 바로 '하삐'!

아버지가 늘 바르시는 머리 화장품으로 외손주들 머리도 곱게, 곱게 빗겨주셨다. ^^;;;

 


 

 

 

 

연호의 변신이 넘 재미있었던지 연수도 자청해서 할아버지께 머리를 맡겼다. ㅋㅋ

머리도 늘 신경써서 손질하시고 옷도 깔끔하고 멋지게 입으시는걸 좋아하는 멋쟁이 우리 아빠.

손주들의 머리도 참 정성껏 손질해 주셨다. ^^ 


 

 

 

 

 

'오빤 하삐 스타일~!!'

 

머리숱이 많은 연수는 연호만큼 극적인 변신을 선보이진 않았지만 그래도 잠시동안은 앞머리가 아주 단정했다. ㅎㅎ

외가에서 지내는 동안 아이들은 아침마다 세수를 곱게 하고, 할아버지 옆에 앉아서 로션을 바르고 할아버지가 헤어로션 발라 싹싹 빗어넘겨주시는 손길에 머리 단장을 한다.

참... 어디 꽃미남 대회에라도 내보내고 싶으나... 이 추운날 갈 데는 없다. ㅎㅎ

다행히 외갓집에는 관객이 많아서 아침마다 아이들은 외증조할머니와 외할머니, 엄마의 열렬한 환호를 받고 있다.

냄새가 무척 진한 할아버지의 헤어로션 향기를 온 집안에 뿌리며~~^^;;

 


 

 

 

 

연호는 매일매일 이웃집인 옥계집 개들에게 문안인사도 빼먹지 않는다.

저 위에 큰 개가 앉아있는 저 양지바른 자리는 엄마가 어릴때 늘 소꿉놀이하던 곳.

삼십년 세월동안 튼튼히 서있는 저 벽도 신기하고(가만보니 다시 쌓으신 것도 같다), 저 벽 뒤에 있는 아름드리 키 큰 소나무들은 나를 기억하는지

양지바른 저 자리에서 매일 흙과 사금파리를 조물락거리며 놀던 그 꼬마 여자아이는 나중에 커서 무엇이 될지

나는 연호 뒤에 서서 한참동안 궁금해하곤 한다.

그리고 올려다보는 강릉의 겨울 하늘이 참 파랗다.

 

 

 

 

 


 

Posted by 연신내새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