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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10.10.19 둘째가 오다 26
umma! 자란다2013. 6. 6. 23:07






아이를 키우다보니 성격때문에 예쁜 아이가 있다는 것을 알겠다.

예전에 우리 엄마가 나를 보고 '욱이는 성격이 참 좋아, 잘 삐지지도 않고 이해심도 많고..'하고 얘기하면 쑥스러우면서도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그때는 그저 '내가 성격이 좀 좋긴하지...'(ㅎㅎ)하고 생각했을 뿐 그 말의 깊은 의미는 짐작하기 어려웠다.

이제 내가 아이들을 낳고 키우면서 보니 그게 어떤 것인지 조금씩 더 알 것 같다. 


내게도 그런 '성격좋은 아이'가 있다.

너무너무 예쁘고 고맙고 미안하고.. 그래서 짠한 우리 둘째, 연호 말이다.

 

연호는 아기때부터도 참 잘 웃었다. 아주 예쁘게, 빵긋! 웃는다. ^^

웃는 연호를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지고 고마워진다.

얼마전 외갓집에 갔을 때, 밭가의 흙길을 걸어오며 아이의 작은 손을 꼭 잡고 조심조심 걷는 일에만 신경을 쓰다가 문득 연호 얼굴을 쳐다보았는데 이 아이는 어찌나 즐겁게 방긋! 웃고 있던지.. 제 곁에서 제 손을 잡고 걷는 엄마를 바라보며, 이 순간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의 얼굴을 하고..

문득 근심많던 엄마의 마음에 따뜻한 햇살이 비춘듯 밝아지게 해주던 아이.





 

 


이제 곧 두 돌이 되는 연호.

우는 동생에게 '아가, 형아 찌찌! 형아 찌찌~!'(아가야, 형아가 찌찌 줄께!)하며 제 윗도리를 걷어올리기도 하는  어린 형아다.



 

 



 

연호는 아기때부터도 낯가림이 없는 아이였다.

어른들을 좋아하고 참 잘 따른다. 만나는 누구에게라도 반갑게 인사하는 것을 좋아하고 방긋 웃으며 다정하게 대한다.

자주 뵙지 못해 서먹할 수도 있는 할아버지할머니들께 아기때부터도 스스럼없이 먼저 다가가 안기고, 잘 따르고, 헤어지고나서도 잘 기억하고 그리워했다.

그래서 연호는 제가 있는 곳 어디서나 늘 따뜻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그런 연호가 내 곁에 있어서, 나의 아이로 태어나주어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무언가 제 눈에 곱고 좋은 것이 보이면 '우아!'(우와)하고 환호하는 아이.

다른 형제들과 집안일로 늘 바쁜 엄마가 잠깐 저와 놀아주려고 '연호야, 엄마랑 이거 하고 놀까?'하면 '아호!'(야호)하는 아이.

세살박이 연호가 아직도 너무나 귀엽고 여린 아가 목소리로 하는 '야호' 소리를 들을 때마다 나는 그 소리가 너무 고맙고 예뻐서 눈물겹다.

얼마나 좋으면, 엄마와 함께 노는 것이 얼마나 기쁘면.. 때로는 너무 졸리고 고단해서 기운이 하나도 없을 때 '엄마가 안아줄까?' 물으면 '아아호~' 하는 우리 둘째..

 

이번에 산후조리해주러 올라오셨던 시어머님은 한달을 우리와 함께 사시는 동안 연호와 제일 깊이 정이 드셔서 다시 상주로 내려가신뒤에 한동안 전화로 연호 목소리만 들으면 눈물이 왈칵 하셨다고 했다.

강릉 외가에서 2주를 지내는 동안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와도 정이 아주 듬뿍 들어서 집에 돌아와서도 '하삐, 어디? 함미, 어디?'하고 자주 찾았다. 자주 전화해 '하삐, 사탕! 할미! 사탕~!'하며 사탕달라고 조르는 연호 목소리를 들으며 외할아버지, 외할머니는 급기야 큰 아이스박스에 연호가 좋아하는 사탕과 과자를 잔뜩 넣어서(각종 밑반찬과 김치까지 한가득 넣어서ㅜ) 택배로 부쳐주셨다. 할아버지, 할머니 정을 그리워하며 찾는 어린 연호에게 그렇게라도 하삐, 할미의 따뜻한 마음을 전해주시고 싶어서...^^ 

연호는 그 상자를 받고 너무너무 기뻐했다. 

외갓집에서 외할아버지가 한두개씩 주시던 카라멜사탕을 먹으며 하삐, 할미 생각을 하고 좋아하는 아이. 연호는 그런 아이다.  

 



 

 

 



연수와 연호는 정말 다르다.

생김새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두 아이를 키우는 동안 나는 늘 연수가 더 마음에 걸렸다.

첫 아이인 연수 키우면서 부딪히는 일들은 엄마도 다 처음 겪어보는 일이고, 그래서 늘 어렵고 걱정이 많이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동생이 태어난 뒤 동생에게 엄마를 많이 내어주어야하는 큰 아이 마음이 허전하고 섭섭하고 어린 동생에게 질투도 나고 할 것 같아 큰아이를 더 보듬어줘야겠다 싶어서 그런 것도 있지만

연수가 워낙 예민하고 고집도 센 아이여서 연수를 둘러싼 이런저런 사건들이 많아 머리 속에 늘 연수 고민이 떠나지 않았다.


그에 반해 연호는 아기때도 연수에 비하면 정말 순하게 잘 자고, 잘 먹고 잘 자라주었고 자라는동안 늘 밝게 웃고 잘 놀아주어서 그저 잠깐씩 쳐다보고 '아 이 아이는 참 예쁘구나..'하고 생각하는 일말고는 크게 걱정할 일이 없었다.

그래도 어린아이 키우는 일이 쉬운 것은 아니니 연호 돌보다가 지치고 고단해지는 순간들도 많기는 했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이 '둘째가 첫째보다 훨씬 예쁘다면서요?'하고 물으면 내 대답은 '글쎄... 나는 첫째가 더 예쁘던데..'였다.


사실 그랬던 것이 연수를 키우는 동안 얼마나 행복하고 기쁜 순간이 많았던가, 힘들었던 순간들도 많지만 그것까지 다 포함해서 나와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 보냈고, 그만큼 깊은 정이 든 첫아이인만큼 내 마음에서 연수 자리는 정말로 컸다.

연수는 어릴 때부터도 참 민감한 아이였다. 잠을 잘 안자는 것도 그랬지만, 낯가림도 심했다. 조금 커서는 낯선 어른들이 자기에게 말을 걸거나 몸에 살짝만 손을 대도 소리를 지르며 싫어할 정도였다. 할아버지할머니께도 살갑게 대하는 일이 별로 없었다. 외갓집은 그래도 한번 가면 2주 정도씩 머물면서 할아버지할머니와 많이 놀고하니 잘 따르고 좋아했지만 명절에만 잠깐씩 뵙는 친가 어른들께는 아직까지 그리 다정하게 대하지 못한다. 연제낳고 산후조리해주러 오신 할머니와는 내내 부딪히며 화를 냈다. 속마음으로는 저도 할머니와 다정하게 지내고 싶었을텐데 겉으로는 할머니가 야단치고 잔소리한다며 할머니를 싫다고하면서 버릇없이 굴었다.

그런 연수를 보고 있으면 나도 속도 상하고, 걱정도 되고.. 저 아이가 잘 클 수 있을까, 내가 잘 키울 수 있을까.. 두렵고 불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렇게 연수 걱정을 하다가 연호를 보면 연호가 낯가림이 없을뿐만 아니라 오히려 제 다정함으로 어른들의 마음을 포근하게 해주기까지 하는 아이라는 것이 다행스러우면서도 자꾸 엇나가는 연수가 안쓰러워 마음이 무거웠다.


무튼 '첫째가 더 예쁘다'고 말하면서 연호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혹시 연호가 듣고 속상해하면 어쩌나.. 좀 더 조심해야겠다.. 싶기도 했지만 그게 솔직한 내 마음이었다. 

연수를 바라보고, 걱정하고, 또 큰 아이가 보여주는 빛나는 성장의 순간들을 쫓아가느라 어쩌면 둘째에게는 그만큼 마음을 내주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 어느 때부턴가 천천히, 연호가 엄마 마음속에 조금씩 제 자리를 키우며 들어오기 시작했다.

일찍 동생이 생겨서 '이 아이의 아기 시절은 너무 짧겠구나..'하고 안쓰러워하기 시작했을 때부터였을까.

부드럽고, 유연하고, 그러면서도 단단한 연호의 성격이 조금씩 드러나보이기 시작할 때부터였을까.

그런 연호의 성격에 내가 깊이 위로받고 위안을 얻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부터였을까.


아. 이 아이는 이런 아이구나... 하고 내가 깊이 느끼면서부터 그전보다 연호가 더 고맙고 예뻐졌다. 

둘째가 주는 깨달음이었다.

존재는 모두 다르다는 것. 제 고유의 빛나는 성격과 특징이 있다는 것.

그것이 충분히 사랑스럽고 너무나 빛나고 그래서 예쁘다는 것.

아이들은 모두 제 안에 깃든 고유한 아름다움들을 충분히 꽃피울 때 그 빛을 발견한 사람들로부터 사랑받게 되는 것이구나... 나는 연호를 보며 알게 되았다.  

 

 



 






이제 누가 나에게 같은 질문을 하면 나는 전과 비슷하지만 조금은 다르게 대답할 것 같다.

'아휴.. 그럼요, 우리 둘째가 얼마나 예쁘다고요.. 성격도 좋고, 잘 웃고.. 근데 첫째는 또 첫 정이 무섭다고 제일 미우면서도 제일 마음 많이 쓰이고.. 이뻐요. 지금은 못난 오리새끼같이 굴고 있지만 저 녀석도 얼마나 예쁜 녀석인지 나는 알지요. 겉으로 센 척해도 속은 제일 여려요, 첫째가.. 우리 둘째는 마음은 오히려 형보다 씩씩할껄요. 사람들한테 마음도 잘 열고 .. 따뜻하고 좀더 안정된 느낌이 들어서 둘째한테는 엄마가 많이 위로받아요...' 

  

 

이렇게 쓰고보니 이제 고작 두돌된 둘째를 두고 너무 훌쩍 큰 아이 얘기하듯 말한 것 같다. ㅎㅎ
그래. 아직은 어린 아가지. 우리 둘째도. ^^
엄마가 요즘 네게 얻는 위안이 크다보니 그랬구나...

두돌이 된 연호는 요즘 한창 말이 늘고있다.
제 나름대로, 저만의 말들로 문장을 만드는데 그게 꼭 우리가 영어 처음 배울 때 우선 아는 단어 쭉 붙여놓는 식이라 듣고 있으면 너무 재밌다. 

"아가 꾹 아니!"(아가는 꾹 누르면 안돼)
"엄마 아가 아장아장, 엉호 엉큼엉큼, 가치 바께!' (엄마는 아가 업고, 연호는 성큼성큼 걸어서 같이 밖에 나가자는 말..^^;)
"빠빠, 아~꼼, 사탕, 이아아~~안큼!" (밥은 조금만 먹고 사탕은 이만큼 많이 먹겠다는 말..^^;; 그래도 며칠전부터는 "빠빠, 다, 아자" 밥 다먹고 과자 먹는거라며 밥한그릇 먼저 다 먹는다. 기특기특!! )
"커~ 돌 줘, 치치 기인거" (큰 돌 주워줘, 기차가 길어.. 우리집 냇가에서 퐁당퐁당 돌 던지며 놀다보면 지하철이 지나간다.) 

토끼는 '타키', 사랑은 '상앙', 오리는 '깩깩'.. 엄마밖에 못 알아듣는 말도 아직 많지만
말하는 즐거움을 날로 알아가서 열심히 말하는 연호와 얘기 나누는 것이 요즘 나의 큰 즐거움이다.   








"엄마, 가치, 가자!" 
때로 어린 동생 젖물려 재우느라 엄마가 제 뜻대로 움직여주지 못할 때 
연호는 아주 서럽게 울면서도 저 말을 열심히 한다. 
엄마가 언젠가는 들어주리라고 믿고 꺼이꺼이 울음을 삼키면서도 거듭 거듭 한다.
"엄마, 가치, 가자! 엉호, 같이, 가자!" 
 
지금 아가를 재워놓지 않으면 아가도 힘들어 울고, 연호 하자는 것도 못 해주고 더 어려워진다는 생각에 엄마는 연호를 더 울리더라도 바로 일어서지 못한다.
연호는 엄마 손을 끌어당기며 오래오래 울고나서도 엄마가 겨우 아가재우고 드디어 일어서면 
금새 울음을 그치고 훌쩍거리면서도 마음을 푼다. 이제라도 엄마가 제게 와줘서 다행이라는 듯이, 이제는 다 괜찮다는 듯이 엄마 손을 잡고 제가 원하던 것을 하러 간다.
그 모습이 너무 대견해서, 미안하고 고마워서 꼭 안아보면 몸은 작지만 마음의 힘은 나보다도 큰 아이의 품안에서 엄마는 깊이 위로받는다. 


고맙다, 연호야. 

나의 소중한 둘째 아기.

엄마 아이로 태어나줘서 고맙고, 엄마 곁에 함께 있어줘서 고맙다.

예쁘게 자라주는 너와 함께 엄마도 새로운 힘으로 또 자란다.











Posted by 연신내새댁
umma! 자란다2010. 10. 19. 20:47









둘째가 왔다. 
엄마 자궁속에 자리를 잡은지 이제 6주를 조금 넘긴, 아주 아주 작은 녀석이다.
연수낳고 2년동안 먹인 젖을 끊으면서 '이제 둘째 생각을 좀 해야지..' 하고 있던 참이었다.
연수에게 젖을 먹이는 동안에는 피임을 따로 하지 않았는데도 자연스럽게 터울이 조정되고 있었던 모양이다. 
실은 내심 걱정도 조금(?) 하고, 또 한편으로 방심도 하고 있었다. 
예전에 둘째 아이에 대한 얘기를 하다가 '글쎄요, 연수도 좀 크고 우리 상황도 이만저만해지면 가지려구요..' 했더니 
'아이(둘째)는 하늘이 주는 거야'하는 대답을 나도 한번, 신랑도 한번 각자의 선배에게 들은 적이 있었다. 
인상적인 얘기여서 마음에 길게 남았었다.
생명이 오는 때를 인위적으로 조정하는 것도 가능한 세상이 되었지만, 여전히 생명은 뜻대로 되지않는 일이기도 하다.
제 뜻을 가지고 제게 제일 좋은 때를 택해 생명은 온다고 믿는다.
하늘이 준 둘째.. 우리를 찾아와준 둘째. 고맙다.


둘째의 태명은 '평화'라고 지었다.
평화를 갖기 한참전에 내가 꿈을 꾼 것이 있기 때문이다.
강릉 고향집 논둑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논들이 죽 이어진 넓은 들판(平)에 푸른 벼(禾)들이 가득 자라고 있었다. 
잘 자란 벼이삭들을 손으로 훑어보니 마음이 뭉클했다. 꿈속인데도 푸른 벼이삭을 손에 쥐어보는 느낌이 생생했다.  
깨고나서도 '이것 참 태몽같은 꿈이네...' 했었다. ^^; 
평화가 생기기 한달도 훨씬 더 전에 꾼 꿈이긴 하지만 임신이란 것을 확인하고 난 뒤에는 왠지 그 꿈이 태몽이었구나 싶었다. 
그래서 태명을 '들판의 벼', 평화라고 짓기로 했다. 
내 두번째 아이가 평화롭게 잘 자라주기를, 이 아이의 삶에 평화(平和)가 가득하기를 비는 마음도 담아서. 
함께 살아갈 우리들의 나날에도.


그러나 시작부터 쉽지가 않다.
우선 내 몸과 마음의 컨디션이 참 좋질 않다.
추석 명절쇠고 돌아와서부터 영 으실으실한 것이 몸살기운이 있어서 '명절쇠고온 후라 그런가부다'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 낫지 않고 열이 나는듯하면서도 추운 기운이 몇주 동안 계속되었다. 
때마침 생리도 늦어져서 '혹시...?'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평소에도 생리가 불규칙한 편인지라 속단할 수는 없었다.
집에서 테스트로 임신인 것을 확인하고 병원에 다녀온 뒤에는 '아 그래서 그랬구나'하고 반갑고 설레는 마음이 들었지만 몸은 더 힘들어졌다. 
본격적인 입덧이 시작된 것이다. 

연수를 가졌을 때는 입덧을 거의 하지 않았다. 
그때는 대학원을 다니고 있었고 철없는 엄마아빠가 '속도위반'을 한지라 입덧을 할 형편도 아니긴 했다.
다음해쯤 하려던 결혼을 부랴부랴 당겨서 겨울에 하기로 하고 대학원 4학기 마무리와 결혼 준비로 바쁘던 그 가을에
나는 입덧 하나 없이 무던하게 잘 자라주던 똑순이(연수)가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그래서 똑순이랑 둘만 있는 저녁에는 괜히 서글픈 생각에 곧잘 울기도 했지만 배속의 똑순이에게 늘 '고맙다 고맙다' 되뇌이고 쓸어주며 지냈다. 

당시에 똑순이 태명도 실은 한가지 노래때문에 지은 것이었다. 
처음 아이가 생긴 것을 알고 이 아이를 뭐라고 부를까 고민할때 문득 옛날 인기TV드라마였던 <한지붕 세가족>에서 들었던 노래가 생각났다. 
똑순이랑 아버지가 함께 걸어가면서 "똑순이 손잡고 아버지 손잡고~"하며 부르던 노래.
아마 그 아버지역은 탤런트 강남길씨가 맡았던 것같다. 뜬금없이 그 노래가 왜 생각이 났는지... 
아무튼 나는 그 노래 가사를 "똑순이도 괜찮고 엄마도 괜찮다"로 바꿔서 마음속으로 자주 불렀다. 
생각하면 참 불안하고 일견 서글픈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내 안에서 아이가 자라고 있다는 사실이 황홀하기도 했고, 행복하기도 했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연수의 태명은 '똑순이'가 되었던 것이다. 
내 맘속의 이 구구절절하고 어찌보면 별것아닌 배경이야기를 알 길이 없는 사람들은 "똑똑하라고 똑순이라고 지었냐?"고 물었지만 실상은 그저 '괜찮다'는 위로를, 격려를 스스로와 아이에게 주고싶은 마음일 뿐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형편이 달라져서인 것인지, 
아니면 한껏 기대에 부푼 연수 아부지의 바램대로 '딸'이어서 그런 것인지
첫째때와는 너무도 다르게 초반부터 입덧이 무척 심하다. 
뭔가 속에 들어가면 조금 잠잠하다가 살짝만 속이 빈다싶으면 여지없이 울렁거리고 미슥거린다. 
그렇다고 하루종일 입에 뭔가를 넣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물한잔으로 씻어내려도 보고, 귤 한개 까먹고 견디기도 한다.









속이 불편하고 힘이 없는 엄마가 연수의 놀이상대를 제대로 해 줄수도 없다.
연수는 누워있는 엄마옆에 와서 뒹굴기도 하다가 저 혼자 저쪽에서 놀기도 하다가 
웃음이 부쩍 적어진 엄마때문에 시무룩해하기도 하고, 엄마가 신경이 날카로울 때는 전과 달리 야단도 많이 맞는다. 
그래서 나는 알게 되었다. 
둘째 아이는 엄마 혼자 임신하는게 아니라는 것을.
첫째 아이도 그 모든 과정을 함께 겪는다는 것을.

삼남매중에 막내딸로 자란 나는 언니오빠와는 다르게 아빠엄마에게 어리광을 많이 부리면서 컸다. 
언니오빠는 엄한 아빠엄마를 조금 어려워하는 기색도 있었지만 나는 무서울 때보다는 친근할 때가, 야단맞을 때보다는 어리광부리고 매달릴때가 많았다. 그래서 나는 부모님이 원래 언니오빠에게는 처음부터 엄하셨고 나한테는 다르셨나보다, 나를 특히 귀여워하시는가부다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 내가 아이를 키워보니 알 것 같다. 
첫째에게는 그 이후의 아이들이 알 수 없는 강렬한 유년기가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동생들이 생긴 이후에는 제일 많이 야단맞고 엄하게 대해지지만 부모의 마음속에는 제일 큰 미안함과 고마움이 자리잡게 된다는 것을.
그리고 형들은 부모와 함께 동생을 키워준 존재라는 것을.
어린 마음으로 많은 변화를 감당하고, 때로 슬퍼하고 때론 힘들어하면서도 끝내는 어린 동생을 향해 웃어주고 함께 놀고 즐거워하면서 동생의 성장을 늘 부모와 함께 지켜본 존재이니 부모님 떠난 뒤에는 형이 부모라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26개월에 젖을 끊은 뒤에도 한동안은 엄마의 빈 젖을 빨며 잠드는 버릇을 가지고 있던 연수는 
요즘 임신으로 예민해져서 가만 있어도 아픈 엄마 젖꼭지를 빨지 못하게 하자 낮잠도 제대로 못자고 밤에도 종종 잠을 설친다.
오늘도 낮잠잘 시간을 놓치고 하루종일 피곤하게 뛰어놀다가 급기야 저녁에 씻을 때는 코피까지 살짝 흘렸다.
어린 것이 얼마나 고단했으면.... 
나 피곤한 것만 생각하면서 연수에게 너무 소홀했던 것 같아 어찌나 미안하던지..ㅜ   

남편도 나와 같이 임신상태다.
전과 달리 입덧이 심하고, 신경이 예민한 아내때문에 퇴근하면 요리하랴 설겆이하랴 바쁘고
온 집안을 붕붕 뛰어다니는 펄펄한 연수를 전담마크하며 노느라 진땀을 뺀다.
온 식구가 둘째를 같이 맞고 같이 키운다. 
이제 겨우 엄마 배속에 자리를 잡았을 뿐인데도 이 정도니 내년 봄에 태어나고 난 후에는 어느 정도일까.
온 식구가 같이 눈물콧물빼며 키우게 되겠지. 
평화가 웃으면 같이 웃고, 평화가 울면 같이 울고, 평화가 잠들면 같이 잠드는 날들이
처음 똑순이가 우리 곁에 찾아왔을때와 같은 그런 날들이 다시 또 찾아오겠지.      
이제는 기억도 살짝 가물가물한 그 날들은 참 마법과도 같은 시간이었다.
휴... 그 초여름, 장미꽃이 피는 무렵에 삼년만에 또 아이가 태어날 것이다. 

그러니 지금은 좀 더 기운을 내야한다. 
밥상머리에서부터 꾸벅꾸벅 졸다가 밥숟갈 놓자마자 쓰러져 잠든 연수를 보며 엄마는 그제야 정신이 번쩍 났다.
내가 늘어져 있으면 안된다...
내게는 똑순이도 있고, 평화도 있다. 이제 보살필 아이가 둘이 된다. 
곁에서 든든히 도와주는 남편도 있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입덧도, 약해지고 우울해지는 마음도 견뎌내야지. 
몸이 늘어진 와중에, 마음만 시커멓게 태워가던 논문 걱정도 그만 뚝!하고 할수있는만큼 해봐야겠다.
힘들다고 징징거리고 있을 수만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아있는 동안은 온 힘을 다해 살아내야 한다.
생명있는 것들은 모두 그렇게 산다. 
똑순이와 평화, 내 아이들도 나도 그런 강렬한 삶의 에너지를 지니고 자기 삶을 헤쳐나갔으면 좋겠다. 
또 한번 엄마가 되는 과정을 시작하며 생의 의지를 다져본다.






Posted by 연신내새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