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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새댁 책2009. 12. 20. 22:39



늦지 않았다 - 10점
한명석 지음/북하우스




밤 10시, 똑순이가 잠들고 나면 비로소 하루중 유일한 내 시간이 시작된다.
가끔은 그 시간에도 기저귀 빨래나 방닦기 같은 집안일이 기다리고 있기도 하지만
보통은 지친 몸이나마 잠시 책상앞에 앉아 책을 읽거나 블로그를 볼 수 있다.

요즘 내 밤시간은 이 책이 있어 뜨거웠다.
블로그 이웃 '미탄'(티스토리 블로그 '인생으로의 두번째 여행')님의 첫 책, <늦지 않았다>가 출간된 것이다.
이 책은 '삶이 다시 열리는 시간 중년의 인생 매뉴얼'이란 부제를 달고 있다.


"사실 따져보면 내가 성인이 되어 이제까지 생활해온 시간과 똑같은 시간이 또 한 번 남아 있다. 삶에 관한 아무런 지식 없이, 겁도 없이 저지르며 산 전반생에도 그토록 많은 경험과 교훈을 얻었는데, 내 걸음걸이를 계획하고 의식하고 점검하며 걷는 후반생은 두 배 이상의 밀도와 의미가 있을지도 모른다. 남아 있는 시간은 결코 짦은 시간이 아니다... 그저 성공적으로 쇠퇴만 하기에는 너무나 길고, 너무나 중요한 시간이 남아 있는 것이다. 우리는 원하기만 한다면 다시 한 번 정상에 올라갈 수 있다. 젊은 시절의 열정을 조금만 더 유지하기만 한다면."(26쪽에서) 

이 구절을 읽고 깜짝 놀랐다.
중년에 대해서는 사실 한번도 제대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가끔 '은퇴후 설계'라는가 '노후 대책'같은 얘길 보험사 팜플렛같은 곳에서 보더라도 '글쎄.. 뭘 좀 하긴 해야겠지' 정도만 생각하고 그저 지나쳐갔는데 음.. 성인이 되어 생활한 것과 똑같은 시간이 한 번 더 남아있다니.. 생각하니 정말 그랬다.
스물부터 쉰까지 30년, 쉰부터 80살까지 또 30년. 저자의 표현대로 '전반생', '후반생'이라 부를만하다.
전반30년 중에서도 전반을 살며 겨우 첫아이를 낳아 기르는데 허덕거리고 있는 나로서는 후반30년은 정말 상상할 엄두도 못 냈던 삶인 셈이다.

이 후반생을 생각하니 경제력도 경제력이지만, '무엇에 열정을 쏟으며 살 것인가'하는 문제가 정말 내게도 크게 고민되기 시작했다. 아직 먼 얘기같지만 아이가 자라는 것을 보니 시간은 정말 금방 가는 것이었다. 아이를 낳던 때가 엊그제(?^^;)같은데 눈깜짝하고 나니 벌써 19개월이다. 며칠 지나면 아이는 세살이 되고, 그렇게 몇년만 지나면 학교에 간다고 가방메고 나설 것이다. 아이가 스무살이 되면 나는 쉰이 된다. 신랑도 쉰이 된다. 쉰. 쉰. 휴... 그러면 얼마안가 회사에서 정년퇴직(?)을 하게 되겠지? 음.. 그 뒤에는 뭘 하면서 살고싶을까? 쉰이라는 나이를 생각하니 내 일보다 먼저 신랑의 일이 궁금해진다. 그동안 가족들 부양하느라 못펼치고산 자기 꿈을 펼치고 싶을까?  

책을 겨우 30쪽 남짓 읽었을 뿐인데 꼬리를 무는 생각에 계속 읽을 수가 없다. 책을 덮고 신랑을 불러 얘기를 나눴다. 오십 이후에 우리 어떻게 살까? 아이를 몇 명 낳느냐에 따라 몇 년의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가 얼추 쉰을 지나 환갑이 되기 전에 아이들은 성년이 될 것이고, 그럼 그 녀석들을 독립시키고 우리는 뭘 하면서 살까? 회사도 거의 다 다녔을테고.. 세계 여행을 하자! 그것도 한두 해지, 다녀와서는 뭐할까? 길면 30년쯤 되는 긴 시간을.. 돈벌고 애키우느라 못한 일을 해야지.. 새로 학교에 들어가 관심있던 공부를 해볼까? 시민운동을 할까..? 흠.. 정말 뭐하지?? 천천히 생각해보고 얘기 많이 하자.

이쯤에서 대화를 일단락하고 다시 책을 읽는다.



"구구절절 흔치않은 경험을 하며 인생의 모퉁이마다 나름의 의미를 발견하고 나니, 소중한 은유를 하나 갖게 되었다. 인생은 천천히 흘러가는 강물이다. 폭우가 오면 흙탕물이 되는 수도 있고 때로는 범람하여 홍수를 일으키기도 하지만, 그것이 강물의 본래 모습은 아니다... 조그만 마을과 나룻터, 갈대숲을 지나가지만, 그곳이 강물의 목적지는 아니다." (34쪽에서)


인생에 대한 자신만의 은유를 가질 수 있으려면 얼마나 더 오래, 치열하게 살아야할까.
나는 아직 '인생은 무엇'이라는 은유를 할 수가 없다. 미탄님의 은유를 빌리자면 나는 아직도 세차고 좁은 어느 골짜기를 부지런히 달려내려가는 작은 시내쯤 될 것이다. 이제는 도도하게 바다를 향해가는 선배 강물의 우렁우렁한 목소리를 듣고 화득! 놀라 제가 곧 이를 곳이 어디인지, 지금 이 시절은 어떻게 지나야할지 뒤척거리며 묻는 시내.


"노년에 '파우스트'와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를 완성한 괴테는 76세에 이렇게 적고 있다. "나는 잠이 오지 않는 긴 밤에 모호하고 대략적인 생각에 빠지지 않고 다음날 할 일을 정확히 숙고했다. 아침에 시작할 수 있고 가능한 한 시행할 것들을 말이다. 그렇게 나는 더 많은 일을 하고, 다시 내일이, 영원한 내일이 있다고 믿거나 그렇게 말할 수 있었던 날들에 게을리 했던 일들을 할당받은 날들에 꼼꼼하게 완수한다." " (112쪽에서)

영원히 내일이 있을 것처럼, 인생의 숙제들을 내일로 내일로 미루기 일쑤인 나에게 괴테의 이 말은 참으로 뜨끔했다. 저자는 중년, 노년에 더 많은 성취, 더 질적으로 우수한 성취들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이 말을 인용했다. 중년이 되면 내 생에 남은 시간이 한정되어 있다는 것을 체감하기 때문에 공허하게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자세를 지금부터 가질 수 있다면...! 
이 책 곳곳에 젊은 나를 일깨우고, 다잡게 하는 구절이 어찌나 많은지... 지금 중년인 사람만이 아니라 언제고, 곧 중년이 될 사람들을 위해서도 참 절실한 지침서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겠는 사람은 찾으면 된다. 자신이 걸어온 길을 곰곰히 뒤져보면 해답이 나올 것이다. 무엇을 할 때 가장 행복했는지 모조리 찾아보라. 누가 시키지 않아도 밤새워 몰두하던 일에는 어떤 것이 있었는가? 잘한다고 칭찬받은 일을 떠올려보라. 아주 작은 일이어도 괜찮다. 어렵게 배우지 않아도 쉽게 익힐 수 있었던 일들도 끄집어내라. 어쩐지 마음이 가는 일도 빼놓지 마라. 자기 안에 있는 것들 가운데 가장 강력한 것을 존중하라. 그렇게 해서 정리된 내용을 직업화할 수 있는 것과 취미로 남겨두어야 할 부분으로 구분한다." (123쪽에서)

바깥 일은 접고 아이만 키우는 전업육아(?)를 하기로 마음 먹은 뒤 가끔 아이를 좀 키워놓고 나면 무슨 일을 하면 좋을까.. 고민한다. 하다만 공부가 있지만 과연 그 길이 내 길일까.. 계속 가고 싶은지, 갈 수 있을지 자신이 없기도 하고 새삼 확신이 들지 않기도 한다. 아이가 자라서 제 길을 찾아가는 동안 나도 내 길을 찾아야한다. 걸어온 길은 그리 길지 않으므로, 걸어온 길과 걷는 길 모두를 통해 내 길을 잘 찾을 수 있길...

이미 어른으로서의 삶을 꽤 오래 살았던 사람들이 새로운 삶을 계획할 때는 자기가 정말 하고픈 일을 찾는 것과 함께 아래 옮겨놓은 것처럼 구체적인 상황을 가정하고 준비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3. 딸을 시집보낼 때 그럴듯한 '명함'이 아쉬울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컨설턴트라면 늙어도 감당할 수 있다고 판단하여, 은행 실무와 연결이 되는 '벤처 중소기업학' 박사학위에 도전하기로 했다.
 4. 은퇴 후에도 만날 수 있는 친구 10명에 정성을 다하기로 마음먹었다.
 5. 내 생활은 내가 다 책임지겠다고 결심했다. 설거지, 빨래, 음식 장만 등 집안일과 사소한 가전제품 수리는 직접 하기로 했다.
- 은행원 조성권씨가 46세였던 2001년에 작성한 '앞으로 10년간 행할 10가지 은퇴 준비 리스트'중에서."(128쪽)

딸이 없는 신랑도 십분 공감하며 '그렇지'한다. ^^ 나는 자신의 생활을 책임지겠다는 이 분의 결심이 참 훌륭해보였다. 나와 신랑도 그런 중년이 되었으면 좋겠다.



"자원봉사가 매력 있는 이유는 계속해서 나의 잠재력을 계발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전국문화원연합회에서 실버 세대를 문화 분야의 도우미로 활용하고 있는 '땡땡땡 실버문화학교'를 보자. '땡땡땡 실버문화학교'는 2005년에 10개 문화원에서 시범적으로 시작되어 2007년에 76개 문화원에 개설되었다... 짚풀 만들기나 목공예, 한지 인형처럼 전통적인 영역은 물론 벽화 제작, 젊은 노인의 희망연극 만들기처럼 혁신적인 영역도 있다. '끝없는 음악여행 silver of Rock'이라는 록밴드까지 있다." (143쪽에서)

책은 다양한 중년의 직업전환 사례, 노년의 도전과 아름다운 삶의 사례들을 소개하고 있다. 이 사례도 그중 하나다.
지방에서 어린이도서관을 운영하고 있는 후배가 지역의 아이들과 어르신들을 연결(?)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고민중이라는 소식을 들은 적이 있는데, 이 '땡땡땡 실버문화학교'같은 프로그램과 연계하면 좋지 않을까.
찾아보면 우리집 가까운 곳에도 이런 프로그램이 있을지 모른다. 똑순이는 친가와 외가가 모두 멀다. 제 조부모님들을 가까이서 자주 뵙고 직접 배울 수 있다면 참 좋겠지만 가까이에서 다정한 어르신들께 공예도 배우고, 따뜻한 정도 나눌 수 있으면 정말 좋을 것 같다. 그 분들의 손끝에 깊이 체화된 성실한 노동과 삶의 지혜 같은 것들을 자연스레 배우고 차분하고 온화한 마음도 닮게 되지 않을까. 다른 무엇보다 '문화'를 매개로 한 만남이니 그것이 가능할 것이란 생각이 든다. 


" '노년의 문화인류학'에서 정진웅이 말했듯이, 문화를 만들어가는 능력은 곧 자기 형성의 능력이며 동시에 자기 긍정의 능력이다. 자신의 문화를 스스로 만들어낼 수 없을때 우리는 남이 만들어주는 삶의 조건에 맞춰 살아가야 할지도 모른다. 그런 뜻에서 문화역량은 주도성이요, 독립된 개인이 갖추어야할 필수 조건이다. 나의 취미와 특기, 재능과 경험을 모조리 뒤져 그중 강력한 것을 한두개 집중적으로 계발할 필요가 있다." (144쪽에서)
  


중년을 맞으며 미탄님 스스로가 설정한 과제들 중 하나는 '누구와 살 것인가'이다.
장성한 아이들을 독립시킨 후 다시 단촐해진 삶, 그 삶을 어디서 어떤 사람들과 어울려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전통사회와 같은 이웃, 마을들은 사라졌고, 가족들도 단촐해진 후의 삶이라...
대안학교에 이어 대안마을 운동을 함께 하고 있는 조한혜정 교수의 활동과 고민을 소개한 내용은 내게도 너무나 절실하고 반가운 얘기였다.  

"그녀가 이번에 주목하는 것은 '마을'이다. 그녀가 꿈꾸는 곳은 작은 학교와 공동 식탁이 있는 생기 있는 작은 마을이다. 거대한 백화점과 우뚝 솟은 관 주도적 문화 공간이 아니라, 마을 주민들이 스스로 만든 학교와 문학 까페와 식당과 소극장과 작은 진료소가 있는 타운 센터이다. 노인들이 아이들이 뛰노는 것을 보고 있으며, 수시로 물물교환이 이루어지고, 서로가 잘 알기에 함께 있음으로 안전한 마을! 근대적 거대주의에 머물고 있는 이들에게는 불가능한 일로 들리겠지만, 이미 그런 마을이 실험되고 있다고 한다." ( 213쪽에서)

아! 나도 이런 마을에서 살고 싶다. 실은 이 실험의 무대인 마포 성미산 마을은 지금 우리집에서 가까운 편이다. 결혼 전부터 이 마을 얘기를 알고는 있었지만 '공동육아'가 내 문제가 아니던 시절에는 그저 '대단한 사람들이네' 하고 먼산 건너보듯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내 발등의 문제가 되었다. 아이를 어떤 환경에서, 무엇을 배우는 사람으로 키울 것인가...  꼭 성미산에서가 아니더라도 나도 내 나름의 마을을 만들며 살아가야 하리라. <늦지 않았다>는 내게는 적어도 정말로 '적실한' 고민들을 다루고 있는 '늦지 않은' 책이다.



"무언가를 시작하고 창조하는 일은 우리 중년에게 아주 잘 어울린다. 한 세상 살아낸 우리는 모두 아티스트이기 때문이다. 아티스트가 별건가? 무언가를 표현하고 창조하는 사람이지."(234쪽에서)

"한 세상 살아낸 우리는 모두 아티스트"란 말의 울림이 넘 좋아서 이 페이퍼의 제목으로 할까.. 여러번 망설였다. ^^
나는 정말 우리 엄마가 '아티스트'라고 생각한다. 음식을 만들고 뜨게질로 우리들의 옷을 만들때 엄마에게서는 장인정신이 느껴진다. 엄마가 담그는 김치, 엄마가 만드는 식혜, 약밥, 찰밥, 각종 나물과 묵과 탕과 밑반찬들.. 그 귀하고 맛있는 음식들을 다 내가 배울 수 있을까. 그 맛을 낼 수 있을까. 나도 엄마같은 아티스트가 될 수 있을까.



<늦지 않았다>는 미탄님 개인의 고민에 대한 답을 스스로 찾아가는 여정을 한권의 책으로 묶었다고도 볼 수 있다.
중년이란 어떤 나이인지, 중년의 긍정성과 강점을 확인하고 스스로 자신감을 찾기 위한 고민에서 출발해
중년의 강점을 최대한 발휘하면서 새롭게 도약하기 위해 필요한 삶의 자세들(끊임없이 배울 것, 자신을 표현할 도구를 가질 것, 커뮤니티를 구성할 것)을 찾아낸다. 
인류학적이고 사회학적인 고찰도 있고, 오늘 우리 곁에서 일어나고 있는 다양한 실험들과 구체적인 사례들도 풍부하다.
글에서 인용하거나 소개한 책들중에는 '아, 나도 꼭 읽어야겠다'싶은 책도 많다. 
2년 가까이 그 모든 책과 사례들을 수고스럽게 읽고 정리한 성과를 나는 너무 쉽게 앉아서 얻는 것이 조금은 미안할 정도다.    
진정 '늦지 않기'위해 지금 아기가 잠든 이 밤에 내가 해야할 일들, 그것을 실행할 결심, 용기 같은 것들을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일깨워준 미탄님께 감사드린다. 
이제 '저술가'라는 새로운 이름을 스스로에게 선물한 그녀는 앞으로 아마 더욱더 자기 책에 적합한 사례가 되어 갈 것이다. 
미탄님의 에필로그 한 꼭지와 이 책을 통해 얻게된 '읽고싶은 책' 리스트를 덧붙여 놓는다.     



"인생이 참 길어졌습니다. 별별 시행착오를 다 겪었는데도 아직도 고쳐 살아볼 시간이 남아 있는 것이 참 신기합니다. 그런데 이 길어진 시간에 할 일이 없다면 그것 또한 고역이겠다 싶습니다... 이 금싸라기같은 시간을 나는 아주 실험적으로 보내려고 합니다.. 누구와 함께 살 것인가 하는 공동거주에 대한 실험, 무엇을 하며 놀 것인가 하는 '호모 루덴스'로서의 탐구, 무엇을 하며 먹고살 것인가, 즉 50대에 전문가가 되기 위한 도전 같은 것들입니다... 나는 좋은 삶이란 끊임없이 창조하고 성장해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창조라고 해서 반드시 대단할 것도 없고, 반찬 한 가지를 다르게 해보는 마음, 조금 다른 스타일에 대한 시도, 안 가본 길로 가보는 탐구심 같은 것도 다 여기에 속한다고 생각합니다. 내 삶을 더 충만하게 살고자 하는 활기가 자연스럽게 주변으로 번져나가 세상을 완성하는 에너지가 되는 것! 이것이 나의 꿈입니다." (저자 에필로그 중에서)



* 읽고싶은 책
  
히로나카 헤이스케의 '학문의 즐거움'
왕멍의 '나는 학생이다'
알렌 B. 치넨의 '인생으로의 두 번째 여행'
셰릴 자비스의 '결혼한 여자 혼자 떠나는 여행'
대니얼 레빈슨의 '남자가 겪는 인생의 사계절'




Posted by 연신내새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