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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12.30 눈이 오면 10
umma! 자란다2010. 12. 30. 23:27










눈이 오면 우리는 신난다.

아슬아슬한 아파트 경사로와 동네 골목을 오르내리며 출퇴근하는 남편을 비롯한 이웃들의 고충과
밤새 제설작업을 하느라 안그래도 고단한 경비아저씨들의 등이 더 굽어지고, 복도의 눈을 쓸어내는 청소부 할머니들의 옷속으로 파고드는 찬바람.. 같은 것들을 생각하면 우리가 신나하는 것이 일순간 죄송해지지만.
그래도 세살배기 아이에게는 세상을 한순간 바꿔버린 마법같은 눈이 신기하고, 그 위에서 뒹구는 것처럼 즐거운 일이 없다.
행여 미끄러질세라 조심조심 한걸음씩 아이 뒤를 따라가는 나도 기쁘기는 마찬가지다.

공기는 차가워도, 눈 온 다음날 한낮의 햇살은 따스하다. 
모처럼 밖에 나와 신이난 아이의 빨간 볼은 보기만 해도 사랑스럽다. 
눈꽃핀 나무가지와 하늘을 올려다보는 일은 눈부시다. 

동네 소년들은 가파른 시멘트 골목길 언덕배기에서 어린시절의 내가 비료푸대를 깔고 동네 산등성이를 내달렸던 것처럼 눈썰매를 탄다. 오늘 그 아이들 손에 들린 것은 어느 학습지 회사의 반질반질 튼튼한 포스터. ㅎㅎ
그래, 이 순간만큼은 학습지도, 학원도 모두 사뿐하게 엉덩이에 깔고 앉아버리렴! 그리고 마음껏 미끄러져가렴!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형아들을 구경하는 연수의 손을 잡고 서서, 놀이터옆 골목길을 쏜살같이 내려가는 사내아이들의 뒷모습을 마음깊이 응원했다.

 







엄마! 눈이다요!!


















아침 일찍부터 나가고 싶어하는 연수를 달래가며 집안일을 대충이라도 좀 해놓고
오전 11시쯤 놀이터에 나가보면 아무도 밟지 않은 눈, 아무도 올라가지 않은 놀이기구에 소복이 앉은 눈이 우리를 맞아준다.
반갑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다. 눈이온 이 아침에 나와노는 친구들이 더 있으면 좋으련만... 
큰 아이들의 방학과 함께 기상시간도 늦어지고, 감기도 걸리고 등등 여러 이유로 동네 친구들이 오전에 밖에 나와 노는 일이 적어진 겨울, 오전의 놀이터는 늘 우리 독차지다. 
좀 섭섭하지만... 그래도 우린 둘이니 그나마 다행이다. 엄마는 몸으로야 연수랑 함께 못놀지만 마음만큼은 같이 흠뻑 신나있다.














놀이터 미끄럼틀에 소복이 앉은 눈을 엉덩이로 쓸어내며 미끄럼틀을 타는 연수. 신난다!
엉덩방아를 찧어도 좋다~!











눈도 뭉쳐보고...















엎드려도 보고....

요며칠 눈속에서 놀면서 연수가 제일 신나했던 놀이는 경비원 아저씨들이 주차장의 눈을 치우면서 높다랗게 쌓아놓은 눈산을 오르는 것이었다.
뒹굴고 미끄러지면서도 자그마한 눈산 꼭대기까지 기어이 올라가고, 깔깔 신나게 웃는다.
아쉽게도 그때는 카메라가 수중에 없었다.
그날 눈산 놀이를 끝내고 집에 들어와보니 장갑이며 겉옷이 모두 축축히 젖어있었다. 
1시간쯤 놀고도 더 놀고싶다며 안들어가겠다는 녀석을 꿀차와 빵으로 꼬드겨 겨우겨우 데리고 들어오면서 필히 주말에는 연수에게 보드복과 방수장갑을 하나 사주리라.. 다짐했다.
겨울은 아직 많이 남았으니... 옷 젖는 걱정없이 더 신나게 놀아보자~~!
















엄마 손을 잡고 저 화단을 따라 걸어가는 놀이를 우리는 '기차놀이'라고 이름붙였다.
곧게 뻗은 길을 쭉 따라 걸어가는게 기차같아서인데, 오늘은 눈이 와서 연수가 좋아하는 '북극가는 기차'를 더욱 실감나게 할 수 있었다. ㅎㅎ











집에 들어오면 젖은 옷과 장갑은 벗어서 따뜻한 거실바닥에 널어놓는다.  











엄마 눈사람, 아기 눈사람도 우리집에 함께 왔다.









혀끝을 갖다대고 살짝 맛을 본다.
서울눈은 먹으면 안된다고 질색하면서도 나는 안다.
아이의 혀에 닿아 사르르 녹는 눈의 느낌이 얼마나 시원하고 산뜻했을지..

겨울이 아직 많이 남았다. 추위는 겁나지만 눈은 반갑다. 
눈 온 다음날은 햇살이 더 포근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바람 쌩쌩부는 추운 날보다 밖에 나가놀기 훨씬 좋다.  
세살 아이와 엄마의 지루한 겨울 나기에 그래서 눈은 늘 반가운 이벤트다. 
눈이 많이오면 그해에 풍년이 든다고도 하니... 여러 분들이 고생스러우시겠지만 우리는 눈이 많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   












Posted by 연신내새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