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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9.21 아파트에서 보내는 우리들의 가을 4
하루2012. 9. 21. 22:29






요즈음 날씨가 참 좋다.

아침에 하늘을 쳐다보고 있으면 '아 어서 밖에 나가야겠다..' 싶어진다. 

아침먹은거 정리하고 빨래돌리고 점심먹을 준비 좀 해놓고나면 얼추 10시.

연수 자전거타고 연호 유모차태워 얼른 아파트 마당으로 나간다.

 









부랴부랴 준비해서 나오지만 막상 나오면 어디 크게 갈 데는 없다. ^^;;

바다를 임신한 뒤로는 내가 연호를 안고 먼 외출을 하기가 조심스러워서 주중에는 주로 유모차를 밀고 갈 수 있는 가까운 곳에서 논다. 마음같아서는 이 가을에 어디 멀고 멋있는 곳에 아이들 데리고 훨훨 나들이 다녀오고 싶지만... 그런 날은 내후년 가을쯤에나 가능하겠지..^^


들고나온 쓰레기들 버리고 오늘은 어디서 놀까 연수랑 잠깐 의논한 뒤에 

커다란 애벌레 조형물이 있는 벌레 놀이터나 연수가 요즘 좋아하는 작은 나비들이 많은 정자 옆 징검다리 같은 곳으로 향한다.











아이들은 이 커다란 애벌레 머리에 올라타는걸 좋아하는데 연수는 올려줄 때마다 무섭다고 엄살이지만 연호는 까르르 좋아한다. 겁없는 두살 같으니라고~^^ 심지어 거기서 엄마 품으로 떨어져내리는걸 즐기니 참 요녀석 앞날이 궁금하다.


오전의 아파트 놀이터는 한산하다못해 고요하다.

주로 우리 셋밖에 없다.

가끔 아파트안에 있는 어린이집 아이들이 선생님과 함께 산책을 나오기도 하지만 그 때빼고는 거의 늘 우리 셋의 독차지다.

여름내 연호는 어디를 가든 내 손을 붙잡고 걸어다녀서 

나는 '아 내 인생에 남자랑 땀띠나게 손잡고 걸어다녀보는 시절이 또 언제 있으랴' 생각하며 마음을 다스려야했다.

지금 이 세상에서, 아니 온 우주를 통털어서 다른 사람 다 아니고 바로 전욱, 내 손잡기를 이토록 간절히 바라는 사람이 또 누가 있으랴.. 그러니 우리 연호가 엄마 손잡기를 이토록 갈망하는 시절에 기꺼이 손 한번 더 잡아야지... 같이 걸어줘야지... 생각하면 돌을 막 지낸 어린 내 아기가 또 무척 애틋해져서 허리도 아프고 다리도 아프고 귀찮은 마음이 몰려와도 끙~ 하고 한번더 엉덩이를 떼고 일어서서 연호 가자는데로 걸어가곤 했다.

그런데 가을이 시작되는 어느날부턴가 스르르 이 녀석이 엄마 손을 놓고 저 혼자 걸어가기 시작했다.

이 벌레 놀이터에서, 익숙하고 즐거운 곳에서 형의 뒤를 따라 어느 풀숲으로 갈 때였나 놀이기구를 향해 갈때였나... 저 혼자 아장아장 걸어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편한 나무 의자에 앉아 두 아이가 나비처럼 돌아다니는걸 구경도 하고 

조금 가다 나를 돌아보고 웃는 연호에게 마주 웃어보고 연수가 뭐라뭐라 말거는 거에 답도 해주면서 

서서히 놀이터에서 쉬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얼마전부터는 급기야 놀이터 나무의자위에 드러눕게 되었다. ㅎㅎㅎ

그렇게 누워 바라보는 가을 하늘은 참 푸르고 예쁘다.

놀이터는 고요하고, 의자옆 풀밭에서는 가을벌레들 울음소리가 찌르찌르 청량하게 울리고

연수랑 연호가 잡기놀이 하는지 깔깔 거리는 소리도 들려오고...

단 1분이어도 그렇게 누워있는 시간이 정말 꿀맛같이 달콤하다.

사람들이 아무도 없는 놀이터여서 더 좋기도 하다. 

아이 둘 데리고나온 아줌마가 잠시 허리펴고 누워볼 수도 있으니 말이다. 누가 있음 그리 못할텐데~^^;;    

(높은 층에서 내려다보는 사람이 있거나, CCTV에 찍혀서 집안에서 TV채널돌리다 놀이터화면을 누가 보기라도하면 좀 챙피할 일이지만.. 뭐 사실 그리 오래 누워있지도 못한다. 두 녀석이 금새 달려와서 같이 놀자고 일으켜세우므로~~ㅋ)


요즘처럼 날좋은 오전에는 주로 그렇게 우리 셋이 놀이터와 아파트의 작은 동산 곁에 자리잡고 앉아

연수는 나비를 잡고 연호와 나는 마주보고 놀다가 싸가지고나온 간식도 좀 먹고 

여러 나무 열매며 잎사귀, 꽃들을 구경하고 줍고 강아지풀 꽃다발 같은 것을 하나씩 만들어서 선물처럼 소중히 챙겨들고 점심때쯤 집에 들어온다. 









연호는 점심 무렵에 낮잠을 한번 길게 잔다. 

연수는 내 옆에서 그림책을 읽어달라고 하면서 누워 뒹굴거리거나 아님 옆방에서 만화영화를 한편씩 보기도 한다. 

이 시간이 내게도 소중한 휴식시간이어서 연호 옆에 누워 좀 자거나 만화보는 연수 옆에서 동무해주더라도 주로 누워있는다. 

그래야 허리도 덜 아프고 오후를 또 아이들 따라다니며 보낼 힘이 생긴다.


 









아파트의 오후는 활기차다. 

어린이집과 유치원과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들 소리가 왁자하고 놀이터도 어린 아이들데리고 나온 엄마들과 할머니들로 북적인다. 

연수는 이 시간에 동네 형아들과 요즘 메뚜기를 잡는 일에 푹 빠져있다.

점심먹고 설겆이랑 빨래같은 집안일을 조금 정리해놓고 밖에 나가는 세시반 무렵부터 6시 해질 무렵까지 신나게 뛰어논다.

김연호는 형아들 주위를 알짱거리기도 하고 

친한 이웃 아주머니들에게 달달한 간식거리 받아먹는 재미에도 빠졌다가 

엄마랑 놀이기구도 타다가.... 아무튼 저도 왔다갔다 바쁘다. ^^











올가을, 메뚜기 잡기의 달인이 된 다섯살 김연수 선생님.

잠시 풀밭을 주시하고 있다가 번개같이 한마리씩 잡는다.. 그리고는 엄마에게 달려와서 보여주고 미리 준비하신 통에 바로 투척! --;;;

방아깨비도 잡고, 심지어 이제는 나비도 맨손으로 잡는다. 헉.. 사내아이들은 정말...ㅠ

나비는 오래 잡고있으면 잘 날지 못하게되니 잡은 뒤에 바로 놓아주게 하지만, 메뚜기랑 방아깨비는 하도 어디 잠깐만 넣어두고 싶다고 졸라서 재활용쓰레기장에서 찾아낸(7살 형아들이 주로 잘도 찾아온다) 생수페트병 같은 곳에 담아두고 구경하다가 집에 올때 다시 풀밭에 풀어주고 온다.










응, 이게 뭐지~~? 맛있어 보이는데~~? ㅎㅎ

이 날은 통이 이것밖에 없었는가... 형아들이 막걸리 통을 찾아와서 여기다 메뚜기를 넣어두었다.

내가 열어보니 불쌍한 메뚜기들이 막걸리에 취해서인지 꼼짝도 못하고 있어서 얼른 풀어주라고 해 바로 풀밭에 풀어주었다.

그러나 이 예쁜 초록통을 김연호가 가만 두랴...











'아!아~~('형아'란 말이다), 응! 응~!(여기다 넣으란 뜻인듯~ㅎㅎ)' 하며 

메뚜기잡는 형아들 뒤로 저 통을 들고 열심히 쫒아다녔다. ㅋㅋ


연수가 메뚜기를 잡는 저 풀밭은 우리 아파트 끝자락에 있는 배모양의 놀이터 바로 곁에 있는데 냇가 건너로는 지하철이 다니는 철로도 있다.

5호선 종점역에서 사람들을 모두 내려준 기차가 이 길을 지나서 차고지로 들어간다. 

연호는 기차가 지나갈떄마다 '어! 어~!'하고 가리키며 신기해한다.

기차가 지나갈 때마다 우리 동네가 참 시골같이 느껴진다. 

팽창하는 서울의 외곽, 대규모 아파트단지가 자꾸자꾸 늘어나고 커다란 상가빌딩도 몇채씩이나 들어서고있는 우리 동네지만 

그래도 이렇게 풀벌레를 잡으며 기차소리를 들을 수 있어서 참 좋다.

하늘은 높고 파랗고, 가을 오후의 따뜻한 햇살은 풀밭과 아이들과 기차 위로 쏟아진다. 

나는 그 풍경을 벤치에 앉아 오래오래 바라보면서 기억에 새겨놓았다.











내 마당과 내 뜨락이 없는 아파트에서의 삶이 허공에 붕 뜬 것처럼 휑하게 느껴질 떄가 있다.

요즈음에는 그 생각이 조금 덜해졌다. 

아마도 아기들이 어린 시절에, 엄마에게 두 발이 있지만 땅을 밟기가 어려운 그런 날들에는 아파트란 공간이 더 외롭고 서글프게 느껴지는 것인가 보다.

마음만 먹으면, 아니 크게 마음먹지 않아도 창밖의 햇빛과 나무들을 보고있으면 저절로 아이들 신 신겨서 아파트 마당으로 나오게 되는 요즘같은 좋은 가을날에는 

아파트에 가득한 크고작은 나무들과 풀꽃들과 예쁘게 만들어진 정자와 돌담과 나무다리 같은 것들이 참 고맙고 좋다.

모두의 공간이지만 때떄로 우리만의 공간이 되기도 하는 곳. 

그리고 나와 내 아이들의 삶의 터전이고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내도 또 지겹지않게 하루가 흘러가는 곳.

구석구석 놀 곳도 많고, 쳐다보고 만져보고 주워담을 풀꽃과 나뭇잎과 열매들이 가득한 곳. 

요즘은 주목나무에 빨간 열매도 달리기 시작했고, 벚나무에서는 버찌열매가 떨어진다. 화살나무 잎들은 붉은 색으로 예쁘게 물들기 시작했고, 소나무 동산에는 언제부터 자랐는지 모를 어린 떡갈나무가 제법 잎을 크게 펼쳤다.  

이 아파트에서 맞는 두번째 가을에는 연호도 많이 컸고, 늘 곁에 있어 든든한 연수도 많이 커서 더 많은 것들을 찾아내고 만져보고 놀 수 있어 참 좋다. 

작년엔 신축아파트의 썰렁함이 더 많았던 우리 아파트도 그새 많이 안정된 것도 같다. 

아마도 풀과 나무들이 잘 자라준 덕분이 아닐까. 그리고 아이들이 잘 자라주고 덩달아 어른들의 마음도 좀더 푸근해진 덕분이겠지. 









우리집이 있는 106동 앞에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토끼 '마리'를 만났다. 

마리는 7층 누나가 키우는 귀여운 할머니(토끼들 나이로~^^;) 토끼인데 작년부터 연수가 무척 좋아해서 그집 누나들과 아줌마와도 무척 친해졌다.

마리네 식구들은 갓난아기였던 연호가 어느새 자라서 걸어다니는걸 신기해하고

'먼머! 먼머~!('멍멍이'란 말인데 연호는 동물은 모두 '먼머'라고 한다.ㅎㅎ)하며 토끼를 따라다니는 연호는 보드라운 털에 둘러싸인 이 작은 동물이 신기해서 어쩔줄 모른다. 

드디어 이 날은 연호도 마리에게 풀 먹이기에 성공. ^^


아파트에서 보내는 초가을이 이렇게 흘러간다. 

매일 참으로 규칙적이고도 단조로운 하루하루지만 즐겁게 지내주는 아이들이 고맙다.

밥하고 국 끓여 아이들과 부지런히 챙겨먹으며 그럭저럭 아이들 뒤따라다니며 엄마노릇 해내는 나도 다행스럽다.

엄마 배속에서 4개월을 채우고 5개월차로 접어든, 소리없이 무럭무럭 잘 자라주고있는 바다도 고맙다. ^^

추운 날들이 오기 전에, 그래서 다시 4층 허공위에 갇히기 전에

아이들과 더 많이 햇볕도 받고, 풀밭을 걷고, 나무그늘에 앉아있어야지.

고마운 이웃들과 고마운 내 터전에서 앞으로의 날들도 잘 보내야겠다.




Posted by 연신내새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