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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mma! 자란다2011. 12. 2. 23:48









며칠전 연수가 그려준 엄마 얼굴.

"엄마, 내가 눈도 그렸어"

저 위의 작은 점 두개를 기리키며. (흠. 그럼 꼬리가 달린 점은 코인가?)

"이건 입이고, 이건 턱이야"

입은 정말 크고~ㅎㅎ 턱은 또 참 뾰족하다. 정말 내 모습같아서 한참 웃었다. (너도 아는구나, 엄마 턱 뽀죡한거~ㅜㅜ)


41개월의 연수가 그려준 내 얼굴. 오래 기억하고 싶다.
웃는 얼굴로 그려줘서 고맙다, 연수야.









그건 뭐야? 하고 물었더니

'편지쓴거야~'하는 답이 돌아왔다.
 
'내가 엄마한테 편지쓴거야. 봐봐, (줄 하나씩을 가리키며) 사.랑.하.는. 엄.마.에.게.'


여덟개의 선. 여덟음절의 편지.
살면서 받아본 편지중에 제일로 웃기고 제일로 뭉클한 편지. 











마카펜을 하나 사주었더니 그 굵고 시원한 느낌이 좋은지 한동안 오만군데에 다 그림을 그려놓고 다녔다. 
유리창, 거실바닥, 냉장고... 그리고 이렇게 놀이방 문과 벽지까지. 
다른 곳들은 다 지워졌지만 문과 벽지는..ㅠㅠ

그래도 나는 그림그릴 때의 연수가 좋다.
특히 엄마 눈에 안띌만한 곳을 찾아 혼자 몰래 슥슥 그림을 그리고있는 꼬마아들의 뒷모습을 바라볼 때가 좋다.
조용히, 그러나 신중하게 어떤 신명에 둘러싸여 몰입해있는 모습.
가끔은 그 뒷모습이 동그마니 외로워보일 때도 있지만..

문에 그린 이 작품은 '연수 얼굴'.  










오늘로 만42개월을 꽉 채운 연수. 
얼마전부터 연수가 또 많이 달라진 것 같다고 느끼고 있다.
처음 형아가 되었던 36개월 여름으로부터 가을을 지나 겨울까지, 6개월 동안에도 많은 변화가, 또 한차럐의 성장기가 지나간 것 같다.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진 것 같기도 하고, 저만의 상상의 세계속에서 재미있게 놀거리를 찾아내 잘 놀고 또래친구들을 만나도 덜 부딪치고 부드럽게 놀게 된 것 같다.
블럭을 쌓거나 조립해서 뭔가 원하는 모양을 만들어내는 데도 훨씬 능숙해졌다. 
비행기를 특히 좋아하는 연수가 좀 어설픈 모양이긴 하지만 상상력을 발휘해 이런저런 비행기, 헬리콥터를 뚝딱뚝딱 만들어내는걸 보면 신기하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하다.   
어린 동생에게도 제 장난감을 나름의 공평한 원칙하에 안배해주려 애쓰고, 연호를 웃게 하려고 연호가 좋아하는 소리를 거듭거듭 내기도 하고, 둘이 함께 뒹굴며 깔깔거리기도 한다. 
진심으로, 연수가 있어 연호를 키우는 일이 훨씬 즐겁고 수월하고 행복하다. 형아를 향해 늘 눈을 반짝이며 해바라기하듯 쳐다보고 즐거워하는 연호도 그럴 것이다.

지난 가을, 텃밭에서 들꽃다발을 꺽어들고오며 연수는 말했다.
"큰 꽃은 연수꽃이고, 작은 꽃은 연호꽃이야.." 
아직 피지않은 꽃봉오리를 보고 연호꽃이라고 했던 말을 엄마는 기억하지. 그래, 우리 두 아이 정말 꽃이구나.. 생각하며 고마워했던 것도.

도서관으로 가던 어느 아침, 파란 하늘을 보고 내가 
'연수야, 하늘 좀 봐. 구름이 하나도 없어. 와~ 신기하다' 했더니
'다들 소풍갔나보지. 맛있는거 싸가지고, 친구들이랑 놀러갔나보지~' 하고 말해줬던 것도 기억해.

성당밖 놀이터에 서있는 큰 느티나무 아래서 작은 낙엽들이 바람에 날려 탁탁탁탁 일제히 뛰듯이 굴러오는 모습을 보고
'연수야, 저것 좀 봐, 넘 웃기다'하고 웃었더니
'응, 병아리 같아. 병아리들이 뛰어오는 것 같아' 하고 말해서 엄마를 기절할 뻔하게 했던 것도.

지난 가을, 너와 함께 해서 매일매일 빛나는 추억이 얼마나 많았는지. 얼마나 행복했는지
생각하면 엄마는 정말 벅차고 고맙단다.



겨울지나고 봄이 오면 유치원에 갈꺼라고, 가서 재미있게 놀거라고 기대하고 있는 연수.
나는 굳이 안가도 된다고, 엄마랑 동생이랑 집에서 더 오래 놀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그 기대감을 알면서 그저 무시하기가 미안해 한번 알아나보자 하고 동네 유치원을 둘러보러 다녀오는 길에 
'연수야, 엄마는 연수랑 같이 노는게 참 좋아. 5살에도 엄마랑 연호랑 같이 집에서 놀면 어떨까?' 묻자
'나도 엄마랑 연호랑 노는게 좋아. 그러니까 유치원 안가는 날에 같이 놀아줄께' 했지.
'유치원은 문화체육관처럼 하루 가는게 아니고,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매일 가는거야. 주말에만 안가..' 했더니
'그럼 주말에 놀아줄꼐. 주말에 많이많이 놀아줄꼐' 해서 엄마 마음을 또 울컥하게 했지. 

아쉬운 마음에 내가 또 '엄마는 연수가 집에 같이 있는게 좋은데..' 했더니 
'그럼 이 유치원말고 우리집에서 가까운데 생기는 거기 가지 뭐. 거긴 가까우니까 (엄마한테) 괜찮을거야..' 해서 깜짝 놀랐다.
아파트 단지안에 마련돼있는 보육시설 공간에 구립어린이집이 들어오게 해달라고 주민청원을 넣은것을 어른들끼리 얘기한 적이 있는데 그걸 어느새 기억하고 거기라면 자기랑 멀리 떨어지는게 아니니 엄마에게 괜찮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는 아이.
아이들은 모르는게 없나보다. 어른들이 무심코 한 말도 저와 관계되는 것이라면(그렇지 않은 것들도!) 아이들은 아주 예민하게 받아들이고 기억하는 것 같다. 더 신중해야지, 더 솔직해야지..

꼭 가고싶다면 가까운 곳에 있는 공동육아어린이집이나 대안교육유치원에 보내주고싶은데
알아보니 이곳들은 이미 내년 5세 모집인원이 다 찼고 또 자리가 있다해도 내가 차로 태워다주고 데려와야한다는 어려움도 있어 쉽지가 않다. 그래도 좀더 빨리 알아보고 대기자 명단에라도 올려놓을걸 그랬나...

이런저런 고민으로 마음 무거웠다가 그래도 다시 조금 밝아질 수 있었던 것은
그래도 우리 연수 참 잘 크고 있다는 것, 너무 고맙게도 늘 손부족한 엄마와 어린 동생 옆에서도 잘 놀고 잘 웃으며 잘 지내준다는 것. 그 고마운 사실을 생각하니 '너무 걱정하지 말자, 우리 연수.. 잘 클 수 있을거야' 하고 마음이 좀 놓이기도 했다. 
 
내일은 강릉에 간다.
연수연호와 함께 2주정도 지내다 올 예정이다.
눈이 많이 와서 연수와 눈사람도 만들고, 눈싸움도 하고, 눈터널도 만들고, 눈미끄럼도 탈 수 있었으면 좋겠다.
부츠도 챙기고 장갑도 넣어가야지. 
늘 사람이 그리운 나와 아이들에게 외할머니외할아버지 외증조할머니와 여러 친척들이 있는 강릉에서의 2주는 선물같은 충전의 시간이 될 것이다.
걱정은 잠시 내려놓고, 푸근하게 아이들과 놀다 오자. 
많이 웃고, 많이 안고, 뒹굴다 오자. 
돌아와서의 일은 미리 걱정하지 말자. 그떄의 우리는 조금 더 자란 우리들일테니 우리앞에 놓인 삶의 숙제들도 조금 더 잘 헤쳐나갈 수 있으리라 기대해보자. 











 
Posted by 연신내새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