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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12.06 생일 8
하루2013. 12. 6. 21:53



아침에 연수가 일어나자마자 말했다.

"엄마! 생일 축하해~!!"

그리고는 신이 나서 소리를 지르며 집안을 뛰어다녔다.

"오늘이 엄마 생일이네~ 와~! 엄마 생일! 오늘은 크리스마스~~!! 엄마, 오늘 아빠 회사 가? 엄마, 나는 어린이집 가~?"


나는 화장실 변기에 앉아 이 요란뻑적지근한 축하를 받으며 말헀다.

"...물론 가지. ^^;;"


출근 준비중이던 남편도 "여보, 생일 축하해~!"하고는 

오늘 아빠 회사가냐고 묻는 아들에게 "그러게 말이다~ 엄마 생일은 크리스마스 급인데~!!^^" 했다.

  

그리고 남편은 손을 흔들며 출근했다.

저녁에는 회사 팀에서 가는 엠티가 있어 내일 점심께에나 집에 돌아올 터였다.


나는 똥싼 연제 엉덩이를 따뜻한 물로 씻기고 기저귀를 간 뒤 

잠투정삼아 엄마 품에 매달리는 연호를 소파에 앉아 한참 안아주었다.

한바탕 엄마 손을 거친 아이들이 모두 제 놀 것을 찾아 내 품을 떠난 후 부엌으로 가서 아이들 먹일 계란찜을 만들어 아침상을 차렸다. 

밥은 어젯밤에 수수를 넣고 안쳐둔 잡곡밥. 

미역국은 생략했다. ^^;;


고향에서는 생일에 팥을 넣고 찰밥을 해먹는데 팥 삶는 것도 그렇지만 냉동실에 재어놓는 깍은 밤도 마침 떨어졌고 

어젯밤에 다 준비하기는 버거웠던지라 

붉은 수수도 생일떡해서 먹는 귀한 곡식이니 수수밥이라도 짓자 하고 그것만 준비해놓고 잤었다.




 







남편이 끓여주는 미역국 같은 것은 바라지도 않는다. 

ㅋ~ 

결혼하고 여섯번 내 생일이 돌아오는 동안 남편이 미역국을 끓여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남편이 요리를 싫어하거나 아주 안하는 사람은 아닌데 아마 미역국 끓이는 것이 자기가 할 일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을 것이다. 

세상에 남편이 생일날 미역국 끓여주는걸 싫어하는 부인은 없을 것 같긴 하지만 

뭐 그래도 나는 그걸 바라진 않는다.


내가 바라는 것은 따로 있었다.

작년 생일 지나고 얼마 뒤였던 것 같다. 

그때도 생일 선물로 딱히 받고 싶은게 별로 없었던 내가 외출하다가 문득 생각나서 말한게 있었다.

"여보, 앞으로 내 생일에는 꽃을 사 줘. 꽃을 꼭 받았으면 좋겠어~" ^^  


아이들 키우며 별로 밖에 나가는 일이 없는 생활을 결혼후 줄곧 해온지라

크게 필요한 소지품도 없고

내가 좋아하는 책은 평소에 내가 자주 인터넷으로 사고 옷도 꼭 필요할 때나 어쩌다 한번씩 사니 

딱히 선물해달라 할게 없기도 했다. 


하지만 일년에 하루, 

딱 한번은 내 인생에 아주 곱고 풍성한 꽃 한다발을 선물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너무 거창한 꽃바구니 같은건 말고, 

꽃집에서 작은 꽃다발 하나 만들어서 당신이 들고 와주면 좋겠다고

그러면 그 꽃을 집에 꽃아두고 한동안 아주 흐뭇하게 아이들과 들여다보며 행복할 수 있을테니 

앞으로 내 생일에는 내가 말 안해도 꽃다발을 꼭 선물해달라고 했다.


일년이 지나는 동안 몇 번은 그 얘기를 했던 것 같다.

12월 달력이 등장하고 아이들이 엄마, 아빠 생일이 곧 온다며 좋아할 떄도 '꽃 꼭 사 와야돼~~' 하고 다시 강조해 놓았다.

그런데 정작 생일 다되서는 잊어버렸다.

세 아이와 지지고 볶는 깨소금같은 나날들에는 내 생일 기억하기도 쉽지 않다.

내일이 내 생일이라는 것도 

전날 강릉에서 언니가 생일선물로 따뜻한 내복을 사서 택배로 보내준 것을 받았을 때 고맙다고 통화하며 잠깐, 

또 친정엄마와 시어머니가 차례로 전화를 걸어오셔서 미리 생일을 축하해주셨을 때 또 잠깐 기억했을 뿐

저녁에 남편이 퇴근했을 때는 또 잊어버리고 있었다.


제일 졸려하던 연수부터 책읽어주며 재우고 나온 내게 남편이 핸드폰을 내밀었다.

"내가 당신 보여주려고 인증샷 찍어 왔어~"

뭔소린가.. 하며 들여다보니 컴컴한 밤거리에 셔터내린 가게가 보인다. 

'꽃뜨락'


잠깐 의아해하다가 알았다.

아. 우리 동네 꽃집. 

지하철에서 내려 집으로 걸어오는 길에 있는 작은 꽃가게.

거기 들려 내 생일선물로 꽃다발을 사오려했는데 문을 닫아 꽃은 못 샀고 

그 옆 순대국밥집에서 나는 구수한 냄새에 국밥 한그릇만 사먹고 왔다고

그래도 당신 좋아하는 순대는 사왔노라며 

남편이 계면쩍게 웃는데 

나는 그만 화가 났다.  


방금전까지 생일도, 꽃도 다 잊어버리고 아무 기대도 안하고 남편이 늦지않게 집에 온 걸보고 좋아하고 있었으면서도

갑자기 그 순간 서글프고 속이 상해졌다. 

"그렇지 뭐, 내가.. 내 팔자에 무슨 꽃다발을 받아보겠어.."

말이 너무 거칠게 나왔다.

남편이 당황해서 "아니, 가게가 문을 닫은걸 어떡해..." 하는데

"동네까지 오면 늦을텐데 회사 근처에서 미리 사던가.. 그 가게가 문을 닫았으면 다른데 갈 수도 있고!" 하고는 입을 다물었다.


그냥 꽃다발은 아니었다.

남편은 속마음은 자상하고 정도 많은 사람이지만  

그걸 세심하게 표현하거나 정성을 기울이는 일은 잘 못한다. 

꽃을 선물하는 일은 퍽 어색하고 쑥스러운 일이겠지.

연애할 때도, 결혼해서도 이벤트같은 것은 할 생각도 없고, 할 줄도 모른다.

왜 남자들에게만 그런걸 바라냐고 부당성을 지적하고 성토하는 목소리를 높이지만

정작 자기 부인이 바라는 것은 화려한 이벤트가 아니라 

정성이 깃든 손편지, 작지만 예쁜 꽃다발을 꽃배달 서비스가 아니라 직접 꽃집에서 꽃을 골라 소박하게 묶어서 들고와주는 것,

그 길에 자기도 흐뭇하게 웃으며 걸어와주는 것..

꽃을 선물해달라고 했던 내심에는 남편이 평소에 잘 못하는 그런 일을 

생일을 핑계삼아 한번 노력해보라는 

내 요구가 들어있었던 것이다.


아내가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왜 꽃을 선물해달라고 하는지 남편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잘 알고 그렇게 하려고도 했지만 

집앞 가게가 문을 닫은 상황이니 어쩔 수 없다, 는 현실적인 판단을 하는 사람과 

내가 결혼을 했을 뿐이다.


저녁 8시가 넘은 그 시간에 택시를 타고 다른 문 연 가게를 찾아보거나, 

내일이라도 꽃을 아내에게 선물해주려고 노력하거나,

미안한 마음을 담아 편지에 꽃을 그리거나, 

또 다른 어떤 노력을 하는 사람과

내가 결혼하지 않은 것이다.


아니, 그런 것들은 남편이 능숙하게 할 수 있는 일들이 아니다.

컴퓨터로 내가 원하는 가전제품이나 기타 여러 상품들을 찾아 주문하는 일은 

아무리 번거롭고 힘들어도 군말없이, 즐겁게 정성껏 척척 해내주는 사람이다.

내가 어렵고 귀찮아하는 일들을 그는 잘 해주고

나는 그가 어려워하는 일들, 마음을 쓰고 정성을 기울이고 글과 말로 표현하고 오래 생각하는 그런 일들을 좋아하고 즐겨한다. 

우리는 그런 면에서는 참 반대고

그게 때때로 나를 슬프고 속상하게 한다.









화는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졸려하는 아이들을 차례로 안방에 데려가 내 품에 안고 젖을 먹이고 팔베게를 해주며 재우는 사이에

마음은 천천히 가라앉았다.


남편은 그래도 기억했다.

기쁜 마음으로 꽃집으로 걸어갔고, 아내가 실망할 것에 마음도 아팠을 것이다.

좋아하는 순대를 맛있게 먹어주었으면.. 하며 까만 봉지를 손에 들고 걸어왔을 것이다.

하루종일 창문도 못 열만큼 안개와 미세먼지가 자욱해서

괴기스럽기까지 했던 도시에서 

종일 컴퓨터 앞에 꼼짝않고 앉아 머리에 쥐나게 일하다가 

밤이 되어서야 풀려나 아내와 아이들이 기다리는 따뜻한 집으로 부지런히 걸어 돌아온 남편이다.


결혼하고 6년을 사는 동안

때때로 마음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가 가라앉기를 몇차례 반복하면서 

내가 깨달은 것은 

지금 내 곁에 있는 것에 감사해야한다는 것이다.


엄마한테는 미운 구석만 보여서 저녁내 야단만 맞고 있던 여섯살 큰아들에게

어린 아가 대하듯 다정하게 하루의 안부를 물어주고 안아주고 뽀뽀하는 아빠, 

아내를 참 많이 사랑하고 늘 존경한다고 말해주는 남편, 

다정하고 유쾌하고 재치있어 함께 있으면 참 즐거운 친구이기도 한 사람과

결혼해서 예쁜 아이들 낳고 건강하게 키우며 살고 있는 것..

이 모든 것에 감사해야 한다.


아쉽고 속상한 것은 나만이 아닐 것이다.

남편이라고 내게 왜 섭섭한게 없을까... 

많겠지만 그는 늘 내게 화내지 않고, 탓하지 않는다.

감사하고, 기뻐하고, 좋아한다. 

나도 그래야겠다.. 

살다보면.. 우리는 서로가 바라는 사람들로 조금은 성장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래도 지금은. 우리가 함께 있는 지금

아이들과 함께 행복하게 웃으며 지지고볶으며 사는 지금을

감사해야겠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와서 

남편의 엠티 가방을 챙겨주고 

순대를 먹었다.

좀 식은 순대만 꾸역꾸역 먹으려니 목이 좀 메여서

냉장고에 맥주를 찾으니 없었다. 

쓰레기 분리수거함을 들고 나가 분리수거도 하고 맥주도 사왔다.

맥주야 열번이라도 사오겠지만 이 밤에 분리수거는 남편이 좋아하는 일이 아니다.

부엌 베란다에 쓰레기가 넘치면 낮에 그걸 쳐다보며 내내 괴로운 것은 나니 

얼른 내 손으로 해버리는게 정신건강에 이롭다.

맥주 홀짝이며 순대 소금찍어 먹으며 그날 온 '시사인'을 뒤적거려 읽으며 

노트북으로 영화보는 남편 옆에서 얘기도 좀 하다가

연제깨서 칭얼거리는 소리에 안방에 들어가 젖주며 나도 잠들었다.

그렇게 맞은 생일날 아침이었다.











아이들 모두 아침밥을 한그릇씩 잘 먹었다.

비록 제 손으로 먹는 녀석은 없고 세 녀석 모두 내 손으로 떠먹이는 것이지만(연수도 아직 몇 숟갈은 엄마가 거들어야한다ㅠ)

그래도 한 그릇씩 뚝딱 다 비운 것만 해도 고마워서 한마디 안 할 수가 없었다.


"야~~ 오늘 엄마 생일이라고 모두 밥도 잘 먹네~! 엄마 정말 좋다~ㅎㅎ" 



생일이라 그런가.. 

하루가 유난히 평화롭게 흘러갔다.

10시에 연수 어린이집 데려다주고 돌아와 연제는 바로 긴 아침낮잠에 빠져들었고

연호와 둘이 조용히 집 치우고 놀고 맛있는 간식도 먹고 나는 커피도 한잔 잘 마시는데 엄마 생각이 났다. 


우리 엄마.. 36년 전에 나를 낳고 이 아침 평화롭게 보내셨을까..

해뜰 무렵에 낳으셨다니까 밤새 진통하느라 얼마나 아프셨을까.

그래도 아이 낳고 나니까 아픈게 싹 없어져서 참 좋더마는 엄마도 그랬겠지..

다행히 올 봄에 연제를 자연출산으로 낳아봐서 나도 이제 엄마가 겪으셨을 출산의 시간들을 조금은 더 가깝게 느끼고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새벽 5시 반쯤에 연제를 낳고 나니까 정말 거짓말처럼 아프지도 않고, 너무 행복하고

연제를 옆에 눕혀놓고 잠자고 처음 미역국 먹고 하던 그 아침이 생각났다. 

브이백이라 걱정을 많이 하셨던 담당의사 선생님은 내가 병원 도착해서 세시간 만에 큰 어려움없이 건강하게 잘 출산한 것을 두고 '어머니께 감사드려야해요. 좋은 몸으로 낳아주셔서 고맙다고 엄마께 정말 감사드려요.' 하셨었다.

엄마도 내게 '너는 나 닮아 쉽게 잘 낳을 수 있을거야, 내가 너희들 다 그렇게 힘들지 않게 낳았잖니..'하는 얘길 많이 하셔서 나도 믿고 있었다. 

엄마를, 그리고 엄마의 딸인 나를..

멀리서 마음으로 엄마와 엄마가 나를 낳던 날, 그리고 힘들게 기쁘게 키워주셨을 많은 순간들을 생각하며 혼자 뭉클했다.

셋째를 낳고 맞은 생일이라 그런가... 엄마 생각이 더 애틋했다.









연제 일어난 뒤에 같이 점심 먹는데 역시 또 두 애 다 밥을 잘 먹는다. 맨날 생일해야겠다. ㅋ


2시에 연수 돌아오고는 아이들 목욕하는 사이에 한살림 배송이 왔다.

주문할 때는 생일이 또 기억나서 작은 케이크를 하나 시켜놓았었다. 

세 아이와 같이 촛불을 밝히고 조촐하게 생일파티를 했다. 

큰 아이 둘이 노래 불러주고, 촛불도 저희들이 다 끄고, 연수는 오늘 못 오는 아빠 대신 사진을 찍어주었다.

아이들하고 나만 해도 넷, 연수가 사진찍는다고 빠져도 사진에 나랑 연호, 연제 셋이 찍힌다. 

참... 우리 식구 많다. ^^ 

식구가 많은게 나는 좋다. 우리끼리만 있어도 이 역할, 저 역할 다 할 수 있고 서로 보듬고 같이 할 수 있는게 많다.



엄마 생일이라고 연호는 제 놀잇감중에 초록색 버스를 내게 선물로 주고, 

연수는 우리집에 있는 한자글씨 액자를 보고 따라쓴 그림(?)도 주고, 제 로보트 색칠놀이 한장을 찢어 엄마 칠하라며 주고(괜찮은데..ㅜㅜ)

저녁에는 사과나무와 하트를 여러개 그린 예쁜 그림도 또 선물로 그려주었다. ^^

손수 테이프도 정성껏 발라 거실벽에 붙여주기에 사진 한장 찍어두었다.

연제는.. 처음으로 혼자 힘으로 거실 소파를 붙잡고 일어서는 선물을 주었다. ㅎㅎ

어제까지만 해도 혼자 뭔가 잡고 일어서는 것은 어려워했었는데 

엄마 생일이라 진짜 큰 맘 먹었는지 오전부터 낮은 놀이감들부터 붙잡고 일어서기 시작하더니

저녁 무렵엔 꽤 높은 거실 소파를 붙잡고 혼자 번쩍번쩍 일어섰다. 

와...... 고맙다. 

모두모두.

^^









서른여섯살 생일.

참 행복하게 잘 보냈다.

울고 매달리는 아이들을 따뜻하게 많이 많이 안아주고, 한번도 화내지 않았던 참 드문 날이었다. 

내 생일이라 내 마음도 무척 귀해져 있었나보다.

일년 삼백예순다섯날을 모두 생일처럼 살 순 없겠지만

오늘 이 평화롭고 고마웠던 마음의 여운을 자주 기억하고 음미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Posted by 연신내새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