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화분 키우기'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1.05.20 꽃이 핀다 8
umma! 자란다2011. 5. 20. 19:04









우리집 치자화분에 처음으로 꽃이 피었다.
작년 봄인가 여름에 갈현동 골목에서 미용실앞에 놓고 팔던 작은 치자화분을 사오면서 '아 이 나무에 꽃이 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었다.
미용실 아주머니가 줄기끝에 매달린 초록순들을 가리키며 이게 다 꽃이 될거라고 하셔서 기대는 더 컸다.
하지만 작년에는 치자꽃을 결국 보지 못했다.
동글하게 뭉쳐있던 초록순들은 그대로 펴져서 잎이 되었을뿐 꽃봉오리는 생기지 않았다.
15층에 살아서였는지도 모른다.
10층 이상의 고층아파트에서는 화분들도 어쩐지 잘 못 자란다고.. 화초도 사람도 땅기운에서 너무 멀어지면 힘이 없어지는 모양이라는 어느 이웃분의 말씀도 있으니 말이다.
4층인 지금 집으로 이사와서 맞은 첫 봄.. 치자는 다시 몽글한 초록순을 여러개 피워올렸다. 
나는 저기서 꽃이 필까.. 아니면 다시 잎만 자랄까 궁금해하며 연수와 그 이야기를 여러번 나누었었다.  











그런데 보름, 아니 한달쯤 전이었을까... 연수가 '엄마 꽃봉오리가 생겼어!'하고 말해주어서 자세히 보니
정말 여지껏 보지 못했던 둥글고 뾰족한, 틀림없이 꽃이 될것같은 연두색 봉오리가 솟아나 있었다.
'여기도 있다, 여기도 있다!'하면서 연수가 세어보니 세 개였다. 며칠 뒤에 잎사귀 뒤에 숨어있던 것을 하나 더 찾아서 꽃봉오리는 모두 4개였다.

치자화분을 둔 안방 베란다는 햇볕이 한나절 아주 잘 든다.
빨래건조대도 있고 예전에 연수가 쓰던 아기흔들의자도 있고 작은 나무탁자와 의자도 하나 있다.
연수는 아기의자를 비행기라고 부르며 거기 앉아 조종하기를 좋아한다.
오며가며 치자꽃이 피었나도 자주 살피고 내게 봉오리가 흰색으로 변했다고 알려주기도 했다.

그러다 드디어 꽃이 핀 것을 알게된 것은 며칠전, 아침에 일어나 안방과 베란다 사이에 있는 유리문을 열었을 때였다.
향기가... 향기가 먼저 우리를 찾아왔다.
'이게 무슨 향기지? 무슨 향기가 이렇게 좋지..?'
처음에는 빨래에서 나는 섬유유연제 냄새인가 했다. 그러다가 그동안에도 늘 같은 세제로 같은 빨래를 널어왔는데 이렇게 좋은 향기는 못 맡았는데.. 하는 생각이 들면서 한나절만에야 치자화분을 들여다보았다. 

거기, 하얀 꽃이 벙그렇게 두 송이나 피어있었다. 
하얀 꽃잎이, 큰 꽃송이가, 아찔할만큼 향긋한 꽃향기가... 비현실적이다 싶을만큼 아름다웠다. 
"연수야, 치자꽃이 피었어~!" 
둘이 같이 들여다보고 향기도 맡고 사진도 찍어가며 꽃 옆을 한참동안 떠나지 못했다. 가슴이 살짝 벅찼다. 연수와 함께 이 꽃향기를 맡을 수 있어서 더 기쁘고 행복했다. 

이 치자화분을 사들고 갈현동 골목을 올라오며 '연수야, 엄마는 예전부터 치자를 키워보고 싶었어. 이 나무에서는 하얀 꽃이 핀단다. 꽃이 피면 향기가 무척 좋아! 우리 같이 잘 키워보자~' 하고 얘기하던 저녁..
아마 세 식구가 모처럼 동네 돼지갈비집에서 외식을 하고 술렁술렁 걸어돌아오던 주말 저녁이었을 것이다.
그때만해도 지금보다 훨씬 어렸던 연수가 '하얀꽃이 피어?'하고 묻고는 그 다음날부터 베란다에 둔 치자화분을 볼때마다 '엄마 꽃은 언제 피어?'하고 물었었다.
그렇게 기다리던 꽃이 드디어 피었다. 우리집에 온지 일년여만에 처음으로 꽃을 피워주었다.

꽃봉오리가 부푼것을 보고 나는 '평화가 태어나기 전에 꽃이 피어주었으면...'하고 바랬다. 
평화에게 꽃향기를 맡게 해주고 싶기도 했고, 오래 기다렸던 꽃이 피는 것 자체가 곧 우리집에 태어날 아기를 위한 선물을 받는 기분일 것 같았다.
치자는 내 바램을 들어주었다. 꽃향기를 맡으며 아기를 기다릴 수 있어서 참 좋다.. 참 고맙다.

정갈한 느낌의 하얀 꽃, 생각보다 단단한 꽃잎..
은은한 치자향기가 안방에 가득한 요며칠, 꽃이 있는 생활이 이렇게 좋은 것이구나.. 깊이 느끼고 있다. 










치자 옆에 있는 이 작은 나무는 '백정화'라는 꽃나무다.
이 나무에도 꽃이 피었다. 푸른 잎사귀들과 함께 가지에 꼭 잎사귀처럼 돋아오르는 하얀 잎들이 꽃잎이다.
저것이 백정화 꽃이라는 것은 나도 올해 처음 알았다.

이 나무는 신랑과 연애하던 시절에 산울림소극장 옆에 있는 작은 꽃집에서 내가 신랑에게 사달라고 해서 선물받은 것이다. 그전에 선물받았던 화분이 오래 살지 못하고 죽은 것이 미안해서 하나 더 사달라고 하고 내가 직접 골랐다.
신랑은 그때 '또 죽으면 더 속상할테니 화분은 그만 사지..'했지만 나는 잘 살려보겠다고 꼭 사달라 졸라서 선물받았다.
그런데 근 4년이 흐르는동안 백정화는 죽을 고비를 여러번 넘겼다. 흰꽃이 핀다고 했는데 그도 피지 않았다.
나는 내심 '나는 꽃화분은 잘 못키우나봐..ㅠㅠ'하고 좌절하기도 했다.
푸른 잎만 자라는 화분들은 그럭저럭 몇가지 신혼집에서 잘 키웠지만 꽃화분들은 늘 힘도 없고 겨우겨우 숨만 붙어있었다.

그런데 이집으로 이사오고나서 햇볕을 잘 쬐더니 백정화도 전보다 훨씬 생생하게 잘 살아났다.
여린 새잎도 많이 돋았고, 드디어 어느날에는 하얀잎들이 아주 무성하게 자라있었다. 그제서야 나는 '아 이게 꽃이구나!'하고 알았다.
그전에도 이런 잎이 한두이파리 난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내가 꽃일거라는 생각을 못했을 정도로 작고 힘이 없었다. 

올봄에는 백정화도 튼튼한 꽃을 오래오래 피워주고, 치자꽃까지 피어서 작은 우리집 베란다 꽃밭이 풍성하다. 
작은 화분 두 개에 몇 송이 안되는 꽃들이지만 내게는 어느 넓은 꽃밭 안부러운 고맙고, 황홀한 꽃밭이다. 
고맙다.. 고맙다. 
큰 아이가 잘 자라고, 곧 둘째아이가 태어나는 우리집에 피어준 꽃.. 눈을 들면 예쁜 아이와 예쁜 꽃이 보이는 삶.
그렇게 살 수 있게 해줘서 정말 고맙다.











연수는 노는 짬짬히 달려와서 꽃보다가 달팽이보다가 한다. 
작은 집안에 흙을 넣어줄때는 달팽이가 붙어있는 상추잎을 큰 그릇에 옮겨놓았었는데 
거실 베란다로 흙담으러가는 엄마 등뒤에 대고 "엄마, 연수는 달팽이 보고 있을께~. 달팽이 잘 있나 보고 있을께~!"하고 소리쳤다. 
작은 집안에서도 어딜가든 엄마 따라오던 녀석이 엄마와 잠깐 떨어지더라도 저는 달팽이 곁을 지켜줘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다. 짧은 시간이지만 연수는 눈도 떼지않고, 말도 걸어가며 달팽이 곁을 참 든든하게 지켜주었다. 
   
 









연수는 달팽이 단단한 등껍질이 만져보고 싶어서 랩에 뚫어놓은 공기구멍으로 곧잘 손을 넣는다. 
이번 주말에 텃밭갈때 다시 데려다주기로 했는데 연수, 잘 헤어질 수 있겠지..
달팽이 엄마아빠랑 친구들이 달팽이를 기다릴지도 모르고, 먹을 것도 많고.. 아무래도 우리집보다는 원래 살던 텃밭이 달팽이에게는 더 좋을꺼야.. 제 고향이 그리울거야. 우리집에 와서 일주일동안 잘 지내주었으니 '고마워~' 인사하고 돌려보내주자.. 했더니 "응, 그러자~" 한다. 












엄마가 치자사진을 찍으니 저도 찍는단다. 이제 엄마의 작은 디카는 연수가 제법 능숙하게 다룬다.
만 36개월이 다되어가는 연수는 요즘 또 부쩍 많이 큰 것 같다.
말도 전보다 훨씬 능숙하게 하고, 질문을 받아도 당황하지않고 제 나름대로 떠오른 생각을 다 말하는 것이 신기하다.
떼도 많이 줄었다. 함께 길을 가면서 막무가내로 고집을 부리지 않고 엄마와 제법 속도를 맞춰 잘 가준다.
여기저기 궁금한 것 다 둘러보고, 비둘기도 쫓아가고, 땅바닥에 떨어진 신기한 것들을 줍는 것이야 여전하지만
어린아이가 그마저 안할 수야 있나... 그래도 기다리는 시간이 훨씬 짧아졌고, 차조심하자는 말이나 '이 쪽 길이네~'하고 알려주는 곳으로 잘 뛰어가니 그만해도 너무 고맙고 대견한 성장이다. 
 











지난 화요일에는 연수와 함께 관악구에 있는 '모태산부인과'에 다녀왔다.
둘째는 자연분만을 하고싶어하는 나를 받아주는 병원을 찾아 나선 길이었다.
아빠와 함께 가려면 주말까지 기다려야하는데 그 전주 토요일에 연수 낳았던 병원을 찾아갔다가 거절당하고 나서는 기운은 빠졌지만 마음은 더 급해졌다. 
36주라 아주 여유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혹시 진통이라도 오는데 갈 병원이 없어 우왕좌왕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연수와 둘이서라도 병원을 찾아가보기로 했다. 
초음파도 볼테고, 이정도 주수면 내진을 할 수도 있어서 연수가 잘 있을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연수에게 '선생님이 평화 잘있나 살펴보는 동안 연수가 엄마 옆에 가만히 잘 있어줄 수 있을까?'하고 물었더니 할 수 있다고 했다. 엄마한테 안아달라거나 밖에 나가겠다고 하지 말고 옆에서 같이 잘 보자.. 했더니 참 믿음직스럽게 '응!'하고 대답해서 믿고 떠났다. 
가는 길에도 택시탈까 물었더니 버스타고 싶다고 해서, 버스부터 타고 2호선 지하철역에서 내려 지하철로 갈아타고 서울대입구역까지 잘 갔다. 지하철에서 만난 할머니들께 과자랑 사탕도 받아서 신나게 먹고, 내 손을 잡고 잘 걸어주는 연수가 얼마나 고맙던지.... 
우리 아기, 어느새 참 많이 컸구나.. 생각하니 내 첫아이의 성장이 고맙고 뿌듯해서 괜히 코끝이 찡했다. 

모태산부인과에서 만난 브이백 전문의인 이건영 선생님은 내가 지금껏 만나본 산부인과 의사중에서 가장 자상한 분이었다. 
'출산은 산모님의 힘으로 하는 것이고 자연분만에는 산모님의 의지가 가장 중요합니다. 저희들은 옆에서 도와드릴 뿐이지요.' 
다른 두 병원에서 '저희 병원에서는 안되겠는데요'하는 의사의 말을 듣고 돌아서야했던 나는 출산에 있어서 산모의 의지와 역할을 존중하면서 최선을 다해 돕겠다는 의사를 만나자 그만 눈물이 핑 돌 것 같았다. 반갑고 고마웠다. 열심히 운동하고 많이 걸으셔서 꼭 순산하시라는 따뜻한 격려를 받고 진료실을 나오는데 '아 이제 살겠다' 싶었다. 

연수는 선생님이 초음파를 보는 동안 엄마 옆에 서서 '동생은 자고 있네.. 여기가 얼굴이고, 여기가 다리야' 하는 말씀을 잘 듣고 있었다. 
내진할 때는 선생님이 종이와 연필을 찾아주시며 '잠깐 선생님 책상에서 그림 그리고 있을까. 동생 얼굴 한번 그려보자'하는 말씀에 정말 진지하게 제 나름껏 동그라미를 그리고 눈코입까지 그려넣으며 잘 기다려주었다. 
그런 선생님과 연수 모습을 보면서 나는 늦게라도 이 산부인과를 찾은 것, 이 선생님이 출산을 지켜주시게 된 것을 깊이 감사드렸다. 










병원을 나오니 12시, 점심시간이었다. 
마음도 가볍고 기분이 참 좋아서 '연수야, 우리 맛있는 점심 사먹고 가자. 뭐 먹을까?' 물었더니 '짜장면먹자'는 답이 돌아왔다. ㅎㅎ 
연수가 먹고싶어하는 포도쥬스도 한병 사들고 전철역앞 중국집에 들어가 간짜장 한그릇을 둘이 사이좋게 나누어 먹었다. 
그리고 택시타고 돌아오는 길.. 연수는 차에서 곤히 잤다. 
잠든 아이의 머리칼을 쓸어주면서 '엄마 곁을 지켜줘서 정말 고맙다.. 네가 있어서 엄마는 정말 힘이 나'하고 속으로 말했다. 

연수를 낳고, 키우는 동안 나는 그 생각을 참 많이 했다. 
내가 아이곁을 지켜주는 것 같지만 실은 아이가 내 곁을 지켜주고 있다고.. 이 아이가 있어서 내가 이만큼 힘을 내고, 어려운 것도 견디고 그리고 웃고 행복해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평화도 그럴 것이다. 이제는 두 아이가 내 곁을, 내 삶을 지켜줄 것이다. 

연수를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는 이유도 연수가 안가겠다고 하는 것도 있지만, 내가 연수와 함께 보내는 이 시간들이 참 좋아서이다. 연수가 집에 없는 낮시간은 상상이 잘 안된다. 연수와 함께 밥먹고, 같이 산책하고, 책을 읽거나 장난감을 가지고 함께 노는 시간들이, 어느날 문득 생각해보니 참 행복하고 즐거운 것이었다. 우리는 때로 투닥거리지만 대개 늘 다정하다. 한참 고단할 때는 엄마 혼자 누워 자기도 하고, 연수는 그런 엄마를 좀 찔러보다가 안되면 저 혼자 뭐든 찾아서 한참 더 놀고 끝내 내곁에와서 잔다. 
이제 평화가 태어나면 익숙한 둘만의 시간이 큰 변화를 맞겠지.... 하지만 셋이 보내는 시간에 또 우리는 적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시간도.. 즐겁고 행복할 것이다. 
 
연수와 평화... 아이들이 다 자라서 드디어 내가 혼자 낮시간을 보내는 때가 오면 아마 나는 많이 허전하고 허둥거릴 것이다.
한동안 정처를 못잡고 서성거리다가... 나중에야 열심히 책을 읽고 글을 쓰고 혼자 산책하면서 다시 평온을 되찾으려 애쓰게 되겠지.. 그런 날은 아직... 아직 멀었지만 말이다. ^^

연수의 낮잠이 길어져서 오늘은 나도 모처럼 밤이 아닌 낮에 블로그 글을 마무리하게 되었다. 
비가 많이 온다. 평화는 언제 태어날까..? 기다려진다. 아직 준비할 것들이 좀 남아있고, 만나기로한 약속들도 다음주까지는 있다. 그때까지 기다려줄까? ^^ 
형아될 준비를 하느라고 연수도 요즘 마음이 싱숭생숭할 것이다. 
아 참, 연수랑 요즘 잘 보는 그림책 한권을 블로그에 올려야지.. 생각했었는데 잊지말고 덧붙여야겠다. 
이 책을 본 뒤로 연수는 내가 똥마려워서 '아 배아프다' 하면 '오늘 평화가 태어나는거 아니야?'하고 정색하며 묻는다. ^^;;
동생맞을 준비를 하고있는 아이와 함께 보면 참 좋은 책이다. 



아가야, 안녕? - 10점
제니 오버렌드 지음, 김장성 옮김, 줄리 비바스 그림/사계절출판사



집에서 태어나는 아기.. 자기를 기다리는 많은 형제자매들과 만나게되는 아기... 참 그리운 풍경이다. 
나는 이번에는 자연분만을 할 수있을거라는 기대만으로도 행복하다. 행복하게, 평화롭게 잘 만날 수 있길 빌 뿐이다. 
평화야, 연수야.. 고마운 아이들아. 너희들의 엄마가 되게 해줘서 고맙다..





     
    



Posted by 연신내새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