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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하는 나무들2012. 10. 31. 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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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6시면 어김없이 시작되던 하루. 
10월 24일 수요일, 여행의 다섯째 날이었다.

서늘한 아침 공기를 코끝으로 느끼며 엄마 놀자고 조르는 두 녀석과 이불 속에서 조금이라도 더 꼼지락거리다가 
해가 떠오른 듯 밖이 환해지면 겉옷을 챙겨입고 우리방을 나와 바로옆 휴게실로 가면 늘 7시쯤 되었다.

연수에게 부탁해 내 사진 한장을 찍었다.
서른다섯, 세 아이의 엄마 전욱이 여기 있다.  
 





달물의 휴게실에서 연수가 "엄마, 음악시간이야~!"를 외치며 우클렐레를 둥당거리는 동안 나는 연호 손에 과자를 조금 쥐어주고 간단한 우리의 아침을 준비했다. 
연수가 "엄마가 노래해, 내가 기타를 칠께"하고 노래를 주문하면 나는 생각나는데로 흥얼흥얼 노래를 지어내 불렀다.
"우리는 제주를 여행한다네~ 오늘은 날씨가 좋다네~"
그럼 연수가 깔깔 웃으며 노래를 이어갔다.
"오늘은 바람도 잠잠하다네에~~ 우리는 바다에 갈거라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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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물에서 지내는 동안 아침은 늘 소박하고 간단했다. 

따뜻한 모과차 두 잔, 전자렌지에 데운 보리빵 몇 개, 가스버너에 끓인 누룽지 한 냄비.. 어느날은 뜨거운 김이 나는 햇반 한그릇을 김을 싸서 셋이 호호 불며 맛있게 먹기도 했다.

저녁을 일찍 먹고 밤새 자는 우리 아이들은 아침에 눈뜨면 배가 고프기 때문에 게스트하우스의 조식 시간인 8시보다 훨씬 일찍 뭔가를 먹어야한다. 전날 저녁에 우유나 빵, 누룽지 같은 것들을 미리 좀 준비해 두었다가 7시쯤 휴게실에서 먹으며 놀다보면 8시, 다른 손님들이 하나둘 휴게실로 모이고 달물의 스텝 림이모가 따끈한 된장국과 참치가 든 맛있는 삼각김밥을 가지고 왔다. 

연수연호를 위해 수지이모가 둥글게 만들어준 작은 주먹밥과 요구르트를 먹으며 아이들은 달물 마당에서 비누방울도 불고 호스로 물도 뿌리며 아침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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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날은 특별한 일정이 없었다. 

그래서 셋이서 월정리를 어슬렁어슬렁 산책하기로 했다. 

사실 서울에서 제주여행을 계획할 떄는 거의 매일 이러하리라 생각했는데 어쩌다보니 친구들덕분에 여기저기 구경도 가보고 아이들도 나도 다채롭게 지냈다. 

연호 유모차에 귤과 쥬스같은 간식거리들을 챙겨넣고 갈아입을 옷도 챙기고 해서 해가 가장 따끈한 아침 9시 반쯤 길을 나섰다. 

이번 여행을 위해 큰맘먹고 장만한 휴대용유모차는 가볍고도 튼튼해서 유용하게 참 잘 썼다. 17개월, 아직은 먼거리를 걷기 힘든 연호를 태우고 제주의 돌담길과 숲길, 오름과 모래사장까지.. 참 잘 다녀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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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물에서 나와 마을을 한 바퀴 돌고는 바다로 향했다.  
전봇대에 매달려있는 올레길 표지가 예뻤다. 
나는 올레를 처음 걸어보았다. 
제주올레가 처음 시작될 때가 내가 연수를 낳을 딱 그즈음이어서 신문이나 책에서 올레 얘기를 볼 적마다 '나는 언제쯤 걸어볼 수 있을까..' 싶었는데 연수가 다섯살이 된 가을 꿈꾸던 올레길을 밟아는 본 것이다. ^^
그 사이 어느새 제주올레는 20코스까지 만들어졌고, 마침 그 20코스가 월정리 바닷가로 향하게 되어있고, 내 친구 광호와 수지씨가 지은 게스트하우스 '달에 물들다'를 끼고 지나가게 되어서... 그 멀고도 가까운 인연의 길을 돌아 아직 어린 아기들을 키우는 나도 올레길 위에 서서 이렇게 가슴설레어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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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로 가는 올레길, 바다로 가는 아이들.







연호도 이제는 제법 바다에 익숙해져서 형아를 따라 성큼성큼 잘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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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내 일은 따뜻한 모래사장, 유모차 그늘에 앉아 아이들이 주워다주는 미역과 조개들을 받고, 연호에게 귤을 까주고,  그리고 아이들과 바다와 하늘을 바라보는 일.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풍경속에서 잠시지만 세상에서 제일 편안한 마음으로 호흡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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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사장에 난 유모차 바퀴 자국을 따라 아이들은 기차놀이를 했다. 
둘이라 참 좋다. 연호가 형아를 졸졸 따라다니며 놀 수 있을 만큼 커서 참 좋다. 

 


 






아무리 제주라 해도 10월의 바다와 바람은 차다.

바다에서 좀 논 뒤에는 따뜻한 핫초코를 마시러 월정리 바다 앞에 있는 까페로 갔다. 

월정리가 아직 별로 알려지지 않은 마을이고 바다였던 시절, 바닷가에 딱 하나 있었던 작은 까페 '아일랜드 조르바'.

'아이들과 제주도에서 한 달 살기'라는 여행서를 읽을때 이 까페이름과 바다 얘기를 처음 듣고, '아 나도 꼭 가봤으면-!' 했던 바로 그 곳. 

연호를 낳고 두달채 안 돼서, 강릉 친정에 산후조리차 내려가있을 때 블로그 친구 고래에게 선물받아서 읽은 책이었는데 일년 조금 지나서 그곳에 와있다니..  연호의 성장이, 광호와 수지의 월정리행이 모두 신기하기만 하다.

지금은 '고래가 될'로 이름이 바뀐 조르바로 가는 길. 

바다를 볼 수 있게 색색깔의 예쁜 나무 의자들이 군데군데 놓여있는 길. 

서울집에 돌아와 있는 지금은 내가 저 길을 정말 매일 지나다녔다는게 믿기지 않는 기분이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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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로 길게 뚫려있는 이 작은 구멍이, '한모살'이라는 고운 이름을 가진 월정리 바다의 가장 예쁜 한 부분을 액자에 담아 걸어놓은 듯한 이 작은 벽이 까페 조르바(고래가 될)을 특별하고 사랑스러운 곳으로 만들어주는 듯 했다.
저 바다를 담아갈 수 있다면... 아무도 이룰 수 없을 간절한 바램을 이룬듯한 행복감을 잠시 이곳에 앉아서는 느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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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에는 작년 여름 이후로 생겨났다는 다른 까페들도 있었지만 일주일동안 '고래가 될'에 밖에 못 갔던 제일 큰 이유는 여기에 고양이와 강아지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연수와 연호가 일리, 바이칼 같은 이름을 가진 고양이들을 따라다니는 동안 나는 잠시 따뜻한 차를 마시고, 바다 풍경에 눈길을 주고, 까페 안에 전시중인 어느 화가의 그림들을 바라볼 모처럼의 여유를 누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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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파키스탄을 여행하며 그림을 그리는 중이라는 젊은 화가의 그림은 재미있고 아름다웠다.
얼마만에 보는 그림 전시인지... 연호 낳기전에 장 자끄 상페 전을 보고 왔던게 마지막이니까.. 강렬한 색감과 유화의 붓느낌, 여행과 자연, 사람들을 좋아하는 화가의 따뜻한 감성 같은 것이 느껴져서 모처럼 나도 행복하게 한참동안 그림들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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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가 놓여져있는 높은 담 위까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간 연수.
용감하구나. 꼭 어릴때의 엄마같아.. 높은데서 자꾸 뛰어내린다고 외할머니의 걱정을 들었던 꼬맹이 여자아이, 그 애를 보는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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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가 될'에서 멀지 않은 길가에 연수가 만들어놓은 모래성.
일주일을 지나다니며 매일 같이 흔적을 찾고, 다시 보수하고, 제 이름도 써달라고 했다.
아직도 거기 남아있는지, 연수의 모래성 흔적.










까페에서 돌아오는 길. 연호는 유모차에서 곤히 잠이 들었다. 
월정리에서 지내는 동안 깨봉 삼촌 집에서 내가 아이들 점심, 저녁을 지어 먹인 적도 있었다.
수지 이모가 우리 때문에 너무 자기 스케쥴에 지장을 받으면 안되겠다 싶기도 했고, 달물의 저녁식사 시간이 또 7시 이후로 늦기도 해서 일찍 저녁먹는 우리 아이들 밥은 내가 따로 해먹이는게 편할 것 같아서였다. 
마침 친한 친구인 꺠봉삼촌네가 한 동네에 있고, 그 부엌을 내가 편하게 쓸 수 있어서 낮에는 삼촌 일나가고 없는 집에 우리끼리 가서 호박반찬 뚝딱 해서 밥 먹고, 감자볶음 계란찜 같은 쉬운 반찬으로 아이들 밥도 먹이고, 더운 물에 아이들 씻기고, 마당과 옥상이 있는 삼촌의 바닷가 작은집에서 한참 놀다가 오기도 했다.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하는 여행에서는 사먹는 것보다 이렇게 간단하게라도 엄마 손으로 밥지어 먹일 수 있는 부엌과 더운 물로 씻길 수 있는 욕실이 정말 요긴했다.   
며칠 바깥 생활을 해보더니 연수는 "엄마가 해주는 밥이 최고로 맛있어~!"하며 별 것 아닌 반찬에도 엄지손가락을 연신 치켜올리고, 밥도 한그릇 가득 뚝딱 비우곤 했다. 연호도 밥때마다 정말 좋아하며 배부르게 잘 먹었다. 워낙 많이 뛰어놀아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제가 익숙한 엄마 손맛이 얼마나 고맙고 좋은 것인지 어린 마음에도 깊이 느낀 듯 하다. 역시 애나 어른이나 밖에 나와봐야 철이 든다. ㅎㅎ










아이들과 배불리 먹고 따뜻하게 씻고 달물로 돌아가는 길.
멀리 한라산이 보여 무척 찍어보고 싶었으나 마침 해도 한라산쪽으로 지고 있어 사진이 온통 컴컴하다.









해지기 까지는 시간이 좀 있어서 아이들과 올레길을 걸어보기로 했다.

달물의 반대 방향으로, 우리가 걸어갈 수 있는 만큼만 걸어갔다 오자... 연수랑 얘기하고 타달타달 걷는 길.

연호가 저도 유모차에서 내려달라고 낑낑해서 내려주었더니 무언가에 속이 상해서 저만큼 혼자서 앞장서 가버렸다.







"연호야, 같이 가~!" 아야가 뛰어간다.







형아가 어디를 다니지 않으니 서울에서도 24시간 늘 붙어지내는 둘이지만 

집이 아닌 낯선 공간에서 오래 지내면서 둘이 서로에게 느끼는 감정은 좀더 각별해지는 것 같았다.

연호도 그전보다 '아야(형아)'를 훨씬 많이 찾고, 의지하고, 잘 따라다니고 

연수도 연호를 다정하게 보살피고 잘 데리고 놀았다.    











어린 마음들에도 우리 셋이 지금 먼 곳을 함께 여행중이고, 그래서 우리 셋이 서로서로 보살펴주면서 이 낯설고 즐겁고 힘들기도 한 시간을 함께 잘 보내야한다는걸 느끼는 것일까. 


나는 아무래도 아이들과 함께 하는 여행의 매력에 깊이 빠진 것 같다. 


(이번 여행이 내게 준 또 한가지는 고양이와 개를 기르며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것.. 그전에는 사실 늘 엄두가 안 났었는데 아이들이 정말 좋아하는걸 보니 왠지 그런 생각이..^^;)







아야를 유모차에 태우고 연호가 밀어준다.










'도파당'이라는 이름이 붙어있는 바다 앞에서 우리의 올레길 순례는 끝났다. 
돌아갈 길이 아득했지만 바다가 보이는 곳까지 가자는 연수는 말에 걸어걸어 제법 먼 여기까지 온 것이었다.
이만큼의 거리가 올레 20코스 전체중에 얼마쯤 되는지는 모르겠다.

어른 걸음으로 걸으면 15~20분 남짓한 거리니 그리 먼 거리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다섯살 연수와 두살 연호, 그리고 엄마 배속에서 5개월을 산 아가 바다와 세녀석들을 품고 한시간이 훌쩍 넘도록 천천히 느릿느릿 걸었던 나에게 있어서는 우리가 함께 갈 수 있는 최고로 먼 길이었고, 순례였다. 
돌아오는 길, 엉덩이는 몹시 아팠지만 마음이 참 뿌듯했다.









저기, 저녁햇빛을 받아 다홍빛으로 빛나는 집이 '달물'이다.
우리들의 게스트하우스, 내 친구들이 살고 그 아이들이 태어나 뛰어놀 집.
 

연수가 "저기, 달물이 보여!!" 하고 반가워하며 뛰어갔다.









Posted by 연신내새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