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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11.01 세 아이와 함께 걷는 산길 - 양평 수종사를 가다 13
여행하는 나무들2013. 11. 1. 00:33


아이들이 오래 감기를 앓았다.

중간에 나와 남편도 한차례씩 옮아 몸살과 기침감기로 고생을 했다. 

연수는 어린이집을 많이 쉬었고, 밤에는 아픈 세 아이가 번갈아가며 깨는 바람에 내가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낮에도 밤에도 좀처럼 쉴 짬이 안나는 날들이었다. 집안일로 시댁에 내려갔다 온 주말을 제외하면 나는 아픈 아이와 집을 지키고 남편은 다 나은 아이들 데리고 바깥바람 쏘이며 조용히 몇 번의 주말이 지나갔다. 그러는 사이에 한낮에는 여름처럼 무덥던 초가을이 다 지나가고 어느새 낮에도 찬바람이 불고 노란 나뭇잎들이 비처럼 떨어지는 깊은 가을이 되어있었다. 


한동안 하늘이 정말 아름다운 날들이 계속 되었다. 아픈 아이들 안고 집안에서 창밖을 내다보면 매일 조금씩 물드는 나뭇잎들과 구름 한점 없이 푸른 하늘이 눈이 부셨다. 아파도 밖에서 놀고싶어하는 아이들 따라서 아파트 놀이터에 나가면 그 푸른 하늘만 한참 쳐다보고 있어도 기분이 한결 좋아지곤 했다. 

아이들 감기가 거진 다 나아간다 싶던 어느 일요일, 오랫만에 자리를 털고 일어난 사람들처럼 나는 마음이 한껏 밝아져서 세 아이들 데리고 남편과 길을 나섰다. 두물머리가 한 눈에 보인다는 절, 수종사에 가보고 싶었다. 


오랫동안 블로그에 글을 쓰지 못해 소식 궁금해하고 걱정해주셨던 이웃들께 이 사진들로 인사드리려고 한다. 우리.. 잘 있다고. 세 아이들, 아픈것 잘 이겨내고 씩씩하게 자라고 있노라고. 보고싶다고. ^^







수종사는 남양주시 조안면에 자리잡고 있는 작은 사찰이다. 

서울의 동쪽 끝, 강일동에 살고부터 한강을 자주 보고 그 강을 따라 동쪽으로 올라가보는 일도 많아졌다.

남들은 어렵게 한번 시간내서 드라이브삼아, 여행삼아 찾아올법한 길을 동네 마실나가듯, 가까운 마트가듯 쓱 가게 된 것이 외곽에 살아서 누리는 좋은 점이다. 

미사리와 덕소를 지나 조금 더 올라가면 있는 팔당대교 즈음부터 한강은 아파트 그림자를 벗어나 산의 푸른 빛을 담고 반짝이는 깊고 아름다운 강이 된다. 두물머리가 있는 남양주시 조안면 가까이 가면 한강은 습지이기도 했다가, 그 안에 여러 섬을 담고 굽이굽이 흐르는 넓고 유려한 곡선의 강을 보여준다. 

팔당생협과 슬로우푸드문화관이 있는 수종사입구 버스정류장에서부터 수종사 일주문까지 우리는 차로 올라갔다.

버스를 타고 와서 정류장부터 베낭을 메고 산을 오르는 등산객들이 많았는데 그 모습이 부럽고, 그 곁으로 흙먼지 일으키며 차를 타고 올라가는 것이 죄송했다. 

어린 아가들 데리고 가는 길이라 어쩔 수 없다 생각했지만 미안하고 좀 부끄러웠다. 아이들이 좀 크면 우리도 평지에서부터 우리 발로 걸어서 올라가리라.. 그 전에 또 오게 되면 그래도 조금은 더 아래쪽에 차를 세우고 좀 더 많이 걸어가야지..^^;   








일주문 앞에 있는 작은 기념품가게에서 산 빵을 연호는 꼭 제가 들고 가겠다고 고집을 부리고는 정말 한참동안 잘 들고 걸어갔다. 일주문에서 절까지도 어린 아이 걸음으로는 꽤 먼 거리인데 두 돌을 지나며 아기티를 벗고 어린 아이 티가 물씬 나게 된 연호는 제법 의젓하게 잘 걸었다. 아빠가 반쯤 안아주고, 마지막 오르막길은 조금 위험하기도 해서 내내 안고 올랐지만 그만하면 세살치고는 훌륭한 여행자였다.







연제 아기띠해서 안고, 때때로 연호 손 잡고 연수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 걷는 산길.

세 아이와 함께 '걸었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세 아이와 '함께' 키 큰 나무들이 가득한 숲길을 걸어가는 기분은 참 좋았다. 

오래된 숲의 푸른 나무들은 아름다웠고, 어린 나무들처럼 내 곁에서 싱싱하게 자라고 있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일은 고맙고 흐뭇했다. 

지나온 일상은 참 힘들고 고단했는데, 이렇게 찬란한 숲속에 너희들과 함께 서보니 그 시간들이 모두 소중하고 빛나는 과정임을 알겠구나. 











딱따구리 소리를 나도 처음 들었다.
닥 닥 닥 닥 조금 둔탁한 듯 하면서도 또 어쩌면 가볍게 나무를 두드리는 듯한 소리.
연수 연호가 모두 귀기울여 들었고, 아빠가 정성껏 사진을 찍어주었다.







오랫만에 큰 카메라를 들고 길을 나선 남편은 이 날 나와 아이들 사진을 아주 많이 찍어 주었다.

본래 하늘이 이렇게 맑고 날씨가 좋아서 두물머리 풍경을 잘 볼 수 있는 날도 드물 거라며 망설이는 나보다 앞장서서 수종사 행을 결정한 남편이었다. 

모처럼 경치좋은 곳에 가니 풍경사진을 열심히 찍으실 줄 알았더니 식구들 사진을 정말 열심히 찍었다.

덕분에 나도 이렇게 잘 나온 사진을 오랫만에 갖게 되었다.

아이 셋 낳고 키우느라 머리 손질도 제대로 못하고, 세수도 겨우겨우.. 옷도 대충대충 입는 영 관리 안되는 서른여섯 아줌마지만 

고운 아기 품에 안고 활짝 웃는 모습을 이렇게 빛나게 찍어주는 남편이 있으니 전욱은 행복한 여자네..^^








수종사에서 내려다본 한강.


수종사 바로 아래있는 계단으로 된 가파르고 긴 오르막길은 그 위에 도착했을때 보게 될 풍경에 대해 미리 무척 기대하게 만든다. 

그리고 드디어 도착했을 때

탁 트인 눈 앞에 펼쳐지는 풍경은 

기대 이상이다.















셋째 젖먹인다. 















이 날 연수, 씩씩하게 참 잘 걸었다. 


연수를 생각하면 아주 오래전부터 나와 함께 여러 곳을 씩씩하게 걸어주었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래도 그게 대부분 연호 태어난 뒤의 일이니 연수가 세 돌이 지난 후다.

연호는 내년 여름이면 세 돌이 된다. 

그때쯤엔 두 형제가 함께 잘 걷겠구나. 

연제는 걸음마를 할 테고.

그러면 우리의 여행은 또 새롭겠구나.








운길산 수종사.

세 아이와 함께 하는 여행의 기쁨을 미리, 아주 달콤하게, 쵸코릿이 가득 든 상자를 살짝 열어 한 개 맛본 기분이다.

하지만 오랫만의 산행에(10kg 아가까지 안고-.,-) 돌아와서는 다시 엄마아빠는 병이 났고 아이들도 잘 나아가던 감기가 다시 쿨쩍..

연이어 지난 주말엔 시골에서 농사짓는 대학선배네로 친구들 여러 가족과 함께 1박2일 여행을 다녀와서 또 모두 감기 창궐..ㅠㅠ


빛나는 가을이 한 고비 넘을 때마다 쉽지않고나.

그래도 간다. 우리는. 힘내서. 





+ 혹시 이 글을 보고 '수종사'를 찾아가고자 하시는 분을 위한 팁.

점심은 조안IC 바로 옆에 있는 '기와집 순두부'가 맛있습니다. ㅎㅎ 직접 만든 뜨끈한 순두부 국물, 착한 가격, 맛있는 나물 반찬. 줄이 엄청 길지만 집이 커서 아주 오래 기다리진 않았답니다. 







Posted by 연신내새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