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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mma! 자란다2009. 10. 17. 22:33









황대권씨의 옥중 서간집 '야생초 편지'에서 "국화가 없으면 가을도 없다"는 구절을 읽은 적이 있다.
구척담장안 옥뜰의 가을을 눈부시게 밝혀주었을 국화가 요즘 우리 아파트에도 한창이다.
밖에만 나가면 신이 나는 아이는 그래서 더 신이 났다.
   
국화꽃을 갖고 싶어 애를 쓰는 아이를 앞에 두고 나는 한참 고민했다.
꺾게 두어도 될까, 아니면 못 꺽게 해야할까...

"연수야, 꽃 참 예쁘지? 여러 사람이 볼 수 있게 그냥 두고 보자. 우리가 꺽어가면 다른 사람들은 못 보잖아.."
우선 설득해봤다. 그렇지만 아이가 한두송이 꺽어도 티도 안날만큼 국화꽃은 곳곳에 많다... 허니, 나 자신도 설득이 안된다.

"우리가 꺽으면 다른 친구들이나 형아누나들도 꺽고싶을꺼야. 그러다 금방 꽃이 다 없어지면 어쩌니.."
심한 과장이다. 누나들이 소꿉놀이 재료로 몇 송이 따가서 노는걸 나도 봤지만 그래도 꽃은 또 많다. 

"연수야, 네가 꺽으면 꽃이 아야~ 해. 꽃한테 미안한 일이지. 오래 살게, 꺽지말고 보자..."
이건 내 맘에 심히 걸린다. 제가 타고난 아름다움을 다 펼쳐보이고, 벌의 힘을 빌려 씨도 맺은 후에 자연스레 생을 마감할 권리가 꽃한테도 있는것 같다. 그러나 아이에게는 우선 제 손에 쥐어보고 싶은 마음이 훨씬 크다.  

아이가 꽃과 처음 제대로 친해진것은 지난 여름 외갓집에 갔을 때였다.
눈만 뜨면 마당가에 핀 봉숭아꽃을 주무르면서 놀고, 외할머니와 사촌누나와 함께 나선 동네산책에서 들판에 지천으로 핀 토끼풀꽃, 민들레 같은 꽃들을 꺽어 손에 쥐고 놀았다. 그런 아이에게 꽃은 당연히 꺽어서 손에 쥐고 향기도 맡아보고, 꽃잎도 뜯어서 날려보고, 때론 입에 넣고 맛도 보는 그런 예쁜 놀잇감이다. 그런데 서울에 돌아와서는 꽃 한송이 꺽으려할때마다 엄마와 실갱이를 하고 있으니 저도 무척 답답할 것이다.

나는 아이가 꽃을 좋아하는 아이로 자라기를 바란다.
꽃의 아름다움을 눈으로, 코로, 입으로 즐기는 것만이 아니라 꽃을 포함한 자연을 보며 때로는 마음깊이 위안도 얻고, 생명의 뭉클한 감동도 느낄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심지어 어릴적 촌에서 종일 논밭과 산을 뛰어다니며 자란 내가 가지고 있는 자연에 대한 감성보다 아이는 더 깊고 풍부한 감성을 가진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그런데 그럴만한 환경속에서 키우지도 못하면서, 겨우 화단에 핀 꽃 한송이도 제대로 만져보지 못하게 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나는 나대로 속이 상한다. 
화단의 꽃 한송이를 지금, 이제 겨우 두살된 아이가 꺽을수있냐 없냐가 장차 이 아이가 자라서 자연을 사랑하는 아이가 될 것이냐 아니냐를 결정짓는 절대적 사건이 되지는 물론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초보엄마는 이것이 아이 인생을 놓고 해야하는 무슨 중대한 판단이라도 되는듯이 고심하는 것이다.

"아저씨가 '이 놈~' 해" 하고 경비원 아저씨를 끌어다 겁을 주면 쉽게 단념시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주위의 선한 이웃들을 무서운 존재로 아이에게 각인시키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닐 것이다.
그보다 실제로 날이 가물면 양동이와 호스로 물을 주면서까지 관리하시는 아저씨들의 수고를 생각하면 아이가 화단의 꽃을 꺽게 두기가 죄송했다.

그래서 결국 내가 찾은 타협점은 아저씨들이 집중 관리하시는 화단의 꽃은 꺽지 못하게 하고,
아파트 놀이터 구석이나 나무 아래, 제 스스로 씨를 날려 자란 꽃들이나 아저씨들의 관리품종이 아닌 들꽃들(나팔꽃, 괭이밥꽃, 맨드라미, 그외 이름모르는 야생화들..)은 마음껏 꺽어 손으로 주물러 보게 하는 것이었다.
화단의 꽃들은 아저씨가 열심히 키우시는 것들이니 우리가 꺽을 수 없다고 단단히 얘기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아이는 아쉽게 꽃옆을 맴돌다가 결국 두어송이는 꺽어 만지곤 했다. 

이 어린날에 꽃을 좋아하고 손으로 만져보고 놀았던 것이 훗날 아이가 자연을 사랑하고 보호할 줄 아는 사람으로 자라는 바탕같은게 되었으면 하고 엄마는 바란다.
지금 꽃을 꺽게 두는 것이 '자연보호'에는 부족한 태도일지 몰라도, '자연사랑'에는 한걸음 더 다가가는 것이 되기를... 
엄마의 바램은 아는지 모르는지 오늘도 아이는 꽃따들고 놀기에 여념이 없다.

감질나게 몇 송이씩 밖에 안피던 여름꽃의 시절이 가고 이제는 무더기로 환하게 피어나는 가을 국화의 시절이 왔다.
어느날 아침에 나가보니 놀이터 그네 옆에 노란 국화덤불이 밤새 활짝 피어있었다.
아이는 제 키보다 큰 국화덤불 앞에서 좋아서 어쩔 줄 몰라하고, 나도 모처럼 마음 편히 아무 제지도 하지 않은채
그네에 앉아 아이가 국화꽃을 따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아이는 작은 손에 주체못할만큼 국화를 따서는 내게 갖다주고, 또 따오고, 향기를 맡고 국화덤불을 이리저리 잡아당겨보며
한참동안 아주 신나게 놀았다.

아이가 뜯어놓은 국화 꽃송이들을 나는 윗옷 주머니에 소중하게 집어넣었다.









집에와 소쿠리에 담아보니 예쁘단 생각보다 먼저 '아고 이녀석 많이도 꺽었네..' 하는 생각이..^^;;
누구에랄것 없이 죄송한 마음이 되었다.
잘 말려 국화차를 끓여먹어볼까.. 하고 말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국화의 운명은 우리 집에 올때 그랬듯이, 떠날 때도 아이의 손에 달려있었으니..








설겆이하다 돌아보니 이렇게.. 상위에 올려놓았던 국화 소쿠리를 어느새 끌어내려서
휙~ 뒤집고는 소쿠리를 덮어쓰고 놀고 있었다.








사먹은 적은 있어도 말려본 적은 없어 제대로 될까 싶었는데.. 역시나 국화차는 물건너갔다. ^^;;;









밤새 모기에 물려서 한쪽 귀가 빨갛게 부었다.ㅠㅠ 그래도 씩씩하게 놀아주는게 또 고마운 개구장이 두 살배기.










아이가 지나간 자리엔 꽃만 점점이 떨어져 있다. 
떨어진 꽃들을 다시 주워 담고 있자니 은은한 국화꽃 향기가 주변에 가득했다.
꽃 어지른거 치우는건 향기가 좋아 좋구나.. 웃음이 났다.   

오늘도 아이는 산책하면서 새로운 꽃을 꺽어서 내게 준다.
나는 그 향기를 맡고, 그 꽃과 향기가 잠시 우리곁에 더 머물도록 옷 주머니나 자전거 바구니에 넣어서 돌아온다.
살면서 언제 이렇게 매일, 꽃향기를 많이 맡아본 적이 있었나.. 철들고선 없었던 것 같다.
네 덕분에 엄마가 올해는 가을을 제대로 느끼는구나. 
아이야, 네 곁에 있으니 언제나 고마운 일뿐이다.











엄마, 얼른 또 꽃따러 나가자~! 고 말하는 것 같은 표정이네, 이 녀석^^










국화가 왔으니 우리집도 가을이다. ^^





Posted by 연신내새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