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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11.09 걱정하지마, 친구들이 데리러 올꺼야 12


1. 걱정하지마, 친구들이 데리러 올꺼야


연수는 간식거리들을 이 방 저 방 들고 돌아다니면서 먹는 버릇이 있다. (접시들고 어디든 가는 엄마에게 배운 거겠지만...--)
흘리고 쏟아서 방이 어질러지는 것도 문제지만 먹던 음식을 아무 곳에나 던져두고 놀다가 잊어버리는 것도 문제라
음식은 되도록 식탁에서만 먹고 먹다 남으면 식탁위 접시에 다시 가져다 놓으라 일렀다.
물론 잘 안 듣는다..-,.-;;;
 

엄마: 연수야, 안방 바닥에 놔둔 귤조각들 얼른 주워라..
연수: 싫어요~
엄마: 먹던 음식을 바닥에 놔두면 어떡해. 그릇에다 잘 담아놔야지. 얼른~~.
연수: 아니예요~~~, 그냥 바닥에 놔두는 거예요.
엄마: (부글부글... 끓기 시작한다) 고구마 담긴 접시도 소파위에 놔뒀더라... 그 접시에 귤도 같이 담아서 식탁위에 올려놓자.... 응?!!
연수: (엄마의 목소리가 심상치않음을 느끼긴 했으나 그래도 장난삼아 좀더 버텨볼려고 노래를 한다) 안된다요, 안된다요~~~
엄마: 김연수!!!! 얼른 담아놓고 놀아. 안그러면 이제부터 다른 간식은 아무 것도 안 줄거야! 음식을 함부로 대하는 사람은 음식먹을 자격이 없다고 엄마가 여러번 말했지!!!! 니가 바닥에 던져논 귤들이 얼마나 속상하겠어!

다른 간식을 먹을 수 없다는 말에 찔끔한 김연수..... 그제야 귤을 주우러 간다. 그러면서 쫑알쫑알, 신기한 말을 하길래
가만히 들어보니...

연수: 귤아, 걱정하지마~ 접시에 있는 친구들이 데리러 올거야~~.

귤을 위로하고 있다. ^^;;;;;;
아구, 이 녀석아.. 위로는 엄마도 필요한데..

언제쯤이면 아이에게 '이거 안하면 다른 걸 못하게 될 줄 알아' 하는 협박을 안하고 아이를 움직이게 할 수 있을까.
오늘도 또 단단한 벽에 머리를 쿵 박는 기분으로 반성한다.
'걱정하지마, 친구들이 데리러 올거야' 하고 다정한 위로의 말을 할 수 있을만큼 어느새 쑥 자란 아이에게 고맙고 부끄럽다.





2. 여우가 도망갔어


연수가 요즘 옛날 시골 어린이들의 놀이문화가 고스란히 살아나있는 그림책 '국시꼬랭이' 세트에 푹 빠져있다.
어느 저녁 제 놀이방 형광등을 번쩍! 키더니 부엌에서 저녁준비를 하고 있던 내게로 후다닥 뛰어왔다.

연수: 엄마, 엄마! 여우가 도망갔어!
엄마: 여우가 도망갔다고?
연수: 응~! 놀이방에 불을 켰더니 여우가 도망갔어!

무슨 소린가.. 하고 얼른 못 알아듣고 있다가 잠시 후에야 '달구와 손톱'편에 나오는 여우귀신이 엄마가 방에 불을 켜자 뒷문으로 후다닥 도망갔다는 얘기를 하고 있다는걸 알았다. 

엄마: 아~ 연수가 불을 켜니까 여우가 깜짝 놀라서 도망갔어? ^^
연수: 응! '아구 무서워~'하고 도망갔지 뭐야~~!

그랬구나... 아무튼 그 뒤로도 연수는 우리집 화장실에 부엉이가 살고 있다며 부엉이 가지고 놀으라고 제 장난감을 화장실에 갖다주는가 하면 
제 고무신으로 기차도 만들고 배도 타고 이것저것 따라하며 신나게 잘 논다. 

바야흐로 상상의 시대가 만개하는가 보다. 
이야기속의 등장인물들과 함께 놀고, 실제로 겪은 것처럼 지치지도 않고 여러번 반복해서 흉내내고 상상한다.  
그 시절이 부럽고, 나도 그 상상에 생동감과 즐거움을 더 해줄 수 있는 놀이친구가 되고싶어 우리집에 같이 사는 여우와 부엉이를 잊지않으려고 노력중이다. 




3. 생각해보자



늦은 낮잠을 자고난 연수와 식탁에 앉아 떡을 나눠먹었다.
그때 마침 압력밥솥에서 밥이 끓느라고 '스륵스륵' 소리가 났다.

연수: 연수랑 엄마랑 떡을 먹는데 귀뚜라미가 우네?
엄마: ^^;;; 그랬어? 정말 귀뚜라미 소리 같네.. 저기 밥솥에서 밥이 끓는 소리같은데.
연수: 아니야, 귀뚜라미 소리야. 귀뚜라미가 울었어!
엄마: (한발 물러서기로 하고) 그래~ 연수가 귀뚜라미 소리를 들었나보구나..
연수: 귀뚜라미는 뭐 먹지?
엄마: (어떻게 대답할까 궁리하다 얼른 대답을 못하고) 글쎄....?
연수: ... 생각해보자.

ㅎㅎㅎ
떡을 먹다가 밥솥소리를 귀뚜라미 소리로 잘못 듣고, 이제는 (나는 떡을 먹는데) 귀뚜라미는 뭘 먹어야하나를 '생각'하는 세살배기 아들을 보며, 나는 그 진지함에 깊이 감동받았다.
흐뭇한 마음으로 빙그레 웃으며 내가 남은 떡을 마저 먹는데 연수가 벌컥 화를 냈다.

연수: 연수가 다 먹으려고 했는데 엄마 왜 먹었어! 앙~~~!!!!!

무안하게도 진짜 화를 낸다. 울음도 터진다. 
거 참, 떡 하나 가지고.... 말은 의젓한 녀석이 먹는 거 앞에선 엄청 쫀쫀하다.

엄마: 엄마랑 너랑 같이 먹는거지.. 너 혼자 다 먹으려고 하면 되냐~ 울지마 울지마.. 치즈 줄께!

눈물고인 눈으로 치즈를 먹는 연수.
이 일에 대해서도 생각 좀 해보자.



+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흘러간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하나씩 새로운 말을 배워가고 제 나름대로 그 말들을 제가 생각하기에 적절한 순간에 절묘하게 써가며 
어린 연수가 매일 자라고 있듯이
나도 내게 주어진 매일의 시간을 그렇게 성장에 쓰고 싶다.
꼬물꼬물거리며 내 속에서 부단히 조금씩 자라고 있을 어린 태아 평화처럼..
같은 시간이 흘러간뒤에 우리의 성장도 공평하기를. 




Posted by 연신내새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