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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3.29 '아니 아니'와 육아 단상 14
umma! 자란다2010. 3. 29. 23:36









"연수야, 기저귀 갈까?"
"아니 아니"
"젖어서 축축하잖아.. 기저귀 갈자"
"아니 아니 아니 아니이이이~~"

실갱이 끝에 바지라도 살짝 내릴라치면
"아아니 아니 아니 아니~~~ 앙~~~~~~~~~~~!!!" 하고 울면서 손도 못대게 한다.

요즘 이런 일이 하도 많아서 나는
말못하던 어린 아기시절에 연수가 그토록 운 것은
엄마가 뭘 안해줘서가 아니라(젖은 기저귀를 안 갈아준다거나, 젖을 안 준다거나)
제가 하기싫은 뭔가를 자꾸 하자고 해서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까지 하게되었다. --;;;









22개월 남자아이를 키우는 일이 참 힘들다.
연수는 늘 더 뛰어놀고 싶고, 더 마음껏 어지르고 싶고, 엄마한테 더 매달려 있고 싶은데
엄마는 좀 더 조심했음 좋겠고, 좀 덜 어질렀음 좋겠고, 좀 덜 매달렸음 좋겠다.









내가 요리를 하거나 설겆이를 할 때 연수는 놀아달라고 와서 매달리기도 하고, 책도 여러권 가져다가 내 옆에 쌓아놓고 읽어달라 조르고, 그도 안되면 내 바지 주머니들마다 제 색연필이며 작은 동물인형들을 갖다 넣으며 논다.
그러다 문득 조용하면 불안하다. 돌아보면 역시... 씽크대 서랍안에 있던 비닐봉지며 온갖 살림살이들을 한가득 늘어놓고 그 안에 앉아 흐뭇하게 저만의 놀이에 몰두해있다.









함께 사는 삼촌과 엄마의 친한 친구인 지은이모의 생일이 있었던 지난 주.
연수는 달디단 케잌을 마음껏 먹고 보드라운 크림을 손과 얼굴에 온통 묻히고 놀 수 있었다. 무아지경.









'아니 아니'라는 말로 싫다는 의견과 거부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밝힐 수 있게 된 뒤로
연수는 '밖에 나가 놀까?'하는 질문을 제외한 거의 모든 질문에 일단 '아니 아니 아니 아니이~'하고 긴 부정의 답을 내놓는다.
아무리 어린 아이의 의견이라도 우선 존중해줘야한다고 생각한다.
존중받으며 큰 사람만이 타인을 존중할 줄 알고, 자신이 존중받지 못할 때 그에 항의할 수 있다.
나부터 아이를 존중해야 아이도 자신을 귀하게 여기고 존중할 것이며, 남도 내 아이를 존중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가던 손을 멈추고, 아쉬운 마음을 접고 이걸 하면 얼마나 좋을지 얘기해본다.
그래도 또 '아니'가 돌아올 때가 많다.
잠시 다른 걸 먼저 하면서 기다렸다가 다시 시도해보거나, 아이가 재미있어할만한 내용을 붙여서 제안해도 본다.
노래를 부르며 젖은 옷을 벗기고, 책을 읽으며 기저귀를 갈고, 그림을 그리며 밥을 먹는 식이다.
둘을 동시에 하려면 나는 더 힘들지만 울며 뻐팅기는 아이를 데리고 억지로 저것들을 해볼려고 애쓸때보다는 수월하지.. 하고 스스로를 위로한다.

하지만 스스로를 존중하는 것이 자칫 자기 뜻만 무조건 고집하는 것이 되면 안된다.
제가 스스로 해보고 싶은데 엄마아빠가 도와주려하면 소리를 지르며 거부하는건 좋다. 그건 환영하고 기다려줄 수 있다. 
하고싶은 것만 하고, 먹고싶은 것만 먹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걸 아이에게 납득시키고,
싫더라도 조금은 참고 애쓰는 법을 배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참 어렵다.
조금씩 더 자기를 소중하게 여기는 기색이 역력해지고, 자신감과 독립심도 커지고 있는 아이.
그 마음을 다치지 않으면서 자기 욕구와 감정을 조절하고 예의와 규칙도 지킬 수 있는 마음의 힘이 자라나길.. 

밤에는 이렇게 차분하게 생각을 정리해보는데 막상 낮에 부딪히는 자잘한 상황들에서는
부글부글 치밀어오르는 화를 삭히느라 혼자 얼굴이 굳어지기도 하고, 한숨도 한참씩 내쉬고... 그러느라 정말 도닦는 기분이 된다. 결혼해서 애키우고 살림하다보면 한국 여자들은 굳이 절이나 교회에 안가도 다 도를 닦게 된다던 어느 선생님 말씀이 맞다는걸 새록새록 절감한다.










컵이 있는 식탁위에서 케익 상자를 머리에 뒤집어쓰고 움직이는건 위험해, 연수야.. 
연수는 발을 움직이진 않았다. 그저 상자를 뒤집어쓴채 엉덩이를 흔들며 춤을 추다 내려왔을 뿐....-.,-

아이가 뭔가를 요구하면 그것이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한 최대한 들어줘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아이도 엄마의 요구를 들어줄 것이다.
아이의 간절한 부탁을 내가 무시하면, 아이도 내 부탁을 무시할 것이다.
아이의 요구는 일언지하에 거절하면서 엄마의 명령은 아이가 제깍제깍 따라주길 바란다면 방법은 '폭력과 강제'밖에 없다.
다행히 연수는 아직 슈퍼에서 제가 사달라는 사탕을 엄마가 사주지 않는다고 떼쓰고 울진 않는다. 엄마가 안된다고 하는 것을 아직은 잘 수긍하기 때문이다.
'그건 안 되는 일이란다'가 효력을 발휘하려면 드물게 사용해야한다. 아이가 원하는 대부분의 것이 '안된'다면 아이는 얼마나 좌절하겠으며 그 '안돼'를 납득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 연수의 간절한 부탁은 주로 '더 충분히, 제 마음가는 대로 놀게 해달라'는 것이다.
위험하지 않은 선에서, 스스로 조심해야 아프지 않다는 것을 충분히 주지시키는 한도내에서 최대한 허락해주고 싶다.
마음껏, 속이 시원하게 잘 놀아본 아이가 더 인생을 재미나게 살지 않을까.. 에너지, 열정, 창조성 같은 것이 놀면서 키워지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연수가 자라면 요구하는 것도 달라질까? 단지 아이와 같이 많이 걷고, 흙탕물에서 신발과 바지가 다 젖도록 놀도록 내버려두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어려운 요구를 해오겠지? 그때는 고민도 더 복잡해지겠구나..

내일은 또 연수가 뭘 요구하며 앙앙 울까.. 생각하니 먼 미래만이 아니라 당장 내일도 걱정이다. 
잘 설득할 수 있을까. '너 정말 왜 이러니, 너 땜에 내가 돌겠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온걸 또 꿀꺽 삼켜야하겠지... 









재활용분리수거가방을 뒤집어쓰고 옆에 보이는 말에 올라타 신나게 돌아다니던 연수.
어디 쿵 부딪히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겁도 많고 아픈건 싫고 그래서 조심성이 꽤 있는 연수는 다행히 큰 부상없이 놀이를 잘 마쳤다.
가방이 자꾸 머리에서 벗겨진다고 중간중간 나한테 이루 말할 수 없이 짜증을 부린 것 빼고는...
엄마의 감정노동을 너무 과하게 시키면 안된다는 것을 연수에게 납득시키고 짜증을 덜 부리게 할 수 있으려면 얼마나 시간이 더 필요할까. 










힘이 넘친다. 우리 둘이 가장 평화로운 시간은 밖에 나가 같이 놀때다.
연수가 내가 아닌 땅과 돌과 나뭇가지에 힘을 쏟기 때문이다.
집안에 있으면 책을 읽다가도 내 목에 다리를 걸어 매달리고, 저와 꼭같은 열정으로 이런저런 놀이들을 같이 해주길 바라기 때문이다. 그래서 날이 좋아야한다. 최대한 밖에서 많이 놀 수 있도록.... 따뜻하고 맑은 날을 바라는데 막상 그런 하루가 끝나고나면 말도 못하게 피곤하다. 종아리가 딴딴하다.  










토끼옷 입고 사과먹는 우리집 토끼.
말못하게 고달프고 힘들다가도 또 이렇게 밤에 앉아 생각할때는 무럭무럭 잘 커주는 아이가 더없이 고맙고 소중하다.
숱한 어려움을 다 겪으며 살뜰하게 키워놓은 아이, 사랑스럽다는 말로도 다 표현이 안되는 귀하고 어여쁜 아이를 잃는다는 것이 어떤 일일지 나는 차마 짐작도 되지 않는다.
그 어머니들의 아픔보다 처절한게 지상에 또 있을까... 오늘, 바다앞에서 울부짖는 어머니들을 생각하니 내 마음도 참담했다.
그런데 신문에 난 대통령의 말은 "초동대처가 잘 됐다". 
나라의 부름에 내보냈던 아들을 잃은 어머니들을 앞에 두고 무엇을 잘했다는 말을 차마 할 수 있을까. 그 아픔앞에 차마 머리를 들기 어려워하는게 수장의 도리가 아닐까.. 그런 생각으로 분노스러웠다.  





Posted by 연신내새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