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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8.16 유모차에 아이태우고 6호선에서 2호선으로 환승하기 6
이웃.동네.세상2010. 8. 16. 23:55



신도림에 있는 오빠네에 가기위해 집을 나섰다.
제법 먼 길인데 어떻게 갈까.. 고민하다가 지하철을 타기로 마음먹었다.
어린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는게 쉽지 않지만 넓은 서울땅 안에서 택시만 타고 다닐 수는 없는 일...
어깨띠로 안고다닐 수 있던 갓난아기 시절에는 오히려 내 걸음이 자유로우므로 대중교통 이용이 더 쉬웠다.
그러나 아이가 크면 안고다니기가 어렵고 제 발로 걷는다해도 큰 길에서는 위험하기도 하고 멀리 못가 업어달라거나 해서 먼거리를 갈때는 유모차를 이용하는게 훨씬 좋다. 
그런데 유모차로는 버스를 타기는 정말 어렵고, 몇대없는 저상버스조차도 누군가의 도움없이는 타고 내리기가 쉽지 않다.
그중 지하철이 장애인.노약자용 엘리베이터만 있으면 큰 어려움없이 다닐 수 있어 제일 요긴하다.
특히 어린 아기들은 대중교통을 타면 그 일정한 흔들림 때문인지 참 신기하게도 아주 쉽게 잠에 빠져드는데 그럴때 유모차가 없으면 참 힘들다.

오빠집에 가려면 연신내역에서 지하철 6호선을 타고가다가 합정역에서 2호선으로 환승하여 신도림역에서 내리면 된다.
그동안은 집가까운 3호선들에서만 잠깐씩 유모차를 밀고 다녀봤었는데 환승까지 하면서 이렇게 멀리 가보는 것은 처음이다.
살짝 긴장이 되었다.








연수는 집을 출발하자마자 유모차에서 잠이 들었다.
낮잠을 안자고 계속 놀았던터라 고단했겠지.. 연수가 잠들어있으면 오히려 조용히 지하철을 이용할 수 있으니 나도 더 좋다.
마침 집에 놀러왔던 친구와 함께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연신내역에 도착했는데...
이럴수가. 역 밖에 있는 엘리베이터가 수리중이다...! 헉!!
다행히 친구가 옆에 있어 둘이 유모차를 함께 들고 긴 계단을 겨우 내려갔다.
친구가 없었다면 차마 그 길고 혼잡한 연신내역 계단을 모르는 누군가에게 부탁해서 무거운 유모차를 함께 들고 내려갈 엄두를 못냈을 것이다...
역 안에서 승강장으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는 다행히 운행중이었다.

유모차를 밀고 지하철에 탈때는 뉴스에서 봤던 무서운 장면들- 지하철 문에 유모차가 낀다는가 하는-이 생각나 바짝 긴장하고 탄다.
지하철 안은 시원하고 낮시간이라 승객이 많지 않아서 편하게 앉아서 잘 갔다. 

드디어 2호선으로 갈아타는 합정역에 도착.
6호선 승강장에 있는 엘리베이터를 찾아가니 앞에 작은 안내문이 붙어있다.
"교통약자를 위한 환승방법 안내" 제목을 읽으며 안심이 되었다. 막연히 어떻게든 갈 수 있겠지.. 했지만 막상 내리니 좀 막막했던 것이다. 어.. 그런데 약간 복잡하다.
일단 한층 올라가서 반대편 엘리베이터를 타고.. 2호선 개찰구를 지나 다시 2호선 엘리베이터를 탄다...
어떻게 하는건지 머리속에 빨리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채로 일단 문이 열린 엘리베이터를 타고 위로 올라갔다.
건너편 엘리베이터 앞까지 갔는데 글쎄.. 그 다음엔 어디로 가야하는지를 그만 잊어버렸다.
아기 엄마가 된후 건망증이 극심해진 탓도 있고, 지하철 안내문이 말하는 바가 얼른 이해가 안된 탓도 있다.

지하4층 승강장 엘리베이터 앞에서 본 그 '교통약자를 위한 환승방법' 안내문이 지하3층에도 또 붙어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아니면 엘리베이터 안에라도.
나뿐만 아니라 나이많은 어르신들도, 장애인들도 여러번 읽으며 잘 찾아갈 수 있게.

일단 타고 내려가기로 했다. 내 뒤를 따라 나이 지긋한 어머니와 젊은 딸이 탔다.
딸은 앞을 못보는 장애인이었고 어머니가 딸의 손을 잡고 함께 길을 찾아가고 계셨다.
나에게 이리로 가면 '홍대'에 갈수 있냐고 물으셨다.
"글쎄요.. 저도 길을 찾고 있어서요.. 일단 같이 가보셔요." 어정쩡하게 대답한 후 함께 내렸는데 역시나 이곳은 그저 6호선 플랫폼일 뿐이다.
다행히도 플랫폼 엘리베이터 앞에는 다시 안내문이 있다. 
지하2층으로 올라가서 아예 개찰구를 통과해(카드를 찍지는 않고) 2호선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야한다. 
그래.. 아까 내려오는게 아니라 올라가야했구나.

그런데 함께 내린 모녀분들은 6호선 플랫폼에서 그냥 열차를 타려고 하셨다.
이곳은 6호선이라 하니 '마포에 가면 된다'고 하셔서 나는 마포역으로 가려하시는줄 알았다.
그런데 내가 엘리베이터에 타고난뒤 얼마 안있어 이 분들도 엘리베이터에 타셨다. 
"홍대에 가려면 여기말고 2호선에서 갈아타야한다네요.."
어머니가 또 다른 분께 들었는지 좀 난감한 어조로 말씀하셨다. 
"네.. 저랑 같이 가셔요. 위로 올라가서 2호선 엘리베이터 타고 홍대가는 방향으로 내려가셔요."
여전히 나도 아리송했지만 어쨌든 이 분들과 나는 같은 길을 찾아가야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때 우리와 함께 타셨던 또 다른 아주머니께서 한층 올라가 지하3층 문이 열리자 "2호선 갈아탄다고요? 그럼 여기서 내려야해요"하고 얘기하며 얼른 내리라고 우리를 재촉했다.   
나는 "지하2층으로 가야 한다는데요"하고 말했지만 아주머니는 단호했다. 
"2호선은 여기서 갈아타는 거예요!" 
결국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기 전에 모녀는 내렸고 나는 남았다. 나는 앞서 분명히 '지하2층'이라고 읽었던 것이다.
아주머니는 나를 보며 "지하2층은 아예 밖으로 나가는건데.. 거기선 2호선 못 갈아타요"라고 거듭 얘기했다.
아마 다시 2호선 개찰구를 통과해야하는 것을 두고 하신 말씀인듯 한데 그건 안내문에도 써있던 내용이다.

지하2층에서 잠시 방향을 살핀 뒤에 2호선쪽 엘리베이터를 찾아가니 그 앞에 '교통약자 환승용' 개찰구가 있다. 
카드를 찍지 않고 지나가면 '삐'하고 소리는 한번 나지만 차단봉 같은 것은 없어 그냥 통과할 수 있다. 
휴....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며 여전히 헤메고 계실지도 모르는 앞 못보는 딸과 지하철 지리에 어두운 어머니 생각에 마음이 무거웠다.
딸이 앞을 못보므로 계단을 이용하는 것은 아무래도 어려우실텐데... 나와 함께 와서 저 건너편 엘리베이터를 타면 되는 것인데...
더 강하게 얘기하지 못한 나의 망설임이 죄송했고, 또 전후사정은 잘 모르지만 어쨌든 도와주려고 나섰던 아주머니도 생각할수록 안타까웠다.  
교통약자를 위한 환승안내문이 좀 더 여러 곳에, 크게 붙어있었으면 이런 눈밝고 목소리큰 아주머니들도 좀 잘 알고 제대로 도와주실 수 있지 않았을까.

안타까운 마음으로 2호선에 올라탔다. 전철은 곧 밖으로 나왔다. 
지하철을 타고 한강을 건너노라면 언제나 마음이 시원해지기도 하고 짠해지기도 한다. 내가 서울에 살고있다는걸 제일 실감하게 되는 때도 한강을 건널 때다. 넓은 강물과 먼 하늘을 보고 있노라면 서울살이의 고달픔이 진하게 느껴진다.

신도림역에는 엘리베이터가 없다.
서울의 모든 전철역에 엘리베이터가 생겼으면 좋겠다. 
그러면 정말 많은 교통약자들이, 훨씬 쉽게 많이 이동할 수 있을 것이다.
이동할 수 있다는 것은 새로운 세상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고, 새로운 기회와 꿈을 꿀 수 있다는 것이다.
이동의 권리가 참으로 중요하고 소중하다는 것을 나는 아기엄마가 되고 나서야 알게되었다.

신도림역 플랫폼에서는 에스컬레이터에 유모차를 비스듬히 태우고 올라왔다. 
내릴때 유모차가 밀리지 않게 주의해야한다. 무섭다.
하지만 그나마 유모차는 이렇게라도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할 수있지만 휠체어는 어림없으므로 리프트(넓은 철판)에 올라타 온 역사에 울리는 '따리리 라리리 라라 따따 라라라라' 노래를 들으며 올라갈 수밖에 없다. 그 시설은 위험하기도 위험하지만 쏟아지는 시선을 받는 것도 큰 고역이다. 장애인 이동권을 다룬 어느 단편영화의 제목이 오죽하면 '음악감상'이겠는가.
신도림역 밖으로 나올때는 잠시 기다렸다 지나가는 젊은 청년에게 부탁해서 유모차를 함께 들고 올라왔다.

엄마가 진땀을 빼며 연신내에서 신도림까지 오는 동안 연수는 세상모르고 곤히 잤다.
그래... 이런 세상의 고달픔은 차라리 네가 몰랐으면 좋겠구나..

신도림역을 빠져나오는데 내 앞으로 또다른 장애인 모녀가 지나갔다. 
역시 딸이 장애인이고 어머니가 아이의 손을 잡고 함께 걸어간다.
아이가 장애가 있으면, 그래서 도움이 필요하면 열살, 스무살, 서른살이 되어도 어머니가 그 손을 잡고 함께 가야한다..

장애인이 혼자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이동할 수 있는 세상은 언제 올까. 
내 아이가 비장애인이라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있을게 아니라...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아울러 모든 교통약자가 교통강자들만큼 자유롭고 쉽고 안전하게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는 정도의 세상이라도 하루 속히 만들어야하지 않을까... 싶었다.











오빠네에 도착하자 연수는 그제야 부시시 잠에서 깨서 저보다 두 살 많은 사촌누나를 따라다니며 연방 깔깔거리고
신이 나서 지치지도 않고 저녁내내 잘 놀았다. 먼 길, 고달프게 간 보람이 있다. 
강릉에서 서울까지 모처럼 큰 출입을 하신 팔순의 우리 할머니, 그 주름진 손을 한번 더 잡아보고 그 어깨에 기대볼 수 있어서 내게도 참 귀한 나들이였다.  
그래... 힘들고 어려워도 그리운 사람들을 찾아, 아름다운 세상 구석구석을 만나러 너랑 나랑 더 씩씩하게 다녀보자.  
교통약자 세살 아기와 그 엄마.. 화이팅이다.



+ 서울 지하철 엘리베이터 안내를 찾아보니 이 사이트가 눈에 띈다.
서울지하철의 직원 한분의 개인 홈페이지 인데 장애인 편의시설과 각 환승역별로 '환승코스' 등을 일일이 표로 작성해놓으셨다.
표만 읽고 집에서 미리 숙지한다는데 매우 어려워보였는데 이 홈페이지를 소개한 장애인 여행까페에는 '너무나 도움이 되는 고마운 정보, 집을 나서기전에 잘 읽어보고 가야겠다'는 댓글이 달려있었다. 그래.. 어떤 이에게는 정말로 소중한, 집에서 미리 메모를 해서 나가야하는 고마운 정보인 것이다. 나도 지금 그렇다. 다음에 어디 환승역 갈 일이 있으면 미리 확인하고 적어서 가야겠다(너무 잘 까먹으므로ㅠㅠ). 링크를 붙여놓는다.     

http://www.intersubway.com/



Posted by 연신내새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