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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1.16 수다쟁이 짝꿍 9
umma! 자란다2009. 11. 16. 14:44



18개월에 들어선 요즘, 똑순이가 말이 많이 늘었다.

한음절로 된 단어들은 대부분 비슷하게(?) 따라하고, 심지어 문장도 구사한다. 
똑순이가 구사하는 유일한 문장은 '아뜨겅!'(앗 뜨거!) ^0^;; 
이 말을 제 입으로 할 수 있게 된 뒤부터 밥은 더 잘 안먹게 되었다. 
할 말이 생겼기 때문이다. 별로 뜨겁지 않은데도 '아뜨겅'하면서 고개를 훽~ 돌린다.ㅠㅠ  

'쉬~'와 '똥'도 말하게 되었는데 아직은 '사후통지'일때가 더 많다. 
싸기전에 말하면 좋을텐데 가끔 아랫도리를 벗겨놓았을때 말도 없이 여기저기 싸고와서
'쉬!', '또!(똥)'하며 볼일을 보고온 현장을 가리킨다.  
그래도 대략 똑순이가 똥싸는 시간이 일정하기 때문에 그 시간에 기저귀를 벗겨놓고 있으면 똥기저귀 빨래는 안할 수 있다. 
손목 아픈 엄마의 애달픈 꼼수랄까. ^^;; 

며칠전, 그러니까 500일 기념파티(?)를 한 다음날에는
처음으로 '똥!'이라고 말한후 변기에 앉혀주자 변기에다 똥을 쌌다. 와~~~!!!
그전에는 똥이나 쉬를 싼다고 해서 변기에 앉혀줘도 잠깐 앉았다 이내 궁둥이를 들고 내려와서는
변기 주변에서 놀다가 고 옆에 볼일을 보곤 했는데 장족의 발전이었다.
그러나.. 다음날부터는 다시 원래로 돌아갔으므로 그 최초의 변기사용은 똑순이가 준비한 '500일 이벤트'였던 모양이다. --;







+ 변기앞에 앉아 심각한 표정인걸 보니.. 곧 '또'가 나올 모양이다. ^^;;;;
이 때는 그냥 놔둬야한다. 변기에만 앉으면 나오던 '또'도 다시 쏙~ 들어가버릴 수 있다...ㅎ




한 음절이나 두 음절로 된 단어는 대부분 비슷하게(?) 따라한다. 제일 잘 하는 말은 '젖'. ^^
안그래도 엄마 젖먹는걸 아주 좋아하는 똑순이는 이제 제가 원할때마다 '쩌~엊'을 외친다.
밤에 자다 깨도 그냥 울던 전과 달리 이제는 '쩌~엊, 쩌~엊'을 목놓아 부르며 운다.

'또'도 많이 하는데 '또'는 다양하게 쓰이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 잘 알아들어줘야 한다.
'쉬'랑 같이 말할때의 '또'는 '똥'이지만, 들판에 예쁜 '꽃'도 '또'고, 요즘 제일 잘 먹는 '콩'도 '또'다.
어른들처럼 '다시, 한번더' 같은 의미로 '또'를 말할 때도 있다. ^^;
  
하늘의 햇님은 '새', 하늘을 나는 새도 '새', 물은 '무', 책은 '텍', 자동차는 '차'(곧이어 '부웅~'도 꼭 한다. 부연설명까지..ㅋ), 트럭은 '트어', 사과는 '샤아', 사탕은 '아땅', 우유는 '우', 두부는 '부', 빵은 '빠', 잣은 '자아', 양파는 '파'(배추도 '파'다, 하얀 채소는 다 '파'라고 생각하나보다), 엄마가 마시는 커피는 '피'(또는 '차'), 열매 안에 들어있는 씨는 '시'... 

이 모든 말은 요 1~2주 사이에 갑자기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아마도 저 혼자 속으로 오래오래 준비해오고 있었던 것을 이제 하나씩 내놓고 있는 모양이다.
갑작스런 성장이 너무 신기하기도 하고, 아이의 작은 입에서 나오는 어리고 부정확한 단어들도 너무 예뻐서 
고슴도치엄마는 이 시절의 짧은 입말들을 하나하나 다 기록해두고만 싶다. ^^

똑순이가 꽤 오래전에, 엄마 아빠 다음으로 할 수 있었던 유일한 말이 '부어'(부엉이) 였었는데,
그 다음으로 말할 수 있게된 동물은 '지'(생쥐)였다.
얼마전 이 둘에 이어서 뱀을 말할 수 있게 되었는데, 그만 '배'가 아니고 '쉬'다.
<까꿍놀이> 책에 나오는 '슈슈 뱀'에서 '슈슈'란 소리가 따라하기 쉬운 덕분이다.
  
'쉬쉬'라고 자기가 말할 수 있게 된 뒤로 
뱀이 나오는 두 페이지는 똑순이가 이 책에서 제일 좋아하는 페이지가 되어서 그날 하루동안만 얼마나 많이 보고, '쉬쉬'라고 말했는지 모른다.
엄마는 개인적으로 뱀이라는 말만 들어도 비명을 지를 수 있는데,
아들은 잠들기 직전에도 누워서 '쉬쉬' 하며 슈슈 뱀을 생각했으니 아마 꿈에서도 알록달록하고 통통한 그 녀석이랑 놀지 모르겠다. (엄마야~~~ㅠ.ㅠ) 

그래도 그날 저녁에는 로션통 뚜껑을 열어달라고(똑순이는 로션꼭지 빠는걸 좋아한다ㅠ) 한참 울면서 떼를 쓰던 똑순이가 
저 책을 주자 울음을 뚝 그치고 엄마에게 순순히 로션통을 건네줬을 정도니, 엄마도 '슈슈 뱀' 덕을 많이 봤다. 
아이와 같이 책을 보다보면 뱀은 계속 나올 것이다.
그러니 이제는 엄마도 '뱀도 그저 많고 예쁜 동물중 하나려니..' 여기고 아무리 징그러워도 눈딱감고 그 페이지를 함께 읽는 수밖에 없다.  

'쉬' 다음으로 똑순이가 좋아하는 동물은 '음메~'. 역시 '소'가 아니고 '음메'다. ^^;
'음메'에게서 똑순이가 제일 좋아하는 부분은 '젖'인데 그림책에서 송아지가 어미소의 젖을 먹는 장면을 보면
어미소는 '엄마'(나를 가르킨다)고, 송아지는 자기(자기 코를 가르킨다. 그게 '연수'란 뜻이다)라고 한다.
그림책에 까만 소가 있는데 젖도 까만 색이라 안보이는 것을 똑순이는 젖이 없다며 '업써', '업써' 했다.
그래서 '음.. 젖이 없는건 아니고 작아서 잘 안보이는가봐.' 했더니 이해가 안된다는 표정이었다.
그래서 '아빠도 젖이 작잖아.. 젖이 작은 걸 보니 이 소는 아빠손가봐' 했더니 그 다음부터 그 소를 보면 '아빠'라고 말한다. ㅎㅎㅎ








+  토마스변기의자를 사면서 따라온 스티거.
새로 만난 스티커의 재미에 푹~ 빠진 녀석은 요즘 집안 곳곳을 굴러다니는 이 스티커들을 볼때마다 '떠어(스티커)~, 딱(붙는다는 말이다)' 을 외치며 신나게 놀고 있다.  




'쉬'와 '또' 다음으로 엄마에게 제대로 의미전달이 되었던 말은 '업써'인데, '뭔가가 더 없다, 끝났다'는 뜻으로 쓰곤 한다.
비타민 사탕 하나를 먹고 하나 더 달라고 '아땅, 아땅~' 조르는데 엄마가 '하루에 하나씩만 먹는거야. 오늘건 다 먹었어' 하고 대답하면 혼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업써, 업써~' 한다.
제 컵에 우유를 다 마신 뒤에도 '업써~', 엄마가 밥을 다먹고 빈그릇을 보여줘도 '업써~'다.  
가끔은 이 '업써~'를 하고 싶어서, 일부러 컵에 든 물을 쏟아 엄마를 화나게도 한다.ㅜ
 
의성어나 의태어로 어떤 상황을 표현하기도 한다.
목욕은 '솨솨'(샤워기에서 물나오는 소리다)인데 밖에 비가 와도 '솨솨'고, 제 소방차와 그림책에서 소방관 아저씨가 호스로 물을 쏘는 장면을 가르킬 때도 '솨솨'한다.
제가 좋아하는 사과, 고구마 같은 것을 가는 믹서기는 '쉬잉~'이고 진공청소기는 '지잉~', 
주르륵~ 하고 내려오는 미끄럼틀은 '주~'다. ㅎㅎ 

다 비슷한 것 같지만 똑순이에게는 다 다른 말들이고, 엄마도 다 가려서 알아들을 수 있다. 후후~^^
그래서 요즘은 말하고, 말 알아듣고, 얘기하는(?) 재미에 푹 빠져서 '헤헤헤헤~' 웃으며 둘이 하루종일 떠든다.
하느님은 수다 좋아하는 엄마의 짝꿍으로 수다쟁이 아들을 주시려나보다.
반갑고 감사한 일이다. 

그 결과...  드디어 나는 어릴때 우리 엄마가 내게 하시던 '아고~ 송신타'란 말을 누군가에게 할 수 있을지 모른다.
'송신하다'는 지금껏 세상에서 우리 엄마밖에 쓰는 걸 못 본 단어인데, '정신없고 씨끄럽다'는 뜻이다.
엄마는 일하는 엄마옆에 붙어 하루종일 종알종알 쉼없이 떠드는 나를 보며
그만 떠들고 저리 가라는 의미로 이 말을 쓰시곤 하셨다.
'아고~ 송신타~ 그만 절로 안가나!'
^^;; 










직접 보고 만지는 물건들, 그림책에 나온 사물들의 이름을 알아가며 그것을 제 입으로 말할 수 있게 되는 즐거움,
그리고 그걸 누군가가 알아듣고 있다는 소통의 기쁨이 요즘 똑순이를 온통 들뜨게 하고 있다.
그래서 아침에 눈뜰때부터 저녁에 잠들때까지 
아이는 계속 종알종알.. 그림책을 무수히 엄마앞에 쌓아다놓으며 어서 읽고 얘기하자고 조른다.
가끔은 이렇게 재미있는 일을 그만 두고 밤에 잠자기가 싫어서 계속 놀자며 울기도 한다. 

처음엔 더없이 신기하고 귀하기만 하던 아이의 한마디, 한마디가
어느새 집안일에 바쁘고, 아이가 밥투정을 부리고, 내 몸이 고단할 때는 
시끄럽고 일일이 대꾸해주기 귀찮은 것이 되어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 순간이 지나고 돌아보면 얼마나 미안한지 모른다.
세상에 태어나 지금껏 늘 듣기만 하다가,
500일 가까이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하면 될까, 저렇게 소리내면 될까'하고 준비하고 또 준비해서,
벼르고 또 벼러서 이제사 터져나오기 시작한 그 어렵고 소중한 말들을
지금은 세상에서 유일한 이 아이의 대화상대인 내가 하찮게 여기고 뒷등으로 흘려들으면
아이는 얼마나 서운하고 속상할까...

어린시절, 대식구를 삼시세끼 먹이고 입히느라 늘 고되셨던 엄마는 가끔 내게 '송신타'고 짜증을 내기도 하셨지만
그래도 늘 나의 제일 좋은 수다상대였다.
새벽1~2시에 독서실에서 돌아오던 고등학생 시절에도 엄마는 주무시다 내가 오면 꼭 일어나서
간단한 간식을 차려주시고는 그날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을 얘기하는 내 얘기를 들어주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 주무셨다.

나도 우리 아이와 그런 수다상대가 되고싶다.
지금의 엄마와 나보다 더 편안하게, 더 자주, 더 속깊은 얘기도 나눌 수 있는 친구같은 엄마와 아이가 되길 바란다.
이제 막 말을 시작한 이 꼬마녀석과 함께
비록 한 단어로 다 되는 대화(?)들이지만 힘들어도 더 따뜻하고 재미나게 주고받아 봐야겠다.





Posted by 연신내새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