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여행'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18.08.29 식당을 한다면 4
  2. 2018.08.14 제주에서 그림 2 2
  3. 2018.08.13 제주에서 그림 1 2
  4. 2018.08.07 제주 여행
여행하는 나무들2018. 8. 29. 14:46


식당을 한다면 어떨까.
작은 가게, 맛있는 음식, 좋은 음악
그리고 바다가 보이는 창문.

제주를 여행하면서 어딘가 들어갔다가
무심코 고개를 돌렸을 때
바다가, 아주 작은 창으로라도
천연스럽게 앉아있는 바다가 보이면
순간 뭉클해지곤 했다.

우리가 대학시절에 조금 알던 분이 ‘달물’과 한 동네(월정리)에 닭곰탕 식당을 여셨는데
아주 맛있다고 광호가 말해주어서 찾아갔다.

처음 얘기를 들었을 때 나는 살짝 화려한 식당을 예상했다.
세련된 인테리어로 장식된 카페같은 느낌이거나 크고 널찍한.. 닭곰탕집?
내 기억속의 그 분이 참 도회적이고 멋진 이미지여서 그랬던 것 같다.
이름과 얼굴만 알고 멀리서 바라보았을 때.

<월정 곰닭>.
작고 깔끔한 식당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빈 테이블에 앉아 선배는 책을 읽고 있고
어머니로 보이는 분이 다른 테이블에서 코바늘로 하얀 레이스를 뜨고 계셨다.
<혼자를 기르는 법> 선배가 읽던 책 제목과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지나온 시간만큼 사람들은 달라지고
나는 17년의 시간을 그녀에게서 본다.
그 분은 나를 모를줄 알았는데 오며가며 얼굴이 익었던지 “얼굴보니 알겠다”고 하셔서
우리는 17년의 시간을 사이에 두고
멋적고도 반갑게 웃음을 나누었다.

월정리에 일주일 머무는 동안
세 번의 저녁을 <월정 곰닭>에서 먹었다.
국물이 정말 맛있고, 부드러운 닭고기살이 넉넉히 들어있는 푸짐한 닭곰탕과 닭칼국수 대접을 앞에 놓고
종일 물놀이를 하고 허기진 아이들은 꿀맛같은 국수와 밥을 호호 불어 후룩후룩 들이켰다.

즐겁지만 고단한 여행지에서
아는 분이 정성스레 차려준 따뜻한 집밥을, 든든한 여름 보양식을
내 아이들과 내가 고맙게 받아먹는 기분이었다.







내가 집에서 저녁을 차리며 듣는 라디오 방송인 ‘세상의 모든 음악’이
<월정 곰닭>의 저녁에도 흘렀다. ​
작은 책장에는 문학 관련 잡지가 몇권 꽂혀있었다.

옆 테이블에서 한 손님이 “아주머니~!”하고 선배를 부르는 소리에
뒤돌아앉아있던 내 등이 움찔했다.
뭔가 무안하고 당황스러운 기분이었다.

‘그래.. 나도 그렇게 불릴 나이야. 세상이 그렇게 불러.. 내가 일을 한다면, 아니 낯선 이를 만나면 나도 이렇게 불릴 일이야..’
그 손님이 다음 번에는 “사장님~”하고 불러서 울컥했던 마음이 조금은 잦아들었지만
사십대 초반, 아직은 익숙치 않은 호칭과 함께
불현듯 우리가 걸어가고 있는 중년의 삶과
멀리도 떠나온 이십대 청춘의 날들이
아득하고도 묵직하게 마음을 눌렀다.

“겨울에 또 놀러올 수 있으면 와~” 하는 선배의 말에 나는 웃으며 “네”하고 대답했다.
겨울에 제주에 또 가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나는 종종 저녁밥을 차리며 <월정곰닭>을 생각할 것이다.
푸르스름한 어둠이 내리는 작은 창문밖의 바다와
20대에도 용감했고 지금도 용감해보이는 선배를 생각할 것이다.
갑자기 만나 내 몸과 마음을 뜨끈한 위로로 채워주었던 담백하고 정갈한 닭곰탕 국물과 함께.












Posted by 연신내새댁
여행하는 나무들2018. 8. 14. 11:42

​​

‘달에 물들다’ 게스트하우스의 조식을 먹는 식당이자 휴게실인 ‘작은달 식당’에 앉아있으면
긴 탁자가 있는 데크와 마당의 풀꽃들, 빨래줄에 걸린 빨래들 그리고 마을의 낮은 지붕들과 하늘이 보인다.
좋은 노래가 항상 흐른다.

그림그리는 것을 내가 왜 좋아할까..
이 그림을 그리다 알았다.
생각들이 아주 편하게 흘러갔다.
떠올랐다가 깊어졌다가 나름의 결론을 얻고 돌아갔다.
그리고 잠깐씩은 아무 생각도 들지않았고
음악이 참 좋아서 뭉클했다가
또 다른 생각이 이어졌다.

그러니까 그림은 내가 아주 편안하게 생각을 하거나
그 생각을 관찰하거나
아무 생각도 들지않게 해주는 좋은 방법이기도 했던 것이다.

제주에 머무는 동안
광호와 수지가 수련하는 요가 수업에 두 번 함께 갔다.
7층 건물의 통유리와 통거울로 둘러싸인 피트니스센터에서 운동적 요소를 강조하며 진행하는 내 요가수업과 다르게
돌담으로 둘러싸인 제주도 마을안에 자리잡은 작은 집안의 요가 수련장에서는
호흡과 명상에 중점을 둔 요가를 해볼 수 있었다.

광호가 달물에서 진행하는 ‘수지에니어그램’프로그램에도 참가했다.
나를 찾는 여행, 나를 돌아보는 시간, 지친 나를 다독여주는 친구의 이야기, 내 얘기를 깊이 공감해주는 친구들에게 솔직히 오래오래 얘기하기.






비행기 창문으로 보이는 구름끝의 선에 대해 얘기하다가
그 것은 내 시선의 한계, 끝이란 걸 알았다.
지평선, 수평선처럼 내 눈에 보이는 구름의 끝.
지구는 둥글고 내 시선이 가닿을 수 있는 곳은 한계가 있다.

뭔가 위로를 받은 기분이었다.
내 생각, 내 시선의 한계를 안다는 것이
오히려 그 뒤의 끝없는 세계, 더 많이 존재할 풍부함에 대해 믿을 수 있게 해줘서
안심이 되기도 했다.
삶은 신비로울 것이다.







Posted by 연신내새댁
여행하는 나무들2018. 8. 13. 11:40




제주에 가기전에 나는 좀 많이 우울해하고 있었다.

나이든다는 것이 슬프고, 삶은 자꾸 어렵고 두렵게 느껴졌다.
크고 작은 일들이 힘에 부쳤다.

월정리 바다는 정말 아름다웠다.
언제 봐도 곱지만 유난히 잔잔하고 푸르고 반찍이는 날도 있다.
아이들과 처음 바다에 간 날이 그랬다.
예뻐서 행복했다.
파도을 맞으며 물 속에 앉아있는데
파도처럼, 삶에서 닥치는 여러 일들도 그렇게 맞고 넘겨야겠다는 담담한 용기 같은 것이
마음안에 천천히 채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월정리를 우리에게 알려주고
우리가 여름이면 그 바다와 제주와 그 친구들 속에서 쉬었다 갈 수 있도록 해주는
‘달에 물들다’ 스쟈와 널븐. 예쁜 아이들 봄이와 원이.

제주에서 이들과 함께 보낸 시간 덕분에
나는 마음이 많이 따뜻해졌고 단단해져서 돌아온 것같다.




여름이, 한낮의 열기는 아직 뜨겁지만
절정은 지난 것 같다.
덜 무섭고, 더 견딜만하게
계절은 가을로 접어들 것이다.

나도 조금더 깊어져보겠다.

Posted by 연신내새댁
여행하는 나무들2018. 8. 7. 12:04



여름, 다시 제주에 왔다.
친구들을 만나고 쉬고 행복해지려고.
그림을 그리고.



나는 연제를 그리고 연제는 나를 그렸다.







비행기 창문으로 본 구름 풍경.
참 신기하다. 구름들 저 끝에 존재하는 경계선.
내가 살고있는 세계를 손바닥만하게 내려다볼때의 마음.

떠나서 좋다.
잠시 떨어져서 볼 수 있어서.
한 숨 돌리고, 한 템포 끊고
멈춰서 생각할 수 있어서.
바다가 보이는 동네에 와서.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Posted by 연신내새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