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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하는 나무들2010. 8. 4. 22:22



오늘 아침도 비와 함께 시작했다.
서울에는 해가 쨍하고 무덥다는데 비구름도 우리의 이른 여름휴가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온 모양이다. -.-
비가 오니 아침산책도 짧아지고 밥되기를 기다리며 잠시 시간이 떴다.









그리하여 김연수어린이는 여행 출발후 처음으로 아빠 노트북으로 '벼랑위의 포뇨'를 봤다.
포뇨는 토토로와 함께 연수가 제일 좋아하는 만화영화다.
집에서도 하루에 30분쯤은 꼭꼭 챙겨보던 포뇨를 여행하면서는 한참동안 잊고 지냈는데 이제 여행도 길어지고, 비도 자꾸 오고하니 가져온 그림책 몇권도 너무 많이 봐 지루하고 장난감도 시들해져버렸다.
엄마아빠도 놀아줄 거리가 궁해지던 차에 엄마가 예전에 노트북에 받아놓았던 포뇨를 기억해낸 것이다.
포뇨의 출현으로 연수는 초집중, 아주 조용해졌다.

 








이 틈을 놓치지않고 연수아버지는 얼른 트위터에 집중.
남자 둘이 아주 조용하게 각자의 세계에 빠져있어준 덕분에 나는 혼자서 천천히 카레를 만들고 비오는 창밖도 바라보며 모처럼 찾아온 고요한 아침을 누렸다.











아침을 먹고 조계산 선암사를 찾아갔다.
숙소가 있는 금전산에서 거리로는 멀지 않지만 깊은 산속으로 난 구불구불한 길인지라 시간이 제법 걸렸다.
이 길의 이름도 조정래길이다. 그러니까 조정래길은 벌교읍내에서 시작해 조계산으로 이어지는 길인 것이다.
빨치산의 입산로를 따라가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에 주위의 산을 다시 보게 된다.
저 깊은 산으로 들어가버리면 정말 찾기 어려울 것같다. 빙 둘러 포위하기에도 너무 크고 게다가 산들은 계속 이어져 그야말로 '산맥'을 이루고 있지 않은가. 이 짙은 푸르름속으로 숨어드는 사람도, 쫓는 사람도 모두 참으로 막막했으리라.

가는 길에 연수가 잠이 들어 남편은 차에 남고 나 혼자 선암사에 다녀오기로 했다.
숙소를 떠날 때부터 아마도 그렇게 될것이라 예상하긴 했지만 막상 혼자 길을 걷게 되니 기분이 묘했다.
어린 아기를 키우다보니 혼자 어디를 가는 일이 거의 없다.
늘 아이와 함께 가고, 때때로 남편도 함께 가고.. 어쩌다 이렇게 혼자 어딜 가게되면 홀가분하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하다.
어린 아기를 키우는 육아의 시간은 늘 긴장과 함께 한다.
어린것을 먹이고 씻기고 돌보는 동안에도 행여 다치지 않을까 긴장하고, 늘 애정을 요구하는 아이와 감정을 끊임없이 주고받는 일도 굉장한 에너지를 요구한다. 
하루종일 그렇게 육체노동과 감정노동을 쉼없이 하다가 아이가 잠을 잘때, 잠깐의 낮잠이나 제법 긴 밤잠을 잘 때.. 그때에야 엄마는 비로소 긴 한숨이 '후....'하고 터져나오고 어린 생명을 키우며 느끼는 긴장감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커피도 아이가 잘 때 마시는 커피가 제일로 맛있고, 아이가 잘때 엄마도 자는 것도 좋겠지만 그 시간만이라도 긴장을 풀고 홀가분하게 나만의 생각과 일을 해보고 싶어서 피곤한 몸으로 인터넷도 보고, 블로그에 글도 쓰고 하는 것이다. 

연수와 남편 없이 혼자서 카메라가방을 메고, 우산을 받쳐들고 인적없는 선암사 길을 조용히 걸어가자니
대학시절 처음으로 혼자 여행을 떠났을 때처럼 '불안한 행복'이 숨쉴 때마다 느껴졌다.
나에게 집중하고, 내 마음의 얘기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시간... 이 시간이 참 그리웠구나.. 하고 새삼 깨달았다. 











선암사 매표소에서 절 경내까지는 2km 가까이 되는 제법 먼 길이었다.
넓고 평평한 길이 짙은 녹음속으로 구부러졌다가 나타나기를 반복했다.
길 옆의 계곡은 요며칠 비로 물이 불어나서 곳곳에 작은 폭포를 이루며 시원하게 흘러내리고 있었다.
참 아름다운 길이었다.

그 길 내내 누군가의 이름을 단 꽃등이 걸려있었다.
그 이름을 달아준 사람들의 극진한 마음들이 꽃등이 되어 환하게 이름표들을 비추고 있었다.
선암사 아름다운 길에 둥실 떠있는 이름표들은 행복할 것 같았다. 힘든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저 이름의 주인들도 모두 행복하시기를..
 










소원을 비는 돌탑들이 군데군데 쌓여있었다.
돌 두개가 놓여있던 곳에 내 돌도 하나 얹어보았다.
바로밑의 돌이 기우뚱하더니 한쪽으로 기운채로 내 돌을 받혀주었다.
고마웠다. 사는 일이 다 그렇지.. 싶었다. 누군가에게 기대지 않고 저 혼자 살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사람으로 사는 것은 누군가에게 기대고 또 나도 누군가를 받쳐주는 일... 우리 엄마가 나를 받쳐주었듯 나도 이제 연수를 받쳐준다. 내게 기대서 내 아이도 자라고, 남편과 나도 서로 기대고 산다. 이웃들과 친구들에게도 마음으로 얼마나 많이 기대고 사는지..  
여기서 제일 중요한 것은 두 번째 돌이 움직였다는 것이다. 제 위에 얹힌 내 돌을 받혀주기 위해 원래의 자기 자리에서 기우뚱 하고 움직였다. 제 모습, 제 자리를 바꾸고 잃는 것을 감수해야만 누군가를 제 위에 받혀줄 수 있다. 스스로의 변화를 감내하는 것, 그것이 관계의 핵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 돌탑 앞에 서서 참으로 뭉클했다. 












일주문에 닿기전, 작은 호수와 그 속에 떠있는 동그란 섬을 보았다.
'삼인당'이라 부르는 이 작은 섬은 뒤의 키큰 나무숲과 어울려 신비롭게 보였다.
연수가 봤으면 좋아했을텐데.. 아마 저 물에 들어가고 싶어했겠지.
엄마의 여행은 혼자 있어도 아이와 함께 가는 것 같다.










삼인당 바로 옆에 걸려있던 저 플랭카드를 보고 나는 혼자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왠지 선암사의 스님들은 유쾌한 분들일 것 같다.
그 옆에 진짜로 서있던 버스는 또 얼마나 재미있던지~!









자세히 안보이지만 "가자! 선암사로!! 영원한 중생의 도량!" 이라고 써있다. 
영원한 마음의 고향, 영원한 청춘의 도시, 영원한 낭만의 해변... 신성한 불전앞에서 이런 경망한 생각들을 한것이 죄송하지만 '영원한 중생의 도량'이라는 씩씩한 문구앞에서는 이런 상상을 하지 않을수 없었다.

왠지 정말로 이 절은 씩씩한 호남사람들, 털털하게 웃고 농담 잘하는 남도사람들의 기운이 배어있는 절 같았다.   










선암사 종무소 앞에 서있던 빨간 우체통.
저 우체통을 보며 출가한 젊은 스님이 속가에 계신 어머니께 편지를 써서 우체통에 넣는 모습을 생각해보았다.
그 편지도 '그리운 어머니께'로 시작할까..











버드나무 푸른 가지가 낭창하게 드리워진 작은 연못에 수련이 참 예쁘게도 피어있었다.
저 꽃만 들여다보고 있어도 한 나절은 가겠구나.. 싶게 아름답던 꽃.












신영복선생님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 '떡신자' 이야기가 있다.
군대도 그렇겠지만 옥에서도 일요일에는 교회 예배도 열리고 절의 법회도 열리는 모양이다. 거기에 가면 쵸코파이도 주고 떡도 주는데 떡을 좋아하는 신선생님은 일요일마다 빠짐없이 법회에 참가해서 떡받는 일이 큰 즐거움이었다는 얘기였다. 그 종교를 믿는 것은 아니었지만 평소에 먹기 힘든 간식들이 좋아 그렇게 종교행사에 참가하는 이들을 '떡신자'라 불렀다고 했다.
그렇게 보면 나도 '밥신자' 정도는 될 것이다. 
절에서 먹는 절밥(바리공양)이 좋아 잘 알지도 못하는 불교의 절들을 즐겨 찾으니 말이다.

아직 입문 수준인 밥신자의 눈으로 보건데 제일 훌륭한 절이 이 선암사다. 
밥먹는 곳이 어딘지 크게 써붙여놨기 때문이다. 
다른 절에서는 점심때쯤 도착해 눈치껏 밥냄새나는 곳을 찾거나, 마음씨 고와보이는 보살님께 체면불구하고 절밥을 먹을수 있겠냐고 여쭤봐서 공양간을 찾아야하는데 이렇게 크게 '식당'하고 붙여놓고, '스님들은 11시 40분부터, 일반인은 12시부터 점심을 드실 수 있습니다'하고 친절한 안내문까지 붙여놓으셨다.
이렇게 감사할데가... 연수랑 아빠가 자고있어서 먹고갈 수 없는 것이 안타까웠다.     











'뒤ㅅ간'이라고 써있는 이 나무집이 선암사 해우소다.
애초 선암사에 올 마음을 먹은 것은 이 해우소 때문이다.
보성 근방까지 왔는데 선암사 해우소에서 똥을 한번 싸보지 않으면 인생이 불우할 것 같았다. 
김훈씨가 '자전거여행'에 그리 썼다.

"선암사 화장실은 배설의 낙원이다. 전남 승주지방을 여행하는 사람들아, 똥이 마려우면 참았다가 좀 멀더라도 선암사 화장실에 가서 누도록 하라. 여기서 똥을 누어보면 비로소 인간과 똥의 관계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알 수가 있다.
 선암사 화장실은 3백 년이 넘은 건축물이다. 아마도 이 화장실은 인류가 똥오줌을 처리한 역사 속에서 가장 빛나는 금자탑일 것이다. 화장실 안은 사방에서 바람이 통해서 서늘하고 햇빛이 들어와서 양명(陽明)하다." 
(김훈, 자전거여행 1, '그리운 것들 쪽으로' 선암사 중에서)
   










화장실 앞에는 손씻는 돌절구도 있다.
저렇게 호스 하나만 꽂으면 땅속에서 물이 나온다.
이런 단순함이 때로는 너무 신비롭다. 우리가 워낙 자연에서 멀리 사는 탓일게다.











나무로 지은 이 오래된 화장실 안에서는 햇살도 은은하고 바람도 은은하다.
화장실의 칸들은 문은 물론 없고 벽도 들어가서면 가슴쯤까지 오는 낮은 나무벽으로 구분되어 있다.
선암사 화장실 안에서는 남녀칸도 "철벽으로 가로막힌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떨어져" 있다.
이렇게 남녀 화장실이 한 건물안에서 복도를 사이에 두고 자연스럽게 분리된 건축양식이 남도지방에서는 수백년전부터 있었던 모양인데 남아있는 것은 이 선암사 화장실뿐이라한다. 그래서 이 뒤깐은 지방문화재로 등록되어있다.
그러니까 지금 나는 그 문화재 안에 들어와 쉬도 하고 똥도 싸게된 것이다. 감사한 일이다.











선암사 화장실 자리에 앉으면 바깥풍경이 보인다. 하지만 화장실이 높이 있어서 밖에서는 안이 안보인다.

여기서 똥누는 기분을 김훈씨는 이렇게 썼다.
"똥을 안 눌 때 똥누는 사람을 보는 일은 혐오스럽지만, 똥을 누면서 창살 밖으로 걸어다니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일은 계면쩍고도 즐겁다. 이 즐거움 속에서 배설 행위는 겸손해진다. 햇빛은 창살을 통해서 화장실 안으로 들어온다. 빛은 굴절되어서, 화장실 안에는 직사광선이 들어오지 않고 늘 어둑어둑하면서도 그늘이 없다. 바람이 엉덩이 밑을 스치고 지나간다. 그래서 엉덩이가 허공에 뜬 것처럼 상쾌하다. 똥을 누기가 미안할 정도로 행복한 공간이다."

그러니.. 이 화장실에 꼭 한번 와보고 싶지 않았겠는가.










해우소 옆모습. 윗층에서 싼 똥은 아래층에 떨어져 나무탄 재와 짚과 섞여 두엄이 된다.


김훈씨는 또 이렇게도 썼다. 
"똥을 누는 일은 드러내놓고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파트 변소처럼 감옥 같은 공간에 갇혀서 해야 할 일도 아닐 성싶다. 똥을 누는 것은, 배설물을 밖으로 내어보내는, 자유와 해방의 행위다. 거기에는 서늘함과 홀가분함이 있어야 한다. 선암사 화장실은 이 자유의 낙원인 것이다. 이 화장실에 앉으면 창살 사이로 꽃핀 매화나무며 눈 덮인 겨울숲이 보인다."

이 대목을 읽고 나는 연수가 한사코 화장실 안에서 똥을 안싸고 "밖에서, 밖에서 싸~!"하며 도망치는 이유도 이게 아닐까 싶었다. 감옥이 어떤 곳인지야 아직 알 수 없는 어린 아이지만 좁은 화장실안이 답답하기도 할 것이고, 정해진 규칙이란 것은 속박처럼 느껴져서 거부하고 싶기도 할 것이다.
똥이 그저 어디서든 급할때 얼른 싸기만 하면 되는 일같기도 하지만, 작은 행위 하나에서도 자유롭고 홀가분한 기분을 깊이 느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대학시절 농활다닐 때 남편은 화장실이 설어 열흘이 넘는 긴 기간동안 똥을 한번도 안 싼 적도 있다했지만, 나는 시골집에 별채처럼 떨어져있는 변소에 앉아 시원하게 뚫린 창밖으로 펼쳐지는 산과 들판 풍경을 볼떄가 참으로 좋았다.  보통 그 창들은 창문도 없이 시멘트벽에 그저 네모낳게, 벽의 위쪽에 옆으로 길게 뚫어놓은 그야말로 큰 구멍이지만 그 안으로 쏟아져오는 바깥풍경과 바람만큼은 도시의 내 집으로 가져가고 싶은 그런 것이었다. 












선암사 해우소 벽에는 손으로 옮겨쓴 시가 붙어있다.



선암사

정호승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로 가서 실컷 울어라

해우소에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으면
죽은 소나무 뿌리가 기어다니고
목어가 푸른 하늘을 날아다닌다

풀잎들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주고
새들이 가슴 속으로 날아와 종소리를 울린다
눈물이 나면 걸어서라도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 앞 
등굽은 소나무에 기대어 통곡하라


 


나는 이 시를 순천에 도착해서 받은 '순천관광안내' 책자의 한 귀퉁이에서 처음 읽었다.
선암사 해우소에 와서 앉아보니 정말로 좀 울어도 좋을 것 같았다.
무릎 사이에 고개를 묻고 울기에 참 좋은 곳.. 오래 참았던 눈물을 뚝뚝 떨굴 수 있는 곳.











선암사 뒷산에는 편백나무 숲이 있다한다. 
너무 오래 지체한 것 같다는 생각에 멀리서 건너다보며 저 돌길끝에 있는 키큰 나무숲이 그 숲이 아닐까... 생각만 했다.
나중에, 나중에 템플스테이같은 것을 할 수 있는 날이 내게도 온다면
나는 여기 선암사에 와서 하고 싶다.
편백나무숲을 걷고, 조계산을 넘어 송광사에도 다녀오고 싶다.












절에서 내려오는 길, 무지개 모양을 한 아름다운 돌다리 '승선교'를 사진에 담아보았다.
1689년에 호암대사가 이 옆의 절벽에서 관음보살을 뵙고 나서 만든 다리라는 전설이 있다.
무지개다리처럼 누군가를 기다리고 만나기에 아름다운 곳이 또 있을까.












주차장에 돌아오니 연수는 벌써 일어나서 아빠와 차 안에서 잘 놀고 있었다.
부쩍 친해진 둘을 보니 안심도 되고, 이제는 내가 좀더 자유로운 시간을 가질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여행이 끝나고 돌아가면 그런 시간을 더 만들어봐야지.
 











순천 시내로 돌아와서 먹은 점심.
금빈회관의 돼지떡갈비는 전날 낙안읍성 앞에서 큰맘먹고 먹은 소고기 떡갈비보다 정말 몇배나 더 맛있었다. 값은 더 싸다.
이번 여행에서 먹어본 여러 맛집중 단연2위로 등극했다.

밥을 먹다말고 밖에서 놀고싶어하는 연수를 데리고 나와 순천시내의 오래된 골목을 천천히 걸어다녔다.
순천시청이 바로 앞에 있으니 구도심 정도 될 것 같은 그 길에는 '셋방있음'이라고 종이에 펜으로 써서 붙인 주택도 있었고, '달방 있음'이라고 써붙인 작은 여관도 있었다. 
열린 대문으로 여관 마당이 보였는데, 작은 문앞에 놓인 빨래가 가득 널린 빨랫대와 어린아기 유모차가 눈에 들어왔다.
연수 유모차와 같은 것이었다. 연수는 "연수 유모차가 있네" 하며 반가워했다.
아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한달씩 달세를 내며 여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 내가 잘 짐작할 수 없는 그 삶을 생각하며 시내를 떠났다.


   









오후에는 순천만을 찾아갔다.
유명한 철새도래지인 순천만은 자연생태공원으로 잘 꾸며져 있었다.
입구의 넓은 잔디밭에는 "12세 미만 출입가능" 팻말이 붙어있었다. ^^
3세 김연수는 마음껏, 혼자서 그 넓은 잔디밭은 독차지하고 뛰어다녔다.











회색의 고운 진흙뻘위로 갈대숲이 끝도없이 펼쳐져 있었다.











연수는 여행을 시작한 이래 최고로 신이 났다.
우산도 던져버리고 비를 맞으며 신나게 나무길위를 뛰고 또 뛰었다.
이렇게 놀고도 감기 한번 안걸린 것이 고맙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다. 
도대체 이 펄펄한 사내아이는 얼마나 뛰어놀면서 자라야하는 걸까.
 
 















한껏 친해진 둘이서 뒤도 안돌아보고 씩씩하게 걸어간다.
사실 모기가 너무 많아서 이 갈대숲에 오래 있을 수가 없었다. ㅜㅜ
순천만을 여름에 여행하려면 모기에 대한 대책을 세우고 가야만할 듯.










게가 딱 한마리 보인다.
실제로보면 게도 정말 많고, 짱뚱어라는 다리달린 작은 물고기도 정말 많아서 연수는 고개를 들지도 않고 "저기! 꽃게! 저기! 짱뚱어!"하면서 연방 탄성을 질렀다. 
그 사이에도 모기는 쉼없이 연수 다리와 엄마 아빠의 다리를 물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꽃게를 더 보고싶어하는 연수를 데리고 나오느라 무진 애를 먹었다.
아이들에게는 정말 좋은 공간이었다. 마음껏 뛰고, 진흙뻘속에서 꼬물거리는 작은 동물들을 마음껏 보고, 갈대잎를 꺽어쥐고 낚시대라면 마음껏 흔들고 다닐 수 있는... 
다음에 연수와 또 올 기회가 있으면 참 좋겠다.
  
















멀리 보이는 산들이, 바람에 눕는 갈대들이 아련했다.
아름답구나, 이 땅의 곳곳은.. 눈물겹기도 했다. 이 어려운 시대에 아름다움을 유지하고 있는 것들이.

숙소로 돌아오니 여행의 마지막 밤이 기다리고 있었다.
선암사를 만난 것은 큰 행운이라고 생각하며 기분좋게 잠이 들었다. 갈대밭에서 잘 뛰어논 연수도 순하게 잠이 들었다.
내일이면 돌아간다. 우리들의 집으로.





Posted by 연신내새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