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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하는 나무들2010. 7. 17. 00:12









나흘째 여행을 시작하며 꼼꼼히 부안관광안내책자를 읽고계신 김연수씨.

여행의 새로운 하루를 여는 첫 일정은 연수와 함께 하는 아침산책이다.
아침 일찍 일어난 연수의 손을 잡고 어제 놀았던 바닷가를 한바퀴 빙 돌며 산책했다. 
물이 많이 차서 울퉁불퉁하던 자갈밭은 반도 넘게 줄었다. 만조는 낮 12시경이라 하니 물은 앞으로도 몇시간 더 차오를 것이다.

연수와 나는 생활리듬이 많이 닮았다. 둘다 아침잠이 없고 밤잠은 많다. 남편은 반대다. 밤잠은 없고 아침잠이 많다.
그래서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연수는 남편 대신 내 짝꿍을 하라고 하늘이 보내준 선물이 아닐까..
아침산책을 할때는 특히 그런 생각이 든다. 혼자 보는 것보다는 둘이 보는게 좋다. 둘이 같이 손을 잡고 나무계단을 조심스레 내려가고, 천천히 바닷가를 산책할 수 있어 고맙다.
모래사장에 앉아 예쁜 돌멩이와 조개껍질을 주으며 함께 웃을 때 참 행복하다.
우리가 산책에서 돌아올 때까지 달콤한 아침잠을 조금이라도 더 잘 수 있는 남편도 행복할 것이다.
연수가 태어나기 전에 나는 내가 놀고싶을 때 자고싶어하는 남편때문에 곧잘 스트레스를 받곤 했다. 연수 덕분에 우리에게 평화가 온 것일까. 
요 작은 짝꿍과의 산책은 보살펴야할 게 한두가지가 아니고 나를 업어주기는커녕 내 등에 업고 돌아오느라 낑낑거릴 때도 많지만 말이다.   









아침을 먹고 숙소를 출발해 찾아간 곳은 부안에 있는 내소사. 
오래된 전나무 숲 사이로 일주문에서부터 사천왕문까지 500m가 넘는 긴 길이 나있다.
몸과 마음이 모두 시원해지는 아름다운 길이다. 










내소사는 어제 수덕사에서 불편했던 마음을 따뜻하게 풀어주었다.
절을 향해가는 길은 그 절의 아주 중요한 부분을 이루는 것 같다. 길이 주는 느낌과 절이 주는 느낌은 서로 아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일주문에서 천왕문까지의 길은 절의 첫인상이자 이 길 속에 그 절이 추구하는 정신이 상징적으로 담겨있는 것같다.
개심사의 소박한 길은 그것을 감싸는 자연도 소박했고, 절도 소박했다. 세속에 지친 마음을 따뜻하게 위로해주고, 씻어주는 엄마의 손길 같았달까.
수덕사는 가파른 오르막길이 주는 수직적인 고양감이 내게는 좀 벅차고 권위적으로 느껴졌던 절이다.
내소사 길은 넓고 평탄했다. 하지만 좌우에 서있는 푸르고 높은 전나무숲으로 인해 그 길을 걷는 사람의 마음 또한 높은 이상과 아름다움의 세계에 깊이 매료되고 고무되는 길이었다. 
위압적이지 않되, 마음을 곧고 정갈하게 가다듬게 하는 것 같았다.





   



아름다운 능가산 아래 펼쳐진 내소사의 대웅보전은 목조건물의 소박함과 단청과 문의 화려한 문양들이 참 조화롭게 어우러진 불전이었다.








빛깔이 아니라 문양만으로도 이렇게 화려하다. 나무의 자연스러운 색채만 있는 것이 오히려 더 깊은 화려함을 가능하게 하는 것 같다.   










구석구석 아름다운 곳이 많아 눈길닿는 곳마다 넋을 잃고 바라보게 되던 절.









내소사에서는 대웅전 오른편에 찻집이 있었다.
값은 써있지 않고 차를 마신후 문앞에 있는 작은 불전함에 내고싶은만큼 넣고가면 된다.
작은 나무상마다 다기들이 준비되어있다.
책을 읽고 계시던 보살님이 '뽕잎차'를 우려 주셨다. 그냥도 먹어보라고 연수와 우리에게 조금 주셨는데 바삭하게 잘 마른 뽕잎은 고소했다.
더운 날, 많이 걸어 힘들었던지 엄마에게 자꾸 업히고 매달리던 연수는 방에 들어오니 좋았는지 양말까지 벗고 차를 마셔가며 잘 놀았다.
차에서도 그 절 느낌이 난다. 은은하고 담담한 뽕잎차같은 절, 내소사는 내게 그렇게 기억될 것이다.  









내소사 공양간에서 점심공양까지 감사히 얻어먹고 내려오는 길, 연수는 전나무길을 채 빠져나오기도 전에 유모차안에서 잠이 들었다.
전나무길가에 있는 벤치 옆에 유모차를 세우고 나는 둥근 탁자위에 노트북을 올려놓고 블로그에 첫날 여행기를 올렸다.
여행와서 처음으로 써보는 포스팅이었다. 여행중에도 틈만 나면 아이폰을 꺼내 트위터를 보는 남편에게 곱지않은 시선을 보내왔는데 그 아이폰 덕분에 전나무 숲길에 앉아 인터넷을 하는 호사를 누리게 되고보니 그간의 구박이 살짝 미안했다.

이번 여행은 나에게는 오래전부터 가보고싶었던 절들을 찾아다니는 여행이었다.
남편과 아이에게는 또 각자의 의미가 있을 것이었다. 
우리 가족이 처음으로 함께 떠난 '긴 여행'이라는 것은 모두에게 중요하고 맨밑바탕에 놓인 의미겠지만 그위에는 자신만의 무언가가 놓이게 될 것이다. 

36개월된 아들과 함께 한 한달동안의 터키 베낭여행기인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주겠지>에서 오소희씨는 여행 후반, 자신은 너무나 지쳐있었던 터키의 한 대도시에서 마침내 아이는 여행의 절정을 만끽하고 있었다고 했다.
내 여행은 내소사에서 절정을 맞은 것 같았다.
내소사는 그만큼 내게 큰 충족감을 주었기 때문이다.
'내소사'하고 말하면 입에서 전나무숲을 스치고 지나가던 시원하고 푸른 바람 소리가 날 것 같은.
오랜 시간동안 스스로를 키워온 나무처럼, 오랜 수행끝에 얻은 곧고 정갈한 마음들이 느껴지던 단아한 절.










연수의 낮잠이 끝나자 아쉬운 인터넷 시간도 함께 끝났다.
이제는 물놀이 시간! 꽃게보행기를 데리고 바다로 갈 시간이다. ^^










엄마의 무릎 정도까지 오는 물이지만 연수에게는 꽤 깊은 물이고, 처음으로 바다에서 해보는 수영(?)이다.
작년 여름 첫 돌을 막 지난 후였던 연수는 바닷물에 발을 적셔보기는 했지만
바다에 몸을 담그고 밀려오고 밀려가는 파도를 온 몸으로 느껴보는 경험은 오늘 처음 해보는 것이다.
무서울 법도 한데 이 녀석, 보행기를 타지 않고 그냥 물에서 수영을 해보겠다고 무척이나 떼를 썼다.  
누굴 닮아 이렇게 물을 좋아할까. 수영을 좋아하는 엄마를 닮은걸까, 술을 좋아하는 아빠를 닮은걸까..? ^^
깊은 물로 가고싶어하는 연수를 얕은 물에서 데리고 노느라 무척 애를 먹었다.
엄마의 배속에서 자유롭게 유영하던 태아 시절의 기억이 연수의 몸과 마음에 깊이 기억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중력의 중압을 벗어난 보는 것은 사실 얼마나 홀가분하고 기쁜 일인가.
사는 일이 몹시 고단하고 팔과 다리가 천근같이 무겁게 느껴질 때면 나는 물위에 가만히 떠있을 때의 편안함, 배영을 하며 누워서 하늘을 볼 때의 시원함을 가끔 꿈꾸곤 했다.
현실은 아직 연수가 저도 엄마처럼 튜브없이 수영하겠다고 따라하는 바람에 제대로 바닷물위에 한번 누워보지도 못하는 것이지만 말이다.  









해변에 앉은 선글라스 김선생님. 놀고있는 아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다.






     



망치처럼 생긴 돌멩이를 찾아내 신나게 다른 돌들을 두드리고 다니던 연수.
이 맑은 서해바다에서는 멸치같이 작은 물고기들이 우리 다리 옆으로 떼지어 헤엄쳐 다녔고
조금 먼 바다에서는 탁탁 물위로 튀어오르는 제법 큰 물고기들도 있었다.
신기하고 즐거운 일들이 계속 일어나는 바닷가는 마법에라도 걸린 것 같았다.










이 날 저녁 온가족을 매혹시킨 부안 '칠산 꽃게장'.
연수는 꽃게장 국물에 쓴 것과 같은 간장으로 맛을 낸 '메추리알 조림'을 혼자서 두 접시나 먹고, 그 국물에 밥을 비벼 먹었다.남편과 나는 각자 공기밥을 두 그릇씩 먹었다.
이 게장을 먹고 남편은 '이렇게 맛있는 게 세상에 있는줄 모르고 살았던 지난 세월'을 안타까워했고 이 식당에 취직하고 싶다고 했다. 이 사진도 처음 한입 먹어보고는 너무 맛있어서 그만 정신없이 반 이상 먹고나서야 '아 사진!'하고는 뒤늦게 찍은 것이다.
부안의 갯벌이 키워내는 꽃게의 비밀인지, 간장의 비밀인지, 그도 아니면 햇살과 바람이 곰소 염전에서 만들어내는 소금의 비밀인지 이 간장꽃게장의 깊고 오묘한 맛은 정말 대단했다.

우리가 가는 곳의 맛집을 찾아가고파했던 남편에게도 칠산꽃게장은 여행중 단연 으뜸으로 꼽히게 되었고,
연수도 조약돌이 가득하던 해변과 바다에서의 수영을 너무나 즐거워했다.
나는 내소사에서 깊은 평화로움과 충족감을 맛보았다.  
우리 가족은 이 날, 모두 함께 여행의 절정을 느꼈는지도 모른다.

그때 나는 그만 돌아가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충분히 본 것 같았고 행복했다.
어린 아이를 데리고 길게 여행하는 것을 걱정하는 집안 어른들의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에서 거듭되고 있기도 했고,
1년동안 우리집에서 함께 살아온 연수 삼촌이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받아 일본으로 떠나는 날이 다음주 목요일로 거의 확정되었다는 소식까지 들리자 나는 주말지내고 다음주 초에 일찍 돌아가자고 했다. 
그러나 남편은 그러고싶지 않아했다.
20대의 오랜 시간동안 한번도 이렇게 긴 여행을 해본 적이 없었던 남편이었다. 
대학시절의 농활이나 동아리 산행, 직장을 다니는 동안에는 청년회에서 단체로 가는 짧은 여행을 제외하면 거의 여행을 하지 못했던 남편에게 이번 휴가는 처음으로 긴 시간동안 자유롭고 홀가분하게 여러 곳을 돌아다녀보는 여행이었다.
비록 아직 어린 아들과 함께 떠난 길이기는 하지만 남편은 최대한 오래, 더 많은 아름다운 곳을 가보고 싶어했다. 
나는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렇게 긴 휴가를 낼때 얼마나 어렵게 결심했을지, 얼마나 떠나고 싶었을지.. 그 마음을 짐작하면서도 나는 자꾸 뒷걸음질치게 되었다. 
어린 아이가 고단할까 걱정스럽고, 어른들의 근심이 길어지는게 마음에 걸렸다. 

여행에도 기승전결이 있다면 우리의 여행은 이제 '전'의 시점, 그러니까 갈등의 국면에 접어든 것 같았다.




 
Posted by 연신내새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