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mma! 자란다2009. 8. 21. 12:29







오후 햇살을 받으며 똑순이가 낮잠을 잡니다.
따끈한 햇살에 궁둥이가 간지러울 것같은데 그래도 잘 잡니다.
한낮의 땡볕 아래서 부지런히 걷고 논뒤의 단잠이니 이정도 따끈함은 개의치않나 봅니다.






아이가 잘 때 얼른 기저귀 빨래를 합니다.
어제 물놀이 다녀오느라 기저귀빨래를 못해서 오늘은 삶아야할 기저귀가 많습니다.
아이 똥이 얼룩얼룩 묻은 똥기저귀를 빨며 다른 사람 똥이라면 더러워서 못 빨텐데... 하는 생각을 합니다.
내 아이 노란 똥을 보면서 더럽다는 생각보다 '잘 싸서 반갑다'는 생각이 먼저 드는걸 보면 아이가 걸어놓은 마법은 정말 강한가봅니다.
아니.. 아이 덕분에 제 눈에 씌여져있던 마법같은 편견이 아이에 대해서 만큼은 걷힌 건지도 모르겠어요.

똥기저귀를 빨고, 묵은 오줌기저귀들까지 헹궈 빨래솥에 넣고 뜨거운 불에 올려놓으면
휴.. 이제 잠시 쉴 수 있습니다.
아이가 자는 이 시간, 기저귀가 삶아지기를 기다리는 이 짧은 시간 동안
하루중 가장 조용하고 달콤한 휴식을 맛볼 수 있습니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보낸 것중에서 제일 고맙고 간절한 휴식입니다.







잠에서 깬 아이에게 줄 옥수수를 데우기위해 물을 끓이면서
끓는 물을 국자로 떠 나를 위한 뜨거운 커피도 한잔 탑니다.
식탁에 앉아 천천히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는 동안, 기저귀솥에서 뜨거운 김이 칙칙 끓어오르면
긴 나무젖가락으로 부풀어오른 기저귀들을 꾹꾹 눌러 뜨거운 물에 골고루 적셔줍니다. 

요즘 읽고있는 책은 오소희씨가 쓴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겠지>입니다.
만 36개월된 아들을 데리고 한달동안 터키 베낭여행을 다니며 쓴 여행기입니다.
똑순이는 이제 14개월 보름을 살았으니.. 22개월 후에는 우리도 이런 여행을 할 수 있으려나요?
천천히 손을 잡고 걷고, 손을 놓고 풀숲의 꽃과 풀잎을 구경하고, 돌멩이를 줍는 것은 요즘도 우리의 중요한 하루일과이니
그 장소가 아파트 화단에서 터키의 호숫가와 산등성이로 달라지는 것 뿐입니다.

오소희씨의 따뜻하고 자유로운 글을 읽으며 똑순이와 함께 그 길을 걷고, 바람을 받고 하늘을 올려다보는 상상을 합니다.
집안에 쏟아지는 오후 햇살을 받으며 몸은 가스렌지 앞 식탁에 앉아있지만
마음은 터키의 아름다운 길위에 서있습니다.

이렇게 평화로운 오후가 매일 있는것은 아니어서, 어제 오후는 꼭 선물같았습니다.
'아.. 참 행복했다.. 이제 똑순이가 깰때가 됐는데..?' 생각하자마자 바로 부스럭부스럭 안방에서 아이의 인기척이 들립니다.
잠이 덜깬 눈을 부비며 제 이부자리 위에 앉아있는 아이를 품에 꼭 안으니
땀에 젖어 촉촉한 아이의 살이 제 살에 착 와서 감깁니다.






한잠 달게 잘 자고 일어난 똑순이, 잠기운에서 좀처럼 벗어나질 못하더니
'옥수수먹을래?' 한마디에 귀가 번쩍 띄여 거실로 나왔습니다.
옥수수 반공이를 주자 털썩 주저앉아 열심히 먹습니다.


 



외가집에 갔을때부터 본격적으로 옥수수를 먹기 시작한 아이는 옥수수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릅니다.
강원도 찰옥수수 맛에 눈을 떴지요. ^^






한 입 가득 베어물고...





가끔 이를 쑤실줄도 압니다. ^^





흐흥~ 옥수수 정말 좋아! ^^ 옥수수 하나로 온 오후가 풍성합니다.






아~~ 입을 크게 벌리고... 어느새 많이 먹었어요. ^^





음.. 어디에 남았지? 거진 다 먹은 옥수수 공이를 이리저리 돌려보며 더 먹을데가 없나.. 찾고 있습니다.






찾았나봅니다. 진지하게 끝까지 먹어주고는...






따뜻하게 웃습니다.

엄마, 이제 배부르다, 놀러가자~!
그래, 놀러가자^^

빨래도 다 삶아놨고, 저녁밥도 안쳐놨고... 엄마도 아이도 단 휴식을 마치고 기운을 차렸으니
이제는 다시 밖으로 나갈 시간입니다.
아까 보던 화단의 강아지풀, 달개비꽃은 잘 있었나 가봐야하고,
놀이터에 나올 동네친구들과 어울려 모래놀이도 해야합니다.
똑순이는 작은 다리가 지쳐 엄마품에 안기고 싶어질 때까지 열심히 걷고, 보고, 놀 것입니다.  
그러다보면 해가 질테고 집에 돌아와 모래묻은 몸을 씻고, 저녁을 먹고나면 스르르 잠이 몰려올 것입니다.

뜨거운 여름볕이 과일과 곡식과 함께 작디작은 우리 아이도 단단하게 키워줬습니다.
무더웠던 이 시절이 지나가는 것이 문득 아쉽고 고마워지는걸 보니 이제 여름도 끝날 때가 다 됐나 봅니다.


Posted by 연신내새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