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mma! 자란다2013. 2. 15. 23:59

 


 

바다 태어나면 쓸 속싸개와 기저귀를 빨아서 널어놓았더니

우리 큰형.. 속싸개를 저렇게 머리에 쓰고 무슨무슨파워맨이라며 온집안을 뛰어다녔다.

펄럭거리는 속싸개 자락을 보고 있자니 이 싸개를 두르고 생애 첫 날들을 보내게될 어리디 어린 갓난아기 생각이 나서 뭉클했다.

속싸개를 이렇게도 활용할 수 있다는걸 보여준 이제 여섯살이 된 우리 큰형에게도 감사. ^^


 


 


 

지난 설에 상주시댁에 다녀왔다.

명절 아침이면 우선 양촌큰댁에 가서 함께 제사를 지내고 우리집으로 와서 다시 우리집 제사를 지낸다.

양촌큰댁 마당에는 흰개가 살고, 뒷마당에는 젖소들이 많이 사는 우사가 있다.

지난 추석에 갔을 때는 이 흰개가 엄마가 된 직후라서 제 집에서 잘 나오지도 않았고, 경계심도 아주 많던 때라 우리도 가까이 가지 않았다.

새끼들은 그새 많이 자라 어딘가로 다 보내졌는지 보이지 않고, 엄마개만 우리 아이들을 보고 컹컹 짖고 뛰어다녔다.

먼머(개)를 참 좋아하는 연호는 제사 준비하고, 아침먹는 짬짬이 마당에 나와 개를 오래오래 바라보았다.

 



 

 


 

지난 추석에는 배탈이 나서 많이 보채고 울며 고생했던 연호가 이번 설에는 아주 씩씩하게 잘 웃고 잘 놀았다.

고맙다. 모처럼 아이들데리고 어른들 뵈러갈 때 아이들이 건강하고 또 어른들께 다정하게 대하면 엄마로서 그보다 다행스럽고 고마운게 없다.

자주 찾아뵙지 못해 늘 죄송한 시댁어른들께서 이번에 연호를 보시고 참 많이 좋아하셨다.

연호가 '하삐, 할미~' 부르며 잘 따르고 노니 아직도 친할아버지할머니를 살갑게 대하지못하는 연수를 보며 안타까운 마음이 조금은 풀리셨을 것 같다.

연수도 이번에는 할머니와 조근조근 얘기 잘 할 때도 있었고, 하루는 할머니 곁에서 잠도 자는 등 예전에 비하면 참 많이 자란 모습을 보여주었다. 여전히 제 뜻에 안 맞는다고 어른들앞에서 버럭 성내며 소리지르기도 했지만... 천천히 나아지겠지. 조금씩 자라다보면 어른들이 어떤 분들인지, 어떻게 행동하면 좋을지도 알게되겠지. 감사해하고, 잘 해드려야한다는 걸 아는 때가 오면 그때는 연수가 더이상 아이가 아닐까. ^^ 

 

지난 가을 김장할때 와서 뵙고 두달 넘도록 못 뵙다가 다시 뵌 아버님어버님은 이번 겨울 보내며 왠지 몸이 더 약해지신 것 같아 마음 아팠다.

한해한해 나이가 들어가시고 약해지시겠지.. 처음 결혼할때 뵜던 아버님어머님이 참 젊으셨었어서 나는 늘 두분을 그때 모습으로만 생각했는데 결혼 6년차에 접어든 올해에는 왠지 부쩍 나이가 들어보이고 살도 많이 빠지신 것 같았다.

내가 세 아이의 엄마가 되는 동안 두 분은 매일같이 힘든 일하며 생계를 꾸려나가시느라 얼마나 고되셨을까.. 더 잘 해드리고, 잘 모셔야할텐데.. 아직도 어린 아기들에 둘러싸여 허덕이는 큰며느리는 생각만 할뿐 뭐하나 제대로 힘이 못 되드리는 것이 죄송하다. 


 


 

 

 

 

어제 저녁에는 아이들에게 화를 많이 냈다.

연수 축구교실 갈 때부터 연호가 이런저런 고집을 부리며 많이 울어서 난감했었다.

그래도 어찌어찌 축구교실에는 잘 도착해서 형도 축구 잘 하고, 연호도 재미나게 잘 놀았다. 집에 오는 길에는 날이 따뜻해 눈쌓인 냇가옆길에서 아랫집 찬이네랑 신나게 눈놀이까지 잘 하고 들어왔다. 

그런데 집에 와서 연수랑 간식때문에 실갱이를 좀 했더니 왠지 마음에 힘이 갑자기 쭉 빠지면서 아이들의 계속되는 장난과 요구를 받아줄 여유가 바닥나 버렸다.


이제 20개월을 꽉 채우고 세살이 된 연호는 요즘 하고싶은 것도 많고, 궁금한 것도 많고, 할 수 있는 말도 많아졌다.

어른 눈에는 고집이고 떼 같아도 나름대로 제 힘껏 세상을 알아가고 제 뜻을 펼치며 자라보려고 애쓰는 중이다.

조금더 여유를 갖고 그 요구를 들어주고 함께 해줘야하는데 어제 저녁에는 그만 엄마가 마음이 너무 메말라져서 같이 놀자고 매달리는 연호를 계속 뿌리치고 저녁밥만 열심히 차렸다.

그 와중에 연수에게 야단도 치고, 연호에게도 야단치고.. 어찌어찌 밥하고 국끓이고 반찬까지 하나 새로 만들어서 밥상을 차렸더니 밥보다 사랑이 필요한 아이들은 그만 너무 많이 울고 화난 엄마 서슬에 주눅이 들어서 밥도 양껏 못 먹었다.

조금만더 놀면서 기다리면 아빠가 퇴근해 오고 그러면 아이들도 아빠랑 밥도 좀 더 제대로 먹고 치카하고 다정하게 놀다가 행복하게 잠들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그 30분을 버틸 마음이 안나서 그냥 '엄마는 잘꺼다'하고는 안방에 들어와 불끄고 먼저 누워버렸다.

아이들은 금새 엄마를 따라와서 엄마 옆에 나란히 누워 잠을 청했다.

연호는 엄마 젖을 빨며 한동안 서럽게 칭얼거리다 잠들었고, 연수는 엄마 머리맡에 와서 '엄마, 미안해..', '엄마, 내가 점심밥 제대로 안먹어서 미안해..' 하고 조용한 목소리로 사과를 여러번 하고, 나중에는 내 이마에 다정하게 뽀뽀까지 두 번이나 하고는 제 자리로 가서 가만히 이불덮고 누워 잠이 들었다.

아까 엄마가 연호 야단칠때는 '엄마, 연호한테 화내지마..'하고 얘기해줬던 연수.

두 아이들을 그렇게 재워놓고 나니 그제사 후회와 미안함이 밀려왔다.

 

지금 이 아이들 곁에는 나밖에 없다.

아침 일찍 출근해서 저녁에 아이들 잠든 뒤에 거의 퇴근하는 아빠는 아침에 잠깐 얼굴보고 주말에만 함께 놀 수 있는 사람.

이 어린 아이들이 하루종일 얼굴보고, 함께 놀고 기대고 장난치고

온 마음과 존재를 다해 의지할 수 있는 어른은 엄마인 나 뿐이다.

때로는 그 의존이 부담스럽고, 혼자 감당하기엔 벅차다 싶기도 하고

아이들에게도 내가 너무 절대적이어서, 그래서 내가 잘못하면 아이들도 고스란히 배우고

어제처럼 내가 화낼 때는 아이들이 잠시 도망가 숨거나 위로받을 다른 어른의 존재가 없다는 것이, 그래서 아이들이 엄마의 감정을 고스란히 다 받아내고 같이 겪으면서 눈치보는 순간도 생긴다는 것이 아이들에게 참 미안하다.

 


 


 

 

평소보다 일찍 퇴근한 남편에게 아이들이 혹시 깨면 뭔가 좀 먹여달라고 부탁한 후 혼자 한참동안 냇가길을 걷고 들어왔다.

걸으면서 지금 내가 가장 하고싶은 일은 내 아이들 곁을 오래오래 지켜주는 일이라는 생각을 했다.

아이들에게 따뜻한 밥을 챙겨주고, 같이 놀고,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을 오래오래 지켜봐주고 싶다.

셋째를 건강하게 잘 낳는 것, 그래서 세 아이와 지지고볶는 고단하고도 평범한 일상을 앞으로도 쭉 유지하는 것이 지금 내가 가장 간절하게 소망하는 것이다.

 

연수야 연호야, 부족한 엄마 곁에서 그래도 매일 밝게 웃고 장난치며 큰탈없이 자라주어서 정말 고맙다.

결점투성이의 엄마지만 너희들 곁에서 오래오래 사랑하며 같이 있을께. 그러니 불안해말고 마음 씩씩하게 먹고 잘 자라다오.

미안하다.. 고맙다... 우리 아이들.

사랑해.  

 

 

 

 

 

Posted by 연신내새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