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 해당되는 글 57건

  1. 2013.12.13 눈 오는 날 6
  2. 2013.12.06 생일 8
  3. 2013.09.02 여름과 가을 사이, 강릉 2
  4. 2013.08.01 무더위 10
  5. 2013.07.16 여름 풍경
  6. 2013.05.25 서울생활 1주일 보고 8
  7. 2013.05.15 외가집에서 보내는 날들 2
  8. 2013.02.20 바다와 엄마만의 시간 6
  9. 2013.01.04 강릉일기
  10. 2012.12.31 한해가 저무는 시간 2
하루2013. 12. 13. 00:06





어제도 눈이 오고, 오늘도 눈이 왔다. 

신난다. 
겨울은 역시 눈이 와야 제 맛이지~~!
얘들아, 얼른 옷 챙겨입고 나가자~!!! ^0^

여기까지는 펄펄한 아들들과 종일 집에서 엎치락뒤치락하는 마누라의 반응이고
미끄러운 길을 걸어 출퇴근해야하는 남편은 눈이 영 싫다. 
회사에 있다가 눈이 펑펑 오는 걸 보고 눈속에 애들에게 끌려나가 고생할 마누라가 걱정돼서 '애들데리고 나가 노느라 힘들겠다'고 문자도 보내왔다. 
에이, 자상한 사람 같으니라고~~^^
그치만 이 분이 살짝 까먹으신게 있다.
눈이 오면... 우리집에서 제일 좋아하는 사람은 애들이 아니라 바로 나라는 걸.
ㅋㅋ









눈 많은 강원도 시골에서 자란 나는 눈이 참 좋다.
지금도 눈 속에서 놀라면 몇 시간은 정말 신나게 놀 수 있는데
올해는 연제가 아직 어려 아기띠에 안고 있어야해서 애들과 맘껏 놀 수 없는게 아쉽다. 
그치만 이제 여섯살, 세살이 된 연수와 연호는 
엄마가 많이 놀아주지 못해도 자기들끼리, 혹은 저만의 방식으로 눈을 반기고 눈 속에서 즐겁게 잘 논다.

연호는 주로 먹고... 












연수는 눈으로 세수를 하고는 '엄마, 나 산타할아버지 같지~?ㅎㅎ' 한다. 

에구, 이 못 말리는 녀석들...^^;;;










오늘은 함박눈이 제법 많이 쏟아졌다.
예쁜 눈이 이렇게 오는데도 아파트 마당에 나와노는 애들이 없었다.ㅠㅠ
모두 추우니 어린이집이나 자기 집 안에 있는가...
가끔 초등학교 형아들만 귀가하다 눈싸움 조금 하는 모습이 보이고.. 

아이들은 놀면서 커야하는데..
추워도 좀 밖에서 뛰어놀고, 눈이나 비같은 자연의 귀한 선물들을 제 손으로 만져보고 맞아도 보며 생생한 몸의 감각을 깨우면 좋을텐데.. 
바람은 바람대로, 햇살은 햇살대로 또 얼마나 맞아보면 그 느낌이 좋은지.
얼마전에 바람이 아주 쌩쌩부는 날, 아이들과 아파트 다리에 서서 연을 날렸는데 연이 진짜 잘 날았다.
바람이 넘 세서 금방 집으로 철수했지만 나는 그 바람속을 뛰며 많이 웃어서 기분이 참 좋았다. 

살면서 행복을 느끼는 순간이 자주, 많이 있다는건 좋은 일일 것이다.
자연을 좋아하면 창밖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그 날의 하늘과 구름, 나무들을 바라보면서 행복해질 수 있다.
길을 걸으면서도 자신을 행복하게 해주는 많은 것들을 공짜로 누릴 수 있다.
돈이 들지 않는 행복..
돈도 안드는 놀이를 통해 나는 아이들과 그런 것을 찾고, 그런 감각을 일깨우고, 익숙해지고 싶다.


 









연수는 꼬마눈사람을 여럿 만들었다. 
연수꺼, 연호꺼, 엄마꺼... 왜 나 혼자만 만드냐고 투덜거렸지만, 
엄마는 애기동생을 안고있어 못 만들고, 연호는 아직 세살이라 만들줄 모르잖아.. 했더니 
동생들 것도 만들어주었다. 
눈이 계속 와서 주말에 아빠랑 눈썰매탈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연수 얘기를 밤에 퇴근한 아빠에게 전해주었더니 얼굴이 급 어두워지셨다. ㅎㅎ 


 






연제는 오늘 태어나 처음 눈을 맞아보았다.

집에서 창문열고 구경하거나 아기띠 안에 폭 싸여 바라보기만 하다가 

오늘은 처음으로 유모차밖으로 나와 눈도 맞아보고, 

잠시 정자에 담요깔고 앉혀놓았더니 금새 기어나와 손가락으로 눈을 만지작거렸다.

 


눈이 오니까 이제 본격적인 겨울이 시작된 것 같다.

춥고 긴 겨울을 애기들과 집에 갇혀 어찌보내나... 걱정이다.


앞에 써놓은 자연과 놀이 얘기가 민망하게시리 

밖에 한번도 못 나오는 날도 많을 것이다. 

애들이 감기 걸릴까봐, 혹은 내가 세 녀석 옷 챙겨입히고 안고 싸고해서 밖에 한번 나오는게 때론 넘 힘들어서 집안에서만 복닥거릴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도 눈이 오면.. 

그때는 아마 꼭 나오겠지. 

눈이 내리면 왠지 참 특별하고 행복한 세상을 살고있다는 느낌이 드니까.. 눈내린 세상의 차갑고 시원한 공기를 마시면 살아있는 기분이 드니까.


오늘 그 고마운 눈이 왔다.





Posted by 연신내새댁
하루2013. 12. 6. 21:53



아침에 연수가 일어나자마자 말했다.

"엄마! 생일 축하해~!!"

그리고는 신이 나서 소리를 지르며 집안을 뛰어다녔다.

"오늘이 엄마 생일이네~ 와~! 엄마 생일! 오늘은 크리스마스~~!! 엄마, 오늘 아빠 회사 가? 엄마, 나는 어린이집 가~?"


나는 화장실 변기에 앉아 이 요란뻑적지근한 축하를 받으며 말헀다.

"...물론 가지. ^^;;"


출근 준비중이던 남편도 "여보, 생일 축하해~!"하고는 

오늘 아빠 회사가냐고 묻는 아들에게 "그러게 말이다~ 엄마 생일은 크리스마스 급인데~!!^^" 했다.

  

그리고 남편은 손을 흔들며 출근했다.

저녁에는 회사 팀에서 가는 엠티가 있어 내일 점심께에나 집에 돌아올 터였다.


나는 똥싼 연제 엉덩이를 따뜻한 물로 씻기고 기저귀를 간 뒤 

잠투정삼아 엄마 품에 매달리는 연호를 소파에 앉아 한참 안아주었다.

한바탕 엄마 손을 거친 아이들이 모두 제 놀 것을 찾아 내 품을 떠난 후 부엌으로 가서 아이들 먹일 계란찜을 만들어 아침상을 차렸다. 

밥은 어젯밤에 수수를 넣고 안쳐둔 잡곡밥. 

미역국은 생략했다. ^^;;


고향에서는 생일에 팥을 넣고 찰밥을 해먹는데 팥 삶는 것도 그렇지만 냉동실에 재어놓는 깍은 밤도 마침 떨어졌고 

어젯밤에 다 준비하기는 버거웠던지라 

붉은 수수도 생일떡해서 먹는 귀한 곡식이니 수수밥이라도 짓자 하고 그것만 준비해놓고 잤었다.




 







남편이 끓여주는 미역국 같은 것은 바라지도 않는다. 

ㅋ~ 

결혼하고 여섯번 내 생일이 돌아오는 동안 남편이 미역국을 끓여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남편이 요리를 싫어하거나 아주 안하는 사람은 아닌데 아마 미역국 끓이는 것이 자기가 할 일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을 것이다. 

세상에 남편이 생일날 미역국 끓여주는걸 싫어하는 부인은 없을 것 같긴 하지만 

뭐 그래도 나는 그걸 바라진 않는다.


내가 바라는 것은 따로 있었다.

작년 생일 지나고 얼마 뒤였던 것 같다. 

그때도 생일 선물로 딱히 받고 싶은게 별로 없었던 내가 외출하다가 문득 생각나서 말한게 있었다.

"여보, 앞으로 내 생일에는 꽃을 사 줘. 꽃을 꼭 받았으면 좋겠어~" ^^  


아이들 키우며 별로 밖에 나가는 일이 없는 생활을 결혼후 줄곧 해온지라

크게 필요한 소지품도 없고

내가 좋아하는 책은 평소에 내가 자주 인터넷으로 사고 옷도 꼭 필요할 때나 어쩌다 한번씩 사니 

딱히 선물해달라 할게 없기도 했다. 


하지만 일년에 하루, 

딱 한번은 내 인생에 아주 곱고 풍성한 꽃 한다발을 선물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너무 거창한 꽃바구니 같은건 말고, 

꽃집에서 작은 꽃다발 하나 만들어서 당신이 들고 와주면 좋겠다고

그러면 그 꽃을 집에 꽃아두고 한동안 아주 흐뭇하게 아이들과 들여다보며 행복할 수 있을테니 

앞으로 내 생일에는 내가 말 안해도 꽃다발을 꼭 선물해달라고 했다.


일년이 지나는 동안 몇 번은 그 얘기를 했던 것 같다.

12월 달력이 등장하고 아이들이 엄마, 아빠 생일이 곧 온다며 좋아할 떄도 '꽃 꼭 사 와야돼~~' 하고 다시 강조해 놓았다.

그런데 정작 생일 다되서는 잊어버렸다.

세 아이와 지지고 볶는 깨소금같은 나날들에는 내 생일 기억하기도 쉽지 않다.

내일이 내 생일이라는 것도 

전날 강릉에서 언니가 생일선물로 따뜻한 내복을 사서 택배로 보내준 것을 받았을 때 고맙다고 통화하며 잠깐, 

또 친정엄마와 시어머니가 차례로 전화를 걸어오셔서 미리 생일을 축하해주셨을 때 또 잠깐 기억했을 뿐

저녁에 남편이 퇴근했을 때는 또 잊어버리고 있었다.


제일 졸려하던 연수부터 책읽어주며 재우고 나온 내게 남편이 핸드폰을 내밀었다.

"내가 당신 보여주려고 인증샷 찍어 왔어~"

뭔소린가.. 하며 들여다보니 컴컴한 밤거리에 셔터내린 가게가 보인다. 

'꽃뜨락'


잠깐 의아해하다가 알았다.

아. 우리 동네 꽃집. 

지하철에서 내려 집으로 걸어오는 길에 있는 작은 꽃가게.

거기 들려 내 생일선물로 꽃다발을 사오려했는데 문을 닫아 꽃은 못 샀고 

그 옆 순대국밥집에서 나는 구수한 냄새에 국밥 한그릇만 사먹고 왔다고

그래도 당신 좋아하는 순대는 사왔노라며 

남편이 계면쩍게 웃는데 

나는 그만 화가 났다.  


방금전까지 생일도, 꽃도 다 잊어버리고 아무 기대도 안하고 남편이 늦지않게 집에 온 걸보고 좋아하고 있었으면서도

갑자기 그 순간 서글프고 속이 상해졌다. 

"그렇지 뭐, 내가.. 내 팔자에 무슨 꽃다발을 받아보겠어.."

말이 너무 거칠게 나왔다.

남편이 당황해서 "아니, 가게가 문을 닫은걸 어떡해..." 하는데

"동네까지 오면 늦을텐데 회사 근처에서 미리 사던가.. 그 가게가 문을 닫았으면 다른데 갈 수도 있고!" 하고는 입을 다물었다.


그냥 꽃다발은 아니었다.

남편은 속마음은 자상하고 정도 많은 사람이지만  

그걸 세심하게 표현하거나 정성을 기울이는 일은 잘 못한다. 

꽃을 선물하는 일은 퍽 어색하고 쑥스러운 일이겠지.

연애할 때도, 결혼해서도 이벤트같은 것은 할 생각도 없고, 할 줄도 모른다.

왜 남자들에게만 그런걸 바라냐고 부당성을 지적하고 성토하는 목소리를 높이지만

정작 자기 부인이 바라는 것은 화려한 이벤트가 아니라 

정성이 깃든 손편지, 작지만 예쁜 꽃다발을 꽃배달 서비스가 아니라 직접 꽃집에서 꽃을 골라 소박하게 묶어서 들고와주는 것,

그 길에 자기도 흐뭇하게 웃으며 걸어와주는 것..

꽃을 선물해달라고 했던 내심에는 남편이 평소에 잘 못하는 그런 일을 

생일을 핑계삼아 한번 노력해보라는 

내 요구가 들어있었던 것이다.


아내가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왜 꽃을 선물해달라고 하는지 남편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잘 알고 그렇게 하려고도 했지만 

집앞 가게가 문을 닫은 상황이니 어쩔 수 없다, 는 현실적인 판단을 하는 사람과 

내가 결혼을 했을 뿐이다.


저녁 8시가 넘은 그 시간에 택시를 타고 다른 문 연 가게를 찾아보거나, 

내일이라도 꽃을 아내에게 선물해주려고 노력하거나,

미안한 마음을 담아 편지에 꽃을 그리거나, 

또 다른 어떤 노력을 하는 사람과

내가 결혼하지 않은 것이다.


아니, 그런 것들은 남편이 능숙하게 할 수 있는 일들이 아니다.

컴퓨터로 내가 원하는 가전제품이나 기타 여러 상품들을 찾아 주문하는 일은 

아무리 번거롭고 힘들어도 군말없이, 즐겁게 정성껏 척척 해내주는 사람이다.

내가 어렵고 귀찮아하는 일들을 그는 잘 해주고

나는 그가 어려워하는 일들, 마음을 쓰고 정성을 기울이고 글과 말로 표현하고 오래 생각하는 그런 일들을 좋아하고 즐겨한다. 

우리는 그런 면에서는 참 반대고

그게 때때로 나를 슬프고 속상하게 한다.









화는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졸려하는 아이들을 차례로 안방에 데려가 내 품에 안고 젖을 먹이고 팔베게를 해주며 재우는 사이에

마음은 천천히 가라앉았다.


남편은 그래도 기억했다.

기쁜 마음으로 꽃집으로 걸어갔고, 아내가 실망할 것에 마음도 아팠을 것이다.

좋아하는 순대를 맛있게 먹어주었으면.. 하며 까만 봉지를 손에 들고 걸어왔을 것이다.

하루종일 창문도 못 열만큼 안개와 미세먼지가 자욱해서

괴기스럽기까지 했던 도시에서 

종일 컴퓨터 앞에 꼼짝않고 앉아 머리에 쥐나게 일하다가 

밤이 되어서야 풀려나 아내와 아이들이 기다리는 따뜻한 집으로 부지런히 걸어 돌아온 남편이다.


결혼하고 6년을 사는 동안

때때로 마음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가 가라앉기를 몇차례 반복하면서 

내가 깨달은 것은 

지금 내 곁에 있는 것에 감사해야한다는 것이다.


엄마한테는 미운 구석만 보여서 저녁내 야단만 맞고 있던 여섯살 큰아들에게

어린 아가 대하듯 다정하게 하루의 안부를 물어주고 안아주고 뽀뽀하는 아빠, 

아내를 참 많이 사랑하고 늘 존경한다고 말해주는 남편, 

다정하고 유쾌하고 재치있어 함께 있으면 참 즐거운 친구이기도 한 사람과

결혼해서 예쁜 아이들 낳고 건강하게 키우며 살고 있는 것..

이 모든 것에 감사해야 한다.


아쉽고 속상한 것은 나만이 아닐 것이다.

남편이라고 내게 왜 섭섭한게 없을까... 

많겠지만 그는 늘 내게 화내지 않고, 탓하지 않는다.

감사하고, 기뻐하고, 좋아한다. 

나도 그래야겠다.. 

살다보면.. 우리는 서로가 바라는 사람들로 조금은 성장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래도 지금은. 우리가 함께 있는 지금

아이들과 함께 행복하게 웃으며 지지고볶으며 사는 지금을

감사해야겠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와서 

남편의 엠티 가방을 챙겨주고 

순대를 먹었다.

좀 식은 순대만 꾸역꾸역 먹으려니 목이 좀 메여서

냉장고에 맥주를 찾으니 없었다. 

쓰레기 분리수거함을 들고 나가 분리수거도 하고 맥주도 사왔다.

맥주야 열번이라도 사오겠지만 이 밤에 분리수거는 남편이 좋아하는 일이 아니다.

부엌 베란다에 쓰레기가 넘치면 낮에 그걸 쳐다보며 내내 괴로운 것은 나니 

얼른 내 손으로 해버리는게 정신건강에 이롭다.

맥주 홀짝이며 순대 소금찍어 먹으며 그날 온 '시사인'을 뒤적거려 읽으며 

노트북으로 영화보는 남편 옆에서 얘기도 좀 하다가

연제깨서 칭얼거리는 소리에 안방에 들어가 젖주며 나도 잠들었다.

그렇게 맞은 생일날 아침이었다.











아이들 모두 아침밥을 한그릇씩 잘 먹었다.

비록 제 손으로 먹는 녀석은 없고 세 녀석 모두 내 손으로 떠먹이는 것이지만(연수도 아직 몇 숟갈은 엄마가 거들어야한다ㅠ)

그래도 한 그릇씩 뚝딱 다 비운 것만 해도 고마워서 한마디 안 할 수가 없었다.


"야~~ 오늘 엄마 생일이라고 모두 밥도 잘 먹네~! 엄마 정말 좋다~ㅎㅎ" 



생일이라 그런가.. 

하루가 유난히 평화롭게 흘러갔다.

10시에 연수 어린이집 데려다주고 돌아와 연제는 바로 긴 아침낮잠에 빠져들었고

연호와 둘이 조용히 집 치우고 놀고 맛있는 간식도 먹고 나는 커피도 한잔 잘 마시는데 엄마 생각이 났다. 


우리 엄마.. 36년 전에 나를 낳고 이 아침 평화롭게 보내셨을까..

해뜰 무렵에 낳으셨다니까 밤새 진통하느라 얼마나 아프셨을까.

그래도 아이 낳고 나니까 아픈게 싹 없어져서 참 좋더마는 엄마도 그랬겠지..

다행히 올 봄에 연제를 자연출산으로 낳아봐서 나도 이제 엄마가 겪으셨을 출산의 시간들을 조금은 더 가깝게 느끼고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새벽 5시 반쯤에 연제를 낳고 나니까 정말 거짓말처럼 아프지도 않고, 너무 행복하고

연제를 옆에 눕혀놓고 잠자고 처음 미역국 먹고 하던 그 아침이 생각났다. 

브이백이라 걱정을 많이 하셨던 담당의사 선생님은 내가 병원 도착해서 세시간 만에 큰 어려움없이 건강하게 잘 출산한 것을 두고 '어머니께 감사드려야해요. 좋은 몸으로 낳아주셔서 고맙다고 엄마께 정말 감사드려요.' 하셨었다.

엄마도 내게 '너는 나 닮아 쉽게 잘 낳을 수 있을거야, 내가 너희들 다 그렇게 힘들지 않게 낳았잖니..'하는 얘길 많이 하셔서 나도 믿고 있었다. 

엄마를, 그리고 엄마의 딸인 나를..

멀리서 마음으로 엄마와 엄마가 나를 낳던 날, 그리고 힘들게 기쁘게 키워주셨을 많은 순간들을 생각하며 혼자 뭉클했다.

셋째를 낳고 맞은 생일이라 그런가... 엄마 생각이 더 애틋했다.









연제 일어난 뒤에 같이 점심 먹는데 역시 또 두 애 다 밥을 잘 먹는다. 맨날 생일해야겠다. ㅋ


2시에 연수 돌아오고는 아이들 목욕하는 사이에 한살림 배송이 왔다.

주문할 때는 생일이 또 기억나서 작은 케이크를 하나 시켜놓았었다. 

세 아이와 같이 촛불을 밝히고 조촐하게 생일파티를 했다. 

큰 아이 둘이 노래 불러주고, 촛불도 저희들이 다 끄고, 연수는 오늘 못 오는 아빠 대신 사진을 찍어주었다.

아이들하고 나만 해도 넷, 연수가 사진찍는다고 빠져도 사진에 나랑 연호, 연제 셋이 찍힌다. 

참... 우리 식구 많다. ^^ 

식구가 많은게 나는 좋다. 우리끼리만 있어도 이 역할, 저 역할 다 할 수 있고 서로 보듬고 같이 할 수 있는게 많다.



엄마 생일이라고 연호는 제 놀잇감중에 초록색 버스를 내게 선물로 주고, 

연수는 우리집에 있는 한자글씨 액자를 보고 따라쓴 그림(?)도 주고, 제 로보트 색칠놀이 한장을 찢어 엄마 칠하라며 주고(괜찮은데..ㅜㅜ)

저녁에는 사과나무와 하트를 여러개 그린 예쁜 그림도 또 선물로 그려주었다. ^^

손수 테이프도 정성껏 발라 거실벽에 붙여주기에 사진 한장 찍어두었다.

연제는.. 처음으로 혼자 힘으로 거실 소파를 붙잡고 일어서는 선물을 주었다. ㅎㅎ

어제까지만 해도 혼자 뭔가 잡고 일어서는 것은 어려워했었는데 

엄마 생일이라 진짜 큰 맘 먹었는지 오전부터 낮은 놀이감들부터 붙잡고 일어서기 시작하더니

저녁 무렵엔 꽤 높은 거실 소파를 붙잡고 혼자 번쩍번쩍 일어섰다. 

와...... 고맙다. 

모두모두.

^^









서른여섯살 생일.

참 행복하게 잘 보냈다.

울고 매달리는 아이들을 따뜻하게 많이 많이 안아주고, 한번도 화내지 않았던 참 드문 날이었다. 

내 생일이라 내 마음도 무척 귀해져 있었나보다.

일년 삼백예순다섯날을 모두 생일처럼 살 순 없겠지만

오늘 이 평화롭고 고마웠던 마음의 여운을 자주 기억하고 음미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Posted by 연신내새댁
하루2013. 9. 2. 00:45






8월의 마지막 한 주를 아이들과 강릉 친정에 가서 보내고 왔다.
여름에서 가을로 계절이 바뀌는 시점에.

시작하기 전부터 겁을 엄청 냈던 여름이었다.
잘 지낼 수 있을까.. 젖먹이 신생아와 기운찬 여섯살, 세살 세 아이를 데리고 어떻게 무사히 지낼 수 있을까.. 
너무 겁을 냈더랬다.

그래서 한학기 신나게 유치원 잘 다니고 여름방학을 맞은 연수를 숨돌릴 틈도 주지않고 아파트 안에 있는 어린이집에 보내며 많이 미안해하고 내내 마음 졸였던 여름이었다. 
큰 형님이 잠시 집을 비운 한낮, 어린 아이 둘과 내가 조용히 점심 챙겨먹고 두어시간 깊은 낮잠을 자며 한숨 돌릴 수 있었던 것은 
이번 여름을 그래도 비교적 수월하게 보낼 수 있게 해준 아주 현실적인 대책이기는 했다.
다만 연수가 너무 쉴 시간없이 새로운 공간에 또 적응하고, 너무 많은 자극을 받고, 엄마 곁에서 좀 푸근하고 여유로운 시간을 가지지 못한다는 것이 미안하고 걱정스러웠다. 

다섯살까지 집에서만 지내며 연수 나름대로 많은 에너지를 안으로 충전하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여섯살되고 동생이 둘이 되면서부터는 너무 집밖에서 오래, 엄마에게서 저 혼자만 뚝 떨어져 지내게 하고 있다. 
연수는 다행히 새 어린이집에도 씩씩하게 잘 다녔고 새로운 친구와 배움들에 호기심도 많고 적극적이지만, 나는 쉬지 못하는 연수가 많이 안쓰러웠다. 
그러면서도 세 녀석이 한꺼번에 엄마를 찾는 시간이 되면 힘들어서 연수에게 제일 많이 인상쓰고 밀쳐내며 살았다.  
여름이 깊어갈 수록 연수도, 나도 지쳐갔다. 
몸이 편하면 그만큼 마음이 불편하다. 
힘들더라도 함께 지낼껄.. 엄마 곁에서, 동생들과 함께 푹 쉬고 마음껏 놀고 유치원으로 돌아가게 할껄... 
꼼수부린 것이 후회스럽고 속상해서 여름 보내기가 참 힘들었다. 
잘 웃고 잘 놀았지만 여름감기도 앓고 어린 몸으로 더운 날들을 살아내느라 연호와 연제도 힘들었으리라. 

연수의 어린이집과 유치원 고민, 집 이사 고민, 아이들을 키우는 내 육아의 문제들... 
이번 여름에 한꺼번에 집중적으로 몰려왔던 여러가지 일들은 결국 모두 나에게서 비롯된 것으로 
내 과거와 현재, 미래를 모두 놓고 돌아보고 반성하고 두려워하고 망설이며 고민하게 했다.
결정할 시일이 정해져있는 일들이었으므로 모두 어찌어찌 결론은 났다. 
어쨌든 결론은 났으므로 마음 한켠은 시원했지만 내 삶을 두고, 내 생각과 태도, 자세같은 것들과 이후의 삶까지 생각해봐야할 것들은 더 많이 생겨난 시간이었다.
 
뜨거운 날들이 그렇게 흘러가고 막바지 늦더위도 힘이 좀 빠진다 싶을때쯤 
그 때서야 강릉에 갈 수 있었다. 
다정한 외가어른들과 시원한 바다가 있는 강릉은 
힘든 여름 내내 우리에게 구원처럼 존재하고 있었지만
내가 부린 꼼수였던 어린이집과 이런저런 일들의 일정상 8월의 맨 끝에, 여름의 제일 끝자락에야 강릉에 내려갔다.

연호가 딱 연제만 하던 2년 전 겨울 어느맘때 
그때는 두 아이 키우는 일이 어려워서 쩔쩔매던 때인데
그 때 어느날 드디어 강릉으로 출발하게 되어 두 아이 카시트 앉히고 트렁크에 짐을 잔뜩 싣고 우리집 주차장을 빠져나올 때
서걱거리는 손에 핸드크림을 바르며 '휴..'하고 비로소 길게 한숨이 쉬어지던 때가 있었다.
드디어 출발했구나, 오래 기다렸던 휴식의 시간이, 지상에서 내가 가장 마음 편하게 기대어 쉴 수 있는 공간으로 이제 가는구나... 하는 생각에 안도의 한숨이 터져나왔었다. 
핸드크림 바를 정신도 생기고..
너무 거친 손을 보면 엄마아빠가 마음 아파하실까봐
외갓집에 간다고 좋아하는 아이들을 카시트에 앉혀놓고 드디어 내 두 손이 다 자유로워졌을 때 
그 때서야 기저귀가방 주머니에 늘 넣어가지고만 다니고 좀처럼 발라볼 짬이 없었던 핸드크림을 많이 짜서 천천히, 구석구석 바르던 순간은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세 아이를 데리고, 
지친 몸과 마음을 좁은 차안이지만 편안하게 풀어놓고 강릉으로 향했다.
이 부족한 엄마 곁에서도 그래도 웃으며 잘 놀아주고
아픈 것도 어린 몸으로 견디고 이겨내준 세 아이를 데리고
언제나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는 남편이 운전해주는 차에 타고 
고향집 가는 길은 기뻤다.
내가 안고 사는 고민은 고민이고, 어려운 것은 어려운 것이지만 
그래도 엄마, 아빠, 할머니, 언니.. 그리운 이들에게로 향하는 그 순간만큼은 근심걱정 다 잊고 행복해질 수 있었다.



















강릉에서 보낸 일주일 동안 아이들은 정말 잘 뛰어놀았고 나도 참 잘 쉬었다.

외가집 마당에 펼쳐놓은 물놀이장을 몇번씩 들락거린 더운 날도 있었고, 

아빠와 함께 경포바다에 가서 올여름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해수욕을 하기도 했다.

아이들은 할아버지를 따라 논으로 다니고, 할머니와 함께 밭에 배추모종과 무씨도 심었다.

경포 호수가를 신나게 뛰어보고, 소나무숲속 까페에도 여러번 다녀왔다.

일주일 사이에 아이들이 모두 물씬 큰 것같다.


우리는 오늘 서울로 돌아왔다.

고단했던지 아이들 모두 일찍 잠들었고, 연호는 자다깨서 좀 울기도 했다.

강릉 사진들을 블로그에 정리했다. 이번주에는 그 얘기를 하나씩 써야지.


엄마가 해주시는 밥을 먹고, 아버지 곁에서 차를 마시고, 고향집 마당과 논길을 오고가는 동안

조금씩 힘이 충전되는 것이 느껴졌다. 

여러날 만에 처음으로 마음이 편해졌다. 

여름이 끝나고 가을이 왔다. 

상처만 남은 것 같은 여름이지만 그 여름 사이에도 우리는 자랐으리라.

상처가 우리에게 남긴 가르침이 무엇인지 차분히 짚어보는 가을을 살아야겠다.







 





Posted by 연신내새댁
하루2013. 8. 1. 21:00


밤에도 무더운 열대야가 시작되었다.

오늘 낮에는 어찌나 더운지 아이들이 모두 낮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덕분에 세 녀석 모두 8시 무렵에 기진맥진해 곯아떨어졌다.

제일 늦게 잠든 연수가 나와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다 잠든게 8시 반.

집에 있는 문이란 문은 모두 열어놓고 조금이라도 시원한 밤바람이 들어와주기를 바라고 있는터라 

아이들이 깰까봐 조용조용 어질러진 집을 정리하는데 등줄기에서 땀이 흘렀다.

오늘따라 연수가 무슨 마트놀이를 한다고 연호랑 둘이 장난감을 있는대로 거실에 늘어놓아서 혼자 왔다갔다하며 치우는데 30분은 족히 걸린 것 같다.ㅠ

그래도 둘이 그러고 신나게 노는 사이에 잠시 나는 연제 젖먹이며 집에 오는 시사주간지를 훑어보는 여유도 누리긴 했다. 

연제 젖먹여 재우며 책을 읽으니 잠깐 더위도 잊혀지고 그 사이 해도 많이 떨어져서 그 뒤엔 아이들과 과일 좀 챙겨먹고 놀이터에 다녀오기도 했다.


휴.... 덥다.

에어컨 좀 틀면 시원할텐데 괜히 애들 고생시킨다 싶기도 하지만 더위도 겪어보고, 추위도 좀 겪으면서 자라고 여물고 하는 거라고 생각하는 엄마 때문에 울 꼬맹이들 땀 깨나 흘린다.

연수가 엊그제부터 기침을 좀 콜록하고 연호도 이따금 기침을 해서 사실 에어컨을 틀기도 그렇다. 

그리고 나는 왜 선풍기도 끄고 나야 밖에서 불어들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그제야 느껴지는 것 같을까.

고요하고 덥고.. 그럴 때 불어오는 가느다란 한 줄기 바람의 시원함. 그 맛이 좋다. 


그동안은 덥다해도 긴 장마 속이라 비오면 좀 시원해지고, 밤으로는 또 서늘해서 문 열고 자다가 한밤중에 추워 닫고 자곤 했다.

아직도 비는 더 올 것 같지만 그래도 지금부터 8월 15일께까지, 

절기로는 입추가 들어있지만 그래도 한 보름은 넘게 이제 불볕더위의 날들일 것이다.

이 날들을 우리는 꼬박 서울에서, 세 아이와 꼭 붙어서 살아내야 한다. 왠지 비장한 결의가 선다.ㅜ 

그 뒤엔 강릉에 갈 거니까.. 그러니까 그 일주일간의 휴가 전까지.. 잘 버텨야지.

강릉에서 돌아올 때쯤, 처서쯤 가면 열대야는 끝날까.. 절기는 참 신기하게도 잘 맞지만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의 시대에는 그마저도 흔들릴까봐 두렵다. 


오늘 저녁에는 입맛없는 애들에게 맛있는 것도 해줄겸, 주말에 먹었던 크림스파게티 재료들의 유통기한이 낼까지인 것도 생각나서 스파게티를 만들었다.

놀이터에서 뜨거워진 애들을 욕조에 물받아 집어넣어놓고 

연제 업은 채로 야채썰고 면삶고 볶고 지지고.. 하는데 날은 덥고 연제는 울고.. 아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중간에 애들 씻겨 내놓았더니 배고프다고 빨리 달라고 아우성이고, 젖먹여 눕혀놓은 연제는 빨딱 뒤집고는 비오듯 땀을 흘리며 힘들다고 앙앙 울고... 

그 와중에도 스파게티 소스를 휘저으며 이게 참 뭐하는 짓인고... 싶었지만 

다행히 오늘은 폭발 일보직전에서 몇 번 참고 위기의 순간들을 그럭저럭 넘겨서

평화롭게..... 평화롭게... 세 녀석 데리고 앉아 크림소스 스파게티를 식빵 찍어가며 맛있게 먹었다.

정신없이 만들었어도 맛은 아주 좋았다.

애들도 잘 먹고, 나도 잘 먹고.. 연제도 수유쿠션에 누워 '오늘 젖은 크림맛이네~~'하며 먹었을 것이다. ㅎㅎ


어찌어찌 울며 구르며 지나가는 이 여름도 언젠가는 끝날 것이다.

어린 것들은 한번이라도 더 엄마 살에 제 살을 붙여보려고 다투어 매달리고

어제는 하루동안 흘린 땀을 씻지 못하고 잔 덕분에 머리속에 땀띠가 돋았다.

오늘도 오후부터 쌓인 설겆이거리가 개수대에 가득하다못해 넘치고 있지만

더워서 문도 못 닫는데 설겆이 소리에 애들 깰까봐, 애들깨면 봐달라고 부탁할 수 있게 야근하는 남편이라도 돌아오고 나면 그때 설겆이도 하고 시원하게 목욕도 해야지...

하는 핑계를 대고 이렇게 블로그를 쓰고 있다. 

글 쓰는 것도 덥다... ㅜ


연호가 연제만 했던 시절이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벌써 잘 기억나지 않는 것처럼

지금 이 날들도 금방 지나가고, 금방 잊혀질 것이다.

연호 태어나 5개월 무렵은 겨울이었을텐데 그 겨울을 우리가 어찌 보냈더라.. 궁금하고 그립다. 

그런 것이다. 연제와 함께 보내는 이 뜨거운 첫 날들도 그렇게 그리워질 것이다.

그래서 적어놓는다. 아이들하고 나하고 남편하고 이렇게 살았다고.. 나중에 알 수 있게. 

5개월을 꼭 채운 연제는 정말 예쁘다. 젖살이 통통하게 올랐고 되뒤집기를 해보려다 뱅글뱅글 도는 모습도 얼마나 기특하고 귀여운지 모른다.

26개월 연호도 너무 예쁜 시절이고, 너무 화만 내고 야단만 자꾸 치게돼서 미안하면서도 보고있으면 성질나는 장난꾸러기 연수도 아직은 어리고 귀여운 여섯살이다.


더운 여름, 집에서 지지고 볶는 평일 하루는 이렇게 지나갔고, 

어느 주말 하루는 아이들이 고대하던 물놀이를 다녀오기도 했다.

튜브도 장만하고, 그늘막용 작은 텐트까지 하나 장만해서 엄마는 그 안에서 연제 젖도 먹이고 

강바람 맞으며 우리 가족의 첫 텐트 안에 누워 하늘에 구름을 바라보던 행복한 시간도 있었다.

그러니까 너무 툴툴대지 말고 살아야지.. 성질나더라도 참고..ㅠ

우리들의 여름이 이렇게 가고 있다.


















    

Posted by 연신내새댁
하루2013. 7. 16. 00:29






한참만에 블로그를 쓴다.
서울은 장마의 한복판에 들어왔는지 연일 비가 주룩주룩...
엄마는 집안 곳곳에 그득한 빨래가 안 말라 걱정이고, 세 녀석 먹이고 씻기느라 온몸이 땀과 물로 흠뻑 젖어 꿉꿉한데
아이들은 장마비 맞고 크는 여름풀들처럼 비속에도 쑥쑥 잘 자란다. 

밤으론 제법 서늘한터라 어디 문 하나 열고자면 다음날 세 녀석 다 콧물이 훌쩍하긴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잘 뛰어놀고 장난치고 웃으며 하루를 땀나게 보낸다. 
다행이다.
크게 아프지 않고, 성질난 엄마한테 고래고래 야단을 맞아도 돌아서면 또 헤헤 웃고 매달리고.. 저들끼리 투닥거리기도 하지만 같이 깔깔거리고 웃는 때가 더 많아서..
다행이고 고맙다.
이렇게 조용한 밤에 글을 쓸 때는 모든 것이 다 고맙고 또 다행스러운 것 뿐인데
낮에 아이들과 지지고 볶을 때는 왜그리 화가 나고 답답하고 힘들었을꼬....ㅠㅠㅠㅠ
온갖 개구진 장난과 고집과 말썽으로 엄마를 폭발하게 했던 꼬맹이 녀석들! 
미안하다.. 
내일은 엄마도 좀 덜 버럭거릴테니 너희들도 조금만 더 얌전하게 지내주렴.
그렇게 우리 이 여름을 무사히 잘 살아내자. 
  
 
여름 초입부터 지금까지 아이들 사진 찍은 것들을 쭉 모았다.
초여름부터 장마까지 수호제 삼형제의 여름풍경. 








개구장이 김연호, 부쩍 컸어요~!
6월에 두 돌을 지내며 연호가 정말 쑥~~~ 컸다. 
이제는 낮에는 기저귀도 떼고, 하는 행동도 날로 야무져지는데 그와 함께 장난과 고집도 날로날로 심해져서 엄마가 요즘 쩔쩔매고 있다.ㅠ

놀이터에서 요렇게 매달리는걸 '휘청휘청'이라고 부르는 연호.
"엄마, 노~피(그네) 타러 가자!" 하고 손을 끌고 나서서는 그네에 앉으면 "노~~피, 더 노~~~피!"를 외친다.
 









비가 오면 "엄마, 우산 쓰고 상큼상큼 가자~"하고, 물이 고여있으면 "웅덩이다~!"하고 첨벙 뛰어드는 연호.
보고 배운게 있는지라 어린데도 참 잘 논다.  
형아 유치원 가있는 동안 엄마랑 동생이랑 셋이 산책나가서 신나게 놀 때 보면 꼭 어릴때 연수 보는 것 같다. 
이제는 제법 형아랑 대화(?)도 되고, 꿍짝도 잘 맞아서 둘이 놀기도 잘 놀고, 형아가 하는 말과 행동은 모두 그대로 따라한다.
형아가 집에 있으면 형아 뒤만 따라다니는... '마음은 김연수, 몸은 김연호". ㅎㅎ










요즘 내가 제일로 예뻐하는 이 분..^^
형아들 보고있으면 굳은 인상이 펴지질 않는데
연제를 보면 그나마 요 말랑말랑 포동포동한 살결에 볼을 부비면서 엄마도 마음을 풀고 웃게 된다.
그래... 네가 이렇게 해주려고 엄마한테 왔구나.
아직은 아가인 네가 있어 엄마 마음이 또 위로를 받는구나.. 











"아가, 책 가치~"하며 연제 앞에 책 들고앉은 연호.

연제도 요즘 형아들 구경하는걸 좋아해서 가끔 형아들한테 눈맞추며 벙글벙글 웃는데 그러면 연수랑 연호랑 엄청 좋아한다.
연수도, 연호도 우리집에서 연제가 제일로 좋단다.
연수는 연제 다음으로 엄마가 좋고, 연호는 연제 다음으로 형아가 좋다고~^^;; 











집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상일동산 물놀이장.
물놀이장 바로 옆이 낮은 산이고 나무 데크도 잘 해놓아서 나는 데크에 돗자리깔고 연제데리고 앉아있고 
아이들은 아빠랑 작은 물놀이장이지만 신나게 놀았다.
막둥이가 어려 올해는 어디 멀리 놀러가기는 어렵지만 집가까이, 짧게 두어시간이라도 이렇게 나가볼 수 있으니 참 좋다. 
고맙다.










메롱~^^

아빠가 연호랑 그림책을 보다가 튜브가 나온걸 보고 물었다.
"연호야, 이게 뭐지?"(당연히 알거라고 생각했나..?)
연호 대답은.. "젖베게!"
ㅎㅎㅎㅎ

연호야, 세살 여름이 다 가기전에 꼭 튜브 한번 태워줄께...! ^^












전세계적인 '강남스타일' 열풍이 다 지나간 뒤에.. 
우리집에는 뒤늦게 강남스타일 바람이 불었다. 
연수가 유치원에서 어느 친구가 부른걸 듣고 와서는 "오빤 강남스타일~"하며 겅중거리는데 옆에서 연호가 썬글라스끼고 장단을 맞춘다.
연호.. 썬글라스가 은근 잘 어울린다. 누군가를 연상시킨다고 아빠엄마는 뒤에서 수군수군..^^











우비 소년.
아직 제 또래들은 엄마 품에 안겨 같이 우산쓰고 다니기가 쉬운데
동생한테 엄마 품을 내준 연호는 벌써 혼자 우비입고 앞장서서 걸어간다.
"엄마, 비옷입고 상큼상큼?"
자주 창문에 붙어서서 밖을 구경하는 연호는 저도 나가고 싶어 묻고 또 묻는다. 
어린 동생데리고 자주 나갈 수 없는 엄마는 '그래, 좀있다 아가 깨면 같이 나가자, 좀있다 형아오면 같이 나가자..' 달랜다.
드디어 엄마의 '나가자!' 소리가 떨어지면 너무 좋아서 제 신발 챙겨신고 비옷 들고 와서 얼른 입혀달라고 조르는 연호.










장대비가 한번 쏟아지고 나면 인공하천인 집 옆 냇물은 엄청나게 불어나곤 한다. 
또 금새 물이 빠지긴 하지만.. 
아이들과 내려가서 거센 물결을 보고 있으면 
우리 곁에 있는 작은 자연이지만 그 안에 담긴 큰 힘이 느껴진다.











"형아, 같이 가~!" 
연호가 연수 부르며 뛰어간다. 
여섯살 연수.. 참 빠르기도 하지. 곧 엄마보다 더 빨리 뛰게 되겠지?
아가동생 업고 엄마가 느릿느릿 걸어가는 동안 내 첫 아이와 둘째 아이는 바람처럼 씽씽 내 앞으로 달려간다.
자라는 것도 그렇겠지. 
지금은 너무도 느린 것 같지만.. 화살처럼 빨리 이 날들은 우리를 지나가겠지.











고우니 미우니 해도 연수도 연호를 잘 챙겨준다.

연제 안고있는 엄마대신 가끔 연수가 연호 그네 밀어준다.

집안에서 놀 때는 엄마가 바쁘면 으레 연호는 형아 따라다니며 놀고, 연수도 어린 동생을 답답해할 때도 있지만 그럭저럭 가르쳐가며 같이 논다. '둘이 같이'라는 것이 좋다는 것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얼마후에는 '셋이 같이'가 되겠지.. 

엄마는 아이 셋을 데리고 늘 힘에 부쳐 버벅거리지만.. 너희들끼리는 그렇게 조금씩 더 위해주고, 아껴주고, 같이 노는 즐거움을 알아가면서 잘 지내주렴. 

아이 셋을 낳고 나의 육아는 점점 더 형편없어지고 있는 것 같지만(더 자주 화를 내고, 더 조금밖에 못 놀아주고ㅜ) 그 큰 구멍을 부디 너희들이 어린 아이 특유의 보드랍고 따뜻한 성정과 서로에 대한 애정으로 메워주길... 부족한 엄마는 빌고있단다. 











주말에 한번씩 들러보는 가래여울 우리 텃밭 근처의 한강.
우리 텃밭은... 강일동 인근 지역 나비들과 여러 곤충들과 새들의 좋은 서식지가 되고 있다...ㅋ 
그래도 몇차례 오셔서 손봐주신 이모님 덕분에 상추는 맛있게 많이 먹었지만 다른 작물들은 모두~~~ ^^; 










연호 아기띠해서 안고 연수 혼자 이 강가에서 모래성 쌓는걸 지켜보던 때가 금방인 것 같은데
어느새 연호가 저만큼 커서 형아 따라 저도 모래성을 만들어본다.
연제는 아빠가 텃밭앞 느티나무 그늘에서 아기띠해서 안고 재우고
나 혼자 두 아이 데리고 오랫만에 강가에 가보았다.









연수가 만들어두고 온 모래성.

장마비 속에 잘 있니? 모습은 허물어졌어도 고운 진흙, 둥근 조약돌들은 강물속에 여전히 누워있겠지.

비 그치고 여름이 깊어가면 우리 아이들 데리고 또 찾아갈께.

이 강가에 시원한 가을이 올 때까지, 억새가 눈부시고 하늘이 쨍하게 푸르러질 그 때까지..

아이들도, 나도, 조약돌들도 모두 잘 지내자. 






Posted by 연신내새댁
하루2013. 5. 25. 23:47







지난 주말 강릉 친정을 떠나올 때
어른들께서는 이제 서울가서 나 혼자 아이들 셋 데리고 지낼 일을 생각하며 무척이나 걱정하셨다.

언제나 나를 응원해주시고 깊이 믿어주시는 아빠는 '잘 지낼 수 있을거다.. 자기 새끼는 본래 굴려서라도 다 키우게 돼있는 법이란다. 우리 욱이는 잘 할꺼다' 하시면서도 '도우미아주머니 도움도 좀 받고 해서 너무 힘들지 않게 지내라..'고 여러번 당부하셨다. 
엄마는 아이들 밥먹일 때마다 '아이고.. 너 혼자서 이 애들을 어떻게 밥먹이며 지내냐..'하고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셨다. 그도 그럴것이 연수, 연호가 워낙 밥먹다 딴짓을 많이 해서 밥 한그릇 다 먹이려면 시간이 엄청 걸리고 먹이는 사람이 무척 지치기 때문이다. 무튼 밥뿐만 아니라 팔팔한 세 녀석 따라다니며 건사하려면 얼마나 힘들까.. 싶어 엄마는 내가 올라갈 날이 다가올수록 얼굴에 걱정이 깊어지더니 며칠은 요리안해도 먹고살만큼 국에 반찬에 떡에 양념에.. 차에 더 실을 데가 없을만큼 싸주고도 결국 우리가 떠나는 순간에는 걱정되고 안쓰럽고 애틋해서 눈물을 펑펑 쏟고 말았다.
강릉집에서 지내는동안 틈나는대로 연제를 안아주고 얼러주며 봐주셨던 할머니도 걱정어린 따뜻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네가 어련히 알아서 잘 하고 지낼텐데.. 내가 괜히 걱정이 되는구나.. 잘지내라..'하셨다.    

토일월화수목금.
꼭 일주일 살았다. 
엄마아빠할머니께 잘 지냈다고 말씀드려야겠다.
막내딸과 그의 꼬맹이 세 아들들 소리로 왁자지껄하고 정신없었던 고향집이 조용해진 이후, 
세 분이 둘러앉아 식사하실 때마다, 마당에서 조용히 커피드실 때마다 
'욱이는 잘 있나.. 연수연호연제는 잘 있나..' 걱정하셨을 세 분꼐.



월요일부터 연수는 다시 유치원에 갔다. 
이제부터는 엄마 대신 아빠가 아침에 출근하면서 데려다주고 집에 올때는 가까운 아파트 단지에 사는 엄마 세명이 돌아가며 태워다주기로 했다.
아빠와 함께 아침8시에 일찍 연수가 집을 나서고 나면 그때부터는 집이 무척 조용해졌다.
큰 아이가 내뿜는 에너지가 얼마나 큰지 제일 큰 형아가 나가고 어린 두 동생만 남은 집은 그야말로 고요한 절간같다.
연제 젖먹여 재워놓고 연호와 조용히 놀면서 집안일하고, 그러다 연제 업고 연호 세발자전거 태워 아파트 산책 한바퀴 돌고오면 오전이 다 가있다.
연제가 요즘 제 손을 잘 빨게 되어서 젖 많이 먹인 후에 눕혀놓거나 바운서에 앉혀놓으면 한참씩 손빨며 잘 논다.
그 때 연호랑 점심 후딱 차려먹는다.
그리곤 누워서 연제 젖주면서 연호도 옆에 눕혀놓고 그림책 읽어주며 낮잠을 재운다.
한참 뒹굴거리던 연호까지 잠들면 곤히 자는 두 아이 곁에서 나도 드디어 허리 펴고 잠시 휴식이다... 
그렇게 조금 쉬다보면 어느새 오후 서너시가 되고 유치원 끝나고 함께 차태워주는 형아랑 놀이터에서 더 놀기까지한 연수가 떠들썩하게 들어온다. 
연수 씻기고 간식도 차려주고, 동생들과 같이 좀 먹고 쉬다가 오후5시쯤되면 이제 애들 셋데리고 놀이터로 출동!
연제는 모비랩으로 싸안아 재우며 연호 자전거 뒤에서 밀어주며 놀이터에 가면 반가운 이웃들이 있다. 
한시간 남짓 놀다가 들어와 연제는 안은채로 후다닥 연수연호 손발 씻기고, 저녁도 미리 준비해둔 반찬들로 후딱후딱 먹이고, 치카치카까지 끝내고나면 드디어 취침!
엄마가 눈썹을 휘날리며 이 모든 일을 다 하는 동안 우리 순둥이 셋째는 엄마 품에 모비랩으로 꼭 싸인채로 자고 또 자거나 아니면 수유쿠션에 누워 엄마 젖을 먹으며 잘 있어 주었다. 그런 순간에는 아빠빼고 네 식구가 모두 같이 밥먹는 셈이다. 나도 애들 먹이며 부지런히 내 입에도 밥을 떠넣고, 연제는 부지런히 엄마 젖을 빨고...^^
다행히 밖에서 많이 놀아 고단해진 두 형아는 모처럼 켜진 티비앞에서 만화보며 부지런히 밥을 잘 받아먹는다. 배도 고플테지.. 그리 뛰어놀았으니.ㅠ 좋기도 하겠지.. 티비 앞에 밥상이 차려지니~;; 
참 이렇게 안하고 싶지만 지금은 비상상황이니 조금만 지나가자.... 하는 마음으로 티비 앞에서 부지런히 아이들 입에 밥숟갈 떠넣는다. 
지난 주에는 아빠가 회사일이 많아 5일 내내 야근을 했다. 
나 혼자 애들 저녁먹이고 양치시켜 재우자니 정말로 눈썹이 휘날리게 뛰어야하는데, 젖먹이 셋째까지 데리고 또 내 밥도 먹어야하니 티비한테라도 기대고 싶어진다. 손이 부족한 집에서는 티비도 어른 한명 구실을 하고, 떄로는 거실 창가에 날아오는 비둘기가 내 대신 애들을 봐주기도 한다.    
부지런히, 하지만 닦달하기보다는 그저 조용히 물흐르듯이 하나씩 일을 해가고 싶은 것이 내 바램인데 현실은 아직 좀 멀었지만 
그래도 어찌어찌 화내지않고 저녁시간이 잘 마무리된 뒤에 잠자리펴서 아이들 눕히는 시간이 8시. 
낮잠도 안자고 종일 뛰어논 연수가 제일 먼저 잠들고 그다음 젖빨던 연제가 잠들고... 그 다음 연호는 그림책도 제일 오래도록 보고, 엄마 찌찌도 조물거려보고, 물도 먹고, 가끔은 밥도 한숟갈 더 먹고 제일 늦게 9시쯤 잠든다. 
그러면 드디어 오늘도 무사히 하루가 끝난 것이다. 
어느 날은 나도 같이 곯아떨어져버리고 하루이틀 정도는 깨어서 집도 치우고 인터넷도 보았다.
내가 고단하긴 했나보다. 야근끝낸 남편이 돌아와보니 내가 코를 드르렁 골며 자고 있었단다. 나는 코 안고는데! 했더니 다음날은 핸드폰으로 동영상을 찍었다.ㅠㅠ 

저녁시간이 좀 분주하고 힘들어서 그렇지, 아침에는 일찍 일어나는 아이들 덕분에 나도 같이 일어나 좀 여유있게 아침준비해 먹는다. 아빠도 있고, 밤새 젖많이 먹은 연제도 아침 준비하는 엄마를 한참동안 잘 기다려준다.
서울와서부터는 연제를 업고 연호랑 아파트 산책도 나가고, 가끔은 업고 설겆이같은 집안일도 살살 하는데 허리가 좀 아프긴해도 다행히 연제는 잘 자고, 나도 일을 할 수 있어 좋다. 이만큼 커준 것만 해도 정말 고맙다. 
언제나 다정하고 밝은 연호는 엄마를 늘 웃게 만든다. '형아 어디? 아빠 어디? 하삐 어디? 할미 어디?' 하며 유치원간 형아도 보고싶어하고, 회사간 아빠도 보고싶어하고, 강릉계신 하삐와 할미도 보고싶어하며 찾다가 '엄마 어디? 아가 어디? 연호 어디?'하며 함께 집에 있는 셋을 확인하고 '아가 에뻐..'하며 동생을 만져보는 녀석. 
연수가 유치원에 가있는 동안 연호는 형아를 많이 보고싶어하며 허전해하는데, 대신 태어나 처음으로 엄마를 제일 오래 독차지해보는 요즘이다.
연제가 잘 자서 연호와 낮시간에 둘이 많이 놀 수 있어 고맙고 좋다. 
연수는 그전보다 훨씬 일찍 유치원에 가고, 또 오후에는 다른 형아누나네 차를 타고 집에 오는 것이 아무래도 힘들 것이다. 연수 유치원의 활동이 워낙 놀이 위주이고 특히 산책이나 마당놀이같은 바깥놀이가 많아서 연수가 마음 푸근하게 잘 놀고, 유치원을 무척 좋아하고 있어 다행이긴한데 그래도 어린 녀석이 너무 고단하게 지내는것 같아 걱정이 된다. 유치원 끝나고도 헤어지기 힘들어하는 아이들 특성상, 또 엄마들이 내 손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려고 자기 아이와 연수를 데리고 한참씩 더 놀다가 와주곤 했던 것이다. 연수가 유치원에 가있는 시간이 엄마에게는 두 동생과 조용히 보내는 휴식의 시간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내 아이는 힘들어도 내 손으로, 엄마 품에서 키워야한다. 아직 어린 나이에 너무 오래 집 밖에서, 가족과 떨어져 시간을 보내는 것은 좋지않다는게 내 생각인데 지난 주는 새로운 생활이 처음 시작된 떄라 나도, 카풀해주는 엄마들도 아직 리듬이 잘 만들어지지 않았었다. 곧 잘 조율해가며 안정적인 리듬이 만들어지겠지... 카풀해주는 형아누나들도 연수와 함께 노는걸 참 좋아해고 연수도 좋아해서 다행히 같이 잘 놀기는 하지만 그래도 유치원 이후에는 집에와서 좀 조용히 쉬고, 놀더라도 엄마와 동생들과 함께 놀게 해야겠다.
지난 주에 연수가 늦게 와서 내가 힘든 순간들을 그나마 잘 넘기고, 많이 쉬기는 했지만... 일주일 잘 쉬었으니 그걸로 감사! 이제는 힘들어도 우리 큰녀석에게도 엄마 자리를 좀더 주어야한다.
무튼 정말 고마웠다. 모두들.. 카풀해주는 이웃 엄마들도, 큰 탈없이 잘 지내준 아이들도, 또 매일 야근하며 엄청 피곤했을텐데 늘 밝게 아이들과 나에게 웃어주고 걱정해주었던 아빠도. 늘 걱정해주시는 친정과 시댁의 어른들도.. 또 나의 고마운 블로그 이웃들도.
혼자 힘만으로 하는 일들이고, 살아내는 삶인 것 같지만 사실은 보이지 않는 많은 응원들이, 마음과 기운들이 우리를, 나를 지켜주어서 이렇게 고맙게도 살아지고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고맙습니다..

지난 일주일처럼 앞으로도 잘 지내야지..
씩씩하게, 부드럽게. 
엄마의 자리를 지키면서. ^^
엄마가 엄마의 자리를 꿋꿋하게 지키는 것만큼 아이들에게 든든한 일이 또 있을까.
그런 점에서 엄마가 산후조리를 했던 지난 두 달반 동안 아이들은 알게모르게 많이 긴장하고 지냈을 것이다.
할머니할아버지의 다정한 손길이 많이 그립긴 하지만, 이제 다시 우리들의 보금자리에서 예전처럼 엄마가 만들어주는 밥을 먹으며 조금은 단촐하고 심심한 우리들의 생활리듬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이들에게도 나에게도 다시 제 자리를 찾았다는 큰 안도감을 준다. 
그동안 연제의 탄생과 함께 찾아왔던 많은 변화들을 잘 갈무리해서 우리 가족의 소중한 추억으로, 나이테 하나를 늘리는 뜻깊은 성장통의 시절로 자리매김하면서 천천히 안정된 일상으로 돌아가야겠다.    











강릉에서 지내는 동안 아빠는 내가 집에서 아이들만 보고있어 답답할까봐 바람쐬게 해주시려고 모내기와 여러 일로 바쁘신 중에도 짬을 내 경포에 데려가주셨다.
바다를 보면 마음 시원해지는 나를 아시기 때문이다.
연제가 아직 어려 나는 연제를 안고 차에 앉아있고 아빠가 연수, 연호 데리고 모래사장에 다녀오셨다. 
고운 바다색깔이, 파도 소리가, 외할아버지와 두 손주의 아스라한 풍경이 오래오래 기억하고 싶게 아름다웠다.

어른들은 언제나 주고, 주고, 또 주고.. 그리고 또 걱정하신다.
낳아주고, 길러주고, 성장의 순간을 따뜻하게 지켜보고, 때로 이끌어주고 때로 밀어주며 함께 아파하고 함께 기뻐하신다. 
다 자란 뒤에도 보살피고 또 보살피며 힘들때 기대서 쉬어갈 수 있게 그 품을 내어주고... 
내가 이제 부모가 되고보니 부모란, 가족안에서 어른이란 원래 그런 존재인 것을 알겠고
동시에 또 그렇게 하기가 얼마나 힘든지, 잘 해내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도 알겠다.
   
자식이 밖에서 겪었던 엄청난 풍랑들도 그 품에 들어와 기댈 때면 모두 조용히 잠재우고 고요한 휴식속에 새로운 힘을 다시 채워주시는..
나도 그런 어른이 되고싶다. 










사랑하는 엄마.. 오늘 밤은 편안히 잘 주무시고 계실까..

웃는 엄마 얼굴에서 대구 외할머니 얼굴이 보인다. 

사랑하는 엄마.. 너무 걱정마세요. 막내딸은 오늘도 씩씩하게 잘 살았으니.. 

고마워요, 오늘도 우리에게 보내주시는 깊은 사랑. 그 힘으로 내일도 행복하게 잘 살께..


이상.. 서울귀환 일주일 보고 끝! ^^







Posted by 연신내새댁
하루2013. 5. 15. 23:11

 

 

강릉 날씨가 엄청 춥다.

그래도 아이들은 마당으로, 외가집 논밭으로 할머니 할아버지를 따라 신나게 뛰어다닌다.

연호의 '하삐! 하삐~!' 소리가 꼭 병아리 삐약거리는 소리같다.

엄마닭을 종종종 따라다니는 노란 아기병아리처럼 연호는 할아버지할머니를 따라 외갓집 안팍을 부지런히 누비고 다닌다.

이렇게 다니다가 서울에 돌아가 마당을 잃으면 우리 아이들은 섭섭해서 어떻게 지낼까..

나도 연제 재워놓고 두 아이 데리고 잠시 한가하게 마당가에서 노닥거리던 시간을 잃어 얼마나 서운할까.

연제 울음소리 들리면 금방 뛰어들어갈 수 있는 마당. 그 마당에 연수랑 연호만 내놓아도 크게 걱정이 없고, 내가 잠시 같이 나와있어도 집에 있는 아기 걱정이 없고..

 

까불까불 장난이 너무 심해진 연수를 오늘 크게 혼내느라 잠시 마당에 내보내놓고 저녁먹을 때까지 들어오지 말라고 엄포를 놓았다.

추운날, 어린 손주가 현관 계단에 오도카니 앉아있는게 안쓰러웠던 외할머니가 데리고 들어오셨다.

해도해도 너무한다 싶을만큼 개구지고 말 안듣는 연수때문에 며칠동안 마음이 무거웠는데

문득 깨달았다.

강릉에 와서는 연수가 화를 낸 적이 없다는걸.

항상 너무 즐거웠다. 즐거워서 까불거리고 정신없이 웃고 장난치다가 사고 연발이어서 엄마한테 혼나고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의 걱정을 들었지만 정작 본인은 참 좋아하고 있었다.

연수는 외가집을 정말 좋아한다. 이번에도 얼마후에 강릉에 갈거라고 하자 당장 가자, 빨리 가자 졸랐던 연수였다.

서울에서 연수는 곧잘 화를 냈었다.

엄마아빠가 뭔가를 안된다고 했을 때, 제 뜻에 안 맞을 때, 뭔가 속이 상하고 말이 잘 안나온다 싶을 때.. 소리도 크게 지르고 화도 냈었다.

강릉에서 지내는 2주동안 그 모습을 못 봤다는게 문득 떠올랐다.

꽤 오랫동안, 하루에 한번씩은, 어떤 날은 그보다 더 자주 벌컥 화를 내던 아이였는데...

그랬구나... 참 행복했구나, 얘가..

 

꼭 외가에 와있어서라기 보다는

그동안 막내 동생이 새로 태어나고, 처음으로 할머니와 오래 지내보고, 유치원에 새로 다니고 하면서 많이 긴장되고 속상했던 것이 그렇게 화내는 것으로 나타나고

마침 유치원이 방학을 하고 좋아하는 외가에 와서 지내면서 마음이 많이 편해지고 기뻤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외가 어른들께는 함부로 화를 낼 수 없는 어떤 기운같은게 있었나.. 엄마인 나의 태도가 뭔가 달랐나...

엄마인 내가 연수 장난치고 까부는 것에 대해 야단치고 주의주는 것은 서울에서나 강릉에서나 별 차이가 없는 것 같은데

연수 기분이 내내 좋은 것은 확실히 다르다.

외가에서 할머니할아버지를 따라 마당과 논밭으로, 시내로 자주 돌아다닐 수 있는 것이 아이에게 많이 활기를 주는 것일까.

짜쯩내지 않고 화내지 않는 연수 모습을 좀더 귀하게 봐주고 마음에 담아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에 돌아가서도 그렇게 지낼 수 있길..

마음 푸근하고, 자유롭게.. 언제든 걱정없이 뛰어나갈 수 있는 마당과 정겨운 어른들의 보살핌은 없지만...

그 모든 것을 엄마인 내가 대신 열어주고 품어주면서 행복하게 지낼 수 있길..

 

우리가 와있는 동안 어른들은 정말 고생 많이 하셨다.

우리 올라가고나면 엄마는 한 사흘 앓지않을까... 아빠도, 할머니도 모두 세 아이 데리고 친정내려온 나를 위해

내 대신 아이들을 봐주시고, 내게 맛있는 것 먹여 기운 복돋워주시려고 너무너무 애쓰셨다.

어떻게 잊을까.. 이제 나도 아이낳는 일은 마지막일테니 갓난아기 데리고 친정에 와서 지내는 일은 이번이 끝일 것이다.

두고두고 오래오래 이 시간을 기억할 것이다.

엄마 아빠 할머니.. 고맙습니다. 사랑해요..

 

 

 

 

Posted by 연신내새댁
하루2013. 2. 20. 21:27






오후 늦게 마신 커피 덕분인지 오늘은 잠이 잘 안와서 사진만 정리해두었던 포스팅을 쓰기로 했다.

주말 아침이면 나는 혼자 집을 나선다.
아이들의 여벌 옷가지가 들어있는 묵직한 비닐봉지대신 내가 읽을 책 한권과 물통, 지갑 정도만 들어있는 단촐한 가방을 메고.
아이들은 운동가는 엄마에게 웃으며 손을 흔들고, 
이제 아빠와 함께 만화영화도 보고 맛있는 간식들도 먹을 마음에 들떠서 신나게 배웅해준다. 

아파트앞 큰길을 건너 동네로 들어서면 우선 성당에 들린다.
잠시 성모마리아상 앞에서 기도하기 위해서..









종교는 없지만 나는 많은 신들께, 우리 주위의 자연과 영혼들에게 종종 기도를 한다.
때로 그 기도는 어떤 누구에게 보내는 것도 아닌, 그저 내 마음을 한번 더 차분하게 가라앉히고 흩어진 기운과 정성을 오롯이 모아보려는 노력이기도 하고, 
어떤 때는 누구에게라도, 간절한 소망과 바램을 담은 내 작은 목소리를 우주의 어느 누구라도 좀 들어주었으면... 하면서 마음속으로 빌고, 얘기할 때도 있다. 소녀시절부터 그랬는데, 어른이 되고보니 왜이리 빌 일이 더 많은지... 기도하는 마음이 늘 절박하다.

아기예수를 안고있는 성모 마리아상 앞에서 나는 바다를 건강하게 잘 낳을 수 있기를, 
세 아이들을 내가 잘 돌보고 키울 수 있기를 깊이 머리숙여 매번 빌고 있다.

기도가 일상의 지속적인 한 부분이 되어있지 않은 요즘은, 매일 일어났다 사그라들기를 반복하는 아이들에 대한 걱정과 이런저런 내 삶의 크고작은 문제들에 마음이 허둥대기 일쑤인 요즘은 
마리아상앞에서 기도하는 짧은 순간에도 기도하고픈 말들이 머리속에서 잘 정리되지 않거나 
기도하던 중에도 불쑥 다른 생각이 치고 들어와 허방짚기 일쑤다.
그래도 이 순간만큼은 마음을 차분히 해보려 노력한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마리아상 앞에 서있는 시간만큼은 바다와 나와 우리 아이들에 대해서만, 
우리들의 가장 간절하고 절실한 소망 딱 한가지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마음모으기.  



기도를 마치고 돌아서서 성당 큰문을 걸어나오면 작은 전통시장인 우리동네 고덕시장. 
손님많고 맛도 좋은 순대국집에서는 뜨거운 물을 부어가며 식당앞을 청소하고, 때로는 떡집에서 붉은팥시루떡 한판이 금방 나온듯 무럭무럭 흰 김을 올리는 모습을 구경하며 시장길을 걷는 순간이 좋다. 

어느 주말 이른 아침에는 슈퍼에 빈병을 팔러오신 할머니 곁을 지나갔다.
"한 병에 30원 씩이니께.. 990원이네유~?"
다리를 구부리고 할머니 곁에 쭈그려 앉아 병을 세던 주인 아저씨의 구수한 사투리.
추운 아침, 할머니의 손에 어렵게 쥐어진 천원의 무게를 생각하며 내가 무심코 지갑을 열어 쓰곤하는 천원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시장을 지나면 전철역이 있다. 
혼자서 전철역 계단을 천천히, 힘들지 않게 걸어내려가는 기분이 묘하다. 
손잡은 아이없이, 밀어야할 유모차없이, 아기띠에 안은 아기도 없이... 오로지 나 혼자 몸만 타박타박 걸어서 내려가는 길.
그 느낌이 시원하고 편안하면서도 어떨 때는 서운하고 썰렁하기도 하다. 
지난 5년동안 아이들과 거의 떨어져본 적이 없던 나에게 요즘의 이 시간은 언젠가 아이들이 다 커서 내 곁을 떠난 뒤에 내가 보내게될 시간을 미리 잠깐 맛보는 것 같기도 하고, 
이제 곧 시작될 세 아이와 함께 하는 고단하고 어려운 날들 전에 잠시 주어진 달콤한 마지막 휴식 같기도 하다. 

쉴새없이 이어지는 어린 것들의 이야기와 질문에 응대할 일없이 혼자 천천히 둘러보는 전철역과 전철안 풍경은 몇번을 봐도 아직 새롭다.
전철을 기다리면서 스크린 도어에 붙어있는 시들을 천천히 하나씩 다 읽어본 날도 있는데 
그중 청담역 7호선 플랫폼에 있는 시들이 내게는 제일 좋았다.  

저 '구름 한조각 손에 쥐고 혼자 달렸다'는 시는 
초등학교 운동장을 뛰는 어린 아이의 모습이, 아마도 바쁘고 가난했을, 혹은 세상을 먼저 떠나셨는지도 모르는 아빠를 그리는 어린 아이의 모습이 눈에 보이는듯해 한참을 그 앞에 서있었다.
그러니까.. 아무리 힘들다 힘들다 해도 
아이들이 어릴때 우리가, 내가 부모로서 해주어야할 단 한가지는
아이들 곁에 함께 있어주는 것.. 어린 날의 곁을 지켜주는 것.. 그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시 옆에는 내가 그전부터 좋아하던 고두현 시인의 '남으로 띄우는 편지'도 있어 얼마나 반갑던지..
봄이 오고있으니까... 내 블로그를 봐주시는 이웃들께 그 시도 함께 선물하고 싶다. 



남으로 띄우는 편지 

고두현


봄볕 푸르거니
겨우내 엎드렸던 볏짚
풀어놓고 언 잠 자던 지붕 밑
손 따숩게 들춰보아라
거기 꽃 소식 벌써 듣는데
아직 설레는 가슴 남았거든
이 바람 끝으로
옷섶 한 켠 열어두는 것
잊지 않으마.
내 살아 잃어버린 중에서
가장 오래도록
빛나는 너.











지하철을 타고 내가 찾아가는 곳은 바다를 출산하려고하는 병원이다.
주말마다 한 시간씩 요가교실이 열리는데 막달인 지금, 무겁고 여기저기 쑤시는 몸을 좀 풀어주기도 하고 출산에 도움이 되는 자세와 호흡을 연습하기도 할겸 2월들어 요가교실에 등록했다.

설연휴도 있었고해서 지금까지 4번을 다녀왔다. 
요가를 처음 한 날.. 나는 울 뻔 했다.
힘들어서가 아니고 행복해서.
온전히 나와 바다에게만 집중해서 조용히 움직여볼 수 있다는 것이 정말 행복했다. 
고요한 명상음악을 들으면서 마지막에 엄마 자궁속에 있는 아가처럼 포근히 나를 감싸는 해먹속에 편히 누워 쉴때 
아직 처녀인 요가 선생님이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정말 애쓰고 있다고, 지금까지 정말 잘 해왔다고 스스로를 많이 칭찬해주세요, 다독여주세요'하고 얘기하는데
그만 눈물이 핑 돌았다.
두 아이의 엄마로 늘 종종거리며 노력한다고는 하지만 실수투성이에 대책없이 꿈과 낭만과 욕심만 많은 내 삶을
그래도 정말 잘 해왔다고, 애썼다고 다른 누구도 아닌 내 안에서부터 다독여주고 인정해주라는 얘기에 그만 날서있던 마음이 뭉근하게 풀리면서 울고싶은 기분이 되어 버렸다. 
셋째 출산을 앞두고 긴장도 되고, 걱정도 많아 겉으론 웃으면서도 마음 버거운 순간이 많았는데 
막달에 이 병원에서 요가도 하고, 의사선생님의 조언대로 식단조절도 하고, '히프노버딩'이라는 자연출산 책도 읽고 하면서 몸도 마음도 많이 가벼워지고 평온해지는 것을 느낀다. 
바다도 건강하게 잘 낳을 수 있겠다는 기분이 들고, 혹시 수술을 하게 되더라도 이 한달 동안 내가 느낄 수 있었던 평화로움과 행복만으로도 충분한 위안을 받았다는 생각이다. 












엄마가 집을 나서서 걷고 전철을 타고 1시간 요가를 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세 시간 남짓한 시간동안
아이들은 아빠와 집에서 이렇게 보내는 모양이다. ^^
아빠가 타준 핫쵸코를 다정하게 먹는 이런 평화로운 순간도 있지만 좀 눕고싶은 아빠를 어떻게든 일으켜세워 그림책을 읽어달라, 이거하자 저거하자 조르며 지지고볶는(?) 풍경을 안봐도 다 알 수 있다.
그래서 참 고맙다. 만삭의 아내에게 아내만의 시간을 선물해주는 남편의 마음이, 언제나 나를 위해 최선을 다해주는 이 사람의 헌신이 지금 정말 고맙다. 











아이들이 잠든 밤, 남편이 일찍 퇴근한 날에는 아파트옆 냇가길을 걷기도 한다.
이번 주는 날도 춥고, 또 아빠가 일이 많아 늦게 온 날이 많아서 별로 못 걸었지만 지난 주에는 꽤 여러번 걸었다. 
걸을 수 있어 참 좋다. 
걸으면서는 생각을 할 수 있어서 좋고, 막히고 꼬여있던 생각들이 어느새 길처럼, 길을 따라 스르륵 풀리고 마음이 편안해져서 좋다. 혼자서, 오랫동안 걸을 수 있어 좋다.
연수 유치원때문에 한동안 고민이 많았는데 걷고 또 걷다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연수는 지금까지 엄마 얘기를 참 잘 들어주었어.. 이제는 내가 연수가 하고 싶어하는 것을 들어줄 차례야..'
그렇게 생각하고나니 마음이 얼마나 편해지던지...
연수가 정말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사실 그순간 내가 생각하고 알고있었던 것과 어제오늘 연수와 얘기하며 들은 것이 또 다르지만 큰 방향은 찾은 것 같다. 연수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자는 것으로..
여섯살이 될 때까지 연수는 정말 잘 커주었다. 건강했고, 엄마를 참 좋아해주었고, 어린 동생이 태어나 세살이 되도록 자라는 모습을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곁에서 지켜보면서 때로 투닥거려도 동생을 참 예뻐하고 좋아하며 지내주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고맙고 또 고맙다. 이제는 내가 연수가 원하는 것들을, 하고싶어하는 일들을 알아주고 힘닿는 데까지 도와줘야할 때.
둘째 동생을 맞는 연수 마음도, 처음 형이 되는 연호 마음도 엄마가 깊이 안아주고 보듬어줘야할 때..
걸으며 이런 생각들을 정리하고 마음의 힘을 키우며 심호흡을 가다듬는다.   










바다를 낳을 때 병원의 우리 방문에 붙일 문패를 만들었다. 

고향바다인 경포바다와 지난 가을 우리가 무척 사랑했던 제주 월정리 바다를 생각하며 바다를 그렸다.

세 아이와 남편과 함께 건강하게 그 바다를 다시 찾아가는 풍경을 생각하니 마음이 무척 행복했다.


바다가 건강하고, 무엇보다 엄마인 내가 건강하고

연수와 연호 두 형아들이 건강하고, 우리들을 언제나 든든하게 감싸주는 남편이 건강하게 우리 곁에 함께 있다면

그 어떤 일도 다 해낼 수 있을 것이다.

다 괜찮다... 다 천천히 풀어갈 수 있는 일들이고, 삶이다.

요즘은 이 생각만 하며 지내려고 한다.

다 잘 될거고,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함께 있다면.


바다 만날 날이 멀지 않았다. 

바다야, 그동안 엄마 배속에서 건강하게 잘 자라주어서 정말 고마워.

네가 세상에 나오고 싶은 시간에, 네 힘으로.. 아름다운 세상과 만나자꾸나.

우리 모두 너를 사랑하고, 너를 기다리고 있단다.

고맙다.. 고맙다.. 우리 아기. 엄마도 힘낼께, 너의 길을 아름답게 지켜줄 수 있도록. 함께 할 수 있도록.









Posted by 연신내새댁
하루2013. 1. 4. 20:28

 

 

강릉에도 눈이 살짝 왔다.

서울이나 다른 지방처럼 많이 온 것은 아니고, 기온도 다른 지역보다는 조금 높다.

영동지방 날씨는 특이한 구석이 많아서 다른 곳이 추울 때 따뜻하고, 다른 곳이 더울 때 서늘하고, 눈도 남들 안올 때 폭설 오곤한다.

 

그래도 여기도 춥다.

'대한이가 소한이 집에 놀러왔다가 얼어죽었다'는 옛말도 있는(^^) 그 소한 추위가 대단하다.

그래도 애들은 밖에서 노는걸 좋아한다.

눈온 날 아침, 연수는 할아버지 따라 눈치운다고 마당에 나서서 작은 삽으로 제 맘껏 길을 낸다.

 


 

 

 

 

잠옷 밑에 패딩 바지 입고, 잠옷 위에 패딩 점퍼 입은 연호도 하삐 옆에서 빗자루질 영차영차~! ^^

 

 

손학규씨가 쓴 '저녁이 있는 삶'이란 책 제목이 참 인상적이었는데, 잠시 패러디하자면 나는 '마당이 있는 삶'이 좋다.

내 생각에 '마당이 있는 삶'은 '할아버지가 있는 삶'이다. '아버지가 있는 삶'이기도 하다.

할머니와 엄마도 마당에서 이런저런 일을 하시지만 그래도 마당은 할아버지나 아버지의 존재감이 빛나는 공간이다.

이 곳에서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아버지의 일을 배운다.

눈이 오면 마당에 쌓인 눈을 치우고, 집 안팎을 돌아보고, 자동차 세차도 하고, 집에 딸린 텃밭이나 논에서 거둔 곡식들을 손보아 잘 갈무리해두기도 하는 곳.

낙엽이 떨어지면 비질을 하고, 덥수룩하게 자란 집 둘레 나무들의 가지치기를 하는 곳.

아이들과 배드민턴을 칠 수도 있고, 손주들의 발놀림이 그새 얼마나 야무져졌나 가늠하는 재미로 할아버지가 축구공을 던져주시는 곳.

겨울 초입에 아이들과 상주 시댁에 갔을 때는 시골집인 시외가 마당에서 할아버지들이 장작을 패기도 하셨다.

아직 아궁이가 두 군데나 있는 시외가의 겨울 준비를 하기위해 도시에서 온 자식들이 산에 가서 나무를 해오고, 함께 장작을 마련하고, 아궁이에서는 손주들을 위한 고구마가 구워지는 그 풍경이 나는 참 좋았다.

 

아버지들의 노동이 주로 집에서 멀리 떨어진 회사나 공장에서 이루어지고,

집의 형태도 자기 마당이 따로 없는 공동주택이 대다수인 도시의 집에서

고단한 노동을 마치고 돌아온 아버지들은 사실 집에서는 큰 존재감을 갖기가 어렵다.

아이들의 놀이감을 가지고 함께 놀아주는 것도 한두시간이지, 그 이상 노는 것은 힘들기도 하고 또 피곤한 아버지들도 쉬어야하니

집은 그냥 잠을 자고 다시 일을 하러 나가는 공간 이외의 역할을 하기 힘들다.

주말이라도 공원이나 어디 밖으로 나가지 않는 이상 집안에서는 잠시 아이들과 장난감을 가지고 함께 놀다가 지치면

아버지가 TV(스마트폰)를 보거나 아니면 아이들을 TV(스마트폰)앞에 앉혀놓고 어른들이 잠시 한숨돌리거나 하는 이상의 활동이 어렵다.

버트란트 러셀이라는 철학자가 <행복의 정복>이라는 책에서 아파트를 두고 '아이들이 놀 수 있는 장소도 없고 어른들이 아이들의 소란을 피할 곳도 없다'고 했다는데

참 적절한 통찰이 아닐 수 없다.

안과 밖이 모두 존재하는 집이 아니라 '안'만 있는 아파트나 공동주택에서는 아이들은 마음껏 놀 수가 없고(층간소음 때문에도 그렇고 집안에 함께 있는 어른들로부터 '조용히 좀 하라'는 말도 거듭 들어야하므로), 어른들은 조용히 휴식을 취할 수가 없다.

 

마당에서는 어른들은 일을 하고, 아이들은 놀 수 있다.

그러다가 어느결에 아이들은 어른들의 일을 어깨 너머로 배울 것이다.

함께 조금씩 해볼 수 있을테고, 몸이 커지고 손도 야물어 질 때쯤 되면 생각도 깊어질 것이다.

마당에서의 소란은 하늘과 땅이 그 소음을 흡수해주고 햇살과 바람이 그 빛나는 존재들을 더 빛나게 해주어서인지

아이들이 밖에서 내뿜는 에너지는 집안에서와 달리 어른들을 지치게 하기보다는 어른들에게 빙그레 웃음을 짓게 만드는 힘이 되는 것 같다.

 

나는 마당있는 삶을 꿈꾼다.

아마도 우리 가족에게 마당이 생긴다면 그 마당에서 벌이는 일의 대부분은 주로 내가 하는 일일 것이다.

남편은 아마도 전기 배선이나 수도, 크게 힘써야하는 뭔가를 옮겨놓는 일 정도를 제외하면 아마 거의 마당에서 일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자본주의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기 때문에 이미 충분히 회사에서 고된 노동에 시달린 남편이 집에서 또다른 일을 더 하기는 힘들기 때문이기도 하고

본인의 성격이나 취향상 잘 맞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니 아마 우리집에서 '마당이 있는 삶'은 '아버지가 있는 삶'이기는 어려울 것이지만 '엄마가 아주 행복한 삶'이기는 할 것이다.

 

나는 마당에서 꽃과 나무를 가꾸고 싶고, 작은 텃밭에다 푸성귀를 심어서 키우고 싶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개나 고양이를 키울 수도 있겠고

작은 수도가를 두고 여름에는 물놀이도 하고

평등한 가사노동에 대한 훌륭한 메세지를 담고있는 그림책 <돼지책>에 나오는 엄마처럼 자동차를 즐겁게 정비할 수도 있을 것이다.  

겨울에 눈이 오면 아들 셋과 함께 마당에 쌓인 눈을 치우고 여력이 되면(아들 셋이 이렇게 든든하게 느껴진 적이 없었다 ㅎㅎ) 동네골목에 쌓인 눈까지 같이 치우는 상상을 하며

나는 한참동안 참으로 흐뭇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마당있는 삶이 빠른 시일내에 우리들의 삶속으로 꼭 들어와주었으면 좋겠다. ^^

 

 

 
 

 

 

 

연수는 작년에 외갓집에 왔을 때

그야말로 '폭설'이 내렸던 외갓집 마당에서 눈천사를 만들며 놀았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살짝 내려 아쉬운 눈위에서도 눈천사를 만든다.

이제는 여섯살이 된 나의 큰 아기.

 


 

 

 

 

엊그제는 외할머니가 맛있는 메밀전을 부쳐주셨다.

친정에서 차로 10분거리에 사는 언니가 조카를 데리고 놀러왔다.

고향집에 오면 부모님과 함께 언니를 만날 수 있다는 것도 큰 기쁨이다.

어느새 마흔이 된 언니. 어린시절의 언니를 꼭 닮은 조카딸.  

나이들어가시는 부모님 가까이에 우리 남매들중 한 사람이라도 가까이 살고 있는 것이 참 다행스럽게 느껴진다.

고마운 언니, 나이 들수록 애틋해지는 우리 언니.

 


 

 

 

"안녕하세요, 저.. 연호예요."

짜잔~~ 이 분이 누구신가~!

2:8 가르마를 예쁘게 타시고 머릿기름 자르르 발라 앞머리를 곱게 넘기신 이 분.

귀염둥이 우리 둘째 아들되시겠다. ㅎㅎ

 

 

 

 

 

 

이 날의 헤어스타일리스트는 바로 '하삐'!

아버지가 늘 바르시는 머리 화장품으로 외손주들 머리도 곱게, 곱게 빗겨주셨다. ^^;;;

 


 

 

 

 

연호의 변신이 넘 재미있었던지 연수도 자청해서 할아버지께 머리를 맡겼다. ㅋㅋ

머리도 늘 신경써서 손질하시고 옷도 깔끔하고 멋지게 입으시는걸 좋아하는 멋쟁이 우리 아빠.

손주들의 머리도 참 정성껏 손질해 주셨다. ^^ 


 

 

 

 

 

'오빤 하삐 스타일~!!'

 

머리숱이 많은 연수는 연호만큼 극적인 변신을 선보이진 않았지만 그래도 잠시동안은 앞머리가 아주 단정했다. ㅎㅎ

외가에서 지내는 동안 아이들은 아침마다 세수를 곱게 하고, 할아버지 옆에 앉아서 로션을 바르고 할아버지가 헤어로션 발라 싹싹 빗어넘겨주시는 손길에 머리 단장을 한다.

참... 어디 꽃미남 대회에라도 내보내고 싶으나... 이 추운날 갈 데는 없다. ㅎㅎ

다행히 외갓집에는 관객이 많아서 아침마다 아이들은 외증조할머니와 외할머니, 엄마의 열렬한 환호를 받고 있다.

냄새가 무척 진한 할아버지의 헤어로션 향기를 온 집안에 뿌리며~~^^;;

 


 

 

 

 

연호는 매일매일 이웃집인 옥계집 개들에게 문안인사도 빼먹지 않는다.

저 위에 큰 개가 앉아있는 저 양지바른 자리는 엄마가 어릴때 늘 소꿉놀이하던 곳.

삼십년 세월동안 튼튼히 서있는 저 벽도 신기하고(가만보니 다시 쌓으신 것도 같다), 저 벽 뒤에 있는 아름드리 키 큰 소나무들은 나를 기억하는지

양지바른 저 자리에서 매일 흙과 사금파리를 조물락거리며 놀던 그 꼬마 여자아이는 나중에 커서 무엇이 될지

나는 연호 뒤에 서서 한참동안 궁금해하곤 한다.

그리고 올려다보는 강릉의 겨울 하늘이 참 파랗다.

 

 

 

 

 


 

Posted by 연신내새댁
하루2012. 12. 31. 22:59

 

 

2012년의 마지막날이다.
아이들과 강릉 부모님 곁에서 보내고있다.

돌아보니 올한해도 참 이런저런 일이 많았다.
아직 추운 이른봄 연수의 첫유치원 등원의 날들이 있었고
아직은 엄마도 연수도 떨어져지낼 준비가 안됐구나 절감하고 한달여만에 그만 두었었고
그 뒤론 연수연호와 셋이 온전히 종일 붙어서 보낸 봄여름가을겨울이었다.
여름엔 연호가 첫 돌을 맞았었고, 바다를 임신해서 가을겨울을 함께 보냈다.

언제 시간이 가고 언제 아이들이 자라나... 싶던 때도 많았는데

올한해가 지나는 동안 연수는 네 돌을 꽉 채우고 54개월.. 어느새 참 많이 의젓해졌다.

그림이나 점토놀이 하는 것을 봐도 전과 다르게 사물의 형태나 특징을 묘사할 줄 아는 다섯살 형아로 자라났다. 투닥거릴때도 있지만 제 동생 연호를 예뻐하고 좋아하는 형아가 되었다.

연호는 엎드려 기던 녀석이 어느새 붙잡고 일어서고, 엄마 손을 잡고 걷고 어느새 저 혼자서도 씩씩하게 잘 걸을 줄 아는 아기가 되었다.

고운 아기말도 여럿 하고, 말귀도 잘 알아듣고 어느새 아기에서 아이로 부지런히 자라고 있다.

바다도 어느새 엄마 배속에서 8개월을 다 채워간다. 꼼지락꼼지락 태동도 부지런하고 아직까지 작은 형아 밤중수유를 하느라 잠을 설치는 엄마 몸속에서도 무럭무럭 잘 자라주고 있는 고마운 아가.

천천히, 더딘 듯해도 아이들은 제 힘껏, 최선을 다해 신나게 자라준 한 해였다.

고맙다..

 

 

 

 

 

이빨 썩게 하고 몸에도 안좋은 도너츠, 쵸콜렛 같은 달달한 간식들도 덥썩덥썩 손에 잘 쥐어주고

때로는 터무니없게 화도 벌컥 내고 짜증도 부리는

부족한 엄마 곁에서도 큰 탈없이(연수는 올 여름에 치과치료 많이 받느라 엄청 힘들었다ㅠㅠ) 잘 자라줘서 미안하고 고맙다.

어린이집도 안 보내고, 무슨무슨 선생님도 안 부르고 화려한 체험전같은데도 한번 안 데려가주고(그게 더 좋다고 생각해서 그런 거지만) 

그저 종일 집과 아파트 놀이터만 오가며 노느라 많이 심심했을텐데도

저희들 힘으로 무슨 꺼리든 찾아내서 재밌게 놀면서 하루하루 보내줘서

엄마랑 같이 지내는 이 어린 날들을 좋아해주고 잘 웃어줘서 정말 고마웠다, 얘들아..

 

가만히 생각해보면 아이들이 하는 일이 어른들이 잘 몰라서 그렇지 다 어른들 잘 되라고 지켜주고 있는 일들일지도 모른다.

형아들 덕분에 많이 걷고, 많이 웃고, 좀 고단해도 부지런히 몸 움직이며 지내는 동안

바다도 무럭무럭 잘 컸고, 나도 잘 지냈다.

임신 기간동안 크게 입덧 하지 않고 잘 먹고 잘 지낼 수 있었던 것도 생각하면 바다 덕분이고,

보고싶은 친구들 만나러 여기저기 잘 다녀오고, 멀리 제주도까지 일주일간 여행도 잘 다녀올 수 있었던 것도 생각해보면

잘 자라고 씩씩하게 엄마와 동행해준 아이들 덕분이었다.

너희들이 나를 지켜주고 있구나.. 고맙다, 고맙다.

 


 

 

 

지난 토요일에 강릉에 내려왔는데 오랫만에 부모님 곁에서 지내니 참 좋다.

아이들과 나말고, 누군가가 온종일 함께 있는 집에서 지내는 것이 참 좋다.

여름과 겨울에 한번씩, 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1~2주씩 와서 지내는 동안

엄마는 계모임 같은 그나마 있던 일정들도 거의다 안 나가시고, 아빠도 바깥 약속들을 되도록 적게 잡으시면서

우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주신다.

아빠는 우리들을 태우고 경포바다로, 호수로, 아이스크림 가게와 빵집으로 짬짬이 즐겁게 바깥 바람을 쐬어주시고

엄마는 연수와 구슬치기도 하고, 카드게임도 하고, 연호에게 '아침바람 찬 바람에 울고가는 저 기러기~'같은 손놀이 노래를 가르쳐주시고

따뜻한 밥과 맛있는 간식들을 만들어 먹여주신다.

부모님 곁에 오면 지치고 고단했던 몸도 많이 쉬게 되지만, 무엇보다 외롭고 늘 긴장되어 있었던 마음이 푸근한 안식을 얻게 된다.

나말고도 아이들 곁에 누군가 계시다는 생각, 기댈 곳을 찾아 모처럼 푸근하게 마음을 내려놓고 쉴 수 있는 곳..

아빠가 함께 있는 주말을 제외하면 늘 엄마하고만 온종일 지내던 아이들에게도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외증조할머니가 늘 함께 계시는 외갓집에서의 생활은 얼마나 풍요롭고 따뜻한 시간일까..

오늘 남편 회사가 쉬었더라면 며칠 연휴를 맞아 마침 제사도 지내시는 상주 시댁에 다녀왔을텐데

휴가를 내기 어려운 상황상 상주에는 못가고 주말에 남편은 우리만 강릉에 데려다주고 다시 출근하러 서울로 돌아갔다.

상주 어른들을 뵈러가지 못한게 죄송하고 마음 한켠에 계속 걸려있긴 하지만

추운 연말연시를 고향집 부모님 곁에서 아이들과 따뜻하게 보내고 있는 것이 참 고맙고 좋기도 하다.

 


 

 

 

2013년 한 해도 잘 살아야지...

올해보다 더 힘내서, 더 맑은 정신으로, 굳은 의지로 조금씩 더 노력하면서 살아야지.

새해를 맞으면서 바라는 것들을 생각해보니 건강이 제일 먼저 떠올랐다.

건강했으면 좋겠다.

나도, 아이들도, 가족들 모두..

무엇보다 내가 건강했으면 좋겠다.

건강하게 셋째를 잘 낳고나면 세 아이들과 함께 지내는 날들을 씩씩하게 잘 해나갈 수 있을 것 같다.

한동안 셋째 낳고 난 이후의 날들이 너무 겁나고 깜깜하게 느껴지기도 했는데

지금은 내가 건강하기만 하면 다 해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다.

나도, 아이들도, 남편도 아프지만 않으면 아이들 키우며 겪는 고단하고 어려운 순간들은 어떻게든 다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다.

모두모두.. 건강하자.

내 건강이 제일 중요하다는 생각을 부모님 곁에 와있으면서 하게 되었다.

집에 오니 긴장이 풀려서 그런가.. 더 많이 쉬는데도 몸에 힘은 더 없는 것 같다.

셋째의 임신 후기는 많이 힘들구나.. 새록 절감하면서 서울에 돌아가서 지낼 날들, 출산.. 마음의 준비를 다시 하게된다.

그리고 내가 건강하게, 셋째도 잘 낳고 아이들과도 잘 지내는 평범한 날들, 평범한 일상이 다시금 얼마나 고마운 것인지 깊이 느끼고 있다.

새해에도 그런 날들을 살 수 있기를..

그리고 새해에는 조금 더 많이 고민하고, 글을 쓰면서 살고 싶다.

지금 내가 몸담고 있는 내 현실, 내 현장은 아이들을 키우는 내 가정.

그 안에서 공부하고 생각하는 일, 그리고 여기 블로그를 통해 소통하고 배우려는 노력을 더 기울여야겠다.

깨어있는 사람, 조금씩 더 성장하는 사람이 되고싶다.



 


 

 

올한해 내 곁을 지켜주었던 많은 분들, 내가 만났던 친구들, 이웃들.. 고마운 그 분들 모두에게 깊이 감사드리는 밤이다.

모두 새해에도 건강하시고, 어렵고 힘든 일들 속에서도 꿋꿋하고 행복하시길 빈다.




 

 

 

 

  

 

 

 

Posted by 연신내새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