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 해당되는 글 57건

  1. 2017.07.07 새우 4
  2. 2017.07.05 수박밭에 수박이
  3. 2017.07.04 파리 유치원
  4. 2017.03.23 엄마 생각 2
  5. 2016.08.01 고맙습니다 3
  6. 2015.09.06 나의 집 2
  7. 2015.01.28 눈오는 강릉에서 드리는 인사 3
  8. 2014.03.26 공주 엄마 8
  9. 2014.01.25 서른일곱의 일월 4
  10. 2014.01.05 강릉에서 돌아온 날 2
하루2017. 7. 7. 11:48

연호랑 연제가 유치원에서 작은 새우를 받아왔다.
새우를 받던 날, 마침 내가 유치원 하원 시간에 데리러 갔는데
아이들이 모두 새우가 든 작은 플라스틱 통을 들고 공주님처럼 까치발을 하고 조심조심 살금살금 걷고 있었다.
통이 많이 흔들리면 새우가 힘들어서 죽을 수도 있으니 조심해서 집까지 가져가라고 선생님이 당부하신 것이다.

우리도 새우를 잘 모시고 집에 와서
조금 넓은 플라스틱 통에 자갈과 유리 장난감, 바닷가에서 주워온 조개껍질 같은 것을 넣어
새우 어항을 마련해주었다.

연호 새우는 좀더 빨갛고 큰 녀석, 연제 새우는 색이 투명하고 연한 빨강에 좀더 작았다.
둘이 밥 먹고 이리저리 어항 속을 기어다니며 한 보름 잘 지냈다.
아이들은 첨엔 하루에도 몇번씩 새우를 들여다보더니 나중엔 아예 까먹는 날도 있고, 그러다 문득 또 새우들이 뭐하나 살펴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날, 내가 새우어항 물을 갈아줬는데
하루이틀 있다 들여다보니 연호 새우가 움직이지 않는 것이었다.
가슴이 철렁했다. 새우는 죽어있었다.

마음속으로 아이들에게 어떻게 얘기하지.. 생각하면서 하루이틀이 흘렀다.
연호가 많이 속상해할텐데...

처음에 각자 담겨온 통 안에서 혼자 며칠을 지냈던 새우들은
큰(?) 집이 마련되고 두 녀석이 함께 지내게 되자 훨씬 활발하게 움직이고 같은 곳에서 함께 몸을 맞대고 있는 모습도 자주 보였었다.
그렇게 지내던 한마리가 죽었으니
죽은 새우도 가엾고 남은 새우가 외롭고 슬플 것도 걱정이 되었다.

내가 물 갈아줄때 잘못해서 큰 새우가 다쳤나..ㅜㅜ
조심할껄.. 반성하고 미안해하며 어쩌지는 못하고 시간이 흘렀다.
그사이 아이들은 새우를 별로 안들여다보는 것 같았는데 연수인가 연제가 무슨 얘길하다가 "근데 참, 연호 새우 죽었더라"하고 지나가는 말투로 말하자
연호도 대수롭지 않게 "응. 엄마, 내 새우가 죽었어"하고 얘기하는 것이었다.
"그래ㅜㅜ 며칠전에 엄마도 봤어..."하고 그날 대화는 끝났다.

엊그제 내가 다시 새우어항 물을 갈아주면서 죽은 새우를 꺼내
연호가 유치원에서 받아와 키우고있는 나팔꽃 화분 흙을 살짝 파고 묻어주었다.
아주 작은, 어른 엄지손톱만한 작은 새우라 손가락으로 판 구멍이면 충분했다.

'예쁜 나팔꽃으로 피어나렴.. 다음 생엔 생명 가득하게 태어나라'

그날 저녁에 세녀석이 잠자리로 갈때
연호에게 나팔꽃화분에 새우를 묻어주었고, 새우가 꽃으로 태어날지도 몰라.. 했더니 연호는 제 나팔꽃 화분에 가서 흙을 뒤적여보기도 하고 한참 그앞에 앉아있었다.
그런데 요즘 연호는 나팔꽃에 진딧물이 생기는 것땜에 걱정이었는데
한 생명이 죽으면 다른 생명으로 태어난다는 얘기를 전에 나랑 한적이 있어서 그 생각이 났던지
"엄마, 새우가 진딧물로 태어나면 어떡하지?"하고 걱정스럽게 물었다.

"으..응. 그럴수도 있겠지..만 새우는 나팔꽃을 잘 자라게 도와줄꺼야. 꽃이 될수도 있고.. 혹시 진딧물로 태어나면... 밭에 데려다주자.. 거기서는 진딧물도, 나팔꽃도 잘 살껄..." 딱히 뭐라고 해야할지 몰라 이 말 저 말 나오는대로 하며 집안일을 마무리하고 있는데
연호가 울기 시작했다.

형과 동생이 잠들고도 한참동안 연호는 훌쩍훌쩍 우느라 잠을 이루지 못했다.
내가 가서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연호야, 새우가 진딧물로 태어날까봐 걱정돼서 우는거야?"하고 물었더니
연호는 "아니.."했다.

"그럼 왜 울어..?"
"새우가 죽어서 슬퍼... 내 새우..." 하고 오래오래 울었다.

그래.. 한번은 이렇게 울어야지..
아무렇지 않은듯 넘어갈 수는 없지. 마음은 그런 것이 아니지..

유치원 선생님이 내일모레 새우를 줄거라고 하셨을 때부터 많이 기다렸던 연호였다.
내게 미리 물을 받아놓으라고 부탁하고
새우 집할 어항도 찾아놔달라고 하고,
제 새우도 너무너무 좋아했다.

어리니까 아직 그렇게 잘 돌볼 수는 없다해도
마음 깊이 새우를 좋아했다.

새우가 죽고, 그래도 어항 속에 있을 때는 조금 덤덤하게 넘길수도 있었다가
땅 속에 묻었다고 하고, 다른 생명으로 태어날 거란 얘기를 나누는 동안 제가 좋아하던 새우가 이제는 떠났다는 사실이 깊이 느껴져서 연호는 그날밤에 아주아주 슬프게 이불위를 뒹굴며 울었다.

사는 일이, 이별하는 일이 이렇구나..
우리 삶이 그렇구나..

잠든 연호의 얼굴에 어린 눈물자욱을 닦아주며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 함께 있는 날들에 사랑하는 것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

다음날 연호는 평소처럼 일어나 웃으며 유치원에 갔고,
나는 텃밭에 가서 이엠발효로 만든 병충해 방지 약재를 한병 떠왔다.
연제 강낭콩에서 시작된 진딧물이 연수 토마토, 연호 나팔꽃에 조금 옮겨왔다.
연제 강낭콩은 다섯 꼬투리 수확해 밥에 잘 앉혀 먹고 대는 뽑았고, 나필꽃과 토마토에는 약을 뿌려봐야겠다.


Posted by 연신내새댁
하루2017. 7. 5. 10:12


연제가 들고온 <말놀이 동시집>을 읽어주는데
'수박밭에 수박이'라는 동시 밑에 수박밭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가게에 진열된 수박을 보거나
수박을 사서 잘라 먹을때는 떠오르지 않았던 옛날 기억 하나가
눈코입달린 귀여운 수박 가족이 웃고있는 동시책 삽화 한컷에
확 떠올랐다.

대학교 3학년 때였나..
경북 영주로 농활가서 수박밭에서 일한 적이 있었다.
허리가 90도로 굽은 할머니 한분이 땅을 기다시피 하시면서
수박순을 밭고랑에 잘 고정시키려고
얇은 철심을 반으로 구부려 만든 집게로
뻗어가는 순을 눌러주는 것을 도왔다.

그 날 그 할머니는 여러모로 나에게 충격을 주셨는데
온통 까맣게 흙물, 풀물이 들다 못해 닳아없어진 손톱과
마디가 모두 울퉁불퉁하게 꺽이고 휘어진 손이 그랬고,
90도로 휘어진 허리 뒤로 고추대에 묶어줄 하얀 비닐끈 타래를 묶고
고추밭 사이를 오가며 허리 뒤에서 실이 풀려나오게 하는 모습이
꼭 거미가 실을 뽑아내는 것 같았다.

고목처럼, 동물처럼
비틀어지고 닳은 몸.. 그렇게 일해야만 살아지는 삶.

할머니, 지금도 살아계실까.
할머니 수박밭에서는 지금도 수박이 자랄까.



Posted by 연신내새댁
하루2017. 7. 4. 09:24

아침에 먹을 샌드위치 만드는 내내
재료들 주위로 날아다니는 파리 때문에
엄청 성가셨다.
어제 오후에 놀이터에서 간식봉지 따라 우리집으로 들어온 녀석이다ㅜ

먹는 동안에도 파리가 날아들어 연호가 손으로 몇번 잡으려다 놓치고 놓치고 했는데
아이들 유치원 버스태워 배웅하고 돌아와
혼자 설겆이하다보니 문득 생각났다.

파리 어디갔지? 잼그릇도 개수대 옆에 있는데
여기도 없고.. 잠잠.
아까 우리 나갈때 따라나갔나?
파리도 유치원갔나..? ^^



(생각해서 그림 그리려고 밥먹었던 탁자에 와보니 거기 여전히 맴돌고 있는 파리--; 안 나갔구나..

연수가 아침에 파리보고 '엄마, (프랑스) 파리에 파리가 앉았다- 는 말 되지? 재밌지?' 했는데
ㅎㅎ 이 글 제목보고 파리에 있는 유치원이라고 생각하면 어쩌나 싶다..^^)

Posted by 연신내새댁
하루2017. 3. 23. 13:22

아이키우는 엄마가 되고나서는
내가 내 아이만큼 어렸던 시절에,
지금의 내 나이셨던 엄마가 생각나는 순간이 자주 있다.

오늘처럼 아이들 주려고 바나나를 살때
강릉 중앙시장 골목의 과일 트럭에서
당시 참 비쌌던 바나나 1개(천원쯤 했을까?)를
엄마 시장길에 따라온 내게 사주셨던 기억이 나듯이 말이다.

참 신기하고 달콤한 맛이었지..
워낙 비싼 간식(?)이라 한번밖에 못사주신 것같긴 하지만
그 한번으로 충분했다.
유년의 특별하고 달콤한 추억으로 간직하기에.
'언니오빠한테는 먹었단 말 하지마라'하셨던 당부에 막내로서 비밀을 갖게된 것이 떨리기도 했고. ^^

나만 사주고 엄마는 드시지도 않았는데
내가 맛있게 한개 다 먹는동안 엄만 옆에서 뭐하셨을까.. 드시고 싶지 않았을까..
이제사 생각하기도 한다.

엊그제는 연수 학교에서 학부모 총회가 있었다.
연수가 올해 덜컥 학급회장이 된 덕분에 그냥 편하게 가도 될 학부모 총회가 가기 며칠 전부터 고민거리였다.
1,2학년때는 늘 청바지에 운동화신고 편하게 잠바입고 다녀왔는데
이거 참 괜히 회장 엄마라 하니 정장까진 아니어도 최소한 구두 정도 신을 옷차림은 갖춰야하지 않나 싶고 봄외출복이 뭐가 있나 생각하게 되었다.

어린 아기들 키우는 10년동안 옷이나 화장은 나와 늘 거리가 먼 것들이었다.
늘 집과 놀이터, 동네 정도만 오가고
편하고 막 입는 옷이 제일이었다.
실은 원래도 멋낼 줄 모르고 예쁜 외모도 아닌지라 육아라는 좋은 핑계로
외모를 깔끔하고 단정하게 가꾸는 일은 귀찮아서 안하고 지낸 것이다.

결국 총회 당일 오전에서야 동생들 유치원 보내놓고 시간을 내서
잠시 옷을 사러 다녀왔다.
짧은 시간을 쪼개서 후다닥 매장 두어군데를 휘돌아 살펴보고
바지 한벌과 조끼 하나, 티셔츠 하나를 샀다.
이 정도면 그럭저럭 구색은 맞겠다 싶었다.

옛날에 우리 엄마도 이랬겠지.
아이들 학교가봐야하는 날이 되면 뭘입고 가나.. 며칠전부터 생각했다가
모처럼 시내 나가서 바지 한벌, 쟈켓 하나 사입고 하셨겠지.
농사일과 살림으로 바쁘셔도
엄마는 반장 자주 하던 우리 남매들의 학교에 오실때면
옷도 깔끔하게 멋지게 입으시고, 화장도 예쁘게 하고 오셨었다.

엄마는 언제나 좋다.
집에서 푸근히 밥차려주실 때도 좋고,
모처럼 예쁘게 꾸미고 손잡고 나들이 나갈때도 좋고,
뒷마당에서 부지깽이로 종아리 때리며 혼낼 때도 좋다.
들길로 새참 광주리 머리에 이고 광주리에는 손도 안대고 흔들림없이 걸어가시는 놀라운 묘기를 선보이실 때도 좋고,
좋은 동요와 가곡들을 함께 부르며 숲길을 산책할 때도 좋았다.

엄마는 언제나 좋다.
그런 엄마도 중년을 보내시는 동안 힘든 날들이 많았을 것이다.
요즘 이런저런 일로 힘들 때면
'아 엄마도 나처럼 힘들었겠지' 생각한다.
어린 날 사진속의 아빠모습이 연세드신 지금보다 오히려 더 피곤하고 아파보였던 것이
비로소 이해가 되는 나이가 된 것이다.

40살이 되고 이제 칠순을 넘으신 부모님과 통화를 하면
엄마아빠는 지금 나보다 더 씩씩한 목소리로
내 걱정을 하시고
잘 챙겨먹어라, 잘 살아라 생활의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챙기며 당부하신다.
그러면 나는 다시 어린 시절처럼 용기가 생기고
잘 지내야지, 잘 살아야지 힘을 낸다.

부모님은 언제나 부모님, 자식은 언제나 자식인가보다.
나도 내 꼬마들에게 그런 부모가 되어야지.
늘 든든하게 지켜주는, 언제나 좋은 엄마가 되어야지.

봄날이 왔다.




동네 친구들과 봄방학 마치기전 올림픽공원으로 나들이가서 찍은 사진. 아이들 소풍이 엄마들 소풍이기도 했던 어린 시절처럼 이날 참 좋았다.

Posted by 연신내새댁
하루2016. 8. 1. 00:43

이 집에 사는 동안 참 좋았다.

서울시 강동구 강일동 고덕리엔파크 106동 403호.

결혼해서 두번째 살았던 집.
2011년 이른봄 네살된 연수와 배속의 연호를 데리고 들어왔던 집.
5년 하고 반년을 더 사는 동안
연호가 태어나 여섯살이 되었고
연제가 태어나 네 살이 되도록 자란 집.



이 집을 내일 떠난다.
아름답고 좋았던 많은 추억이 담긴 집을 떠나는 것이 슬퍼서
아이들도 나도 여러번 울고 아쉬워했다.

고마웠다.
참 고마웠다.
이 집에서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랐고
남편도 나도 무탈히 서로 보듬어주며 지냈고
다정하고 좋은 이웃들과 깊은 사랑과 정을 나누며 살았다.




앞마당이 내려다보이던 4층 우리집 거실 창가에서
아이들은 비둘기 밥을 주고
친구들과 동네 이모들을 열심히 불러 손을 흔들고
나는 학교에 가는 연수와 친구들의 자그마한 뒷모습을 바라보며 서있곤 했다.

저녁노을과 달을 올려다 보기도 하고
고덕천 쪽으로 바라보이는 먼산을 보며 오늘은 미세먼지가 어느 정도일까.. 가늠해보기도 했다.
먼지를 생갓하면 마음 아팠지만 산을 바라보면 언제나 행복했다.
작은도서관 앞을 살피는 일도 즐거웠다.
약속한 누군가가 와서 기다리고 있으면 '금방 갈께요~!' 소리치고 뛰어갈 수 있던 집.



처음 이사왔을 때는 답답한 벽으로 느껴지던 105동 건물은
이제 올려다보면 한층한층 누구네 집인지 거의 다 알게되어
불빛이 켜져 있으면 반갑고 꺼져있으면 어디 갔나.. 궁금해지는 다정한 친구들 집이 되었다.




참 좋은 시절이었다.
갓난 아기들을 품에 안고 젖을 먹이고 업어재우고
그 작은 손을 잡고 걸음마를 함께 하고
막내가 네발 자전거를 씽씽타고 동네 형들과 신나게 놀러다니도록 자란 시간.

아이들과 많이 놀았고, 함께 고덕천 길과 오래된 성당 마을과 강명초등학교 오가는 길을
많이 걸었고, 텃밭을 일구고
한 2년 남짓은 작은도서관을 내집처럼 오고가며 마을 친구들과 재미있는 일들을 여럿 하고,
울고 웃고 사랑하며 살았다.



금요일에 도서관 친구들이 송별회를 마련해 떡과 꽃을 주셨고,
오늘 연호가 고덕천에서 놀다와서는 제가 만든 꽃다발을 선물로 주었다.

고운 꽃들처럼 고운 추억을 안고
이 집을 떠난다.
정들었던 사람들, 아름다운 한시절과 이별하는 일은 내가 평생 해온 일인 것만 같은데
이제는 서른 아홉.
뒤돌아보지 않고 바쁘게 떠나가는 일은 그만 하고 싶다.
오래오래 뒤돌아보고 싶다.
떠나온 것 안에 지겹도록 미적거리며 앉아있어보고 싶다.
이사에 임박할 때까지도 마음이 잘 잡히지 않았다.
마음을 무겁게 하는 중요한 일이 있을 때
그 일을 한사코 외면하면서 딴일로 꾸역꾸역 시간을 채우는 버릇이 있다.
자꾸 그런다.
왜 그럴까.
뭐가 두려운 걸까.

내가 잃고 가는 것이 무엇인지,
지금 내 마음은 어떤지
외면하거나 묻어버리지말고
천천히 조금씩이라도 마음이 하고픈 말을 들어주는 내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제 마흔이니까.. 할수 있지 않을까.



내일이면 떠난다.
정든 집, 정든 마을, 정든 이웃들.

덕분에 살았습니다.
보살펴주시는 마음들, 기울여주는 애정들, 이 터전에 깃든 좋은 기운들, 멀리서 보내주시는 한결같은 기원들.

그 덕분에 저희 다섯, 잘 살았습니다.
앞으로도 잘 살겠습니다.
사랑하며, 나누며, 보듬으며
천천히 꾸준히 성장하며
저희 다섯 새 보금자리에서도
포근히 깃들어 지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모두모두 정말 고맙습니다.



Posted by 연신내새댁
하루2015. 9. 6. 22:11

낮은 산, 키 큰 소나무, 산 위쪽 사슴들이 살던 우리, 눈오던 설날 아침 사랑방 바깥 마루에서 올려다본 하늘, 뒤산의 키큰 소나무 위로 떨어내져리던 하얀 눈송이, 

대나무숲 

유아원으로 잠시 쓰였던 마을회관이 있던 뒷마을로 넘어가는 고개길, 각시풀을 땋아 무수히 만들어놓았던 머리채,

 

꿀벌통이 놓여있던 밭 가, 오빠가 귀지를 파준다는 엄마를 피해 뛰어 도망가던 앞 밭 


언니가 머리에 대야를 쓰고 밤송이를 줍던 뒷마당 수도가, 때로 고기를 삶는 김이 펄펄 피어오르던 뒷마당 가마솥,

기도날 밤 팥시루떡을 먹고싶어 졸린 눈을 비비며 잠을 참던 부엌, 두부를 만들기위해 할머니와 엄마가 큰 베보자기의 양끝을 꼭 잡고 쥐어짜시던 모습, 겨울밤에 먹던 고추가루를 띄운 시원한 동태무국, 얼음이 사르르 떠있는 식혜, 할머니가 직접 반죽하고 꾸덕하게 말렸다가 기름에 튀기고 조청을 바르고 쌀튀밥을 붙여 만드시던 과즐(한과), 흙바닥이었다가 시멘트바닥으로 바뀌었던 기와집 부엌, 그 부엌에서 엄마가 해주셨던 계란후라이를 삼남매가 나눠먹을 때의 맛있는 기억. 


앵두나무가 있던 뒤뜰, 장독대, 부엌 문 밖 땅속에 묻어두던 알밤, 


대학생이던 작은고모와 큰 언니가 함께 써서 고운 로션냄새와 예쁜 이불, 인형들이 있었던 건넌방, 

할머니의 옛날 얘기를 재미나게 들으며 잠을 청했던 사랑방, 

아빠와 엄마와 계시던 작은 안방, 하얀 머리에 항상 곱게 비녀를 지르고 한복을 입고 지내셨던 증조할머니와 내가 함께 썼던 제일 큰 방, 부엌과 통하는 작은 문이 있던 큰 방의 이불 장롱 위에서 혼자 누워 삐져있었던 저녁, 

어느 밝은 오후 낮잠에서 깬 내가 큰방 문을 열어보니 마루에서 누군가와 전화를 하며 울고있던 젊은 엄마.



큰 마당 가득 멍석을 깔아놓고 감 껍질깍는 기계를 가져다놓고 동그랗게 감을 깍아 끝을 뾰족하게 다듬은 싸리나무 가지에 꽂아 곶감을 만들던 날,     


매실주를 담근 큰 항아리가 있던 광, 매실주 항아리속에 손을 넣어 시큼한 매실을 꺼내먹는게 좋아서 자꾸만 살짝 광에 갔던 일. 


아빠 자전거를 타고 내려가다 넘어져 다리를 다쳤던 기억. 집으로 올라오는 길. 지단이꽃(황매화)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던 길. 


나의 첫번째 집, 큰 집, 전쟁 때는 인민군도 지휘본부로 쓰고, 국군도 지휘본부로 썼다는, 마을에서 잘 보이는 작은 언덕위의 아름다운 기와집. 

지금은 고속도로에 묻혀버린, 사라진 나의 첫번째 집. 

그 집 안방에서, 초겨울 아침 동이 막 틀무렵에 태어났던 작은 여자아기. 그 집의 마지막 아기였던 내가 걸음마를 걷고, 뛰고, 놀고, 그 품에서 잠들며 자라다가 9살이 되었을 때 헐려진 집. 

아름다운 그 집. 



젊은 아버지가 오토바이를 타고, 황소를 먹이고, 사슴을 키우셨던 집. 

우리 가족의 첫번째 자동차였던 갈색 트럭이 처음으로 들어왔던 집. 펌프가 있던 수도가 위쪽으로 처음으로 차고가 지어졌던 집. 


벌통에서 꿀을 따는 날이면 놀러왔던 친구들이 벌에 쏘여 울다가도 달콤한 꿀집을 입에 받아넣고 오물오물 먹으며 눈물을 훔쳤던 집. 

물에 빠진 꿀벌을 구해주려고 꽃잎에 태우려다 벌에 쏘였던 기억,


건너방에서 방학숙제를 끝내지 못해 낑낑대다가 마루에 아빠와 앉아 '방학숙제는 다 했니?'하는 아빠의 물음에 '네'하고 대답하는 언니와 오빠 목소리를 들으며 부러워하던 기억. 


겨울날 부엌에서 데운 물로 햇빛 따뜻한 뜨락에 대야를 놓고 김이 오르는 물을 부어 머리를 감던 기억. 


신식 화장실 높은 옥상에서 뛰는걸 좋아했던 나. 다칠까 걱정되셔서 하지마라 야단치시던 엄마, 그래도 또 뛰던 기억..


내 눈에는 지금도 다 선한데, 그 풍경, 그 집, 벽에 걸린 멍석들, 앞밭, 뜨락,   

돌아갈 수도, 다시 볼 수도 없네..


  

Posted by 연신내새댁
하루2015. 1. 28. 12:14


수호제와 강릉 외가에 내려와있습니다.
많이 춥지않은 날씨에 아이들은 외갓집 마당을 오가며 잘 놀고,
마침 눈까지 와서 신나게 눈사람도 만들었어요.

Posted by 연신내새댁
하루2014. 3. 26. 22:44




- '마법사 모자'를 쓴 연호. ^^




며칠전에 옷장을 뒤적거리다가 처녀시절에 입던 치마를 찾아서 꺼내 입었다.

연제 낳고 1년 사이에 살이 많이 빠져서 처녀시절 옷들이 다시 맞는다. ^^ 

레깅스 위에 입으니 편하고 이쁜 평상복이 되었다.


연수랑 연호랑 '엄마 예쁘다~~'며 와서 안기고 웃고 만져보고 하더니 

연호 하는 말.



"와~ 엄마, 예쁘다~ 공주 같아! 우리 엄마가 '공주 엄마'가 되었네!"



회색 치마 한 벌로 단숨에 '공주'가 되다니.. 역시 엄마는 좋구나. ^^



"엄마, 엄마 <겨울왕국>에 엘사 같아~, 엄마는 엘사 해, 나는 안나할께! 언니! 언니~!" 



'언니, 언니' 부르며 매달리는 둘째 아들의 꽃처럼 곱고 어린 얼굴을 바라보면서 

정말로 공주 부럽지 않은 행복을 내가 지금 누리는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뭉클했다. 



아이들은 엄마를 참 좋아한다. 

어쩌면 그리도 절절한 사랑을 보내주는지...

엄마가 한 삼일 머리를 안 감아도, 이 사이에 빨간 고추가루가 끼어있어도, 젖이며 반찬 얼룩이 묻은 티셔츠를 며칠째 못 갈아입어도

아이들은 그런 엄마 품에 한번이라도 더 안기고 싶어하고, 엄마 얼굴에 뽀뽀하고, 엄마 옷에 머리를 묻고 엄마 냄새를 맡으며 좋아한다.


어린 아이들의 그 부대낌과 매달림이 고단하고 힘들다가도 

문득 '엄마가, 내가 그리 좋을까.. 요 녀석들이 언제까지 요렇게 엄마라면 무조건 좋아 좋아! 하고 안겨올까' 생각해보면

이 시절이 그리 오래 남지 않았음을 알겠다.

그래서 지금의 이 조건없는, 절절한 사랑이 가슴 뻐근하게 고마워진다.


일곱살 연수도 아직 엄마를 다른 사람과 비교할 줄 모른다. 

제 엄마가 그냥 제일 좋을 뿐이다.

다른 엄마들처럼 예쁘게 화장도 하지 않고, 옷도 맵씨나게 입을 줄 모르는 엄마인데도 

그저 세수만 해도, 머리만 한 번 빗어도 '우리 엄마 참 예쁘다'고 감탄하고 (ㅎㅎ;;;) 

젖먹이 동생을 달고 후즐근한 차림으로 정신없이 하루를 살아내는 엄마에게 '엄마 사랑해' 하고 매일매일 몇 번이고 말하고 안아주는 아들이다. 


조금 더 크면 엄마가 그리 예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 아들들도 알게 될 것이다. ㅎㅎ 

사내녀석들이니 곧 엄마를 어색하게 느끼고, 끌어안고 볼부비는 일 같은 것은 더욱 쑥스러워하는 날이 금방 오리라.

엄마의 옷차림에 대해 토를 다는 일같은 것도 없겠지만, '엄마, 공주같아~!'라고 감탄하는 일은 더더욱 없을 것이다. 


그러니 지금 아이들이 이렇게 달콤하고 사랑스러운 말들을 쏟아내는 이 시절에

나도 좀 더 예쁘게, 곱게 입고 

고운 아이들의 손을 잡고 같이 산책하고 안아주고 입맞추며 지내야겠다. 

진짜 공주처럼, 

우리집에선 엄마가 공주인 것처럼 말이다. 

발걸음도 경쾌하게 사뿐사뿐 걷고. 

^^






엄마가 좋아 - 10점
마지마 세스코 그림, 마도 미치오 글, 이영준 옮김/한림출판사





연호가 '공주 엄마' 얘기를 한 날 저녁에 이 그림책를 다시 보는데 

그림책에 나온 많은 '동.식물 엄마'들의 모습이 새로이 눈에 들어왔다. 


'엄마'들이 다 참 예뻤다.

곱고 아름답고 우아했다.

아기들 눈에 비친 엄마들은 꼭 그렇게 보일 것 같다.


사실로도 그렇다.

젊은 엄마의 시절, 이 시절을 사는 모든 생명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새로운 생명을 낳고 키울 수 있는 젊고 건강하고 강인한 몸과 마음을 가졌기에

어린 생명을 돌보는 어렵고 고단하고 긴장된 날들이지만

울다가도 눈물닦고 다시 일어나 

새끼들 입에 밥을 넣어주고 

새끼들을 향해 눈부시게 웃어주고 안아주며 

기꺼이 어미로서의 삶을 살아내는 것이다.


미숙하고 고통스럽기도 하지만

배움과 깨달음과 행복이 차곡이 쌓이는 

젊은 엄마의 날들을 살다가 

새끼들이 그 어미만큼 아름답게 자라나면

그때는 그토록 빛나던 젊음과 아름다움과 강인함을 내려놓고

조용히, 낮게 내려앉는 것. 

그것이 모든 생명이 밟아가는 성숙의 길인 것 같다. 



엄마가 되고보니 길을 가면서 엄마들 얼굴이 눈에 제일 많이 들어온다. 

씩씩한 얼굴, 지친 얼굴, 화난 얼굴, 행복한 얼굴.. 

내 얼굴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들 모두가 참 아름답다는 생각이 오늘 들었다.

조금 더 씩씩하게 같이 웃었으면 좋겠다. 

꽃처럼 고운 아가들과 함께 살아가는 

우리는 그 아가보다 더 예쁜 엄마들!   





 






Posted by 연신내새댁
하루2014. 1. 25. 11:33



겨울비가 촉촉히 내리는 토요일 오전이다.

남편이 큰 아이들을 데리고 치과와 마트에 장을 보러 간 덕분에 나는 연제 오전낮잠 재워놓고 커피 한잔 마시며 조용히 글쓸 짬이 생겼다.

이런 때에는 세상이 모두 온통 고요한 것 같다.


새해가 시작되고 어느새 한 달이 훌쩍 흘렀다.

겨울이고, 아직 연제가 어린 아가라 바깥 출입을 많이 못해 주로 집안에서 보내는 날들이었다.

답답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식구가 다섯이나 되다보니 자잘한 일들이 늘 끊임없이 많아서 작은 집안에서도 종종거리고 왔다갔다하느라 시간가는줄 모르고 살았다. 


이번 겨울은 이렇게 보내야하고, 보내는게 맞다고 생각했다.

아기가 어릴 떄는 어쩔 수 없이 조금은 고립된 생활을 할 수 밖에 없다. 

단조롭고, 익숙한 생활의 리듬을 지키는 것, 역동적인 변화와 모험의 즐거움은 잠시 유보하고 조금은 심심한 평화와 안정을 추구하는 것.

매일 똑같은 것 같지만 그 속에서 조금씩 더 여물어지고 단단하게 자라는 아기의 성장을 눈여겨 보는 것.

연제 첫 돌이 멀지않은 이번 겨울은 그런 것들이 중요한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연제 하나만 키우고 있는 엄마였다면 아마 요렇게만 지냈겠지만..

ㅎㅎ

나는 말같이 펄펄한 일곱살 연수와 한창 예쁘고 한창 미운 네살 연호를 진즉부터 키우고있는 삼형제 엄마이므로~~

이 겨울은 또 매일같이 동네 냇가 둑에서 눈썰매를 타고

밤이면 그 여파로 등허리팔다리 안아픈데가 없어서 끙끙 앓으며 애들과 같이 곯아떨어져 

책은 커녕 블로그 한번 열어보기가 힘든 날들이기도 했다.


일곱살 연수는 눈썰매를 어찌나 잘 타는지 혼자 큰 썰매를 들고 냇가까지 군말없이 씩씩하게 걸어가 

몇십번이고 지치지도 않고 썰매를 타고 언덕을 오르내리곤 했다. 

춥고 졸린 동생들이 먼저 집에 오고 싶어 앙앙 울 떄는 연수만 아랫집 형아와 한시간쯤 더 썰매를 타고는 형아엄마와 함께 돌아오기도 했다.

일요일에 내린 눈으로 월, 화, 수, 목 나흘을 썰매를 타고 인제는 거의 눈이 녹았다.

이 겨울이 다가기 전에 눈이 또 온다면 우린 몇번은 더 신나게 눈썰매를 탈 수 있겠다. 

연제가 순하게 유모차에 잘 앉아있어 주어서 아직 형아처럼 혼자 타는건 어려워하는 연호를 내 앞에 앉히고 나도 같이 눈썰매를 여러번 탔다.

엉덩이는 아팠어도 가파른 경사면을 쌩~! 하고 달려내려오는 그 느낌만큼은 정말 신나고 재밌었다. ㅎㅎ 

서른일곱에 이러고 놀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다행히 나는 막내가 어리니 아마도 마흔까지도 동네 냇가에서 눈썰매를 타게 될 것이다. 

나중에 손주들이 태어나면 일흔일곱 할머니가 되어서도 꼬맹이들이랑 눈썰매도 타고 얼음썰매도 타야지... 

눈사람도 만들고, 눈싸움도 하고. 그렇게 즐거운 겨울을 오래오래 보내야지. 



그럴려면 건강해야한다. 

1월에 한번 많이 아팠다.

몹시 추운 주말, 아이들 데리고 남편과 신나게 공룡박물관에 다녀왔었다. 

모처럼 서울 복판에 나간 김에 내가 좋아하는 '칼질의 재발견'에서 저녁을 먹고 오기로 해서  

너무 신난 나머지 추운 저녁 서촌 골목길을 연제 아기띠해서 안고 돌아다니며 '빵나무'라는 예쁜 빵집도 들리고 

칼질에서 저녁도 잘 먹고 왔는데 

너무 과식을 했던지 그만 돌아와서 배탈이 났다. 

칼질의 조 세프가 1년만에 만났다고 반가워하며 삼형제 먹으라고 고기도 잔뜩 주고해서 넘 고마웠는데

다 같이 잘 먹고 다행히 아이들과 남편은 모두 멀쩡한데 나 혼자 탈이 난 것이다. 

배탈은 하룻밤 만에 나았지만 그 뒤로 며칠을 몸살과 소화불량 상태로 끙끙 앓았다.

아마도 내가 워낙 요새 바깥 출입을 안 하다보니 모처럼 많이 걷고, 어린 아기 데리고 신경쓰며 급하게 밥먹고 하며  몸이 많이 힘들었던 모양이다.    

덕분에 남편이 주중에 하루 휴가를 내고 쉬면서 큰 아이들을 봐주어서 내가 연제 데리고 많이 자고, 쉬면서 천천히 나았다.







11월에도 한번 심하게 몸살을 앓았고 이번에 또 앓고 나니 '내가 몸이 많이 약해졌구나..' 싶었다.

칠년째 거의 쉬지않고 모유수유를 하고 있고, 어린 아기들을 안고 업고 하며 키우다 보니

반복되는 살림과 육아의 몸놀림들은 큰 무리없이 해내지만 

거기서 조금만 벗어나 몸을 다르게 움직이면 금새 탈이 나고 후유증이 오래 간다. 

몸을 좀 살피고 다양하게 써야겠구나.. 싶었다.

그래서 다시 밤에 걷기로 마음먹었다.


딱 작년 이맘때쯤, 연제 낳을 준비하면서 

남편이 일찍 퇴근한 밤이면 아이들 재워놓고 나 혼자 집 옆 냇가길을 걸었었다.

한 시간쯤 말없이 천천히 냇가옆 산책로를 걷다보면

졸졸졸 물소리에 귀도 기울여지고, 풀리지않던 고민들도 천천히 가닥이 잡히고

마음도 몸도 밝아지고 힘차지는 것이 느껴지곤 했다.

주말에 플라잉요가를 했던 것도 참 좋았지만 아직은 연제가 어려 주말에 긴 시간 혼자 집을 나설 수는 없으므로 

우선 밤에 걷는 것부터 다시 해야겠다. 

내 몸이 튼튼해야 삼형제와 앞으로 해보고싶은 재밌고 신나는 일들도 다 할 수 있지. ^^










일월부터는 청소아주머니가 일주일에 두 번씩 오시게 되어서 내가 몸이 많이 여유로워지기도 했고, 아플 때도 다행히 도움을 많이 받았다.

연제 낳고 산후조리 끝난 후부터 일주일에 한번씩 청소아주머니를 모셔서 집안 청소 도움을 받아왔다.

여러번 아주머니들이 바뀌셨는데 모두 좋은 분들이었다.

우리집 오는 길이 멀기도 하고 또 아기들이 어리다보니 집이 늘 어지러워 일감이 많은데

어느 아주머니나 모두 기쁘게 와주셨고, 짧은 시간이지만 정말 정성을 기울여 먼지투성이에 늘 아이들 장난감과 여러 세간살이로 어지러운 우리집을 깨끗하게 정리하고 구석구석 반짝반짝하게 닦아주시곤 하셨다. ㅠㅠㅠㅠ

아주머니들은 모두 내가 아이 셋 키우는 것을 대견해(?)하시고, 우리 아이들을 예뻐해주셨다. 

아이들과 남편 말고는 거의 만나는 사람이 없는 나로서는 일주일에 한번 오시는 청소아주머니도 큰 말벗이자 동료로 느껴져서 이 분들께 마음으로 깊이 감사했고, 의지하며 지냈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몇번 아주머니가 바뀌셨고, 이번에 해주시는 아주머니는 내가 몸도 힘들 때였고 해서 일주일에 두 번을 오시게 됐다. 

경제적으로 부담이 안되는 것은 아니지만, 다행히 어린이집을 가지 않는 우리 아이들 앞으로 지원되는 양육비가 있어 지금은 우선 이 일에 쓰고 있다. 

내 힘으로 아이들도 다 잘 돌보고, 집도 깨끗하게 건사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아직은 내 능력이 거기까지 안 된다. ㅜㅜ

늘 힘에 부쳐 허덕거리다가 이렇게 도움을 받으니 얼마나 고마운지...  


아주머니가 오신 뒤로 집이 많이 깨끗해졌다. 

내 마음도 한결 푸근하다. 그래도 바닥 걸레질이나 설겆이를 아주머니만 믿고 쌓아놓거나 미루지는 않는다. 

오히려 아주머니 오시기전에 내가 한번 더 힘내서 치우게 된다. 왜냐면 너무 지저분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는 않아서..^^;;

내 집이기도 하지만 아주머니의 일터이기도 하다.

그렇게 생각하니 너무 어지럽히지 말고, 조금 더 단정한 공간으로 만들고 싶어진다. 


나는 아주머니께 따뜻한 점심밥을 대접하는게 좋다. 

아주머니가 계신 오전에는 아이들이 어른이 한분이라도 더 계시니 이리저리 따라다니며 놀아서 내가 조금더 여유롭게 요리를 할 수 있다. 국이나 찌개 하나 끓이고, 반찬 한가지 만들고, 연제 죽 끓이고해서 아주머니와 함께 먹는 점심이 일주일에 두 번. 

친정과 시댁이 모두 먼 나로서는 어머니들 자주 뵙기가 어려운데, 비록 남이지만 정기적으로 오셔서 집안일도 도와주시고, 아이들 성장도 대견하게 지켜보며 나와 함께 얘기나눠주시는 청소아주머니는 가까운 친척 이모님처럼 여겨진다.  

연제가 좀 더 크고나면 아주머니 도움을 그만 받고 다시 내 힘으로 집안일을 다 해야지.

그 때까지는 일주일에 두 번, 오전 4시간씩 오시는 아주머니가 우리 생활의 중요한 한 부분이 되어주실 것이다.











오랫만에 만났던 대학시절 친구, 선후배 가족들과 1박2일 여행을 다녀오기도 하고, 

20년지기 친구 오드리할뻔이 우리집에 다녀가기도 하고

내가 참 좋아하는 블로그이웃 고래가 가정출산으로 낳은 예쁜 둘째아가를 보러 살림언니와 하루 다녀오기도 하고..

2014년의 첫 한 달에 있었던 이 특별한 일들을 지나며 '육아와 내 삶의 균형', '삶의 친구들'에 대해 여러모로 생각하게 되기도 했다.

그 얘긴 차차 또 하기로 하고...


일월에는 읽고싶은 책은 참 많은데 통 읽지 못해서 안타까웠다.

읽고싶어 주문해서 책상위에 수도없이 쌓아놓기만 한 책들.. 어느 것부터 읽어야할지 이제는 그걸 못 정해 못 읽겠다ㅠㅠㅠㅠ

뒤늦게 올해의 목표를 하나 세워본 것은...

새책 사지말고 그동안 사놓고 못 읽은 책 다 읽기. ㅎㅎㅎ

읽고 블로그에 서평쓰기. (이러면 좀 강제력이 생기지 않을까 해서..^^;;)


아직 사람을 만날 에너지가 많이 없는 내가 유일하게 세상을 배우고 내 삶을 돌아보고 사색하는 방법이 되는 것이 독서와 글쓰기다.

조금더 노력해서 책과 블로그를 가까이하는 한해를 살아야지.


토요일 오전에 시작한 글이 일요일 한밤중에 끝났네.

서른일곱, 좋은 날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Posted by 연신내새댁
하루2014. 1. 5. 22:57



일주일 동안 강릉 친정에서 쉬고 왔다.

2013년의 마무리와 2014년 신년맞이를 강릉에서 하고 온 셈이다.

크게 한 해를 돌아보거나, 새해 소망과 계획을 새롭게 다짐하지는 못했다.

아이들 예쁜 모습 보고 웃고, 아픈 것 보며 안타까워하고, 혼도 내고, 엄마 좋다고 매달리는 아이들과 한데 엉켜 뒹굴고 부대끼고 안고 얘기하고 잠들고 깨고.. 

하는 보통의 일상을 또 한 주 살았다.


다만, 

내 부모님 곁에서 보낸 시간이어서 내 마음이 무척 푸근하였다.

내 엄마가 해주시는 맛있는 밥을 끼니마다 받아먹으니 너무 좋았다.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외증조할머니가 새벽부터 반겨주시는 외가에서 아이들은 모두 어른들 품과 손길과 눈길에 싸여

둥개둥개 둥글둥글 포동포동 지냈다.


오늘 서울 집에 돌아와서 보니 

아이들이 모두 참 예뻐졌다.

얼굴도 훤해지고 아프던 것들도 잘 나았다.

내 얼굴도 그럴 것이다.

내 부모님 곁에 가서 그 품속에서 잠시 쉬는 동안

한동안 삼형제 데리고 종종거리며 지내느라 꺼칠하게 말랐던 몸과 마음이

조금은 하얗게 펴지고, 포동하게 살이 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한 해를 잘 마무리하고, 따뜻하게 새해를 열 수 있어서 참 좋았다.

찾아가 기대쉴 수 있는 고향집이 있어서, 부모님이 계셔서 너무 감사했다.


오늘밤 잠자리에 누워 

연수는 외가집 마당에 만들어두고 온 눈사람이 잘 있을까.. 궁금해했다.

연호는 외할아버지가 사다주시던 찐빵이 먹고 싶다고, 다음에 외가 가면 할아버지께 또 찐빵 사달라고 해야지.. 종알거렸다.

말을 못해서 그렇지.. 엄마 젖 먹으며 잠들던 연제가 저와 놀아주시던 외가집 어른들 생각은 제일 많이 했을 것이다.


돌아온 내 자리에서, 

올 한해도 힘내서 잘 살아야겠다.

예쁜 아이들 보며

남편과 나와 건강하고 행복하게 우리 가정을, 우리 삶을 잘 꾸려나가야겠다.

고향집에서 덮혀온 따뜻한 불씨를 꺼뜨리지 말고 

한 해 내내 마음과 몸을 뜨뜻하게 덮히며 온기있는 삶을 살아야지.


모든 것이 자기 자리로 돌아간 밤.

거기 깃든 고요와 평화와 그리움과 추억이 

돌아와서 다시 의연히 맞닥뜨리게되는 현실의 어려움들을 풀어갈 새로운 힘을 줄거라 믿는다.










새해 9살이 되는 친정의 제일 큰조카가 우리와 함께 방학의 며칠을 강릉에서 보냈다. 

연제를 얼마나 예뻐하고 잘 데리고 놀던지.. 연수연호도 누나가 있으니 더 신나게 잘 놀았다. 







강릉가기 전에 감기를 심하게 앓았던 연호.

다행히 외할머니가 해주시는 맛있는 밥 잘 먹고 기운 많이 차려서 올라왔다.








큰 눈사람은 할아버지고 작은 눈사람은 손주란다. ^^ 

둘 다 연수랑 내가 함께 만들었다. 

큰 눈사람 목에 붙은 모래는 연수가 '목도리'를 둘러준 것. ㅎㅎ







눈 치우는 아침.







밤새 눈맞은 눈사람들과 함께.







엄마가 찍어준 나.

아직도 눈이 신나는 철없는 서른일고..옵. ^8^









Posted by 연신내새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