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하는 나무들'에 해당되는 글 63건

  1. 2012.10.31 바다로 가는 유모차 6
  2. 2012.10.23 바람이 나를 밀어주네 2
  3. 2012.10.22 바다에 가기 딱 좋은 날 2
  4. 2012.10.21 제주에 왔다 7
  5. 2012.08.30 갯벌은 살아있다 6
  6. 2012.06.08 엄마의 엄마의 엄마 10
  7. 2012.03.17 공룡시대 15
  8. 2011.10.21 가래여울의 가을 16
  9. 2011.03.14 미사리 봄물빛 8
  10. 2011.03.06 풍경소리 차소리를 들으며 봉은사를 걷다 2
여행하는 나무들2012. 10. 31. 23:34



"cfile10.uf@0360F53E509139300B331B.jpg"




아침 6시면 어김없이 시작되던 하루. 
10월 24일 수요일, 여행의 다섯째 날이었다.

서늘한 아침 공기를 코끝으로 느끼며 엄마 놀자고 조르는 두 녀석과 이불 속에서 조금이라도 더 꼼지락거리다가 
해가 떠오른 듯 밖이 환해지면 겉옷을 챙겨입고 우리방을 나와 바로옆 휴게실로 가면 늘 7시쯤 되었다.

연수에게 부탁해 내 사진 한장을 찍었다.
서른다섯, 세 아이의 엄마 전욱이 여기 있다.  
 





달물의 휴게실에서 연수가 "엄마, 음악시간이야~!"를 외치며 우클렐레를 둥당거리는 동안 나는 연호 손에 과자를 조금 쥐어주고 간단한 우리의 아침을 준비했다. 
연수가 "엄마가 노래해, 내가 기타를 칠께"하고 노래를 주문하면 나는 생각나는데로 흥얼흥얼 노래를 지어내 불렀다.
"우리는 제주를 여행한다네~ 오늘은 날씨가 좋다네~"
그럼 연수가 깔깔 웃으며 노래를 이어갔다.
"오늘은 바람도 잠잠하다네에~~ 우리는 바다에 갈거라네~~" ^^





"cfile3.uf@1923B63C509135E32100F3.jpg"




달물에서 지내는 동안 아침은 늘 소박하고 간단했다. 

따뜻한 모과차 두 잔, 전자렌지에 데운 보리빵 몇 개, 가스버너에 끓인 누룽지 한 냄비.. 어느날은 뜨거운 김이 나는 햇반 한그릇을 김을 싸서 셋이 호호 불며 맛있게 먹기도 했다.

저녁을 일찍 먹고 밤새 자는 우리 아이들은 아침에 눈뜨면 배가 고프기 때문에 게스트하우스의 조식 시간인 8시보다 훨씬 일찍 뭔가를 먹어야한다. 전날 저녁에 우유나 빵, 누룽지 같은 것들을 미리 좀 준비해 두었다가 7시쯤 휴게실에서 먹으며 놀다보면 8시, 다른 손님들이 하나둘 휴게실로 모이고 달물의 스텝 림이모가 따끈한 된장국과 참치가 든 맛있는 삼각김밥을 가지고 왔다. 

연수연호를 위해 수지이모가 둥글게 만들어준 작은 주먹밥과 요구르트를 먹으며 아이들은 달물 마당에서 비누방울도 불고 호스로 물도 뿌리며 아침 시간을 보냈다.    




"cfile6.uf@134B6B445091366119C197.jpg"




이 날은 특별한 일정이 없었다. 

그래서 셋이서 월정리를 어슬렁어슬렁 산책하기로 했다. 

사실 서울에서 제주여행을 계획할 떄는 거의 매일 이러하리라 생각했는데 어쩌다보니 친구들덕분에 여기저기 구경도 가보고 아이들도 나도 다채롭게 지냈다. 

연호 유모차에 귤과 쥬스같은 간식거리들을 챙겨넣고 갈아입을 옷도 챙기고 해서 해가 가장 따끈한 아침 9시 반쯤 길을 나섰다. 

이번 여행을 위해 큰맘먹고 장만한 휴대용유모차는 가볍고도 튼튼해서 유용하게 참 잘 썼다. 17개월, 아직은 먼거리를 걷기 힘든 연호를 태우고 제주의 돌담길과 숲길, 오름과 모래사장까지.. 참 잘 다녀주었다.    






"cfile27.uf@115371365091367B1543A8.jpg"





달물에서 나와 마을을 한 바퀴 돌고는 바다로 향했다.  
전봇대에 매달려있는 올레길 표지가 예뻤다. 
나는 올레를 처음 걸어보았다. 
제주올레가 처음 시작될 때가 내가 연수를 낳을 딱 그즈음이어서 신문이나 책에서 올레 얘기를 볼 적마다 '나는 언제쯤 걸어볼 수 있을까..' 싶었는데 연수가 다섯살이 된 가을 꿈꾸던 올레길을 밟아는 본 것이다. ^^
그 사이 어느새 제주올레는 20코스까지 만들어졌고, 마침 그 20코스가 월정리 바닷가로 향하게 되어있고, 내 친구 광호와 수지씨가 지은 게스트하우스 '달에 물들다'를 끼고 지나가게 되어서... 그 멀고도 가까운 인연의 길을 돌아 아직 어린 아기들을 키우는 나도 올레길 위에 서서 이렇게 가슴설레어 볼 수 있었다. 
 




"cfile10.uf@166F66335091397E2EE90A.jpg"






바다로 가는 올레길, 바다로 가는 아이들.







연호도 이제는 제법 바다에 익숙해져서 형아를 따라 성큼성큼 잘 걸어간다.





"cfile24.uf@183B7C37509139C32B4EC4.jpg"







이제 내 일은 따뜻한 모래사장, 유모차 그늘에 앉아 아이들이 주워다주는 미역과 조개들을 받고, 연호에게 귤을 까주고,  그리고 아이들과 바다와 하늘을 바라보는 일.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풍경속에서 잠시지만 세상에서 제일 편안한 마음으로 호흡하는 일.





"cfile2.uf@190B0A41509139DA2E5419.jpg"






"cfile24.uf@1924FA37509139F03725A2.jpg"






모래사장에 난 유모차 바퀴 자국을 따라 아이들은 기차놀이를 했다. 
둘이라 참 좋다. 연호가 형아를 졸졸 따라다니며 놀 수 있을 만큼 커서 참 좋다. 

 


 






아무리 제주라 해도 10월의 바다와 바람은 차다.

바다에서 좀 논 뒤에는 따뜻한 핫초코를 마시러 월정리 바다 앞에 있는 까페로 갔다. 

월정리가 아직 별로 알려지지 않은 마을이고 바다였던 시절, 바닷가에 딱 하나 있었던 작은 까페 '아일랜드 조르바'.

'아이들과 제주도에서 한 달 살기'라는 여행서를 읽을때 이 까페이름과 바다 얘기를 처음 듣고, '아 나도 꼭 가봤으면-!' 했던 바로 그 곳. 

연호를 낳고 두달채 안 돼서, 강릉 친정에 산후조리차 내려가있을 때 블로그 친구 고래에게 선물받아서 읽은 책이었는데 일년 조금 지나서 그곳에 와있다니..  연호의 성장이, 광호와 수지의 월정리행이 모두 신기하기만 하다.

지금은 '고래가 될'로 이름이 바뀐 조르바로 가는 길. 

바다를 볼 수 있게 색색깔의 예쁜 나무 의자들이 군데군데 놓여있는 길. 

서울집에 돌아와 있는 지금은 내가 저 길을 정말 매일 지나다녔다는게 믿기지 않는 기분이다. ㅠㅠ 





"cfile25.uf@027CF63650913A5D0D468F.jpg"


 



가로로 길게 뚫려있는 이 작은 구멍이, '한모살'이라는 고운 이름을 가진 월정리 바다의 가장 예쁜 한 부분을 액자에 담아 걸어놓은 듯한 이 작은 벽이 까페 조르바(고래가 될)을 특별하고 사랑스러운 곳으로 만들어주는 듯 했다.
저 바다를 담아갈 수 있다면... 아무도 이룰 수 없을 간절한 바램을 이룬듯한 행복감을 잠시 이곳에 앉아서는 느껴볼 수 있다.
 




"cfile2.uf@143EC73550913A840AEF63.jpg"






바닷가에는 작년 여름 이후로 생겨났다는 다른 까페들도 있었지만 일주일동안 '고래가 될'에 밖에 못 갔던 제일 큰 이유는 여기에 고양이와 강아지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연수와 연호가 일리, 바이칼 같은 이름을 가진 고양이들을 따라다니는 동안 나는 잠시 따뜻한 차를 마시고, 바다 풍경에 눈길을 주고, 까페 안에 전시중인 어느 화가의 그림들을 바라볼 모처럼의 여유를 누릴 수 있었다.





"cfile10.uf@03545E3B50913AA11E9C9A.jpg"






지금은 파키스탄을 여행하며 그림을 그리는 중이라는 젊은 화가의 그림은 재미있고 아름다웠다.
얼마만에 보는 그림 전시인지... 연호 낳기전에 장 자끄 상페 전을 보고 왔던게 마지막이니까.. 강렬한 색감과 유화의 붓느낌, 여행과 자연, 사람들을 좋아하는 화가의 따뜻한 감성 같은 것이 느껴져서 모처럼 나도 행복하게 한참동안 그림들을 바라보았다. 






"cfile3.uf@18701A3650913ABB17947D.jpg"








"cfile6.uf@1636254550913B2630803D.jpg"






피아노가 놓여져있는 높은 담 위까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간 연수.
용감하구나. 꼭 어릴때의 엄마같아.. 높은데서 자꾸 뛰어내린다고 외할머니의 걱정을 들었던 꼬맹이 여자아이, 그 애를 보는 것 같아. 





"cfile8.uf@133A124550913B4028ADC8.jpg"







'고래가 될'에서 멀지 않은 길가에 연수가 만들어놓은 모래성.
일주일을 지나다니며 매일 같이 흔적을 찾고, 다시 보수하고, 제 이름도 써달라고 했다.
아직도 거기 남아있는지, 연수의 모래성 흔적.










까페에서 돌아오는 길. 연호는 유모차에서 곤히 잠이 들었다. 
월정리에서 지내는 동안 깨봉 삼촌 집에서 내가 아이들 점심, 저녁을 지어 먹인 적도 있었다.
수지 이모가 우리 때문에 너무 자기 스케쥴에 지장을 받으면 안되겠다 싶기도 했고, 달물의 저녁식사 시간이 또 7시 이후로 늦기도 해서 일찍 저녁먹는 우리 아이들 밥은 내가 따로 해먹이는게 편할 것 같아서였다. 
마침 친한 친구인 꺠봉삼촌네가 한 동네에 있고, 그 부엌을 내가 편하게 쓸 수 있어서 낮에는 삼촌 일나가고 없는 집에 우리끼리 가서 호박반찬 뚝딱 해서 밥 먹고, 감자볶음 계란찜 같은 쉬운 반찬으로 아이들 밥도 먹이고, 더운 물에 아이들 씻기고, 마당과 옥상이 있는 삼촌의 바닷가 작은집에서 한참 놀다가 오기도 했다.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하는 여행에서는 사먹는 것보다 이렇게 간단하게라도 엄마 손으로 밥지어 먹일 수 있는 부엌과 더운 물로 씻길 수 있는 욕실이 정말 요긴했다.   
며칠 바깥 생활을 해보더니 연수는 "엄마가 해주는 밥이 최고로 맛있어~!"하며 별 것 아닌 반찬에도 엄지손가락을 연신 치켜올리고, 밥도 한그릇 가득 뚝딱 비우곤 했다. 연호도 밥때마다 정말 좋아하며 배부르게 잘 먹었다. 워낙 많이 뛰어놀아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제가 익숙한 엄마 손맛이 얼마나 고맙고 좋은 것인지 어린 마음에도 깊이 느낀 듯 하다. 역시 애나 어른이나 밖에 나와봐야 철이 든다. ㅎㅎ










아이들과 배불리 먹고 따뜻하게 씻고 달물로 돌아가는 길.
멀리 한라산이 보여 무척 찍어보고 싶었으나 마침 해도 한라산쪽으로 지고 있어 사진이 온통 컴컴하다.









해지기 까지는 시간이 좀 있어서 아이들과 올레길을 걸어보기로 했다.

달물의 반대 방향으로, 우리가 걸어갈 수 있는 만큼만 걸어갔다 오자... 연수랑 얘기하고 타달타달 걷는 길.

연호가 저도 유모차에서 내려달라고 낑낑해서 내려주었더니 무언가에 속이 상해서 저만큼 혼자서 앞장서 가버렸다.







"연호야, 같이 가~!" 아야가 뛰어간다.







형아가 어디를 다니지 않으니 서울에서도 24시간 늘 붙어지내는 둘이지만 

집이 아닌 낯선 공간에서 오래 지내면서 둘이 서로에게 느끼는 감정은 좀더 각별해지는 것 같았다.

연호도 그전보다 '아야(형아)'를 훨씬 많이 찾고, 의지하고, 잘 따라다니고 

연수도 연호를 다정하게 보살피고 잘 데리고 놀았다.    











어린 마음들에도 우리 셋이 지금 먼 곳을 함께 여행중이고, 그래서 우리 셋이 서로서로 보살펴주면서 이 낯설고 즐겁고 힘들기도 한 시간을 함께 잘 보내야한다는걸 느끼는 것일까. 


나는 아무래도 아이들과 함께 하는 여행의 매력에 깊이 빠진 것 같다. 


(이번 여행이 내게 준 또 한가지는 고양이와 개를 기르며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것.. 그전에는 사실 늘 엄두가 안 났었는데 아이들이 정말 좋아하는걸 보니 왠지 그런 생각이..^^;)







아야를 유모차에 태우고 연호가 밀어준다.










'도파당'이라는 이름이 붙어있는 바다 앞에서 우리의 올레길 순례는 끝났다. 
돌아갈 길이 아득했지만 바다가 보이는 곳까지 가자는 연수는 말에 걸어걸어 제법 먼 여기까지 온 것이었다.
이만큼의 거리가 올레 20코스 전체중에 얼마쯤 되는지는 모르겠다.

어른 걸음으로 걸으면 15~20분 남짓한 거리니 그리 먼 거리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다섯살 연수와 두살 연호, 그리고 엄마 배속에서 5개월을 산 아가 바다와 세녀석들을 품고 한시간이 훌쩍 넘도록 천천히 느릿느릿 걸었던 나에게 있어서는 우리가 함께 갈 수 있는 최고로 먼 길이었고, 순례였다. 
돌아오는 길, 엉덩이는 몹시 아팠지만 마음이 참 뿌듯했다.









저기, 저녁햇빛을 받아 다홍빛으로 빛나는 집이 '달물'이다.
우리들의 게스트하우스, 내 친구들이 살고 그 아이들이 태어나 뛰어놀 집.
 

연수가 "저기, 달물이 보여!!" 하고 반가워하며 뛰어갔다.









Posted by 연신내새댁
여행하는 나무들2012. 10. 23. 20:23


밤새 바람이 정말 굉장했다.
월정리 전체가 날아가버릴 것처럼 굉장한 바람이 온밤토록 창밖에서 으르렁거렸다. 이게 제주바람이구나.. 자다깨서 잠깐씩 귀기울일 때마다 생각했다.
알고보니 월정리는 바람많은 제주 중에서도 특히 바람이 강한 길목..
달물을 지나가는 제주올레 20코스의 이름이 '제주의 바람을 만나러 가는 길'이란 얘길 나중에 들었다. 월정리 바닷가에는 풍력발전기도 아주 많고, 우리나라에 한군데뿐이라는 바다위에 세워진 풍력발전기도 월정리에 있다. 우리는 지금 그 바람 속에 있다. 

고단한 아이들은 다행히 아침까지 잘잤다. 5시반쯤 깨서는 그제야 바람소리를 신기해하고 따뜻한 이불속에서 셋이 꼭붙어 그림책을 한참 읽다가 해뜰때쯤 휴게실로 나갔다.

아침먹고는 역시나 바람때문에 오늘 일이 취소된 깨봉삼촌과 함께 가까운 용눈이오름과 비자림을 보러갔다. 




"cfile4.uf@11175C3A50867B502323BA.jpg"





오름의 등성이에는 방목하는 제주마와 소들이 여러 마리 있었다. 
'음머, 음머~' 동물 좋아하는 연호가 소를 보고 눈이 동그레져서 반가워했고, 연수는 길가의 풀을 꺽어 "엄마, 소꼬리같지?" 하면서 제 엉덩이에 대고 졸랑졸랑 흔들었다. 
처음에는 재미있게, 기세좋게 올라갈만했다. ^^ 위에서 내려오시던 한 남자어른이 아이들을 보고 "애들이 날아갈지도 몰라요!" 하고 겁을 주고 가셨는데 나는 장난인줄로만 알았다. 그러기에는 그 분 표정이 대단히 진지했는데... 나중에 올라가보니 진짜였다. ^^;;;



"cfile23.uf@0216883350867B7605EFD7.jpg"








오름에 오르면서 옆을 바라보니 멀리 제주 동쪽 바다와 성산 일출봉과 우도가 보였다.







돌담으로 둘러쌓인 제주의 무덤이 연수 눈에 무척 멋있어보였나보다. 

"엄마, 나 저기서 사진 찍어줘!" 하더니 자세를 잡았다.

제주를 혼자 여행하던 처녀시절에 밭 가운데, 오름 등성이에 너무도 아무렇지않게 그 공간의 일부인듯 야트막한 돌담 하나만 두르고 포근하게 들어앉은 제주 무덤들이 내게도 참 신기했었다. 삶과 죽음이 처음부터 그렇게 붙어있다는 듯이, 생활의 일부인듯이, 바다에 전쟁에 많은 이들을 떠나보내야했던 제주의 아픈 과거가 그 소박하고도 많은 무덤들 속에 들어있는 것 같았다. 

제주를 그린 아이들 그림책 <시리동동 거미동동>에도 보면 '아빠의 부재'와 그 대신 아이가 사는 마을의 배경에 자리잡은 작은 무덤 하나가 나온다.  











한동안 깨봉삼촌이 밀어주는 유모차를 타고가던 연호도 나중에는 내려서 제 발로 걸어갔다.
17개월 우리 꼬마, 씩씩하게 오름도 올라보고.. 장하구나.
 




&amp;quot;cfile8.uf@1238703650867B941FBCCA.jpg&amp;quot;






바람이 정말로 대단했다. 
세찬 바람을 타고 일렁이는 빛나는 억새와 마른풀들의 물결이 아름다웠다.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을 본게 얼마만이지.. 생각할만큼.
신나게 앞장서서 걸어가던 연수가 외쳤다. 
"엄마! 바람이 나를 밀어주네!"







&amp;quot;cfile27.uf@1321573750867BB2062CC8.jpg&amp;quot;






&amp;quot;cfile23.uf@2013783A50867BCC2BAB9A.jpg&amp;quot;






바람을 타고 올라서본 용눈이오름의 깊고 부드러운 곡선은 지상에 있는 여러 풍경들중에 내가 본 제일로 뭉클한 풍경이었다. 

분화구라는 것이 어떤 느낌일지 잘 몰랐는데 그 크고 우묵하게 내려앉은 웅덩이를 바라보고 있자니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마른 가을풀들이 가득한, 굴러도 아주 푹신할 것같은 웅덩이여서 더 그랬는지도 모른다. 

엄마가 되고 나면 울기가 힘들어진다. 오래된, 부드러운 풀무덤으로 덮인 작은 분화구 앞에 서서 여기서는 울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amp;quot;cfile5.uf@03724F3C50867BDB14C982.jpg&amp;quot;









한걸음 더 내딛기 어려울만큼 세찬 바람을 뒤로하고 오름을 내려왔다. 

오름 정상을 한바퀴 돌며 멀리 바다를 보고싶었지만 그건 다음에... 아이들이 조금 더 큰 뒤에... 엄마는 아쉬움을 접고 후퇴했다.

바람에 연방 넘어지며 앙앙 울던 연호는 내려오는 길에 엄마품에 안긴채로 잠이 들었다. 

 

잠든 연호를 다시 유모차에 눕히고 연수 손을 잡고 걸어내려오면서 연수에게 "연수야, 아까 정말 날아갈 뻔했지. 잘하면 날 수 있었을지도 몰라" (옷자락을 잡고 팔을 펼치면 정말 날 수 있을 것 같았다. ^^) 하고 말했더니 

연수는 "난 날아가기 싫어. 난 엄마랑 언제까지나 같이 있을거야." 하며 내 몸을 꼭 붙들어 안았다.

정말로 날아갈 것처럼 센 바람이 무섭기도 했을테고, 늘 엄마와 함께 있고 싶어하는 다섯살 연수의 마음에 엄마와 떨어져 자기만 멀리 날아가는 것은 별로 하고싶지 않은 일인 것 같았다.

"그렇구나.. 그래, 엄마랑 언제나 같이 있자. 그럼.. 나중에 우리 같이 하늘을 날아보는건 어때?"

"어떻게? 엄마랑 같이?"

"응! 행글라이더같은 날개달린 작은 비행기도 있고, 낙하산같은걸 타고 날수도 있고.. 엄마랑 같이 타고 날면 재밌지 않을까?"

"음.... 좋아. 그럼 연을 탈 수도 있겠다! 엄마랑 연호랑 다같이 큰 연을 타고 날아가자~"

"그래. 좋아! 우리 나중에 꼭 그렇게 해보자!" 

^^ 

아이들이 자라는 동안, 언젠가 내 품을 떠나 저 혼자 훨훨 세상을 날아다니게 되기 전까지는

함께 손을 꼭 잡고 푸른 하늘을 날아봐야겠다. 



 


&amp;quot;cfile1.uf@0129E034508F63840E3B1C.jpg&amp;quot;




유자향 같기도 한 비자열매 향기가 은은하게 감도는 비자림은 산책하기에 참 좋았다.

천년 가까운 시간동안 살아온 크고 아름다운 나무들의 숲.

연수도, 연호도 산책로에 떨어진 돌멩이와 나무가지들을 줍고, 비자열매의 향기도 맡아보며 즐겁게 잘 걸었다.

닭뼈를 닮은 비자나무 잔가지를 연수가 주워서 보여주었다. 











비자림까지 오는 동안 차안에서도 곤히 잘 잤던 연호는 빵과 우유를 먹고는 기분좋게 비자림을 걸어다녔다.

제주에서 나는 화산석인 '송이'를 깔아놓은 길 위에서 제 마음껏 돌멩이를 줍고, 나뭇잎을 뜯어 내게 건네주는 어린 아이를 보고 있자니 

우리가 늘 놀던 아파트 놀이터의 폴리우레탄 바닥에서 잠시 떠나왔다는 사실이, 이런 시간이 우리에게 주어졌다는 사실이 새삼 신기하고 고마웠다.












연리지. 두 그루가 붙어자라는 나무.







'사랑해요' 

그전에도 연수와 연호가 가끔 내게 이 말을 해주곤 했다. 머리에 손을 대고 혹은 두 손의 엄지와 검지로 하트모양을 만들면서.

제주에서 지내는 동안 연수는 저 말을 참 자주 했다. 

바다에서 놀다가, 돌담 옆을 걷다가 "엄마, 사랑해~"하면서 내 다리나 목을 꼭 끌어안곤 했다. 

그럴때면 연수의 마음이 참 행복하구나.. 연수도 지금 나처럼 이 시간이 기쁘고 좋구나.. 느낄 수 있었다. 

엄마로 살아서, 아이와 함께 여행할 수 있어서 받는 가슴 뻐근한 선물이었다.








하루에 한번은 꼭 들리게 되는 월정리 바다.

제주에 있는 동안 외식을 거의 안했는데, 이 날 점심에는 내가 먹고싶었던 전복죽을 비자림 다녀오는 길에 느지막히 먹었다.

전복돌솥밥이랑 해서 아이들도 나도 아주 맛있게 잘 먹었다.

그리고 연수는 바다로 풍덩. ^^







바다야, 잘 있니.

연수가 매일 같이 뛰어놀던 바다. 제주를 떠나올 때는 '바다야, 잘 있어, 다음에 또 올께!' 인사하고 왔던 월정리 바다.


여행중에 매일 쓰려던 포스팅을 전화기가 버벅거려서, 졸리고 고단해서, 친구들과 수다떠느라... 못쓰고

인제사 다시 쓴다. 하루씩.. 쓰려고.

제주에서 보냈던 일주일의 시간이 쉽게 갈무리 되지는 않겠지만

마음안에 저 고운 모래의 감촉과 한밤중에도 들리던 파도 소리들을 잊혀지지 않게 담아두고 싶은 바램으로

조금씩 조금씩 정리해본다.











Posted by 연신내새댁
여행하는 나무들2012. 10. 22. 18:45
아침부터 비가 올듯말듯 하늘이 흐렸다.
비예보가 있어서 언제고 오겠지 했지만 해도 났다가 비가 한두방울 뿌리기도 했다가 아주 오락가락이었다.

오늘은 월정리에 내려와 살고있는 내친구 깨봉이 일을 쉬는 날이어서 연수를 데리고 낚시를 가주기로했다.
연수는 아침부터 낚시하러 언제 가냐고 묻고 또 물으며 기다렸다.
어제 마을방송으로 오눌 아침 일찍 해녀분들이 함께 '입어'를 할거라고 알려주길래 보고싶어 찾아갔다. 좀 늦어서 아쉽게 물에 들어가시는 모습은 못보고 먼발치서 바다위에 떠있는 주홍색 부표들만 보았다.
연수는 그림책에서만 보았던 바다생물들-갯강구, 따개비, 거북손, 집게, 고동 등등을 직접 보고 만져보며 신나게 현무암위를 누비고다녔다.
점심먹고 오후에 드디어 고대하던 낚시를 갔다.
비가 오락가락하는데 낚시갈수 있겠냐고 연수에게 물었더니 돌아온 대답은 "응! 할수있어! 바다에 가기에 딱 좋은 날씨야!" ^^
그래, 그렇지. 오늘, 지금이 언제나 제일 좋은 때이지.

무서워도않고 미끼로쓸 지렁이를 손가락으로 잡아 삼촌에게 건네주는 아이가 신기했다.
월정리 바다는 정말 맑다. 발앞의 바다는 하얗고 고운 모래위에 그야말로 투명한 물빛니고 조금 고개를 들고 바라보면 에메랄드빛이다. 이 바다는 꿈같다.
깨봉과 연수는 첫 낚시에 작고 예쁜 물고기 한마리를 잡았다. 그 녀석을 작아서 놓아준 뒤로는 내내 한마리도 못잡았다. ㅎㅎ 똑똑한 물고기들한테 지렁이 한통을 바치고 나서는 포기하고 조개를 주우러 물에 뛰어들어 둘이 신나게 바다를 뛰어다녔다.
아이를 낳아서 내가 아이에게 해주고싶었던 것은 바로 이런 것이었다.
맑고 아름다운 바다속을 마음껏 뛰어다니며 노는 것..
이런 생각을 하고있는데 후둑후두둑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연수가 외쳤다. "엄마, 바다에 비가 와!!"
바다에 비가 오고있었다. 바다위로 일제히 촘촘하게 떨어지는 빗방울들.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연수도 나도 오래 기억할수있었으면 좋겠다.

달물에 돌아와 더운물로 아이들 씻기고 포도랑 두유랑 과자를 좀먹고나자 둘다 늦은 낮잠같은 밤잠에 빠져버렸다.
지금은 비바람이 많이 분다. 작은 우리방은 다행히 따뜻하고 아늑하다.
나는 이제 달물서주는 저녁을 먹으러간다. 음식솜씨좋은 수지씨가 끓여준 된장찌개. ^^

저녁먹고 달물에 묵는 게스트들의 올레길 여행이야기를 잠시 듣다 돌아와보니 연호 혼자 잠이 깨서 여행가방을 뒤적이며 놀고있었다. 우리방이 밥먹은 휴게실 바로 옆이라 애들이 울면 소리가 들리는데 아무 소리도 못듣고 연호도 운 흔적은 없는것 같았지만 연호 혼자 잠든 형아만 옆에 있고 엄마가 없는 방에서 무서웠을 것을 생각하니 너무 미안했다.
달물의 이모삼촌, 깨봉 삼촌해서 모두 연호를 많이 예뻐하고 연호가 잘먹고 잘놀아주어서 정말 고맙다. 형아가 바다에서 놀때면 뛰어다니는 아야 구경도 하다가 저도 물에 발도 담궈보고하며 엄마와 함께하는 먼여행을 잘 지내주고있는 내 어린 아기.. 고맙다. 고맙다. 미안하다. 앞으론 너 잘때 엄마가 꼭 가까이서 귀잘 기울이고 있을께. 금새 또 순하게 잠든 연호야, 잘 자렴. 사랑한다.



&amp;quot;cfile21.uf@2044F13B5085362701B130.jpg&amp;quot;


&amp;quot;cfile21.uf@17296833508536532B1FF4.jpg&amp;quot;




&amp;quot;cfile8.uf@12404344508532F818A115.jpg&amp;quot;



&amp;quot;cfile24.uf@16689B37508533482F28CF.jpg&amp;quot;


&amp;quot;cfile7.uf@014E363C5085335E1FF7D9.jpg&amp;quot;


&amp;quot;cfile28.uf@030BEF3E5085338C089A37.jpg&amp;quot;


&amp;quot;cfile10.uf@03251C36508533AE16871A.jpg&amp;quot;


&amp;quot;cfile7.uf@02572B39508533CF089E89.jpg&amp;quot;




&amp;quot;cfile9.uf@121F1735508533FC30A6E6.jpg&amp;quot;



&amp;quot;cfile21.uf@1465B23F50853466218190.jpg&amp;quot;


&amp;quot;cfile4.uf@147E583E5085348920C363.jpg&amp;quot;


&amp;quot;cfile8.uf@12281435508534A5298702.jpg&amp;quot;



&amp;quot;cfile2.uf@03063F37508538052235A9.jpg&amp;quot;


Posted by 연신내새댁
여행하는 나무들2012. 10. 21. 21:25



제주에 왔다.
어제 아침일찍 공항으로 나서며 '내가 정말 제주에 가긴가는구나..'싶었다.
오래도록 꿈꾸고 기다렸던 여행이라 전날밤에는 잠도 설치고, 긴여행을 앞두고 아이들이 혹여 아프진않을까 걱정도 많이 했다.
다행히 새벽일찍 엄마아빠보다 먼저 일어난 두녀석 다 컨디션이 좋았다.
공항으로 향하는 길, 모두 신나고 설레었다.







비행기를 처음 타보는 연수는 비행기가 어떻게 뜨는지, 날개는 왜 이렇게 생겼는지, 하늘위에서 보는 땅은 왜이리 작은지.. 보는 것, 듣는 것마다 궁금해서 질문이 끊이지 않았다.
무섭지않냐고 물었더니 조금 떨리기는하지만 무섭지않단다. 연수가 지금 아이스크림바다처럼 엄마배속에 있을 때 비행기를 타본적이 있다고하자, 그때도 자기는 비행기타는게 안 무서웠단다. 그러면서 아기들이 엄마 배속에서 좀많이 큰뒤에는 엄마들이 비행기를 타거나 뭐 다른 일을 하더라도 애기들은 무서워하지않고 잘 있을수있다고 말해주는데 뭐랄까.. 정말 그시절을 기억하고 그리 말하는것같은 생각에 괜히 나혼자 뭉클하고 고마웠다.




연수를 임신하고있던 2007년 겨울 이후로 5년만에 다시 비행기를 타보는 나도 연수만큼, 연수보다 더 신기해서 아름다운 '구름바다' 풍경을 보고 또 보고했다. 그러다 무지개를 보았다. 비행기 날개 아래쪽에 생긴 작은 무지개는 혼자 아이들데리고 지낼 일을 앞두고 긴장하고있던 내게 ''잘 다녀올수있을거야'하는 응원처럼 들렸다.





오전 일찍 제주에 도착해 무얼할까 궁리하다 제주말을 타보고싶다는 연수의 요청에 따라 제주경마공원으로 갔다.
궁원은 아주 컸고 아이들 놀수있는 곳도 여러곳 잘되어있어서 연수는 엄마아빠가 깜짝 놀랄만큼 높은 밧줄다리위도 돌아다니고 말도 타보고 마차도 타며 아주 재미있어했다.





제주마에게 직접 풀을 먹여줄수도 았었는데 어린 연호도 겁내지않고 말입에 손바닥대어주기를 어찌 좋아하는지 한참동안 머물며 말구경을 했다.





점심먹고는 김녕미로공원에 들렀다.
제주여행기에서 보고 꼭가















Posted by 연신내새댁
여행하는 나무들2012. 8. 30. 22:59





지난 주말, 갯벌에 다녀왔다.

강화도 동막해수욕장. 

아빠가 회원으로있는 청년회의 가족수련회가 강화도에서 있었는데 동막해수욕장에서 만나 갯벌놀이도 하고 점심을 먹은 후 숙소로 가는 일정이었다.


연수는 주말 일정을 듣고난 뒤부터 내내 갯벌가는 날을 기다렸다.

바다생물에 대한 책들을 아주 좋아해서 예전부터 많이 읽었었는데 

얼마전에는 '내가 좋아하는 갯벌'이라는 도감도 사서 열심히 읽고 있던 터였다.

책에 나온 게, 고둥, 조개들을 저도 잡겠다며 어찌나 설레하던지 

연호가 감기기운이 있어 가는 날까지도 괜찮을까... 망설이던 엄마아빠는 결국 짐을 꾸려 강화도로 향했다.









강화도에 도착하니 다행히 오락가락하던 비가 멈추고 파란 하늘이 나왔다.

뻘에 처음 들어가본 연수는 보드라운듯 하면서도 거친 진흙의 느낌이 생소한지 한동안 밟고 또 밟아보았다.

연수가 아주 어렸을 때 전남 영광갯벌에 가본 적도 있고 세살 무렵엔 순천만에 들러 짱뚱어 구경을 한 적도 있지만 

직접 갯벌에 들어가 걸어본 것은 아니었고 또 너무 어릴 때 일이라 기억하기 어려울 것이었다.

그러니 이 날이 연수 인생에 첫 갯벌체험!











워낙에 흙과 물과 친한 연수인지라 갯벌에 적응하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아이를 키우다보면 아이의 첫경험이 엄마아빠에게도 첫경험일 때가 있다.

갯벌이 바로 곁에 있는 고장에서 자라지 않은 이상 엄마아빠도 언제 이런 뻘밭에 발을 담그고 오랜 시간 있어봤겠는가.

대학시절에 강화도로 엠티온 기억은 여러번 있지만 뻘에서 놀았던 기억은 없는 엄마도 이 날 참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무엇보다 풍경이 참 좋았다.

넓디 넓은 갯벌, 어디를 봐도 하늘과 구릉구릉한 먼 산과 뻘 밖에 없는 막막하고도 고운 풍경.

그래서 여기 이름이 동'막'인가 생각할만큼 그 넓고 아득한 뻘밭 풍경이 뭉클하고 아름다웠다. 

(이 날 사진은 모두 우리집 김작가님이 핸드폰으로 찍은 것이다. 좋은 풍경 남겨주셔서 감사감사~!^^)










연수는 신기하게 한군데만 제 허리까지 뻘이 쑥 빠지는 구덩이를 발견하고는 신이 나서 거기 철푸덕 주저앉아 한참 놀았다.

연호는 형아있는 곳에 저도 가고싶다고 낑낑거리다가 막상 데려가서 내려놓으면 처음 느껴보는 진흙의 감촉이 낯선지 

다시 얼른 안으라고 팔을 뻗곤해서 뻘밭에서는 놀지 못했다.

대신 모래사장과 그 가까운 모래갯벌에서 다른 형아누나들이 파놓은 물웅덩이를 오고가며 잘 놀았다.

두살배기에게는 여기가 훨씬 좋다. ^^ 

연호가 형아처럼 다섯살이 되면 어떨까? 그떈 우리 일행에 '뻘괴물'(연수는 이날 '엄마, 나 뻘괴물같지?!!'하며 놀았다. 정확하다, 아들아~ㅎㅎ)이 두 명이 될까.. 아님, 여덟살 형님은 조금더 우아하게 노실까? 궁금하다. ^^

 










모래사장 가까운 얕은 뻘에서 발견한 밤게!

요녀석이 밤게인지 확실하지는 않은데 세밀화도감을 수차례 읽고 내용도 제법 기억하고계신 김연수 선생님 말씀으로는 

'잘 물지도 않고 건들면 죽은 척하는 것을 봐서 밤게가 틀림없다!' 고 확신하셔서 게라면 다 그 놈이 그 놈같은 엄마는 그런가부다~~ 했다. ㅎㅎ










아이고~~ 우리 꼬맹이, 겁도 없다...!!! ^^

15개월 연호는 평소에도 놀이터에서 꼼지락거리는 곤충들을 모두 손으로 잡아보고 싶어하는 겁없는 녀석인데 

이 날도 어김없이 꼬물거리는 밤게를 한참동안 잡고 쳐다보며 무척 신기해했다.

연수는 저 녀석을 요리해먹자고 했으나(아들들아, 이러지 마라~~ㅜㅜ) 한참동안 잘 구경한 뒤에 다시 갯벌에 놓아주었다.

오늘 어쩌다 우리 눈에 띄어 고생 많이한 밤게야, 정말정말 고마웠다. 부디 탈없이 오래오래 잘 살아라...


이 날 연수는 모래밭에 앉아 손톱만큼 작은 조개들도 많이 찾아내고, 

뻘밭에서 꼼질거리는 짱뚱어들도 여러 마리 보고, 갯지렁이와 콩게도 만났다. 

큰구슬우렁이와 쏙을 한마리씩 잡고, 민챙이들도 여러마리 잡아서 모두 연수의 모래놀이 양동이에 담아두었는데 

굼실굼실 움직여서 양동이에서 탈출한 놈도 있고, 떠날 떄까지 남아있던 녀석들은 갯벌에 다 돌려보내주었다.  


연수가 소원한데로 제가 잡은 조개로 조개구이를 해먹지는 못했지만 

대신 포장마차에서 파는 삶은 고동을 천원주고 종이컵으로 한가득 사서 함께 먹으며 동막을 떠났다.

조그맣고 길쭉한 고동끝을 입에 대고 쪽 빨면 짭짤근근한 고동살과 물이 혀끝을 살짝 적신다.

연수는 고동 한 컵에 대만족이었다. 

이런 작고 행복한 경험들이 고단함을 무릅쓰고 낯선 곳으로 떠나게 해주는 힘이 아닐까.





내가 좋아하는 갯벌 - 10점
유현미 지음, 김준영 그림/호박꽃





이 책이 참 고마웠다. 

아는만큼 보이고, 보이는만큼 사랑하게 된다는 오래된 말을 떠올리며

나도 이번에 아이와 함께 이런저런 갯가 생물들을 보며 그 이름을 짐작해 불러보고 '정말로 여기 살고 있었네!'하고 반가워하고 경탄하는 동안

그 꼬물거리는 작은 생물들이 참 고맙고 그 존재들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연수가 관심갖고 열심히 알려고하지 않았다면 나도 몰랐을 존재들이고, 이만큼 반가웁지도 경이롭지도 못했을 것이다.  

아이의 호기심과 관심을 따뜻하게 북돋워주고 채워주는 책이 곁에 있어 참 다행이다.

이 '내가 좋아하는' 시리즈는 여러 자연생물들을 다룬 세밀화 도감들인데 아이들이 자라는 동안 가까이 곁에 두고 많이 도움받을 것 같다.










연수는 여행을 다녀와서 갯벌에 또 놀러가고 싶다고, 정말 재미있었다고 한동안 얘기했다.

자기가 잡았던 밤게와 큰구슬우렁이와 그 외 여러 갯벌동물들에 대해서 이러쿵 저렁쿵 여러 얘기를 해주었는데 

거진 책에서 본 것들이라 어찌 다 기억할꼬.. 같이 봤는데(분명히 내가 읽어준 것인데!) 어째서 나는 기억이 없고 얘는 기억할까... 신기해하면서도 엄마는 갯벌 빨래 많다고 궁시렁거리느라 또 한쪽 귀로 듣고 한쪽 귀로 흘리고 말았다.


연호도 다행히 감기가 심해지지는 않고 그럭저럭 나아가고 있다. 

환절기 계절변화에 적응하느라 어린 몸이 애쓰고 있는게 눈이 보여 안쓰럽다. 

그래도 밥 잘 먹고 씩씩하게 잘 노니 얼마나 고마운가..

아이들이 건강해서 가을에도 또 어디 아름다운 곳으로, 고운 생명들을 만나러 훌훌 떠날 수 있으면 더 바랄게 없겠다.


무튼, 이번 갯벌여행에서 엄마가 얻은 것은.... 

책에 써있는 것을 읽었을 때는 그저 그런가부다... 하고만 생각했던 '갯벌은 살아있다!'는 문구가 '진짜 그렇구나!'하는 깨달음. 

진짜로 무수한 생명들이 검고 축축하고 보드라운 저 물땅속에 살아서 바다를 건강하게 지켜주고 지구 생태계의 한 축을 그 작은 몸으로 굳세게 떠받치고 살고 있었다. 

고마워요, 갯벌. 많은 생명들.

이 척박하고 어려운 시대에도 살아있어줘서.. 우리들 곁에 있어줘서 정말 고마워요.






+ 덧. 문득 생각나서 연수 어릴때 다녀왔던 '전남영광 여행(똑순이, 남도를 만나다)'과 '순천만 여행(선암사 해우소 가는 길)' 포스팅을 다시 찾아 읽어보다가

한가지 정정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 연수가 머리로 '기억'하지는 못하더라도 그 어린시절에 만져보았던 고운 흙의 감촉, 갈대밭에 불던 바람, 빗방울의 느낌 같은 것은 몸에, 마음에 남아있을 것 같다.

그런 것들이 연수가 자라는 동안 흙을 좋아하고, 옷이 더러워지는 것에 개의치않고 뻘로 뛰어들고, 살아있는 것들을 사랑하고 알고싶어하고, 낯설고 새로운 감촉들 속에서 즐거움을 발견할 수 있는 마음의 밑바탕같은 것이 되어주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 연수야, 잘 다녀왔다구~ 어린 시절에 너와 함께 했던 여행들이 모두 알게모르게 지금의 우리를 든든하게 감싸주고 있는 것 같다구.. 얘기하고 싶었어.  

앞으로 연호랑, 바다랑 다같이 또 많이 가자~! ^^






Posted by 연신내새댁
여행하는 나무들2012. 6. 8. 23:49






지난 4월, 친정엄마와 함께 짧은 여행을 다녀왔다.

엄마의 엄마, 그러니까 나의 외할머니를 만나러 대구에 다녀온 것이다.

연수와 연호에게는 '엄마의 엄마의 엄마'를 만나는 것이다. ^^ 


강릉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원주로 오신 엄마를 원주고속터미널에서 만나 우리차로 함께 대구로 가는 길.

먼 여정이었지만 즐거웠다. 

나는 엄마를 만나 즐겁고, 아이들은 외할머니를 만나 신났다.

평범한 고속도로 휴게소의 평범한 놀잇감 말이지만 

좋은 사람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낼 때면 더없이 빛나는 존재가 된다. 

 








차를 타고가는 동안 창밖으로 보이는 봄산에는 분홍색 산벚꽃이 아름답게 피어있었다.

연녹색 새잎이 막 무성해지기 시작하는 4월말. 

날이 참 화창하고 좋았다.

엄마와 나는 모처럼 함께 여행하는 기분을 만끽하며 가족들과 이웃들의 크고작은 소식이 주를 이루는 수다를 가는 내내 신나게 떨었다.

연호는 잘 자고, 연수는 앞자리에서 엄마와 외할머니의 이야기를 재미나게 듣다가 아빠 전화기로 만화도 보며 나름대로 즐겁게 여행을 즐겨주었다.  

고등학교를 다닐 때 엄마는 늘 밤에 자고 계시다가 새벽 1시쯤 내가 독서실에서 돌아오면 일어나서 간식을 챙겨주셨었다.

그러면 나는 씻고 나와 엄마가 차려준 간식을 먹으며 그 날 하루 있었던 일들을 신나게 엄마에게 얘기하곤 했는데 

문득 그 새벽의 부엌 밥상앞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던 순간이 떠올랐다. 










대구 외할머니.

우리 엄마는 외할머니의 둘쨰딸이다.

결혼하고 대구에서 오랫동안 살았던 큰이모나 그래도 대구와 가까운 편인 창원의 셋째 이모와 달리 우리 엄마는 멀고먼 강원도 강릉으로 시집가서 친정에 자주 오지 못했던 딸이었다.

강릉과 대구는 지리적으로 멀기도 하고, 교통편도 기차가 편도만 7시간 가까이 걸려 오가기 쉽지 않았다.

강릉 우리집이 농사일이 많고 또 엄마의 시아버지셨던 우리 할아버지가 원체 엄하고 보수적인 분이었다는 것도 엄마의 친정 나들이를 어렵게 하는 원인이었을 것이다.


시할머니까지 모시는 층층시하에서 어린 시동생들도 돌보며 큰 규모의 집안 살림을 도맡아하는 큰며느리였던 우리 엄마는 

자그만 체구에 본래 몸이 많이 약하시지만 마음만은 무척 강단진 분이라 참 씩씩하게도 그 많은 역할을 다 해내셨다. 

나는 늘 우리 엄마의 씩씩하고 당차고 쾌활한 성격을 존경하고 좋아했는데 

이제 내가 엄마가 되고 아내, 며느리, 올케 등등의 역할을 맡고 보니

엄마의 밝고 씩씩한 행보 아래 드리워져 있었을 엄마의 힘겨움과 고단함을 살수록 조금씩 더 짐작할 수 있어서  마음이 찡하고 아프다. 

하루 또 하루, 반복되고 또 반복되는 

밥상을 차리고 치우는 일, 자식들을 먹이고 씻기고 입히고 재우는 일, 집안을 쓸고닦는 일, 그리고 생계를 위해 해야하는 또 그 많은 일, 일, 일.... 

어떻게 다 해내셨을까. 어떻게 다 견디셨을까. 그 끝없는 반복과 고되고 힘든 나날들을..

긴 시간동안 엄마의 자리를 지키며 살아온 엄마와 외할머니가 이제 엄마 5년차인 내게는 너무도 까마득하게 느껴졌다.  



 






어린 시절 내게 대구 외가에 오는 일은 무척 설레는 일이었다.

일년에 한 번도 아니고, 그보다 훨씬 오래, 그러니까 몇 년만에 한번 있는 큰 일인데다

강릉에서 새벽에 기차를 타고 떠나 영주역에서 한번 내려 가락국수를 후다닥 먹고 다시 기차를 타고 오랫동안 달려 동대구역에 도착하는 그 여정은 

내 어린 시절의 유일하다시피한 먼 여행이었던 까닭이다.


나는 이 여행이 두렵기도 했고 좋기도 했다.

대구에 오면 나를 예뻐해주는 외사촌 언니들도 있었고, 조금 엄한 분위기인 강릉의 친가와는 또 다른 분위기로 떠들썩하고 다정하게 맞아주는 외삼촌들 이모들도 좋았다. 

하지만 아마도 어렵게 한번 친정에 온 엄마가 모처럼 쉬는 동안 나는 엄마와 떨어져 이모네에 가서 언니들과 함께(우리 친언니도 함께) 자기도 하고 그랬는데 

그때 엄마가 보고싶다고 밤에 엄청 울었던 기억도 있다. 


이번 여행에서 새로 알게된 일도 있다. 

엄마가 셋째인 나를 낳고 몸이 너무 안 좋아서 5~6개월쯤 된 갓난아기인 나만 데리고 외가에 몸조리를 하러 오셨던 적이 있었단다.

그때 큰이모가 나를 위해(실은 몸 아픈 엄마를 위해) 새 보행기까지 사다주며 엄마랑 좀 떨어지게 해보려 했으나

어찌나 앙앙 울며 외할머니한테도 안가고, 큰이모한테도 절대 안 안기며 잠시도 엄마 품에서 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얘기를 듣고 연수와 연호를 탓할 일이 하나도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ㅠㅠ

우리 애들이 엄마와 안 떨어지려하는 것은 아주 오랜 뿌리가 있었던 것이다... 

더불어 그런 나를 끌어안고 젋고 아픈 날들을 견뎌주신 우리 엄마께 다시금 깊은 감사와 죄송한 마음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아이구, 엄마 미안해...ㅠ










남편은 외할머니를 처음 뵈었다.

할머니는 올해 연세가 여든일곱이신데 몸이 많이 약해지셔서 우리들의 결혼식때 서울에 오지 못하셨다.

우리가 일찍 찾아뵈었어야 하는데 결혼후 곧이어 연수 낳고, 키우고.. 또 연호낳고 한다고 죄송스럽게도 빨리 찾아뵙지 못했다.

그 사이에 외할머니는 많이 아프셔서 병원에 한번 입원하기도 하셨고

엄마가 며칠동안 대구에 와서 외할머니와 함께 지내시기도 했다.

그래서 나도 마음이 조금 급해졌다. 

다행히 할머니는 퇴원하셨고 아직은 큰 어려움없이 생활하고 계시지만 건강이 예전만 못하시다는 엄마 얘기를 듣고

가끔 강릉에 갔을때 엄마와 함께 외할머니께 전화만 드리면서 마음속으로 '어서 가야지, 아이들데리고 가서 뵈야지..' 생각하다가

드디어 이번에 날을 잡은 것이었다.


외할머니는 처음 보는 외손주사위와 증손주들을 다정하게 맞아주셨다.

불고기를 볶고 생선을 굽고 나물을 무쳐 손수 차리신 정성스런 밥상에서 멀리서 오는 자손들을 맞느라고 분주히 움직이셨을 외할머니의 모습이 그려졌다. 떡과 과일도 사다놓고, 아이들이 먹을 과자까지 까만 봉지에 담아 장봐 놓으신 것을 보니 할머니의 반가움, 뭘 먹일까 하는 고민 같은 것들이 그대로 전해져 뭉클했다.

외할머니는 내 손등을 연신 두드리시며 늘 어린 모습으로 기억하고 있던 외손녀가 어느새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서 이렇게 찾아온 것을 신기하고 대견해하셨다.


남편은 우리를 마중나와 있던 외할머니를 멀리서 보고 '아 저분이구나' 했다. 

'장모님과 워낙 닮으셔셔'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단다.

우리 엄마는 외할머니를 닮았고, 나는 엄마를 닮았다.

외할머니는 몇십년 후의 우리 엄마 모습이고 엄마는 또 몇십년후의 내 모습. 

그리 생각하니 미래의 나를 곁에서 마주 대하고 있는 듯해 엄마도, 외할머니도 무심히 볼 수가 없었다.









내가 기억하는 외가의 모습이 그대로 있었다. 

이제는 '용계동 옛집'이 된 이 집에.

작년부터 외할머니는 반야월에 있는 자그마한 아파트에 살고 계신다.

40년 가까이 사셨던 이 집이 이제는 너무 낡아서 겨울에는 춥고, 따신 물도 안 나오고 해서 할머니 혼자 지내시기에 너무 불편하다고 대구에 함께 사는 외삼촌께서 할머니가 사실 아파트를 하나 얻으셨다. 

그래도 할머니는 2~3일에 한번은 용계동 이 집에 오신단다.

오셔서 화단에 물을 주고, 마루와 거실 바닥에 걸레질을 하시고 잠시 앉아 집안팎을 둘러보신 다음에

오랜 친구들이 있는 용계동 마을회관에 가신다.

다행히 지하철로 두 정거장 거리라 아직은 힘들지않게 오고 가신다했다.


우리 엄마는 본래 밀양 가까이 있는 삼랑진에서 나고 자랐다.

삼랑진극장이 있었던 삼랑진 읍내에서 씨앗 종묘상을 하셨던 외할아버지가 살아계셨던 엄마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삼랑진에 엄마와 함께 가보고 싶다고 늘 생각해왔다. 다음에는 꼭 삼랑진에도 가봐야지..

어린 소녀인 엄마가 영화를 보고, 처녀가 된 이모가 결혼식도 했다는 삼랑진극장 앞을 꼭 걸어보고 싶었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엄마가 결혼해 강원도로 떠난 뒤 

외할머니는 외삼촌들을 데리고 대구 이 용계동 집으로 이사를 하셨다. 

대구에서 연수원 사업을 시작한 이모부를 도와 외삼촌도 연수원에서 일을 하기로 하면서 삶의 터전을 대구로 옮긴 것이다.


그래서 내 외가의 추억은 모두 대구 용계동 이 집에 깃들어있다.

아빠가 기억하시는 '처가'도 바로 이 집이겠지..

용계동 외가에는 작은 다락방이 있고, 마당에 작은 뜨락이 있고, 또 화장실과 창고 위쪽으로 장독대가 놓여있는 길다란 옥상이 있다.
어린 시절에는 아주 높다고 생각했던 옥상이 지금 올라가보니 아주 낮았다.

연수는 다락방을 보고는 '엄마, 외할머니 집에도 다락방이 있네? 희범이네 집에도 다락방이 있는데! 우리도 나중에 다락방있는 집으로 이사가자!' 했다.
마당도 있고, 다락도 있는 집. 그래그래.. 엄마의 오랜 바램이지..^^
마당에 자주빛 모란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외가가 깨끗하게 비어있는 것을 보니 그냥 내가 그 집에서 살고 싶었다.










내 어린 날, 외할머니는 모처럼 외가에 온 어린 외손녀를 데리고 대구의 큰 시장인 '칠성시장'에 가서 고운 팬티를 여러장 사주셨었다. 아직도 그 팬티의 자잘한 꽃무늬를 기억한다.

이번에도 외할머니는 용계동에서 가까운 '방촌시장'에서 연수에게 팬티를 사주셨다.

'메이플 스토리'라는 만화 주인공이 그려진 그 팬티를 연수는 아주 좋아해서 대구에서 돌아온 후 어서 외(증조)할머니가 사준 팬티를 입혀달라고 졸랐다.

옛날과 달라진게 있다면 이번에는 내가 외할머니께 꽃무늬 셔츠와 조끼를 사드렸다는 것이다.

외할머니께 처음으로 사드려본 옷이다. 고운 분홍색 옷을 입고 웃으시던 할머니 모습이 오래 마음에 남을 것이다.



대학 새내기 여름방학에 나 혼자 대구에 온 적도 있었다.

일주일 동안 외가에서 지내면서 아침이면 할머니가 차려주시는 밥을 먹고 길을 떠나 

혼자 청도 운문사로, 동화사로, 갓바위로 돌아다녔다.

어떤 프랑스인 청년을 만나 하루동안 어설픈 영어로 가이드 역할을 하며 대구박물관도 구경했다. 

그때 나 좋다고 두고두고 연락해 곤혹스러웠던 그 프랑스청년은 잘 살고 있는지.. 아마 예쁜 프랑스 아이들의 아빠가 되었겠지.. ㅎㅎ

연애와 인생에 대한 스무살의 고민들이 참 버겁다고 느끼던 어리디 어린 내가 

티셔츠를 입고 운동화를 신고 아침 일찍 대구 외가를 걸어나갔다가 해질 무렵 터덜터덜 돌아오던 날을 용계동 외가 앞길에서 추억했다.

이제는 내 곁에 뛰어다니는 다섯살 내 아이의 그림자가 길게 서있었다.

할머니가 다시 한번 마루에 걸레질을 마치신 후에 우리는 옛집의 대문을 닫고 나왔다. 

마을회관에 들러 할머니의 친구들께도 인사를 드리고 인사차 사간 두유를 나누어먹으며 잠시 놀다 반야월 아파트로 돌아왔다.


오랫만에 온 우리의 외가 나들이 소식을 듣고 외삼촌 두 분과 창원 이모 내외도 외할머니댁으로 오셔서 반갑게 만나뵈었다.

그 분들도 아주 어린 날의 나를 기억하고 계시고, 나는 젋은 그 분들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 모두 서로의 나이든 모습에 깊이 놀라고 말았다. 

그 사이 잠깐잠깐 결혼식장 같은 곳에서 뵌 적도 있지만 방에 무릎을 마주 하고 앉아 천천히 얘기 나눈 것은 정말 오랫만이었다. 

나는 아주 젋은 막내 외삼촌이 법대를 다니며 고시공부를 하시던 시절에 그 외삼촌의 책장에 있던 야한(지금 기준에서 보면 그저 위트있다고 할 정도인 만평인데, 음.. 아직도 기억나는걸 보니 시골소녀에게 정말 문화적 충격이었긴 한가보다~^^;;) 어른들 만화를 보고 충격(?)을 받았던 기억을 가지고 있는데

어느새 그 외삼촌의 아들이 대학 새내기가 되었다니 도대체 얼마의 시간이 그 사이에 있는건지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반가운 만남과 진한 여운이 많아서 1박2일의 짧은 여행이 아주 묵직하게 느껴졌다.

외할머니가 용계동 옛집 마당을 걸어나오시는 모습을 찍었다.

이 모습이 몹시도 그리워지는 날이 오리라...

그런 날이 오기 전에 다시 또 할머니를 만나러 가야지.



엄마가 있는 사람은 쓸쓸하지 않다.

옛날 분들이 부모님을 잃고 장례를 치를 때 자신을 '고애자'라 칭했다한다.

외로울 고 자에 슬플 애 자를 쓰는데 아버지를 잃으면 고 자만 붙이고, 어머니를 잃으면 애 자를 붙여 불렀다.

그래서 아버지를 잃은 사람은 남은 일생이 외롭고, 어머니를 잃은 사람은 남은 일생이 슬프다고들 말한다.   

우리 친정 부모님과 시어머님은 아버님들은 돌아가셨지만 아직 어머니들이 살아계신다. 그래서 연수와 연호에게는 외증조할머니가 세 분이다. 

우리 부모님들꼐도, 내게도, 아이들에게도 참 고맙고 고마운 일이다.

우리 시아버님만 어머니를 내가 결혼하기 몇 해전에 잃으셨는데, 그래서 그런가.. 시아버님을 생각하면 뭔가 마음이 아리다.


엄마가 계시다는 것, 엄마가 내 곁에, 비록 멀리 계시더라도 이 세상에 함께 계시다는 것은 

얼마나 든든하고 고맙고 좋은 일인지...

예전에 우리 시어머님의 엄마인 청상 시외할머니께서 나와 아이들을 먹이고 돌봐주시느라 종종걸음으로 바쁜 어머니를 보시며 '에고, 할머니 노릇하느라고 고생이 많다' 하시는 말씀을 듣고 마음이 뭉클했었는데

이번에 외할머니도 엄마를 보며 똑같은 얘기를 하셨다.

엄마는 그런 존재다.

자식이 아무리 나이가 많이 들었어도, 애쓰고 고생하는 모습이 눈에 밟혀 늘 걱정해주는 사람.

나를 알아주는 사람. 태어나서 지금까지의 내 역사를 모두 알고 있는 사람. 

내 힘든 것과 내 애쓰는 일을 모두 알고 응원해주는 사람. 

그 한 사람, 우리 엄마다.










엄마의 엄마가 계셔서 참 좋다. 

우리 곁에, 내 엄마 곁에 이렇게 함께 계셔주셔서 정말 감사하다.

외할머니.. 부디 오래오래 건강하셔요.









Posted by 연신내새댁
여행하는 나무들2012. 3. 17. 23:07










브라키오사우르스.

나는 이 공룡이 좋다. 둘리 엄마 같아서. ^^

'둘리야, 얘가 또 어딜 갔지? 둘리야, 둘리야아~~' 
타임머신을 타고 엄마와 함께 살던 시대로 돌아간 둘리가 '난 안 갈거야, 엄마랑 여기서 계속 살꺼야'하는데 
아기 희동이가 몰래 둘리 다리에 끈을 묶어놔서 '깐따삐야!' 주문과 함께 날아오른 바이올린 타임머신에 끌려
둘리도 다시 정든 고향을 떠나오고 말았다.
그때 방금 전까지 곁에 있던 둘리가 없어진 것을 보고 '둘리야, 둘리야' 부르던 엄마 목소리가 우주에 부드럽게 메아리쳤었다.

아직도 기억한다. 생각하면 또 코끝이 찡한걸. ㅎㅎ
참 부드럽고 따뜻한 목소리였다.
어릴때도 그 목소리와 그 대사가 잊히지 않아서 이 사람 저 사람 들려주기도 했었다. '어때, 나 둘리엄마랑 똑같지?' 하고. ^^;
엄마가 된 지금 내 아이들을 그렇게 불러보고 싶다. '연수야~ 연호야~' 
 










스테고사우르스.

'엄마, 우리집에 공룡이 있었으면 좋겠어. 초식공룡은 안 무서우니까 괜찮잖아. 우리집 화분에 풀 먹고 살면 되지..' 하는 연수.
그래.. 엄마도 초식공룡은 괜찮다.. 토끼처럼 키우지 뭐.. 같이 잔디밭에 산책도 나가고. 

남자아이들이 있는 집이면 언제고 한 번은 찾아온다는 '공룡시대'가 지난 겨울부터 우리집에도 찾아왔다.
외가 삼촌으로부터 물려받은 공룡 모형들을 가지고 잘 놀기에 공룡이 나온 그림책과 사전 하나를 사주었더니 금새 빠져들어서 이름을 외우고, 엄마아빠연호까지 모두 공룡 역할을 한가지씩 시키면서 겨울 끝자락을 공룡으로 채우며 살았다.












티라노사우르스의 얼굴.

연수는 육식공룡이 좋단다. 그래서 역할놀이를 하면 자기는 꼭 티라노사우르스나 타르보사우르스같은 육식공룡을 한다.
'캬오오~~~' 소리도 실감난다.
불쌍한 아기 안킬로사우르스(연호)나 엄마 브라키오사우르스는 초식공룡들이라 얼른 도망가거나 우리를 잡아먹지말고 같이 빨간열매를 먹자고 회유해야한다. ^^;;
그러나 아빠는 같이 육식공룡이 되어서 서로 잡기놀이도 하고 싸우기도 하며 제 맘을 맞춰주니 연수는 아빠 퇴근할 시간을 목빠지게 기다리곤 했다. 

연수가 하도 공룡소리를 크게 지르기도 하고 자기는 날아다니는 파충류 프테라로돈 이라며 풀쩍풀쩍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기도해서
내가 '놀래키오사우르스'라는 별명을 붙여주었었다. 엄마를 자꾸 '놀래키는' 공룡이라는 뜻이었다. ㅎㅎ 
그런데 나중에 연수가 즐겨 역할을 맡은 '타르보사우르스'가 알고보니 '놀라게하는 도마뱀'이라는 뜻이었다.
역시... 뭔가 끌리는데가 있었던계야. 하는 짓도 비슷하고...^^;;;











천정에 떠있는 것은 바다속을 헤엄치던 엘라스모사우르스 화석 모형이고, 
아빠와 연수가 보고있는 것은 뿔이 세개 있는 트리케라톱스 화석.

여기는 서대문자연사박물관 이다. 
역시 공룡 좋아하는 아이들의 필수 코스다. 
다양한 공룡 화석이 많지는 않지만 실감나게 잘 전시되어 있고, 지구에 최초로 나타난 생물들의 화석과 여러 종류의 암석(우주에서 날아온 운석 조각도 있다), 동식물 등 다양한 전시물이 어른들에게도 무척 흥미롭다.(학교다닐땐 왜 그리 재미없었는지!! 인제 보니 이렇게나 신기하고 재미있는데~!!!^^) 
'지구의 탄생' 같은 짧은 영상물도 볼 수 있어 연수가 더 커서 오면 더 재미있게 오래 볼만한 것들이 많았다. 
밖에는 큰 공룡미끄럼틀이 있고 공룡화석이 묻혀있는 모래놀이터도 있어 어린 아기들에게는 안보다 밖이 더 재미있을 수도. ^^ 

아. 서대문자연사박물관에 왔다가 밥까지 한끼 먹고 돌아가려고 한다면 추천하고픈 곳이 있다.
연희동 사러가쇼핑 바로 옆에 있는 '이품'이라는 중국집.
정말 맛있다. ㅎㅎ 면요리 좋아하는 우리 부부가 꼽은 서울 3대 면요리 맛집이다. (지극히 개인적 평가이나 곧 나머지 두 집도 한번 포스팅하겠음. 같이 가보고싶은 분들은 언제든 전화주세요~~ ㅎㅎ)
연신내 살 때 이 집에 참 여러번 가서 먹었다. 이사오며 이품과 너무 멀어진다는 것이 어찌나 아쉽던지..ㅠ
짬뽕, 짜장면, 군만두 모두 흔히 맛보기 힘든 깊고 신선한 맛을 자랑한다. 











'알베르토사우르스. 육식공룡으로 다른 공룡들을 먹고 살았다. 크기는 사람보다 훨씬 훨씬 컸다.... 공룡은 약 2억7천만년전에 지구에 처음 나타났다...'
이건 모두 연수가 혼자 중얼중얼 하는 얘기들. ^^
외운 것도 있지만 주로는 책에 이 공룡이 뭘 먹었는지, 크기가 얼마만 했는지 그림으로 잘 설명되어 있어서 보고 제 나름대로 말을 만드는 것이다. 삼성출판사에서 나온 '어린이공룡백과'라는 책인데 그림도 좋고 설명도 적당하여 두고두고 잘 볼 좋은 책이다. 블로그 이웃 고래님(고래가 부르는 노래)의 책소개를 보고 샀는데 역~~시 고래님의 안목은 신뢰할 만하다.

'엄마 왜 공룡이 지구에 살았어?'
'엄마 왜 공룡이 다 없어졌어?'
'엄마 왜 공룡이...'

하루종일 공룡에 대한 질문을 너무 많이 받아서 처음에는 나도 저 책을 읽어보고 이렇게 저렇게 나름대로 과학적인(?) 대답을 해주다가 나중에는 '에라 모르겠다'하고 그냥 내 맘대로 얘기를 지어내서 대답해주기도 했다. 

'그래야 재밌잖아.. 공룡이 지구에 살아서 얼마나 재미있고 좋니.. 연수랑 엄마랑 화석발굴도 할 수 있고' 라든가
'공룡은 없어진게 아니라 우주선을 타고 우주의 다른 별로 살러간 거 같아.. 안그럼 왜 그때 같이 살았던 거북이랑 잠자리같은 애들은 다 지금까지 남아있겠어? 기후변화나 화산폭발로 멸종한게 아니고... 우주 어딘가엔 아직도 살아있을거야. 나중에 우리가 찾아볼까?' 등등.... 
매번 같은 답을 말하기가 지겨워서 꾀가 난 엄마의 얼렁뚱땅 대답이 연수에게는 더 인상적인지 
회사에서 돌아온 아빠를 앞에 두고 '공룡은 우주에서 아직 살고있다'는 엄마표 학설을 진지하게, 끝까지 주장하곤 했다.(아빠는 물론 말도 안된다며 콧방귀! 흥!! 두고보시지~~)











그리하여 겨울이 끝날 무렵, 연수는 매일 아파트 화단에서 공룡 화석을 발굴했다.
덕분에 우리는 겨우내 얼었던 땅이 봄볕에 질퍽하게 녹고 있는 현장에 엎드려
흙이 봉긋하게 부풀어오르는 그 느낌을 두 발로, 두 손으로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봄과 함께 유치원 생활이 시작되면서 연수의 공룡시대도 조금은 시들해졌다.
그러나 언제고 또 화려하게 부활하는 날이 있을 것임을 나는 안다.
지금까지 지켜보니 연수의 놀이와 관심은 늘 순환하고 또 그때마다 더 깊어지곤 했다.
다시 공룡시대가 찾아오면 다시 서대문자연사박물관에도 가보고 그때는 꼭 이품에 들렀다와야지. ^^

뒤늦게 겨울 사진 정리하고 있다. 

 

Posted by 연신내새댁
여행하는 나무들2011. 10. 21. 10:22









바람이 세게 불었다.
전날 내린 비로 하늘은 깨끗하게 씻겨 있었고  
강물은 짙푸른 색으로 물결치고 있었다.
이 세상 것이 아닌듯한 웅장한 구름들이 멀리서 일어나 하늘을 가로지르곤했다.











가래여울에 가을이 왔다.
가래여울 우리 텃밭에서 갈대밭과 자전거도로를 건너가면 한강이 나온다.
시멘트로 덮히지않은 날 것 그대로의 한강이.
거실 창문으로 눈부신 하늘과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들을 보고 있다가 내가 말했다.
"이런 날은 가래여울에 가야해.."
 










연호 싸안고, 연수 장화신겨서 네 식구가 가래여울로 나섰다.
'이렇게 바람부는데 꼭 가야겠어?' 툴툴거리는 남편을 '오랫만에 작품활동 좀 하시지요, 가래여울에 억새가 끝내줘요'하고 구슬렀다.
'누가 말려'하고 따라나선 김작가님. 도착하더니 억새밭으로 신나게 달려간다.
오랫만에 사진기들고 가슴두근거려하는 남편을 보니 기뻤다.

















그리하여 탄생한 작품들. ^^
김작가님 아직 녹슬지 않았어요.










밭에 가는데 뭐 차려입고 가랴.. 하고 집에서 입던 옷 그대로 입고 나왔는데(애들 옷갈아입히고 울기전에 바쁘게 나오다오면 내 옷은 늘 이렇다;;) 
사진을 찍어놓고보니 꼭 히말라야 고산지대에 사는 주민같다. ^^;;
저 빨간 잠바와 초록색 바지는 모두 엄마가 입으시던 것들이다. 
나는 이 옷들이 참 좋다. 















텃밭과 한강을 좋아하는 연수.
갈대밭 사이를 신나게 뛰어다닌다.
연수 사진을 찍고있는 아빠의 그림자가 따뜻하다.











하늘이 참 좋았다.
위쪽의 자전거도로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멈춰서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갈대밭으로 내려와서도 찍고..
아름다웠다.











세상이 아름답다는 것은 보지 않으면 잘 모르는 것 같다.
아름다운 것들을 아이들과 함께 많이 보고싶다.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 곳인지, 우리가 이렇게 아름다운 세계 속에서 살고있다는 것이 얼마나 기쁘고 고마운 일인지.. 
감동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강일동 우리집에서 제일 좋은건 가래여울이 가깝다는 것이다.
가래여울에 와서 한강을 보고있으면 답답했던 마음이 시원해진다.
어린시절 아빠와 함께 경포바다를 볼 때처럼.
끊임없이 밀려오는 큰 물결을 보고있노라면 내게 닥쳐왔던 많은 일들과 앞으로 다가올 일들.. 그 모두를 끌어안고 일어설 수 있을 것같은 단단하고도 후련한 마음이 되곤 했다.











네살 연수는 큰 강물 앞에 서서 무슨 생각을 할까.
손에 들고 마시는 달콤한 핫쵸코 생각이 머리속에도 가득했을까. ^^












바람이 많이 불어서 강물이 제법 높게 일렁거렸다. 
사람들 생각이 났다. 
어려운 삶의 한 고비를 넘고있는 친구들.
끊임없이 밀려오는 파도를 넘듯 삶의 어려운 순간들을 넘고 또 넘고...  
그러면서 물결 언저리로 반짝이는 모래들을 쌓아가는 일. 그게 우리들의 삶인가.. 싶었다.
내 삶도 또 한 파도를 넘고있는 중일터.. 언젠가는 저리 고운 진흙이 쌓인 가장자리에 가 닿게 되기를.

 










강가에서 아이들이 논다.
서울의 한강이 모두 제모습을 찾는 날이 오면.. 아이들이 어느 강가에서나 저렇게 고운 금빛모래를 만지고, 조약돌같은 웃음을 웃을 수 있겠지.
















연수는 흙땅위에서 맨손으로 성을 만들며 한참 놀았다.
돌아다니기 좋아하는 엄마 때문에 강바람 잔뜩 쐬고 감기걸리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다행히 둘 다 무사했다.
지금까지 지켜본바 연수는 나들이에 있어 엄마를 능가하는 아이인것 같고
엄마랑 형아에게 끌려다니며(?) 단련된 연호는 과연 어떨지...
좀더 큰 아이들과 함께 할 날들이 기대도 되고 걱정도 된다. ^^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 아쉽게 강가를 떠나와 텃밭에 잠시 들렀다.
연수가 꼭 삽질을 해야한다고 해서 말이다.. 











배추며 무들이 푸르게, 싱싱하게 자라고 있었다. 
아침저녁으로 추운 서리를 맞으면서도 푸르게 자라고 있는 곡식들을 보며 '희망'이란 말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희망이 있다. 푸르게 자라는 희망이.


Posted by 연신내새댁
여행하는 나무들2011. 3. 14. 00:46









3월의 두번째 주말. 날이 참 포근했다.
늦잠없는 연수 덕분에 온가족이 함께 일어나 아침먹고 주말맞이 집청소까지 하고나니 할일이 없다.
봄햇살이 밖으로 나오라고 부르는 것 같다.
어딜 갈까.. 슬슬 걸어 동네 산책을 할까, 아니면 차를 타고 좀 멀리 갈까.

문득 이 집으로 이사올 때 말로만 듣던 '미사리 조정경기장'이 집에서 멀지 않다고 얘기하며 웃었던 생각이 났다. 
손빠른 남편이 슥슥 검색해보더니 "우리집에서 3.5km밖에 안돼! 걸어서도 가겠다~"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하여 연애 시절에도 못가봤던 '미사리'로 세식구가 봄나들이를 하게 되었다. 

미사리 봄물빛이 어떨까.. 마음이 설렜다.    
하지만 새로 지은 아파트 동네들을 끝으로 서울을 벗어나 하남에 들어서자마자 
보금자리주택을 짓기위한 LH공사의 토지수용에 항의하는 주민대책위원회의 플랭카드들이 길게 이어져 있었다. 

팽창하는 서울의 외곽풍경은 어디나 비슷할지 모른다. 
그린벨트를 풀고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짓고.. 원주민에 대한 이주.생계대책과 보상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오래된 주택가 안에서 진행되는 재개발, 재건축 현장에도 원주민들의 분노와 한숨과 절망이 섞인 플랭카드가 걸려있지 않은 곳이 없다. 
그렇게 지어진 아파트들중에 서민주거안정대책으로 공급되는 소수의 장기전세아파트 세입자인 나는 이 살풍경의 수혜자인 것이다. 왠지 죄송하고, 마음 불편해지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플랭카드 행렬이 끝나는 즈음에 미사리가 있었다.
 











미사리조정경기장(공원)에 들어서며 우선 그 큰 규모에 깜짝 놀랐다. 
어디에 차를 세울까.. 경기장을 따라 죽 늘어선 주차장들을 빙 둘러보다가 이 자동차놀이장을 발견하곤, 연수보다 엄마가 먼저 흥분하고 말았다.
"와~! 연수 저거타면 진짜 좋아하겠다! 연수야, 저기서 자동차탈까?"
"좋아~!!!"
연수, 차에서 내리자마자 쌩~ 달려간다.










놀이공원에 별로 가본적이 없는 연수. 진짜 모터달린 차를 운전해보는건 처음이다.
바닥에 있는 페달을 밟으면 앞으로 나가고, 발을 떼면 멈추는 단순한 작동이지만 혼자 잘 탈 수 있을까... 걱정도 되었다.
핸들이며 의자가 고장난 것도 좀 있어서 여러 대를 바꿔타가며 신중히 골라야했다.










처음에는 좀 긴장하는듯하더니 이내 씽씽 잘도 탔다. 무척 재미있는 모양이었다.  

지방에 계신 연수 할아버지할머니께서 우리집에 놀러오시면 여기에 꼭 모시고오자.. 고 아빠랑 둘이 얘기했다. 
연수가 이렇게 자동차타는 모습을 보시면 할아버지할머니는 너무 좋아하실 것이다.
아마 내내 웃으며 연수 곁에서 함께 놀아주시겠지.. 올 봄에 그럴 날이 꼭 있기를.  
  









가다 서다만 반복하는 단순한 자동차운전이 심심해보이기도 해서 처음엔 "30분을 언제 다 채우냐"고 걱정하던 아빠. 
첫운전하는 아들 뒤를 슬슬 따라다니며 다른 차와 부딪히지 않게 봐주다보니 어느새 30분이 훌쩍 다 가있었다.    
차에서 내리지 않겠다고 버티는 연수와 실갱이하다 결국 30분을 더 타기로 했다. --;;
작은 자동차 한대를 30분동안 타는 비용이 무려 5천원.
"앞으로 아들 둘을 여기 와서 몇번만 태우면 차 한대 사는 비용이랑 맞먹겠다"며 "연수야, 아빠가 너 차한대 뽑아줄께!"하고 호기롭게 장난감자동차 검색에 나서셨으나... 저렇게 큰 아이차를 싣고오려면 우선 아빠차부터 큰차로 바꿔야한다는 안타까운 현실을 확인하고 포기하셨다. ㅎㅎ
씽씽카(킥보드)나 네발자전거 정도는 싣고올 수 있을테니 연수가 자동차는 한번만 타고, 그런 것들을 더 좋아해주기를 바랄뿐이다.
  









2km에 달하는 긴 조정경기장 옆으로는 넓은 잔디밭이 길게 펼쳐져있었다. 
여름이 오면 이 잔디밭이 모두 물가를 찾아나온 가족들의 돗자리로 가득 차겠지...
우리도 이제 집에 누가 놀러오면 차로 10분 거리밖에 안되는 조정경기장으로 꼭 같이 놀러나오자고 얘기했다. 













 
연수는 큰 잔디밭의 규모에 압도된듯 혼자 아주 멀리까지 걸어가보기도 하고,
뒤에 천천히 따라가고 있던 엄마를 향해 한달음에 달려오기도 했다.










"연수야~!" 부르면 33개월 연수가 뒤돌아보고..










"욱아~!" 부르면 서른세살 욱이가 뒤돌아본다. 7개월 평화도 함께 본다. 











봄날, 뛸 수 있어 행복한 연수.
연수와 아빠와 함께 걸을 수 있어 행복한 엄마.











나들이에서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 군것질이다.
불량식품인줄 알면서도 아이손에 아이스크림 콘 하나를 들려주고, 가족이 함께 달달한 웨하스 과자 한봉지를 까먹는다.
몸에 안좋은줄 알지만.. 유원지 벤치에 앉아 입가에 달콤한 크림을 묻혀가며 흘릴세라 조심히 아이스크림을 먹는 아이를 보고 있으면 '돈 벌어서 뭐에 쓰나.. 이런데 나와 어린 아들에게 아이스크림 사주는데 쓰지.'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러나. 내 몸은 사실 리트머스 종이같아서 불량식품을 먹고나면 어김없이 배탈이 난다.
육식을 과하게 해도 탈이 나고, 라면같은 것을 먹으면 얼굴 가득 붉은 여드름이 돋는다. 
처녀시절에 여드름때문에 심하게 고생했던 나는 음식조절을 잘하지 않으면 이내 증상이 심해지는데
아이 낳고, 집밥 해먹으면서 많이 좋아졌다. 가끔 이렇게 바깥음식으로 군것질을 많이 하고나면 몸 여기저기가 불편하다. 
이런 내 몸을 아이들에게 물려줄까 두렵고, 행여 내가 어린 손에 쥐어주는 달달한 군것질거리들이 아이 몸에 나쁜 영향을 미칠까 걱정이다. 그러니... 유원지 군것질의 낭만과 행복도 정말 최소한으로 자제해야겠지...
    










연수가 졸라서 4인용 가족자전거도 한번 탔다.
혼자 앞자리에 의젓하게 앉아 강도 보고, 하늘도 보면서 연신 쫑알거리던 연수. 많이 컸다.











네 식구의 무게를 온전히 혼자 감당하느라 무척 고생했던 아빠.
네 식구를 태우고 2km에 달하는 조정경기장을 따라 왕복 4km를 달린후.. 저녁에는 완전히 KO하셨다.
김기사, 늘 고마워~^^;;











아빠가 태워주는 자전거에 앉아 편안히 바라보는 강물은 시원하고 맑았다.
경기장에서 1인용 카누를 타는 사람들이 보였다.










자연의 물길을 끌어다쓴 것 같긴 하지만 인공적으로 만든 경기장인만큼 직선으로 곧게 뻗은 물길이 좀 경직되어 보였다.
그래도 멀리 보이는 산자락과 하늘빛을 담은 푸른 강물은 보는 사람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주었다.
시원하지만 춥지 않은 바람을 맞으며, 가장자리로 밀려오는 잔잔한 물결을 보고 있자니 봄이구나.. 싶었다.










 
어느새 해가 많이 기울었다. 잔디밭위로 그림자가 길게 누웠다.
집으로 돌아갈 시간.

따뜻한 봄날, 반가운 누군가와 '번개'라도 해서 함께 오고 싶었는데
워낙 서울의 끝이라 급히 연락해서는 쉽게 달려올 수 있는 거리도 아니고, 가까이 사는 이도 없어 우리 가족끼리만 단촐하게 다녀왔다.
다음에는 가족들, 친구들과 함께 가서 한나절 재미나게 놀고 우리집에 와 밥도 같이 먹고 했음 좋겠다.






++ 덧. 데이트코스로 유명한만큼 미사리에는 멋있는 찻집, 맛있는 밥집도 많은 것 같다.
연수 아부지가 찾아낸 첫번째 맛집은 발리식 해물바베큐집. 매콤하고 맛있었다.









"오오~ 어디 한번 먹어볼까~"
(연출사진이다. 모델 표정 좋고~~ㅎㅎ)










밥을 다 먹고 나오면 마시마로를 구워준다.
마당에 피워진 모닥불앞에 앉아 약간 탄듯하면서도 달달한 마시마로를 먹고있자니 어린 시절에 먹던 '뽑기'(일명 '달고나') 생각이 났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어린 아이들을 황홀하게 하는 달달한 맛의 세계.
햇빛, 바람, 마시마로.. 왠지 코끝이 싸아해지는 그리운 느낌, 이런게 봄느낌인가 싶었다. 
 







Posted by 연신내새댁
여행하는 나무들2011. 3. 6. 00:07








지인의 결혼식이 있어 삼성동에 있는 '웨딩의 전당'에 다녀왔다.
산부인과 병원의 예약시간에 맞춰 오전 일찍부터 움직였더니 결혼식 시간보다 1시간 반이나 일찍 식장에 도착했다. 
연수는 마침 낮잠시간이라 차안에서 곤히 잠이 들었고, 남편은 아이폰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으니 연수가 자는 동안 나는 무얼할까.. 잠시 생각하다가 결혼식장 바로 옆에 있는 '봉은사'에 가보기로 했다. 

카메라도 없이 나선 길이라 그저 책 한권만 옆구리에 끼고, 
배가 제법 나온 7개월의 임산부는 낮은 정장구두를 신은채로 높은 비탈길를 천천히 걸어내려가 봉은사로 향했다.  

오래전에 무슨 일로 차를 타고 봉은사 앞 대로를 지나가다가 "일제시기 강제징용 희생자를 위한 100일 기도"라는 플랭카드가 걸려있는 것을 보고 '무슨 절인데 이런 기도를 하지?'하고 궁금해한 적이 있었다. 
그 뒤로 한참 잊고 지내다가 작년에 봉은사 주지스님인 명진스님이 여당 대표의 '좌파 주지' 발언에 강하게 문제제기를 하는 내용을 신문에서 보고서야 나는 봉은사가 우리 사회의 아픈 현안에 대해 공감하고, 종교적인 실천을 함께 하려고 애써온 절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 뒤로 '언제 한번 봉은사에 가보고싶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침 좋은 기회가 생긴 것이다. 


단정한 절이었다.
도심 한 복판에 있는 규모가 큰 절이지만 너무 화려하지도 않고, 위압적이지도 않은 것이 좋았다.
지방의 큰 절 중에는 새로 으리으리한 건물을 너무 크게 지어 전체적인 조화와 정갈한 불전의 느낌을 해치는 곳도 있었는데
봉은사는 적당한 규모의 경내를 복작거리지 않게 잘 유지하고 있는 것 같았다.

대웅전 뒷편으로는 서울특별시 중요문화재로 지정된 오래된 작은 전각들이 잘 보존되어 있었다.
그 전각들에 가보려고 계단을 몇 차례를 오르고 나니 제법 높은 산등성이로 난 산책로가 보였다. 
수도산이라는 봉은사 뒷산에서는 여러가지 소리가 함께 들렸다. 
바람이 흔들고가는 풍경소리, 봄을 맞은 새소리, 그리고 봉은사 앞 큰 대로를 달리는 자동차 소리. 지하철 9호선 공사장에서 들리는 기중기 소리.

코엑스와 봉은사가 공존하는 삼성동.
참 낯선 듯하지만 오랫동안 서로 어울려온 공간과 소리들.

흙길로 된 수도산 산책로는 큰 석불상의 등뒤를 빙 돌면서 내려오게 되어있었는데 
돌로 된 그 큰 부처님 머리에는 아주 무거워보이는 네모난 돌판이 올려져 있었다. 
돌판의 네 귀에 달린 풍경에서는 이 세상 것이 아닌 듯 가볍고 아름다운 소리가 바람이 불때마다 들려왔지만 
나는 부처님이 너무 무거운 갓을 쓰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번뇌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지 못하고 머리위에 늘 이고 사는 대중들처럼, 부처님도 그렇게 힘들고 무거울 것만 같았다. 
다 내려놓고 좀 가볍게 살 수 있으면 좋을텐데.
가끔 들리는 풍경소리만 위안이 되겠구나... 

그런 생각들을 하며 산책로를 다 내려왔을 때 사진에 있는 저 글씨, '판전'을 만났다. 
(카메라를 안 가져가서 절 사진은 하나도 못찍었다. 다행히 봉은사에서 발행하는 월간지 비치해둔 것을 한권 가져왔는데 그 책 이름으로 '판전' 글씨를 그대로 쓰고 있었다.)  

무심코 판전의 현판을 올려다봤을때 '이 절은 글씨가 참 편안해서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들어왔을 때부터 절의 여러 전각에 붙은 현판 글씨들이 지나치게 뾰족하지도 않고, 부담스럽지 않다 싶었다. 
단정하다는 인상, 편안하다는 인상의 큰 부분도 아마 현판 글씨들에서 나왔으리라. 

가까이 다가가 표지판의 설명을 읽어보니 이 '판전'의 현판 글씨는 추사 김정희가 숨을 거두기 며칠전에 쓴, 
추사 생애의 마지막 작품이었다. 
설명을 읽고 다시 보니 새삼 노서예가의 소박하면서도 굳은 의지가 느껴졌다.
거친듯하지만 자연스럽고, 투박한 것 같지만 왠지 멋이 있다.

생을 마무리할 즈음에, '과천에 사는 병중의 촌노인'이라고 스스로를 부르며 붓을 들어서 쓴 글씨. 
그 글씨를 보고 있는데 이상하게도 입에서 '흐흐흐흐흐'하고 웃음이 터져나왔다. 
재미있었다. 장난스러운 것은 분명 아닌데 사람이 나이를 많이 먹으면 도리어 어리고 귀여워지기도 하는 것처럼 글씨도 그렇게 귀여워보였다.   
그 어림속에 진정한 원숙미가 있고, 길고 고단한 생애를 살아오면서 잃지않고 닦아온 삶의 의지가 있다.

성공회대 대학원을 다닐 때 나는 신영복 선생님께 일주일에 한번 붓글씨를 배우는 귀한 기회를 얻은 적이 있었다. 
2년 남짓되는 대학원 재학시절동안 연마한 내 붓글씨 실력이란 것은 정성껏 가르쳐주신 스승님께 죄송할만큼 참 보잘 것 없는 것이지만 
훌륭한 스승님의 글씨를 가까이서 자주 보고, 글씨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듣고, 그윽한 먹향기에 잠시라도 젖어볼 수 있었던 것은 참으로 행복한 일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붓글씨에 대해 무엇을 많이 아는 것은 아니다.  
그저 글씨를 보며 내 나름의 느낌을 느끼고, 무엇보다 글씨를 좋아하게 된 것은 정말 고마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가끔은 글씨공부를 오래 삶에서 이어가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기도 하지만 '좋아하게' 되었으니 괜찮다 싶기도 하다. 
좋아하게 되었으니 언젠가 또 다시 해볼 수도 있을 것이고, 혹여 다시는 못쓴다해도 괜찮다. 
이렇게 가끔 뜻하지 않은 곳에서 가슴을 뛰게하는 글씨들을 만나 행복한 것만해도 충분히 고맙다. 
 
설명을 보니 보은사의 대웅전 현판도 추사 김정희의 작품이었다. 
대웅전 앞으로 내려오며 다시 한번 현판을 올려다보니, 참 잘 어울리는 집이고 참 잘 쓴 글씨구나.. 싶었다. 

뜻하지 않게 멋진 글씨들까지 보고나니 
풍경소리와 새소리, 흙길 만으로도 내게 참 고마운 산책으로 남았을 봉은사 산책이 보물이라도 찾은듯 행복한 길이 되었다. 
 
사실 나는 부처님 머리위에 올려진 무거운 판을 보고 안쓰러워하면서도 
그 앞에 서서는 '두 아이의 엄마 노릇 잘 하게 해주십시요.. 두 부모님의 자식노릇, 형제들의 형누나동생 노릇 잘 하게해주십시요..'하고 빌었다. 
나중에 절을 다 빠져나올때쯤 되어서야 '나'에 관해 무엇을 빈 것이 없었구나.. 싶었다. 
나도 내 관계들, 때로는 버겁고 때로는 무거운 삶의 무게를 좀체 내려놓지 못하고있구나... 

그래서 뒤늦게 관음보살상 앞에서 빌었다.
'좋은 사람이 되게 해주십시요. 배우는 사람, 기도하는 사람이 되게 해주십시요..'하고. 

좋은 사람, 배우는 사람, 기도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 되고싶다. 
봉은사 담장을 따라 결혼식장으로 돌아오며 봄볕속에 가만가만 되뇌어 보았다. 고마운 시간이었다. 




 
 
 
  

  
 








Posted by 연신내새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