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일기'에 해당되는 글 40건

  1. 2008.03.13 봄밤 단상
  2. 2008.03.11 산만함과 이별하기
  3. 2008.02.26 봄냉이 2
  4. 2008.02.15 어떤 저녁
  5. 2008.02.14 겨울이 지루해질 때
  6. 2008.02.11 미나리 부침개
  7. 2008.01.31 후리지아가 말하길.. 봄이 오고 있어요 5
  8. 2008.01.18 꼬막의 고향
  9. 2008.01.17 도시락을 싸요~^^
  10. 2008.01.15 점심식사
신혼일기2008. 3. 13. 09:33
어제는 오랫만에 봄밤 외출을 다녀왔다.

종종 좋은 친구들이나 지인들을 만나게 되면 늦도록 밖에 머무는 일이 있지만
그래도 거의 매일 밤이나 새벽에 귀가하던 어떤 시절들에 비해보면
정말 가뭄에 콩나듯 밤외출을 하게 되는 요즘이다.
또 한가지, 요즘 밤외출에는 꼭 든든한 동행이 한 명 붙는다는 특징이 있다.
이 동행이 없으면 실은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너무 멀고
혼자 걷다보면 쉽게 기진맥진해져서 밤외출할 엄두가 도통 안난다.
^^

어제는 오랫만에 신랑과 그의 좋은 벗들과 유명한 미술전을 보고
꽤 유명한 듯한 '마늘소스 통닭'도 맛있게 먹고 집으로 돌아왔다.
미술전의 감상은 따로 쓰기로 하고..
어제 외출의 여독으로 아직 몸이 노곤한 오늘 아침에는 어젯밤 마주쳤던 풍경들에 대한 단상만 쓰려한다.

풍경1.
시청역 11번 출구 근처 골목의 밤풍경.
밤 11시쯤 되었는데도 거리는 술집으로 향하는 직장인들로 북적거리고 있었다.
11시면.. 새댁은 이제 잘 준비를 슬슬 하는 시간이고,
신랑은 언제 오나.. 졸린 눈을 비비며 시계를 쳐다보는 시간이다.
아마 그들의 가족들도 그렇게 졸린 눈을 비비며 가장의 귀가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하루종일 일거리와 사람에 치일대로 치여
일그러진 얼굴과 피곤한 어깨를 한 그들은
업무의 연장이든,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가벼운 한잔이든
이 봄밤, 술 한잔을 마저 마시지 않을수 없는 상황인 듯 했다.
비틀비틀.. 취한 봄밤이 우리 가장들의 고단한 어깨위에 네온사인 불빛과 함께 내려앉는 풍경.

풍경2.
12시가 다 되어 가는 시간, 버스 안에서 거리를 구경하는데
술집들말고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는 일련의 가게들이 눈에 들어왔다.
빵집들이다.
다른 가게들은 다 셔터를 내리고 돌아갔는데 유난히 환한 빵집들의 불빛이 눈을 끌었다.
이것참.. 장발장도 아닌데, 나라도 그 빵집 앞을 그냥 지나치진 못할 것 같은 기분.
밤늦게 귀가하는 취한 아버지, 피곤한 어머니, 삼촌이모들, 아들딸들이
무거운 피로를 떨쳐내고  저 빵처럼 가벼운 희망이라도 한봉지씩 사들고
잠든 아이들과 가족들에게로 돌아가는 것일까.
'빵집 알바들.. 엄청 힘들겠다... 야간 수당들은 받나...? 못 받겠지..? 받아야할텐데..'
길게 늘어선 빵집 행렬을 보니 궁금한 것들도 꼬리를 물고 길어졌다.

풍경3.
다행히.. 우리 동네 학원가의 창문들은 어두웠다.
내 학창시절은 밤10시 야자를 마치면 독서실 봉고차에 몸을 싣고 독서실로 가
다시 새벽 1시, 2시가 되어서야 집에 돌아가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봉고차에서 내려 독서실의 약간 어두운듯 환한 창문들(개인 책상에서 나오는 스탠드 불빛만 창문에 어리므로)을
올려다보던 순간의 작은 절망감.
학원들은 그래도 밤 12시까지 불이 켜져있진 않구나.. 안도스러웠다.
그런데 하룻밤 사이에 세상이 바뀌어서
오늘 아침 신문을 보니 서울시의회에서 서울 학원들의 24시간 영업을 허용하는 조례개정안을 상임위에서 만장일치로 통과시킨 모양이었다.
본회의 통과도 일사천리일 것 같단다.
다음에 밤외출을 하고 돌아올때는 학원들이 많은 우리집 앞거리는
12시에도 불야성을 이루고 있게 될까..
그 시간까지도 아이들이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학원 책상앞에 붙들려 앉아있는 모습을 봐야할까.
아이들은 피곤에 절어 통조림속의 참치들같이 퍽퍽해지고
어른들은 그 학원비를 벌기 위해 몸과 생의 모든 윤기들을 다 쥐어짜이게 될 것이다.
...

화려하고 밝은 도시의 밤.
그러나 잠들어야할때 잠들지 못하는 사람들의 안타까운 삶이
그 시간에도 흔들리며 가는 사람들로 가득찬 버스와 지하철 안에 흘렀다.
       
오랫만의 밤외출-
몸은 노곤하였으나 공기는 사람들 입김처럼 따뜻했다.
힘든 밤을 보내고 아침을 맞고, 또 하루를 살고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별 것 아닌 내 위로라도 보내고 싶은 날이다.
 
... 아무쪼록 올해의 봄밤은
사랑하는 이에게 긴 편지를 쓰거나
또 하루 늙어진 사랑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손으로 쓸어주거나
새로운 세상과 꿈을 위해 불밝히고 모색하고 실천하는 데 쓰였으면 좋겠다.   
Posted by 연신내새댁
신혼일기2008. 3. 11. 21:51

길을 나서면 녹은 땅을 박차고 나온 새싹들과 나무에 움트는 새순들도 만나고
학교에서는 새로운 친구들과 선생님도 만나고...
사랑을 고백하는 무슨무슨 데이들도 많은 봄은 아무래도 만남의 계절입니다만,
새댁은 요즘 오래된 습관 하나와 헤어질 궁리를 하고 있습니다.

그 습관은 바로 '산만함'입니다.
이 녀석은 '우유부단'과 함께 새댁 성격의 2대 특질중 하나로서
지난 30여년간 끈질긴 생명력을 자랑하며 새댁의 삶 한귀퉁이에 단단히 뿌리내리고 있었던 녀석입니다.

이것저것 여러가지 일을 벌려놓고 동시에 진행하기는 기본이요,
그러다 그중 그닥 중요하지도 않은 일에 시간과 관심을 쏟아 한나절을 후닥 날리기 일수입니다.
책도 이 책 조금, 저 책 조금 섞어서 보고,
이 생각하다 불쑥 저 생각이 나면 또 그걸하고.. 그러다 다시 다른 생각과 일에 사로잡힙니다.

생활의 다른 어느 것보다 글을 쓰는데서 이 산만함이 진가를 발휘합니다.
주제와 크게 상관없는 작은 것에 집중하여, 관련된 자료들을 한참이나 찾고 읽고 정리해서 본래 글속에 끼워 넣습니다.
그러기를 여러차례 반복한 후..
완성된 글은 무거운 곁가지들을 감당하지 못해 쓰러지기 일보직전인 갸날픈 나무 한그루 같이 되어버립니다.
 
축 늘어진 곁가지들을 쳐내고, 뿌리부터 잎새까지 단단하게 잘 자란 나무같은 글.
주제가 선명하고, 근거와 자료들이 알맞게 제시된
집중과 균형이 잘 잡혀있는 그런 글을 쓰고 싶은데요-
휴..
그러려면 산만함이란 녀석과 이제는 진짜로 이별을 해야합니다.

산만함과 이별하기 위한 첫번째 과제는 '느긋해지기' 입니다.
사실 산만함은 이상한 '조급함'과 커플로 찾아오곤 합니다.
뭔가 약간 마음이 불안할때, 조급하거나 초조할 때
불현듯 '이걸 해볼까? 저걸 해볼까?' 하는 충동이 찾아와 행동으로 옮겨지곤 하거든요.
음... 실은 이 글도 역시 이런 불안함의 산물이긴 합니다.

저녁먹고 책상앞에 돌아와 생각해보니 내일이면 벌써 수요일...
어정어정하다보면 어느새 이번 한주도 훌쩍 다 지나가 버리게 생겼더라구요.
해야할 일들은 정해져있고 받아놓은 날도 정해져 있는데
이번주도 큰 진전을 보지 못할듯해 마음은 급해지고..
그러다 오늘 하루도 참 산만하게 보냈구나.. 하는데 생각이 미치자
이 글을 쓰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스스로에게 자신감을 좀 불어넣어 주어야겠습니다.
잘 할 수 있을거야. 조금씩 천천히 가면 돼.
조금씩은 흔들리더라도 중심 잃지 말고 한발한발 집중해서 걸어가면 돼..

산만함과 이별하기 위한 두번째 단계로 새댁은 시간표를 짰습니다.
우선은 무엇을 하기로 한 시간에는 딱 그것에만 집중할 생각입니다.
다른 것이 하고싶거나, 생각이 나도.. 잠시 후로 미루고.. 우선은 정해놓은 그 일에 충실하려고 노력해보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면 생활에 중심이 조금은 더 잡히겠지요?

음.. 그리고 또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산만함을 극복할 수 있는 좋은 방법, 알려주세요~!! ^^

형체도 없는 마음 하나 다스리기가 이렇게 어렵다니...
그러고보면 세상에 쉬운 일이 참 하나도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이나 세상의 변화는 그렇게 쉽게 소망하면서도
정작 내 마음 하나, 내 삶의 자세 하나 변화시키는 것은 어려워합니다.

그러나 부단한 계절과 자연의 운동은 변화와 성장의 좋은 본보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새봄, 새댁도 변화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조금 더 힘을 내보겠습니다.

Posted by 연신내새댁
신혼일기2008. 2. 26.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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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도 어느새 나흘밖에 남지 않았다. 시간 참 잘 간다.

시골 외할머니께서 보내주신 '냉이'로 된장국을 끓여 먹으면서

봄은 온실안의 화초가 아니라 들판의 이름모를 풀과 꽃들에게 먼저 온다고 하시던

신선생님 글귀 생각을 했다.


이 냉이는 경북 상주 청상면 청리, 깊은 산골짝에 있는 작은 마을의

어느 햇빛 잘 드는 작은 밭뙈기에서 일찌감치 봄기운을 품고 자라던 녀석이다.

그러니 봄은 햇볕 찬란하나 풀한짝 자랄 틈없는 도시의 아스팔트 위보다

춥고 여전히 찬바람 쌩한 그 산골짝 작은 밭에 먼저 오는 셈이다.

매끈하고 하얀 도심속 우리의 손보다

검고 트고 갈라진 촌할머니의 쭈글쭈글한 손이 제일 먼저 봄을 맞는 것이다.


나는 어떻게 이 봄과 만날 것인가.

어디로가서 내 손으로 직접, 찾아오는 이 봄을 반갑게 영접할까.

문 밖으로 자꾸 나서고 싶어지는걸 보니 봄이 멀지 않긴 않았나보다.

Posted by 연신내새댁
신혼일기2008. 2. 15.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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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산으로 뉘엿뉘엿 해가 지고 있습니다.
새댁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해바라기를 하며 하루 종일 잘 놀았습니다.
아침에는 북한산을 넘어 떠오른 아침햇빛이 환하게 들어오는 작은 방들로,
오후에는 오후 햇빛이 따스하게 들어온 거실과 안방으로
온종일 해를 따라다니며 토닥토닥 해빛속에서 놀았습니다.
하루종일 온몸가득 햇살을 받으며 논 날은
어린아이처럼 몸도 마음도 가볍습니다. 노느라 곤해진 몸에 잠도 잘 옵니다.

참으로 많은 저녁을 살아왔습니다.
종종걸음으로 저녁모임을 하러 가기도 하고,
때로는 병원으로, 때로는 데이트를 위해 인파속으로
또 어떤 날은 아무도 기다리는 사람이 없는 작은 집을 향해 터벅터벅 지친 발걸음으로 퇴근을 하기도 하며
많은 저녁들을 보냈지요.
언젠가 여행지에서 렌트한 봉고를 타고 신나게 숙소로 돌아오던 저녁이 있었습니다.
큰 호수옆을 지나는데 오늘처럼 하루종일 신나게 따라다니며 놀았던 해가 지고 있었습니다.
'아 내가 지금 행복하구나'
밀려오는 행복감을 온몸으로 느낀 날이었지요.
그때부터 행복한 저녁에 대한 감각이 예민해졌어요. 행복한 저녁을 맞을 수 있도록 살고 싶습니다.

이 시간.. 어떤 저녁을 보내고 계신가요?
새댁은 내일 고향집에 내려갈 짐을 싸며 오늘 이 저녁을 보낼 참입니다.
해님 안녕! 여러분도 모두 편안한 안식을 찾는 저녁이 되시길 빕니다.

Posted by 연신내새댁
신혼일기2008. 2. 14.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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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본격적인 요리에 도전하기 전에...
잠시 따뜻한 유자차를 한잔 마시며 음악을 듣고 있습니다.
앞산에는 아침햇살이 환하게 떨어지네요.

안방 화장대에 앉았을때도 이 앞산이 거울에 비칩니다.
오늘 아침 문득 '아 언제 저 산이 푸르러지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언제나 저 산의 나무들이 갈색과 은회색을 벗고 연하고 부드러운 푸른잎으로 갈아입을까...
봄은 아직 멀었나..
문득 이 겨울이 참 길다는 생각을 합니다.

겨울이 지루해질 때쯤.. 아이들은 개학을 하고 졸업식들을 치르고
이제 봄을 맞을 준비를 합니다.
그러니 '가장 지루할 때가 새로운 무언가가 가장 가까이 와있는 때' 일수도 있겠지요.
저 햇살이 땅속의 풀씨들을 깨우고 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새댁도 새봄을 준비해야 겠습니다.

타버린 남대문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떄 새댁은 어릴때 교과서에서 읽었던 '방망이 깍는 노인'이란 수필 생각이 났어요.
동대문이었는지, 남대문이었는지, 혹은 경복궁이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꼭 알맞게 날렵한 방망이를 깍아주던 그 노인이
방망이를 다 깍고 나서 무심히 고개를 들어 한참을 바라보던 그 누각의 추녀.
원숭이들이 옹기종기 앉아있는 아름다운 지붕 선과
정연한 기와들과 그 아래 처마의 단청들.
그렇게 바라볼 수 있는 아름다운 건물이 있어야 사람도 비로소 자기 삶을 예술의 경지로 올려갈 수 있겠다 싶습니다.

무심히 고개들어 이윽도록 바라볼 수 있는 아름다운 문화재들의 소중함과
그러나 바라봐주는 눈길을 잃은 그들의 쓸쓸함을 새삼 생각합니다.
바쁜 생활속에 잠시도 그런 아름다운 것들에 눈맞출 시간을 내지못한채 종종거리며 살기가 십상인
우리들 모두에게 남대문은 슬픈 조종을 울려준 셈입니다.
모두의 재부이자 모두의 삶을 다독여주는 문화재들인만큼 시민들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정부가
더욱 제대로 보살펴주기를 바랍니다.
우리들의 눈길과 마음이 그곳으로 향하게 하는 것은 우리들 각자가 해야할 몫이지만 국민성금모금은 너무 무책임해보입니다.  

아침 차한잔이 길어졌습니다.
오늘의 요리는 며칠전부터 심호흡을 하며 나름 용기(!)를 내온 것입니다^^
건투를 빌어주세요~ 레시피는 내일 공개하겠습니다~!
  
Posted by 연신내새댁
신혼일기2008. 2. 11.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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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댁이 결혼후 처음으로 맞았던 명절 연휴가 끝났습니다.

새댁은 신랑과 함께 화요일 저녁에 지방에 있는 시댁에 내려갔다가 금요일 저녁에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첫 명절이라 나름 긴장을 많이 하고 내려갔는데
생각보다 훨씬 편안하게 잘 지내다 올라왔답니다.
아직 손놀림이 서툰 제 대신 시어머님께서 대부분의 명절 음식을 준비하셨고,
신랑은 제 당부대로 놀아도 옆에서 놀고 때때로 음식장만을 거들기도 하면서 제 곁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아직 낯선 시댁 식구들 사이에 혼자 있으면 왠지 어색하고 외로울 것 같았거든요.
신랑이 어머님과 저와 함께 이것저것 얘기도 하고, 장난도 치니 저도 든든하고 분위기도 한결 즐거워졌습니다.

연휴 내내 가족들에 둘러싸여 삼시세끼를 잘 챙겨먹다가
오늘 오랫만에 집에서 똑순이와 둘이 있으려니 점심챙겨먹기가 약간 귀찮아서
빵과 식혜, 두유로 간단하게 점심을 떼웠는데
오후가 되니 배가 출출해졌습니다.

시어머니께서 부쳐주셨던 '미나리 부침개'를 냉장고에서 꺼내 후라이팬에 데웠습니다.
고소한 기름냄새와 함께 퍼지는 향긋한 미나리내음이 어머님 향기 같습니다.
한평생을 부지런히, 손이 다 갈라지도록 일하며 자식들을 키우고 먹여오신 그 분,
이제는 여기저기 아픈데가 자꾸 생겨 '나도 이제 늙었는갑다' 한숨쉬시면서도
그 손만큼은 절대 쉬지 않고, 자꾸자꾸 자식들 입에 넣어줄 뭔가를 쉬지않고 만들어주시던 분.
나이도 아직 젊으신데 머리카락이 다 시어서 늘 곱게 염색을 하셔야하는 분.
그 어머니에게서 나는 향기가 바로 이런 고운 미나리향 같습니다.

냉장고 안에는 시댁을 떠나올때 어머니께서 싸주신 전이며 부침, 떡, 생선, 밑반찬이 한가득입니다.
이번주 도시락 반찬 걱정은 물론 2월 생활비 걱정도 안해도 될 것 같습니다.
어머니 갈라진 손끝은 좀 아무셨는지, 편도선 부으셨던 것은 가라앉으셨는지
미나리부침개를 먹으며 궁금해하는 월요일입니다.

 

Posted by 연신내새댁
신혼일기2008. 1. 31.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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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개월정도된 조카가 즐겨듣는 동요중에 이런 곡이 있다.

"새싹들이 말하기를 봄이 왔대요~ 꽃들이 말하기를 봄이 왔대요~
새들이 말하기를 봄이 왔대요~  쏙쏙쏙쏙쏙쏙 쪼로로로로롱  아름다운 새봄이~"

가사가 정확하진 않지만
고개를 들고 봄이 왔다고 기뻐서 소리치는 새싹과 꽃들을 연상하며 웃음짓게 되는 예쁜 동요다.

어제는 꽤나 추웠다.
결혼식에 못오셨던 지인 한분께서 점심을 사주시겠다고 하여 숙대앞에 나가는데  
찬바람이 쌩하여 모자도 눌러쓰고, 숄도 꽁꽁 두르고, 장갑도 바짝 끼고 길을 나섰다.
그런데 이분이 결혼식에 못와 정말 미안하다며 슬며시 내미신 선물은
노오란, 정말 봄빛같이 노오란 후리지아 꽃다발이었다.

바깥날은 추웠지만 마음은 봄이 온듯 따뜻하고 환하였다.
후리지아 향기를 맡으니
'그래ㅡ봄이 올때까지 기운내서 살아야지. 남은 추위 무사히 잘 이겨내야지' 하는 용기가 부쩍 솟아올랐다.

다른 약속도 있어 밤이 늦어서야 집에 돌아오니 몸이 꽁꽁 얼어 무척 피곤하였다.
신랑은 내일 끝나는 프로젝트때문에 요즘 연일 새벽까지 야근이라
혼자 돌아온 빈집이 무척 휑하게 느껴졌다.  
불을 켜고.. 따뜻한 물에 씻고.. 산더미같이 쌓인 설거지거리에는 손도 대지 못한채
딱 한가지-후리지아 꽃다발을 풀어 꽃들을 물병에 넣는 일-만 하고 쓰러져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어제 하루종일 나와 함께 찬바람에 시달려 움츠러져있던 후리지아꽃들이
밤사이 물을 먹고 생생하고 환한 노란빛을 되찾아놓고 있었다.

노란 오후 햇살받아 제 빛을 더 자연스럽게 내놓는 후리지아 사진을 한 장 더 올린다.
멀리서 산을 넘어 찾아오고 있는 새봄을 생각하며 추운 오늘도 모두들 힘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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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이런 아름다운 결혼선물을 주신 분은 작년에 내가 아르바이트로 보고서를 써내곤했던 작은 시민단체의 간사님이다.
일전에 역시 또다른 시민단체에 일하는 선배언니로부터
"(결혼하고나면) 생활이란게 참 팍팍하고 쉽진않단 생각 많이 하게 될꺼야.. 바쁘겠지만 그래도 꽃 한송이 꽂아놓고 살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졌으면 해서" 라는
멋진 이유와 함께 '화병'을 결혼선물로 받았었는데...
시민단체 사람들의 이런 고운 심성이야말로 우리 사회를 아름답게 지켜주는 '꽃같은 마음'들인듯 싶다.

 

Posted by 연신내새댁
신혼일기2008. 1. 18. 21:14
꼬막의 고향은 어디일까.

아침도시락을 싸고 남아있던 꼬막들도 마저 삶아서 반찬으로 만들어두려고
박박 솔로 문지르며 꼬막을 씻다가 문득 궁금해졌다.

꼬막... 하면 제일먼저 떠오르는 고장은 전라남도 보성과 벌교다.
조정래 선생의 소설 '태백산맥' 때문이다.
며칠전에 신랑이 '꼬막찜'을 먹고 싶다고 말했을 때도 우리는 태백산맥 얘기를 했다.
음.. 그 소설을 읽은 이후로는 왠지 '꼬막'하면 괜히 얼굴이 붉어진다고..  살짜쿵 야한(?) 대사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웃으며 "아무튼 꼬막찜은 정말 맛있어!^^"라고 대화를 마무리했었다.

소금물에 담가놓은 이 꼬막들이 토해낸 모래와 이 녀석들의 겉껍질에 묻어있는 물때는
그럼 전라남도 어느 뻘밭, 서해안 어느 바닷가에서
모래와 파도와 바위틈에서 이 녀석들이 간직하고 온 것들인 셈이다.
나는 잠시 그 푸른 바다를 생각했다.

꼬막 껍질의 물때를 잘 벗겨서 바가지 같은 곳에 담아놓고 있다가
모든 꼬막을 거의 다 손질해갈때쯤 바가지를 보니
바가지 바닥에 연한 붉은빛이 도는 물이 고여있다.
꼬막의 피였다.
그 순간 이 꼬막이 나처럼 살아있는, 생명이 있는 존재라는 사실이 마음으로 느껴졌다.
그래, 살아있는 생명이야.

내가 요리하는 모든 재료들은 사실 다 우리처럼 생명있는 것들이다.
배추도, 파도, 마늘도, 멸치와 다시마도.... 다 생명있는 것들이
그 생명을 우리에게 준 것으로 우리는 오늘도 먹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문득 말할 수 없는 고마움과 숙연한 감정이 밀려왔다.

뉴스에서는 태안 주민들의 연이은 분신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그 절망감... 나는 짐작도 잘 할 수 없는 절망감이 그 분들을 짓누르고 있을 것이다.
오늘도 그 바다에서는 생명있는 많은 것들이 죽어가며 비명을 지르고 있을 것이다.
그 비명소리를 들으며 누군들 마음이 온전하랴...

오늘 내가 차리는 따뜻한 이 밥상이 누군가들의 눈물이 아닌 웃음과 행복에 바탕을 둔 것이기를 바란다.
태안 어민들이, 이땅의 모든 먹거리를 생산하시는 분들이
웃으며 '생명'을 키우고, 그 생명으로 인간이라는 '생명들'도 살려주실 수 있기를 빈다.

태안을 그렇게 만든 사람들은 책임을 져야한다.
끝없이 이어지는 자원봉사의 물결은 정말로 숭고하고 아름다운 것이지만
그 힘을 모아 제대로된 책임과 반성, 재발방지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만들기도 해야할 것이다.
거대재벌회사의 크레인이 일으킨 사고인만큼, 그 기업이 제대로된 보상과 응당한 사회적 책임을 지기를 바란다.
평범한 국민의 눈으로 보기에는
그 회사가 돈을 내 유출된 기름도 다 걷어내고, 주민들이 입은 물질적, 정신적 피해도 보상해야하는것 아닌가 싶다.

바다가 죽으면 우리도 죽을 것이다. 땅이 죽어도 마찬가지다.
요즘 밥상을 차리면서 나는 그런 것을 더 절실하게 느끼게 된다.
건강한 생명의 밥상을 모두다 즐겁게 나눠먹는 날이 어서 왔으면 좋겠다.    
Posted by 연신내새댁
신혼일기2008. 1. 17. 21:16

도시락.

고등학교때는 하루2개씩 싸가지고 다니며 오전2교시 끝나면 바로 하나 까먹어주던 추억의 '도시락'

어릴때부터 밥순이였던 나는 하루세끼 밥을 꼬박꼬박 먹지않으면 마음이 우울해지고 몸에 기운이 빠지곤했다.

그래서 당에서 일할때도 아침밥거르고 출근한 날이면

잠시 주위를 살핀후 꼭 지하 분식집에 내려가 김밥 한줄을 (여유롭게 꼭꼭 씹으며) 사먹고 오곤 했다.

따끈한 콩나물국물과 깍두기를 같이 주시던 한양슈퍼 아저씨.. 생각나네.


앗. 갑자기 얘기가 딴데로 빠졌는데

아무튼 밥순이인 나, 밥에 남다른 애착이 있다.

그리고 또 희한하게 내가 지은 밥은 더 맛있다고 느끼는 입맛을 가지고 있다.

요즘 꼬박꼬박 하루 세끼 집밥을 챙겨먹는 '삼순이'로서 감히 말하건데.. 집밥은 왠지 더 달다.


도시락을 처음 싼것은 당 상근 2년차쯤 되던 때였다.

그전에는 하루 점심밥값만 받던 무급자원봉사여서 그런 내가 도시락까지 싸가지고 다니면 너무 불쌍해보일까봐

식당밥을 사먹었다.

당상근자가 너나없이 없이살던 시절이라 큰 은행이나 큰 회사들의 구내식당(2000~3000원짜리 식권을 팔던)이 단골집이었다.

일반식당도 그랬지만 구내식당밥도 거진 다 선배들이 사주던 시절이었다.

그러다 1년쯤지나 당이 살림도 펴지고, 나도 어엿한 정식 상근자가 되어 '월급'이란걸 받게 되었다. 아! 그때의 감동이란...!

그 월급도 요즘 20대(대부분이 비정규직인)의 평균임금이라는 '88만원'을 겨우 넘긴 정도였지만 그래도 월급통장에 매달 찍히던 그 월급의 감동을 잊을 수 없다.

그때 결심했다. "그래! 이제부턴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니겠어!"

당원들이 만원, 이만원 힘들게 번돈을 쪼개 모아주는 피같은 당비에서 월급을 받아쓰는 처지에

밥값으로 풍풍 돈을 쓰기가 아까웠다.

'모아뒀다 다른 좋은데 쓰겠어!' 결심하고 한2년 열심히 도시락을 쌌으나

결과부터 말하면.. 돈은 모으지 못했다. ^^;;

어디로 갔는지 모르게 늘 스르륵 없어져있던 월급, 얘들아 어디갔니?? ^^


아무튼 그래서 내 도시락의 역사는 꽤 긴 셈이다.

대학원을 다니게 되면서 다시 1800원짜리 학교식당 밥을 먹느라 도시락은 안싸게 되었지만

뭔가 재빨리 후루룩 만들어 통에 담는 동작은 여전히 몸에 숙달되어 있다.


요즘 나는 그 실력을 발휘해 매일 도시락을 싼다.

결혼하면 신랑은 회사에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니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다.

이유는 역시.. 돈이 제일 크다. ^^ ㅋ

이런저런 결혼비용, 특히 집값(정말 1가구 1주택이 절실하다!!!) 부담이 넘 커서

둘이 머리를 맞대본 결과 매달 받는 신랑의 월급을 정말 아끼고 아껴야한다는 결론이 나왔던 것이다.


착한 우리 신랑은 군말없이 '도시락 먹기'에 동의했다.  

싸주는 내가 힘들까봐 줄곧 걱정했으나.. 나는 나름대로 생각해둔게 있었으니..

바로 '식기세척기'다!

뭔가 만드는건 좋아하지만 치우는건 안좋아하는 나는,

결혼선물로 살림을 사준다는 신랑 친구들에게 '식기세척기'를 젤먼저 부탁했다.^^

그리고 내가 장만한 혼수중에는 '스덴 도시락통'이 도자기그릇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들어가게 되었다.

그리하여... 도시락싸기에 돌입한지 어언 9일이 흘렀다.

내일은 대망의 열흘째! 내일도 잘 싸보내면 무려 2주를 '무사고 도시락싸기'에 성공하는 것이다. ^^


요리를 좋아하는 나는 주종목을 '도시락반찬'으로 정하고,

매일 한두가지씩 다른 반찬들을 만들며 열심히 요리를 연마하고 있다.

신랑은 어떤 맛이 나도 "맛있다~!"며 도시락을 깨끗이 비워오고

반찬만들며 내가 쌓아둔 설거지거리와 도시락통을 밤에 깨끗이 씻는다.

(물론 씻는건 '식기세척기'가 하지만, 그거 넣고 빼는게 사실 일이다. 빨래는 세탁기가 하지만 집어넣고, 나중에 너는건 다 사람일이며 그일도 참 피곤하듯이..^^;)


다행히 신랑도 나와 식성이 비슷한지 도시락밥을 무척 맛있어한다.

집밥이 달다는 내말에 적극 맞장구치며, 가끔 다른 사람들이 도시락을 안싸와 혼자 먹는 경우도 있는 모양인데

그런 날도 꿋꿋하게 잘 먹고 돌아온다.

신랑용돈에 점심밥값은 아예 책정하지 못한 것이 못내 맘에 걸리는데

그래도 씩씩한 우리 신랑, 고맙다. ^^


내일의 도시락반찬은 며칠전부터 신랑이 먹고싶다고한 '꼬막찜'이다.

꼬막들은 지금 소금물속에서 열심히 해감을 토해내고 있다.

내일 자신들이 과연 어떤 맛을 내게될것인지 떨고있을지도 모른다.

힛.^^


Posted by 연신내새댁
신혼일기2008. 1. 15. 21:43

소위 '주부'라는 것이 되고 보니
제일 신기한 것이 집에서 점심을 먹는 것이다.

직업란에는 여전히 '학생'이라고 쓰고 있는 대학원생이지만
어제 우리 신랑이 내 질문("요즘 *욱씨는 뭐해요?")에 대답("그냥 집에서 살림해요~")한 것 마냥 요즘 내 생활은 영락없이 살림하는 주부다.

아침에 신랑이 출근하고나면 나는 서재에 들어와 아침 9시부터 저녁6시까지 공부하는 것이 목표이건만
아직까지 한번도 그렇게 해보지는 못했다.

암튼 본론인 '점심'얘기를 하면
혼자 점심밥을 차려먹는 것은 좀 게면쩍은 일이다.
국을 데우고, 반찬들을 꺼내 접시에 담고, 밥솥에서 밥을 푼다음
식탁 앞에 혼자 앉는다.
건너편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며 마치 둘이 먹는듯이 밥을 먹을 때도 있지만
혼자 먹고 있다는건 다 아는 사실이다.
그래도 집밥은 식당밥보다 맛있다.

맛있게 혼자 냠냠 점심을 먹으면서
나는 이시간 나처럼 혼자서 집에서 점심을 차려먹고 있을 여러 여자들을 생각한다.
강릉사는 언니, 서울사는 새언니, 구미사는 아가씨.. 이런 가족 여자들과
봉천동사는 수*언니, 인천사는 진*.. 같은 지인들을.
대개 하나 정도의 어린 아이가 딸린 사람들인데
아이 밥 먹이랴, 자기 밥먹으랴 정신이 없을 수도 있고,
아님 아이를 재우고 나처럼 혼자 식탁앞에 앉았을 수도 있다.
그녀들을 생각하며
멀리 있지만 같이 있는 것 같은 '연대감'에 괜시리 마음 뭉클해하며
밥을 꼭꼭 씹고 국물도 떠먹는다.
그녀들 모두에게 나의 감사와 애정이 전해지기를 바란다.  

학생식당이나 회사식당같은 구내식당에서, 음식점에서, 그리고 오늘 처음 도시락을 싸들고 출근한 우리 신랑같이 회사 테이블위에서,
그리고 나처럼 집 식탁위에서
밥 한술을 떠먹으며 오늘도 우리는 모두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목숨같이 귀한 밥 한덩이를 꼭꼭 씹어먹는 우리 모두에게
세상의 따뜻한 빛이 함께 하길 빈다.
아무리 힘들어도 밥 한술 먹고 또 힘내서 살아볼 일이다.
모두들 화이팅!!

Posted by 연신내새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