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mma! 자란다'에 해당되는 글 212건

  1. 2013.05.18 이제 시작! 16
  2. 2013.05.10 우리들의 봄나기
  3. 2013.04.15 고되고 여리고 강한 봄 8
  4. 2013.03.31 가족이 되어가는 시간 8
  5. 2013.03.05 바다를 낳았다 24
  6. 2013.02.15 미안하고 고맙다.. 얘들아 4
  7. 2013.01.09 눈이 녹지않는 겨울 2
  8. 2012.12.13 18개월 연호 12
  9. 2012.11.21 두 아이의 엄마가 된 후 8
  10. 2012.08.09 셋째 이야기 25
umma! 자란다2013. 5. 18. 22:18





2주간의 친정 나들이를 마치고 오늘 서울에 돌아왔다. 
휴...
이로써 나의 길었던 산후조리기간이 공식적으로(?) 끝났다. 

셋째를 낳고보니 신생아와 산모인 내 몸을 돌보는 일보다 큰 아이 둘 돌보는 일이 더 큰 일이었다.
하루 세끼 아이들 밥차려 먹이는 일부터 놀아주고 씻기고 재우는 일까지.. 누군가의 도움없이 혼자 해낼 엄두가 나질 않았다.
셋째를 업을 수 있을 때까지만.. 업고 내가 큰 애들 건사할 수 있을 때까지만이라도 도움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 싶었는데
다행히 시어머니부터 산후도우미 이모님, 그리고 친정 어른들까지 어려운 시간과 정성을 우리를 위해 선뜻 내어주신 덕분에 지금까지 잘 왔다.

연제는 어느새 만11주를 꼭 채웠다. 신생아 시절부터 안을수있는 모비랩으로 꼭 싸서 안으면 밖에서도 한두시간쯤 잘 잔다. 
이제부터는 유모차도 태워보려고 낡은 신생아유모차를 깨끗이 손보아두었다. 아직 업고 일하기는 조심스럽지만 포대기로 업고 재울 수도 있다. 이만큼만해도 정말 많이 컸다.

이제부터는 나 혼자다.
아침저녁으로 남편이 잠깐씩 함께 있겠지만 아침 일찍 일어나 보통 아빠 퇴근전에 밤잠이 드는 우리 아이들의 리듬상 이제부터는 거의 나 혼자 세 아이들을 돌봐야한다.

에고... 인제 난 죽었다.ㅜㅜ
하루하루 무사히 살아지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다행스러워하며 뭐 더 바라지 말고 살아야지..
휴식이라든지, 여유라든지... 뭐 그런 것 말이다.

몸과 마음이 다 힘들 것은 당연하고, 허리 다리 팔 어디 한군데 안 아픈데가 없겠지..
당장 오늘 점심쯤에 집에 도착해 딱 한나절 살았을 뿐인데 벌써 연수연호에게 버럭버럭 내내 화내고 
연제도 여러번 울렸고 집은 방금 내가 싹 치우기 전까지 말도 못하게 어지러웠다.
그래도 엄마가 싸준 국과 반찬들이 있어 다행히 먹을 것 걱정은 없었는데도 상황이 이러했으니 
이제 앞으로 내가 요리까지 해가며 보내는 날들은 어찌 될지 감히 짐작도 안된다.

엄마 속은 아는지 모르는지 연수랑 연호는 야단맞고 돌아서면 금새 또 언제 혼났느냐는 듯이 신이 나서 둘이 까불고 장난치며 좁은 집을 먼지나게 뛰어다니며 노는데
그전같으면 '형제가 다정히 잘 노니 좋네..'하고 흐뭇해했을 것을
오늘은 어찌나 심란하던지   
남편이고, 아이들이고 쳐다볼 마음도 나지 않았다.

문득 신경숙씨 소설 '엄마를 부탁해'에서 엄마가 너무 속상하고 답답하고 힘들 때는 장독대에 있는 항아리 뚜껑을 들어서 바깥벽에 힘껏 던져 쨍그랑! 하고 팍삭 깨지는 소리를 들어야 속이 시원해져서 항아리 뚜껑 새로 살 때마다 돈이 아까우면서도 또 깨고 또 깨고 했다는 얘기가 생각날 정도였다.
나는 뭘로 이 순간을 넘겨야하나.. 우리집은 아파트라 항아리뚜껑 던질 뒷마당도 없는데....ㅜ
   
어제 강릉에서 큰 애들은 할아버지할머니께 맡겨놓고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잘랐다.
연제는 미용실 밖에서 남편이 모비랩으로 안고 재우면서 엄마 파마 끝나기를 기다렸고.
더운 여름 아가랑 밤낮으로 붙어지내자면 긴 머리가 덥고 거추장스러울 것 같아 아주 짧게 잘랐다.
시원해서 좋긴 한데, 체온조절이 잘 안되는 나는 머리만 짧아져도 살짝 서늘한 기운에 코가 막히고 무튼 아직 잘 적응 안된다.

전투에 임하는 장수의 심정으로....
머리까지 짧게 잘랐으니 심호흡 크게 하고 힘 좀 내봐야겠다.
여기는 나의 전장. 자식농사짓는 농부로 보자면 나의 논밭. 
엄마이자 주부로 사는 서른여섯살 전욱의 일터.

힘내자, 힘내.
연제를 무사히 건강하게 잘 낳은 것 만으로도 내가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을 받았다.
연제도 건강히 잘 크고, 내 몸도 또 이만큼 회복되어서 
이제 내 손으로 아이들 밥짓고, 내 살림 다시 하며 지낼 수 있는 것이 생각하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그러니까.. 시작하기전에 징징거려 보는건 이쯤하고 이제는 웃으면서 가는 거다.
잘 할 수 있을꺼다. 잘 해야지... 

아이들 키우며 제일 힘들고 두려운 순간은 아이들에게 너무 미안해질 때다.
너희들을 낳은 것이, 이렇게 밖에 못 키우는 것이 미안해질 때...
그 때가 나 자신이 싫고 미울 때만큼이나 괴롭고 슬프다.
그런 순간을 너무 많이 만들지 말아야지... 
아주 없게 지낼 자신은 없지만... 노력해야지... 그런 순간이 적어지도록.

세 아이 육아.
이제부터 진짜 시작이다.




Posted by 연신내새댁
umma! 자란다2013. 5. 10. 00:11

 

 

연수네 유치원이 봄방학을 했다.

본래 이름은 '여름들기방학'.

절기상 여름으로 접어드는 '입하' 무렵에 일주일 동안 하는 방학이다.

아직 쌀쌀하던 2월 20일께부터 시작해서 두달 남짓 열심히 달려온 봄학기를 마치고 고단해진 몸과 마음을 모두 푹 쉬고 돌아오라는 시간이다.

새로운 친구들, 새로운 공간에 적응하고 추운 날부터 시작해 살짝 더워지는 날씨까지.. 비오고 바람 많던 봄을 지내며 

나무에 돋는 새순들처럼, 들의 풀과 꽃들처럼 햇살속에, 바람속에 매일 쑥쑥 자라느라 애썼던 아이들에게 주는 꿀맛같이 달콤한 휴식의 시간이다.

유치원이 즐겁고 좋은 공간이기는 하지만 다섯, 여섯, 일곱살 아직 어린 아이들에게 하루도 빼놓지 않고 매일 유치원 오고가는 일이며 아무래도 자기 집 아닌 곳에서 여럿이 어울려 지내는 일 모두 꽤나 긴장되는 일이고, 연수 유치원처럼 매일 제법 먼 거리를 걸어 산책하고 바깥놀이하며 뛰어놀다보면 몸과 마음 모두에 고단함이 쌓이기 마련이다.

그래서 봄이 끝나고 여름이 시작되는 이 즈음에 이렇게 한 템포 쉬어갈 수 있는 시간,

조용히 자기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오롯이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내며 맘껏 게으름도 피워보고 편하게 뒹굴고 퍼져있을 수 있는 이 시간이 나는 참 고맙고 좋다고 생각한다.

(연수네 유치원이 대안학교인 '꽃피는 학교'의 부설유치원이라 이런 방학이 있는 것인데, 요즘은 공교육에서도 이런 휴식의 필요를 공감하고 혁신학교들부터 이 방학을 갖고 있다. 일하는 부모들의 입장에서는 따로 대책이 필요해 힘든 점이 많겠지만.. 아이들 입장에서는 참 좋은 시간일 것 같다.) 

 

작년에 잠시 한 달 정도 다니다 말고 나서

올해 다시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한 연수로서는 이번이 첫 유치원 생활이나 마찬가지고, 나도 그래서

왠지 봄학기 잘 마무리하고나니 무슨 큰 일이라도 하나 마친 것처럼 '휴...'하고 한숨이 쉬어진다.

사실 이번 봄학기가 우리에게 갖는 의미가 작지는 않았다.

시작하기 전부터 우여곡절도 많았고...

 

통학버스가 없는 연수네 유치원은 부모가 직접 차로 등하원을 책임져야하는데 연제 출산과 겹쳐서 아무래도 내가 운전하기가 쉽지가 않았다.

가까운 아파트 단지에 사는 친구 엄마가 카풀을 해줄 수 있다하여 작년 가을 즈음에 어찌할까.. 생각하다가 워낙 내가 좋아하는 유치원이고, 또 연수가 작년 봄에 그만둘 때 '여섯살이 되면 다시 오자'하며 그만두었던지라 연수도 유치원의 다른 아이들에게도 그것이 하나의 약속처럼 기억되어 있는데 그 약속을 지키는게 좋을 것 같아 11월에 선생님께서 '어떻게 하실래요?' 물어오셨을때 봄에 다시 가겠노라고 대답하고 연수와도 겨울 동안 '봄이 되면 꽃피는 유치원에 다시 가자'고 얘기해왔었다.

그런데 겨울이 끝나갈 즈음, 카풀에 대해 여러모로 깊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우선 카풀 해주려했던 엄마가 개인적인 건강 문제로 힘든 것도 있고, 하루 두번씩 10분 남짓한 거리긴 하지만 다른 집 차를 타고 유치원을 오가는 일을 연수가 힘들어하진 않을까.. 또 카풀이란 것이 해주는 사람 입장에서도 여간 부담되고 긴장되는 일이 아닐 수 없는데 내가 너무 쉽게 생각했구나... 싶었다.

이런 생각을 할 즈음에는 벌써 다른 유치원들의 모집 시기가 끝났고 알아보니 올해는 또 유난히 아이들이 많아 근처의 여러 유치원들이 모집할때 경쟁률도 높았고 그래서 대기자가 많은 상황이었다.

11월에 어떻게 할까.. 고민하며 물었을 때 연수는 '난 그냥 집에 엄마랑 있는게 좋은데...'하고 말하기도 했지만 겨울이 끝나갈 무렵에는 '봄이 오면 나도 이제 유치원에 갈꺼야. 가면 친구들이랑 재밌게 놀 수 있겠지?'하고 기대하는 마음을 보이기도 해서 가능하면 그 설레는 마음을, 우리가 다섯살 봄에 함께 했던 약속을 연수도 지키고 엄마도 지켜주고 싶었다.

그래서 앞으로의 상황이 어떻게 될지는 지내면서 더 고민해보고 우선은 할 수 있는만큼 하자! 는 생각으로 2월 20일께부터 시작된 봄학기를 함께 다니기 시작했다.

 

첫 일주일은 연수의 적응기간이어서 하루에 두시간씩만 가기로 했다.

만삭의 엄마와 세살배기 동생 연호가 함께 동행해서 아침에는 택시를 타고 유치원에 가고, 점심에는 셋이 함께 미사리 멋진 식당에서 점심을 사먹기도 하고, 집에서 제법 먼 정류장에 서는 버스를 타고 와서 연호는 유모차에 태우고 연수와 엄마는 산책삼아 걸어서 집까지 돌아왔다. 중간에 연호가 잠들면 우리는 작은 동네 커피숍에 들려 핫쵸코와 커피를 사먹고 지나는 길에 있는 못가본 놀이터들에서 오래오래 놀다가 오곤 했다.

연수가 유치원에서 두시간을 보내는 동안 연호와 엄마는 첫날만 형아와 함께 있고 둘째날부터는 유치원 앞에서 버스를 타고 큰 마트에 가서 구경을 하다 돌아오기도 하고, 유치원 근처에 있는 누나네 집에 가서 차를 마시고 놀기도 했다.

만삭의 엄마에게는 휴대용유모차 어깨에 메고 20개월된 둘째 손 붙잡고 여섯살 연수와 함께 대중교통을 타고 오가는 일이 쉽지 않았지만 이게 다 셋째 건강하게 낳으려고 운동하는 시간이지... 생각하며 즐겁게 다녔었다.

힘들었지만 정말 참 재미있는 시간들이었고, 연수와 연호도 참 즐거워했다. 셋이 함께 참 많이 걸었고, 웃었다.

2월말, 아직 공기는 차갑지만 햇살에서는 봄기운이 느껴지던 그 때, 부른 배를 한 엄마와 함께 종일 밖에서 놀고 먹고 자고 했던 그 날들의 씩씩하고 즐거운 기운이 우리들의 몸과 마음에 따뜻하게 새겨질거라 믿었다.

그 힘으로 나도 셋째를 잘 낳을 것이고, 막내 동생이 태어나 엄마가 출입이 자유롭지 못할때, 어쩔 수 없이 집안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며 아쉽고 답답한 시간을 보내야할때 연수와 연호에게 마음의 힘이 되어줄거라고 믿었다.

그리고 정말로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연제를 무사히, 딱 내가 원했던데로 진통을 오래하지 않고 건강하게 잘 낳을 수 있었던 것은 연수의 유치원 첫 날들을 연수연호와 그렇게 함께 보냈던 것이 정말 큰 힘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2월을 보내고 3월이 시작되면서 나는 바로 연제를 낳았다.

연수는 출산휴가를 맞은 아빠와 함께 유치원 등하원을 하다가 아빠 휴가가 끝남과 동시에 한동안 유치원을 쉬었다. 엄마아빠가 유치원에 데려다줄 수 없기도 했고, 우리를 돌봐주러 서울에 올라오신 시어머니께 운전을 부탁할 생각을 했었는데 낯선 길이고, 어머니도 한동안 운전을 안하고 계셨던지라 갑자기 다시 운전하기는 어렵겠다고 하셔서 그냥 쉬기로 했다. 카풀을 부탁할 수 있긴 하지만 그 시간을 집에서 이제 막 새로 맞은 식구인 갓난아기 동생과 엄마, 연호, 할머니와 온전히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연수는 유치원이 재밌다고 했지만 집에서 보내는 시간도 좋아했다. 나는 연수가 함께 있는 것이 좋았다. 큰 아이가 함께 있으면 엄마가 푹 쉬지 못하니 산후조리하기가 힘들 수도 있지만 더 어린 둘째도 있고, 연수가 있으면 연호도 형아 따라 다니며 잘 놀때도 있고 무엇보다 내가 마음이 푸근했다. 에구 나도 좀 조용히 쉬어봤으면... 싶을 때도 있지만 그래도 나는 내 아이들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보면서 행복할 때가 많고, 또 가족안에 큰 변화가 있는 이런 때에는 무엇보다 가족이 함께 보듬고 시간을 보내는 것만큼 좋은게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때때로 힘든 순간이 있어도 아이들 모두 내 곁에 두고, 많이 껴안고 얘기 들어주고 눈길보내며 지낼 수 있어 고마웠다.

 

그래도 기왕 다니기로 한 유치원을 너무 오래 쉬면 안 될 것 같아 3월 마지막주부터는 내가 운전을 시작했다.

살림은 여전히 시어머니께서 다 맡아해주시고, 연호도 할머니와 잘 지내서 나는 갓난아기만 돌보면 되던 때라 오전오후로 20분씩 운전하는 일이 크게 고단하지는 않았다.

다만 내가 아직 운전이 초보라 교통량이 많지 않고 길도 쉽지만 오가는 내내 긴장이 많이 되었다.

그래서 한번씩 다녀올때마다 출발전에 아이들 얼굴 보면서 '조심해야지..' 다짐하고, 돌아와서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나면 '휴...'하고 한숨이 나왔다.

 

연제 젖물려 재워놓고, 연호 할머니께 맡겨놓고 연수 손잡고 주차장까지 걸어가서 차를 타고 출발하면 길가에 핀 봄꽃들에 눈길 한번 주기가 어려운 초보였지만

그래도 연수 유치원 마당에는 참 크고 예쁜 꽃나무들도 많고, 아이들이 그날 그날 새로심는 꽃들과 옥수수 씨앗, 딸기 모종 같은 것들을 쳐다보며 봄을 깊이 느낄 수 있었다.

고맙고 여리고 고되고.. 그리고 뭉클하게 아름다운 봄.

이른봄에 갓난아기 낳고 한달만에 매일 두번씩 운전하고 바깥바람 쐬는게 쉽지는 않지만 셋째 엄마는 이렇게 되는구나.. 큰 아이도 봐줘야하고 둘째도 봐줘야하고 그리고 갓난아기 너도 봐줘야하는 나는 세아이 엄마구나...

 

연수 유치원에 산수유, 목련, 개나리, 살구꽃이 차례로 피는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데려다주고 데려오고 하면서 4월 한달이 그렇게 갔다.

다행히 나의 운전은 사이드브레이크 올린채로 집까지 온 일 한 번, 아침에 지하주차장에 주차하고는 차 문 열어놓고 집에 올라왔다 오후에 내려가서야 안 일 한 번 뺴고는 아무 사고 없이 무사히 잘 끝났다. ^^;;;   

초보라 긴장되고, 하루도 안거르고 꼬박꼬박 하려니 조금더 힘들긴 했지만 그래도 운전하는 일이 즐겁기도 했다.

새로운 것을 익혀서 할 수 있게 되는 것도 기뻤고, 갓난아기와 큰 아이들과 함께 종일 집에서 복닥거리다가 잠깐씩 시원하게 교외로 나와 숨돌릴 수 있는 것도 좋았다. 여러모로 마음 많이 졸이는 시간이었지만 연수 유치원에 도착해 잠시라도 파란 하늘과 봄빛도는 풍경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아 참 행복하구나..'하는 생각에 마음이 따뜻해지곤 했다.

아직은 많이 미숙한 초보지만 언젠가는, 가까운 미래에는 나도 '베스트 드라이버'가 되어서 세 녀석 태우고 보고싶은 사람들 곁으로, 아름다운 숲과 풍경속으로 씽씽 달려가는 상상을 하며 혼자 신나하기도 했다. ^^

아이의 성장과 함꼐 엄마도 또 이렇게 달라지는구나.. 운전도 하게 되고...

아이가 부모를 키운다는 말이 참 맞다. 그렇게 우리는 함께 큰다. 늘 해보고 싶었던 운전을 시작할 수 있게 해줘서 고맙다, 연수야..^^

 

시어머니와 산후도우미아주머니의 도움을 받았던 3월, 4월 동안은 갓난아기를 그 분들께 맡길 수 있어서 내가 운전을 할 수 있었지만 이제 봄방학이 끝나고 나면 연제가 좀 클 때까지는 한동안 내가 다시 운전을 하기는 힘들 것같다.

그래서 연수 등하원은 다른 방법을 찾기로 했다. 휴... 한 고비 넘고나니 또 새로운 고비구나.

본래 시작하면서도 '우선 봄까지만이라도...'한게 내 마음이었다.

봄학기만이라도 연수가 꽃피는 유치원에서 보낼 수 있기를 바랬다.

미사리경정장의 아름다운 숲길을 매일 걷고, 흙과 나무와 꽃들을 마음껏 만지고 느끼고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을 연수에게 잠깐이라도 꼭 주고 싶었다.

봄 이후에는 또 다른 길이 생기겠지.. 다른 무엇이 되었든 우리가 함께 잘 해나갈 수 있겠지.... 그런 마음이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봄학기를 보내는 동안 연수에게는 단짝친구가 생겼다.

5, 6, 7세 통합교육을 하는 연수네 유치원에서는 형누나, 친구, 동생들과 함께 노는데 연수는 일곱살 형아 한명과 단짝이 되었다.

집에 오면 두 녀석 다 서로의 이야기를 하고, 서로의 말투와 행동을 따라하고, 깔깔 거리며 함께 장난치고 놀기 바쁜 친구..

아침에 집떠나기가 힘들어 궁둥이 비비적거리고 있을때 '연수야, 필준이형아 기다리겠다' 한 마디하면 발딱 일어나서 신발신게 되는 친구.

참 신기하지...^^ 어쩜 그리 좋을까, 그 친구가.

엄마도 그 맘 이해한단다. 엄마도 친구가 그렇게 좋았거든. ^^

 


 

 

 

같이 뛰자! 하고 높은 정글짐 위에서 함께 뛰어내리는 친구가 있으니 얼마나 좋을까.

내일 또 만나서 함께 놀고싶은 친구.

연수에게 그런 친구가 생겨서 참 고맙고 반가운데, 그리고 연수가 유치원을 참 좋아하고 '얼른 또 가고싶다' 얘기하며 즐겁게 다녀서 참 기쁜데 그 유치원의 등하원이 어려워 엄마아빠는 이런저런 고민이 많으니... 미안하고 안타깝구나. ㅜㅜ 

 


 

 

 

방학 전주 목요일이었던 5월 2일에는 유치원의 봄소풍이 있었다.

봄소풍이라고 해야 매일 가는 경정장 숲에서 조금 더 먼 풀밭까지 걸어가서, 돗자리 깔고 앉아 집에서 싸온 도시락을 먹고 놀다 온다는 것만 다를뿐이지만

그래도 아이의 첫 소풍 도시락을 싸는 것 만으로도 엄마는 설레고 들떠서 며칠 전부터 뭘싸야하나... 궁리를 했더랬다.

김밥재료 준비하고, 음식솜씨 좋은 산후도우미 아주머니께 부탁해 맛있는 고로께 반죽을 미리 만들어놓았다.

소풍날 아침에는 정말 진땀뺐다.

아빠 아침먹여 출근시키고 냉장고에서 김밥 재료 꺼내는데 연제가 그만 깼다.

연제가 잘 자야 김밥을 말 수 있는데.. 다시 재워달라며 칭얼대는 연제 울려가며 계란 부치고, 당근볶고 오이 채썰어 절이고 하려니 등에 땀이 났다.

다행히 연제가 젖먹고 잠이 들어서 연제자는 한 시간 안되는 시간동안 부다다다 김밥 말고, 고로께 튀기고, 과일 깍아 간식으로 따로 통 하나 싸고...

김밥 꼬투리로 허기를 달래가며 그래도 신나서 도시락을 싸놓고 얼른 사진 한장 찍었다.

엄마되고 처음으로 싸본 소풍 도시락이다. ^------------------^

못생겼지만 그래도 맛있었던 김밥.   

연수는 잘 먹고 돌아왔다. 아이는 평소와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였지만 엄마는 소풍을 잘 마쳤다는 안도감과 뿌듯함으로 괜시리 혼자 엄청 피곤해했더라는 얘기~~~~ㅎㅎ

 


 

 

 

집에 오는 길.. '엄마 잠깐만!'하고는 유치원 앞 물웅덩이로 달려가 앉은 연수 뒷모습이 동그마하다.

 

봄이 무사히 끝났다.

매일 아이 태우고 다니며 내가 고등학교다닐 때 아침저녁으로 학교까지 태워다주셨던 아빠 생각 많이 했다.

야자끝나는 늦은 밤에 매일 여고 앞에 차를 세우고 앉아계시던 아빠. 하루도 빠짐없이 오고가주셨던 그 길의 고단함과 수고로움을 잠시, 한달 남짓한 기간이었지만 내가 내 아이를 태우고 오고가며 알 수 있었다.

노동절이 있어 하루 내가 운전을 쉬게 되었을때, 그 전날 주차장에 차 세우고 올라가며 '휴.. 내일은 운전안해도 되겠구나~(아빠가 할테니까! ㅋ)' 생각할때 마음에 번지던 그 푸근함..^^

공휴일 맞아 아이들 도시락 안 싸도 되었을 때 우리 엄마 마음도 이랬겠구나.. 싶었다.  

세 아이의 도시락을, 저녁 도시락까지 보온도시락으로 여섯개씩 매일 싸야했을때 우리 엄마는 매일 어떻게 도시락 반찬을 다 하셨을까, 그 설겆이는 어떻게 또 다 하셨을까... 생각할수록, 내 아이를 키워갈수록.. 엄마아빠가 경이로워지는 순간이 새록새록 늘어간다.

 


연수 유치원 방학과 함께 우리는 모두 강릉에 내려왔다.

산후도우미 아주머니께 도움을 받으며 보내는 시기도 방학에 맞춰 마무리했고, 모두 무사히 잘 자라고 지내준 것에 고맙고 감사한 마음으로 세 아이 데리고 친정에 왔다.

엄마아빠할머니 품에서 마음 푸근히 나도 방학을 보낸다.

큰아이 처음 유치원보내며 함께 긴장해 봄을 살았던 나도 방학이고, 오랫동안 아파트 집안에 갇혀 바깥공기를 그리워하며 보냈던 우리 세살 연호도 '하삐! 할미!'부르며 마당을 신나게 뛰어다니는 방학이다.

연수는 소원하던 '유선 만화'도 많이 보고, 외갓집 밭일도 거들고(?), 바다도 다녀오며 방학 제대로 보낸다.

 

여름은 또 어떤 시간으로 우리에게 다가올까.

우리는 어떻게 울고 웃으며 또 그 꽃같은 날들을 살아낼까.

어떤 날들이 펼쳐지든 간에.. 우리는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할 것이다.

아이들은 매일매일 최선을 다해 놀고 자란다.

엄마인 나도 그러면 된다.

하긴 그럴 수 밖에 없다. 많이 부족하더라도, 내 힘껏.. 내 역량 안에서 꼼수 안부리고 살 수 밖에 없다.

그게 삶이겠지.

겨우겨우.. 살아낼지라도 어쨌든 이 시간이 흐르고나면 아이들은 자라있고 삶은 또 달라져있고 추억들은 쌓일 것이다.

시간이 답이다.

그 시간들을 따뜻하게 보내자. 우리 모두의 인생인 그 시간들을.

 

 

 

Posted by 연신내새댁
umma! 자란다2013. 4. 15. 23:34






오~~?
우리 엄마 뭐 하시지?


이 표정은 바다가 자주 짓는 표정이다. 
연호는 바다의 이 표정이 재미있어서 "엄마, 아가, 오~~!(엄마, 아가가 '오~'해요!)"하고 말하며 웃는다.   











아하~ 사진찍는구나~! 그럼 웃어볼까~ 헤헤~~^^


안녕하세요. 바다예요.
태어난지 이제 6주하고 2일이 되었습니다.
부지런히 먹고 자고 싸고 울고 간간히 웃어가며 놀았어요. 
몸에 살도 조금씩 오르고 황달기로 노르스름하던 얼굴도 하얗게 되었습니다.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초봄의 여러 날들 동안
저도 여러가지 감기 증세들로 엄마의 마음을 조마조마하게 했답니다.
이제는 많이 좋아졌지만 앞으로도 제가 이겨내야할 어려운 일들이 많이 있겠지요?
그래도 괜찮아요. 저도, 엄마도 매일매일 더 자라고 강해지고 있으니까 잘 헤쳐나갈 수 있을 거예요.
블로그 이모삼촌들께서도 많이 응원해주세요.

아 참, 저 이름도 생겼어요. 
연제 랍니다. 김연제. ^^
한자로 '건너다, 구하다, 많고 성하다'라는 뜻을 가진 제 자인데요, 엄마는 처음 태어났을 때 보았던 제 눈빛이 별빛같이 초롱초롱해서 연제야~ 하고 부를때 '별빛 제'(다른 한자예요)자도 함께 생각하신대요.












제 이름이 결정되면서 우리는 '수호제' 삼형제가 되었습니다.

셋이 모두 함께 낮잠을 잤던 어느 기적같은 오후.
엄마는 얼른 사진을 찍어놓고 누구 하나 꺨새라 조심조심 이불끝에 누워서 잠깐의 휴식을 즐겼어요.  












아우웅~~~ 아무래도 제가 먼저 일어나야할 것 같아요.
젖도 먹고싶고 기저귀도 축축하게 젖었거든요. 엄마엄마~~!!!
저 이제 발힘도 세서 속싸개정도는 쉽게 차낼 수 있다구요~~ 아.. 근데 좀 춥다.
 













엄마가 저를 돌보시는 동안 아빠는 두 형아를 전담해요. 
주말이나 아빠가 계신 저녁시간이면 두 형이 얼마나 아빠를 기다렸는지, 얼마나 신나하는지가 느껴져요.
울 아빠는 이제 세 아이를 둔 베테랑(?) 아빠가 되어야하기 때문에 아주 고난이도의 육아기술들을 연마하고 계셔요.
여섯살 세살 두 형아를 데리고 주말이면 혼자 주말농장으로, 마트로, 놀이터로 슝슝~ 다니신답니다.
아빠 혼자 두 아이 돌보기... 이거이거 정말 대단한 육아신공이죠? ^^ 
(아빠, 멋져요~! 나도 얼른 커서 아빠랑 형아들이랑 같이 가야지~~! 엄마는 혼자 놀게해주고~~ㅎㅎ)












바다 목소리를 빌려서 이런저런 얘기 해보았다. ^^

매일매일 블로그에 써두고싶은 이야기가 참 많았는데 또 매일매일이 참 고단했다. 

어린 바다가 감기를 앓느라 곁에서 같이 밤잠도 설치고 걱정도 하고 

낮에는 또 연수와 연호도 함께 보살피며 이렇게 저렇게 지내다보니 별다른 큰일없이 그저 하루종일 애들 먹이고 씻기고 입히고 재우고 좀 놀고 하는 일들만으로도 하루해가 후딱 가고, 밤이면 애들과 함께 쓰러져 자기 바쁘다.  

산후도우미 아주머니꼐서 참 잘 해주셔서 나도, 아이들도 모두 잘 먹고 큰 어려움없이 푸근하게 잘 지내고 있는데도

때떄로 '아 참 고단하구나..'하고 몸과 마음이 지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아이들을 바라보면 큰아이 연수부터 연호, 연제까지 귀엽고 예쁘지 않은 애가 없는데..

많이 컸다고 하는 여섯살 연수조차도 아직도 작은 몸에, 발은 땅에서 늘 조금 떠서 잘 안보이는 날개로 팔랑팔랑 여기저기 날아다니는 천사같은 어린 시절을 살고있고

두돌도 안된 연호는 한창 제일 귀여울 떄고 

갓난쟁이 연제는 확실히 이 세상이 아닌 아직 신기하고 신기한 천상의 존재인게 분명한데... 

에고. 이 예쁜 것들에 둘러싸여서, '엄마, 엄마!' 다투어부르는 소리들에 둘러싸여서 

엄마는 행복한 줄 알면서도 고단하다. 

내가 소인국에 와있는 걸리버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작고 예쁜 다른 세계의 존재들과 함께 있는 거인 걸리버. ^^   

아이가 셋이 되고보니 확실히 이 집의 다수는 아이들이고, 아이들이 주인인 집 같다. 소수의 어른들이 요녀석들을 보살피긴 하지만 흠.. 그래도 너희가 주인!


봄이 너무 춥다.

그래도 조금씩 꽃이 피었다. 

연수 유치원에도 산수유, 개나리, 목련, 살구꽃이 차례대로 피고 우리집 거실에서 내려다보이는 아파트 화단에도 매화꽃들이 피었다. 

작고 여린 것들이 강하기도 하지.

추위속에서도 작은 꽃망울들이 어김없이 피어나듯 

봄도 끝내는 추위를 떨쳐내고 따뜻한 기운을 사방에 채워주겠지.   

3월 3일, 이른 봄에 씩씩하게 태어났던 우리 아가도 춥고 아픈 날들 동안 작고 여린 몸으로 세상을 익히고 자라느라 참 애썼다. 

여리지만 강하게.. 우리도 그렇게 자라야지.


오늘보다는 내일이, 내일보다는 모레가 훨씬 수월할 것이다.

아이들은 매일 자라니까.. 세상에 같은 날은 하루도 없으니까.

아이들이 오늘처럼 작은 날도 오늘 하루 뿐이고, 내일이면 또 하루만큼 아이들은 자라있을테니 내일은 오늘과 다를 것이다.

단 한 번.

오늘 하루는 인생에서 단 한 번뿐이라는 걸 실감하는 요즘이다.

내 인생도 단 한 번, 이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삶도 단 한 번, 이 아이들이 내 품 안에 쏙 들어오는 요만한 어린 아기인 시절도 단 한 번. 

내일은 더 나아지리란 사실은 큰 힘이 되고, 오늘이 단 한 번뿐이라는 사실은 귀한 것들을 귀하게 보게 해준다.

그래서 힘들어도 참 좋은 봄이다. 참 고마운 봄.

고되고 여리고 강한 봄.

보고싶은 많은 분들.. 이 봄에도 행복하시길.




  




Posted by 연신내새댁
umma! 자란다2013. 3. 31. 13:41




+ 바다 태어난지 일주일 되던 날 아침, '한 치레'(첫 칠일)라며 어머님이 차려주신 삼신상.





바다가 태어난지 오늘로 꼭 4주가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어느새 한 달이 다 되어가네..

얼굴이며 팔다리에 조금 살이 붙기는 했어도 바다는 여전히 작디작은 신생아 아기고
나는 어머님이 해주시는 따뜻한 밥과 국을 받아먹으며 아직 내 살림에 하나도 복귀하지 않았고
형아 두 녀석도 매일매일 야단법석 장난치다가 할머니께 야단도 맞고, 또 금새 '에구 우리 강아지~~'하고 엉덩이 토닥거리며 끌어안기기도 했다가 하면서 
매일매일이 참 빨리도 지나갔다.


이 한달 동안 우리 가족의 삶은 새로이 등장한 두 명의 식구와 새롭게 사귀고 가족이 되어가는 시간이었다.
바다와 할머니, 두 사람.





+ 퇴원하던 날. 그러니까 태어난지 삼일째 되던 아침, 바다. 





바다는 조용한 아기. 거의 울지 않고 젖만 먹으면 두어시간씩 잘 자는 순하디 순한 아기다.
그래서 바다가 자고 있는 동안은 마치 바다 태어나기 전처럼 내가 연수, 연호와 놀아주며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그래도 역시 아가가 차지하는 자리는 크고 또 커서
나는 하루중에 제일 긴 시간을 바다 옆에서 젖주고 같이 자고 기저귀갈아주고 쳐다보며 지낸다.
형아들은 그만큼 줄어든 엄마 품과 관심이 서운할텐데 
연수는 워낙 막내동생을 예뻐하는 마음이 크고, 또 엄마에게는 어쩐 일인지 요즘 절대적인 사랑을 표현하는 시절을 살고있어서 주로 제 마음안에 고이는 답답함이나 아쉬움 같은 것을 할머니께 화풀이하면서 지내는 것 같다.

연호는 타고난 다정함과 살가움으로 할머니와 아주 좋은 짝꿍이 되었다.
'함미~ 함미~~'부르며 할머니를 잘 따르고 할머니와 잘 놀고 많이 의지한다.
그래도 엄마 품이 그리울때는 수시로 엄마 방으로 달려와서 '찌찌' 달라고도 조르고, 엄마가 아가 젖줄때 자기랑 놀아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그림책을 들고와서 '책~ 책~'하고 읽어달라고 한다. 
그러면 아무리 고단해도 그 책들을 몇 번이고 읽어준다. 매일 같이 아가와 엄마 머리맡에 그림책을 수북히 쌓아놓는 연호. 
그 그림책의 부피가 연호가 느끼는 허기와 외로움의 크기일 것이다.  
엄마랑 아가 곁에 누워서 그림책을 한참동안 보다가 밖에서 형아와 할머니 소리가 들리면 '형아 방!', '할미 왔따!'하면서 벌떡 일어나 달려나가는 연호.
나가면서 꼭 '아가 아 추~(추워), 엄마 아 추~'하고 말하며 문을 꼭 닫아주는 연호를 바라보고 있으면
'저 아이 마음의 저 고운 결은 어디서 왔을까...' 궁금해진다.










연수랑 연호는 바다를 자주 안아준다.
연수는 이제 제법 아기를 안을만한 팔힘이 되고 자세도 나온다. 아기를 조심히 보살펴야한다는 것을 아는 나이인지라 잠시 안았다가 엄마한테 다시 잘 건네준다. 
연호한테도 '아가 때리면 안돼, 아가는 살살 만지는거야, 안그럼 형아한테 혼난다~~'하고 주의를 주는 큰형이지만 저도 아직은 여섯살 장난꾸러기. 바다 입에 제 손가락을 넣어서 쪽쪽 빨게해보는게 소원이다. 
연호는 엄마가 아기를 안은채로 다리위에 올려주는 수준인데 그래도 꼭 껴안고 '에뻐~~(예뻐)'하면서 볼을 부비고 뽀뽀를 하면서 아가 얼굴에 침을 잔뜩 발라놓는다. 어른들이 하지 말라니까 더 해보고 싶어서 가끔 아가 얼굴도 눌러보고, 때려보고 싶어할 때도 있지만 어린마음에 뜻대로 안돼 속상한 것도 많을텐데 그래도 21개월 우리 어린 형아는 아가한테 화내지 않고 제 마음 잘 다독여가면서 참 잘 참아주고 있다.
그게 엄마는 참 안쓰럽고 미안하다.   
어느날은 연호가 어찌어찌 놀다가 낮잠을 거르고 이른 저녁잠이 들었는데 한시간쯤 자다깨서 아주 오래도록 서럽게 울었다. 
늘 생글생글 잘 웃고, 할머니와 장난치고 잘 놀던 녀석이 어떻게 달래도 달래지지 않고 엄마만 찾으면서 서럽게 오래 우는 것을 보고 할머니도 '그동안 못 운거 한꺼번에 다 우나보다..'하고 측은해하시고, 엄마도 가여워서 오래오래 안고 달랜 저녁도 있었다.
연수는 이제 제법 많이 컸고 두번째 맞는 동생이라 훨씬 의젓하게 지내고있지만 그래도 마음안에 새 가족을 맞는 낯설고 긴장된 이 시절의 느낌을 예민하게 새기고 있을 것이다. 또 새롭게 유치원 생활을 시작하면서 재밌는 것도 있고, 힘든 것도 많을텐데 그 마음을 잘 풀어낼 수 있게 보듬어줘야할텐데.... 
엄마는 누워서 이런저런 생각만 많다.   










 

구성원이 바뀌고 생활이 바뀌고 그래서 마음과 몸이 모두 새로운 변화에 적응하느라고 기쁘기도 하고 고단하기도 한 날들.
바다 태어나기 며칠 전부터 살짝 콜록거리기 시작한 형아들 기침감기가 
바다 낳으러 엄마아빵와 새벽에 병원으로 달려가고, 병원에서 이틀밤을 함께 자고
또 집에 돌아와서도 익숙한 안방의 잠자리를 아가와 엄마가 따뜻하게, 조용히 쉴 수 있게 내어주고
형아들은 아빠와 거실에 새롭게 이부자리를 펴고 자기 시작하면서 나아지지 않고 계속 심해졌다.
어지간하면 감기약을 먹지 않고 며칠 앓고 시나브로 잘 나아왔던 감기가 너무 오래 가고
또 엄마도 감기기운이 돌고 신생아인 바다까지 콧물이 살짝 나자 안되겠다 싶어서 삼형제 모두 데리고 동네 소아과에 다녀왔다.
어린 연호는 항생제를 좀 처방받아 먹고 연수는 괜찮을 것 같다며 약먹지말고 나아보자 했는데(어지간해서는 항생제 처방을 잘 않하시는 소아과샘이라 참 좋았다) 
그뒤로도 기침이 더 심해지다가 가슴까지 아프다길래 열흘만에 다시 병원에 갔더니 
그 사이 코속에 염증이 생겨서 축농증이 되었다며 이번에는 어쩔 수 없이 항생제를 먹게 되었다.
근 몇년만에 처음 감기약을 먹어본 연수는 첫날 저녁과 이튿날 거의 하루종일 잤다. 
늘 펄펄하게 뛰어놀던 아이가 몸에서 기운이 다 빠져나간 것처럼 쓰러져 자는 모습을 보니 '약이 무섭구나..'싶기도 하고, 병을 치료하기위해 어린 몸이 저리도 애쓰는구나.. 싶기도 하고 무튼 낯설고 긴장되어서 옆에서 다시 소아과책 뒤적여보며 마음 많이 졸였다.
아이를 셋이나 낳았어도 아직도 모르는게 참 많고, 알아야할 것은 더 많고... 기쁘고 좋은 것이 많은만큼 걱정할 것도 많아서
아이가 많다는 것은 엄마 몸뿐만 아니라 엄마 마음이 참 할일이 많은 것이구나, 이 아이 걱정하다가 저 아이 보고 좋아하다가 또 남은 한아이 생각 하다가.. 그러다보면 하루가 훌쩍 가있는 그런 것이구나... 하고 깨달았다.
다행히 연호는 감기가 다 나았고, 연수도 오늘로 축농증의 한고비는 넘긴 것 같고, 바다도 괜찮다.. 
 


  








그리고 이 분. 
이 분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다.
우리 어머니. 나의 시어머니시고 아이들의 할머니인 이 분.
셋째 손주를 낳은 며느리의 산후조리를 해주시려고 어머니는 이번에 큰맘먹고 한달간 일손을 놓고 서울에 올라오셨다.
아이가 셋이나 되고 특히 연호가 아직 많이 어리니 나 혼자 아이들 데리고 쩔쩔 맬 것이 눈에 선하고 마음에 짠하셔서 늘 바쁘게 낮밤 가리지않고 해오시던 생계를 위한 고된 일들을 잠시 멈춤해놓고 우리들 곁에 와주셨다.

할머니가 계셔서 얼마나 든든한지 모른다.
여섯명, 대식구가 된 우리 식구의 식사, 빨래, 청소같은 모든 살림의 고단함도 고단함이지만
젖먹이는 며느리와 갓난아기를 보살피는 일과 
여섯살 세살 펄펄한 남자아이들의 장난과 놀이와 기운을 모두 받아내는 것을 생각하면 
지금 어머님이 해주시는 수고가 얼마나 크고 어려운 일인지 나는 깊이 느끼고 있다.
그래서 나중에, 나중에 어머님이 많이 나이드시고 그래서 몸이 약해지시는 때가 오면 그때는 내가 꼭 지금 받은 이 고마운 수고에 잘 보답해야지.... 마음에 새기는 날들이다.

결혼하고 6년만에 이번이 내가 어머님과 제일 오래 같이 시간을 보내는 날들이다. 
아이들도 할머니와 제일 오래 지내보는 것이고, 아마 남편도 고등학교 이후로 처음 어머니와 함께 살아보는 것일 것이다.
가족이 된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결혼해서 부부가 되고, 자식을 낳고 그러면 자연히 가족이 되는 것 같지만 
진짜 가족을 만들어주는 것은 시간인 것 같다. 
서로 안맞아서 부딪히고 섭섭해하고 서운해하고 불편해하고 속상해하고 그러는 모든 과정을 거치며 이해도 하게 되고 반성도 하게 되다가 어느순간 정들고 좋아지는 것.. 그리고 또 다시 매일의 다양한 사건들속에 이 모든 감정을 반복하는 것.
그게 가족을 만드는 연금술인 것 같다.

어머님 오시고 제일 먼저 부딪힌 것은 연수와 할머니고 지금까지도 계속 부딪히고 있는 것도 연수와 할머니다.
연수는 꼭 영화 '집으로'에 나오는 꼬마손주처럼, 시골의 할머니에게 '아무 것도 모른다'며 화를 내고 무시하고 그러면서도 깊이 의존하고 겉으로는 센 척하고... 그러고 있다. 
이러다 아마 할머니가 다시 상주로 내려가시면 그제야 제가 얼마나 할머니와 정이 들었는지 알게 될지도 모르고, 아직 어려 그것까지는 모르더라도 한동안 마음이 허해서 어디 또 시비걸데 없나... 찾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할머니께 야단맞고 잔소리듣던 것이 덜해져서 안도하고 우리 식구만 지내던 익숙한 생활로 돌아온 것을 편안해하기도 하겠지만... 그래도 이 시간동안 연수 마음에 할머니에 대한 정이, 의지하고 믿는 마음이 한결 깊어졌을 것은 틀림없다.
명절에만 이삼일 잠깐 뵙던 사이와 한달 넘게 함께 살았던 것은 분명히 다를 수 밖에 없으니까.... 
그게 정말 고맙고 다행스럽다.

나에게도 마찬가지다.
결혼해서 지금까지 내게 시부모님은 어렵고, 낯선 분들이었다. 
나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사귈때 내가 하는 방식대로 우선 이분들을 이해하려고 애썼다.
왜 이렇게 행동하실까.. 사회경제적 처지, 역사적 경험, 가족사안에서의 특별한 사건들... 짧은 경험과 지식을 동원해 이렇게 저렇게 이해하고 납득이 갈만한 설명을 만들어보는 것. 그게 내 나름대로 해왔던 가족이 되기위한 노력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어머니와 함께 지내면서 깨달은 것은 이렇든 저렇든 좋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기 부모를 이해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은 별개라는 것. 
나는 여전히 어머니가 불편하고 낯설 때가 많지만 그래도 나는 어머니가 좋다. 이제는 이 분을 좋아할 수 있을 것 같다.
어쩌면 친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같이 많이 얘기하고, 같이 지내다보니..
그리고 그동안 나는 남편에게 '어머니께 좀 다정하게 대해드리라'고 자주 말하곤 했다. 우리 남편은 워낙 어머니께 무뚝뚝한데 어머니 입장에서 그게 참 섭섭하실 것 같았고, 또 장래에 우리 아이들이 그런 아빠를 닮아 내게도 무뚝뚝해질까봐 걱정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어머니가 속상하시다못해 한번 아빠에게 폭발해서 그 섭섭한 마음을 마구 쏟아놓으셨을때, 그 때 알았다. 나도 잘한게 없다는 것을... 나는 '당신 어머니시니 당신이 다정하게 대해드리라'고 늘 얘기했지 내가 다정하게 대해드릴 생각은 못하고 지냈다. 노럭해야하는 것은 남편만이 아니라는 것을 그 순간 깨달았다.
금방 잘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무뚝뚝한 며느리는 의식적으로라도 조금씩 나아지려고 노력 중이다.      











바다 태어난지 2주 되었을때 아버님이 우리집에 오셨다. 
어머님이 조리해주러 와계신 동안 아버님이 오래 혼자 지내시는 것이 마음에 걸려서 남편도, 나도 전화로 주말에 한번 꼭 올라 오시라고 말씀드려서 어렵게 걸음하신 것이다. 아버님은 토요일에도 늦게까지 일을 하시기 때문에 주말이라도 먼나들이 하시기가 쉽지 않은데 이번에는 토요일 일을 쉬고 오셔서 하루밤 우리집에서 주무시고 내려가셨다. 

'손주 낳았는데 보러오지도 않는다고 며느리가 뭐라 할까봐' 오셨다고 웃으며 말씀하셨지만 그동안은 사실 며느리 애먹을까봐 서울에 오셔도 우리집에서 묵는 일은 거의 없으셨던 아버님께서 
마침 어머님이 오래 와계실때 손주들도 보고싶고 아들며느리 얼굴도 보시려고 먼길을 와주신 것이라 나는 정말 감사하고 기뻤다. 
마침 아직 결혼전인 시동생의 생일도 가까이 있어서 이 주말에는 할아버지와 삼촌까지 우리집에 오셔서 여덟명, 대식구가 함께 밥먹고 얼굴보고 이야기하다가 잤다.
다행히 지난 겨울 친정갔을때 이제는 우리집에 아이가 셋이나 되니 이불도 많이 필요하겠다면서 얇은 이불, 두꺼운 이불 많이 받아와서 대식구가 깔고덮을 이불이 넉넉했다.
내 집에, 시부모님과 시동생, 그리고 남편과 아이들까지 많은 식구가 한데모여 머리 맞대고 밥먹고 편히 발뻗고 누워 따뜻하게 잘 수 있다는 사실이 왠지 감격스러웠다.
어릴때부터 대식구 속에서 자란 나는 식구 많은 것이 좋고, 왠지 여럿이 모이면 우리들의 품이 그만큼 넓고 포근해진 것 같아 그 속에 함께 들어있는 내가, 내 아이들이 모두 더 포근하게 감싸지는 것 같아 좋다.
식구들이 덮을 이불이 부족하면 이불을 덮어도 내 발이 시린 것처럼 마음 불편했을텐데 이불도 넉넉하고, 어머님 수고를 다 빌린 것이긴 해도 끼니마다 맛있게 같이 밥먹고 하니 
아버님은 다시 혼자 지내시러 상주에 내려가시고, 혼자 자취하는 시동생도 다시 회사 근처 자기 집으로 돌아갈 때에도 
그래도 하룻밤 가족들 따뜻한 온기에 싸여 몸과 마음을 좀 덮히고 가시게 한것같아 보내는 마음이 밝을 수 있었다.







+ 우리 가족 첫 가족사진.

퇴원하고 일주일있다가 산후검사 받으러 다시 병원에 갔을때 출산센터에서 찍었다. 바다, 지못미~~~^^;;



세 아이의 엄마로 사는 첫 날들이 이렇게 지나가고 있다.

연수 유치원 데려다주느라 다시 운전을 시작했고, 오늘은 처음으로 혼자 세 아이를 데리고 하루해를 보내보았다.

어머님은 우리집에 오신지 근 한달만에 처음으로 시외가 어른들과 함께 여행을 가셔서 두밤을 주무시고 오실 예정이다. 모처럼의 휴식을 즐겁게 잘 보내고 오시길... 다행이 오늘은 아빠가 밖에서 회의가 있어서 평소보다 일찍 집에 와준 덕분에 저녁 시간에 혼자 종종거리지는 않았다. 내일부터는 아빠가 계속 함께 있는 주말이니 안심이다. 휴...

아직은 많이 어렵고 두렵지만 세 아이의 엄마로 사는 일도 차츰차츰 익숙해지겠지.. 그러다보면 능숙해지는 날도 오겠지.

그때쯤엔 애들이 다 커있을래나..? ^^


 






오늘은 엄마가 내 옆에서 일찍 안 주무시고 뭐하지...? 궁금해하고 있을 바다야. 

엄마가 한달만에 블로그 쓴다고 오늘밤엔 올빼미엄마가 되었네.. 

인제는 다시 우리 삼형제와 아빠가 잠들어있는 안방에 가서 엄마도 네 옆에 누워야겠다.


신생아 바다도, 꼬맹이 형아들도, 엄마아빠도, 할머니할아버지도... 모두모두 참 애쓰고 있는 날들이다.

이 날들을 거치며 아이들은 자라고, 엄마아빠도 조금씩 더 철들어가겠지.

할아버지할머니는 그 모든 수고와 그 속에 쌓인 추억과 정속에서 점점 나이드시고 약해져가실 것이고...

가족이 되어가는 시간.

바다가 태어나며 우리 모두가 함께 보내고있는 이 시간들이 얼마나 귀한 시간인지 깊이 느끼고 있다.

아이는 삶에서 몇번 없는 귀한 선물이다. 그 아이와 함께 찾아오는 이런 시간들, 가족 모두가 함께 많이 애쓰고 많이 사랑하며 함께 건너가는 이 시간들이 가족을 가족으로 만들어준다는 것을 이제 알겠다. 

고맙다, 바다야..

고맙습니다. 어머니, 그리고 연수연호와 아빠 모두들..










Posted by 연신내새댁
umma! 자란다2013. 3. 5. 00:32

폭풍같은 출산이었다.
바다의 예정일이었던 3월 3일 새벽, 저녁부터 조금씩 심해지던 진통이 한밤중에 출혈까지 조금씩 생기자 잠든 아이들을 차에 태우고 병원에 도착한 것이 새벽 2시.

진통을 참아가며 연호를 다시 안아 우리 방안에 재우고 난 후인 3시쯤부터 본격적인 진통을 시작해서 2시간 반만인 새벽 5시 45분에 바다는 세상에 태어났다.

병원에 도착한 후 자지 않고 진통하는 엄마 곁에서 아빠와 함께 있던 연수는 어린 동생이 태어나는 모든 순간을 즐겁게, 신기하게 지켜보고 아빠와 함께 바다의 탯줄을 잘랐다. 


세 아이를 임신해서 세상에 내어놓고 키우고 있지만 출산은 이번이 처음인 나로서는 정말로 신비롭고 놀라운 경험이었다.

바다는 엄마의 바램을 모두 들어주었다.
아빠가 함께 있는 휴일에, 작은 형아가 잠든 새벽에, 진통을 너무 오래 하지 않고.. 건강하고 평화롭게 잘 만났으면... 했던 엄마의 바램을 모두 알고 있다는 듯이, 모두 들어줄 수 있다는 듯이
그렇게 제 힘으로 엄마의 몸을 통과해 미끄러지듯 세상으로 나왔다.









바다가 태어나던 그 순간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김옥진 선생님의 '이제 아기 머리가 나올거야, 연수야, 잘 보렴~.' 하시던 밝고 다정한 목소리,
뭉클 하고 빠져나오던 작은 공같은 양막의 느낌, 곧이어 양막이 작게 팍! 하면서 터지고 바다의 머리와 몸이 쑥 빠져나오던 느낌...!
몸이 기억하는 느낌이란 놀라운 것이다.
지금도 바다가 내 몸에서 빠져나오던 그 순간의 여러 느낌이 생생하다.
그 느낌들을 느껴볼 수 있었다는 것은 내 인생에서 가장 고맙고, 행복한 일이었다.
살아가는 내내 두고두고.. 이 날을, 이 느낌들을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바다는 엄마에게 제가 줄 수 있는 제일로 큰 선물을 해주며 세상에 왔다.
고맙고 고마운 내 작은 아기. 나의 세번째 아기.








둔위(역아)로 있어 임신 39주에 제왕절개 수술로 첫아이 연수를 낳았을 때, 

나는 마취에서 깨어난 후 처음으로 젖을 물린 어린 연수가 내 젖꼭지를 꼭 새처럼 콕콕콕 빨았던 느낌을 기억하고 있다.
그 느낌이 참 뭉클해서 수술로 힘들었던 몸을 겨우겨우 일으켜가며 연수에게 젖을 물리며 내 엄마로서의 삶이 시작되었었다.
둘째 연호를 낳았을 때는 브이백(제왕절개후 자연출산)을 시도하다가 다시 한번 또 수술을 거친 것이 슬펐지만
유도분만 도중에 심박동이 많이 불안해졌었던 연호가 다행히 큰탈없이 건강하게 잘 태어나 준것만으로도 고맙고 또 고마운 일이어서
다른 생각않고 그저 고맙게 수술 후의 힘든 시간들을 견뎌냈다.
네 살이었던 연수가 엄마와 함께 병원의 작은 방에서 일주일을 보내면서도 씩씩하고 밝게 지내주어서 첫 수술때보다는 그 일주일이 훨씬 수월하게 느껴졌었다.
그래도 역시 수술의 기억은 몸과 마음 모두에 오래도록 괴롭게 남을만큼 힘든 일이었다.

내 몸과 마음이 힘든 것도 힘든 것이지만 가장 안타까웠던 것은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을 임신했을 때, 그리고 그 아이들이 세상에 태어나고 자라는 동안 내가 아이들에게 제일 해주고 싶었던 것은
기다려주는 일이었다.
떄가 될 때까지, 아이가 스스로 하고 싶어하고 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주는 일.
부모로서 나는 그 일이 제일로 중요하고, 아이들이 자라는 동안 지켜주고 싶은 일이었다.
아마도 첫아이 연수를 기다려주지 못하고 둔위라는 이유로 예정일보다 훨씬 일찍 세상에 나오게 하면서, 그리고 그 후에 연수를 키우면서 이런저런 힘든 성장통을 겪을 떄마다 그 생각을 다지게 되었던 것 같다.
아이들이 준비가 되었을 때, 제 힘으로 힘껏 세상의 문을 열고 나오게 해주고 싶었고
자라면서 하나씩 해나가야할 독립의 일들도 등 떠밀리거나, 다그쳐지거나, 제가 해낼 기회도 빼앗긴채 다른 누구의 손에 의해 강제로 해지지 않고
조금 늦더라도, 어렵더라도 제 힘으로 하나씩 해나가면서 세상에 당당히 제 발로 서게 되기를 바랬다.
출산은 그 시작이었다.

바다가 그렇게 태어나주어서 너무 고맙고 정말 기쁘다.
앞으로 많은 일들이 기다리고 있지만 우리는 함께 잘 해내나갈 수 있을거라는 용기가 생겼다.








하고싶은 얘기가 정말 많은데 아직 정리가 잘 안된다.
그래도 내일 연앤네이쳐를 떠나기 전에 오늘밤, 너무 고마웠던 이 공간에서 이 글을 남겨놓고 싶었다.
두 아이 제왕절개 후 브이백이라는 참 어렵고 힘든 일이었던 내 출산을 받아주고 긍정적으로 늘 용기를 주셨던 박지원 선생님과
폭풍같은 출산의 순간에 정말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셨던 김옥진, 박길순 조산사선생님,
그리고 늘 병원을 떠들썩하게 만들던 장난꾸러기 두 형아를 따뜻하게 반겨주셨던 간호사 선생님들과 연앤네이쳐의 여러 식구들께 정말로 너무너무 감사하다.
이 분들이 아니었다면 나는, 바다는 이렇게 행복한 출산을 해볼 수 없었을 것이다.
평생 간직할 잊지못할 감동, 그 순간을 경험해볼 기회조차 얻지 못했을 것이다.
걱정하시면서도 다 잘 될거라고 밝게 격려해주시고, 또 차분하게 응급상황들도 미리 준비해주셨던 박지원 선생님.. 잊지 못할 것이다.
김재영 선생님께 진료받았을 때 들었던 말씀도 잊을 수 없다.
'동의보감에도 이런 얘기가 있어요... 난산이라고 하는 것은 부잣집에나 있는 것이지 평민들의 가정에는 난산이 없다고요.. 몸을 부지런히 움직이는 것이 그렇게 출산에 도움이 되요. 방바닥 걸레질하고 빨래하는 우리 어머니들 그 자세 있잖아요.. 그 자세가 제일 좋아요'
그 말씀이 잘 잊히지 않아서 그 뒤로 집에 돌아와 방바닥을 정말 열심히 닦았다.
아이들 키우며 살림한지 벌써 6년차지만 요 최근 한달여처럼 내가 우리집 방바닥을 구석구석 자주 닦아본 적이 없었다.
연앤네이쳐를 통해 알게된 플라잉요가를 주말에 했던 일은 두 아이키우며 잠시도 내 시간 갖기가 어려웠던 나에게 몸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깊이 위로받고 풀어줄 수 있는 고마운 시간이었다.
박지원선생님이 권해주신 '히프노버딩' 책도 출산 준비하면서 마음에 참 큰 힘이 되었다.

남편도 나도 이번 출산을 통해 정말 많이 느끼고.. 또 배웠다.
우리가 부부로서, 세 생명을 세상에 내어놓고 함께 키우는 부모로서 정말로 한 걸음 더 깊게 성숙해지는 시간이 되었다.
천천히... 잘 새기고 정리하면서 우리 가족 모두를 새롭게 태어나게 해준 바다와 함께
잘 성장해가야겠다.


바다의 출산이 가까워오면서 응원해주고 격려해주었던 여러 이웃들, 마음으로 따뜻한 기운을 보내주었던 모든 친구들...

그 모든 분들 덕분에 바다도 나도 건강하게 출산할 수 있었다.
고맙습니다, 모두들...
정말로 고맙습니다.



Posted by 연신내새댁
umma! 자란다2013. 2. 15. 23:59

 


 

바다 태어나면 쓸 속싸개와 기저귀를 빨아서 널어놓았더니

우리 큰형.. 속싸개를 저렇게 머리에 쓰고 무슨무슨파워맨이라며 온집안을 뛰어다녔다.

펄럭거리는 속싸개 자락을 보고 있자니 이 싸개를 두르고 생애 첫 날들을 보내게될 어리디 어린 갓난아기 생각이 나서 뭉클했다.

속싸개를 이렇게도 활용할 수 있다는걸 보여준 이제 여섯살이 된 우리 큰형에게도 감사. ^^


 


 


 

지난 설에 상주시댁에 다녀왔다.

명절 아침이면 우선 양촌큰댁에 가서 함께 제사를 지내고 우리집으로 와서 다시 우리집 제사를 지낸다.

양촌큰댁 마당에는 흰개가 살고, 뒷마당에는 젖소들이 많이 사는 우사가 있다.

지난 추석에 갔을 때는 이 흰개가 엄마가 된 직후라서 제 집에서 잘 나오지도 않았고, 경계심도 아주 많던 때라 우리도 가까이 가지 않았다.

새끼들은 그새 많이 자라 어딘가로 다 보내졌는지 보이지 않고, 엄마개만 우리 아이들을 보고 컹컹 짖고 뛰어다녔다.

먼머(개)를 참 좋아하는 연호는 제사 준비하고, 아침먹는 짬짬이 마당에 나와 개를 오래오래 바라보았다.

 



 

 


 

지난 추석에는 배탈이 나서 많이 보채고 울며 고생했던 연호가 이번 설에는 아주 씩씩하게 잘 웃고 잘 놀았다.

고맙다. 모처럼 아이들데리고 어른들 뵈러갈 때 아이들이 건강하고 또 어른들께 다정하게 대하면 엄마로서 그보다 다행스럽고 고마운게 없다.

자주 찾아뵙지 못해 늘 죄송한 시댁어른들께서 이번에 연호를 보시고 참 많이 좋아하셨다.

연호가 '하삐, 할미~' 부르며 잘 따르고 노니 아직도 친할아버지할머니를 살갑게 대하지못하는 연수를 보며 안타까운 마음이 조금은 풀리셨을 것 같다.

연수도 이번에는 할머니와 조근조근 얘기 잘 할 때도 있었고, 하루는 할머니 곁에서 잠도 자는 등 예전에 비하면 참 많이 자란 모습을 보여주었다. 여전히 제 뜻에 안 맞는다고 어른들앞에서 버럭 성내며 소리지르기도 했지만... 천천히 나아지겠지. 조금씩 자라다보면 어른들이 어떤 분들인지, 어떻게 행동하면 좋을지도 알게되겠지. 감사해하고, 잘 해드려야한다는 걸 아는 때가 오면 그때는 연수가 더이상 아이가 아닐까. ^^ 

 

지난 가을 김장할때 와서 뵙고 두달 넘도록 못 뵙다가 다시 뵌 아버님어버님은 이번 겨울 보내며 왠지 몸이 더 약해지신 것 같아 마음 아팠다.

한해한해 나이가 들어가시고 약해지시겠지.. 처음 결혼할때 뵜던 아버님어머님이 참 젊으셨었어서 나는 늘 두분을 그때 모습으로만 생각했는데 결혼 6년차에 접어든 올해에는 왠지 부쩍 나이가 들어보이고 살도 많이 빠지신 것 같았다.

내가 세 아이의 엄마가 되는 동안 두 분은 매일같이 힘든 일하며 생계를 꾸려나가시느라 얼마나 고되셨을까.. 더 잘 해드리고, 잘 모셔야할텐데.. 아직도 어린 아기들에 둘러싸여 허덕이는 큰며느리는 생각만 할뿐 뭐하나 제대로 힘이 못 되드리는 것이 죄송하다. 


 


 

 

 

 

어제 저녁에는 아이들에게 화를 많이 냈다.

연수 축구교실 갈 때부터 연호가 이런저런 고집을 부리며 많이 울어서 난감했었다.

그래도 어찌어찌 축구교실에는 잘 도착해서 형도 축구 잘 하고, 연호도 재미나게 잘 놀았다. 집에 오는 길에는 날이 따뜻해 눈쌓인 냇가옆길에서 아랫집 찬이네랑 신나게 눈놀이까지 잘 하고 들어왔다. 

그런데 집에 와서 연수랑 간식때문에 실갱이를 좀 했더니 왠지 마음에 힘이 갑자기 쭉 빠지면서 아이들의 계속되는 장난과 요구를 받아줄 여유가 바닥나 버렸다.


이제 20개월을 꽉 채우고 세살이 된 연호는 요즘 하고싶은 것도 많고, 궁금한 것도 많고, 할 수 있는 말도 많아졌다.

어른 눈에는 고집이고 떼 같아도 나름대로 제 힘껏 세상을 알아가고 제 뜻을 펼치며 자라보려고 애쓰는 중이다.

조금더 여유를 갖고 그 요구를 들어주고 함께 해줘야하는데 어제 저녁에는 그만 엄마가 마음이 너무 메말라져서 같이 놀자고 매달리는 연호를 계속 뿌리치고 저녁밥만 열심히 차렸다.

그 와중에 연수에게 야단도 치고, 연호에게도 야단치고.. 어찌어찌 밥하고 국끓이고 반찬까지 하나 새로 만들어서 밥상을 차렸더니 밥보다 사랑이 필요한 아이들은 그만 너무 많이 울고 화난 엄마 서슬에 주눅이 들어서 밥도 양껏 못 먹었다.

조금만더 놀면서 기다리면 아빠가 퇴근해 오고 그러면 아이들도 아빠랑 밥도 좀 더 제대로 먹고 치카하고 다정하게 놀다가 행복하게 잠들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그 30분을 버틸 마음이 안나서 그냥 '엄마는 잘꺼다'하고는 안방에 들어와 불끄고 먼저 누워버렸다.

아이들은 금새 엄마를 따라와서 엄마 옆에 나란히 누워 잠을 청했다.

연호는 엄마 젖을 빨며 한동안 서럽게 칭얼거리다 잠들었고, 연수는 엄마 머리맡에 와서 '엄마, 미안해..', '엄마, 내가 점심밥 제대로 안먹어서 미안해..' 하고 조용한 목소리로 사과를 여러번 하고, 나중에는 내 이마에 다정하게 뽀뽀까지 두 번이나 하고는 제 자리로 가서 가만히 이불덮고 누워 잠이 들었다.

아까 엄마가 연호 야단칠때는 '엄마, 연호한테 화내지마..'하고 얘기해줬던 연수.

두 아이들을 그렇게 재워놓고 나니 그제사 후회와 미안함이 밀려왔다.

 

지금 이 아이들 곁에는 나밖에 없다.

아침 일찍 출근해서 저녁에 아이들 잠든 뒤에 거의 퇴근하는 아빠는 아침에 잠깐 얼굴보고 주말에만 함께 놀 수 있는 사람.

이 어린 아이들이 하루종일 얼굴보고, 함께 놀고 기대고 장난치고

온 마음과 존재를 다해 의지할 수 있는 어른은 엄마인 나 뿐이다.

때로는 그 의존이 부담스럽고, 혼자 감당하기엔 벅차다 싶기도 하고

아이들에게도 내가 너무 절대적이어서, 그래서 내가 잘못하면 아이들도 고스란히 배우고

어제처럼 내가 화낼 때는 아이들이 잠시 도망가 숨거나 위로받을 다른 어른의 존재가 없다는 것이, 그래서 아이들이 엄마의 감정을 고스란히 다 받아내고 같이 겪으면서 눈치보는 순간도 생긴다는 것이 아이들에게 참 미안하다.

 


 


 

 

평소보다 일찍 퇴근한 남편에게 아이들이 혹시 깨면 뭔가 좀 먹여달라고 부탁한 후 혼자 한참동안 냇가길을 걷고 들어왔다.

걸으면서 지금 내가 가장 하고싶은 일은 내 아이들 곁을 오래오래 지켜주는 일이라는 생각을 했다.

아이들에게 따뜻한 밥을 챙겨주고, 같이 놀고,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을 오래오래 지켜봐주고 싶다.

셋째를 건강하게 잘 낳는 것, 그래서 세 아이와 지지고볶는 고단하고도 평범한 일상을 앞으로도 쭉 유지하는 것이 지금 내가 가장 간절하게 소망하는 것이다.

 

연수야 연호야, 부족한 엄마 곁에서 그래도 매일 밝게 웃고 장난치며 큰탈없이 자라주어서 정말 고맙다.

결점투성이의 엄마지만 너희들 곁에서 오래오래 사랑하며 같이 있을께. 그러니 불안해말고 마음 씩씩하게 먹고 잘 자라다오.

미안하다.. 고맙다... 우리 아이들.

사랑해.  

 

 

 

 

 

Posted by 연신내새댁
umma! 자란다2013. 1. 9. 21:04







춥다.
추운 날들이다. 

어린 아이들과 지내다보니 바깥바람도 잠깐씩 밖에 안 쐬고, 그나마도 아주아주 따뜻하게 중무장하고 나서곤해서 사실 추위를 많이는 못 느끼고 지낸다. 
그래도 우리가 강릉에서 지내는 동안 내렸다던 눈이 아직도 녹지않고 그대로 곳곳에 쌓여있는 하얀 풍경을 매일매일 대하다보니 '이번 겨울 정말 춥구나..' 생각하게 된다.  

강릉에서 돌아온 지난 일요일.
눈이 반가운 아이들을 데리고 집 옆 냇가로 눈썰매를 타러 나갔다.

여섯살, 세살이 된 아들 둘을 한 썰매에 태우고 아빠가 걸어간다.
젊은 아빠의 이 뒷모습을 아이들은 기억할까. 
선명한 영상으로는 아니더라도 맑고 차갑고 즐거웠던 이 날의 공기와 함께 
아이들 마음속에 오래오래 그 기운은 남아있을 것이다.

둘이 합쳐 이제 30kg을 넘어선 아이들을 태우고 걸어가면서
"에구구~ 이 녀석들아, 아빠가 이렇게 태워줬던거 나중에 커서 꼭 기억해야해~~" 라고 당부인지 푸념인지 모를 얘기를 하던 남편.
많이 힘들었을텐데 그래도 눈 좋아하는 마누라와 아이들을 위해 한참을 즐겁게 놀아주었다.
여보, 아이들은 아마 잘 기억할꺼야... 그리고 아이들보다 이 순간들을 더 잘 기억해야하는건 우리들이 아닐까.
우리가 아이들 덕분에 참 행복하고 즐거웠다는걸 말이야..
무튼 나중을 대비해 이렇게 사진도 찍어놓고 블로그에도 올려놨으니 늙어서 가물가물하면 다시 뒤적여보자구~ㅎㅎㅎ   











해가 바뀌어 세 살이 된 연호는 요즘 정말 하루가 다르게 눈빛이 영글어지고 있다.
말귀도 잘 알아듣고, '이렇게 하자~'하면 제 뜻에 맞을 떄는 고개를 끄덕이며 '네'하고 대답도 하는데 그 모습이 얼마나 예쁜지 모른다. ^^ 
의사 표현도 분명해지고, 자기 주장도 강하고, 장난도 제법 치고, 말과 행동이 하나하나 여물어지고 있다는게 느껴진다. 
19개월을 다 채워가는 연호를 보며 아기가 아이가 될 때, 그 순간이 이렇게 빛나는구나.. 새삼 알아가고 있다.  










눈밭에 나가서도 이제는 형아보다 더 오래 놀고 싶어하는 연호. 

모래놀이 삽으로 눈을 떠서는 엄마와 함께 눈산을 만들며 좋아하는 연호를 보고 있자니 

작년 겨울, 연수가 노는 곁에서 연호를 아기띠에 안고 발 시려울까봐 종종거리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일년이 지나니까 이렇게 달라지는구나... 내년 겨울에는 또 어떤 모습일까. 

그떄는 두 형아가 신나게 놀고, 나는 그 곁에서 어린 바다를 아기띠에 안고 종종거리겠구나... 잠시 또 딱한 마음이 들었지만 

어차피 지나가야하는 날들... 

즐거운 마음으로 아이들도, 나도 신나게 지내는거다. 많이 웃고, 행복한 순간들을 만들고 느끼면서.. 그렇게 지나가는거다.

   













여섯살 형아가 세살 동생을 눈썰매에 태워준다.
아직은 장난꾸러기라 동생이 무서워하는줄 뻔히 알면서도 쌩쌩 빨리 달리다 결국은 버둥거리던 동생을 썰매에서 떨어뜨리기 일쑤지만.. 
일곱살이 되면 훨씬 더 잘 태워줄 수 있겠지. ^^ 
그떄는 연수랑 연호가 함께 더 잘 놀겠지.. 바다가 태어날 떄가 다가올수록 연호 곁에 연수가 있다는 사실이 든든하고 고맙다. 
 











지난 한 해동안 아이들과 거의 매일 나가서 유모차 타고 자전거타고 걸으며 산책하던 냇가길. 

그 길이 눈으로 하얗게 덮히자, 어디 사람많고 북적거리는 놀이동산 눈썰매장보다 백배는 훌륭한 천연 눈썰매장으로 변신했다.

냇가옆 비탈의 잔디밭은 곳곳에서 눈썰매타는 형아누나들의 함성으로 들썩거리고, 
우리처럼 아빠가 아이들을 눈썰매에 태우고 천천히 결어가는 풍경도 자주 만날 수 있다.

혹한속에 힘들게 지내는 분들을 생각하면 마음 아프지만
춥고 눈이 많다는 이번 겨울은 눈썰매 좋아하는 우리 동네 꼬맹이들에게는 참 즐거운 시절이 아닐 수 없다.

동네친구형언니동생들과 한참을 놀다가 옷이 젖고 배가 고프면 바로 옆에 있는 따뜻한 집으로 언제든 뛰어들어가면 되고
썰매가 없으면 두툼한 종이박스 한장 깔고 미끄러져도 씽씽 잘만 내려간다. 

동네 빵집에는 눈썰매를 타다 들어온 가족들이 곳곳에 썰매를 세워놓고 따뜻한 차와 빵을 사먹고, 
길에도 썰매든 사람들이 많아서 적어도 이 냇가길 근방에서는 썰매가 이 겨울의 중요한 운송수단같이 여겨질 정도다. ^^

그 모습을 보며 어린 시절에 읽었던 '핀란드 소녀'란 책이 떠올랐다.
발목, 아니 허리까지 올라오는 눈이 일상인 핀란드의 겨울. 
스키나 썰매를 타고 전나무 가득한 숲속을 오고가는 말괄량이 소녀가 첫사랑을 겪으며 성장해가는 이야기였던 그 책을 읽은 후로 내가 여행가보고 싶은 첫번째 나라는 '핀란드'가 되었었다. 
쨍하게 더운 날도 좋아하지만 쨍하게 추운 날도 좋아하는 나는 눈까지 많이 오면 대책없이 참 행복해지는 사람이라
한파 속의 이 서울이 어려운 상황에 있는 이웃들에게는 얼마나 무서운 것일지 마음 한켠 무겁게 느끼면서도   
아이들과 눈속에서 어울리는 동안은 이 재미있는 눈이 녹지않게 해주는 추위가 고맙기도 했다.

사실 제도가 문제지 날씨가 문제랴... 
날씨가 아무리 매섭고 독하다 해도 사회가 따뜻하면, 함께 고루 잘 살 수 있게 보살피고 보장하는 사회라면 
극한의 상황에 내몰리는 사람없이 춥다, 춥다 해도 같이 어깨 다독여가며 지나갈 수 있는 추위고 계절일텐데...
아는 분이 어머니가 많이 아프셔서 병원에 입원하셨다 한다. 아픈 분도 걱정이고, 수술비며 간병비도 걱정해야하는 처지로 이 추위속에 일터와 병원을 오갈 그 분을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웠다. 
살을 에는 바람속에 고공농성을 하는 노동자들은 또 어떻고.....  

 








집에서 꽤 멀리 떨어진 빵집까지 가서 몸을 녹이고 돌아오는 길.
연호는 이제 덜컹거리는 썰매를 그만 타고 싶은지 걷다가 안아달라고 했다가를 반복해서 아빠가 전담하고, 
나는 연수와 함께 천천히 걸어왔다. 
연수도 많이 고단했던터라 저는 계속 썰매를 타고 가겠다고 고집부리면 어떡하나.. 걱정했는데 
왠걸.. 엄마가 힘들어서 썰매를 끌어주기 어렵다고 하니 그럼 제가 썰매를 끌고 가겠다며 엄마 가방도 썰매에 실으라고 했다. ㅠㅠ 
걷기운동삼아 슬슬 뒤따라 걸을 생각으로 나선 길, 눈이 제법 많아 미끄럽지않고 오히려 푹신해 걷기에는 좋았지만 
나 한 몸 중심잡고 잘 걷는데도 조심해야했던지라 연수가 이렇게 앞장서 썰매와 가방까지 맡아서 걸어가주니 정말 고마웠다.


엊그제는 연수연호와 눈덮힌 놀이터에서 한참을 재밌게 놀았는데 
연수가 눈케이크를 만든다며 큰 눈더미를 쌓고는 나뭇잎으로 장식하고, 가는 나무가지들을 여러개 주워와서 초처럼 꽃아놓은 것을 보며 속으로 많이 놀랐다. 
어느새 이렇게 컸을까.. 
늘 작고작은 것 같던 내 첫 아기가 어느새 이렇게 예쁜 것들을 만들어내서 엄마를 깜짝 놀라게 할 수 있을만큼 자랐을까. 
연수의 요즈음은 매일 나를 놀라게 하는 날들이다.

....



어제도 연수 축구교실 다녀오며 눈쌓인 아파트 놀이터에서 한참 재미있게 놀다 들어왔다.

그랬더니 오늘은 아이들도 나도 몸도 좀 고단하고 또 날도 훨씬 추워졌다 해서 

오늘은 종일 집밖에 나가지 않고 안에서만 놀았다.  

그래도 아이들은 잘 놀고, 밥도 잘 먹고 나도 몸이 덜 고단한듯 했으나

저녁때 쯤되니 뭔가 마음이 더 쉽게 지치는 것 같았다.


종일 아이들의 에너지를 작은 집안에서 받아가며 지내는 것이 참 쉽지않다. 

바깥바람은 아이들에게도 필요하지만, 어른인 내게 더 절실하다.

이런 날은 아이들이 어서 잠들고, 어른으로서의 내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되기를 더 절실히 바라게 된다.

다행이 오늘은 두 녀석 재우고 나오니 8시 반. 

블로그도 쓰고 책도 보고 그리운 사람들 소식들으러 온라인 공간이나마 찾아가 볼 수 있을만큼 시간이 생겼다.

어른인 내가 아이들과만 시간을 보내다보니 밤에 잠깐, 혼자서라도 이렇게 어른의 마음으로, 어른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이 얼마나 귀중한지 모른다.


내일은 다시 축구교실 가는 날. 오전에는 아이들과 목욕을 하고.. 

매일매일 큰 일없이 평범한 일상의 작은 변화들로만 채워지는 단조로운 날들. 

그러나 모두 무탈하게 잘 자라고 있으니 이보다 더 고마울 수 없는 날들이다. 

다만 그 속에서 내가 너무 답답해지지 않도록 내 마음을 시원하게 하고, 여러 생각들을 하면서 지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엄마가 마음이 시원하면 아이들에게도 그 신선하고 좋은 기운이 전해질테니..  









Posted by 연신내새댁
umma! 자란다2012. 12. 13. 00:04




연호가 18개월을 꽉 채워간다.

이제는 제법 따라할 수 있는 말도 여럿이고, 사물들의 이름도 많이 알게 된 것 같다.

이즈음의 제일 큰 변화는 그림책을 아주 좋아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그림책은 형아의 전유물이었는데 언제부턴가 연호도 그림책을 한두권 들고와 거기나온 동물들 이름과 소리 듣는걸 좋아하기 시작하더니

18개월에 들어서면서부터는 본격적으로 엄마 무릎을 차지하고 앉아서 그림책을 읽어달라고 조르기 시작했다. 

보리아기그림책처럼 그림이 크고 글밥이 적은 책은 한번 앉아서 꽤 여러권을 보고

이 책에 나온 곤충이나 동물이 다른 책에도 나온다는 것도 기억해서 책을 보다말고 같은 동물이 그려져 있는 다른 책을 또 찾아오기도 한다. 


마냥 어린 아기인 것만 같은 둘째가 또 한번 쑥 자랐구나.. 싶어서 뭉클하기도 하고 

연수때 한번 겪었던 일임에도 미처 생각지 못했던 아이들의 성장을 하나씩 맞닦뜨리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다.

그리고... 더 힘들기도하다. 


요녀석, 책 좀 본다 싶더니 틈만 나면 책장의 책들을 우선 빼놓기부터 한다.

우르르 빼놓고 그중에 하나 골라서 집안일로 바쁜 엄마를 쫓아다니며 얼른 읽어주라고 성화다.

'엄마 지금 바쁘니 조금 있다 읽어줄께' 하면 인제는 제법 잘 수긍하고 저 혼자 그림보고 예전에 엄마가 읽어준 내용을 대략 다 기억해서 책장도 술술 넘기는 형과는 달리

인제 책읽기 시작인 연호는 '좀있다 읽어줄께'가 무슨 말인지 모른다는 듯 끈질기게, 막무가내로 조른다.

엄마가 설겆이하는 싱크대 밑에 서서 제 책을 받으라고 엄마 몸에 대고 책을 밀고밀고 하다가 엄마가 계속 책을 안 받으면 설겆이통 물속에 책을 첨벙 빠뜨려버리니 

18개월 아가가 그쯤 하기 전에 고무장갑 벗고, 하던 설겆이 잠시 멈추고

부엌바닥에 주저앉아 무릎에 앉히고 책 한권 읽어주고 보내는게 상책이 된다.

     







"그래.. 연호 덕분에 엄마도 잠깐 다리 좀 쉬어보자..."하며 

정말로 부른 배를 하고 설겆이를 한참 하다보면 뻐근하게 아파지는 허리와 다리에 잠시 휴식을 주며

아이를 앉히고 그림책을 읽는다. 


때로는 연수가 연호에게 그림책을 읽어주기도 한다. 

연수가 아기시절에 보던 그림책들, 지금 연호가 좋아하는 그 책들을 연수는 거의다 외우고 있어서 

우리 다섯살 형아는 비록 글을 모르지만 그래도 두살배기 동생을 앉혀놓고 유창하게(^^;;) 읽어내려간다.


"꼭꼭 숨어라 청설모가 술래다~" 

"없다 멍멍 강아지 어~~없다 까꿍!"

"주세요 사과줄까? 아니아니~~"


바쁜 엄마를 대신해서 "연호야, 아야가 읽어줄께, 이리와~"하고 불러서 읽어주는 어린 형아와 

그 앞에서 눈을 초롱하게 뜨고 고개를 끄덕이며 듣는 어린 동생의 모습은 고맙고 웃기고 짠하다. 

 

때로 둘이 서로 자기 그림책부터 읽어달라며 조르고, 서로 엄마 무릎을 차지하겠다고 다투기도 하고

같이 잘 놀다가도 투닥거리고 속상해서 울음보가 터질 떄도 있지만 

엄마한테 야단을 맞고 나서도 금새 언제 그랬냐는듯 아이들은 다시 깔깔거리고 같이 다정하게 논다. 

야단쳤던 엄마만 아직 속이 상해있고 아이들은 돌아서면 까먹고 또 재밌는 무언가를 찾아서 몰두하고, 같이 하고 즐거워진다.

둘이 다정할 때의 여러 모습중에 특히 재밌는 모습은 연수가 연호 귀에 대고 뭐라고 귀속말을 속닥속닥하면 연호도 형아 귀에 대고 "아우우 아토토"하고 속살거리는 모습이다. 그리고는 둘이 같이 또 킥킥대고 좋아한다. ㅎㅎㅎ 







어느 날은 그림책에서 아기가 인형을 어부바 해주는 장면을 보고 저도 어부바를 하고싶다고 제 인형을 찾아들고 왔다.

연호의 단짝친구 인형인 '뽀에띠'는 키가 거의 연호만한 늘씬한 토끼인형.
담요를 포대기삼아 묶어주었더니 발꿈치까지 닿는 인형과 담요를 업고 좋다고 거실을 왔다갔다 했다.









18개월 즈음은 아이들이 아기시절 동안 보고 듣고 관찰했던 가족들의 많은 행동과 말에 대해 나름대로 판단도 하고, 제 것으로 소화해서 따라하고 구사해보는 시기인 것 같다.

두돌쯤 되면 완연해지는 아기에서 아이로의 변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느낌이랄까...

연수 키울 때도 어느날 갑자기 아이가 고집도 세지고, 힘도 세지고, 뭔가 주관이 강해지면서 아이 돌보는 일이 새로운(새롭게 힘들어지는ㅜㅜ) 단계에 들어선 것 같다는 느낌을 막연히 받았던 때가 18개월 무렵이었다. 

그때 그 얘기를 블로그에 썼더니 내가 참 좋아하고 의지하던 선배맘 언니가 "그 무렵이 딱 그런 무렵"이라며 "엄마가 본격적으로 도를 닦아야할 시기"라고 말해주었던 기억이 난다. 

     


 






연호는 요즘 누군가 자기를 꾸짖는 것 같으면 바로 정색을 하고 "아빠!"하고 말한다. 

아빠를 부르는게 아니고, '나빠!'라는 말이다. 

'아'소리를 다른 소리보다 쉽게, 잘 내는 연호는 형아도 '아야'라고 부른다. 그래서 연수가 삼촌을 '아촌'이라고 불러보라고 연호에게 시켰더니 '아또'라고 따라해서 그 뒤로 삼촌은 '아또'가 되었다.

그러더니 어느날부터 '나빠'도 나름대로 소화해서 '아빠'라고 힘주어 말하기 시작했다.


형아가 가지고 노는 장난감이 좋아보여서 저도 해보려고 집어들었다가 형아 힘에 밀려 뜻대로 안되면 "아빠!"하면서 형아를 때려보기도 하고,

밥 먹다 말고 식탁의자에서 내려가려는데 엄마가 "밥 다 먹고 놀아야지"하면 엄마를 항해 "아빠!" 한다. 

형보던 책 뺏으면 안돼, 밥 잘 먹어야 튼튼하게 잘 크지... 등등 타이르고 야단치느라 엄마 목소리가 평소랑 좀 다르게 가라앉는다 싶으면 바로 연호도 "아빠!" 한다.


어린 마음에도 제 뜻대로 할 수 없는 것이 속이 상하고, 제 맘 몰라주는 엄마와 형아가 야속하겠지.. 

그 맘이 이해되면서도 저를 화나게 했으니 고 작은 손을 들어 투닥투닥 때려주겠다고 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내가 연호보는 앞에서 가끔 너무 화가 나서 연수를 때렸던 것이 연호의 뇌리에 깊이 새겨질만큼 강한 인상을, 충격을 주었나... 그래서 연호가 '나빠!'하면서 저도 사람들을 때리려는 것이 아닌가... 싶어 뜨끔하고, 마음이 아파진다. 

연수가 가끔 속상하면 엄마에게 "엄마, 나빠!"하고 외치곤 하니 '나빠'라는 말은 아마 형아에게 배웠을 것이지만

때리는 것은 형아가 연호를 때린 것이야 장난으로 머리 쿵 하고 한번 쥐어박고 엄마한테 혼나서 바로 그만둘 때가 대부분이니 

손바닥을 펴서 탁탁 때리려는 모습은 정말로 엄마를 흉내내는 것인 것만 같다. 

 


사람은 누구나 쉽게 상처받는다. 아이들도 그렇다.

세상의 모든 것에 민감하고 예민한, 한창 성장하는 아이들은 더 그럴 것이다.


자기 의견이 생기고, 주장이 강해지는, 이제 막 세상을 향해 여린 목소리를 내보기 시작하는 아기.

무력하기만한 갓난아기에서 이제 조금씩 제 발로 걷고, 제 손으로 음식을 먹고, 무언가 제가 원하는 것들을 가지고 놀아보면서

점점 더 자기와 자기를 둘러싼 세상의 주인이 되어가는 아이.

그 아이의 시절에 내 둘째 아기 연호가 들어서고 있다.


엄마는 더 조심하고, 더 힘껏 들어주고, 더 스스로를 다잡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더 많이 안아주고, 아이의 요구를 들어주고, 제 힘껏 세상과 맞닦뜨려보느라 더 쉽게 지치고 상처받는 아이를 보듬어주지 않으면 안되리라... 

엄마 품에서 위로받고 힘을 얻어 다시 훨훨 세상을 날아다니다 지치면 또 엄마품으로 돌아와 쉴 수 있도록..

마음은 이런데, 현실에서는 날로 몸도 커지고 무게도 만만치않은 녀석이 목청높여 떼쓰고 고집부리고 울고하면 보듬어주고 달래주기보다는 엄마도 '누가 이기나 해보자'하는 심정으로 버팅기며 속만 잔뜩 상해할 때가 많으니...

둘째엄마인데도 아직 나는 갈 길이 멀구나.. 도를 얼마나 더 닦아야하는 것인지 까마득해진다. 









바다가 생긴 후 어느 순간 연호의 모유수유가 낮잠들 때 한 번, 밤잠들 때 한번, 그리고 새벽녘에 잠이 살풋살풋 깰때 두서너번 젖을 빠는 것으로 줄어들었다.

어린 나이에 동생이 생겨서 엄마 젖도 오래 먹이지 못하는 것이 마음 아프고, 아직 어려 말귀를 알아들을 수있는 나이도 아닌데 강제로 젖을 어떻게 끊나... 하는 것도 걱정이었는데   

신기하게 동생 생기고 나서부터는 자연스레 젖먹는 횟수를 줄여가더니 이제는 거의 나오지 않는 젖을 

그저 잠들때 위안을 얻는 정도로만 한참씩 빨고는 말아서 내가 따로 젖끊는 노력을 하지 않고도 임신기간을 그럭저럭 잘 보내왔다.  

그래도 동생 태어나기 전에 잠잘때 젖찾는 것도 이제는 그만하게 해야겠다... 생각하고 있는데 아직 엄두가 잘 안난다.

출산까지 석달이 채 안 남았으니 올해가 가기 전에는 아마도 잠들때 빨기만 하던 엄마 젖과도 안녕을 해야할텐데... 얼마나 허전하고 서럽고 그래서 얼마나 많이 울까.. 저 작은 눈에서 눈물은 또 얼마나 흐를까... 생각하니 마음이 아파서 엄두를 잘 못 내겠다.     



이도 빨리 나고, 그 덕분인지 일찍부터 밥도 잘 먹어서 젖이 줄어도 다행히 잘 커주었던 연호. 

동생이 생긴 후에는 꼭 뭘 알고 그리 해주는 아이처럼 밥도 더 잘먹고 더 잘 놀고 젖은 거의 찾지 않았던 연호. 

젖살도 일찍 빠지고, 철도 일찍 든 것만 같은 어린 연호를 보며 고맙고 안쓰럽고 미안한 지금의 마음들이 아마 이 아이가 자라는 동안 오래도록 내 마음에 남을 것이다.


연호는 얼굴도 나를 많이 닮았고, 때때로 성격도, 하는 행동들도 나를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마음이 조금 더 아프다. 

어린 시절과 그리고 지금까지도 나를 힘들게 하곤 하는 내 성격의 면면들은 연호가 닮지 않았으면 좋겠다. 

연호는 엄마와는 다를꺼야. 그럼.. 너는 나와 다른 사람이고 다른 경험을 하고 다른 삶을 살아갈.. 독립적이고 고유한 존재, 연호란다.

그래도 내 삶이, 나라는 사람이 엄마라는 이름으로 너와 함께 살아가는 시간이 네게 남기는 영향도 있을테니..

나는 최대한 노력할께. 좋은 사람이 되도록.. 좋은 삶을 살도록..


18개월을 채우고 이제 곧 세살이 될 내 어린 아기. 

연호야, 사랑한다.










Posted by 연신내새댁
umma! 자란다2012. 11. 21. 21:48


(지난 추석, 시댁갔을 떄 작은 놀이터에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을은 갓난아기의 눈동자에 비친 노을이라는걸 둘째를 낳고 알았다. 


세상의 아기들 중에는 타고난 까칠이가 있는가하면 타고난 순둥이, 애교쟁이도 있다는 것을 둘째를 키우면서 알았다.
한 부모에게서 났어도 아이들 저마다의 기질이나 성격은 얼마나 다른지..



그리고 또.. 두 아이의 엄마가 되고나서 알게 된 것들.



예전에는 놀이터나 공원에 아빠 혼자 아이를 데리고온걸 보면 '아 저 집 엄마는 뭔가 혼자 할 일 하고있나보다 아님 모처럼 어디 혼자 외출했던지..' 생각하며 속으로 엄청 부러워했다. 그 엄마가 집에서 신생아 동생을 돌보느라 고단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수도 있다는걸 아이가 하나일때는 생각도 못했다. ^^


내 츄리닝보다 남편 츄리닝이 훨씬 편하게 몸에 잘 맞을 때, 그 쑥스럽고 조금은 민망하고 서글픈 기분을 둘째낳고 알았다. 암만 모유수유를 해도 둘째가졌을 때 찐 살은 어찌 그리 안빠지는지...--;



양쪽에 한명씩 두 아이를 앉혀놓고 두 권의 그림책을 한두쪽씩 번갈아가며 소리내어 읽어줄수도 있다는걸, 그래야만 하는 정신없는 순간이 온다는걸 불과 얼마전까지도 상상하지 못했다. 



큰아이가 어딜 다니지 않는 우리집에서 흔한 일은 아니지만 가끔 한 애가 일찍 잠들거나해서 부부가 같이 아이 하나만 보고 있을 떄가 있다. 그런 순간이면 남편은 자주 말하곤 한다. "애 하나 키우는건 참 일도 아니야.." ㅎㅎ 

아이가 하나인 분들께는 초큼 죄송한 얘기지만.. 늘 두 아이에게 복닥복닥 시달리다보니 하나라도 조용하면 남은 하나 데리고 노는 일은 정말 일도 아닌 것처럼 생각되기도 한다. 이 것도 두 아이 부모가 되고보니 알게된 고마운(?) 배움. ^^ (그치만 우리도 연수 하나 키우던 시절에도 '아 왜이리 힘드냐..' 늘 생각하면서 살았었다. 그때도 정말 힘들었어~!!!)   








    


두 아이의 엄마가 되고나서 제일로 무서웠던 때는 두 아이가 동시에 아플 때였다. 

연호가 아직 신생아이던 시절, 둘 다 감기를 앓고 있었는데 자다가 코피가 터진 연수가 몸도 괴롭고 저도 코피가 무섭고 하니 심하게 운 적이 있었다. 급히 거실로 데리고 나와 코막아주고 안아 달래면서도 잠든 연호가 꺨까봐 겁이 나서 "울지마라, 연호 깬다, 조용히해.. 조용히.." 다그치며 맘을 잔뜩 졸였다. 연호가 깨면 우는 연호를 안고 젖물려야하니 연수 코피난 걸 제대로 봐줄 수가 없을 터였다. 마침 아빠도 늦게 오는 날이라 혼자 아픈 두 녀석 끌어안고 얼마나 끙끙거렸던지..


그런 순간들을 지나고 지나 여기까지 왔다. 

연호가 18개월에 들어선 지금까지도 때때로 돌발상황에서 두 아이 동시에 챙기려다보면 당황하고 쩔쩔매게 되는 순간이 있지만, 그래도 처음에 비하면 덜컥 겁부터 나는 순간은 많이 줄어들었다.    

아이가 하나면 하나인데로, 둘이면 둘인데로 엄마의 능력은 그 상황에 맞추어 함께 자라는 것인지도 모른다.

두 아이가 큰 탈없이, 건강하게 씩씩하게 잘 자라고 잘 놀아주어서 종종거리고 버벅거리던 내가 그나마 이만큼 해올 수 있었다는걸 안다. 고맙다, 우리 꼬맹이들..





(연수연호가 소꿉놀이하며 엄마 먹으라고 차려온 맛있는 요리들. ^^ 안그래도 엄마는 늘 배가 부른데, 연호가 형아랑 같이 하는 소꿉놀이에 재미를 붙인 요즘은 가짜로도 많이 받아먹어 배가 꺼질새가 없다. ㅎ)


 






 

바다가 태어날 떄가 석달 남짓 앞으로 다가왔다.

요즘 부쩍 배도 커지고 나도 살이 많이 쪄서 저녁이면 엉덩이며 다리가 몹시 아프다. 

그러다보니 두 아이 저녁밥먹이고 양치시켜 재우기까지의 저녁일과가 혼자 해내기엔 버겁기도 하다. 

우여곡절끝에 두 녀석 다 잠이 들고 한숨 돌리다보면 내년에 셋이 되면 어떻게 재우나.. 하루 해는 어떻게 보내나.. 하는 걱정이 슬금슬금 밀려온다. 아. 상상이 안된다.. 아이가 하나였을 때 둘 키우는 일상이 상상이 안되던 것처럼, 둘에서 셋도 그렇구나..

그러니 지금 생각해도 별 뾰족한 답도 없는거 너무 고민하지 말자고 얼른 마무리짓는다. 어찌어찌 되겠지.. 다 살게 돼 있겠지, 그럼그럼.. 


어젯밤에는 엉덩이가 하도 아파서 산모체조를 다 해보았다.

연수 가졌을 때는 5~6개월 무렵부터 매일, 그토록 열심히 하던 산모 체조를 바다 갖고서는 어제밤에 처음 해본 것이다. ㅋㅋ 

연호 때도 체조 한번 할 짬 내기가 그리 어려워서 몇번 못 하고 낳은 것 같고... 

그래도 연호는 나중에 커서 섭섭해할까봐 산모수첩에 초음파 사진은 빼먹지 않고 열심히 붙였는데, 바다는 그마저도 거의 못 붙이고 벌써 7개월이니..ㅠㅠ 미안하고나, 셋째야. 

이제부터라도 체조도 좀 하고, 밀린 초음파 사진도 붙이고, 바다에게 편지라도 한장 꼭  쓰고 하면서 바다와 만날 날을 준비해가야겠다. 


다행히 큰 형아 연수가 다섯살쯤 되고보니 막내동생 생각을 많이 하는 나이가 되어서 바쁜 엄마보다 바다를 더 챙긴다.

'엄마 배속에 있는 아이스크림 바다야' 하면서 스케치북에 그림도 그려주고, 엄마 배에 뽀뽀하며 '바다야, 큰 형아야, 바다야, 잘 커~'하고 얘기도 자주 한다. 그러면 연호는 형아따라 덩달아서 엄마의 동그란 배에 뽀뽀도 하고 '뿌우~'하고 입방귀도 뀌고 하면서 둘이 막내동생과 엄마를 재미있게 해준다. 바다에게는 두 형이 자기를 불러주는 시간이 참 좋을 것이다. 

바다야, 따로 태교할 짬이 없는 엄마에게는 두 형아들과 지내는 시간이 모두 바다 너를 위한 태교시간이구나.. 따로 소리내어 이름부르지는 못해도 엄마 마음으로는 늘 너를 생각하고 있단다. 소리없이, 무럭무럭 잘 커줘서 고맙다.. 바다야, 사랑해. 


세 아이의 엄마가 되면 또 어떤 것들을 느끼고, 배우게 될까.

새로운 생명, 또 한명의 아이를 낳아 만나게 될 것을 생각하면 참 신비롭고 설레면서도, 출산과 양육의 첫 날들은 세번째임에도 아직 두렵다.

너무 힘들지 않기를 바래보지만.. 힘들겠지, 힘들어야하지.. 아이들도 힘들고 나도 힘들고, 마음 아프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그래야 또 크지..  마음 다독여 보는 밤이다. 







 


Posted by 연신내새댁
umma! 자란다2012. 8. 9. 00:44





블로그가 오랫동안 초여름이던 6월 이야기에서 멈춰있었는데

느닷없이 셋째 이야기로 다시 문을 열게 되었다.

^^


셋째가 생겼다.

다시 아이를, 한 생명을 내 몸속에 키운다는 것이 참 벅차고 기쁘다.

더운날 속도 조금은 불편하고 두 아이와 씨름하는 짬짬이 고단함이 더 많이 밀려오고 이런저런 걱정도 들지만.. 

아이를 갖고 낳는다는 것은 그 모든 수고로움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고맙고 행복한 일이라는 것을 잘 안다.

그래서 참 기쁜 마음으로 지난 7, 8월을 살았다.


셋째 아이의 태명은 '바다'라고 지었다.

아이가 생긴 줄 아직은 모르던 7월초의 두 주일간을 강릉 친정에서 지냈는데

그때 연수연호와 바다에 자주 가서 놀았다. 

동해의 푸르고 시원한 바닷물에 발을 담그고, 신나게 파도속에서 뛰어노는 연수를 바라보고 웃는 동안

바다도 엄마 몸속에 처음 자리를 잡고 눈부신 성장을 시작하는 생애 첫 날들을 제 힘껏 함께 보냈다.

그 바다의 기억이 나에게도, 아이들에게도 모두 좋은 힘이 되어주길 빈다.


서울에 돌아오고 며칠 지나서 셋째가 생겼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 내 마음에 처음으로 들었던 감정은 어떤 운명(숙명?)같은 것을 받아들인 평온함 같은 것이었다.

이제 뭔가 다 갖춰진 것 같은 느낌이랄까.. 올 것이 왔다는 기분..? ^^;;

해보고 싶지만 힘들까봐 마음속으로 주저하며 차마 엄두내지 못하던 어떤 일을 막상 딱 시작하게 된 기분. 

설레기도 하고, 걱정되기도 하고.. 그래도 용기를 내보고 싶고 무엇보다 마음 깊은 곳부터 행복해지는 기분.  

세번째 아이가 내게 찾아오면서 준 선물들이다. 

고맙다, 바다야.  











요 예쁜 녀석이 내년 3월이면 형아가 된다. 

(오빠가 될지, 형아가 될지 아직 알수는 없지만 우리 부부는 너무 큰 기대는 하지 않기로 하고 '삼형제'를 키우는 일에 대한 마음의 각오를 지금부터 다지고 있다. ^^ㅜ)

이제 만14개월을 거진 채운 연호는 제 형보다 훨씬 어린 나이에 동생을 보게 되었다. 

이제 한참 걸음마를 시작했고 나들이를 좋아하고 자기 주장도 점점 강해지는 연호를 돌보며 '햐, 요녀석.. 만만치 않네...' 생각하는 때가 하루에도 여러번이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은 걸음마로, 아직도 아기태가 많이 남은 통통한 몸으로 나를 향해 걸어오는 모습을 볼 때마다

'아 정말로 예쁜 시절이구나, 제일로 예쁜 때야' 절감하곤 한다.


고맙다, 연호야. 어린 동생에게 일찍 엄마품을 내어주고 우리중에 네가 제일로 힘들고 어려운 시간을 보내게될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안쓰럽고 더 애틋한 우리 둘째 아기.

사랑한다, 연호야.. 네가 이만큼 큰 어른이 되더라도, 언제까지나 너는 엄마의 제일 작고 애틋한 아기일거란다.  












연호가 어느새 혼자 그네를 붙잡고 앉아 탈 수 있을만큼 컸다.

제 힘으로 걷게된 뒤론 물속이든 풀속이든 겁도 없이 성큼성큼 걸어들어가려고 하는 아가.

저보다 한참 큰 형아에게도 이제는 제법 먼저 장난도 걸고, 깨물기도 하고, 이불위에서 뒹굴거릴때도 거의 밀리지않는 당찬 둘째다. 

 












연수는 셋째가 생겨서 너무 좋단다.

엄마가 '셋째를 바다라고 부를까해' 했더니 '난 아이스크림이라고 부르고 싶은데!' 했다가 '그럼 아이스크림 바다라고 부르자~!'고 해서 

우리 큰 형아는 셋째를 '아이스크림 바다'라고 부른다.

'엄마, 아이스크림 바다가 딸이었으면 좋겠어!' 하다가도 '아직 좀더 커봐야 알지~'하며 나름 아는 소리를 하는 연수는 

'엄마, 아이스크림 바다가 태어나면 우리도 사진관가서 가족 사진 찍자' 며 아직 태어나지 않은 막내동생을 엄청 챙기고있다. ^^


동생이 어떤 존재인지, 엄마 배속에서 어린 동생이 자란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한번 겪어봐서일까.. 

셋째를 대하는 연수의 태도는 한결 여유롭고 편안해보인다.  

가족이 많아진다는 것, 함께 웃고 울고 놀고 싸우며 부둥키고 살아가는 끈끈한 식구가 한 명 늘어난다는 것이 얼마나 고맙고 좋은 일인지 어린 아이들은 마음으로 먼저 알고있는 것 같다.

셋째의 등장을 반기고 좋아하는 연수의 마음이 따뜻해서 함께 얘기하고 있으면 내 마음도 포근해지는 것 같다.














지난 봄 언젠가 시댁갔을때 찍은 사진인데 연수 표정도 재밌고, 내 모습도 웃겨서 올려보는 사진이다. ㅎㅎ


덥다, 덥다해도 아이들 덕분에 지치지 않고 살았다.

오전오후로 두세번씩 욕실 욕조와 거실 베란다에 아기욕조 가져다놓고 만든 '우리집 야외수영장'을 들락거리며 

젖은 몸을 수건으로 닦지도 않고 그냥 더운 공기에 말려가면서도 잘 웃고 잘 놀고 잘 먹고 자면서 지내준 아이들덕분에

나도 저녁마다 함께 곯아떨어져 자기 바쁘면서도 

행복하게 보냈던 여름이었다.

아직은 더운 날이 좀더 남아있겠지만 그래도 벌써 아침저녁으로는 제법 시원한 공기가 밀려온다.

가을이 멀지 않았을 것이다.

단풍이 곱게 물들고, 날이 시원해 온종일 밖에서 놀아도 좋은 가을날이 오면

아이들 손을 잡고 숲으로 산책도 가고 낙엽깔린 거리도 많이 걸어주어야지.

불러오는 배를 하고 두 아이와 함께 보낼 수 있는 빛나는 가을을 마음껏 만끽해주어야지.. 


씩씩해야겠다.

바다도 엄마 배속에서 씩씩하게 잘 클거라 믿고, 엄마도 힘내고 형아들도 잘 지내게 보살펴주자.

바다가 온 후 내 안에 있던 모성본능이 한번 더 정신을 바짝 차리고, 대충 살면 안되겠다 싶었던 모양인지 

연수연호에게 속상해하거나 짜증내는 일이 많이 줄었다.

셋째가 태어나고 나면 처음 동생을 보는 연호도, 동생이 둘이 되는 연수도 이래저래 참 많이 힘든 시간을 또 함께 견뎌내야할 것이다. 고통스러워 피하고싶기도 하지만 그런 부대낌의 시간을 오롯이, 우리 힘으로 함께 살아내야만 비로소 달콤하고 행복한 시간도 찾아온다는 것을 우리는 연호 때 함께 배웠다. 

이런 생각을 하다보면 아이들이 함께 살아가는 인생의 동료라는 생각이 진하게 든다.

고맙고, 든든하다. 

아이들 수발들며 쉽게 지치고 짜증내던 엄마의 얕은 마음을 바다가 잔잔하게 다독여주고, 조금씩 더 깊어지게 보듬어주는 모양이다. 아이들 덕분에 자란다.. 

  

강릉 부모님 곁에서 보냈던 7월의 시간들이 참 힘이 많이 되었다.

부모님은 모르셨겠지만, 나도 몰랐지만 바다가 세상에 생겨나서 처음으로 느낀 엄마의 감정들이 편안하고 충만한 것일수 있도록  이번에도 참 극직한 보살핌을 받고 돌아왔다.

지난해 12월에 갔다가 꼬박 반년만에 갔던 친정 나들이였다. 일년에 두번쯤 있는 엄마의 귀한 휴가인 셈이다.

강릉 사진들도 좀 올리고, 여름 이야기 하고싶은 것이 참 많은데

아이들과 하루를 땀나게 보내고맞는 밤에는 늘 잠이 앞선다. 

천천히... 천천히 기록해두어야지. 

아이들과 함께했던 젊은 엄마의 시절들을.


아참, 셋째가 오고나서 또 한가지 깨달았다.

이 아이들을 키우다가 내 젊은 날은 다 끝날 거라는 것.

이 사실을 아쉬움없이, 안타까움없이 덤덤하게 인정하게 되었다.

그래.. 다 갈 것이다. 아이들이 다 자라고나면 내 나이도 어느새 마흔 중반을 훌쩍 넘어 오십을 바라보고 있을테니

젊음은 끝날 것이다. 그 뒤에 날들이 아름답지 않을 거라는 건 아니다. 그떄도 아름답고 좋은 날일 것이다. 더 깊고 빛나는 시간들로 살 수 있을 것이다. 

그저 내 젊은 날들은 아이들과 함께, 갓난아이들을 어린이로 키워내는데 온통 쓰이게 될 거라는걸 알고 받아들이면서 

이 날들이 더 소중하게 생각된다. 

다른 무엇이 더 있지 않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날들, 여기가 내 인생, 내 젊은 날의 전부.

고맙게 뜻깊게 살아야겠다. 





 








Posted by 연신내새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