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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14.02.16 연호야 연호야
  3. 2013.12.20 형제들 8
  4. 2013.11.15 umma! 자란다 4
  5. 2013.09.17 한 시절 10
  6. 2013.08.14 폭발하는 엄마 10
  7. 2013.06.29 흙에서 놀자 4
  8. 2013.06.25 그 분 뒷모습 4
  9. 2013.06.19 연제의 백일 10
  10. 2013.06.06 연호 6
umma! 자란다2014. 2. 22. 01:04




연수가 많이 아팠다.


화요일 오후에 어린이집 마치고 와서 동네에 있는 작은 실내놀이터에 가서 한참 신나게 방방(트럼팰린)을 뛰고 왔다.

그 날 밤에 자는데 몸이 많이 힘든지 끙끙 앓고 자꾸 깨더니 다음날 아침 일어났는데 머리가 뜨끈했다.

안하던 기침도 콜록콜록 터져나왔다.


어린이집에 한동안 신종플루를 앓는 아이들이 많았다.

선생님들께서 전염을 주의해달라고 여러번 당부하셨고 어린 동생들도 걱정되고 해서  주에는 연수를 며칠 어린이집을 쉬게 했었다. 

가을 초입에 기침감기를 앓고 나은 뒤에는 겨우내 연제가 자주 훌쩍거리고, 연호가 감기를 오래 앓을 때에도 옮지않고 거뜬하게 잘 지내던 연수였다. 이제 많이 커서 면역이 좀 강해졌나부다... 생각했는데.


겁이 덜컥 났다. 

어린이집도 그렇고, 실내놀이터에는 초등학생 형아들도 많은데 혹시 신종플루가 옮았나..? 

오랫만에 너무 많이 뛰고 놀아서 몸이 힘들어서 그런가? 

놀이터에서 땀난 채로 찬바람쐬고 집에 와서 감기에 걸린걸까....?


짧은 시간에 많은 생각들이 휘리릭 머리속을 지나갔다.

오늘은 어린이집을 쉬라 이르고, 좀 있다가 병원에 가보자고 했다.


안그래도 연제가 요즘 매일 동네 소아과에 가서 귀치료를 받고 있었다.

한동안 감기도 안 걸리고 잘 지내던 연제는 지난주 토요일부터 갑자기 오른쪽 귀에서 고름이 나오기 시작했다.

깜짝 놀라 병원에 가니 '외이도염'이라고 진단하셨다.

고막 바깥쪽, 그러니까 귀의 입구 정도 되는 곳에 물이 들어가서 잘 마르지않고 고여있다보면 생기는 농으로,

아기도 아프거나 하지는 않고 귀가 좀 답답하고 축축해서 기분이 안좋으니 평소보다 보챌 수 있고, 

따로 약도 없고 병원에서 잘 닦아내고 집에서는 드라이기 찬바람을 쐬어 잘 말려주면 나으니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라는 말을 듣고서야 마음이 좀 놓였다.

그래서 월요일, 화요일 계속 병원에 가서 의사선생님이 면봉으로 외이도에 고여있는 농을 닦아내주시고

적외선을 잠깐 귀 속에 쬐어주는 치료를 받고 있었다. 

연제는 밥도 잘 먹고 잠도 평소처럼 잤지만 때때로 귀를 답답해했고, 자다 깨면 불편하고 아픈 기색으로 울어서 엄마인 나도 좀 예민해져 있던 차였다.


이런저런 생각은 많지만 어린 아이들 다 데리고 한번 움직이기가 쉽지 않은지라 

우선은 졸려하는 연제를 재워놓고 연수 상태를 지켜보며 이것저것 꼭 필요한 집안일을 부지런히 했다. 

점심먹고 오후에는 연제가 또 한번 낮잠잘 때 연수랑 연호까지 낮잠이 들어 온 식구가 한잠 달게 잤다.

잠을 자고 나니 연수는 열이 많이 내렸고, 컨디션도 한결 나아보였다. 

그렇지만 평소보다는 훨씬 힘들어보였고, 물어보니 제법 거리가 되는 병원까지 자전거를 타고 갈 수는 없다고 했다.


아이들 셋을 옷입혀 차에 태웠다.

평소에는 나 혼자 아이들 태우고 운전하는 일은 거의 안한다.

아이들 모두, 어린 연제까지도 카시트에 잘 앉아있는 편이지만 그래도 가끔 내려달라 보채고 울 때도 있어서

아직 초보운전인 내가 세 아이태우고 혼자 다니는 일은 되도록 안 했다.

보통때 같으면 연수는 자전거타고, 연호는 유모차태우고, 연제는 내가 아기띠해서 안고 걸어서 15분쯤 거리에 있는 동네 소아과병원에 가겠지만 

연수가 아프니 어쩔 수가 없었다.


조심조심 차를 몰아 병원 근처까지 가서 차를 잘 세우고, 큰 아이들 내려주고, 연제 아기띠에 안고 병원으로 갔다.

연수는 이제 열이 내려있었다. 

가슴과 등을 청진하고 귀, 코, 목을 두루 살핀 선생님은 신종플루를 의심할 상황은 아닌 듯하니 기침콧물약만 우선 처방하고 경과를 보자 하셨다.

연제는 귀가 거의 다 나아 앞으로는 집에서 잘 말려주시기만 하면 되겠다고 하셨다.  

다행이었다. 

잔뜩 긴장했던 마음이 스르르 풀렸다. 

연수 약을 짓고, 아이들과 약속했던 작은 로봇장난감이 붙은 비타민 하나, 로봇 그림이 그려진 밴드 한통을 사주었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다 나은듯 좋아하며 펄쩍펄쩍 뛰는 연수와 형이 아픈 덕분에 좋아하는 로봇밴드를 얻어 기쁜 연호, 엄마 품에 안겨 바깥구경에 신난 연제를 보니 

힘들어도 웃음이 나왔다.

그래, 너희들 데리고 다니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모두 기쁘니 엄마도 좋다. 크게 아프지 않으니 정말 고맙다..    

우르르 병원건물 지하에 있는 마트로 가서 아이들 좋아하는 바나나와 딸기를 샀다. 

집에서 과일 먹고, 물 많이 마시면서 푹 쉬면 잘 나을꺼야.. 얘기하며 차에 태워주고 집까지 조심조심 운전해서 잘 돌아왔다.

오전에 미리 만들어둔 카레로 저녁도 모두 잘 먹고 다 괜찮을 것 같은 안도감에 푸근히 잠들었다.

 

그런데 그 날밤에도 좀 끙끙 앓으며 잤던 연수가 목요일 아침에는 식구들 중에 제일 늦게까지 늦잠을 자더니 

아침밥도 먹지 않고 계속 졸려했다.

식탁에 앉아서 힘들고 졸린 표정을 짓고 있는 연수에게 '좀 더 자고 먹을래?' 했더니 그러겠다며 안방에 들어가 다시 누웠다.

연호, 연제 밥 먹이고 치우고 있다가 건너다보니 연수는 벌써 잠들어있었다.

가서 이마를 짚어보니 다시 열이 뜨끈했다.


연수는 한참 자다가 동생들 노는 소리에 잠이 깨서 거실로 나왔다. 

물을 한컵 다 마시고, 아빠가 연수 아프다는 얘기에 어제 퇴근하며 사놓은 '포카리스웨트'도 한 잔 마시고

소파에 앉아 동생들 노는 것 좀 보는가 싶더니 또 스르르 잠이 들었다.


전에도 이런 적이 있기는 했다.

여섯살 봄에 기침감기가 오래 가다가 병원에서 '축농증' 진단을 받고 항생제를 많이 먹은 적이 있었다. 

그때 연수는 약만 먹고 나면 자서, 거의 하루 종일 잤다.

이번에는 약도 먹지 않았다. 

전날 병원에서 콧물기침약을 지어오긴 했지만 병원가기 전부터도 기침콧물은 거의 안나고 있었어서 먹이지 않았었다. 


연수는 이번에도 종일 잤다.

몸이 뜨끈뜨끈해지긴 했지만 체온계로 재서 높은 열은 아니었다.

다만 아주 오래 못 잤던 사람처럼, 평소에 조금씩 부족했던 잠을 오늘 다 자려는 사람처럼 

잠깐 일어나 물 마실 때를 제외하면 자고, 또 잤다.


한시도 쉬지않고 뛰고 까불고 법석 떠는게 하루의 전부이다시피한 일곱살 사내아이가 

마치 바쁜 일주일을 보내고 주말을 맞은 고단한 아버지처럼

어딘가 머리만 닿으면 혼곤한 잠에 빠지는 모습은 낯설고 애처로웠다.

하지만 열이 올라 조금 끙끙 댈때는 제외하면 조용히 잠든 작은 아이의 몸은 평온해보이기도 했다.

'나는 지금 좀 쉬어야해요, 엄마...' 하고 말하는 것 같았다.

 

점심에는 밥을 푹 끓여만든 죽을 연수에게 떠먹여 주었다.

연수는 소파에 앉아 얌전히 잘 받아먹었다.

한그릇을 다 먹고 나자 연수는 잠시 동생들을 보며 웃고 놀더니 또 잤다.







낮에도 계속 자는 형이 신기해서 연호는 계속 형 주변을 맴돌았다.

'엄마, 낮인데 형아 왜 계속 자? 

'응.. 형이 아파서 그래.'

'형이랑 놀고싶은데.... 내가 깨울까?'

'아니... 형아 좀 더 자게 놔두자. 형아 몸이 괜찮아지면 형아가 일어날꺼야.' 

'왜 자꾸자꾸 자?' 

'형아 몸이 아픈거 낫게 하느라고 열심히 일하느라 그래. 그 일이 지금은 제일 중요해서 다른 건 할 수가 없어.. 그래서 몸이 형아한테 코 자라 하는거야.


그러다 형이 잠시 깨면 기운없는 형아는 정작 암말 안 하는데 제가 나서서 

'엄마, 형아 좀 안아줘라' 했다.

'연수야, 엄마가 안아줄까?' 물으니 얼른 '응!' 한다.

소파에 앉아 안아보니 아파서 그런가.. 연수 몸이 조금 가벼워진 것 같았다. 

잠시 엄마 품에 폭 안겨있던 연수는 다시 스르르 소파에 기대 누웠다.








어린 연제도 계속 자던 큰 형아가 깨면 반가워서 형 앞에 와서 웃으며 놀았다.


연수가 자니 낮에는 온 집이 바람잔 솔처럼 조용했다.

연제도 잘 때는 나도 졸렸지만 연호가 안 자니 나까지 잘수는 없었다.

커피 한잔 마시면서 졸음을 깨우고 잠든 연수 이마도 짚어보고, 콩나물무국도 끓이고하며 낮시간이 조용조용 흘러갔다.


엄마의 긴장이 전해져서 저도 나름 긴장했었던지 종일 조용히 잘 놀았던 연호가 저녁이 되니 유난히 엄마한테 매달렸다.

형이랑 못 놀아서 많이 심심하기도 했을테고, 또 낮잠을 안자 졸리기도 했던 연호는 엄마밖에 어울일 사람이 없으니 자꾸 매달리고 연제에게도 자꾸 시비(?)를 걸어 울리고, 그러다 결국 저도 울기를 반복했다.  

연수가 해주던 몫이 참 크구나.. 새삼 알았다.

연호랑 같이 잘 붙어서 놀고, 연제도 '잼잼 곤지곤지 까꿍'해주며 놀아주고 

그도 아니면 그저 혼자라도 연수가 왔다갔다 신나게 뛰어다니고 노는 것만으로도 동생들은 같이 따라다니고 그 분위기에 휩쓸려서 이래저래 하루해를 잘 채우고 있었던 것이다. 

낮에는 조용해서 평화롭기도 했던 것 같던 집이 

저녁쯤되니 어린 동생들은 이래저래 울고, 연수는 아직도 자고, 나는 종일 집 밖에 한발짝도 못 나가보고 아이들 외에는 아무도 못 만난 것이 문득 답답하고, 불안하고, 너무 힘이 들었다.

겨우겨우 저녁먹고 잠자리를 차리는데 그때쯤에야 연수가 조금 기운을 차리는게 보였다.

연호의 로보트 얘기에 '흐흐흐흣'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그걸 보니 '아 괜찮아졌구나!' 하는 생각이 탁 들었다.

연수는 웃음이 많은 아이다. 재미있는 장난을 좋아하고, 늘 웃는다. 깔깔깔, 낄낄낄, 흐흐흑, 여섯살쯤 되니 하도 개구진 장난이 심해져서 나는 깨소금 냄새 풍기는 요녀석의 장난기어린 얼굴과 웃음도 못마땅해할 때가 많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진심으로 고마웠다. 

웃음이 많은 아이여서, 깊은 아픔을 견뎌낸 뒤 몸과 마음이 기운을 차리기 시작할 때 제일 먼저 한 일이 웃어준 것이어서

정말 고마웠다.  

연수는 연호에게 저희들이 좋아하는 로봇 장난감 얘기를 하고, 이불 장난을 조금 했다.

그리고 나서 연호는 잠들었고, 연수도 또 잠들었고, 연제도 조용해진 방에서 젖을 먹고 잠들었다.

  

집은 다시 고요해졌고, 나는 연수 아픈 것에 대해 책을 찾아 읽은 다음 마음을 가라앉혔다. 

평소와 참 다른 하루였다.

펄펄한 녀석들의 북새통에 집은 난장판이 되어 정신이 하나도 없고, 그러다 형이 동생을 울기라도 하면 달래고 야단치느라 집은 더 시끌벅적하고 내 마음도 울그락불그락 널을 뛰지만 

누군가 아프니까 그런 '보통의' 날이 그리웠다.



  






금요일인 오늘 아침. 

연수는 컨디션을 80%쯤 회복한 것 같았다.

그래... 이렇게 놀아야지. 이렇게 노니까 이제 너같다.. ^^;;


오늘은 왠지 연수가 좀더 의젓해진 것 같았다.

아프고나서 그런가...

그전같으면 벌컥 성을 냈을만한 연호의 장난이나 실수에 가만히 참고, 조용히 대응하는 모습을 여러번 내게 보여주었다.

까부는 것도 살짝 덜했고.... 역시 아직은 좀 아픈 모양이다. ^^


그래도 많이 좋아졌다.

제 힘으로 몹시 아픈 것을 견디고 일어난 연수가 대견하고 고맙다.

요즘 몸살감기가 얼마나 독한지 엄마도 앓아봐서 잘 안다.

내 큰 아이는 이제 더는 아프다고 징징거리며 엄마에게 업어달라 안아달라 매달리는 어린 아기가 아닌 것만 같다. 

스르르 잠들어버려 그런 것이기는 하지만 혼자 누워 아픔을 견딜 줄도 알고, 

깨어있을 때에도 그저 말없이 엄마에게 기대 눈물을 닦고, 물과 음식을 고맙게 먹고, 투정도 짜증도 내지 않았다.

정말 많이 컸네.... 









세 아이 중에 누군가 아팠다가 나으면 잘 나아준 아이도 너무 고맙고, 

다른 형제들 아픈 와중에 함께 아프지 않고 건강히 잘 지내준 아이도 참 고맙다.

두루두루 모두모두 고맙고 또 고맙다.


연수가 아플때 집에서 걱정없이 쉬게 해줄 수 있는 것도 고맙다.

전염성 강한 질환이 돌 때면 어린이집을 쉬게 할 수도 있는 처지인 것이 고맙다.

직장을 다니는 엄마들은 아이들이 아프면 얼마나 더 마음이 아프겠는가.

아픈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는 것도 마음 아프고, 전염성 질환이라 어린이집에 등원시키지 말아달라고하면

갑자기 또 집에서 아이를 봐줄 수 있는 분을 찾거나, 엄마가 어렵게 휴가를 내거나 해야할텐데 얼마나 어렵고 힘들까.

신종플루처럼 일주일 정도는 어린이집 등원이 불가해지는 질환은 더 무서울 것이다. 

아픈 아이도 걱정이고, 그 아이를 맘편히 푹 쉬게 해주기 어려운 환경도 걱정이고....

그에 비하면 내 집에서 언제든지 아이를 쉬게 해주고, 내 손으로 돌봐줄 수있는 내 상황은 훨씬 수월하고 감사한 일이다. 



이번 아픈 것이 잘 마무리되었으면 좋겠다.

아이들은 아프면서 큰다고 했다. 

잘 견뎌내고 연수의 마음에도, 몸에도 단단하고 고운 나이테가 한 겹 더 자라기를 빈다.




 

Posted by 연신내새댁
umma! 자란다2014. 2. 16. 00:16





 


키우다보면 참 애잔해지는 아이가 있는 것 같다.

우리 둘째, 연호 말이다.


연호는 다정하고 살가운 성품을 타고 났다.

어릴 때부터 순했고, 길게 우는 법이 없었고, 잘 웃었다. 

얼굴 모습도, 하는 행동도 하도 예쁘고 앙증맞아서 늘 딸같은 아들이었다.


세 살 터울의 호랑이같은 형아가 으르렁 소리지르고 펄쩍펄쩍 뛰어 쫓아오면

무서워 얼른 엄마품에 달려와 숨고, 울지만 

그런 형아에게 어느새 또박또박 바른 말로 타이르기도 잘 하고, 먼저 장난치며 함께 깔깔 웃고 뛰어놀 때는 

꼭 친구같기도 한 의젓한 동생이다.


한 살배기 동생이 제가 노는 쪽으로 기어와 제 장난감을 잡으려하면

제 형이 제게 했듯이 동생을 때리거나 겁주기는 커녕

"엄마, 아기가 자꾸 와~" 하면서 울듯한 표정으로 도망오는 마음 여린 형이다.


  







귤을 까면 반을 뚝 잘라서 "아가, 먹어라~"하고 제 동생에게 나눠주고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면 그 자리에 없는 식구를 찾아서 꼭 입에 넣어준다.
딸기를 씻어서 거실에 있는 식구들 같이 먹으라고 가져다주니
조금 먹다 말고 부엌에 있는 나를 황급히 부르며
"엄마, 빨리 와서 먹어~, 안그러면 형아가 다 먹어~!" 한다.


며칠전에는 잠자리에서 제가 읽어달라는 그림책을 다 읽어주고
이제 형아가 가져온 그림책 읽어주자 하고 읽는 동안
누운 내 머리맡에 앉아서 가만히 듣다 말고
내 머리카락을 만지며 말했다.

"우리 엄마 참 예쁘다... 엄마, 난 엄마를 키울꺼야."

"뭐라고? 엄마가 예뻐서 엄마를 키워줄 거라고~? ^^"

"응. 난 엄마를 키울꺼야!" 

"ㅎㅎㅎ 에고.. 고맙다, 연호야.."


강아지가 예뻐서 강아지를 키우듯이, 
꽃이 예뻐서 꽃을 키우듯이
엄마가 예뻐서 엄마를 키우겠다는 세살배기 아들의 말은
얼마나 달콤한 위로와 찬사로 들리던지..

하루의 피곤이 온통 밀려오는 저녁 잠자리에서, 
몸에 남은 힘을 마지막 한방울까지 모조리 쥐어짜는 심정으로
너희들의 하루를 평화롭게 마무리해주려고 정말로 엄마가 얼마나 애쓰는지 
다 알고 있다는 듯이
그 순간 네가 표현할 수 있는 최상의 표현으로 고마움과 사랑의 마음을 전해주어서 
연호야.. 정말 고맙다.










작년 가을과 겨울 초입에 연호가 많이 아팠었다.

가벼운 감기가 괜찮아졌다 심해졌다를 반복하면서 오래 갔다.

그러다 수족구가 지나갔고, 알레르기성 비염처럼 콧물이 쉬지않고 흐르기도 했다. 

나중에는 중이염이 와서 하룻밤 귀가 많이 아프다며 엉엉 울어서 우선 해열진통제를 사먹고 자고 

다음날 병원에 다녀온 후에는 귀에서 이틀쯤 고름이 나오기까지 했다.

나는 가슴이 서늘해질 정도로 놀랐다. 

다행히 모두 크게 위험한 병들은 아니어서 그럭저럭 쉬고 놀고 하면서 나아갔고, 중이염은 항생제를 이틀 정도 처방받아 먹고나니 다행히 잘 나았다.


연호가 오래 앓는 동안 나는 함께 오래도록 마음을 앓았다.

연호가 아픈 것이 모두 내 탓 같았다.


두 돌을 채우고 맞은 가을, 

제 또래들이 아직도 아기 대접을 받으며 엄마의 살뜰한 보살핌을 받을 때에 

벌써 형님이 된지 반년도 넘은 연호는 훌쩍 큰 아이 태가 나고 있었다. 

유모차를 타거나 아직 엄마에게 업혀다닐 나이에 연호는 유모차를 동생에게 내어주고 그 옆에서 제 힘으로 걸었다.

앞장서 뛰어가다 넘어질 때도 많았다.


동생이 태어난 봄부터 쉬를 가리기 시작해 두 돌 전에 기저귀를 떼었던 연호는 

어느새 화장실도 엄마 없이 혼자 다녀올 수 있었다. 

아기 변기말고 저도 어른변기에 쉬를 하겠다며 까치발을 하고 서서 야물딱지게 쉬를 했다.

연수에 비하면 밥도 훨씬 잘 먹는 편이었고, 멸치나 나물반찬도 잘 먹어서 엄마를 감탄하게 하곤 했다.  










하지만 아직은 엄마 손길이 더 많이 가야하고, 차근차근 가르쳐줘야 하는 것도 많은데

어린 동생 돌보느라 바쁜 엄마가 연호에게 미처 못 해주는 것들이 많았다.


밥상을 차리면 밥을 좋아하는 연호는 우선 제 식탁의자에 와서 앉는다.

아직 숟가락질이 서툴어 엄마가 도와줘야하는데 

엄마가 동생 이유식부터 먹이느라 분주해서 연호 밥 먹는 것을 잘 도와주지 못하면 

연호는 저 혼자 포크로 반찬 좀 집어먹고 하다가 그만 밥 안먹고 놀고있는 형아 곁으로 가버렸다. 

많이 큰 연수는 밥은 꼭 먹어야한다는 걸 알아서 나중에라도 식탁에 와서 차려놓은 제 밥을 다 먹지만 

아직 어린 연호는 한번 식탁을 떠나면 그 뒤로는 잘 돌아오지도 않고, 따라가서 먹여도 밥을 잘 안 먹는다.

밥을 딱 먹으려고 왔을 때 얼른 도와주며 먹여야하는데 

식구들이 식탁에 앉으면 따라와서 바둥거리고 저도 먹을 것을 달라고 보채는 연제를 챙기다보면 자꾸 그 타이밍을 놓치는 것이다. 

한꺼번에 세 녀석 밥을 먹이고 내 밥도 먹어야하는 정신없는 식사시간이 끝나고보면 

언제나 제일 적게 먹고, 잘 챙겨주지 못한 것은 연호였다. 


그러다 감기에 걸려 코도 막히고 목도 붓고 하니 밥은 더 안 먹으려 해서 

따뜻한 꿀차같은 것을 타주면 그것으로 배를 채울 때도 많았다.

과일이나 빵같은 간식을 좀 먹고, 우유나 미숫가루 같은 편한 음식만 찾았다. 

감기를 오래 앓았던 그 시점에 연호는 정말 잘 안먹었고, 그것만이 원인은 아니겠지만 

여러모로 엄마 손길이 제일 부족해서 연호가 아픈 것 같아 너무 미안하고 마음 아팠다.











수족구 때문에 손바닥에 허물이 다 벗겨졌을 때 나는 오랫만에 연호에게 젖을 먹여주었다. 

동생이 태어나던 20개월까지 잠이 올 때 엄마 젖을 먹었던 연호는 

동생에게 엄마 젖을 양보한 후에는 잠이 올 때 엄마 젖을 만지기만 했다.

울고싶을 떄도, 기분이 안 좋을 때도, 그냥 엄마에게 안기고 싶을 때도 연호는 늘 엄마 품 속에 손을 넣어 엄마 찌찌를 만졌다.

그렇게 엄마 냄새와 엄마 촉감에 폭 안겨있다 가는 것이 어린 연호에게는 얼마나 큰 위안일까...

가끔 연호는 '엄마 찌찌에 뽀뽀할꺼야' 하면서 젖을 쪽 빨기도 하고, '나도 엄마 찌찌 먹을래'하고 젖을 달라고 조르기도 했다. 

반장난으로 조르는 것이라 '아기 먹어야지..'하고 달래면 웃으면서 입을 빼곤 했다. 

     

그런데 수족구에 걸렸을 때 

코가 막혀 밥을 잘 삼키지도 못하고, 기운없이 너무 아파하는 연호를 보니 너무 가엾고 걱정스러웠다.

엄마 찌찌 달라고 조르는 연호에게 '그래, 연호 너무 아프니까 엄마 찌찌 먹고 얼른 나아라..'하며 찌찌를 주었더니 

아픈 와중에도 좋아하며 마음껏 빨아먹었다.   

그 뒤로 연호는 "엄마, 연호 손바닥 또 아프면 엄마 찌찌 먹어?"하고 종종 물어본다. 

웃으면서 '그래' 대답해주면 너무 좋아한다.








- 연호가 그린 '사과' 그림을 형 그림 옆에 붙어놓고- ^^




연수를 키우면서 보니 아이들은 정말 금방(?) 큰다는 것을 알겠다.

언제 제 손으로 밥을 떠먹나.. 걱정되던 연수도 여섯살이 되니 저 혼자 밥 한그릇 어찌어찌 다 잘 먹고, 

더이상 엄마 찌찌는 찾지도 않는다. ^^

가끔 안아달라, 업어달라 조르기도 하고

밤에는 '엄마, 내 옆에서 자면 안 돼?' 하는 아직 어린 일곱살이지만  

엄마 품을 파고드는 어린 시절은 벌써 지나갔다.  

이 놀이 하자, 저거 만들어달라 요구는 많지만 혼자 쓱쓱 만들고 그리며 놀기도 잘 놀고, 제 손으로 옷입고 치우며 할 줄 아는 것도 많다.  

어쩌면 동생이 둘이나 있는 큰 형아여서 저도 빨리 엄마 무릎에서 밀려났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연호도 금방 클 것이다.
아직은 엄마에게 툭하면 뛰어와 안아달라 조르고, 걸핏하면 엄마 찌찌를 찾지만 
이 시절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큰 형아와 늘 어울려놀아 놀이도, 말도, 행동도 형아를 똑같이 따라하는 연호는 더 금방 의젓해질 것이다.

그러니 그 때까지는 
쉬지않고 엄마를 찾는 네살 연호의 청을 부지런히 들어줘야한다.
저 혼자 할 줄 아는 놀이는 많지 않고, 변덕은 또 죽 끓듯이 심한 우리 네 살 형님꼐서 
'엄마, 내 수레 어디 있어?' 찾으면 얼른 대령하고
'엄마, 트라이탄 합체 해줘~, 해 달란 말이야~~'하면 또 낑낑거리며 그 뻑뻑한 3단합체 로봇을 들고 끙끙 거릴 일이다.

다정한 연호는 그러면 내게 꼭 칭찬을 해준다.
엄마가 화도 안내고, 저희들 청을 들어주며 포근한 밤을 맞고 있노라면 '엄마가 있으니까 참 좋다, 그지?' 하고 제 형과 엄마 머리맡에 앉아 얘기하기도 하고, 
제가 해달라는 것을 열심히 하고 있는 엄마 옆에서 '엄마, 참 잘한다!' 감탄하며 좋아서 박수도 짝짝짝! 친다.






-형님 일년. 그 사이 아기에서 아이로 훌쩍 자란 우리 둘째.언제나 애틋하다-




겨울 동안 형아가 어린이집 가고, 동생은 낮잠자는 한시간 남짓한 시간이 연호가 엄마와 단 둘이 보내는 유일한 시간이었다.

그 시간에 엄마는 커피를 마시고, 연호는 간식을 먹고

둘이 함께 블럭이나 공룡이나 자동차를 가지고 놀고, 소파에 꼭 붙어앉아 책을 읽노라면 

연호의 팔딱팔딱 뛰는 심장이 '행복해요! 행복해요!'하고 말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아직은 너도 어리고 동생도 어려 

엄마도 너희들도 모두 많이 힘든 시절이지만

지나고나면 또 이 시절이 얼마나 그립고 예쁜 시절일까.

그리고 지금 너는 정말로 너무 너무 예쁘단다.

엄마는 너를 볼 때마다 감탄하고 웃게 돼.


힘내서 우리 같이 잘 자라자.

언제나, 언제까지나 사랑한다. 연호야.













Posted by 연신내새댁
umma! 자란다2013. 12. 20. 01:33



형제가 있다는 것은 참 좋은 일이다.









심심한 시간을 함께 심심하게 보낼 수 있고...









때로는 멋진 무엇이 함께 되어볼 수도 있다.










비록 살짝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된다해도 괜찮다.

동생들은 언제나 형을 반짝반짝 빛나는 감탄의 눈빛으로 바라보기 마련이며

언젠가는 형과 똑같이 멋져질 것이다. ㅎㅎ










연호는 형이 책 읽어주는걸 좋아한다. 

아직 글씨는 모르지만 연수는 대략 엄마가 읽어준 내용을 다 기억하고 있어서 한장 한장 넘기며 잘 읽어준다.

엄마가 바쁘면 연호는 으레 형을 찾는다. 

"연수야, (나) 책 읽어주라~~" ㅎㅎ












형이 어린이집에 간 낮에는 연호가 연제에게 책 보여준다.

연호도 형이기 때문이다. 

엄마는 왜 늘 바쁜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엄마가 연호에게 동생 좀 봐주라고 부탁하면 연호는 제 그림책도 보여주고, 장난감도 갖다준다.











"아가야, 책에 침 묻히면 안된다.." ㅋㅋㅋ

세살 형님, 타이르는 자세가 아주 의젓하다.  

한살 동생은 형님 말씀은 귓등으로 흘리고 벌써부터 입맛 다시고 있다. 









'이따 형님 안볼때 하나 냠냠 해야지... 암튼 우리 형님들은 할 줄 아는 것도 많고.. 정말 멋져~ 헤헤' 












엄마 품을 제일 많이 차지하고 있는 한살배기 동생은 사실 형님들에게 많은 질투를 받는다. 

그렇지만 질투하는 시간보다는 

동생이 있어 즐거운 시간이 더 길다. 

점점 더 길어진다.












여섯살 큰형아는 한살배기 동생을 번쩍 안아줄 수 있다.

연수가 안아주면 연제는 형이 저와 놀아주려는 것인줄 알고 좋아서 까르륵까르륵 한다. ^^

연수와 연제는 얼굴 모습도 많이 닮았고 성격도 왠지 닮은 것 같다.

장난많고 흥도 많고 기운도 펄펄한 큰 형아가 제 앞에서 겅중겅중 뛰며 웃겨주면 

연제는 벙실벙실하며 저도 엉덩이를 들썩들썩한다.


다섯살 많은 큰형은 아마도 연제가 자라는 동안 내내 아주 큰 사람일 것이다. 

엄마아빠 다음으로 의지하고 좋아하는.. 











연제는 연호도 참 좋아한다.

엄마와 작은 형아는 언제나 연제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다.

작은 형아는 연제가 낮잠자고 깨어나면 제일 먼저 달려와 '아가, 잘 잤니~?'하고 반갑게 물어주고

때론 엄마대신 밥도 떠먹여준다.










연호도 이제는 아기가 저를 아주 좋아한다는 것을 안다.

제 뒤를 늘 졸졸 따라서 기어오고, 저와 눈이 마주치면 좋아서 꺅꺅 웃는다는 것도 안다.

"엄마, 아기가 예뻐, 아기 참 통통해.. 엄마, 아기가 내가 좋은가봐."


아기가 엄마 품에서 내려오면 얼른 제가 엄마 품을 차지하고 안기기 바쁜 

아직은 저도 참 어린 아기지만 

연호는 어느새 연제가 울면 스르륵 저도 졸려서 차지하고 있던 엄마 품을 빠져나가며

"아기야, 엄마 찌찌 먹어라~" 하고 양보하고 혼자 잠이 들만큼 

마음 따뜻하고 의젓한 형아가 되었다.











형제가 있다는 것은 참 좋은 일이다.


형은 아마 평생 이보다 열광적인 팬을 가져보진 못할 것이다.

동생은 형의 숨소리까지 흉내내고 싶어한다. 


"**놀이할 사람, 여기여기 붙어라~! 십구팔칠육오...일영, 땡!"

형의 외침이 시작되기 무섭게, 땡이 울릴까봐 온마음으로 걱정하며, 최대한 서둘러 형의 엄지손가락에 와서 필사적으로 붙는다. 

엄마아빠는 같이 하자고 할까봐 무서운, 모른척 바쁜척 하기 바쁜  

유치하고 끝도 없이 이어지는 에너지 넘치는 사내아이들의 놀이에

동생처럼 열성적인 참여자가 있다는건 정말 복받은 일이다.


엄마품을 동생에게 많이 나눠줘야해서 속상하고 힘들었던 형들에게 

이제 많이 커서 형을 선망과 존경의 눈으로 바라보며 

가르칠 것도 많고 야단칠 것도 많고 때때로 칭찬도 해주며 늘 같이 놀 수 있는 

동생이 있다는 것은 큰 선물이 된다.


연수와 연호를 보며 연호와 연제의 미래를 그려본다.

연호야, 네게도 동생이 있단다. 

지금은 어린 동생때문에 섭섭한 순간이 많지만 좀 더 지나면 

너도 지금의 형처럼 인생 최고의 팬을 거느리게 될 거란다..

우리 작은 형.. 힘내렴.. 










형제가 가장 다정한 때는 엄마를 거스를 때.


낮잠 자자며, 꼭 자야 한다며 안방에 이불펴고 누운 엄마 곁을 빠져나와 

저희들끼리 거실에 있을 때

연수는 연호를 참으로 다정하게 보살피고

연호는 연수 말을 정말 잘 듣는다.


엄마는 잠들고 왠지 집안에 조용한 정적이 흐르는 것 같은 그 시간..

동생에게 형은 어른처럼 든든하고, 

형에게도 동생은 저를 혼자 있게 하지 않는 반갑고 고마운 동지가 된다.

요즘은 때때로 연제도 형들을 따라 거실로 바쁘게 기어서 탈출한다. 

그러면 엄마는 모른척 눈감고 누워서 잠시 찾아온 조용한 휴식의 시간을 달콤하게 즐길 수 있다.  












삼형제의 막내.

어릴 때부터 북적북적 다섯 식구와 두 형들의 틈바구니에 끼어서 함께 자라고 있는 우리 막내야.

엄마아빠 같은, 어쩌면 엄마아빠보다 더 가까워질 형들이 네게는 둘이 있구나.



아이들이 많다는 것, 형제가 많다는 것이 

키우는 부모에게도, 자라는 아이들에게도 힘들고 어려울 때도 많다.

세 녀석이 동시에 엄마에게 매달릴 때 

한 녀석 안고, 한녀석 얘기에 '응응' 겨우 대답하고, 한 녀석 밥 떠먹이며 

참 정신없구나.. 한 아이에게 온전히 집중해주기 어려운 상황이 미안하고 힘에 부치기도 한다.

아이들도 형 때문에, 동생 때문에 서운할 때가 많을 것이다. 

엄마가 나를 봐줄 수 있을 때까지 참고 기다리는 시간도 길 것이다.


하지만 여럿이라서 참 좋고, 행복하다는걸 느끼는 순간도 많다. 

북적북적 함께 부대끼며 살아가면서 서로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 점점 더 많아진다.

서로에게 기댈 수 있고, 서로가 고마워지고, 함께 있어서 즐겁고 재밌고 기쁜 순간이 참 많다.


어린 연호도 저보다 더 어린 연제가 자다 깨서 칭얼거리면 옆에 가서 다시 잠들 때까지 지켜봐준다.

잠깐 깼던 연제가 형아를 슬쩍 보고 다시 잠들면 연호는 연제 볼에 뽀뽀를 해준다.

연수는 바쁜 엄마를 대신해 엄마가 부탁하는대로 동생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해줄 줄 안다.

그렇게 아이들은 멋진 형아가 되어간다.


많은 식구들과 함께 지내면서  

자신이 중요한 존재라는 것, 우리 가족 속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이 많고, 

자신이 누군가를 위해 뭔가를 해줄 수 있다는 것,

저보다 어리고 약한 존재를 돌보고 그 약한 존재가 가족속에서 함께 자라는 것을 경험하면서

아이들은 자신을 더 소중하게, 힘있는 존재로 느끼며 자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함께여서 더 많이 웃을 수 있고, 

서로서로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깊이 느낄 수 있어서 좋다. 


세 아이가 하루하루 서로에게 더 힘이 되어주는 존재로 커가는 것을 느끼는 요즘이다.

아이들은 매일매일 자란다더니 정말 하루만큼 더 크고, 더 든든해진다.

그런 아이들을 보며 감동도 받고 행복도 느낀다.


연수야, 연호야, 연제야.

엄마가 참 고맙다. 

사랑한다.







  



Posted by 연신내새댁
umma! 자란다2013. 11. 15. 01:32







우리 큰아들. 
연수.
어느새 여섯살의 가을을 맞고있는 65개월 큰 형아.

개구장이도 보통 개구장이가 아니고
촐싹거리고 까불기로 이보다 더한 녀석을 여지껏 엄마는 본 적이 없다.

뭐든지 저부터 제일 먼저, 제일 많이, 제일 큰 걸로 주기를 바라는 
욕심도 투정도 울음도 많은 첫째.

동생들 때리고 울려서 엄마에게 호되게 혼나고
까불고 장난치다 혼나고 
밥 잘 안 먹는다고 또 혼나고... 

하루종일 혼낸 기억밖에 없어 미안해지는 밤. 
'나도 한 살 아기가 되고싶다.. 나도 엄마 옆에서 자고 싶다..'  
엄마 양 옆을 차지한 동생들에게 밀려 멀찍이 저 혼자서 뒹굴거리
'엄마 옛날얘기 하나만 해줘~, 해줘~, 응, 하나만~'
조르고 졸라서 듣는 옛날얘기 하나에 스르르 잠이 드는 아직은 어린 내 큰 아기.










우리 둘째, 연호.

세번째 가을이구나, 29개월 연호에게는.


어리광도 많고 애교도 많고 요즘들어 부쩍 동생 샘도 많이 낸다.

엄마가 동생을 내려놓기만 하면 얼른 달려와 엄마품을 제가 차지하고 

엄마 찌찌도 만져보고 아기처럼 안아달라 조른다.

이제 많이 컸는데 왜 그럴까.. 동생 때문에 더 그런가.. 걱정하다가 

문득 연수가 지금 연호만 했던 떄를 생각해보니

그때 연수는 더 아기같았다는게 기억났다.

더 많이 업고 다녔고, 안아주었었다. 

하루종일 연수만 데리고 같이 놀고, 눈 맞추고, 얘기했었지.. 


연호는 훨씬 더 어렸을 때부터 혼자 걸었고, 혼자 밥을 먹었고, 혼자 쉬도 가릴 수 있게 되었다. 

둘째여서, 일찍 동생이 생겨서

본래도 찬찬하고 다정한 성격의 연호는 

어린 녀석이 참 일찍도 엄마 말을 잘 들어주고, 형아를 따라 배우며

온 힘을 다해 참 열심히 자라고 있다.


가을들어 감기 앓는 날이 많아지니 엄마가 손으로 제 이마를 짚어볼 때가 많았다. 

어느날 잠자리에 누웠는데 연호가 내 옆에 와서 눕다말고 

내 이마를 짚어보고 내 얼굴과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내가 제게 그러듯이, 꼭 그렇게.


이 아이가 좀 어리광을 부리고, 

이제는 고집이 세져서 제 뜻대로 안된다고 울기도 하고, 

형아따라 이리 뛰고 저리 뛰며 개구진 장난을 심하게 치더라도

나는 더 안아줘야겠다.

여섯살 형아에게 하듯이 그렇게 무섭게 화내지 말고..

형보다 훨씬 일찍 엄마 품을 동생에게 내어주고 작은 형이 된 

아직 어리디 어린 나의 둘째 아기에게. 


 








9개월 연제. 첫번째 가을.

하얗고 예쁜 아랫니 두개. 


가을 시작될 때쯤 배밀이로 살살 긴다 싶더니 

어느새 온데 사방 못 기어가는 데가 없고 

붙잡고 세워주면 좋아서 펄쩍펄쩍 뛴다.

오늘은 빨랫대를 붙잡고 드디어 혼자서 일어섰다.


셋째는 얼마나 빨리 크는지.. 

이 아이 자라는 모습을 미처 내 마음에 다 담아두기도 전에 훌쩍 다 자라버릴 것 같아 무서울 정도다.

이렇게 예쁜데.. 갓난아기 이 모습도 금방 지나가겠구나.



얼마전부터 연제가 '음마, 음마' 하고 나를 부른다.

블로그를 처음 쓰던 무렵에 

연수가 꼭 지금 연제만 했던 시절에 나를 보고 '음마, 음마' 하는 그 소리가 좋아서 

육아일기 쓰는 카테고리의 제목을 'umma(음마), 자란다'로 지었었다.

음마, 음마 하는 아기 연수도 자라고, 엄마인 나도 아이키우며 자라는 이야기를 써야지.. 했었다.


그 사이.. 아이들은 참 많이 자랐다.

하나였던 아이가 셋이 되었고, 걸음마도 못 하던 아기 연수는 어느새 저렇게나 잘 웃고 잘 뛰는 큰 형아가 되었다. 

나는, 엄마 전욱은 많이 자랐을까.


아이가 셋이라 정신없다고, 그저 하루하루 밥하고 치우며 사는 것만 해도 바쁘다고 

어느틈엔가 좀 게을러져 있었던 것 같다.

손은 더 빨리 움직이고, 몸도 더 바쁘게 움직여서 

세끼 밥도 차려내고, 설겆이며 청소, 빨래도 어찌어찌 해내며 살고있기는 하지만 

그래서 힘들다고, 어쩔 수 없다고 핑계대며

아이들 키우며 함께 '자라는' 일에는 게을러졌던 것 같다.


그러다보니 마음은 점점 팍팍해지고, 그저 매일매일의 삶을 어찌어찌 살아낸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하며 

실은 좀 대충대충 넘어가고, 조금이라도 몸이 편안한 쪽으로 안주하기도 했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한 인간의 온전한 성장 과정을 다 함께 겪는 일이어서

몸과 마음의 건강한 성장을 두고 공부하고 성찰하고 실천할 일이 정말로 많은 것 같다.

그건 일하는 엄마든, 나같은 전업맘이든 똑같아서 누구라고 더 많이 하고 누구라고 적게 해도 되는 그런 일이 아니다.

한 생명을 세상에 내어놓고,

그 생명이 자라는 과정을 함께 지켜보고 겪어가는 사람으로써  

보살피고 지키고 격려하는 일을 맡은 사람으로써 

알아야할 것들을 배우고 실천하려고 노력하면서 함께 성장해야한다.


그저 손만 빨라지고, 눈매는 날로 매서워지는 엄마가 되고 싶지는 않다.

몸만 바쁘고 마음은 불행한 엄마이고 싶지도 않다.

아이가 많아도 한 명 한 명, 그 시절에 맞는 정성어린 보살핌을 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어린 연제를 조금 더 세심하게, 조심스럽게 보살피고

연호를 더 많이 안아주고 연호 수준에 맞는 놀이를 더 많이 같이 해주고

연수 얘기를 더 귀기울여 들어주고 개구진 장난들을 더 너그럽게 대해줄 수 있었으면.. 


아이들의 건강을 어떻게 보살피면 좋을지, 

아이들을 어떻게 키우면 좋을지 

무엇을 가르치고, 무엇을 가르치지 말아야할지 

더 잘 알고, 중심을 잡고, 든든하고 차분하게 실천하며 살 수 있었으면. 


아니 아니, 그 모든 것을 다 하진 못하더라도 

그저 아이들에게 화를 덜 내고 

더 많이 웃어주고 사랑한다 말해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나도 조금 더 행복하게 육아를 하고,  

아이들도 행복하게 자랐으면 좋겠다. 


세 아이를 키우는 동안 내 품도 그만큼 넓어지고 깊어졌노라고 

나중에 돌아보았을 때

'너무 힘든 시절이었어'하는 푸념과 원망만 남는게 아니라 

'참 좋은 시간이었어, 많이 자랐어..'하고 고마워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함께 자라는 행복

그 행복을 찾아 

서른여섯 엄마도 조금 더 힘을 내야지, 자라려고 노력해야지..

마음먹어 보는 가을이다. 








+ 얼마전에 가을여행을 함께 갔던 기동선배와 발랄 부부가 아이들과 우리 가족 사진을 이렇게 예쁘게 찍어주었다.

정말 고맙습니다. ^^ 우리 같이 좋은 친구하면서, 오래오래 함께 아이들 키우고 같이 지내요.   





Posted by 연신내새댁
umma! 자란다2013. 9. 17. 22:28






연제가 만 6개월을 꼭 채우고 7개월에 들어섰다.

이번 달부터는 이유식을 먹기 시작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엄마젖만 먹다가 이제 불을 써서 익힌 세상의 음식들을 직접 먹게 된 것이다.
유아기의 제일 처음 한 시절이 끝난 것같다.

모유만 먹을 때의 아가들 특유의 똥냄새가 있다. 
고 시절의 아가 똥냄새는 (엄마니까 콩깍지가 씌어서 그렇겠지만) 시큼하면서도 달달하다. ^^;; 
세상의 음식이 섞이면 섞이는대로 똥냄새는 달라진다. 

예전에 어디선가 아기들이 익힌 음식을 먹기 전까지는 하늘의 말을 알아듣는다는 얘길 들은 적이 있다.
그러니까 엄마젖만 먹는 시절의 아기들은 몸은 이 세상에 왔지만 아직 마음은 저 하늘에 떠있는 천사같은 존재라는 것이다.
자연과 아주 영적인 존재들과 교감할 수 있는.
그러다가 불에 익힌 세상의 음식을 먹게 되면서부터 차츰 하늘의 언어는 잊어버리고
인간 세상의 사람들이 쓰는 말을 익히게 되고, 땅에 발을 붙이고 살아가게 된다는 얘기. 

무슨 그런 말을~ 하고 웃어버릴 수도 있지만 
나는 왠지 그 얘기가 마음에 와닿았다.
아이들은 어른이 된 우리의 지각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아주 신비로운 존재들인 것 같다.

아가들이 입술을 붙여서 '부우우~'하고 소리를 내는걸 내 고향인 강릉말로는 '투랭이'라고 부르는데 
할머니들은 아가들이 투랭이하는걸 보면 
'아고, 비가 올려나, 바람이 불려나.. 요녀석이 투랭이를 하네' 하고 꼭 말씀하신다.
그리고 정말 꼭 바람이 세게 불거나, 비가 온다. ^^

세 아이 키우는 동안 늘 그랬다.
참 신기했다. 
아기들은 습도나 바람의 변화를 아주 예민하게 알아차리는 센서라도 있는걸까? 
무튼 우리가 아무 것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요 어리디어린 아가들이 실은 어른들보다도 훨씬 많은 것을 느끼고, 교감하고, 표현할 수 있는 천사들일지도 모른다. 
나는 왠지 그런 것만 같다.

그래서 연제가 이제 6개월을 잘 채우고 7개월차에 들어선 것이 
너무 고마우면서도 왠지 아쉽기도 하다.
한 시절이 끝났구나.. 싶어서.
가장 작고, 가장 여리고, 가장 고물고물하고, 안고있으면 너무 작아서 품 안에 쏙 다 들어오고, 여기를 맡아봐도 저기를 맡아봐도 보드라운 아기 살냄새에 젖냄새가 가득해서 고 작은 품에 마냥 얼굴을 파묻고 싶어지게 하던 
우리 고운 막내 아가가 어느새 이만큼이나 컸다.













연제는 참 잘 웃는다.
엄마를 보면 벙글벙글, 순한 얼굴에 가득 웃음이 퍼진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내 마음에도 따뜻한 기운이 가득 퍼진다.

통통하고 키도 크고 펄쩍펄쩍 뛸 때보면 힘도 센 우리 아기.
아직 기지는 못하고 이리 저리 뒹굴뒹굴 굴러다니는 연제.
지난 여름 요녀석 안고 업고 지내느라 땀깨나 흘렸지만 
지나고보니 또 참 좋은 시절이었다. 
연제도 엄마와 형아들 가운데서 낑낑거리며 자라느라 참 애썼다.
지금까지 건강하게 잘 자라준 것이 고맙기만 하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순하게 밤잠 낮잠 다 잘 자주고, 젖도 잘 먹고, 엄마만 곁에 있으면 언제든 큰 소리없이 잘 있어준 연제.

가을, 겨울이 지나는 동안 우리 아기는 또 얼마나 예쁘게 자랄까.
이제는 이 날들이 짧은 것을 알겠다.
꿈같이.
꿈같이 짧은 시절인 것을 알곘다.
고운 가을이 가고, 추운 겨울이 오고, 썰매를 타고 따신 차를 마시며 봄을 기다리다보면 
어느날 봄이 오고 연제도 첫 돌을 맞을 것이다. 돌 지나고나면 또 쑥 크지.. 그러면 아기시절도 금방이지..

그 시절동안 연제는 한가지씩 곡식과 야채들을 점점 더 많이 먹어보게 될테고, 
기어다닐 수 있게 될 거고, 어느 날은 일어서고 걷겠지.
참 경이롭다.
인간의 성장이..
모두 이렇게 경이롭게, 곱게, 애써 성장한 존재들인데 아끼고 예뻐해줘야겠다.
부족하다 싫어하지말고, 못났다 미워하지 말고..
오늘도 엄마한테 이래저래 혼나느라 정신없었던 연수도 미안하고, 안아달라 업어달라 매달리는 연호를 더 많이 안아주고 놀아주지 못한 것도 미안하다.ㅠㅠ
다 이렇게 예쁘게 자랐던 아이들인데, 엄마가 세 아이 돌보는게 힘에 부쳐 잘 웃지도 못하고, 행복하게 같이 놀지도 못하니 참 미안한 시절이다.
이 시절이 지나가면 또 좋아지는 것도 있겠지..
아쉬운 것이 있는만큼, 잃는 것이 있는만큼 나아지고, 또 얻는 것도 있을 것이다.
 
연제가 올 여름에 입었던 아기옷들은 아마 내년 여름에는 다시 입기 힘들 것이다.
그래서 요즘 연제 여름옷을 하나씩 빨아넣을 때마다 마음이 뭉클하다.
안녕.. 우리 아기 입었던 고운 아기옷아, 안녕.
우리 아기 잘 크게 돌봐줘서 고맙다..

그렇게 안녕하고, 
새로운 시절로 가는 것이다.
아기들은 자라고, 엄마도 함께 자란다.
가장 고달프고, 조심스럽고, 어렵고.. 그래서 가장 애틋하고 아름다웠던 연제의 갓난아기 한 시절이 이렇게 끝나간다.









Posted by 연신내새댁
umma! 자란다2013. 8. 14. 23:45


아이들의 특정 행동에 내가 확 폭발할 때가 있다.

동생을 때리거나 아프게 할 때.. 소리를 빽 지르며 큰 애를 때리거나 현관문 밖으로 쫓아낸다..

나중에 후회할만큼, 아니 화를 내는 그 순간에 이미 후회하고 있으면서도 멈춰지지가 않는다.


엄마의 분노지수가 너무 높다는 것이 아이들을 얼마나 두렵고 무섭게 하는지 우리 아이들을 보기만 해도 알겠다.

오늘은 제가 동생에게 했던 것과 똑같이 팔꿈치로 눈을 쿡쿡 찍어가며 때리는 엄마를 연수가 정말 말간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그 순간 '아... 내가 뭐하는거지...' 싶었다.


연호가 태어난 뒤로 연수에게 내가 진심으로 분노를 느끼는 떄는 주로 연수가 연호를 때리거나 아프게 할 떄였다.

막 세돌이 지났던 네 살무렵부터 연수는 동생을 때리는 순간 엄마로부터 모질게 얻어맞거나 안방 문밖으로 쫓겨났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었지만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패턴은 늘 동일하게 반복됐다.

하지 말라고, 안된다고 해도 끝내 아이들은 고집을 부려 기어코 동생을 때리거나 깔아뭉개려할 때가 있었고, 어른인데도 나는 늘 번번히 같은 상황에서 심리적 극한을 느끼며 폭발하고, 아이를 때리거나 쫓아내고, 울고불고 눈물콧물 범벅이 되어 공포심에 오들오들 떠는 아이를 다시 집안에 들여놓으며 남은 분노와 후회와 가책이 뒤범벅이 되어 넝마처럼 되어버린 정신으로 멍해질 떄가.. 

그럴 때가 있다.


소위 '눈이 확 뒤집히는' 이런 떄가 일관되게 있다는 건 분명 내 상태가 좋지 않다는 뜻일거다. 

병원에 가보거나 상담을 받아봐야할까..


연호는 아직 엄마에게 맞아보지는 않았다. 

차마 이제 두돌 막 지난 어린 아이를 때릴 정도로 내가 이상해지지는 않았다.

대신 근래 들어 두 번쯤 현관문 밖으로 쫓아냈다.

잠겨진 문 밖에서 연호는 많이 울었고, 공포의 메세지가 어린 마음에 아주 분명하게 각인된 듯 연제를 아프게 하는 장난은 치지 않았다. 

그렇게 하려고 하다가도 엄마가 '또 쫓겨난다'고만 말해도 움찔하며 '아니 할꺼야. 연호 아니 쫓겨날꺼야..'하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가여우면서도 다행스럽다. 내가 다시 폭발하지 않을 수 있으니까... 

그러나 연수는 그렇지 않다.

연호만큼, 아니 어쩌면 연호 이상으로 공포는 느끼면서도 연수는 이미 분노 조절을 잘 못하는 엄마를 닮아버린 것 같다.

연호에게 뭔가 화가 나면 기어코 때려서 응징을 하려고 한다. 

'너는 도대체 왜 그러니!'라고 말하고 도대체 내 큰아이가 왜 그럴까.. 고민하지만 이런 밤에 생각해보면 엄마인 내가 저에게 보여준 그 분노의 기운을 고스란히 동생에게 되풀이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오싹하다.


어린 시절부터 나는 맞는게 아주 싫었다.

누가 죽도록 나를 때린 것도 아닌데, 한두대 가끔 맞는 것도 그렇게 싫었다.

두살 위인 오빠가 나를 아프게 떄리는 것도 싫었고, 선생님들이 학교에서 때리는 것도 공포스러웠다.

엄마에게 맞은 회초리는 그래도 그렇게 무서운 기억으로 남아있지는 않은데, 제일 싫었던 것은 오빠한테 맞을 때였던 것 같다.

청소년기가 되기 전의 남자아이들에게는 뭔가 이성으로 제어되지 않는, 순화되지 않는 폭력성이 있는 것 같다고 나는 그 무렵의 내 오빠와 지금 어린 연수를 보며 생각한다.

연수가 연호를 때리는 데는 정말로 아프게, 저보다 약한 존재를 짓밟아보려고 하는 잔인한 기운이 있다.

여섯살밖에 안된 아이를 두고 무슨 그런 얘기를 하냐.. 싶기도 하겠지만 인간에게는 여러 심성이 공존하고 어린 인간도 예외는 아닌 것 같다.

어리기에 더 곱고 순수하고 여린 심성도 있지만 자기 방어, 혹은 경쟁의 측면에서 승부욕이 들거나 뭔가 마음의 분노를 느끼면 더 폭력적이 되는 것도 어린아이인 것 같다.


맞는다는 것은 육체적으로 아프고 그래서 무섭고 싫은 것이기도 하고, 정신적으로 드는 모욕감과 수치심도 참 싫었다.

대학시절에 집회현장에서 보았던 공권력의 폭력은 죽을 것 같은 심리적 공포를 경험하게 하기도 했다. 

나는 권위에 굴복하는 것이 싫었다. 어릴때부터 그랬다. 억눌리는 것이 싫었고, 공포를 조장하는 것, 그 아래 숨죽이고 있어야하는 것이 싫었다. 집안이나, 교실이나 그 순간들이 참 싫었다.

그런데 내가 지금 그렇게 하고 있다. 

가끔 아이들을 공포로 몰아넣고, 야멸차게 모욕을 주고, 저희들이 행한 폭력보다 몇배는 더 센 힘으로 폭력을 휘두르고 있다.

증오하는데 되풀이한다.

지금 내가 내 아이들에게 저지르는 잘못들은 분명히 내가 과거에 아주 싫어하던 바로 그 것들이다. 


한 선배언니는 어릴때 엄마가 발가벗겨서 문 밖에 쫓아냈던 기억을 얘기했었다. 

'우리 엄마 정말 너무 하지 않았냐, 어린 딸을 (아마도 추운 날) 발가벗겨 집 앞에 세워놓다니...' 정말 너무 했다. 나도 우리 엄마에게 섭섭하고 슬펐던 내 어떤 기억을 언니에게 얘기했다. 뭐였을까, 숟가락 놓다가 상에 떨어뜨릴 때마다 폭풍처럼 야단쳤던거? 어린 마음에 일을 도우려고 그랬던 건데 엄마는 내게 '너는 왜 맨날 그러냐'며 야단쳤었지.. 그래서 나는 내 아이들에게는 그런 야단 절대 안 치고 싶었는데 어느새 연수는 약간 그런 기미가 보인다. 엄마한테 맨날 같은 야단맞기...

무튼 지금은 그 언니 엄마의 심정이 이해될 것 같다. 

언니 엄마도 아마 나처럼 어떤 심리적 극한에 내몰렸을지 모른다. 아마 그럴거다.. 


한 후배는 엄마의 우울증 얘기를 해주었었다.

'어릴 때였는데.. 엄마가 갑자기 막 울면서 나랑 내 동생한테 밥그릇이랑 숟가락젓가락을 줬어. 이거 가지고 옆집 아줌마한테 가서 밥 달라고 하라고... 그러면서 엄마가 우리를 막 떠미니까 우리도 엉엉 울면서 옆집 아줌마한테 가서 엄마가 시킨 대로 말했지. 그랬더니 아줌마가 아무래도 이상해서 우리를 데리고 다시 우리집에 왔는데 엄마가 약(수면제?)을 삼키려고 하고있었어..'

그 후배의 결혼식날, 나는 후배의 어머니 얼굴을 잘 보고 싶었다.

젊은 엄마이자 아내로 살던 날에 어떤 괴로움이 엄마를 그렇게 몰고 갔을까.. 

어머니는 다행히 건강하게 지금까지 잘 계시고, 후배도 잘 지내지만 어린날, 동생과 밥그릇을 손에 들고 울면서 아파트 복도를 뛰어가던 날의 기억은 아마 오래도록 후배의 마음에 남아있으리라. 후배가 혹시 엄마가 된다면 그 기억의 의미가 그전과는 또 다르게 다가올 수도 있겠지...


연수도 나중에 커서 어린 저에게 분노하던 엄마의 모습을 기억할까.

연수는 내 성장과정에서 내가 저항하고 응징하고 싶었던 그 폭력의 주체들이 아니다.

아이들의 폭력에 분노하면서, 나는 실은 어린 시절에 내가 하지 못했던, 혹은 내가 아직 벗어나지 못한 공포와 두려움에 대한 생리적 거부감을, 분노를 표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가만히 잘 있다가, 밥 먹여주고 그림책 잘 읽어주다가 갑자기 폭발해서 '너 자꾸 그럴래!'하며 연수를 때리는 그 순간에,

내가 도를 넘는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고 아이들을 향해 비난을 퍼붓는 것은 

내가 아직 극복하지 못한 상처가 있고, 그토록 두렵고 싫은 폭력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실은 아직 나부터도 모르기 때문이 아닐까.

여섯살, 세 살 아기들한테 낼 화가 아닌데 

나는 지금 완전히 번지수를 잘못 짚고 살고있는 것 같다.


상처없이 자랄 수는 없다해도

어른이 된 뒤에는 제 상처를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마음의 힘이 생겼으면 좋겠다..

제발.



























  

Posted by 연신내새댁
umma! 자란다2013. 6. 29. 23:58






지난 봄, 산후조리 마지막으로 강릉친정에 가있을 때..
연수랑 연호가 제일 좋아한 곳 중에 하나는 외갓집 밭이었다.
감자도 자라고, 옥수수도 자라고, 고구마며 온갖 맛있는 곡식들이 자라는 밭 끝자락에 조금 빈 땅이 있었는데
여기는 돌이 꽤 많았다.

연수는 거기 엎드려 한참 혼자 조물거리며 놀기를 좋아했다.
하루는 '엄마, 밭에 가보자. 내가 발굴한 공룡 화석 보여줄께' 하기에 '거기 공룡 화석이 있어?' 물었더니 그렇단다.
연제 잠든 틈에 연호 손잡고 바람같이 내달리는 연수 뒤를 천천히 따라가 보니 
저렇게 근사한 '공룡 화석'이 발굴되어 있었다. ㅎㅎㅎㅎ

'진짜지? 진짜 멋진 공룡 화석이지?'
'그래.. 정말 멋지다..' 

음. 아마도 이런 순간이 지난 5년간 너를 키우면서 매일같이 흙투성이가 된 바지를 빨아온 엄마가 가장 뿌듯한 순간이겠지..? ^^  










ㅠㅠ
이런 일도 있었다.
외가집 밭에 다녀온 연수가 엄청 신나하며 '엄마, 엄마, 이것 봐!'하고 연제 젖먹이는 내 눈 앞에 쓱 들이밀어서 그만 '꺄~~~악!!!!'하고 비명을 지르게 했던 
이 오동통한 애벌레..

너무 깜짝 놀라 '얼른 절로 갖고가! 마당으로!! 얼른~~!!!'하고 하도 크게 소리지르는 바람에 
연수도, 소리지른 나도 그만 머쓱해졌다.

겨우 마음을 가라앉히고 '소리질러서 미안.. 근데 얼른 치워줘. 아가는 아직 어려.. 벌레는 아가 가까이 가져오지마.. 그리고.. 얼른 손에서 내려놔, 풀숲에 놔줘..ㅠㅠ' 울다시피 말했다.

정말로 크고 통통한 녀석이었다.ㅠ
어째 너는 저런 녀석을 겁도 없이 그렇게 집어들 수가 있냐......
내 속으로 낳았지만 정말 그 머리속에 뭐가 들었는지 잘 알 수 없는, 여섯살 사내아이는 
엄마의 지나친 반응에 그만 눈물이 글썽할 정도가 되었다.

'엄마, 이 애벌레 내가 키울꺼야... 내가 키우면 안돼?'
'연수야.. 애벌레 원래 어디 있었어?'
'상추밭에... 내가 상추 잎사귀에서 찾았어!'
'그랬구나.... 그럼 거기 다시 놔주자... 그래야 나비가 되지, 우리가 데려갈 수는 없어... 애벌레는 밭에서 살아야돼..'
'싫어! 우리집에 데려갈꺼야! 내가 키울꺼야!!'
'.... 암튼! 일단 지금은 내려놔...ㅠㅠㅠ 얼른, 저기 현관밖에 화분에라도 내려놔라, 제발.'
'싫어! 난 이 애벌레가 좋단 말이야! 내려놨다가 어디로 가버리면 어떡해..?'
'..........그래도 손에 계속 들고있지마, 애벌레도 무섭고 힘들거야... 그럼.. 내려놓고 우선 엄마 전화기로 사진을 찍자. 그럼 혹시 사라져도 사진으로 계속 볼 수 있잖아.. 우리가 서울까지 얘를 데려가긴 어려워... 외갓집에 있는 동안만이라도 자주 보고싶으면 외갓집 마당에 있는 화단에 풀어줘... 어서!' 

연수는 눈물을 훌쩍거리면서 애벌레를 현관에 내려놓고 
내 전화기를 들고가서 여러장의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는 애벌레를 다시 고이 집어서 현관 계단 밑에 있는 작은 화단에 놓아주었다. 
그 날 하루는 마당에 나갔다 들어올 때마다 애벌레가 뭘하고 있는지 내게 알려주었고.. 

그런데 저녁쯤에 애벌레는 사라졌다.
아마 제가 살던 상추밭으로 돌아갔나보다고, 아니면 어딘가에서 고치로 변해서 나비될 준비를 하는지도 모른다고 
나는 연수를 위로해주었다.
마음속으로는 '휴..'하는 안도와 '정말 어딘가로 잘 갔겠지?'하고 애벌레를 걱정하면서... 

느닷없이 어린 꼬마의 손에 잡혀 낯설고 거친 시멘트 바닥이 대부분인 마당 한복판에 떨어졌으니 얼마나 막막했을꼬.. 애벌레.ㅠㅠ
미안하다, 얘야.. 부디 좋은 곳에서 다시 풀 잘 먹고 꼭 고운 나비 되렴..

집에 돌아와서 연수에게 '세밀화로 보는 나비애벌레'(권혁도 그림, 길벗어린이) 책을 사주었다.
애벌레에게 보인 엄마의 격한 반응을 사과할 겸.. 
나도 좀 꼼틀거리는 것들에 대한 생리적 거부감을 덜어보고자..
그리고 연수가 좋아하는 애벌레들이 어떻게 자라는지, 어떤 곤충(나비)들이 되는지 알려주고 싶었다.
 
책을 보니, 
작가는 아파트 화단에 있는 나비 애벌레들을 보면 데리고 들어와 집안 베라단에 있는 화분에서 키운다고 했다.
수목소독도 자주 하고, 풀도 자주 깍는 아파트에서는 나비 애벌레들이 아무래도 잘 자라기가 어렵단다. 
그렇구나... 그래서 키우기도 하는구나. 
그리고 나비 애벌레들이 징그럽고 털같은걸로 몸을 무섭게 꾸미는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서지 실제로 쏘거나 하지는 않는다는 것도 알았다.
그래도 송충이 같은 나방 애벌레는 사람을 쏘기도 하니 조심해야하고, 나비 애벌레를 보면 절대 손으로 잡지 말라고 일렀다.
다른 곤충들도 마찬가지.. 사람이 잡거나 밟으면 애벌레나 곤충들은 쉽게 다치고, 잘 자라기가 어려우니 그저 눈으로만 잘 구경하고 '잘 커라'하고 말해주라고 하니 연수도, 연호도 우선은 알았다고 했다.
그래도 어린 마음에 신기한 곤충들을 그저 구경만 하고 있긴 어렵겠지... 

위험은 최대한 조심하게 가르치되
아이들이 자연의 여러 생명들에게 갖는 관심과 애정은 지켜주고 싶다.
자연의 여러 생명들이 참 곱고 예쁘다는 것, 모두가 다 제 역할이 있고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
곤충들이 살기 어려운 환경은 사람도 살기 힘든 곳이라는 걸 아이들이 이해하고 중요하게 생각해주기를 바란다.











연수는 흙놀이를 참 좋아한다.
흙이랑 물이랑 노는걸 싫어하는 아이가 있을까... 
옷이 더러워진다고, 손이 더러워진다고 질색하는 어른과 아이도 있을 수 있겠지만
어른들이 괜찮다고 열어주면 아이들은 정말로 오래오래 흙과 물 속에서 자유롭게, 그 보드라운 감촉을 손으로 마음으로 느끼며 행복하게 잘 논다.

나는 그런 놀이가 좋다.
딱딱하고 차가운 플라스틱 놀이감들보다 말랑말랑하고 무궁무진한 모양을 만들어낼 수 있는 놀이감으로 흙만큼 좋은게 있을까.
그 위에 그림도 그릴 수 있고, 둑을 쌓을 수도 있고, 퍼담아 밥을 할 수도 있고, 나뭇가지와 꽃을 꽂아 생일케익도 만들 수 있다.
흙이 아쉬운 아파트에서는 겨울에 함박눈이 오면 그 눈을 흙처럼 가지고 놀 수 있다. 
봄여름가을에는... 흙을 찾아가야지. 흙이 있는 곳, 아이들이 마음껏 놀 수 있는 땅이 있는 곳, 마당을 찾아가야지.

나는 많이 노는 아이들이 유연하게, 부드럽게, 행복하게 클 거라고 생각한다.
자연의 놀이감들을 가지고 원없이 많이 놀아보며 아이들이 자랐으면 좋겠다.
내 아이만이 아니라 모든 아이들이..

좁은 실내에 갖혀서 자라지 말고, 넓은 자연속에서 뛰고 뒹굴며 자랐으면 좋겠다.










도시의 어린이집과 유치원들에도 흙과 돌과 수도가 있는 마당이, 모래더미가 하나씩 주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친구와 손잡고 뛰고 걸으며 산책할 수 있는 푸른 숲길이 가까이 하나씩만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교사들이 아이들의 흙묻은 손을 씻겨주는 일과 흙묻어 더러워진 옷을 갈아입혀주는 수고를 번거로워하지 않고 기쁘게 해주는 어린이집과 유치원이 많으면 얼마나 좋을까.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기대하는 모든 창의력과 상상력과 넓은 마음과 이해심과 우리 주위의 생명과 먹거리와 환경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아이들이 작은 손으로 자연을 마음껏 느끼고 경험하며 놀아보는 가운데, 자연의 품에 온전히 안겨볼 때 
진정 반짝이는 별들처럼 아이들의 마음속에 자라나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이런 내 나름의 기준으로 연수의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을 찾아왔다.
부모와 함께 하는 삶의 여러 면면이, 집에서의 많은 경험과 시간들이 실은 아이들을 자연속에서 마음껏 뛰놀며 자라게 하려고 할때 제일 중요하겠지만
하루중 적지 않은 시간을 보내는 유치원같은 기관에서도 되도록이면 그렇게 지낼 수 있기를 바랬다.










세 아이 키우며, 특히 이제 갓 세상에 태어난 갓난아기 막내를 키우며 
위의 아이들을 마음껏 자연에서 뛰놀게 하기가 쉽지는 않다.
아파트의 작은 흙땅에서도 아이들은 흙놀이를 할 수 있고, 비록 인공의, 그래서 자주 더러워지는 냇물이지만 그래도 집 가까이 있는 냇물에서 발담그고 돌멩이를 던져볼 수도 있긴 하다. 
아파트 화단에도 철따라 꽃도 피고, 나무에는 산수유며 매실과 모과도 달린다.
아직 몇 년안된 신생 아파트단지라 나무들도 모두 여리고 마음껏 흙놀이를 하기는 어렵지만....









어디에서, 어떻게 키워야할까..

나는 아이들과 함께 어떻게 지내야할까.... 

고민이 많은 밤이다.










Posted by 연신내새댁
umma! 자란다2013. 6. 25. 23:10






부엌에 서서 설겆이를 하다가 문득 조용해 거실을 바라보니 

연호는 놀이방에서 놀고있고 연제 혼자 저렇게 누워 뒹굴거리고 있었다.

때로 낑낑거리고, 때로 누워 제 주먹을 짭짭 빨기도 하며.. 


돌아누운 뒷모습이 참 예뻤다. 

동그랗고 작은 몸.. 우리도 모두 갓난아기 시절에는 저렇게 작고 둥글고 보드라웠겠지..

형아들 돌보랴, 집안일 하랴.. 늘 바쁜 엄마는 가끔씩 이렇게 눈길로만 연제를 보듬어본다.

혼자 누워 뒹굴뒹굴 놀아주는 고마운 아기 뒷모습만 오래오래 마음에 담는다.  

 







백일 즈음부터 뒤집고 싶어 끙끙거리던 연제는 백일하고 9일째 되던 날 저 혼자 드디어 휘익~ 하고 뒤집었다.

끙끙거리던 시절에는 무지하게 힘들어보여 '아직 뒤집으려면 멀었겠다..' 싶었는데 막상 뒤집을 때는 크게 힘들이지 않고 쓰윽~ 뒤집었다.

아하.. 이게 연제 스타일인가.. 태어날때도 쉽게(?) 쓰윽~ 나오더니 많이 준비하고 벼른 뒤에는 가볍게 한큐에 해내는 스타일..? ㅎㅎ 

성장의 여러 고비들도 그렇게 시원하게 넘어가 주었으면... 엄마는 바래본다. 









뒤집고 바라보는 세상은 어때? ^^ 

이불에 구멍나겠다... 뚫어지게도 본다. ㅎ 

셋째는 바빠서 모빌도 못 달아주고 키웠다. 

형아들 서슬에 남아날 모빌도 없을 것 같고, 오고가는 식구들 구경만 해도 눈이 바쁘겠다는 변명을 해보지만... 역시 미안하다. ㅠㅠ

연제야, 예쁘고 고운 것... 우리 함께 많이 보자.. 앞으로 엄마가 많이많이 보여줄께..









냠냠.. 엄마, 내 손 정말 맛있어요! 엄마 젖 다음으로요..^^

에구.. 귀여워~! 갓난아기가 엄마한테 씌우는 콩깍지는 정말 어쩔 수가 없다. ㅋㅋ 

요리 이쁜 녀석을 내가 낳았다니~!! 하면서 아무리 바빠도 저 입가에 침 닦아주고, 뽀뽀하고, 볼 부비지 않을 수 없게하는 요 아가들의 힘!


뒤집고 낑낑거리게 된 뒤로 혼자 '끄윽~' 트름도 시원하게 잘 하지만, 그전에는 거의 안하던 토를 엎드려서 곧잘 조금씩 한다.

덕분에 안고 업고 다니는 엄마 옷에서도 젖냄새에 더해 아가 토냄새가 늘상 배게 되었다.

다행히 아가들과 같이 곯아떨어지지 않고 깨어있는 밤이면 모처럼 샤워도하고 양치도 하고 인간답게 자는데(ㅜㅜ)

나에게서 나는 진한 아가 냄새를 맡으며 지금은 이 냄새가 내 삶의 냄새구나.. 생각하게 된다.

아이들이 커서 저희들의 길을 가고, 나도 또 내 일을 하며 내 길을 가게되면 그때는 또 다른 삶의 냄새가 나겠지만

지금은 이 젖냄새, 토냄새가 내 삶의 냄새다.. 확인한다.

힘들고 고단한 엄마의 자리.. 그래도 어설픈 내 품에 기대 세 아이가 자라고 있다. 

기운내고 단단해져야해.. 마음 다독인다.  









끙끙.. 고개를 들거야~~ 

며칠 사이에 금새 고개를 잘 들게 되었다. 

셋째 참 빨리 큰다. 

일 좀 하다 돌아보면 어느새 이만큼 커있고, 하루밤 자고나면 또 쑥 크는 것 같다.

종일 붙어있는 갓난아기라지만 정작 연제 얼굴 조용히 쳐다보는 시간은 너무 짧다.

연제도 아쉽고, 엄마도 아쉽다.

연제가 워낙 잘 자는 아이라 하루중에 대부분의 시간을 자고 있어 그렇기도 하고, 어쩌다 깨어있어도 엄마가 바빠 잠깐 기저귀 갈아주고, 젖주고 나면 금새 일어서 또 무언가 일을 하러 종종거리며 연제 곁을 떠나야한다. 

아니면 업거나 안아서 데리고 다니거나... 그러면 연제는 엄마 등에서 조금 세상 구경하다가 또 곤히 잔다. 

내려놓을 때까지 오래오래...

하루에 한번 목욕시킬 때가 연제 얼굴을 제일 오래 들여다보는 때인 것 같다. 

엄마가 좋아서, 물이 좋아서 엄마랑 눈이 마주칠 때마다 생글생글 웃는 아가에게 마주 웃어주면서도 엄마는 자꾸 미안해진다.

이렇게 예쁜 아가인데.. 더 오래 눈맞추고, 더 많이 놀아주지 못해 미안하다, 아가야...









순하고 고운 아기..

셋째 아기 키우는 일은 딱 아기 살결처럼 보드랍고 여리고 순하다.

이렇게 크는 아가도 있구나... 엄마에게 가르쳐주러 왔구나.









목욕시킨 뽀얀 녀석 사진 찍어보았다.

오래오래 기억해둬야지.. 갓난아기 고운 시절.

요녀석도 커서 제 형들처럼 씩씩하고 개구지고 뼈도 살도 모두 단단하다못해 살짝만 닿아도 아픈 고런 사내아이가 될테니... 

지금 요 시절, 한번뿐인 말랑말랑 갓난아기 시절 마음껏 안아보고, 기억해둘테다. 

엄청 컸다고 잘난척 할때 '너희들 모두 엄마 배속에서 나온 이렇게 조그맣고 이쁜 아가들이었거든~~!' 하고 말해줄테다. ㅎㅎ 








뒤집고 있기 힘들어요, 엄마~~ 그만 사진찍고 나 좀...! ^^;; 








연제 앞얼굴은 이렇게 생겼습니다. ^^ 

누구 닮았나...? 




목욕 사진의 마지막은....









여심을 뒤흔드는 그 분의 뒷태! 
ㅋㅋㅋㅋㅋ

(엄마!!!! - 나중에 커서 연제가 보고 빽! 소리 지를 것 같음..^^;;;)









엊그제부터는 뒤집기고 목가누기가 아주 익숙해지더니 젖먹여 눕혀놓으면 혼자 놀다가 뒤집고 잠들기도 한다. 

이렇게 든 잠은 참 달고 길어서 

오래오래 연제가 곤히 자는 동안 엄마는 쌓여있던 집안일도 거의다 하고, 작은 형아와 오래오래 놀아주기도 하고 

그래도 안 깨면 가끔 걱정돼서 살짝 들여다보기도 하고.. 그러면서 조용한 오전시간을 보낸다.

어제와 그제는 밤새 한번도 깨지않고 자기도 했다. 

이거 참.. 4개월 아가가 그래도 되는 건지.. 깨워서 젖을 먹여야하는건 아닌지 다시 육아책 뒤적여보며 행복한(?) 고민도 해봤지만.. 

자는 아기 절대 안 깨운다는 원칙으로 세 아이 키우고 있는 나로서는 절대 깨울 엄두는 안 낼 참이다.

되뒤집기를 할 수 있을만큼 크면 다시 자다 깨지 않겠어... 그리 길지는 않을 이 '통밤잠'의 시절을 그저 감사, 또 감사하며 지내고 볼 일이다. ^^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이따금 제 손가락을 촉촉 빨기도 하면서 

곤히 자는 연제야.

고맙다..

지금은 엄마가 네 눈 맞춰주고 너와 얘기나누는 시간이 제일 짧지만

네가 크고 형들도 자라고나면 

엄마 곁에 가장 오래 남아있을 아가는 너란다.

엄마가 오래오래 너와 함께 걷고 얘기하고 바라봐줄께..

사랑한다, 아가야.












Posted by 연신내새댁
umma! 자란다2013. 6. 19. 00:55





연제가 태어난지 어느새 백일하고도 8일이 되었다.

웃는 연제 사진 보고있으니 나도 웃음이 난다. ^^

연제는 늘 그렇다. 

연제를 쳐다보면 언제나 좋다. 연제도 엄마가 저를 바라보면 언제나 좋다. 

이 아이와 나에게 한번뿐인 지금 이 순간이 이렇게 다정하고 행복한 것이어서 좋고 

그저 바라보고만 있어도 좋은 이 시절이 그리 길지 않다는 것을 

이미 형들을 키워보아서 알고있는 엄마인지라 더 아쉽고 애틋하다. 









연제의 백일은 상주 시댁에 내려가서 했다.

혼자서 아이 셋데리고 막내 백일상까지 차리려면 내가 너무 고생할까봐

시어머니께서 시댁에서 백일을 지내자고 불러주셨다. 

어머님이 나물이며 떡이며 정성껏 다 준비해주시고 나는 아이들 데리고 그저 내려가서 차려주신 상을 받기만했다.

죄송하고 감사했다..


백일하는 날 아침, 어머니는 삼신상을 따로 차려 연제 앞에 놓아주시고 

'우리 연제 건강하게 잘 크게 보살펴주십시요..'하고 두 손을 모으셨다. 

연수 백일에 갈현동 신혼집 베란다에 삼신상 가져다놓고 어머니가 혼자 가서 빌고오라 하셔서 뭔지 모르지만 머리 깊이 숙여 빌었던 일,  

연호 백일에는 새벽 일찍 잠든 연호 머리맡에 삼신상을 차려놓고 혼자 오래 빌었던 생각이 났다.

그리 먼 일도 아닌 것 같은데 어느새 그때의 연수, 연호와 꼭 닮은 연제가 우리 곁에 와있다.

나도 마음속으로 삼신할머니와 조왕신과 우리를 지켜주는 많은 신들께 

부디 나의 막내아이가 건강하게 무탈하게 잘 크도록 보살펴보달라고 빌며 삼신상에 차렸던 미역국에 밥을 꾹꾹 말아 말끔하게 다 먹었다. 









할머니가 며칠전부터 고민하고 준비하셔서 여러가지 전에, 갈비찜에, 갖은 과일과 떡을 올려 차려주신 백일상.

연제야, 나중에 사진보면 할머니께 감사하다고 말씀드리렴. 할머니 꼭 안아드리면서~^^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가족사진을 찍었는데... 아고, 그만 우리 큰아들이 빠졌네~^^;;

동생들 데리고 슈퍼가셨던 할아버지를 찾으러 사촌형아와 밖에 나갔다가 그만 할아버지와 길이 엇갈렸다. 

아쉽지만 우선 한 장 찍고...









연수 들어온 뒤에 우리 식구끼리도 기념사진 찍었다. ^^

와... 우리 식구 많~~다. 다같이 사진 한번 찍기도 쉽지 않네~~ㅎㅎ









할아버지와 연제.

나는 연제가 할아버지를 많이 닮았다고 생각한다. 

음.. 아닌가? ^^; 

할아버지의 아기 시절이 연제와 비슷했을지도 모른다. 

우리 아버님도 돌아가신 할머니의 셋째 아들이시다. 셋째... 참 예쁘다.








진외가의 증조할머니와 연제.

아이들이 꼬꼬할머니라 부르는 청상의 시외할머니.

우리 아이들에겐 증조할머니가 세 분 계신데, 막둥이 연제는 지금까지 두 분의 증조할머니를 뵈었다.

대구에 계신 나의 외할머니도 뵈러가야할텐데.. 할머니, 건강하세요. 연제까지 데리고 얼른 찾아뵐께요. 


모두 팔순을 훌쩍 넘기신 증조할머니께 연제는 열번째, 열세번째, 그리고 열한번째 증손주..

손가락을 꼽아가며 세어보니 그렇다. 많구나..

평생 아이들과 그 아이들의 아이들과 이제 또 그 다음 세대 아이들까지 안고 얼러주시는 저 무릎이, 저 손길이 보통 손길이랴..

백일에 먼길을 내려가 어른들을 뵙고 오면서 아이에게 이 손길들을 느끼게 해줄 수 있다는 것이 더없이 고마웠다.

깊고 따뜻한 품.. 

이제는 많이 약해지신 그 어른들의 품에서 어린 생명에게 보내주시는 지극한 정을 받고

아가의 곱고 따뜻한 기운을 어른들께 전해드릴 수 있어 참 좋다. 









이모할머니 품에 안겨 연제도 아빠가 어릴때 뛰어놀던 청상 진외가의 시골길을 걸어보았다.

이만큼만해도 다 큰 것 같다. ^^

사실 연제는 그전부터 우리 가족들과 계속 같이 살아온 것처럼, 늘 있는듯 없는듯 우리들속에 가만히 들어와있는 아이다.

잘 자고, 잘 먹고, 잘 웃으면서 순하게 커주는 아이.. 

무슨 이런 신통방통한 아가가 다 있어요.. 하고 동네방네 자랑이라도 하고싶은 아이. 

'나도 이런 아가를 낳을 수 있다구~~~~! ^0^'하고 어디 좀 광고라도 크게 해야하는데 그만 엄마가 바빠서 

블로그에도 어쩌다 겨우 한번 등장하니 이것 참..^^;; 










고맙다, 연제야.

백일동안 건강하게 잘 자라주어서 정말 고마워..

지난 백일 지나오며 '연제가 엄마를 살려주는구나..' 생각한 적이 수도 없이 많았단다. 

네가 엄마에게 찾아온 날부터 지금까지 사실 매일이 그랬지... 

네가 있어 참 행복했고, 너와 함께 엄마가 하고싶은 일, 가고싶은 곳도 모두 참 씩씩하게 잘 다니고 해왔지.

네 이름에 '구할 제'자를 쓸 때, 

너를 건강하게 자연출산으로 낳고 네가 엄마를 구해주었고, 너 스스로도 구했다는 생각에 '제'자가 더욱 엄마 마음에 와닿았었다.

앞으로 살아가면서도 이름처럼 좋은 사람이 되기를 바랐고, 

무엇보다 너 자신을 구할 수 있기를, 그런 지혜롭고 굳건한 사람이 되기를 빌고 있단다.


연제야, 나의 사랑하는 아가야.

우리 앞으로도 지금까지처럼 행복하게 지내자.

고맙다.. 고맙다. 






Posted by 연신내새댁
umma! 자란다2013. 6. 6. 23:07






아이를 키우다보니 성격때문에 예쁜 아이가 있다는 것을 알겠다.

예전에 우리 엄마가 나를 보고 '욱이는 성격이 참 좋아, 잘 삐지지도 않고 이해심도 많고..'하고 얘기하면 쑥스러우면서도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그때는 그저 '내가 성격이 좀 좋긴하지...'(ㅎㅎ)하고 생각했을 뿐 그 말의 깊은 의미는 짐작하기 어려웠다.

이제 내가 아이들을 낳고 키우면서 보니 그게 어떤 것인지 조금씩 더 알 것 같다. 


내게도 그런 '성격좋은 아이'가 있다.

너무너무 예쁘고 고맙고 미안하고.. 그래서 짠한 우리 둘째, 연호 말이다.

 

연호는 아기때부터도 참 잘 웃었다. 아주 예쁘게, 빵긋! 웃는다. ^^

웃는 연호를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지고 고마워진다.

얼마전 외갓집에 갔을 때, 밭가의 흙길을 걸어오며 아이의 작은 손을 꼭 잡고 조심조심 걷는 일에만 신경을 쓰다가 문득 연호 얼굴을 쳐다보았는데 이 아이는 어찌나 즐겁게 방긋! 웃고 있던지.. 제 곁에서 제 손을 잡고 걷는 엄마를 바라보며, 이 순간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의 얼굴을 하고..

문득 근심많던 엄마의 마음에 따뜻한 햇살이 비춘듯 밝아지게 해주던 아이.





 

 


이제 곧 두 돌이 되는 연호.

우는 동생에게 '아가, 형아 찌찌! 형아 찌찌~!'(아가야, 형아가 찌찌 줄께!)하며 제 윗도리를 걷어올리기도 하는  어린 형아다.



 

 



 

연호는 아기때부터도 낯가림이 없는 아이였다.

어른들을 좋아하고 참 잘 따른다. 만나는 누구에게라도 반갑게 인사하는 것을 좋아하고 방긋 웃으며 다정하게 대한다.

자주 뵙지 못해 서먹할 수도 있는 할아버지할머니들께 아기때부터도 스스럼없이 먼저 다가가 안기고, 잘 따르고, 헤어지고나서도 잘 기억하고 그리워했다.

그래서 연호는 제가 있는 곳 어디서나 늘 따뜻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그런 연호가 내 곁에 있어서, 나의 아이로 태어나주어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무언가 제 눈에 곱고 좋은 것이 보이면 '우아!'(우와)하고 환호하는 아이.

다른 형제들과 집안일로 늘 바쁜 엄마가 잠깐 저와 놀아주려고 '연호야, 엄마랑 이거 하고 놀까?'하면 '아호!'(야호)하는 아이.

세살박이 연호가 아직도 너무나 귀엽고 여린 아가 목소리로 하는 '야호' 소리를 들을 때마다 나는 그 소리가 너무 고맙고 예뻐서 눈물겹다.

얼마나 좋으면, 엄마와 함께 노는 것이 얼마나 기쁘면.. 때로는 너무 졸리고 고단해서 기운이 하나도 없을 때 '엄마가 안아줄까?' 물으면 '아아호~' 하는 우리 둘째..

 

이번에 산후조리해주러 올라오셨던 시어머님은 한달을 우리와 함께 사시는 동안 연호와 제일 깊이 정이 드셔서 다시 상주로 내려가신뒤에 한동안 전화로 연호 목소리만 들으면 눈물이 왈칵 하셨다고 했다.

강릉 외가에서 2주를 지내는 동안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와도 정이 아주 듬뿍 들어서 집에 돌아와서도 '하삐, 어디? 함미, 어디?'하고 자주 찾았다. 자주 전화해 '하삐, 사탕! 할미! 사탕~!'하며 사탕달라고 조르는 연호 목소리를 들으며 외할아버지, 외할머니는 급기야 큰 아이스박스에 연호가 좋아하는 사탕과 과자를 잔뜩 넣어서(각종 밑반찬과 김치까지 한가득 넣어서ㅜ) 택배로 부쳐주셨다. 할아버지, 할머니 정을 그리워하며 찾는 어린 연호에게 그렇게라도 하삐, 할미의 따뜻한 마음을 전해주시고 싶어서...^^ 

연호는 그 상자를 받고 너무너무 기뻐했다. 

외갓집에서 외할아버지가 한두개씩 주시던 카라멜사탕을 먹으며 하삐, 할미 생각을 하고 좋아하는 아이. 연호는 그런 아이다.  

 



 

 

 



연수와 연호는 정말 다르다.

생김새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두 아이를 키우는 동안 나는 늘 연수가 더 마음에 걸렸다.

첫 아이인 연수 키우면서 부딪히는 일들은 엄마도 다 처음 겪어보는 일이고, 그래서 늘 어렵고 걱정이 많이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동생이 태어난 뒤 동생에게 엄마를 많이 내어주어야하는 큰 아이 마음이 허전하고 섭섭하고 어린 동생에게 질투도 나고 할 것 같아 큰아이를 더 보듬어줘야겠다 싶어서 그런 것도 있지만

연수가 워낙 예민하고 고집도 센 아이여서 연수를 둘러싼 이런저런 사건들이 많아 머리 속에 늘 연수 고민이 떠나지 않았다.


그에 반해 연호는 아기때도 연수에 비하면 정말 순하게 잘 자고, 잘 먹고 잘 자라주었고 자라는동안 늘 밝게 웃고 잘 놀아주어서 그저 잠깐씩 쳐다보고 '아 이 아이는 참 예쁘구나..'하고 생각하는 일말고는 크게 걱정할 일이 없었다.

그래도 어린아이 키우는 일이 쉬운 것은 아니니 연호 돌보다가 지치고 고단해지는 순간들도 많기는 했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이 '둘째가 첫째보다 훨씬 예쁘다면서요?'하고 물으면 내 대답은 '글쎄... 나는 첫째가 더 예쁘던데..'였다.


사실 그랬던 것이 연수를 키우는 동안 얼마나 행복하고 기쁜 순간이 많았던가, 힘들었던 순간들도 많지만 그것까지 다 포함해서 나와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 보냈고, 그만큼 깊은 정이 든 첫아이인만큼 내 마음에서 연수 자리는 정말로 컸다.

연수는 어릴 때부터도 참 민감한 아이였다. 잠을 잘 안자는 것도 그랬지만, 낯가림도 심했다. 조금 커서는 낯선 어른들이 자기에게 말을 걸거나 몸에 살짝만 손을 대도 소리를 지르며 싫어할 정도였다. 할아버지할머니께도 살갑게 대하는 일이 별로 없었다. 외갓집은 그래도 한번 가면 2주 정도씩 머물면서 할아버지할머니와 많이 놀고하니 잘 따르고 좋아했지만 명절에만 잠깐씩 뵙는 친가 어른들께는 아직까지 그리 다정하게 대하지 못한다. 연제낳고 산후조리해주러 오신 할머니와는 내내 부딪히며 화를 냈다. 속마음으로는 저도 할머니와 다정하게 지내고 싶었을텐데 겉으로는 할머니가 야단치고 잔소리한다며 할머니를 싫다고하면서 버릇없이 굴었다.

그런 연수를 보고 있으면 나도 속도 상하고, 걱정도 되고.. 저 아이가 잘 클 수 있을까, 내가 잘 키울 수 있을까.. 두렵고 불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렇게 연수 걱정을 하다가 연호를 보면 연호가 낯가림이 없을뿐만 아니라 오히려 제 다정함으로 어른들의 마음을 포근하게 해주기까지 하는 아이라는 것이 다행스러우면서도 자꾸 엇나가는 연수가 안쓰러워 마음이 무거웠다.


무튼 '첫째가 더 예쁘다'고 말하면서 연호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혹시 연호가 듣고 속상해하면 어쩌나.. 좀 더 조심해야겠다.. 싶기도 했지만 그게 솔직한 내 마음이었다. 

연수를 바라보고, 걱정하고, 또 큰 아이가 보여주는 빛나는 성장의 순간들을 쫓아가느라 어쩌면 둘째에게는 그만큼 마음을 내주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 어느 때부턴가 천천히, 연호가 엄마 마음속에 조금씩 제 자리를 키우며 들어오기 시작했다.

일찍 동생이 생겨서 '이 아이의 아기 시절은 너무 짧겠구나..'하고 안쓰러워하기 시작했을 때부터였을까.

부드럽고, 유연하고, 그러면서도 단단한 연호의 성격이 조금씩 드러나보이기 시작할 때부터였을까.

그런 연호의 성격에 내가 깊이 위로받고 위안을 얻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부터였을까.


아. 이 아이는 이런 아이구나... 하고 내가 깊이 느끼면서부터 그전보다 연호가 더 고맙고 예뻐졌다. 

둘째가 주는 깨달음이었다.

존재는 모두 다르다는 것. 제 고유의 빛나는 성격과 특징이 있다는 것.

그것이 충분히 사랑스럽고 너무나 빛나고 그래서 예쁘다는 것.

아이들은 모두 제 안에 깃든 고유한 아름다움들을 충분히 꽃피울 때 그 빛을 발견한 사람들로부터 사랑받게 되는 것이구나... 나는 연호를 보며 알게 되았다.  

 

 



 






이제 누가 나에게 같은 질문을 하면 나는 전과 비슷하지만 조금은 다르게 대답할 것 같다.

'아휴.. 그럼요, 우리 둘째가 얼마나 예쁘다고요.. 성격도 좋고, 잘 웃고.. 근데 첫째는 또 첫 정이 무섭다고 제일 미우면서도 제일 마음 많이 쓰이고.. 이뻐요. 지금은 못난 오리새끼같이 굴고 있지만 저 녀석도 얼마나 예쁜 녀석인지 나는 알지요. 겉으로 센 척해도 속은 제일 여려요, 첫째가.. 우리 둘째는 마음은 오히려 형보다 씩씩할껄요. 사람들한테 마음도 잘 열고 .. 따뜻하고 좀더 안정된 느낌이 들어서 둘째한테는 엄마가 많이 위로받아요...' 

  

 

이렇게 쓰고보니 이제 고작 두돌된 둘째를 두고 너무 훌쩍 큰 아이 얘기하듯 말한 것 같다. ㅎㅎ
그래. 아직은 어린 아가지. 우리 둘째도. ^^
엄마가 요즘 네게 얻는 위안이 크다보니 그랬구나...

두돌이 된 연호는 요즘 한창 말이 늘고있다.
제 나름대로, 저만의 말들로 문장을 만드는데 그게 꼭 우리가 영어 처음 배울 때 우선 아는 단어 쭉 붙여놓는 식이라 듣고 있으면 너무 재밌다. 

"아가 꾹 아니!"(아가는 꾹 누르면 안돼)
"엄마 아가 아장아장, 엉호 엉큼엉큼, 가치 바께!' (엄마는 아가 업고, 연호는 성큼성큼 걸어서 같이 밖에 나가자는 말..^^;)
"빠빠, 아~꼼, 사탕, 이아아~~안큼!" (밥은 조금만 먹고 사탕은 이만큼 많이 먹겠다는 말..^^;; 그래도 며칠전부터는 "빠빠, 다, 아자" 밥 다먹고 과자 먹는거라며 밥한그릇 먼저 다 먹는다. 기특기특!! )
"커~ 돌 줘, 치치 기인거" (큰 돌 주워줘, 기차가 길어.. 우리집 냇가에서 퐁당퐁당 돌 던지며 놀다보면 지하철이 지나간다.) 

토끼는 '타키', 사랑은 '상앙', 오리는 '깩깩'.. 엄마밖에 못 알아듣는 말도 아직 많지만
말하는 즐거움을 날로 알아가서 열심히 말하는 연호와 얘기 나누는 것이 요즘 나의 큰 즐거움이다.   








"엄마, 가치, 가자!" 
때로 어린 동생 젖물려 재우느라 엄마가 제 뜻대로 움직여주지 못할 때 
연호는 아주 서럽게 울면서도 저 말을 열심히 한다. 
엄마가 언젠가는 들어주리라고 믿고 꺼이꺼이 울음을 삼키면서도 거듭 거듭 한다.
"엄마, 가치, 가자! 엉호, 같이, 가자!" 
 
지금 아가를 재워놓지 않으면 아가도 힘들어 울고, 연호 하자는 것도 못 해주고 더 어려워진다는 생각에 엄마는 연호를 더 울리더라도 바로 일어서지 못한다.
연호는 엄마 손을 끌어당기며 오래오래 울고나서도 엄마가 겨우 아가재우고 드디어 일어서면 
금새 울음을 그치고 훌쩍거리면서도 마음을 푼다. 이제라도 엄마가 제게 와줘서 다행이라는 듯이, 이제는 다 괜찮다는 듯이 엄마 손을 잡고 제가 원하던 것을 하러 간다.
그 모습이 너무 대견해서, 미안하고 고마워서 꼭 안아보면 몸은 작지만 마음의 힘은 나보다도 큰 아이의 품안에서 엄마는 깊이 위로받는다. 


고맙다, 연호야. 

나의 소중한 둘째 아기.

엄마 아이로 태어나줘서 고맙고, 엄마 곁에 함께 있어줘서 고맙다.

예쁘게 자라주는 너와 함께 엄마도 새로운 힘으로 또 자란다.











Posted by 연신내새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