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mma! 자란다'에 해당되는 글 212건

  1. 2018.01.31 노력
  2. 2017.09.18 마지막 유치 3
  3. 2017.08.29 아이들 4
  4. 2015.07.09 세 아이 곁에서 12
  5. 2015.04.04 세살 연제 9
  6. 2015.03.09 병아리들 4
  7. 2015.01.15 연수야 미안해.. 그리고 사랑해! 6
  8. 2014.10.09 비밀 2
  9. 2014.04.04 병원다녀온 날 9
  10. 2014.02.28 연호 돌잔치하던 날 2
umma! 자란다2018. 1. 31. 19:41




아이들은 즐겁게 살기위해
순간순간 정말로 열심히 최선을 다해 노력한다.
날이 추워 밖에서 뛰어놀지 못하면
집안에서라도 어떻게든 움직여서 에너지를 발산하고
친구들을 못 만나 심심도 할텐데
셋이 종일 싸웠다 풀렸다하며
깔깔거리고 뒤엉켜논다.

난리부르스가 된 집과 아이들을 쳐다보다가
문득 아이들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든 즐거움을 만들어내려고, 답답한 상황에서도 즐겁게 살려고 작은 몸으로 충실히도 애쓰는 그 노력이
자주 지치고 화내고 가라앉아 있는 나에게
오늘은 작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아이들을 키우고 나이를 먹어가면서
하루하루 감당해야할 어려움, 헤쳐나가야할 삶의 과제들을
걱정하고 짐지고 사느라
마음이 무거워지고 얼굴은 굳어질 때가 많았다.
그 사이 즐거움은 자주 만나기 힘든 친구처럼
잊어버리고 살다가 아주 가끔만 아쉽게 떠올리는 무엇이 되고만 것 같다.

나도 아이들처럼 노력해야겠다.
즐거움을 찾기 위해.. 즐겁게 살기 위해.

어제 아침 집을 치우다가
‘삶이 나를 가두는 감옥같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는데
바로 뒤이어
‘나를 가둘 수 있는건 아무 것도 없지. 나 자신말고는’ 하는 생각이 들어 스스로 조금 후련한 느낌을 받았다.

이것은 틀린 생각일 수도 있다.
인간이 짊어지게되는 삶의 무게는 결코 녹록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나이들수록 조금씩 배우게 된다.
그래서 더 소중한 것인지도 모른다.
자유로운 마음, 즐거움을 찾으려는 노력..이.

새해 첫달을 마감하며 가만히 짚어본다.

Posted by 연신내새댁
umma! 자란다2017. 9. 18. 22:24




연수의 마지막 유치가 빠졌다. 

제 몸에 관심이 많은 연수는 윗쪽 어금니가 살짝 흔들릴 때부터 "엄마, 나 이 이빨까지 빠지면 이제 유치 다 빠지는거다~"하고 알려주었다. 

얼마후 갔던 치과 정기검진에서도 선생님께 "인제 연수 유치가 다 빠지는구나. 어른이는 충치 안생기게 양치 정말 잘 해야한다~"고 당부를 듣고 양치질 방법까지 꼼꼼히 교육받고 왔다. 

사진은 이가 빠지기 전날밤, 연수가 "엄마, 인제 진짜 많이 흔들려, 봐봐~~!" 하더니 "엄마, 나 이 이빨 사진으로 찍어줘. 내 마지막 유치잖아" 하고 부탁해서 찍은 것이다. --;;


그 날 밤에 애들 재워주려고 불을 끄고 옆에 앉아있는데 연수가 훌쩍훌쩍 울면서 나를 찾아서 깜짝 놀랐다. 

"엄마, 나 유치 빠지는거 싫어... 어른이 되는거 싫어.. 난 계속 아이로 살고 싶어. 나이 먹어서 어른이 되는 것도 싫고, 죽는 것도 싫어.. 난 계속 아이로 살꺼야.. 엉엉엉..."

갑작스러운 대성통곡에 나도 놀라고, 연호도 놀랐다. 일찍 곯아떨어진 연제만 세상 모르고 자고 있고.  


연수는 한참 울었다. 

이럴땐 뭐라고 말해줘야 좋을지 잘 모르겠다.

우선 나온 말은 "엄마는 어른이 돼서 좋은데..." 였다. 

"왜~?" 훌쩍거리면서 연수가 물었다. 

"응.. 어른이 됐으니까 너희들도 낳았잖아. 연수, 연호, 연제.. 엄마는 너희들 낳고 이렇게 같이 있어서 참 좋은걸.." 

"흑흑.. 그래도 난 어른이 되기 싫어.. 난 아이로 살꺼야.. 아이가 좋아"


'나도 그래' 라는 말이 마음 속을 맴돌았는데 미처 못했다. 

엄마도 아이일 때 참 좋았어.. 어른인 지금도 좋지만.. 가끔 다시 아이가 되고 싶기도 해.. 하고 말해줬으면 연수에게 더 위로가 되었으려나.


우는 형아 옆에서 뒹굴뒹굴 거리던 연호는

"그럼 나중에 어른 돼서 죽지않고 계속 살 수 있는 약이 개발되면 그걸 먹으면 되잖아.. 아님 냉동인간이 되었다가 나중에 그런 약 만들어지면 다시 깨워달라고 해서 그 때 먹으면 어때.." 하고 위로(?) 아닌 위로의 말을 진지하게 건넸다. 


냉동인간 이야기는 연수가 매달 받아보는 어린이 과학잡지에 실려서 며칠전 우리집 식탁 위에서 한참 흥미롭게 나눠진 화제였다. 

연호가 그걸 기억했다가 어른이 되면 죽게 되니까 자기는 어른이 되기 싫다고 우는 형아에게 뭔가 과학적 해법(?)을 알려주고 싶어서 말을 꺼낸 것이다. 

평소같으면 뭔가 연호 말에 토를 달거나 그런게 아니라고 응수했을 연수인데

밤이고, 고단하고, 슬프고, 이는 흔들리고, 눈물은 자꾸 나서인지 연수는 아무 대꾸도 않고 

나를 붙잡고 한참 울다가 스르륵 잠들었다. 


잠든 아이들을 보며 마음속으로 여러 가지 생각이 오고갔다.

어른이 되지 않는 아이들이 사는 나라- 네버랜드에 있는 있는 피터팬을 생각했다. 

아이들에게는 다들 그런 마음이 조금씩 있나보다.. 어른이 되고싶지 않은 마음. 나도 그랬었나..? 

어른은 멋있고 힘있는 존재이기도 하지만, 고달프고 서러운 존재이기도 하다는걸 아이들은 다 간파하고 있는걸까?

   

죽음에 대한 공포, 두려움 같은 것은 인간에게 보편적인 감정인가보다.. 아이들이든, 어른들이든.

언젠가는 이 모든 것과 헤어져야 할 거라는 사실. 

인간의 피해갈 수 없는 운명 앞에서 어떻게든 피하고 싶은 마음.  


연수에게 이 얘기도 해주었다. 

"연수야,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신들은 죽음 때문에 인간을 부러워했데.." 

"왜?ㅠㅠ"

"인간은 끝이 있다는걸 알기 때문에 삶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면서 산다고.. 신은 죽지 않는 존재니까 그러지 못하는데. 그래서 인간들을 부러워하기도 했데.."

연수는 별로 납득하지 않는 눈치였다. 그리스로마 신화 만화책을 좋아하긴 하지만, 신이 더 좋지, 결국은 죽게되는 인간이 뭐가 부러워...ㅠㅠ 열살 아들의 머리속은 이랬을까. 


역시 '엄마도 그래.. 엄마도 죽기 싫어..'하고 솔직하게 말해주느니만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울고 잠들었는데 

다음날 학교 다녀와서 오후 간식으로 아껴놓은 치즈케잌을 먹다가 그 유치가 그만 덜컥 빠져버리고 말았다. 


"엄마, 이 빠졌어~!!! 헤헤~ 치즈케익을 먹다가 빠졌네~" 

연수는 웃었다. ^^

나도 웃음이 나왔다. 


자전거 타러 나가서는 신나게 씽씽 가면서 

"아~ 앓던 이가 빠졌다는게 바로 이거네~ 엄청 시원해, 엄마!" 했다. 


"아니, 밤에는 유치 빠지는거 싫다고 그렇게 울더니.." 했더니 

저도 민망한지 헤헤 웃으며 "그땐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지~!" 한다. 

^^ 


그래.. 우는 순간도 있고 웃는 순간도 있는 것이지. 

그게 삶이지. 





가을 들어서며 서늘해지는 날씨에 콧물재채기를 하던 연수는 며칠 배앓이도 했다. 

학교에서 양호실에 한시간 누워있다 괜찮아졌다는 날도 있었고, 병원약을 먹고 그럭저럭 나아진 뒤에도 한동안은 배속이 불편해 힘들어했다. 심하게 아픈건 아닌데 자꾸 아팠다 말았다 하니까 학교에 가기 싫다고, 하루만 쉬면 안되냐고 며칠을 졸랐다. 

그래서 또 아침에 학교가기전에 배가 아프다는 날, 하루를 쉬게 해주었다. 


학교를 쉬기로 하자마자 싹~ 낫는 꾀병성(?)이 짙은 배탈이었지만 엄마랑 둘이, 동생들 없이 오전을 보내게되었다고 좋아하는 연수를 보니 '이런 날도 있어야지..'싶어 웃음이 났다. 

그래서 처음으로 연수와 둘이 나들이를 갔다. 

잠깐 병원이나 다른 볼일보러 연수만 데리고 외출한 적이 한두번 있긴 했지만 

둘이서만 놀러를 간 적은 처음이었다. 


동생들 유치원끝나기 전까지 한나절, 짧은 외출이라 가까운 '강풀만화거리'에 갔다. 

우리집에서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30분 정도면 갈 수있는 강동구 성내동, 전철역 '강동역'(4번 출구) 근처에 있다.  

쓸 일이 거의 없는 초등학생용 버스카드를 제 카드지갑에 잘 챙겨넣고, 엄마와 손을 잡고 가는 나들이. 

연수가 즐거워하고 나도 모처럼 큰아들과 오붓이, 내가 좋아하는 만화거리에 다시 가니 즐거웠다. 

강풀 만화의 여러 등장인물들이 그려진 벽화들과 예쁜 조형 작품들이 설치되어 있는 만화거리는 

작은 골목길들을 굽이굽이 돌아다니며 숨겨진 벽화 찾는 재미가 쏠쏠하다.   






강풀 만화 <바보>의 주인공인 '승룡이'의 이름을 딴 만화카페 '승룡이네 집'에 들러 뒹굴뒹굴 만화책을 봤다. 

연수는 주호민의 '신과 함께(이승편)'을, 나는 마쓰다 미리의 '치에코씨의 소소한 행복'을 재미있게 보았다. 

차도 마시고, 승룡이네 집에 비치된 '강풀만화거리 벽화 지도' 팜플렛을 들고 본격 벽화 탐방에 나섰는데 

골목골목 찾아다니며 번호가 붙은 벽화들을 찾는 재미가 쏠쏠했다. 


아파트에서 나고 자란 연수에게는 이런 오래된 주택가의 골목길이 낯설 것이다. 

숨어있는 벽화들처럼 숨어있는 예쁜 마음들, 아픈 사연들, 빛나고 어두운, 그러나 모두 소중한 삶의 순간들이 골목을 수놓는다. 

우리의 한 시절도 여기 잠시 깃들다 간다.  





연수는 이제 어린이와 청소년의 딱 중간 즈음에 서 있는 것 같다. 

어느 날은 아직도 다섯살 막내동생 만큼이나 어리광을 부리고 딱 그 수준에서 같이 싸우고 삐진다. 

또 어느 날은 제가 알게된 크고 작은 과학 상식들과 컴퓨터 게임과 세상의 일들에 대해 엄마에게 열심히 설명해주고, 물어보며 애써 이해해가기도 한다. 

언제 좀 의젓해지나... 한숨나오기도 하다가, 지금 이대로 딱 이 시절이 좋다.. 싶기도 하다.

유치하고 귀여운 열살.

마지막 유치가 빠졌다. 얼마 후엔 어른이가 모두 나겠지. 

자란다는 것, 어른이 된다는 것, 나이들어 간다는 것.. 모두에게 쉽지않은 이 길들을 잘 걸어나가길. 

그 길에 내가 한동안 계속 너의 친구로 남을 수 있었으면 좋겠구나, 얘야.    


Posted by 연신내새댁
umma! 자란다2017. 8. 29. 14:57



인형들은 이부자리 곱게 펴서 가지런히 재워주고
저희들은 뒹굴뒹굴 엉켜서 잔다.
인형들아.. 오늘도 고생 많았다. ^^





비염 때문에 콧물이 심해진 연호가 유치원에 가기 싫다고 졸라서 오늘은 연제랑 둘 다 집에서 쉬었다.

인젠 제법 커서 집에서 놀아도 엄마를 쫓아다니거나 귀찮게 하지않고
저희들끼리 꿍짝꿍짝 온갖 놀이를 하면서 잘 논다.

엄마 몰래 안방 문을 꼭 닫고 뭔가 재미나게 낄낄거리길래 뭘 하나 했더니
장롱 문을 다 열어놓고 이불들을 끄집어내서
구름같이 펼쳐놓고
장난감들의 놀이동산을 만들었단다.

이만하면 정리하기 아주 힘든 일거리(?)는 아니고
어린시절에 형제가 재미나게 잘 노는 추억이 얼마나 소중하냐.. 생각하며 암말 안하고 있다가
그래도 엄마가 뭐라고 좀 해야 더 재미있을 것 같아서
일부러 목소리 톤을 조금 높여
"이 녀석들~~ 이불을 이렇게 끄집어내면 어떡해!" 해줬다.

아.. 역시 난 좋은 엄마야!
너희들 이렇게 맘넓은 엄마한테서 자란걸 고마워해야해~~
혼자 자아도취에 빠져서
인제 이 풍경을 좀 그려볼까 하고 연습장을 들고와 앉으니
아이들이 보드마카를 들고와서 저희들도 내 옆에서 그림을 그려보겠다고 하다가
결국 저희들 팔다리를 시커멓게 칠하고
이불에 까지 점을 찍으려고 하기에
"안 돼! 안돼에~~!!!"
소리를 마구 질러 혼을 내고 화장실에 가서 팔다리를 씻게 했다. 휴....
역시 끝까지 우아하기는 어려운 육아의 길. ㅡㅡ;

언제 크냐, 꼬마들아.
^^

Posted by 연신내새댁
umma! 자란다2015. 7. 9. 21:57



5월에 어린이집을 그만둔 연호가 발레를 하고 싶다고 해서 이번 달부터 발레를 다니고 있다. 

엄마가 권하기도 했고, 이웃누나가 하는걸보고 자기도 해보고싶다고 신청했던 것인데 막상 가서는 낯설고, 남자아이도 없고하니 안하겠다고 해서 첫시간은 뒤에서 나랑 연제랑 연호랑 셋이 앉아 구경만 하고 왔다. 

연제가 오히려 잘 따라하고, 연호는 남자아이용 발레복을 입은 제 모습이 쑥스러워서 장난만 자꾸 치려고 했다. 


발레하고싶다고 조르더니 왜 안하고 싶어졌냐는 내 물음에 연호는 "이건 좀 망신이잖아~~" 했다. 

내 얘기를 전해들은 아빠가 '망신'이라는 어른스러운 단어때문에 재밌어서 한참 웃고는, 다음날 아침 회사출근하기 전에 남자도 발레를 하고, 남자 발레리노가 춤추는 멋있는 발레공연도 많다, 좋은 운동이 될거다, 기왕 하기로 했으니 이번달은 열심히 해보자.. 잘 설득해줘서 그 다음 시간이었던 오늘은 열심히 잘 했다. 선생님이 유연하고, 진지하고 잘 한다고, 멋진 왕자가 되겠다고 칭찬을 듬뿍 해주셔서 그런지 돌아오는 길에 연호는 아주 신나했고, 씩씩한 자신감과 뿌듯함이 느껴졌다.  


나는 발레수업에 유일한, 그리고 이 반에서 가장 어린 나이대의 왕자(?)님을 보낸 엄마의 특권으로(^^;) 첫시간에 이어, 오늘도 선생님의 양해를 얻어 맨 뒤에 앉아 아이들 수업을 지켜보았다. 세살 연제도 내 옆에서 나름 열심히 형아누나들을 따라하는 동안, 아름다운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시원한 소강당에 편안히 등을 기대고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너무 달콤한 휴식을 누렸다.  


뒤에 앉아서 보니, 연호가 용기를 내고 마음을 먹은 것도 있지만, 연호 바로 옆자리에 앉아서 연호를 잘 가르쳐주고 진지하게 발레수업에 임하는 소원이 누나의 존재가 참 컸다. 

소원이는 연수와 아주 친한 같은 반 친구이기도하고, 우리집과 자연놀이 텃밭농사도 함께 짓고있는데 

어린 남동생이 둘이나 있는 큰누나라 연호를 잘 봐주기도하고, 또 발레를 좋아해서 열심히 하는데 연호가 누나에게 좋은 영향을 받고 있는게 보여서 참 고마웠다.







어제 우리 동네 이웃 엄마로부터 참 귀중한, 나에게 아주 절실했던 배움을 얻었다. 

연제가 두돌이 된 지난 봄 즈음부터 나는 세 녀석 사이에서 '재판관' 노릇을 자청해서 하느라고 무척 힘들었다. 

형들이 어린 연제를 너무 배려해주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아직 말이나 모든 면에서 형들보다 한참 어린 연제를 내가 대변(?)해줘야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막내로 자라 본래 어린 동생들의 권리에 민감한 나이기도 하고, 약자에 대한 이해와 배려라는 중요한 가치를 아이들에게 꼭 가르쳐야한다는 생각도 강했다. 

권리의식, 평등, 정의.. 이런 가치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엄마인지라, 아이들의 갈등 상황에서 내가 이런 가치들로 상황을 공정하게 잘 정리해주고 가르치면 아이들도 잘 배울 수 있을거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그 역할을 언제, 어느만큼, 어떻게 해야하는지는 잘 모르고 있었던 것 같다. 


세 녀석은 집에서 징글징글하게 싸운다. 

형 둘이 잘 놀고 있으면 연제가 가서 저도 끼워달라고 하는 것이 형들이에게는 훼방이고, 방해가 되어서 밀쳐내거나 따돌릴 때가 많았다.

셋이 한데 엉켜 잘 논다 싶다가도 어느 하나가 엥 우는데 가보면 큰 형이 놀다가 세게 발로 차거나 아무튼 아프게 해서 동생 중 하나가 울음이 터진 경우가 많았다. 


그 모든 사건에 일일이 개입해서 중재하고, 판가름하고, 잘못한 녀석 혼내려니 재판관이 얼마나 바빴겠는가.ㅠㅠㅠㅠ

잘 노는 평화로운 순간도 없진 않지만, 정말 잠깐이고, 나도 아이들 혼내다가 날이 있는데로 서거나 마음이 상해서 아이들에게 심하게 화를 내서 그전에 내가 아이들에게 요구했던 '사이좋게, 평화롭게 잘 지내기'라는 가치를 내가 오히려 마구 짓밟아버린 때도 많았다.





그런데 어제 마당 벤치에 함께 앉아 우리 아이들 노는 모습을 지켜보며 얘기나누던 나이많은 언니가 내 모습을 보곤 말씀하셨다.


"아이들끼리 다툴 때는 절대 끼면 안돼요. 자기들끼리 다 해결할 수 있어요. 그래도 큰일 안나요. 나중에 엄마한테 와서 '엄마, 이렇게 됐어'하고 얘기할 때나 '응, 그랬어?'하고 대답해주지 먼저 나서서 정리해주려고하면 안 되요." 

내가 "그래도 어린 동생을 너무 심하게 대할 때가 있는걸요, 때리기도 하고." 했더니 "울면서 엄마한테 오면 잘 다독여주고, 한번씩 타일러줘요. 그럼 금방 저희들끼리 안 그러게 돼요. 큰 형아 기를 살려줘야해요. 큰 애 기를 살려줄 수 있는 때가 어릴 때말고는 별로 없어요. 방금 보니 막내 편을 자꾸 들어주니까 막내만 기가 너무 살아요." 하셨다.


"엄마는 말을 아껴야해요. 자꾸, 길게 얘기하면 점점 안듣게 돼요. 자꾸 그러면 초등3학년만 돼도 엄마 말에 딱 귀 닫아요. 정말 안들린다고 해요. 듣기 싫어지면 그렇게 되지요. 처음에 '이렇게 하자' 하고 딱 한번 얘기하고 말아야돼요. 그리고 상황을 정리해야될 때 또 딱 한번 다시 말해주고. 그러면 아이들이 자연히 엄마 말에 주의를 기울이게 돼고, 유념하고 있어요."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가르침이었다. 

그 얘기를 듣고보니 내가 요즘 고민하던 여러 가지 문제들이 천천히 교통정리가 되기 시작했다. 

너무 지나치게 중재를 하고 있었다. 사사건건 중재하고, 처벌(?)하려니 나는 나대로 힘들고, 아이들은 늘 판단은 엄마의 몫이니까 스스로 판단하거나, 스스로의 행동을 조절하지 못하고 있었다. 

연제는 지나치게 엄마의 힘을 빌려 제 욕구를 관철시키려고 하고 있었고, 제 뜻대로 안된다고 먼저 형들을 때리기도 했다. 연수와 연호는 엄마가 지켜주지(대변해주지) 않는 자신들의 정당한 권리(?)를 제 힘으로 지키기위해 과하다싶은 폭력이나 거친 언행도 자꾸 나오고 있었다. 

당연히, 사이좋게 놀 수가 없었다.ㅠㅠ 






큰 아이 기를 살려줘야 큰 아이가 큰 아이답게, 큰 형 노릇을 할 수 있겠다 싶었다. 

나는 연수가 너무 성격이 강하다고만 생각했다. 

연호가 부드럽고 여린 성격인데 반해, 형은 너무 거칠고 제 뜻대로만 하려한다고 생각했다. 연수 행동에 그런 면이 있는건 사실이다. 

왜 그렇게 됐을까. 본래 성격이라고만 하기엔, 엄마가 늘 동생들 편에 서서 연수에게 제 욕구를 좀 희생해줄 것을 요구해왔던 것도 연수를 더 예민하고, 거칠게 제 욕구를 내세우게 만든 원인일 수 있겠다 싶었다. 

그리고 연수가 스스로 자기 행동을 돌아보고, 생각해볼 시간을 너무 주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수가 맺고 있는 중요한 관계들 안에서 연수도 자기 힘으로 생각해보고, 충분히 스스로를 변화시킬 수 있을 터였다. 

기다려주는 것. 언니는 "엄마는 많이 인내해야해요. 아이들은 아주 많이 기다려줘야해요."란 얘기도 하셨다. 

 

나도 분명히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인데, 요즘 정말 많이 잊고 있었다. 

연제가 요즘 화를 자주, 심하게 낼 때가 있다. 자기가 하고싶은 일들을 엄마가 기다려주지 않고 엄마 맘대로 했을 때, 그 때 아주 격렬하게 분노를 표출한다. 누가 봤다면 '아이가 경기를 한다'고 생각할 정도로 부들부들 떨 때도 있다.

"엄마가 미안해. 연제는 어떻게 하고 싶었어?" 하고 물어보면 금방 진정이 돼서 이렇게, 저렇게 저 나름대로 할 수 있는 말들과 행동을 섞어 '이렇게 할 거야'하고 의사를 표현한다. 

그런데도 나는 연제가 성격이 참 쎄다, 꼬맹이가 어째 이렇게 불같이 성질을 낼까, 걱정이다.. 이런 생각을 주로 했지 

내가 더 기다려야한다는 생각은 못 하고 있었다. 셋째가 유별나다고 생각했지, 엄마가 셋째 육아에 있어서는 너무 기다리지 않고 있다는 판단을 못 하고 있었다. 

근데 언니는 연제를 대하는 내 태도를 보며 금방 짚어냈다. "아이가 아직 대답을 안 했잖아요. 그런데 엄마 맘대로 하면 안되죠."

ㅠㅠ







나는 즉각 재판관의 자리에서 물러났다. 

엄마의 자리로 돌아왔다. 

아이들은 잘 놀았다. 싸우기도 했지만, 내 개입이 사라진대신, 각자가 역할을 나눠맡았다. 

연호는 연제가 잘못하면 형 편을 들며 연제에게 '한번만 더 우리 형아 때리면 나한테 혼날 줄 알아'라며 무섭지않지만 단호하게 연제를 가르쳤고, 연수도 적절한 선에서 참았다.  

대신 연호는 어느 때보다 연제를 잘 데리고 놀았다. 형이 있으면 늘 형이랑만 놀던 연호였는데, 엄마가 연제를 감싸고 두둔하지 않으니 연호가 연제를 챙겨주었다. 

연제도 엄마에게 매달리는 것이 훨씬 줄었다. 어디가 아프다고 울면서 찾아올 때 위로해주고 다독여주면 잠시 후엔 다시 형들에게로 돌아가 잘 놀았다. 엄마가 빠진 자리에서 셋은 스스로 어떻게 해야하는지 생각하고, 셋의 조화와 평화를 어떻게든 만들어갔다. 







한참을 셋이 잘 놀더니 연호가 설겆이를 하고 있는 내게 와서 말했다. 


"엄마, 난 엄마가 나한테 화내지 않으면 나도 연제한테 화내지 않고 잘 데리고 논다~~^^"


이렇게 부끄럽게도 콕 집어주시는 꼬마 선생님이라니...ㅠㅠ


연호는 전에 이렇게 말한 적도 있었다. 


"엄마, 우리가 전에 엄마 잔소리를 다 잡아먹었는데도 엄마는 또 잔소리를 할 수 있어?"


아이들하고 무슨 이런저런 소리를 잡아먹는 놀이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연호가 '우리가 엄마 잔소리 다 잡아먹었으니 이제 엄마는 잔소리 못하겠다~~' 한 적이 있었다. 






한번은 안방 화장실 문을 열었는데 시멘트냄새와 약품냄새같은 안좋은 냄새가 확~ 맡아진 적이 있었다. 

그런데 연수가 "아~ 냄새 좋다!"해서 내가 "이 냄새가 좋아?"하고 물었더니 연수가 대답하길

"응. 난 우리집 냄새는 다 좋아~!" 했다. 


아. 그렇구나. 싶었다. 

우리집 냄새라면 다 좋아하는 아이들. 

집이라면 무엇이든, 언제든 포근하고, 익숙하고, 좋아하고 반기는 아이들에게 나는 왜이리 화내며 살지.. 순간 미안해졌었다.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치지 말아야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좋은 가치들, 엄마가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들, 아이들이 꼭 마음안에, 삶의 자세로 가져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것이 있다면 어떻게 전달할까.. 를 고민하게 된다. 


이따금, 한번씩만, 아주 분위기가 좋을 때, 나직히, 넌지시, 조근조근.. 얘기해주는게 좋지 않을까.

즐겁게, 유쾌하게 전해줘도 좋겠고, 따뜻하고 진지하게 얘기할 수 있을 때. 


화내고, 소리소리지르며, 다다다다 주절주절 잔소리처럼 쏟아내서는 아이도 못 배우고, 나도 내면화하지 못하고 서글퍼지는 방식말고. 






오늘 연수는 내게 "엄마, 우주는 언제 만들어졌어? 정말 궁금해..."하고 진지하게 말했다. 

차려놓은 저녁밥은 안 먹고, 입으라는 팬티도 안 입고, 로봇 조립 조각들을 잔뜩 펼쳐놓고 앉아 손으로 맞추면서 뜬금없이 묻는게 그랬다. 


"그러게.. 엄마도 정말 궁금하다.. 우주의 나이는 몇 살일까.." 

도닦는 기분으로, 나도 진심으로 궁금했다. 과학자들은 우주의 나이를 계산하기 위해 소리가 퍼져가는 속도를 가지고 연구한다고 어느 책에서 본 것 같은데... 생각하면서. 


역시 밥은 안먹지만 그래도 팬티는 입은 연호가 옆에서 물었다. "엄마, 지금이 공룡이 사는 시대야?" 

한참 설왕설래끝에 연호가 궁금했던 것은 지금 우리집이 있는 이 곳이 공룡이 살았던 곳이냐는 것으로 밝혀졌다.


연제는 뜬금없이 '하늘 참 예쁘다, 구름 멋있다. 햇빛 좋다~' 이런 말 하기를 좋아한다.

엄마가 창문을 내다보며, 1층 현관문을 나서며 자주 하는 말이라 저도 재밌어서 따라하는 것이다.

내가 전해주고 싶은 것들은 그렇게 문득문득, 바람을 타고, 함께 손을 잡고 걸어가는 어떤 좋은 순간에 살짝살짝 전해지리라고.. 그렇게 생각한다.

꾸준히, 평화롭게 반복되는 소중한 일상의 삶과 함께.

 






어느 저녁, 늦게 퇴근하는 아빠가 보고싶다고 삼형제가 모두 아빠 옷을 찾아입고 놀기도 했다. 

연호는 "내가 아빠야" 하더니 연제를 보고 "야! 준화~!"하고 불러 한바탕 웃었다. 

멀리 살고 자주 못봐도 아빠의 동생은 준화 삼촌인 것이다. 아이들은 소중한 것을 잘 안다. 

연호는 이렇게 입고는 또 제사를 지낸다고 절도 했다. ^^


어제 내게 고마운 가르침을 준 언니는 우리 같은동 옆 라인에 사는 '토끼 이모'다. 

처음 이사왔던 4년전부터 토끼를 안고다니는 앳된 누나와 연수가 친해졌었다. '토끼 누나'라고 불렀는데 몇번 마당에서 토끼 데리고나와 밥 줄때마다 같이 들여다보고 놀다보니 '토끼 누나'가 세 명이라는 것을 알게됐다. 

그 엄마인 언니와 나도 친해져서 반갑게 인사하고 지내며 이야기 나누다보니 글쎄, 군대간 아드님과 고등학생 아드님까지 해서 다섯 아이를 키워낸 베테랑 엄마셨다. 

4년이 흐르는 동안 우리집에도 아기 둘이 더 태어나 삼형제가 아웅다웅 자라고, 토끼는 엄마토끼가 되었다가 아기들은 모두 다른집에 보내고 이제 할머니 토끼가 되었다.   

언니는 초등학교 장애학급 보조교사다. 

다섯 아이를 키우며 본인도 공부해서 몸이 불편한 아이들을 돌보고 가르치는 선생님이 된 언니는

퇴근길에 마당에서 수호제를 만나면 반갑게 안아주고, 걸음을 멈춰 나와 이야기를 나누다 들어가신다.


<천사들은 우리 옆집에 산다>는 책을 통해 알게된 구절.


"지상에서 천국을 찾지 못한 사람은

하늘에서도 천국을 찾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어디로 이사 가든

천사들이 우리 옆집을 빌릴 테니까.


-에밀리 디킨슨"


처럼 우리 옆집에 살고있는 천사들께 깊이 감사드리는 밤이다.







Posted by 연신내새댁
umma! 자란다2015. 4. 4. 23:35




연제가 25개월을 꼭 채웠다.

형님들이 초등학생이 되고,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하는 큰 변화에 가족 전체가 적응하느라 분주한 이 봄.
세 녀석 모두 참 빛나는 성장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중에서도 어린 연제는 하루가 다르게 피는 봄꽃들처럼
매일매일이 다른 것 같다.

어린 아기 시절의 고운 입말들을 미처 기록해 놓기도 전에 어느새 연제는 떠듬떠듬 문장을 말한다.
연수연호가 많이 컸을때 '네가 제일 먼저 말한 단어는 이거였어, 아기때 넌 이렇게 말했어'하고 말해주는걸 참 좋아하고 재밌어했었다.
연제가 한 말들도 기록해놓았다가 자란뒤에 말해줘야할텐데.. 바쁘고 고단한 엄마가 기록을 못하고 아기 시절이 다 지나갈 참이다ㅠㅠ

연제는 요즘 이렇게 말한다.

"안자 찌찌 머긍까~ 누어 찌찌 머긍까~~ 안자 찌찌! 끄읏~!!"

엄마젖을 앉아서 먹을까.. 누워서 먹을까 혼자 즐거워하며 고민해보다가 앉아서 먹기로 결정했다는 말이다. '끝~~!'을 외칠때의 시원함이란!ㅎㅎ

"바다가 아야아야 했어요, 요쪼게, 쿵 했어요. 바다가~~ㅠㅠ"

냇물옆에서 놀다가 쿵 넘어져서 손을 좀 다쳤던 때의 얘기를 생각날때마다 다시 해주는 것이다. 물이 좀 많으면 연제에게는 다 '바다'다. ^^

"아빠 해사 갓꼬요~ 아야 어지비 갓써요. 언제 먼머 앙 해떠요."

아빠는 회사에 가셨고, 작은 형아는 어린이집에 갔다는 말이다. 연제는 엄마랑 산책하다 강아지를 만났는데 앙 하고 덤벼서 무서웠다는 얘기. ^^
주로 할머니들이랑 전화통화할때 하는 근황보고 용 멘트.


토끼는 '떼또', 고양이는 '네오'. 아주 엉뚱하게는 물고기를 '아요'라고 부르고, 사슴벌레는 '아미미'라고 한다. 일찍부터 불러온 동물들은 모두 제 나름대로 듣고 말해서 좀 신기하고(ㅎㅎ), 요즘 말하기 시작한 것들은 거의 정확하다. 두 동물을 제일 좋아한다. 근데 작은 생쥐, 햄스터도 모두 '떼또'라고 부름. ㅎㅎ

저만한 아기들을 보면 '칭구, 언제 칭구~'하면서 좋아하고 한참 보고, 곁에 있다가 온다.
이웃의 친한 엄마들은 '이모~'라고 부르며 무척 좋아한다. 할머니할아버지들도 참 좋아해서 처음보는 분들께도 열심히 인사했었는데 요즘은 좀 달라졌다. 낯선 어른들이 자기를 보고 웃으며 말을 걸면 무서워서 '안아줘, 안아줘~!' 하며 얼른 매달린다.

3월들어 기저귀를 안하려고 열심히 도망다니더니 그 길로 쉬를 가리게 되었다.
이제는 낮잠, 밤잠 잘때도 거의 실수를 안한다.
형아 학교마중갈 때도, 버스타고 텃밭갈 때도 기저귀 안하고 간다. 야~~! 연제도, 엄마도 시원하다. ^^

형아들 노는데 참 열심히 낀다.
상대를 안해줘도, 저를 피해 도망다녀도, 방해한다고 구박받고 설움당해도
재밌는 판 벌어지면 어떻게든 엉덩이들이밀고 끼고 본다. ㅎㅎ

연제를 보면서 막내, 셋째, 어린 동생.. 이었던 나를 생각해보곤 한다.

그래, 참 저렇게 끼고, 어울리고 싶었겠지.
말도 안되게 떼도 쓰고, 억지도 부리고, 제가 잘못해놓고도 되려 제가 구박받은듯 억울해했겠구나..
그나저나 저 마음에 새겨지는 '나도 형들만큼 잘하고싶다!!'는 욕구는 엄청난 것이겠구나...

까맣고 작고 악바리였던,
손위형제들과는 많이 다르게 성장했던,
눈치빠르고 생각많고 공상도 많고 실수도 많았던
나를 거듭 돌아보게된다.
우리 막내 연제를 보면서.

연제야, 잘 커라.
네 그늘, 네 빛나는 양지.. 엄마가 모두 다 이해할수도, 없애줄 수도 없겠지만
그 모두를 키워가고 있는 어린 시절의 너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진심으로 감사해하고 있단다.
네가 내 곁에 와준 것을.
우리가 함께 보내고있는 다시 못올 이 시간들을.

고맙다, 정말 고맙다.






Posted by 연신내새댁
umma! 자란다2015. 3. 9. 01:43





새봄.
여덟살 연수는 초등학생이 되었고
다섯살 연호는 처음으로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했다.

연수는 씩씩하게 즐겁게, 꽤 먼 학교까지 잘 걸어다니고
연호는 낯선 어린이집 생활을 조금씩 경험해보며 신기해도 하다가, 엄마가 보고싶어져 울기도 하지만 그래도 잘 놀고 잘 지낸다.
연제는 엄마따라 큰형아데려다주러 먼학교를 하루에 두번씩 따라다니고,
작은형아 어린이집에도 두시간씩 같이 가있기도하고, 신입학부모 오리엔테이션에도 잘 따라가 있는다. ^^

모두 힘들었지만 모두 참 애썼고, 모두 잘 지내주었다. 정말 고맙다..

첫 일주일보내며 어찌나 고단했던지 주말에는 온가족이 모두 집에서 뒹굴뒹굴 꿀맛같은 휴식을 즐겼다.
많이 큰 아이들을 유모차에 태우고 밀고, 또 손잡고 학교를 오갔더니 팔이 얼얼하게 아팠다.
어린아기들 키우며 제일 먼저 힘들고 아파지는 곳이 팔인것같다.
아이들이 새로 태어날때마다 제일 먼저 팔이 참 뻐근해지더니, 학교를 가고 어린이집을 가는 또다른 성장의 시간에도 엄마는 팔부터 아파지고 단련이 되나보다.

연수네 학교는 올해 5년차를 맞은 '서울형 혁신학교'다. 우리가 이사오던 해에 첫신입생을 맞고 출발한 혁신학교가 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조금씩 더 뿌리를 내리고 푸른잎을 단 가지들도 더 넓게 펼치며 든든하게 자라고 있다. 정말로 감사하다.
연수의 입학식에는 6학년 형누나들이 신입생들과 함께 들어와 고운 촛불을 밝혀주었고,
선생님들은 재미난 그림책으로 이야기선물을 해주셨다.

한날은 수건돌리기를 배우고, 애국가도 배우고, 한날은 6학년 형누나들이 직접 만든 노트를 1학년 교실로 찾아와 선물해주었는데, 마침 우리 바로 위층에 사는 윤아누나가 연수네 반에 와서 깜짝 놀라고 반가웠던 모양이다.

나는 그 얘기를 듣다가 "어머! 윤아가 벌써 6학년이야?" 하며 놀랐는데
생각해보니 이집에 이사와서 낳은 연호가 어느새 다섯살이 되었다.
그랬구나.. 그사이 시간이 많이 흘렀구나.
윗집 예쁜 꼬마여자아이가 어느새 키가 쑥 큰 멋진 소녀가 될만큼의 시간이 흘렀구나.

아이들이 힘껏 쑥쑥 자라는 동안 나도 많이 자랐나..
나는 어째 오늘도 애들에게 골만 잔뜩 낸 것이 어째 더 못난 어른이 된것같다ㅠㅠ

학교와 어린이집의 병아리 새내기들이 된 우리 아이들을 따라
쫑쫑쫑 바쁘게 걸어다니는
이 봄의 나는 어째 늠름한 엄마닭이 아니라 병아리 엄마같다.
나도 부지런히 모이 먹듯 마음공부 잘 해서
어서 쑥쑥 커야지....!^^






Posted by 연신내새댁
umma! 자란다2015. 1. 15. 00:08







내 큰아이 연수가 새해에 여덟살이 되었다. 

연수 만날 준비를 하며 이 블로그를 처음 쓰기 시작했으니 연수가 태어나 자라는 8년이라는 시간을 블로그 이웃분들이 함께 지켜봐주신 셈이다. 
꼬물꼬물하던 아기 연수(태명이 '똑순이'여서 한동안 계속 똑순이로 불렀던)가 어느새 훌쩍 커서 여덟살이 되다니.. 
새 봄엔 초등학생이 된다니.. 
매일 같이 살아온 엄마도 이렇게 얼떨떨한데 이웃분들은 얼마나 신기하실까. ^^

요즘 연수는 말도 못하게 개구장이짓을 하기도 하고, 까칠하고 예민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을 떄도 있다가, 팩 토라지고, 까르르 웃고, 펄쩍펄쩍 날뛰고, 조용히 집중하고, 버럭 화내고, 아기처럼 안기고, 세상 모든 것(특히 어른들의 일)이 궁금했다가, 또 제 세상(로봇과 레고와 초콜렛과 바보똥개멍청이쉬야 동생들과의 놀이)만 중요하다가... 를 하루에도 수십번 반복하는 것 같다.

무슨 사춘기 청소년도 아니고.. 고작 여섯해하고 조금 더 산 녀석이 하는 행동을 지켜보다가 엄마는 마음도, 머리속도 뒤죽박죽 부글부글 폭발 일보직전이 되기 일쑤다. 

큰 아이 키우는 일은 엄마도 처음 가보는 길이라 제일 어렵고 힘들다고 하던데... 나도 정말 그렇다. 
연수에 대해서는 참 걱정되는 일이 많다. 
그리고 잘못한 일도 정말 많다. 
엄마가 늘 참 부족하다.

둘째, 셋째 아이들을 대할 떄도 잘못하는 일들이 많다. 
오히려 첫 아이라서 더 많이 신경쓰고, 더 열심히 정성을 기울였던 일들도 많았다. 
하지만.. 그보다는 처음이라서 서툴고, 빨리 바로잡지 못하고, 지난 후에 후회하고 미안해하는 일들이 더 많은 것 같다. 







아이들의 기질은 언제쯤 드러날까.

연수는 아기시절에는 퍽 차분한 아기였다. 신생아시절 잠이 자주 깨고, 많이 우는 예민한 아기이기는 했지만 조금 큰 뒤엔 생활리듬이 안정되어서 잘 먹고 잘 잤다. 호기심이 많았고, 무엇이든 한참씩 들여다보고 만져보기를 좋아했다. 잘 웃었고, 걸어다니는 걸 좋아했다. 고집도 세고 떼쓸 때도 있었지만 어디서든 잘 놀아서 크게 힘들지 않게 엄마와 쿵짝을 잘 맞춰가며 유아기를 보냈던 것 같다. 


첫번째 동생인 연호가 태어날 무렵, 그러니까 네살 즈음에 처음으로 연수에 대해 고민을 했었다. 

놀이터에서 만난 친구들을 밀어 넘어뜨리기도 하고, 왁~!하고 소리질러 놀래키거나 울리기도 하고 좀 무섭게 굴 때가 있어서 '왜 그럴까.. 무슨 이유일까..' 고민했던 기억이 난다.

엄마가 아기 동생 돌보느라 힘들다는 핑계로 종종 보여줬던 만화영화들의 영향일까.. 아니면 본래 기질일까.. 그도 아니면 엄마가 연수에게 화를 내서 보고 배운걸까.. 동생이 생겨서 연수도 한층 예민해지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게 된걸까..


뾰족한 답은 못 찾은 채로 시간이 흘렀다. 
다행히 연수의 공격적인 행동은 천천히 사라졌고, 친구들과도 잘 어울리고, 집에서 어린 동생과 엄마와 지내는 시간들도 그럭저럭 평화롭게 흘러왔다.  

말을 더듬는 것 때문에 한참 고민한 것도 그 무렵이었는데, 같이 서서히 좋아져서 지금은 말을 빨리 해서 다른 사람들이 잘 못 알아듣는 경우가 자주 있기는 하지만 더듬는 일은 거의 없어졌다.   









그런데 일곱살이 된 올해, 참 여러모로 연수의 기질이랄까, 성격같은 것이 또 도드라지게 마음에 걸렸다. 

많이 성장하는 때여서 그런걸까.. 

사춘기 시절이 그렇듯이 일곱살 무렵도 갑자기 몸도, 마음도 쑥 크는 때여서 아이도 혼란스럽고, 보살피는 어른도 같이 힘든 시간을 보내게 되는걸까.


일곱살이 된 연수는 때때로 눈에 띌만큼 거칠게 말하고, 동생들에게 거칠게 행동할 때가 있었다.

타인의 아픔에 잘 공감하지 못하는 것처럼 느껴졌고, 자기 생각만 앞세우거나 제 관심과 호기심에 마냥 몰두할 때가 많았다. 

자기 주장이 너무 강하다보니 엄마와 자주 부딪치고, 동생이나 친구들과 놀때도 자기 뜻대로만 하려했다. 

동생들이 울 때도 많았고, 동생이 제 말을 안 듣는다고 연수가 삐져서 혼자 씩씩대고 방문을 쾅 닫고 들어가버리거나 화를 낼 때도 많았다. 


말도 꼭 만화영화에 나오는 여중생 누나들처럼 팩팩! 던지듯이 하고, 따지고 묻고 비아냥거리고 성내는 말투를 너무 자연스럽게 구사해서 

'내가 얘한테 뭘 잘못하고 있나..' 밑도 끝도 없는 질문을 엄마 스스로에게 던지며 멍 해지게 만들곤 했다. 


참.. 왜 이런걸까. 

엄마가 잘못한 일들도 많았다. 

연수의 요구를 많이 들어주었지만, 제 욕구를 조절하는 법을 가르쳐주진 못한 것 같다. 

'아직 어리니까..'라고 하기엔, 연수는 너누 자기 주장을 굽힐 줄 모르고, 제 욕구의 적절함에 대해서는 다시 생각해보지 않고 무조건 관철시키려고만 하고 있다. 

제 바램과 다른 사람의 바램을 잘 조절하는 일.. 어른도 쉽지 않지만, 아이에게도 꼭 필요한 일이다. 

조화로운 사고와 태도는 삶속에서 꼭 배우고 몸안에 익혀야한다... 나는 연수에게 그런 것을 가르쳐줘야 한다.







또 다른 근본적인 문제도 있다.

어떤 불만, 질투, 속상한 감정 같은 것이 잘 풀리지 않는채로 연수의 마음속에 계속 깃들어있다가 

작은 상황 하나에도 팍! 하고 불이 붙어서 터져오르는 것 같기도 하다.   


연제가 태어나 두 돌 가까이 크기까지 가족 모두 조금씩 힘든 몫을 감당하며 지냈는데, 특히 연수도 힘든 일이 많았다. 

동생이 태어났지만 저도 아직 아기였던 연호조차 눈치껏 철들어가며, 나이보다 훨씬 의젓하게 행동하며 자란 2년 동안 

연수는 엄마에게 제일 많이 야단맞고, 제일 적게 엄마와 같이 있고, 불만도 많고 속상한 것도 많은 채로 지냈다. 


동생들을 더 따뜻하게 대했으면, 가족들이나 친구들에게 짜증내고 토라지지 말고 지냈으면, 자기 뜻대로만 해야한다고 고집부리고 화내지 말았으면, 욕심내지 말았으면...

엄마는 많이 바랬고, 연수를 안아줄 시간은 늘 부족했다. 

연수가 많이 커서 친구들과 노는 것도 좋아하고, 동생과 꿍짝맞춰 잘 노는 시간도 많아졌지만

그래도 아직 연수도 밤에 잘 때 엄마 손이라도 잡아보고 싶어하고, 엄마에게 매달리고 업히고, 책 읽어달라 저랑 놀아달라 조르고 싶은 어린 아인데

그 마음을 참 많이 못 받아주며 지낸 시간이었다. 









엊그젠가 연수가 또 무슨 일로 팩 토라지는 것을 보고 명선 이모님이 '큰애는 사랑을 못 받아서 그러는 거고요..' 하셨는데 나도 요며칠 이 글을 쓰며 그런 생각을 깊이 하고 있었다. 

큰 아이들은 정말 그렇다.

어린 동생들에게는 아무렇지도 않게 쏟아지는 엄마의 포옹, 입맞춤, 다정한 눈길, 무슨 일이 있으면 우선 그 애 편이 되어주는 든든함.. 그런 것들이 첫째들에게는 늘 제일 부럽고 아쉬운 것일 것이다.


그래서 부모가 보기에는 그동안 제가 제일 많은 것을 받았고, 지금도 집에서 제일 좋은 것, 제일 큰 자리를 누리고 있는데도 

걸핏하면 토라지고 속상해하는 첫째 아이를 '너무 자기 중심적'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은 그만큼 그 아이 마음에 결핍된 무엇이, 허전하고 속상한 무엇이 크게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12월에 연수 어린이집에서 한 해를 마무리하는 공연을 했다. 

많이 컸구나.. 내 첫아기.. 새삼 마음 뭉클해지는 시간이었다.

연수는 어린이집 가기를 늘 힘들어했다. 엄마와 동생들과 집에서 같이 놀고 싶어서 미적거리다가 떨어지는 않는 엉덩이를 마지 못해 들고 겨우 10시쯤 집을 나섰었다. 

여섯살, 일곱살.. 두 해를 그랬다. 

갓난아기 동생을 키우는 엄마가 동생들과 곤한 낮잠을 자느라 연수의 하원시간은 늘 오후3시반, 4시가 되었다.


다니기 싫어하는 어린이집을 엄마가 힘들어서 그만 두게도 못하고, 

그렇다고 씩씩하게 재미있게 다니도록 힘을 북돋아주지도 못하고, 

좀 재미있는 행사가 있는 날은 그런대로 신이 나서, 그렇지 않은 날은 집에서 동생과 계속 놀고 싶어하는 녀석을 겨우겨우 등 떠밀어서 보내며 지내온 시간.

연수에게는 이 시간이 어떤 기억으로 남을까.. 그래도 다행히 어린이집 친구들을 좋아하고, 같은 아파트에서 늘 신나게 어울려 놀아서 그런 추억은 좋게 남을 것 같지만 '어린이집 다니기'는 싫은데도 억지로 해야했던, 아픈 기억으로 남을지도 모르겠다.

어린이집에서 했던 활동과 배움들을 싫어했던 것은 아니지만, 가족과 떨어지고 싶지 않았던 마음을

그 마음을 잘 다독여주고 충분히 풀어주지 못했던 것이 연수를, 그리고 나를 힘들게 했던 것 같다.


 

새롭게 다니게될 초등학교 생활을 연수는 많이 기대하고 있다. 

초등학생이 된다고 어깨가 으쓱하기도 하고, 재미있을 것 같아 기대되기도 하는 것 같고.. 무엇보다 '일찍' 집에 온다는 것을 무척 신나한다. ^^;;

12시, 1시에 집에 와서 연제랑 많이 놀아줄거라고, 연호는 어린이집에 가니 자기보다 더 늦게 올 거라고 신나게 얘기하는 연수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짠하다..

연수야.. 엄마가 많이 미안하다.

많이, 많이 미안하다.. 그리고 사랑한다. 

너에게 다른 어떤 가르침보다.. 네 마음의 서운함을 풀어주는 것이, 그냥 엄마의 따뜻한 말 한마디, 눈빛 한번으로 네 편이 되어주는 것이 

너 스스로 너 자신을 너그럽고 여유로운, 따뜻한 아이로 자라게 해줄 것 같은데

어린 나이의 너를 자꾸 날서게 해서 엄마가 미안해.

엄마의 마음 밖으로 자꾸 내몰아서 미안하다.


앞으론 더 너를 품어주고, 끌어안아주려고 노력할께.

여덟살 연수. 사랑한다.




Posted by 연신내새댁
umma! 자란다2014. 10. 9. 23:38







세 아이가 차례로 수두를 앓았다.
연수네 어린이집에 수두가 돌아 연수가 제일 먼저 앓았고, 
큰형이 걸린 때로부터 잠복기를 3주쯤 거치고 둘째가 앓고, 또 그로부터 2주쯤 후에 막내가 앓았다. 

연제는 수두는 약했지만 기관지염이 함께 걸려 어린 녀석이 고생하며 지냈고, 
연제가 나을 무렵에 연호가 기관지염이 옮아 힘들게 지내다가 이제야 겨우 회복되는 중이다. 
  
여름 끝물부터 본격적인 가을이 시작되는 요즘까지 근 두 달 가까운 시간을 
아이들이 돌아가며 앓는 통에 밤낮으로 마음 졸이며 보냈다. 
처음 겪어보는 수두를, 세 녀석이 모두 충실하게 앓고 낫는 과정을 지켜보았고 
수두 자체보다는 그로인해 약해진 어린 몸들이 환절기의 온도와 바람을 겪어내느라 감기를 심하게 앓는 곁을 지키면서 
못난 엄마 만나 그런것 같아 마음도 아프고 
잠을 제대로 못자고 낮에도 잘 쉬지 못해 몸도 많이 힘들었다.
이제 아이들이 거진 회복되는 즈음이 되니 엄마는 온 몸의 진이 다 빠진 것 같다.

하지만 나보다 아팠던 어린 녀석들이 훨씬 더 힘들었을 것이다. 
아직 온전히 회복하지 못한 연호나
앓고 나서 훨씬 씩씩해진 연제나 
맨 첨에 수두 때문에 잠깐 아팠던 것을 제외하면 동생들이 아픈 긴 기간동안 내내 건강하게 잘 지내주었던 연수도 
부쩍 추워진 날씨에 또 아프진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아이들은 아프면서 크는 것이라하고, 아이들이 많은 집이니 아픈 날도 많을 수밖에.. 좀 마음 편히 생각해야지... 하다가도
아픈 날들이 워낙 길어지니 엄마 마음 좀 개운해지도록 이젠 제발 아무도 안 아팠음 좋겠다..! 하고 바라게 된다. 

그래도 이만하게 지내주어서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엄마 마음졸이는 것 다 안다는 듯이 
어린 녀석들이 아프고 힘든 것을 온 힘을 다해 견뎌내고 끝내 나아주는 모습이 얼마나 고맙던지.. 
힘없이 매달리기만 하던 아이들이 조금씩 기운차릴 때 엄마를 보며 웃어주면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이 후.. 하고 새어나오곤했다.

다행이다. 이만해서..
고맙다. 정말 고맙다.
우리 모두 같이 잘 견뎠고.. 또 잘 회복하자. 천천히, 감사하며.. 
나도 그래야겠다. 
아이들 나았으니 이제 나 좀 앓자, 할 수도 없이 나는 계속 밥하고, 막내 젖도 주고, 아이들 책도 읽어주고, 쉬엄쉬엄 천천히.. 내 자리를 변함없이 지켜야한다. 
그래서 또 다행이다. 
긴장은 조금 내려놓고 오래 미뤄두었던 블로그 글도 이제 쓰고 밀쳐놓았던 책들도 다시 읽을 수 있게 되어서..












수두가 전염성을 갖는 1주일 정도의 기간 동안은 오롯이 우리끼리 시간을 보낼 때가 많았다.
친구들이 모인 곳에 가지 못해 답답한 것도 있지만 
우리끼리 호젓한 곳을 찾아 온종일 함께 놀고 먹고 잠자고 투닥거리고 안아주며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았다.

연수 수두가 시작된 떄는 8월 말이어서 아직 꽤 더웠다. 
땀나게 놀 것은 아니지만 수두난 아이도 바람쏘이며 적당히 노는 것은 괜찮다고 해서 가끔씩 세 녀석 데리고 냇가 길로 한번씩 산책 다녀오곤 했다.
연수는 수두 발진 나기 전에 하루 저녁 정도만 열이 나면서 아파하고 발진도 많이 나지는 않고 수월하게 지나갔다. 










아직도 아침이면 동생들과 엄마와 떨어져 저만 어린이집에 가야하는 것을 싫어하는 연수는 
수두 때문에 쉬는 기간 동안 
아침에 서두르는 일 없이 맘껏 놀고, 하고싶은 것들 오래오래 하고, 저 좋아하는 간식 먹으며 지내는 것이 좋았을 것이다.

형이 같이 있어 제일 신난 것은 연호.
세살 터울 정도는 가볍게 극복하고 형아랑 정말 꿍짝 잘 맞춰서 노는 연호는 몸은 네살이지만 마음은 일곱살이다.
행동도 가끔은 형보다 더 의젓하고 말도 야무지게 잘 해서 형을 타이르기도 하고, 형한테 맞아서 울다가도 금새 또 형이 좋아 따라가서 노는, 연수에게는 둘도 없는 단짝 동생이다.










세 아이 앉혀놓고 사진 찍을 때면 내 어린 시절에 찍은 사진 생각이 난다.
오죽헌 예쁜 꽃밭 앞에 하얀 스타킹 신고 쪼르륵 앉아 사진찍었던 우리 삼남매와
지금의 나처럼 웃으며 그 사진을 찍고 계셨을 젊은 내 엄마와 아빠 생각이.

시간은 얼마나 빨리 흐르는지.
아이들은 자라고 어른들은 늙는다.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 올망졸망한 어린 아이들 데리고있는 나를 보시면 "에고. 힘들겠네.."하시고는 꼭 바로 덧붙이시는 말씀 "그래도 어린 애들 키울 때.. 그 때가 제일 좋을 때야.."에 나는 이제 깊이 동의한다.
삶의 비밀 하나를 알게 된 것같다.
그냥 머리로 이해하던 때를 지나서 마음으로 절절이 공감할만큼 나도 나이를 먹어버린 것이다.


우리 아이들을 아껴주시는 명선 이모님께서 며칠전에는 '사람이 고정돼 있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아이들은 늘 요렇게 이쁜채로 더 안크고 말이예요' 하셨다.
만 19개월을 채운 연제는 요즘 참 예쁘다. 
아장아장 걷고 뛰고, 무어라 제 나름대로 얘기하고, 귀엽게 웃어주는 아이를 보고 있노라면 '요대로 더 안 컸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왜 하시는지 알 것 같다.
나는 덧붙였다. "그러게요.. 어른들도 더는 안 늙고 말이예요..." 
내 부모님이 나이드시는 것이 안타까워서 하는 말이기도 하고, 또 내가 나이들어 가고 있음을 어느새 많이 실감하고 있어서 하는 얘기이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시간은 멈추지 않고 흐르고, 아이들은 자라고, 또 어른들은 나이들어 가신다는 것을.

막을 수 없는 흐름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최선을 다해, 지금 이 시간을 행복하게 보내는 일 뿐이라는 것을.
지금 이 순간 우리 삶에 깃들어있는 아름다움을 찾아 깊이깊이 누리는 일. 
오래도록 따뜻하게 되새겨볼 수 있는 행복한 시간을 일구고 그 온기로 마음을 채우는 일뿐이라는 것을.


서른일곱 나는 어쩌면 마흔이 되면 더 홀가분해지고 여유로워질지도 모르겠다.
지금이 꼭 제일 좋은 떄는 아닐지도 모르지만, 지금이 제일 좋은 때가 아닐 이유도 실은 없다.
언제나 지금을 '제일 좋은 때'로 만드는 것이 행복해지는 비밀이라고 어른들은 알려주시는 것인지도 모른다.


내 아이들과 함께 지내는 지금이 참 좋고, 
부모님이 건강하게 내 곁에 계셔주시는 지금이 참 좋다.
함께 애들 키우랴, 서로 맡은 일 하랴, 바쁘고 고단한 삶을 함께 꾸려나가는 우리 부부는 아직은 서로에게 부족한 것도 많지만 그래도 서로 아껴주고, 고마워하며 지내고 있으니 그것만 해도 다행이고 좋다. 
앞으로 함께 살아가는 동안 부족한 것들은 더 나아질 거라 생각하고 기대할 수 있으니 그것도 좋은 일일 것이다.











어느 비오는 날, 연수가 연제 손을 꼭 잡고 걸어갔다.
막내 동생 곁에 선 다섯살 많은 큰 형아의 뒷모습이 왠지 든든하다.










연수가 막내동생 그림책 읽어준다. 
연호는 아직 글을 모르지만 '미끌미끌 미꾸리 미꾸리는 길어~ 길면 뱀장어..' 책을 비롯해 연제가 좋아하는 보리 아기 그림책 몇권은 통째로 외우고 있어서 한장씩 넘기며 천천히 잘 읽어주곤 한다. 

형들이 보여주는 세상이 얼마나 신기할까..
연제야. 막내라 힘든 것도 많지만 참 좋은 것도 많지? 엄마도 그랬단다. ^^ 












7월 어느날, 서울시청 나들이 갔다가 건너편 대한문 앞에서 찍은 사진.



아이들이 차례로 수두 앓는 것을 지켜보며 마음 졸이고 있자니 문득 예전 어머니들이 얼마나 두려웠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오랜 시간 동안 인간이라는 종과 함께 해오고 있는 질병, 그리고 그것을 겪고 견디며 성장해가는 인간이라는 생명에 대해 숙연한 마음이 들었다.

수두 발진은 혀와 눈, 코 안까지 그야말로 온몸 구석구석 돋고 물집이 잡혔다가 터져서 딱지가 앉는다. 

그것이 다 잘 떨어지고나면 몸은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고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어린 아기들이 그 모든 과정을 고스란히 겪는 것을 지켜보는 일은 두렵기도 하면서 신비롭기도 했다. 

잘 견뎌주는 것이 정말 고맙고 대견했다.

이렇게 자라는구나.. 생명은 이렇게 약하고도 강하구나. 다시 한 번 배웠고, 앞으로 또 함께 겪어가야할 성장의 진통들이 걱정되면서도 아이들이 힘껏 견디고 겪고 자라는 곁에서 나도 함께 최선을 다해 보살피고 도우며 지나가야겠구나.. 의연하게 마음 단단히 먹어야겠다.. 생각하게 되었다.


아픈 날들에 형제들이 함께 있어 서로 아옹다옹 어울려 지낼 수 있는 것이 참 고맙고 좋다는 생각도 새삼 했다.

내가 아팠던 것을 너도 앓는다는 것, 그 고통을 이미 겪어봤기에 이해할 수 있고, 아프고 힘들 때 곁에서 함께 지켜줄 수 있다는 것.

답답할 때 같이 바람쏘이러 나가주고, 같이 웃고, 싸우고 토라져도 다시 부대끼고 의지하고 보듬을 수 밖에 없는 

우리는 형제이고, 가족이라는 것을 깊이 느낀 시간이었다. 

아이들도 어렴풋하게, 아니 이렇게 말로 표현하는 것보다 훨씬 더 깊이 그냥 피부로, 생활로, 밥먹고 숨쉬는 모든 삶의 시간들과 함께 마음에 새겼으리라.




이렇게 내 아이들에게 형제가 있다는 것이 고맙게 느껴질 때마다 마음에 사무치는 사람들이 있었다.

세월호 사건으로 형제를, 자매를 잃은 아이들이었다.

자식을 잃은 부모의 고통은 더 말할 것도 없겠지만 아옹다옹 함께 깔깔대고 투닥이며 꼭 우리 아이들처럼 그렇게 붙어서 자라왔을 그 아이들의 고통은 어찌할 것인가.


어른과 또 달리 청소년기에 이토록 큰 충격과 상실과 고통을 겪은 그 아이들이

사건의 진상도 철저히 밝혀지지 않은 채, 책임있는 사람들이 제대로 처벌받지도 않은 채 

형제의 죽음이 묻혀지고, 죄없는 부모가 비난받는 싸늘하고 비정한 사회를 지켜봐야 한다면

그 마음의 상처는 얼마나 깊어질지.. 차마 가늠조차 하기 힘들다.


진실은 꼭 필요하다.

진실은 치유와 용서를 위해 꼭 필요하다.


백인에 의한 극심한 인종차별정책으로 고통받았던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흑인인권운동가인 만델라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인종차별로 인한 갈등과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설치했던 기구의 이름은 '진실과 화해 위원회'였다.

진실이 낱낱이 밝혀져야만 피해자들의 한이 풀리고, 가해자들의 반성과 참회가 가능하고, 용서와 화해가 이어질 수 있다.


세월호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한 '독립된 조사위원회'를 만들고, 그곳에 기소권과 수사권을 부여하는 특별법은 

세월호가 침몰하는 순간 우리 사회의 침몰을 함께 본 '대한변호사협회'에서 제안한 법안이다.

헌법체계를 흔들지도 않고, 오직 성역없는 수사, 속속들이 모든 관련자료를 제출하도록 요구해 검토할 수 있는 법안이다.

국정조사에도 제대로 자료제출을 않고, 감사원 감사에도 응하지 않았던 기관들을 상대할 수 있는 최소한의 힘을 가진 조사위원회를 만들자는 것이다.

국회에서 양당이 힘겨루기와 아햡으로 일관한다면 차라리 국민투표로 결정하자는 시민단체들의 제안을 포함해 

진지하게 진심을 다해 제대로된 방법을 찾지않으면 안된다.

대충대충, 경제 살리기나 지겨우니 이제 그만하자, 정치권이 다 그렇지 뭐 같은 얄팍하면서도 노련한 계산속에 넘어갈 수 없다. 


상식있는 어른들이 버티지 않으면 자라는 아이들이 돌이킬 수 없는 깊은 상처를 입고

귀한 목숨까지 잃을 수 밖에 없는 세상에 우리가 살고있기 때문이다.


어린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환절기에 감기 한번 넘기는 일도, 수두 앓고 지나는 일도 한 가족에게는 참으로 어렵고 중한 일임을 매일 깊이 느끼고 있다.

한 아이가 자라는데 얼마나 많은 눈물과 땀과 사랑이 필요한지도 매일 배워가고 있다.

생명이 존귀하다는 것을, 생명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 것인가를

한 생명을 키우기위해서는 내 남은 생 전체를 걸어야한다는 것을 엄마가 되고 알았기에 

물러설 수 없는 마음이 된다.


가을이 깊어간다.

날은 급속도로 추워질 것이다.

물러설 수 없는 마음들이 함께 어깨 기대고 

추운 겨울을 날 것이다.

그러면 언젠가는 봄이 올 것이다. 

그것을 믿고 있다.


    



Posted by 연신내새댁
umma! 자란다2014. 4. 4. 00:18



봄비 젖은 길 위로 가로등 불빛이 반짝인다.

이런 밤에는 사는게 참 별스럽지 않다. 

다 괜찮아.. 비에 젖은 돌들이 말해주는 것 같다. 


며칠전 남편이 하루 휴가를 내고 나와 아이들을 태우고 병원에 가주었다. 

자궁암 정기검진도 받을 겸 최근 들어 더 심해진 자궁 통증에 대한 진찰을 받기 위해서였다.

연수는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연호와 연제만 태우고 꼭 1년 전에 연제를 낳았던 산부인과병원으로 가는데

가는 중에 차에서 두 녀석 다 낮잠이 곤히 들었다. 

병원옆 골목에 차를 세우고 남편은 잠든 아이들과 차에 남고 나 혼자 병원으로 올라갔다.


평일 오전의 산부인과병원은 한산했다.

자연출산을 지향하고 지원하는 병원인 연앤네이쳐 산부인과의 따뜻하고 편안한 분위기 속에 앉아있자니 

연제 낳던 일이 좋은 꿈처럼 아련하게 떠올랐다. 


마음 깊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의료인과의 면담을 기다리며 진료실 앞에 조용히 앉아있는데 눈물이 왈칵 솟았다. 

나는 두 손을 가만히 모아 잡고 마음속으로 빌었다.

'제 아이들 곁을 지킬 수 있게 해주세요. 큰 병이 아니게 해주세요.'


겁을 많이 먹고 있었다.

나는 본래 응석도 많고 엄살도 많은 사람인 탓에 내 몸 어디가 좀 아프면 내심 걱정을 많이 한다. 

그래도 어린 아기들이 줄줄이 딸린 몸이라 내 몸 살펴보러 병원가기가 쉽지가 않았다.

이번에도 우선은 참으며 남편이 쉬는 토요일을 기다리려했는데 갑자기 통증이 너무 심해져서 어쩔 수 없이 남편에게 휴가를 내자고 했다.


연호 낳고 난 뒤부터

가끔 피곤할 때면 연수, 연호 낳으며 수술했던 자리가 뜨끔뜨끔하게 아프곤했다. 

연제는 다행히 수술하지 않고 자연출산으로 건강하게 잘 나아서 내 몸도 한결 든든하게 잘 회복되었었다.
그래도 1년 시간이 흐르는 동안 몸이 많이 고단할 때면 큰 아이들 수술했던 자리도 아프고, 나중에는 자궁 전체가 뜨끔뜨끔하게 아팠다.
최근에는 바늘로 찌르는 것같은 통증이 수시로 찾아와 한참씩 가만히 앉아서 숨을 참고 기다려야 그 밑이 빠질 것 같은 통증이 가셔지곤 했다. 


통증이 너무 잦고 심해지던 어느 날, 주말을 바라보며 계속 참을까.. 생각하는데
친정아버지 생각이 났다. 
아빠가 아셨다면 당장 병원에 가보지 않는다고 크게 걱정하셨을거다. 
큰 병은 아닐 것 같지만, 하루이틀 병원에 빨리 간다고 크게 달라질 건 없겠지만 
왠지 아빠 생각을 하니 더 끌지말고 빨리 다녀와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아픈 것을 참으며 지내던 며칠 동안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괜히 겁이 났다.
내가 아프면 이 아이들은 어쩌나..
젖먹이 연제는, 아직도 엄마 품에 안겨야 잠이 드는 네 살 연호는, 엄마한테 사춘기 아이처럼 한창 까탈을 부리고 있는 일곱살 연수는.  

내가 아프면 안 되는데... 이 아이들 곁을 지켜야하는데.. 하는 걱정으로 잠을 못 이루기도 했다.

몸이 아프니 마음도 약해졌다.



진료실 앞 의자에 혼자 조용히 앉아 이런 걱정들을 갈무리하고, 기도하고, 깊이 심호흡하는 동안 

눈물이 잠시 왈칵했다 잦아들었다. 

밝고 따뜻한 빛이 흐르는 복도에는 다행히 나 혼자 뿐이었다. 


진찰 결과는 좋았다.

걱정했던 큰 병의 징후들은 없었고, 며칠 후에 결과가 나온 자궁암 검사도 정상이었다. 

다만 오래 서 있고, 많이 피곤해서 그런 것 같다고, 좀 쉬시면 좋아질 거라는 이야기를 하며 선생님은 웃었다. 

아기 셋을 데리고 쉴 수 없는 내 상황을 잘 아시니 미안해서 웃는 것이다.

나도 웃었다. 

걱정이 풀리니 마음이 푹 놓였다. 

괜찮다. 생활은 조금씩 조절할 수 있다. 큰 병만 아니면, 내 아이들을 내 손으로 돌보며 

같이 밥먹고 웃고 산책하는 일상을 탈없이 꾸려갈 수만 있다면 다 괜찮은 것이다. 정말 다행이다. 


선생님은 몇가지 집에서 할 수 있는 운동과 잘 쉴 것을 당부하셨다.

괜찮을 거라며 너무 걱정말라고 나를 안심시켜주려 애썼지만 내심 걱정을 많이 하고 있었을 남편도 

밝은 내 표정을 보고 마음이 확 펴진 듯했다.


봄날씨가 참 좋았다. 

연수없이 동생들만 데리고 외식하는게 어색했다.  

모처럼 평일 낮에 직장인들로 북적이는 맛있는 식당에 앉아 경쾌한 음악을 들으며 밥을 먹고 있자니

봄소풍나온 아이처럼 마음이 들떴다.

살아있으니 좋고, 함께 있으니 좋다.

점심먹고 병원에서 멀지않은 세곡동 살림언니에게 들려 따뜻한 놀이터 햇볕을 받으며 맛있는 커피도 한잔 마셨다.

삶이 사람의 품을 얼마나 키워줄 수 있는지 나는 늘 언니를 보며 배운다.

 

오후에는 남편이 나를 쉬게 해주려고 연수와 연호를 데리고 놀러를 나갔다.

세 사람이 마트에 가서 장도 보고 맛있는 것도 먹는 동안

나는 연제랑 둘이 좀 놀다가 같이 오래도록 낮잠을 잤다.

집이 절간처럼 조용했다. 


잠든 연제 옆에서 문득 생각했다.

언젠가 아이들이 많이 자라면 아빠랑 아이들이 함께 여행을 떠나는 날도 있겠지.

그러면 나 혼자 집에 남겠네.

아. 생각만 해도 설렌다. ^^

더도 말고 딱 삼일만 그런 날이 있었음 좋겠다. 

그럼 나는 뭘 할까..

혼자 느긋하게 일어나서 

그릇을 딱 한개만 써서 밥을 먹고

혼자 영화도 보러 가고

친구를 만나 밥도 먹고, 차도 마시고...

또 조용히 집에 와서 혼자 자고..

또.. 

삼일 이상 되면 외로울 것 같네. 


그러다 혼자 있을 때 해보고 싶은 것이 또 하나 생각났다.

혼자 조용히 고속버스를 타고 

강릉 부모님께 가서 하루밤만 자고 와야지.

늘 아이들 북적부적 데리고 정신없이 왁자하게 가서 엄마아빠 혼을 쏙 뺴놓고 오는 거 말고

나 혼자 조용히 가서 

엄마아빠 맛있는 밥 사드리고

커피 같이 마시고

두런두런 얘기하다가 

엄마아빠 옆에서 하룻밤만 자고 와야지.


그러고나면 다시 남편과 삼형제가 있는 

시끌벅적한 내 일상이 다시 시작되어서

씩씩하고 즐겁게, 화도 내고 속도 끓이고, 와글와글 울고웃으며 

보통의 하루하루를 살아갔으면 좋겠다.



몸이 아픈 것은 어떤 신호다.

삶에 일어나는 모든 일이 생각하면 다 신호이기도 하다.

균형이 깨졌다고, 좀 과하다고, 무리하고 있었다고

좀더 천천히, 마음도 몸도 푸근하게 한 템포 늦추라는 신호. 

밖으로 끌어내기 바빴던 에너지를 

안으로 지긋이 좀 모아들이기도 하라는 신호.


병원에 다녀온 후 신기하게도 통증은 많이 덜해졌다.

지금은 거의 없어졌다.  

며칠동안 생각날 때마다 케겔운동을 했는데 통증이 스르르 가시는게 느껴졌다. 

아픈 사람들이 누군가에게 병을 호소하고, 그에 대한 관심과 위로를 받고 싶어 병원을 찾고 

의료진으로부터 공감과 심리적 위안을 얻기만 해도 치유의 효과가 있다더니 정말 내가 딱 그 경우였다.  


아마도 나도 이 즈음에 사람들로부터 더 관심도 받고, 따뜻한 보살핌도 받고 싶었던 모양이다.

아니, 다른 사람들이 아니라 나 자신이 내 몸에 좀더 관심과 보살핌을 보내줘야하는 때였던 것 같다.

새 생명을 낳고 보살핀 일 년. 

스스로를 돌아보며 애썼다고, 잘 해왔다고, 앞으로도 힘내라고 다독다독해줘야겠다.

세 번째 엄마 노릇이라고 

이젠 어려울 것도 없이, 좀 더 능숙하게 잘해야 하는거 아니냐고 몰아가기엔 

여전히 벅차고, 오히려 조금 더 빨리 지치는 

나이들고 약해진 엄마 전욱이었던 모양이다. 




그래도 괜찮다. 

나는 지금 내 아이들과 함께 있으므로. 

여전히 실수하고 부족하지만

우리는 서로 사랑하고

함께 웃으며 껴안을 수 있으니까.




애벌레 찰리 - 10점
크리스토퍼 샌토로 그림, 돔 드루이즈 글, 강연숙 옮김/느림보


"풀잎을 한입한입 갉아먹으면서 바람이 속삭이는 소리와

새들의 노랫소리를 들었지요.

찰리는 이 세상에 살아있는 게 기뻐서 미소 지었어요."









Posted by 연신내새댁
umma! 자란다2014. 2. 28. 23:44

ㅠㅠ

세상에... 연호 돌잔치 포스팅을 무려 1년 반도 더 지나, 정확히는 딱 20개월만에 올린다.

20개월은 연호와 연제의 터울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연제 돌을 며칠 앞두고 '연호 때는 돌상을 어떻게 차렸더라...?' 궁금해진 엄마가 블로그를 뒤적여보니 글쎄.. 

연호 돌 잔치는 사진만 올려놓고 글을 채 마무리짓지 못해 여직까지도 '비공개'로 되어있더란 사실...ㅜㅜㅜㅜ

아구.. 연호야, 미안하다.

네 돌잔치하고 바로 뒤이어 꼬마 동생이 엄마 뱃속에 자리잡는 바람에 

엄마가 그만 정신이 없었구나..;;;


뒤늦게라도 연호 돌잔치 포스팅을 올린다.

2년 전, 그때의 우리들을 다시 한번 만나보자. 

사랑한다, 아기 연호. 




 

 


 

6월 17일 일요일에 연호 돌잔치를 했다.

미사리에 있는 한식당에서 가까운 친지분들만 모시고 점심 함께 먹으면서 연호의 첫 돌을 축하해주고, 돌봐주신 어른들께 감사 인사도 드렸다.


연수 때처럼 연호 돌상도 직접 차려주고 싶어서

돌잔치 며칠 전부터 떡과 꽃을 맞추고, 과일을 사고 돌상에 놓을 이런저런 것들을 틈틈이 챙겨두었다.

연수 때는 처음이라 나도 워낙 정신이 없어서 상을 어떻게 차렸는지 기억도 안나고 그저 연수랑 사진찍고 밥만 먹고 부랴부랴 돌아온 것 같다. 

이번에는 두번째이기도 하고, 또 내가 차리는 마지막 내 아이 돌상일거란 생각에 좀더 차분하게, 정성껏 차리고 싶었다.

다행히 이번에는 친정 엄마가 하루 전날 올라오셔서 나와 함께 장도 봐주시고, 돌상에 필요한 것들도 마지막까지 꼼꼼하게 챙겨주셔서 준비하는데 훨씬 안심이 되었다.

사실 돌잔치 며칠 전부터 연호가 모세기관지염을 앓기 시작해서 내가 많이 긴장하고 있기도 했고, 연호 감기가 다 나아갈 무렵에는 나도 같은 증상이 살짝 나타나길래 엄마에게 엄살을 좀 떨었더니 엄마가 하루 먼저 우리집으로 와주셨다.

나이가 서른 다섯, 아이를 둘이나 키우는 엄마가 되었어도 

조금이라도 큰일을 하려고하면 겁이 먼저 나고, 엄마가 내 곁에 와주신다는 것이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었다.

아이와 함께 며칠 앓느라고 먹을 만한 반찬도 하나도 없었지만 엄마가 오신다는 소식에 기운이 번쩍 나서

밑반찬도 몇가지 뚝딱 만들고, 엄마랑 나중에 시댁 어르신들 오시면 대접하려고 고기도 재우고, 잡채도 만들고 하며 신나게 잔치 준비를 했다.

나중에 어른들이 우리집에 들리지 않고 모두들 식당에서 바로 가시는 바람에 음식이 엄청 남기도 했고,

또 돌상을 직접 차리고보니 돌잔치도 내 집에서



(여기까지가 2012년 6월 27일에 써놓은 글이다. ㅎㅎ

 그 때는... 연호가 내 인생의 마지막 아이일 줄 알았지모야. 설마 셋째가 또 있을줄을 몰랐지모야...^^;;;

인생이란 참 신기하고 고맙지뭐야.. 내게 연제를, 세 아이를 주셨으니.

아마도 '돌잔치도 내 집에서 하면 좋았겠다'고 쓰려고 했으려나? 

연제 때는 시댁이긴 하지만 집에서 하게 되었으니 내 바람이 이루어진 셈이다. 연제와 어머니께 감사드려야겠다. ^^


이제 여기서부터는 2년전의 우리들을 보며 지금 쓴다:)



 

 



아... 다섯살 김연수는 이리도 귀여웠네..!!

지금은 왜 그리 못생겨진거니..ㅠㅠ

볼이 아직도 보동하고 통통한 연수가 아기같아서 안아주고 싶은 맘이 절로 생긴다.

미안.. 연수야. 요즘은 엄마가 너무 널 안 안아주는구나..ㅜㅜㅜㅜ

 

 

 

 

 


만나면 늘 신이나서 둘이 딱 붙어노는 친정 큰조카와 연수. 

일곱살 조카도 아기같네~^^


 

 

 




연수 돌에도 한복을 입었던 나는 연호 돌에도 오랫만에 한복을 꺼내 입었다.

아이의 인생에서 손에 꼽는 소중한 잔치인만큼 엄마가 예쁘게, 정성껏 예복을 갖춰입고 함께 해 주고 싶었다.

셋째는 왠지 마음이 약해져서(?) 연제만 한복입혀주고 나는 그냥 평상복입고 치를까.. 했었는데 흑. 사진을 보고나니 안 되겠다.

아무리 집에서 하는 돌잔치지만 엄마도 한복입고 연제랑 사진 한장 남겨야지. ^^


 

 

 

 

 


어머님은 이 때나 지금이나 별로 안 달라지신 것 같은데, 사진속의 나는 어째 지금보다 훨씬 젊은 것 같다. ^^;;

셋째를 키우며 확~ 나이들어진 것인가??

이런 생각을 하니 2년전 사진을 보기가 괴로워진다. 흑...






 


 

할아버지랑 연호랑 옆모습이 닮았다. ^^









외할아버지와 연호.


멋쟁이 우리 아빠. 아빠는 늘 멋지신데 나는 어째 늘 촌티가 난다. 

아빠의 옷맵시는 언니가 닮았다(그리고 또 형부가 닮았다 ㅎㅎ). 

그래도.. 막내딸은 영원한 아빠의 팬. ^^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와 손주들.


햇살이 빛나는 6월이었고, 미사리의 한식당은 나무가 크고 정원이 예뻤다.

연호도 나뭇잎이 푸르고, 장미가 환하게 피는 좋은 계절에 태어났구나.

첫 생일날, 이렇게 밖에서 사진도 찍을 수 있고. 

갑자기 연호 돌잔치를 예쁜 식당에서 한 것이 잘 한 일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

축하해주러 오신 분들, 우리가 모신 어른들께 좋은 풍경속에 앉아서, 고운 햇살과 예쁜 나무들 아래에서 아이들 뛰어다니는 모습을 잠시 흐뭇하게 지켜보실 수 있는 시간을 드린 것이 잘한 일인 것만 같다.

맛있는 음식도 대접하고... 

연제 돌잔치도 식당에서 할 껄 그랬나..ㅜ 

어머님 너무 고생하시게 한 것 같아 죄송한 마음이 밀려든다....ㅠㅠ 

꼭 돌잔치가 아니더라도.. 어른들 모시고 좋은 곳도 많이 가고, 아이들과 함께 예쁜 사진도 많이 찍어드려야겠다.

 

 







돌쟁이 연호.

이 사진을 보니 연호 아기 시절 얼굴이 보인다.

그 전 사진들에서는 왠지 지금 얼굴이랑 똑같은 것 같아서 '연호 얼굴은 거의 안 변했구나..' 생각했는데

가까이서 찍은 것을 보니 이리 앳된 얼굴이었네.







연수가 신나게 동생의 생일축하 노래를 부르고..







엄마가 촛불을 끈다. 


딱 한 개뿐인 초. 

딱 한 번뿐인 첫 생일. 

딱 한 번뿐인 인생의 모든 날들.








네 식구. ^^

아빠도 젊고(ㅎㅎ) 엄마는 달덩이구나.. 

연호 가졌을 때는 정말 어찌도 그리 살이 많이 쪘던지... 연호 낳은 후에도 참 오래도록 살이 안 빠져 몸이 무거웠다. ㅠㅠ 

그래도 연수 때에 비해 젖량이 많아져서 연호가 젖을 잘 먹고 통통하게 잘 자라주는 것이 좋아서 

나 뚱뚱한 것은 크게 괴로워않고 열심히 먹고, 열심히 젖주며 지냈던 것 같다.

 





 


 

사진에서는 국수가락을 들어보고 있지만.. 연호는 돌잡이에서 붓을 잡았다.

'돈, 실, 붓, 책' 딱 기본만 놓고 다른 것을 놓지않은지라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해야겠지...^^;;;


무엇을 집든 네가 잘 자랄 것을 엄마는 믿는다. 

네 힘껏 사람들과 어울리고 사랑하며, 네게 운명지어진 삶의 길을 열심히 걸어갈 것을 믿는다. 

네 몫의 인생을 행복하고 충만하게 소중히 살아낼 것을 엄마는 한치도 의심없이 믿는단다, 아가야. 

빛나는 여행자야. 나의 동료야.




 


 

 


이 날, 와주신 가족 친지들께 아빠엄마가 감사 인사를 드릴 때, 

나는 울었다. 

글처럼 말에도 늘 감정이 많이 실리는 나는 '엄마가 되고보니 어머니들이 저희를 키우며 얼마나 힘드셨을지 이제야 알겠다'는 얘기를 하다가 그만 눈물이 푹 쏟아졌던 것이다. 

우는 바람에 그 뒤에는 별 얘기를 못하고 그저 '부모님들.. 정말 감사합니다' 하고는 얼른 자리에 앉고 말았다.

친정엄마는 살짝 눈가를 닦고, 어머님은 '에고, 그래도 우리 떄는 너희만큼 힘들지 않게 키운것 같다'며 나를 안쓰럽고 다정하게 바라보시던 기억이 난다. 


두 아이 키우며 힘들기는 했지만 그 것 때문에만 눈물이 난 것은 아니었다. 

고마워서 눈물이 났던 것이다.

내가 부모가 되고보니 그제야 부모님의 정이 어떤 것인줄 조금은 알겠어서, 

어린 시절 부모님이 내게 기울여주셨을 사랑과 보살핌이 어떤 것인지 이제 내가 내 아이를 키워보니 하나씩 하나씩 구체적으로 알겠어서

그게 너무 감사하고 고마워서 눈물이 났다. 

엄마는 얼마나 바쁘고 힘들었을까, 나보다 훨씬 더 많은 식구들을 보살피고 농사일과 큰 시골집 살림을 하며 나를 키우시느라..

시어머니는 또 얼마나 어렵고 힘드셨을까. 어려운 살림에 몸 아끼지않고 일하며 세 아이 살뜰히 거두시느라..

어머니아버지들의 힘든 수고를 그제야 알 것 같아서 눈물이 났던 것이다.



 





2년의 시간이 흐르고 

세 아이의 엄마로 정신없이 사는 중에 시나브로 알게된 또 한가지는

엄마아빠도 참 행복하셨겠다는 사실.


꽃처럼 예쁘다고들 하지 않는가.

아이들 자라는 모습이.

아가들 웃는 모습이. 

내 속으로 낳고, 내 품에 안고 젖물리며 한 발씩 한 발씩 키워낸 자식들이

따뜻한 햇살 아래 옹기종기 둘러앉아 고물고물 놀고 맛난 것을 오물오물 먹고 나를 향해 웃고 손 흔드는 모습을 볼 때

엄마아빠가 얼마나 행복하셨을지..

그 것을 이제 알겠다.


아이들은 내가 부모님께 받은 사랑을 알려주기 위해서 내게 왔구나.. 

세 아이 노는 모습 바라보던 어느날 문득 생각했었는데  

내가 부모님께 드린 기쁨을 알려주기 위해서도 왔나보다.

생활의 고단함도, 어려움도 잠시 잊고 그 순간 만큼은 빛나는 아이들을 향해 환하게 웃어줄 수 있을만큼.









 

하지만 이 고운 녀석들에게 나는 또 실수를 하고 잘못을 한다.

아이들 때문에 속 상하고 힘들다고

내 분노와 어리석음을 아이들에게 퍼붓고, 심어놓는다.


아이는 아직 어린 아이라서 그런 것인데, 

저희들도 이 부자유스런 환경속에서 견디고 자라느라 한껏 애를 쓴다고 쓰는 중인데

엄마는 북돋워주고 기다려주고 참아주는게 아니라

엄마 속에 배어있는 나쁜 것들을 폭발시키고 보여주며 고스란히 가르치고 있다. 


아직도 참 멀고 멀었다.


연호 돌잔치 포스팅이 좀 뜬금없는 엄마의 반성으로 끝나게 됐지만... 시작과 일맥상통한 면도 있다.


연호야, 미안하다..

엄마가 참 많이 부족하구나.

다가오는 봄.. 너는 세 돌을 향해 가고 있지.

엄마는 너에게 많이 배워야겠다. 

고운 마음, 다정한 마음, 깔깔 웃기, 도전하기..   

엄마에게 와줘서 정말 고맙다. 

우리 같이 잘 자라자. 

사랑한다.







Posted by 연신내새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