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1'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9.11.27 가을에 그린 그림과 생각들
  2. 2019.11.18 김장과 아이들
  3. 2019.11.05 책 고르기


올 가을은 내가 퍽 바쁘게 보냈나보다.
그림을 많이 그리지 못했다.
그림 수첩을 늘 들고다니기만 하고
펴들고 앉아 가만히 그림 그려볼 시간이 없었다.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것이겠지..





여름 끝무렵에는 선선한 저녁에 아파트 벤취에 앉아 있을 때가 좀 있었는데
그 때 정자와 정원 풍경을 그리다 말았다.
늘 같은 시간에, 같은 자리에 앉아서
같은 풍경을 바라볼 수 있는 것도 참 좋은 것 같다.
아버지가 고향집 마당 벤취에 앉아 마을 풍경을 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시는 것처럼
요맘때는 나도 아파트 정원이 꼭 내 정원인 것처럼
한적한 정자와 오솔길, 나무들을 바라보며 앉아있을 수 있어 좋았다.





우리 아파트에는 공작단풍이라는 단풍나무가 조경으로 많이 식재되어 있다.
지금 이 나무는 빨갛다못해 불타버린 것 처럼 검붉은 색깔로 단풍이 들어있지만
이 그림을 그렸던 초가을에는 가지끝에 달린 단풍나무 씨앗들만 빨갛고 잎은 온통 초록색이었다.







가을동안 혼자 조용히 그림그리는 시간은 못 가졌지만
화요일마다 캘리그라피 수업에서 수채화물감으로 그림그리는 것을 선생님께 조금씩 배웠다.
작은 그림을, 색이 자연스럽기를 바라며 그리는 것이 참 어렵다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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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에 큰 이모부님이 돌아가셨다.
명절 쇠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엄마와 통화를 하며 그 소식을 듣는데 눈물이 흘렀다.
오랫동안 못 뵈었던 큰 이모부.
젊은 시절 참 호탕하셨고 유쾌한 어른이셨다.
나를 보면 늘 반가워해주시고 예뻐해주셨어서 자주 뵙지 못해도 늘 마음에 감사함과 따뜻한 정이 있었다.

이모부님은 우리 아버지에게 아주 친한 한동네 형님이었다.
10월에 친정에 갔을 때 아버지께 여쭤보니
“그 이가 경포학교 18기, 내가 22기지” 하고 국민학교 졸업 기수를 얘기해주셨다.
나는 그 학교의 56기 졸업생이다.

큰이모부는 청년이 되자 고향을 떠나셨다.
멀리 대구, 아니 삼랑진까지 가서 일하실 때 큰이모를 만나 결혼을 하셨다.
그리고 큰 처제에게 듬직한 고향 후배를 소개해주셨는데
그 분이 우리 아빠다.
그러니까 우리 가족과 참 큰 인연이 있으신 분이다.

나고자란 고향에서 평생을 살고계신 아빠와 달리
큰이모부는 20대 이후로는 계속 타향에 사셨다.
대구에 오래 사셨고, 자녀들이 장성한 뒤로는 서울로 터전을 옮겨 언니오빠들의 대학과 결혼후 생활을 모두 함께 하셨다.

연수원 사업을 오래 하셨고, 호탕한 성품이셨고, 말씀을 재미있게 잘 하셨고, 사촌 언니들과 오빠와 그 손주들에게, 그리고 우리 조카들에게도 참 다정하셨던 분으로 나는 이모부를 기억한다.
무엇보다 만나면 나를 늘 아껴주셨고, 크게 되리라 잘 되리라 응원하는 말씀을 해주셨었다.

이모부님의 응원대로 큰 인물이 되지는 못했지만
지금 소박하게나마 내 가정을 꾸리고 잘 지내고 있는 데에는 이모부님이 보내주신 사랑과 축복도 늘 함께 했을 것이다.
감사하고 또 죄송하다.
결혼하고는 찾아뵙지도 못한 것이, 늘 감사했다는 말씀도 못 드린 것이..

이 겨울은 큰이모부님의 빈 자리가 가족들 모두의 마음에 시릴 것이다.
우리는 모두 이모부님을 기억할 것이다.
이모부님을 생각하면 젊으신 날의 웃는 얼굴, 그 억양과 목소리, 따뜻한 말씀들이 늘 마음속에 떠오를 것이다.
함께 해주셔서 정말로 감사했어요.
편히 쉬세요, 이모부.





Posted by 연신내새댁




주말에 친정에 가서 김장을 함께 하고 왔다.
전날 엄마아빠가 찬바람속에 밭에서 배추뽑아 절여 놓느라 고생하셨고
아침에 우리보다 일찍 도착한 오빠와 새언니가 배추들을 헹궈놓느라 또 고생하셔서
나는 그저 김치통 들고 가서
양념한 속만 잘 발라 김장김치를 여러통 든든하게 담가 왔다.





이제는 어엿한 김장김치 마스터가 되신 전&이 프로 부부시다 ^^
친정 가까이 사는 언니도 함께 와서 우리들 김장을 도와주고, 저녁에는 퇴근하고오신 형부까지 온가족이 모여서 생굴넣은 겉절이 김치에 돼지고기 수육 삶아서 맛있고 든든한 저녁밥을 먹었다.





아이들이 얼마나 많이 컸는지 모른다.
어른들이 김장하고 이런저런 일로 바쁜 동안 아이들은 저희들끼리 친정집의 뒷산과 모래밭으로 뛰어다니며 놀고
자전거타고, 보드게임하고, 연극 준비해서 저녁엔 공연도 한편 무대에 올렸다. ^^
강릉 할아버지댁에 모이면 으레 그렇게 노는 아이들이다.
이제는 중학생이 된 제일 큰 조카는 모래성도 엄청 멋지게 잘 만들고, 동생들을 데리고 연극 공연도 잘 만들어내는 멋진 친구다.
아이들 자라는 것은 볼 때 마다 신기하다.




김장이 한창이던 토욜 오후엔 할아버지와 연수아빠가 아이들데리고 경포호수에 가서 6인용 자전거를 타고 오느라 모두 낑낑 엄청 힘들었다고 투덜거리기도 했지만
그것도 지나고나면 두고두고 이야기하는 좋은 추억이 될 것이다. ^^
일요일 아침에 이렇게 할아버지와 감을 따본 추억과 함께 말이다.
작고 푸른 주머니가 달린 감 장대 안으로 감을 쏙 집어넣은후에 탁 당겨서 따는 감장대의 손맛은 그야말로 여러번 해봐야 손에 익는 감각인데
나도 어릴때 그렇게 감을 땄던 기억이 참 생생하고 좋다.
손에 익은 느낌은 더 오래 기억된다. 내 손으로 해보는 것이 그래서 참 중요하다. 손으로 해보고 발로 뛰어다니며 직접 밟아본 기억.
논두렁 밭두렁 뒷산 오솔길을 밟을 때의 감촉 같은 기억들 말이다.
그런 것은 오래오래 남아서 삶의 활력소가 되어준다.








예쁘게 깍은 곶감이 올망졸망 달려있는 아버지의 차고에는
아버지가 평생 써오신 손에 익은 도구들이 늘 제 자리에 잘 정돈되어 걸려있다.
봄이면 고운 흙이 깔린 모판에 예쁜 볍씨를 자라락 뿌려주던 기계와
논에 모를 심어주던 이앙기, 호미들, 줄자들, 밀집모자,
내년에 씨앗하려고 말려둔 옥수수까지
고향집의 창고를 보면 언제나 신이 나고 호기심이 인다.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보물창고 같은 곳.






고향집에 가면 언제나 힘이 난다.
밥도 많이 먹게 되고 목소리도 더 활기차진다.
엄마아빠 옆에 가니까 나도 아이로 돌아가서 그런가. ^^
우리 아이들과 조카들도 그럴까?
자기들 집에서도 까불고 놀겠지만 강릉 할아버지댁에 오면 더 신이 나고 목소리도 높아지고 펄쩍펄쩍 방방 뛰게 될까?
함께 모이니 더 그렇겠지.
반가운 언니오빠 동생들과 북적북적 어울리고
할아버지 할머니 넉넉한 품에서 어리광도 부리고
뛰어도 아무도 뭐라하지 않는 넓은 마당과 언덕을 쏘다닐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을까.

부모님 곁을 떠나서 각자의 자리로 돌아오면 또 어려운 일들이, 어른과 부모라는 이름으로 감당해야하는 삶의 무게들이 저마다 만만치 않게 기다리고 있지만
우리 아이들에게도 숙제와 학원과 학교와 또 제나름 힘든 과제들이 다가오겠지만
강릉에서 함께 보낸 시간들이 모두에게 어깨 좀 펴고 한번 더 씩 웃으며 걸어갈 수 있는
힘이 되어줄 것이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김장김치 속에, 배추와 무와 홍시 안에 듬뿍 담아 보내신 것은
고향의 가을이고, 사랑이다.

가족들 곁에서 시원한 공기를 마음껏 들이마시고
즐겁게 일하고 웃고 이야기하고 돌아오니
추운 겨울이 와도 따뜻하게 지낼 수 있는 마음의 양식이 든든히 채워진 것 같다.
그러나 이렇게 내가 충전하고 올수 있도록 준비하고 애쓴 엄마는 몸살이나 나지않으셨는지,
대식구 식사와 김장 뒷설거지 도맡아하며 고생한 새언니도 많이 힘드시지 않은지..
누군가의 희생 위에 내 안온함이 기대고 있지는 않은지 죄송하게 돌아보는 아침이다.

모두들 맛있는 김치 많이 먹고 아프지말고 겨울 잘 났으면 좋겠다.




Posted by 연신내새댁
umma! 자란다2019. 11. 5. 12:36

어릴때 우리집에는 어린이책 출판사인 ‘계몽사’의 판촉 사원 아저씨가 자전거를 타고 찾아오시곤 했다.
키가 크고 따뜻한 인상이었던 걸로 기억되는 나이가 지긋하셨던 계몽사 아저씨의 자전거 뒷자리에는
계몽사에서 나온 어린이 전집 종류를 소개하는 팜플렛이 꽂혀 있었다.

농사일에 바쁜 엄마가 잠시 짬을 내 뜨락에 앉거나 서서 아저씨가 팜플렛을 펼치며 소개하는 전집 설명을 들으시는 동안
나는 그 주위를 괜히 기웃거려보곤 했다.

책이 귀한 시골에서 우리집은 책이 꽤 많은 집이었다.
범우사르비아문고의 어린이세계명작은 60권 정도되는 작은 문고판 책이었는데 재미있는 작품들이 많았다.
내 유년기의 학습과 정서는 그때 우리집 책장에 꽃혀있던 책들에 아주 큰 영향을 받았다.
위인전들, <금오신화>, <구운몽> 같은 한국고전들도 전집으로 읽었고
좀 더 큰 뒤에는 김동인, 현진건, 김유정 같은 현대 소설가들의 단편 소설 전집과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테스’처럼 고전 명화로 만들어진 작품들을 모아놓은 전집도 읽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책값은 만만치 않다.
다 잘 읽으리라는 보장도 없지만 그래도 선뜻 책을 사실 때에는
책이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어주리라는 믿음이 우리 부모님께 있으셨겠지.

그런 부모님 덕분에 나의 청소년기의 정신세계는 참 풍요로웠다.
감사하고 감사한 일이다.
자연속에서 보낸 유년기와 함께 좋은 책이 많았던 청소년기를 보낸 것은 얼마나 감사한 일이었는지.

우리 아이들을 키우면서 어릴 때는 좋은 그림책을 많이 읽어주려고 했다.
뒤로 갈수록 많이 못 읽어줘서 아쉽지만 학교에 들어간 큰 애와 둘째는 다행히 자기들이 책을 좋아해서 책을 열심히 본다.
그런데 학습만화 종류를 주로 많이 읽는다.
만화는 책보다 훨씬 읽기가 쉽다.
줄글로 된 책은 훨씬 책읽기 훈련이 되어있어야 온전히 책 내용을 이해하고 감동도 느껴가며 읽을 수 있다.

만화책도 나름의 좋은 점이 있지만
좋은 책이 줄 수 있는 고유의 감동과 깊이가 따로 있다.
아이들이 좋은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나도 요즘 아이들 책을 열심히 찾는다.
우리집에는 계몽사 아저씨가 오시지 않으므로
인터넷 서점과 좋은 추천도서들 목록을 구해 나름대로 열심히 찾는다.

요즘은 정보가 워낙 많고, 아이들 책 또한 너무 많기 때문에 그중에서 정말 좋은 책, 필요한 책을 찾아내는 것이 쉽지 않다.
고전, 명작 위주로 잘 추천해주시던 계몽사 아저씨의 팜플렛이 그리워지는 순간이다.

내가 다녔던 작은 시골 초등학교에 3학년 때쯤인가 처음으로 도서관이 생겼었다.
서가가 크지않았기에 정말로 또 좋은 책들만 엄선하여 들어올 수 있었던 작은 도서관이었다.
반짝반짝하는 새 책 맨 뒷장에 붙어있던 도서카드를 꺼내 내 이름을 적고 대출하던 기분이 지금도 생각난다.
셜록 홈즈와 괴도 루팡 시리즈를 읽고, <초원의 집>, <작은 아씨들>, <시튼 동물기> 같은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던 것 같다.
요즘 우리 아이들에게 내가 좋아했던 책을 읽혀줄까 싶어서 다시 구해 읽어보니
좋은 면도 있지만 아쉬운 면들도 이제는 보였다.
그때는 그저 감동과 재미에 푹 빠져 읽었는데..^^
나이가 들어서 다시 봐도 좋은 책도 많지만, 그동안 읽어온 다른 책들이 있다보니 어릴때와 같은 기준으로 읽게되지는 않는 것이다.

아이들 책, 어른 책.. 여러 책들을 읽고 하면서 내가 책읽기를 참 좋아했구나.. 하는 걸 새삼 느꼈다.
늘 좋아한다고는 생각했지만 따로 좀 정리를 해봐도 좋을만큼
책이라는 친구가 내게는 늘 가까이 있었고
큰 즐거움과 기쁨과 위로와 힘이 되어주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책 이야기를 따로 좀 해보려고 한다.
네이버에 <바람이 불어오는 곳>이란 이름으로 책 이야기하는 블로그를 하나 따로 마련했다.
원래 네이버에도 블로그가 있었는데 안 쓰고 있다가 이번에 책 이야기 블로그로 따로 열어보았다. 책에 대한 이야기가 얼마나 쌓일지는 모르겠지만 또 하나의 소중한 내 공간으로 꾸려가보고싶다. 놀러오세요~~^^
(Http://m.blog.naver.com/dlahrrh)

아참참, 원래 이야기로 돌아가면...
그래서 어렵게 이번에 아이들을 위해 ‘고전 책’전집을 하나 구입했다.
우리 꼬마들이 재미있게 잘 읽어주길...! ^^
부족한게 많은 엄마지만 자연과 책, 두 가지의 아름다운 세상을 더 풍부하게 느끼게 해주지 못해 늘 미안한 엄마지만
열심히 노력중이야.
재미있게 읽고, 건강하게 자라렴. 우리 꼬마들~!





주르륵 꽂힌 전집을 보니 내 어린 시절 언니방에 있던 갈색 책장이 생각난다.
재미있는 전집들로 가득 했던 나의 보물상자가. ^^

Posted by 연신내새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