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mma! 자란다2008. 4. 3. 12:22
새댁이 다니는 산부인과병원은 자연분만율이 높고, 모유수유를 적극 권장하는 병원으로 많이 알려져있는 병원입니다.
덕분에 유니세프에서 지정하는 '어린이친화병원'으로도 선정되어있데요.
집에서 버스로 10분정도 거리에 이 병원이 있어서 새댁은 많이 든든하고 좋습니다.
이제 출산이 두 달앞으로 다가왔는지라 약간 긴장도 되고
막상 뭐부터 해야할지는 잘 알수 없지만.. 아가와 만날 준비도 나름대로 이것저것 해볼려고 노력중인 새댁,
어제는 그 일환으로 신랑과 함께 병원에서 하는 '모유수유교육'에 다녀왔습니다.

주말에는 '출산준비교실'이 4주과정으로 매달 진행되기 때문인지
모유수유교육은 주중에만 진행되더라구요.
덕분에 직접 수유를 할 엄마와 그 엄마를 도울 든든한 도우미도 꼭 함께 받아야 한다는
모유수유교육에 참여하기 위해 신랑은 회사에 반차를 쓰고 왔습니다. (와~! 짝짝짝!!^^)

모유가 아기의 건강에도 좋고, 정서발달에도 좋은 최고의 음식이란 얘기는 많이 들어서 알고있었지만
과연 아기가 먹기에 충분할만큼의 유즙이 나올지 새댁은 몹시 걱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희 엄마도 젖이 잘 나오지 않아 저희 형제들을 모두 분유로 키우셨거든요.
그런데 교육을 받고 보니, 포기하지 말고 열심히 시도한다면
처음에는 잘 안나오더라도 나중에는 아기에게 충분한 양의 모유수유를 할 수 있을 것 같더라구요.
안심도 되고.. 또 결의도 만빵! 다지게 되었답니다. ^^
신랑은 신랑대로 아토피가 약간 있는 자기 피부가 아기에게 유전될까봐 걱정하고 있었는데
모유수유가 아기들의 면역체계도 훨씬 강화시켜주어 알러지나 아토피피부염도 현저하게 줄여준다는
얘기에 적잖이 안심하면서... 역시나 모유수유에 꼭 성공하기 위한 결의를 다지는 것 같았습니다.
왜 모유를 먹어야하는지 부터 처음과 중간에 찾아오기 쉬운 힘든 고비들과 그걸 어떻게 넘어서야하는지
그리고 아기안고 수유하는 법까지 아기인형으로(^^;) 실습시켜주는
3시간여에 걸친 교육은 무척 알차고 고마웠습니다.

한가지 재미있었던 얘기는 왜 우리나라에서 이렇게 분유수유율이 높아졌는가 하는 것이었어요.
북유럽의 경우 모유수유율이 90%에 달하는 반면, 우리는 모유수유에 대한 인식이 높아진 요즘까지도
모유수유율은 10% 정도밖에 안된다네요.
직장다니는 엄마들이 회사에 탁아시설이 있어 아이를 거기 맡겨놓고 짬짬이 수유를 할 수 있는 환경도 아니고,
육아휴직이 긴 것도 아니고...
꼭 워킹맘이 아니더라도 아이를 데리고 외출했을때 맘편히 수유할 수 있는 공간도 없으니...  
이런저런 안타까운 현실이 새댁의 머리속을 스쳐가는데 답은 의외의 곳에서 나왔습니다.

국내에 분유산업이 처음 도입된 것은 박정희정권때라는군요.
그때 영부인인 육영수여사가 직접 분유수유를 권장하고 나섰데요.
그 일환으로 '우유'를 먹고 통통하게 살이 찐 아기들이 몸매를 뽐내는 '우량아선발대회'도 진행하면서, 영부인이 직접 시상도 하고 아기안고 사진도 찍고 그랬다네요. ^^
그런데 당시 분유값은 정말 비쌌기 때문에 부자집 아이들만 먹을 수 있었지만
사람들의 인식속에는 '아 그래 맨날 김치만 먹는 내 젖에 무슨 영양가가 있을까! 나중에 돈 많이 벌면 우리 아기(손자손녀)한테는 꼭 분유먹여야지!!'하는 결심이 자연스레 섰고
이것이 80년대 경제호황기를 경과하면서 분유수유율이 압도적으로 높아지는 결과를 낳았다나요..
 
모유의 우수성이 아직 잘 알려지지 않았던 때이기도 하고, 경제성장과 함께 일하는 여성이 늘어난데다가
분유산업과 정권이 함께 '분유'를 권장하면서 만들어냈을 이런저런 이미지들까지 생각하니
분유수유율이 높은 것이 당연하다 싶었습니다.
그때 일하는 엄마들이 있는 기업에서는 의무적으로 탁아시설을 설치.운영하게 해서
모유수유를 돕는 사회 제도와 분위기가 만들어졌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유럽처럼 '모유은행' 같은 것도 만들어서 미숙아나 소아질환을 가지고 태어난 아기들에게
최상의 약이자 음식인 모유를 공급할 수 있게 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유가 아기에게 좋은 것은 사실이지만 사회적인 조건도 분위기도 어려운 우리 사회에서
현실적으로 모유수유는 너무 힘든 과정입니다.
실제 젖이 잘 안나오는 엄마들도 있고,  모유수유에 성공하기 위해 필요한 충분한 시간과 노력을 기울일 수 없는 조건에 처한 엄마들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분유수유를 하는 엄마들을 마치 '모성애가 없는 엄마'처럼 매도하는 태도도 조심해야할 것입니다.
언젠가 친구가 이 얘기를 해주었어요. 정말 그렇겠구나.. 엄마가 자기 아이 사랑하는 마음에 차이가 있을 수 없습니다. 모유수유를 못하는 엄마들의 아픈 마음이 오히려 더 위로받아야할 마음이겠지요.

새댁과 신랑은 가사분담도 그렇지만, 육아도 '함께' 해나간다는 원칙하에
교육도 함께 받고 역할분담도 잘 해나가려고 하고 있습니다.
함께 살아가는 결혼생활이고, 함께 낳아, 함께 키우는 아이니까요.
그래서 이번 모유수유교육도 같이 들었는데, 수유는 물론 엄마가 전적으로 책임지는 일이지만
그 성공을 위해 신랑도 할 역할이 아주 많더군요. ^^
교육을 같이 받아 무척 다행이었습니다.
12명 정도의 임부들이 참가했는데 그중 친정어머니와 함께 온 임부가 3명 정도, 그리고 신랑과 함께 온 임부도 저까지 3명 정도가 있었어요.
처음에는 신랑과 함께 온것이 자랑스러워 약간 으쓱한 기분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얼마전에 임신관련책자에서 '싱글맘이더라도 병원에서 하는 각종 출산, 육아관련 교육에 적극적으로 참가하시라. 엄마나 언니 등 가족과 함께 가도 좋고, 또 혼자 오는 임부들도 많으니 개의치말고 꼭 가시라'고 써있던 것이 떠올랐어요.
그렇겠다... 미혼모이거나 싱글맘, 또는 여러 이유로 혼자 아이를 낳고 키워야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아이는 남자와 여자가 함께 만든 생명이니 함께 키워야하지만, 그렇지않은 가정도 있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아직 동성애부부가 법적으로 인정되지 않고 있지만, 그런 가족도 현실에서 있을 수 있구요.
신랑과 함께 교육받으러 온 것을 혼자온 분들께 미안해할 일은 아니지만, 뻐길 일도 아니겠구나.. 싶었습니다.
그렇다고... 육아를 한쪽에게만(대개 여성에게) 전적으로 맡기고, 이런 교육과 준비에도 아빠는 쏙 빠지는데 핑계로 삼을 일도 아니겠지요. ^^
 
자연스러워지면 좋겠습니다.
아빠가 육아를 당연한 자기 일로 생각하고 동참하는 일도, 싱글맘이 당당하게 혼자 아이를 키우는 것도,
동성애부부가 아이를 키우는 것도, 입양을 하는 일도...
중요한 것은 사랑으로 아이를 키우고, 아이를 자신의 소유물이 아닌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하고 그 성장을 돕는 것이니까요.
미혼모를 위한 출산/육아 교육도 많아져야할텐데.. 사회복지사인 친구에게 들으니 미혼모가 출산을 하거나 아기를 입양시키는 기관은 약간 생겼지만
아직 우리사회에서 이들을 위한 교육이나 출산전에 쉬고 묵을 수 있는 시설은 별로 없다고 하더라구요.
원치않은 임신을 했을지라도 그 생명을 낳겠다고 결심한 순간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출산/육아도움기관이나 교육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무료여야겠지요~(이런저런 교육비가 꽤 많이 들어요!ㅠ.ㅠ) 

하필 교육받는 날이 비오고 추운 날이어서 새댁은 오늘 약간 몸살기운이 생겼습니다.
오늘은 화창하게 날이 개어 따순 봄햇살받으니 좋습니다.
목련, 개나리, 산수유, 벚꽃... 동네 골목과 이웃집 뜨락들이 봄꽃들로 환합니다.  
여름에 태어날 아가와 함께 새댁도 이 봄에 더 건강하게 잘 자라야겠습니다.
Posted by 연신내새댁
신혼일기2008. 3. 27. 18:22
오늘 오후에는 햇님이 구름에 가려졌다 다시 나타났다를 반복했습니다.
새댁은 서재에서 책을 읽다가 봄햇살이 한동안 따뜻하게 내리쬐는 타이밍에 베란다로 나가 해바라기를 했지요.

그런데 어디서 색다른 노래가락이 들려왔습니다.
어딘고.. 하고 동네를 훑어보니 고등학교로 올라가는 우리동네에서는 나름 큰길인 골목으로
'평화통일가정당'의 유세차량이 지나가고 있었어요.
"평화통일! 평화통일! 평화통일가정다아앙~~~~"
신기한 당명 만큼이나 신기한 노래가락이 한낮의 고요한 동네를 흔들어놓고 있었습니다.
요즘 중학교는 일찍 끝나는지 오후3시가 조금 넘었을 뿐인데 교복입은 아이들이 두서넛씩 짝을 지어 골목길을 걷거나 햇빛 비치는 길가에 서서
입간판을 세운 트럭이 노래가락을 뿌리며 지나가는 것을 구경하고 있었습니다.

4월 9일에 있을 18대 총선의 선거운동이 시작된 것입니다.
조금 지나니 연신내역쪽의 진짜 큰 길가에서 어느 후보가 유세를 하는지 웅웅 거리는 마이크 연설소리도 들려왔습니다.
새댁이 사는 지역구는 문국현 씨와 이재오 씨의 대결로 여론의 주목받고 있는 바로 그 동네입니다.
음~~ 새댁의 한표는 늘 중요했지만, 이번에도 중요하게 되었습니다. ^^

4월. 4년에 한번씩 열리는 총선은 해마다 4월에 열립니다.
1996, 2000, 2004년.. 총선에 대해서는 이것저것 따라붙는 기억이 많습니다.
집권당의 대선자금비리와 등록금 인상을 규탄하는 집회에 참가했던 학교선배가 총선을 앞둔 정권과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숨졌던 96년..
내일도 대학생들의 등록금인상반대집회가 도심에서 열리는 모양인데
'경찰기동대', '체포전담조' 등 무서운 단어들이 함께 실린 신문기사를 보며 그만 12년전 봄이 떠올라 섬찟했습니다.  

제가 참가했던 첫번째 총선이었던 2000년 총선은 낙천낙선운동이 신선한 충격을 주었었구요,
2004년 총선에선 처음으로 도입된 '비례대표 정당명부제'에 힘입어
진보정당이 10명의 의원을 배출하며 처음으로 국회에 입성하는 감동을 맛보기도 했습니다.
정당 이름이 쭉 나와있던 길다란 투표용지에 투표하는 연습을 해보던 기억이 새롭네요.

어느새 2008년.
저마다 가지고 있는 더 많은 더 깊은 '선거의 추억'들.. 많이 생각나시죠?
나이를 한살한살 먹어가고, 결혼을 하고, 태어날 아이와 함께 살아갈 내일을 생각하면 할수록
9시 뉴스와 신문을 보며 분통을 터트리는 일이 늘어납니다.
뉴스에서 나오는 정치, 경제, 사회.. 기사 한꼭지 한꼭지가 내 삶의 살갗에 와서 그대로 착착 감기는 기분입니다.
정말 잘 뽑아야겠고, 정말 정치를 바꾸지 않으면 안되겠구나...
대학시절과는 정말 또다른 감각으로 절감하게 됩니다.

4월.. 생각나는 사람이 또 있습니다.
봄이 아니어도 지난 한 해 살아오는동안 때때로 떠올라서 마음 한 끝이 먹먹하게 아파오곤 했습니다.
서울시내 곳곳을 택시로 누비며
민주노동당과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혹은 참여연대에서 나온 유인물과 서명용지를 손님들께 건네던 그 분.
그 분 계신 모란공원에도 이제 봄꽃이 필텐데...
지난 1년 나는 어떻게 살아왔는지..
다시 봄, 어떤 모습으로 그 분앞에 서야할지.. 생각하면 막막합니다.

갈짓자로 어지럽게 내딛은 발자욱은 없었는지.. 걸어온 길을 돌아보고
옷매무새 가다듬고 신발끈도 조이고.. 더 열심히, 정말로 제대로 살아가겠다고.. 마음먹는것밖에
이 봄에 할 수 있는게 더는 없는 것 같습니다.
봄이 더 깊으면.. 그분 다시 뵈러갈 용기를 낼 수 있도록요.
 

  
Posted by 연신내새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