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동네.세상2008. 5. 26.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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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새댁과 신랑도 '광우병소고기 수입 반대' 촛불문화제에 다녀왔습니다.
저 예쁜 리본이 '30개월 이상 미국산소고기 수입에 반대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봅니다.
나눠주는 리본을 가슴에 달고, 작은 촛불을 하나씩 밝히고.. 이 초가 다가오는 어둠을 조금이라도 밀어내주기를 바라며
오래 있지는 못했지만 새댁과 신랑도 잠시 청계광장 한 구석 자리를 밝히다 돌아왔습니다.
다음날 아침, 뉴스를 보니 밤샘 시위와 함께 많은 사람들이 경찰에 연행되었더군요.
마음이 찌르르하고 아파왔습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재협상에 나서라는 것이 그렇게 무리한 요구인 걸까요...
이 정부는 왜 국민의 목소리에 이다지도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일까요.

오늘 산모체조교실에 함께 다니는 한 엄마는
"무서워서 어디 애기낳고 소고기미역국 먹겠냐.. 우리는 이제 산후조리할 때 사골미역국도 못 먹어요'라며 혀를 끌끌 찼습니다.
정말 그렇더라구요.
장관 고시는 또 연기되었지만 재협상을 통해 '20개월미만 소의 살코기'만 수입하는 등의 그나마 안전한 수입조건이 마련되지 않는 이상
이 '광우병소고기 공포'는 가라앉지 않을 것입니다.
단체급식이 이루어지는 많은 곳들-오늘에서야 '병원'도 그 중에 있다는 생각을 새댁은 처음 하게된 것입니다ㅠ 그동안은 학교랑 군대만 걱정했지요-과 식당들, 정육점 어디든
먹는 사람도, 파는 사람도 모두 찝찝하고 무서운 마음을 씻을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오늘 손에서 손으로 건네지는 작은 촛불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이렇게 불신의 시선을 던져야만 하는 사회를 막기 위해 켜는 작은 안전등인지도 모릅니다.  

'책임' 이라는 말의 무게를 새삼 느낍니다.
"엄마 아빠는 그때 뭐했어?"라고 묻는 아이에게 "응.. 그때 우린 말이야... 그게 말이지..." 하며 민망해하고 미안해하지 않기 위해
조금이라도, 무엇이라도 더 해야할텐데..
새댁이 종종 가는 육아관련 까페들에도 모두 '미국산 소고기 수입반대' 대문이 걸렸습니다.
모두가 같은 마음이라는데 든든함과 감사함을 느낍니다.

엊그제 촛불집회장에는 오랫만에 뵙는 반가운 얼굴들이 많았습니다.
그 분들은 저를 잘 모르시지만 저는 압니다.
예전 미선이효순이 촛불집회때 매일 광화문을 지키시던 이관복 할아버지,
그리고 말씀 한마디 없이 늘 촛불집회에 나와 주변 청소도 하시고 엠프 나르는거며 이런저런 일들을 거들곤 하시던 이름모를 중년의 아저씨.
참가자들이 유난히 적던 어느날, 이 분은 늘 메고 다니시던 작은 가방(꼭 봇짐같이 생긴)을 열어 까만 봉지를 꺼내셨는데
그 안에는 공장에서 바로 담아온 것 같은 작은 카라멜사탕들이 가득 들어있었습니다.
참가자들에게 나눠준 그 사탕을 먹으며 저는 '이 사탕은 이분이 만든게 아닐까' 생각했었습니다.
큰 체구에 순한 얼굴과 눈매가 인상적이던 이 분도 청계광장 촛불바다 한 구석을 환하게 밝히며 서계셨습니다.
그 분들을 뵈니 문득 이 자리에 안계신 한 분 생각이 또 났고, 마음이 먹먹했습니다.
어디선가 나타나 '저녁은 드셨어요?'라며
온얼굴에 주름을 만들어내는 예의 그 아름다운 웃음을 환하게 지어주셔야할 분,
자신처럼 단단하게 생긴 촛불 한자루 다부지게 틀어쥐고 계셔야할 그 분, 허세욱 선배님.
찾을 수 없는 그 한사람 빈자리에 넓은 촛불집회장이 텅 빈것 같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도 그 자리를 꽉 메워줄 얼굴모르는 수많은 사람들 생각에 새삼 힘이 납니다.
살아있는 사람들은 또 오늘도 아름다운 싸움을 계속할 것입니다.
이 경험을 통해 한층 지혜롭게 자라날 이 땅의 청소년들도 생각하면 희망입니다.
분노스럽고 힘겨운 5월이 지나가고 있지만, 그래서 이땅의 5월이 눈부시게 아름다워지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열심히 싸워주고 계신 모든 분들께 마음 깊이 감사드립니다.  




Posted by 연신내새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