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mma! 자란다2015. 7. 9. 21:57



5월에 어린이집을 그만둔 연호가 발레를 하고 싶다고 해서 이번 달부터 발레를 다니고 있다. 

엄마가 권하기도 했고, 이웃누나가 하는걸보고 자기도 해보고싶다고 신청했던 것인데 막상 가서는 낯설고, 남자아이도 없고하니 안하겠다고 해서 첫시간은 뒤에서 나랑 연제랑 연호랑 셋이 앉아 구경만 하고 왔다. 

연제가 오히려 잘 따라하고, 연호는 남자아이용 발레복을 입은 제 모습이 쑥스러워서 장난만 자꾸 치려고 했다. 


발레하고싶다고 조르더니 왜 안하고 싶어졌냐는 내 물음에 연호는 "이건 좀 망신이잖아~~" 했다. 

내 얘기를 전해들은 아빠가 '망신'이라는 어른스러운 단어때문에 재밌어서 한참 웃고는, 다음날 아침 회사출근하기 전에 남자도 발레를 하고, 남자 발레리노가 춤추는 멋있는 발레공연도 많다, 좋은 운동이 될거다, 기왕 하기로 했으니 이번달은 열심히 해보자.. 잘 설득해줘서 그 다음 시간이었던 오늘은 열심히 잘 했다. 선생님이 유연하고, 진지하고 잘 한다고, 멋진 왕자가 되겠다고 칭찬을 듬뿍 해주셔서 그런지 돌아오는 길에 연호는 아주 신나했고, 씩씩한 자신감과 뿌듯함이 느껴졌다.  


나는 발레수업에 유일한, 그리고 이 반에서 가장 어린 나이대의 왕자(?)님을 보낸 엄마의 특권으로(^^;) 첫시간에 이어, 오늘도 선생님의 양해를 얻어 맨 뒤에 앉아 아이들 수업을 지켜보았다. 세살 연제도 내 옆에서 나름 열심히 형아누나들을 따라하는 동안, 아름다운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시원한 소강당에 편안히 등을 기대고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너무 달콤한 휴식을 누렸다.  


뒤에 앉아서 보니, 연호가 용기를 내고 마음을 먹은 것도 있지만, 연호 바로 옆자리에 앉아서 연호를 잘 가르쳐주고 진지하게 발레수업에 임하는 소원이 누나의 존재가 참 컸다. 

소원이는 연수와 아주 친한 같은 반 친구이기도하고, 우리집과 자연놀이 텃밭농사도 함께 짓고있는데 

어린 남동생이 둘이나 있는 큰누나라 연호를 잘 봐주기도하고, 또 발레를 좋아해서 열심히 하는데 연호가 누나에게 좋은 영향을 받고 있는게 보여서 참 고마웠다.







어제 우리 동네 이웃 엄마로부터 참 귀중한, 나에게 아주 절실했던 배움을 얻었다. 

연제가 두돌이 된 지난 봄 즈음부터 나는 세 녀석 사이에서 '재판관' 노릇을 자청해서 하느라고 무척 힘들었다. 

형들이 어린 연제를 너무 배려해주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아직 말이나 모든 면에서 형들보다 한참 어린 연제를 내가 대변(?)해줘야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막내로 자라 본래 어린 동생들의 권리에 민감한 나이기도 하고, 약자에 대한 이해와 배려라는 중요한 가치를 아이들에게 꼭 가르쳐야한다는 생각도 강했다. 

권리의식, 평등, 정의.. 이런 가치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엄마인지라, 아이들의 갈등 상황에서 내가 이런 가치들로 상황을 공정하게 잘 정리해주고 가르치면 아이들도 잘 배울 수 있을거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그 역할을 언제, 어느만큼, 어떻게 해야하는지는 잘 모르고 있었던 것 같다. 


세 녀석은 집에서 징글징글하게 싸운다. 

형 둘이 잘 놀고 있으면 연제가 가서 저도 끼워달라고 하는 것이 형들이에게는 훼방이고, 방해가 되어서 밀쳐내거나 따돌릴 때가 많았다.

셋이 한데 엉켜 잘 논다 싶다가도 어느 하나가 엥 우는데 가보면 큰 형이 놀다가 세게 발로 차거나 아무튼 아프게 해서 동생 중 하나가 울음이 터진 경우가 많았다. 


그 모든 사건에 일일이 개입해서 중재하고, 판가름하고, 잘못한 녀석 혼내려니 재판관이 얼마나 바빴겠는가.ㅠㅠㅠㅠ

잘 노는 평화로운 순간도 없진 않지만, 정말 잠깐이고, 나도 아이들 혼내다가 날이 있는데로 서거나 마음이 상해서 아이들에게 심하게 화를 내서 그전에 내가 아이들에게 요구했던 '사이좋게, 평화롭게 잘 지내기'라는 가치를 내가 오히려 마구 짓밟아버린 때도 많았다.





그런데 어제 마당 벤치에 함께 앉아 우리 아이들 노는 모습을 지켜보며 얘기나누던 나이많은 언니가 내 모습을 보곤 말씀하셨다.


"아이들끼리 다툴 때는 절대 끼면 안돼요. 자기들끼리 다 해결할 수 있어요. 그래도 큰일 안나요. 나중에 엄마한테 와서 '엄마, 이렇게 됐어'하고 얘기할 때나 '응, 그랬어?'하고 대답해주지 먼저 나서서 정리해주려고하면 안 되요." 

내가 "그래도 어린 동생을 너무 심하게 대할 때가 있는걸요, 때리기도 하고." 했더니 "울면서 엄마한테 오면 잘 다독여주고, 한번씩 타일러줘요. 그럼 금방 저희들끼리 안 그러게 돼요. 큰 형아 기를 살려줘야해요. 큰 애 기를 살려줄 수 있는 때가 어릴 때말고는 별로 없어요. 방금 보니 막내 편을 자꾸 들어주니까 막내만 기가 너무 살아요." 하셨다.


"엄마는 말을 아껴야해요. 자꾸, 길게 얘기하면 점점 안듣게 돼요. 자꾸 그러면 초등3학년만 돼도 엄마 말에 딱 귀 닫아요. 정말 안들린다고 해요. 듣기 싫어지면 그렇게 되지요. 처음에 '이렇게 하자' 하고 딱 한번 얘기하고 말아야돼요. 그리고 상황을 정리해야될 때 또 딱 한번 다시 말해주고. 그러면 아이들이 자연히 엄마 말에 주의를 기울이게 돼고, 유념하고 있어요."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가르침이었다. 

그 얘기를 듣고보니 내가 요즘 고민하던 여러 가지 문제들이 천천히 교통정리가 되기 시작했다. 

너무 지나치게 중재를 하고 있었다. 사사건건 중재하고, 처벌(?)하려니 나는 나대로 힘들고, 아이들은 늘 판단은 엄마의 몫이니까 스스로 판단하거나, 스스로의 행동을 조절하지 못하고 있었다. 

연제는 지나치게 엄마의 힘을 빌려 제 욕구를 관철시키려고 하고 있었고, 제 뜻대로 안된다고 먼저 형들을 때리기도 했다. 연수와 연호는 엄마가 지켜주지(대변해주지) 않는 자신들의 정당한 권리(?)를 제 힘으로 지키기위해 과하다싶은 폭력이나 거친 언행도 자꾸 나오고 있었다. 

당연히, 사이좋게 놀 수가 없었다.ㅠㅠ 






큰 아이 기를 살려줘야 큰 아이가 큰 아이답게, 큰 형 노릇을 할 수 있겠다 싶었다. 

나는 연수가 너무 성격이 강하다고만 생각했다. 

연호가 부드럽고 여린 성격인데 반해, 형은 너무 거칠고 제 뜻대로만 하려한다고 생각했다. 연수 행동에 그런 면이 있는건 사실이다. 

왜 그렇게 됐을까. 본래 성격이라고만 하기엔, 엄마가 늘 동생들 편에 서서 연수에게 제 욕구를 좀 희생해줄 것을 요구해왔던 것도 연수를 더 예민하고, 거칠게 제 욕구를 내세우게 만든 원인일 수 있겠다 싶었다. 

그리고 연수가 스스로 자기 행동을 돌아보고, 생각해볼 시간을 너무 주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수가 맺고 있는 중요한 관계들 안에서 연수도 자기 힘으로 생각해보고, 충분히 스스로를 변화시킬 수 있을 터였다. 

기다려주는 것. 언니는 "엄마는 많이 인내해야해요. 아이들은 아주 많이 기다려줘야해요."란 얘기도 하셨다. 

 

나도 분명히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인데, 요즘 정말 많이 잊고 있었다. 

연제가 요즘 화를 자주, 심하게 낼 때가 있다. 자기가 하고싶은 일들을 엄마가 기다려주지 않고 엄마 맘대로 했을 때, 그 때 아주 격렬하게 분노를 표출한다. 누가 봤다면 '아이가 경기를 한다'고 생각할 정도로 부들부들 떨 때도 있다.

"엄마가 미안해. 연제는 어떻게 하고 싶었어?" 하고 물어보면 금방 진정이 돼서 이렇게, 저렇게 저 나름대로 할 수 있는 말들과 행동을 섞어 '이렇게 할 거야'하고 의사를 표현한다. 

그런데도 나는 연제가 성격이 참 쎄다, 꼬맹이가 어째 이렇게 불같이 성질을 낼까, 걱정이다.. 이런 생각을 주로 했지 

내가 더 기다려야한다는 생각은 못 하고 있었다. 셋째가 유별나다고 생각했지, 엄마가 셋째 육아에 있어서는 너무 기다리지 않고 있다는 판단을 못 하고 있었다. 

근데 언니는 연제를 대하는 내 태도를 보며 금방 짚어냈다. "아이가 아직 대답을 안 했잖아요. 그런데 엄마 맘대로 하면 안되죠."

ㅠㅠ







나는 즉각 재판관의 자리에서 물러났다. 

엄마의 자리로 돌아왔다. 

아이들은 잘 놀았다. 싸우기도 했지만, 내 개입이 사라진대신, 각자가 역할을 나눠맡았다. 

연호는 연제가 잘못하면 형 편을 들며 연제에게 '한번만 더 우리 형아 때리면 나한테 혼날 줄 알아'라며 무섭지않지만 단호하게 연제를 가르쳤고, 연수도 적절한 선에서 참았다.  

대신 연호는 어느 때보다 연제를 잘 데리고 놀았다. 형이 있으면 늘 형이랑만 놀던 연호였는데, 엄마가 연제를 감싸고 두둔하지 않으니 연호가 연제를 챙겨주었다. 

연제도 엄마에게 매달리는 것이 훨씬 줄었다. 어디가 아프다고 울면서 찾아올 때 위로해주고 다독여주면 잠시 후엔 다시 형들에게로 돌아가 잘 놀았다. 엄마가 빠진 자리에서 셋은 스스로 어떻게 해야하는지 생각하고, 셋의 조화와 평화를 어떻게든 만들어갔다. 







한참을 셋이 잘 놀더니 연호가 설겆이를 하고 있는 내게 와서 말했다. 


"엄마, 난 엄마가 나한테 화내지 않으면 나도 연제한테 화내지 않고 잘 데리고 논다~~^^"


이렇게 부끄럽게도 콕 집어주시는 꼬마 선생님이라니...ㅠㅠ


연호는 전에 이렇게 말한 적도 있었다. 


"엄마, 우리가 전에 엄마 잔소리를 다 잡아먹었는데도 엄마는 또 잔소리를 할 수 있어?"


아이들하고 무슨 이런저런 소리를 잡아먹는 놀이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연호가 '우리가 엄마 잔소리 다 잡아먹었으니 이제 엄마는 잔소리 못하겠다~~' 한 적이 있었다. 






한번은 안방 화장실 문을 열었는데 시멘트냄새와 약품냄새같은 안좋은 냄새가 확~ 맡아진 적이 있었다. 

그런데 연수가 "아~ 냄새 좋다!"해서 내가 "이 냄새가 좋아?"하고 물었더니 연수가 대답하길

"응. 난 우리집 냄새는 다 좋아~!" 했다. 


아. 그렇구나. 싶었다. 

우리집 냄새라면 다 좋아하는 아이들. 

집이라면 무엇이든, 언제든 포근하고, 익숙하고, 좋아하고 반기는 아이들에게 나는 왜이리 화내며 살지.. 순간 미안해졌었다.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치지 말아야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좋은 가치들, 엄마가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들, 아이들이 꼭 마음안에, 삶의 자세로 가져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것이 있다면 어떻게 전달할까.. 를 고민하게 된다. 


이따금, 한번씩만, 아주 분위기가 좋을 때, 나직히, 넌지시, 조근조근.. 얘기해주는게 좋지 않을까.

즐겁게, 유쾌하게 전해줘도 좋겠고, 따뜻하고 진지하게 얘기할 수 있을 때. 


화내고, 소리소리지르며, 다다다다 주절주절 잔소리처럼 쏟아내서는 아이도 못 배우고, 나도 내면화하지 못하고 서글퍼지는 방식말고. 






오늘 연수는 내게 "엄마, 우주는 언제 만들어졌어? 정말 궁금해..."하고 진지하게 말했다. 

차려놓은 저녁밥은 안 먹고, 입으라는 팬티도 안 입고, 로봇 조립 조각들을 잔뜩 펼쳐놓고 앉아 손으로 맞추면서 뜬금없이 묻는게 그랬다. 


"그러게.. 엄마도 정말 궁금하다.. 우주의 나이는 몇 살일까.." 

도닦는 기분으로, 나도 진심으로 궁금했다. 과학자들은 우주의 나이를 계산하기 위해 소리가 퍼져가는 속도를 가지고 연구한다고 어느 책에서 본 것 같은데... 생각하면서. 


역시 밥은 안먹지만 그래도 팬티는 입은 연호가 옆에서 물었다. "엄마, 지금이 공룡이 사는 시대야?" 

한참 설왕설래끝에 연호가 궁금했던 것은 지금 우리집이 있는 이 곳이 공룡이 살았던 곳이냐는 것으로 밝혀졌다.


연제는 뜬금없이 '하늘 참 예쁘다, 구름 멋있다. 햇빛 좋다~' 이런 말 하기를 좋아한다.

엄마가 창문을 내다보며, 1층 현관문을 나서며 자주 하는 말이라 저도 재밌어서 따라하는 것이다.

내가 전해주고 싶은 것들은 그렇게 문득문득, 바람을 타고, 함께 손을 잡고 걸어가는 어떤 좋은 순간에 살짝살짝 전해지리라고.. 그렇게 생각한다.

꾸준히, 평화롭게 반복되는 소중한 일상의 삶과 함께.

 






어느 저녁, 늦게 퇴근하는 아빠가 보고싶다고 삼형제가 모두 아빠 옷을 찾아입고 놀기도 했다. 

연호는 "내가 아빠야" 하더니 연제를 보고 "야! 준화~!"하고 불러 한바탕 웃었다. 

멀리 살고 자주 못봐도 아빠의 동생은 준화 삼촌인 것이다. 아이들은 소중한 것을 잘 안다. 

연호는 이렇게 입고는 또 제사를 지낸다고 절도 했다. ^^


어제 내게 고마운 가르침을 준 언니는 우리 같은동 옆 라인에 사는 '토끼 이모'다. 

처음 이사왔던 4년전부터 토끼를 안고다니는 앳된 누나와 연수가 친해졌었다. '토끼 누나'라고 불렀는데 몇번 마당에서 토끼 데리고나와 밥 줄때마다 같이 들여다보고 놀다보니 '토끼 누나'가 세 명이라는 것을 알게됐다. 

그 엄마인 언니와 나도 친해져서 반갑게 인사하고 지내며 이야기 나누다보니 글쎄, 군대간 아드님과 고등학생 아드님까지 해서 다섯 아이를 키워낸 베테랑 엄마셨다. 

4년이 흐르는 동안 우리집에도 아기 둘이 더 태어나 삼형제가 아웅다웅 자라고, 토끼는 엄마토끼가 되었다가 아기들은 모두 다른집에 보내고 이제 할머니 토끼가 되었다.   

언니는 초등학교 장애학급 보조교사다. 

다섯 아이를 키우며 본인도 공부해서 몸이 불편한 아이들을 돌보고 가르치는 선생님이 된 언니는

퇴근길에 마당에서 수호제를 만나면 반갑게 안아주고, 걸음을 멈춰 나와 이야기를 나누다 들어가신다.


<천사들은 우리 옆집에 산다>는 책을 통해 알게된 구절.


"지상에서 천국을 찾지 못한 사람은

하늘에서도 천국을 찾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어디로 이사 가든

천사들이 우리 옆집을 빌릴 테니까.


-에밀리 디킨슨"


처럼 우리 옆집에 살고있는 천사들께 깊이 감사드리는 밤이다.







Posted by 연신내새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