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동네.세상2008. 1. 17. 10:41

90년대 후반에 대학을 다닌 나는 또래의 대학생들보다는 집회 경험이 많은 편이다.

등록금인상반대, 통일대축전, 출범식, FTA저지, 노동자대회... 등 다양한 집회에 나가보면

한결같이 들리는 정겨운 소리가 있었는데

바로 "마스크~" 다.

쌀푸대 같은 자루안에 마스크를 한가득 담아가지고 팔러 다니시는 이 아저씨는

그날그날의 집회 주제에 맞게 마스크에 이름을 붙여 부르셨고, 그 6~8음절의 가락이 워낙 특이하기 때문에 듣는 재미가 더욱 쏠쏠했다.

"독재타도 마스크~", "비정규직철폐 마스크~", "이적규정철회 마스크~" 등등

이름은 제각각이어도 '마'자에 힘을 주는 독특한 '마아~~스크'라는 마무리때문에 통일성이 있었고,

겨울밤에 아련하게 들리는 '찹싸알~~떠억 메밀묵~'소리같은 정겨움이 있었다.

그러나 사실 마스크 아저씨가 등장했다는 것은

이제 집회가 곧 위험해질수도 있다는 신호이기도 했다.

최루탄이 날아올수도 있고, 사진 체증이 이루어질수도 있으며,

조만간 전경이 진압을 해들어올수도 있다는 것이어서

아저씨의 등장은 반가움과 함께 마음 깊은 곳에 슬며시 두려움이 깔리게 하는 것이기도 했다..


이 청명한 날 오전에 갑자기 '마스크 아저씨' 얘기를 하는 것은..

내가 오늘 마스크를 끼고 책상앞에 앉아있기 때문이다.


신혼살림으로 내가 장만한 대표적인 가구는 장롱과 책상이다.

침대는 쓰지 않기로 했고, 거실 소파는 나무가 아닌지라 큰 나무로 된 녀석은 이 둘인데,

새가구냄새에 민감한 내가 장롱은 '친환경인증'을 받아 '새가구냄새'가 없다는 신모델 녀석으로 장만했으나

책상은 그런 녀석을 못 구한 것이다.


덕분에 큼직한 책상이 방의 반을 차지하는 서재(로쓰는 작은방)에 들어오면 머리를 띵하게 하는 새가구 냄새가 물씬 풍겨온다.

책상이 들어온 다음날부터 거의 매일 창문을 열어놓고 냄새를 뺴보았지만 여전히 10분만 앉아있으면 눈이 시큰해지는 수준이다.


유해물질을 나 혼자 먹는건 그래도 괜찮으나

명색이 곧 엄마가 될 사람으로서

이 냄새때문에 태어날 애기가 아토피라도 앓게되면 어쩌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책상앞에 앉아 일을 시작한 오늘부터는

공기청정기도 작은방에 갖다놓고, 마스크까지 찾아끼고, 창문을 조금 열어놓는 대신 목도리도 칭칭 두르는

중무장을 하고 이렇게 글을 쓰는 것이다.


무상의료를 주장하는 민주노동당 팜플렛에 이런 문구가 있었다.

"엄마는 오늘도 치료비와 싸운다"

패러디하자면 "엄마는 오늘도 유해물질과 싸운다"

아토피없는 세상, 생명을 위협하는 유해물질을 만들어내지 않는 세상, 치료비걱정 없는 세상...이 올때까지는

마스크가 필수품이다.



Posted by 연신내새댁